[지역과 현장] 최저임금을 진정한 '최저' 임금으로 만들기 위하여
한 해에 두 번, 정확히 말하면 만 1년 안에 두 번 임금인상을 한 회사가 있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세일엠텍이라는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노동조합과의 임금교섭으로 2010년 6월에 한 번, 최저임금 인상 적용으로 1월에 또 한 번. 하지만 이런 임금인상을 두 번씩 하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그게 참 싫었다. 최저임금 간당간당한 저임금의 삶도 싫었다. 그래서 올해는 결의했다. 최저임금(내년)을 넘겨보자! 그리고 살짝 아쉬운 승리를 거뒀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던 세일엠텍 노동자들
세일엠텍은 2009년에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조합원 약 60명, 남부지역지회 사업장치고는 조합원수가 많은 편이었다. 자동차 카시트커버를 생산하는 미싱공장이었고 조합원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현장은 당연히(!) 열악했다. 고개를 숙인 채 하루 종일 서서 미싱을 돌려야 했고 잔업, 특근은 일상이었다. 없을 땐 억지로 연차 쓰고 쉬어야 했다. 버티다 못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몇 차례 교섭 끝에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교섭결과가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일단 노동조합의 안정화가 중요했다. 이듬해인 2010년 임단협 역시 큰 폭의 임금인상을 이뤄내지 못하고(임금 15,000원 인상) 마무리되었다. 조합원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잔업, 특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고,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회사가 분노스러웠다. 2011년 임단협은 그렇게 조합원들의 분노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남부지역지회는 올해 2월 출범한 남부지역 전략조직화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사업에 조직의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다. 중소영세사업장의 저임금 비정규노동자들이 밀집한 구로공단에서 미조직노동자 조직화의 전형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는 남부지역지회의 사명이었다.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하며 올해 제일 중점에 두었던 것은 역시 최저임금문제였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업장이 많았고, 교묘한 위반사업장 역시 존재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핵심적 목표는 지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들을 최저임금 인상투쟁의 주체로 세워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역에서는 실태조사와 선전전, 페스티발 사업 등이 연이어 진행되었다. 동시에 다른 한축에서는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 중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을 재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진행되었다. 주되게는 세일엠텍, A사업장, B사업장 등이 있었다. 이 사업장의 활동가들과 집담회 등을 진행하며 임단협 시 공동의 대응을 만들어 나가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임단협 공동대응은 힘들어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일엠텍은 올해 무조건 최저임금선을 돌파하기 위한 투쟁을 진행하게 되었다. 조합원들의 관심도 여기에 쏠려 있었고, 지역에서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도 있었다. 세일엠텍 내에서 교섭이 몇 차례 진행되었고 회사측 태도는 분명했다. 임금 3만원(그것도 2010년 임금 기준, 2011년 최저임금 인상분 포함)인상. 투쟁에 돌입해야 했다. 7월 4일 4시간동안 경고 파업을 했다. 