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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9-10.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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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투쟁, 대중조직화의 원칙과 전략

화물연대 심동진 조직국장 초청, 노동자운동연구소 4차 월례 워크숍

이유미 | 노동자운동연구소 조사통계국장
2003년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기치를 들고 폭풍처럼 등장한 화물연대는 스스로가 당당한 노동자임을 선언했다. 자본과 정권을 상대로 위력적인 투쟁을 벌인 결과 화물연대가 결성 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천 삼백 명으로 출발한 조직이 2만이 넘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 조직화의 중심에 심동진 화물연대 조직국장이 있었다. 노동자운동 연구소는 7월 23일 현장에서 대중조직화에 헌신해온 심동진 조직국장을 초청하여 조직가로서의 자세와 원칙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의 구수하고 재치 있는 말솜씨 덕분에 강연장에는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이야기를 듣는 참가자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왜 조직화에 나서는지 답하라

심동진 조직국장은 뜻밖의 이야기로 워크숍을 시작했다. 조직가로서 산전수전 겪으면서 잔뼈 마디마디가 굵은 그의 첫마디는 ‘조직화란 슬픈 것’이라는 것이었다. 조직화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문제인데, 사상이나 이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직한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한 마디로 각오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옛날 얘기처럼 술술 풀어냈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화물연대 활동을 열심히 하던 동지가 있었는데 집안 생계부터 아픈 동생의 병원비까지 책임지고 있었다고 한다. 활동하면서 수입이 줄고 가족들에게 돈도 못 보낼 형편이 되자, 여동생은 스스로 짐이 된다고 여겼는지 그만 자살하고 말았다. 동생을 잃은 활동가는 심동진 조직국장을 원망했고 그도 미안함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수많은 활동가들이 투쟁에 나서면서 경제적인 문제나 가족과의 갈등 등 크고 작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 심동진 조직국장은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괴로워하고 원망하는 동지를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조직가의 자세라고 말한다. 괜한 사람 같이하자고 했다가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자책으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에 조직화가 슬프다고 하는 것이리라.
이어서 그는 고통이 반복된다고 해서 무뎌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을 조직하면서 마음 아프고 괴로운 일이 계속 생겨나겠지만 그게 반복된다고 해서 익숙해지지만은 않더라는 것이다. 그는 어떤 선배의 경험담을 예로 들었다. 그 선배는 빨치산 활동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지만 용감해 지기보다는 겁이 더 났다고 한다. 사회과학 서적에는 용감해지자고 했지 겁이 날 거라는 얘기는 없었던 것처럼, 조직화도 책에 나오지 않는 인간사의 굴곡을 헤쳐 나가는 일이기에 슬픔에 무뎌지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심동진 조직국장은 조직화를 하는 이유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분명한 답을 가져야 흔들릴 때 중심을 잡을 수 있다며, 바쁜 와중에도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동진 조직국장은 조직화란 고난의 길이니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한다고 당부하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중국공산당도 창당 당시 13명으로 미미하게 시작했지만 결국 혁명에 성공하여 창대한 결과를 낳았다며 조직가들은 포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동진 조직국장 본인이 화물연대를 50여 명의 발기인들과 함께 시작했지만 2만이 넘는 규모로 조직을 확대해 보았기에 더욱 확신하는 것이리라. 운동이 어려운 시기에 주류화 전략을 택하며 청산주의로 흘러가지 않고 묵묵히 현장 조직가의 길을 걷는 동지들의 노력이 반드시 결실을 맺길 바란다는 격려였다.


조직화의 삼박자

심동진 조직국장은 대중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의 상태와 행동, 조직가의 능력, 그리고 조직가의 의지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대중들은 정체된 상태에 있다가도 행동에 나서기도 하고, 투쟁이 고조되었다가 퇴각하기도 하며,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기회를 노리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하다. 그러한 가운데 조직가는 대중들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합창단을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말이다. 합창단의 상태를 보고 반 박자 빠르거나 느리게 지휘하는 것처럼 대중들의 상태를 파악해서 구체적인 방침을 실행하는 것이 조직가의 능력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대중들이 위축되고 내부 경쟁하는 시기에 토론이나 교육 없이 성급히 투쟁을 호소한다면 외면당할 뿐이다. 대중들의 행동이 정체된 시기에는 조직화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소모임이라도 만들어가면서 차근차근 확대해야 한다고 한다. 반대로 87년 투쟁 같은 임계상태에는 급진적이고 선명하게 입장을 제출하고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최근 희망버스에 사람들의 관심이 왜 모이고 있는지 나름의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현재 이명박 정권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짓밟으면서 협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저항에 나서기만 하면 앞선 사례처럼 탄압할 테니 잠자코 있으라는 식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협박에 움츠러들지 않겠다, 복수하고 싶다는 심리가 점차 쌓여서 역전을 노리는 상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진중공업 투쟁은 탄압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대중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계기인 만큼 대중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사업을 제안하고 조직노동자들이 함께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양하게 뒤섞여 있는 대중의 상태를 파악하고 구체적인 방침을 추진하는 것과 함께 필요한 게 바로 조직가의 의지다. 심동진 조직국장은 눈물을 세 번쯤 흘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감동의 눈물, 배신의 눈물, 허무의 눈물이 그것이다. 그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것은 무일푼이던 화물연대 초창기였다. 남의 사무실 창고 같은 데서 먹고 자면서 노조를 조직했는데, 정성이 갸륵했던지 매일 아침 찾아와 복지리 사주면서 해장시켜주던 사람, 겨울엔 전기담요 사주면서 챙기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배신의 눈물은 삼성에서 노조 결성시도 하면서 겪었던 일이다. 노조 만드는 일보다 교섭하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고 한다. 고생고생해서 노조 만들고 나서 교섭에 들어가면 매수가 되든지 뭐가 되든지 사측에 의해 깨지기 때문이다. 삼성조직화 사업에 닥치는 대로 뛰어들어봤지만 너무 배신당하는 일이 많아서 심지어 이건희보다 삼성노동자들이 더 미웠던 적도 있다고 했다. 세 번째 허무의 눈물은 문제가 있을 때에는 찾아와서 상담하다가 해결되면 떠나가거나