세일엠텍 분회 결성 이후 첫 파업이었다. 팔뚝질도 어색하고 구호외치기도 힘겨웠다. 아는 노래?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고 회사 앞마당에서 파업 집회를 하며 대의원들은 머리띠를 둘렀다. 7월 6일 이날은 금속노조 파업 지침이 내려온 날이었고 서울지부 확대간부들이 세일엠텍 앞으로 왔다. 지역의 여러 사업장과 단체에서도 투쟁에 함께 했다. 조합원들은 이날도 밥 먹고 나와서 4시간 파업을 진행했다. 이번엔 회사 앞 인도. 파업 두 차례 만에 현장 밖으로 나왔다. 조합원만큼 모인 연대대오에 조합원들은 놀랐고 좋아했다. 신나게 파업투쟁을 진행했다. 회사는 난리가 났고, 앰프 줄여달라, 교섭하자며 지회장, 부지회장을 붙잡았다. 일단 이날 이후 집중교섭을 하기로 했고 약 2주간 교섭이 몇 차례 진행되었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
7월 22일 교섭을 앞두고 지회 임원들이 모여 앉았다. 최저임금은 날치기로 통과된 상황, 22일 교섭에서도 안이 안 나오면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전면적 투쟁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상을 했다. 최저임금이 날치기로 통과된 것에 대해, 최저임금만큼 올리자는 요구 때문에 파업을 해야 하는 현실에 대해 남부지구협 의장(남부지역지회 지회장)이 노동부 관악지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장에서는 최저임금 날치기에 대한 분노가 나오고 있었다. 날치기 직후 KBS에서 진행한 최저임금 설문조사에서 70%이상이 날치기된 최저임금에 대해 불만족스럽다고 했다. 노동자의 미래에서 진행한 최저임금 만족도 조사에서도 90%이상의 지역노동자들이 불만족스럽다는 답변을 했다. 날치기로,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결정된 최저임금에 대한 지역 노동자들의 분노를 모아낼 수 없을까? 남부지구협 의장이 노동부 관악지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면서 노동부의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고 최저임금도 안주려는 사업장을 고발하고, 지역의 최저임금 현실에 대해 매일 알려낸다면 뭔가 되지 않을까? 지회 임원 셋이 모여 이런 상상을 했다. 그리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노동부 앞 단식은 무산되었다. 남부지회장은 세일엠텍 회사 안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잠은 지회 봉고차에서 잤다. 노동부 앞에서의 투쟁이 무산됐지만 사업장에서라도 투쟁을 승리로 만들어야 했다. 조합원들은 왜 단식까지 하냐며 말렸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지회는 이미 세일엠텍만의 투쟁이 아닌 상황에서 끝까지 한번 가봐야 했다.
22일 오후 8시까지 이어진 교섭에서도 회사측 안은 나오지 않았으나 회사가 교섭을 한 번 더 하자고 했다. 결렬선언은 한차례 미루기로 하고 25일 다시 교섭이 열렸다. 지회장은 주말 내내 굶었다. 월요일 교섭에서도 회사는 안을 내지 않았고 오후 5시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현장에서 조합원들 간에 토론이 벌어졌다. 이쯤 됐으면 그만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찬반투표를 했고 전면투쟁에 찬성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26일 아침, 조합원들은 출근하자마자 일손을 놓았다. 전면파업은 안 될 거라고 봤던 회사가 몸이 달았다. 아침부터 교섭하자고 졸라서 결국 12시부터 교섭에 들어갔다.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신나게 파업하고 놀았다. 영화도 보고 구호도 배우고 노래도 배웠다.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가 맞았다.
26일 저녁 결국 회사와 합의를 만들어냈다. 임금 4만원 인상, 일시금 20만원 지급, 11년 최저임금 인상분(130원) 전 직원에게 적용, 내년 1월 임금 15,000원 인상. 한 10%정도 부족한 합의였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그 정도면 됐다 했다. 수고했다고 눈시울을 붉히는 조합원도 많았다. 교섭보고를 하는 지회장도 목이 맸다. 조합원들의 단결이 고마웠고, 부족한 안에 만족해준 것이 감사했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비참한 현실을 바꾸자, 바꿀 수 있다!
최저임금은 현실에서 최저임금이 아니다. 많은 중소사업장들에서 최저임금은 임금의 하한선이 아니고, 말그대로 최고임금이다. 노동조합이 최저임금선을 돌파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현실은 이를 방증한다. 최저임금을 진짜 ‘최저’임금으로 만들려면 여기저기서 최저임금선을 돌파해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으로 인해 동일한 처지-임금의 하향평준화?-에 놓이게 된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올해 남부지역지회는 노동자의 미래와 함께 지역 미조직사업, 지역 최저임금 투쟁을 하면서 애초부터 임단협때 최저임금문제를 결합시켜 투쟁을 만들어가려 했었다. 지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전과 조직사업장에서의 지상전의 아름다운 결합. 애초 의도했던 것만큼의 성과는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최소한 사업장에서의 승리는 거두었다. 최소한의 희망을 본 것이다. 최저임금 대상자가 최저임금 투쟁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 옳았다. 최소한 올해 지역지회와 노동자의 미래의 실천은 이를 증명해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보다 적극적인 실천이다. 조직 노동자들이 나서고 미조직 노동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틔워준다면 뭔가 달라져도 달라지긴 할 것이다. 가리봉역, 독산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노동자들, 최소한 그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서명이라도 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투쟁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면 바꿀 수 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던 세일엠텍 노동자들
세일엠텍은 2009년에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조합원 약 60명, 남부지역지회 사업장치고는 조합원수가 많은 편이었다. 자동차 카시트커버를 생산하는 미싱공장이었고 조합원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현장은 당연히(!) 열악했다. 고개를 숙인 채 하루 종일 서서 미싱을 돌려야 했고 잔업, 특근은 일상이었다. 없을 땐 억지로 연차 쓰고 쉬어야 했다. 버티다 못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몇 차례 교섭 끝에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교섭결과가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일단 노동조합의 안정화가 중요했다. 이듬해인 2010년 임단협 역시 큰 폭의 임금인상을 이뤄내지 못하고(임금 15,000원 인상) 마무리되었다. 조합원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잔업, 특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고,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회사가 분노스러웠다. 2011년 임단협은 그렇게 조합원들의 분노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남부지역지회는 올해 2월 출범한 남부지역 전략조직화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사업에 조직의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다. 중소영세사업장의 저임금 비정규노동자들이 밀집한 구로공단에서 미조직노동자 조직화의 전형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는 남부지역지회의 사명이었다.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하며 올해 제일 중점에 두었던 것은 역시 최저임금문제였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업장이 많았고, 교묘한 위반사업장 역시 존재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핵심적 목표는 지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들을 최저임금 인상투쟁의 주체로 세워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역에서는 실태조사와 선전전, 페스티발 사업 등이 연이어 진행되었다. 동시에 다른 한축에서는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 중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을 재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진행되었다. 주되게는 세일엠텍, A사업장, B사업장 등이 있었다. 이 사업장의 활동가들과 집담회 등을 진행하며 임단협 시 공동의 대응을 만들어 나가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임단협 공동대응은 힘들어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일엠텍은 올해 무조건 최저임금선을 돌파하기 위한 투쟁을 진행하게 되었다. 조합원들의 관심도 여기에 쏠려 있었고, 지역에서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도 있었다. 세일엠텍 내에서 교섭이 몇 차례 진행되었고 회사측 태도는 분명했다. 임금 3만원(그것도 2010년 임금 기준, 2011년 최저임금 인상분 포함)인상. 투쟁에 돌입해야 했다. 7월 4일 4시간동안 경고 파업을 했다. 세일엠텍 분회 결성 이후 첫 파업이었다. 팔뚝질도 어색하고 구호외치기도 힘겨웠다. 아는 노래?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고 회사 앞마당에서 파업 집회를 하며 대의원들은 머리띠를 둘렀다. 7월 6일 이날은 금속노조 파업 지침이 내려온 날이었고 서울지부 확대간부들이 세일엠텍 앞으로 왔다. 지역의 여러 사업장과 단체에서도 투쟁에 함께 했다. 조합원들은 이날도 밥 먹고 나와서 4시간 파업을 진행했다. 이번엔 회사 앞 인도. 파업 두 차례 만에 현장 밖으로 나왔다. 조합원만큼 모인 연대대오에 조합원들은 놀랐고 좋아했다. 신나게 파업투쟁을 진행했다. 회사는 난리가 났고, 앰프 줄여달라, 교섭하자며 지회장, 부지회장을 붙잡았다. 일단 이날 이후 집중교섭을 하기로 했고 약 2주간 교섭이 몇 차례 진행되었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
7월 22일 교섭을 앞두고 지회 임원들이 모여 앉았다. 최저임금은 날치기로 통과된 상황, 22일 교섭에서도 안이 안 나오면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전면적 투쟁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상을 했다. 최저임금이 날치기로 통과된 것에 대해, 최저임금만큼 올리자는 요구 때문에 파업을 해야 하는 현실에 대해 남부지구협 의장(남부지역지회 지회장)이 노동부 관악지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장에서는 최저임금 날치기에 대한 분노가 나오고 있었다. 날치기 직후 KBS에서 진행한 최저임금 설문조사에서 70%이상이 날치기된 최저임금에 대해 불만족스럽다고 했다. 노동자의 미래에서 진행한 최저임금 만족도 조사에서도 90%이상의 지역노동자들이 불만족스럽다는 답변을 했다. 날치기로,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결정된 최저임금에 대한 지역 노동자들의 분노를 모아낼 수 없을까? 남부지구협 의장이 노동부 관악지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면서 노동부의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고 최저임금도 안주려는 사업장을 고발하고, 지역의 최저임금 현실에 대해 매일 알려낸다면 뭔가 되지 않을까? 지회 임원 셋이 모여 이런 상상을 했다. 그리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노동부 앞 단식은 무산되었다. 남부지회장은 세일엠텍 회사 안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잠은 지회 봉고차에서 잤다. 노동부 앞에서의 투쟁이 무산됐지만 사업장에서라도 투쟁을 승리로 만들어야 했다. 조합원들은 왜 단식까지 하냐며 말렸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지회는 이미 세일엠텍만의 투쟁이 아닌 상황에서 끝까지 한번 가봐야 했다.
22일 오후 8시까지 이어진 교섭에서도 회사측 안은 나오지 않았으나 회사가 교섭을 한 번 더 하자고 했다. 결렬선언은 한차례 미루기로 하고 25일 다시 교섭이 열렸다. 지회장은 주말 내내 굶었다. 월요일 교섭에서도 회사는 안을 내지 않았고 오후 5시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현장에서 조합원들 간에 토론이 벌어졌다. 이쯤 됐으면 그만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찬반투표를 했고 전면투쟁에 찬성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26일 아침, 조합원들은 출근하자마자 일손을 놓았다. 전면파업은 안 될 거라고 봤던 회사가 몸이 달았다. 아침부터 교섭하자고 졸라서 결국 12시부터 교섭에 들어갔다.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신나게 파업하고 놀았다. 영화도 보고 구호도 배우고 노래도 배웠다.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가 맞았다.
26일 저녁 결국 회사와 합의를 만들어냈다. 임금 4만원 인상, 일시금 20만원 지급, 11년 최저임금 인상분(130원) 전 직원에게 적용, 내년 1월 임금 15,000원 인상. 한 10%정도 부족한 합의였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그 정도면 됐다 했다. 수고했다고 눈시울을 붉히는 조합원도 많았다. 교섭보고를 하는 지회장도 목이 맸다. 조합원들의 단결이 고마웠고, 부족한 안에 만족해준 것이 감사했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비참한 현실을 바꾸자, 바꿀 수 있다!
최저임금은 현실에서 최저임금이 아니다. 많은 중소사업장들에서 최저임금은 임금의 하한선이 아니고, 말그대로 최고임금이다. 노동조합이 최저임금선을 돌파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현실은 이를 방증한다. 최저임금을 진짜 ‘최저’임금으로 만들려면 여기저기서 최저임금선을 돌파해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으로 인해 동일한 처지-임금의 하향평준화?-에 놓이게 된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올해 남부지역지회는 노동자의 미래와 함께 지역 미조직사업, 지역 최저임금 투쟁을 하면서 애초부터 임단협때 최저임금문제를 결합시켜 투쟁을 만들어가려 했었다. 지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전과 조직사업장에서의 지상전의 아름다운 결합. 애초 의도했던 것만큼의 성과는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최소한 사업장에서의 승리는 거두었다. 최소한의 희망을 본 것이다. 최저임금 대상자가 최저임금 투쟁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 옳았다. 최소한 올해 지역지회와 노동자의 미래의 실천은 이를 증명해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보다 적극적인 실천이다. 조직 노동자들이 나서고 미조직 노동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틔워준다면 뭔가 달라져도 달라지긴 할 것이다. 가리봉역, 독산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노동자들, 최소한 그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서명이라도 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투쟁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면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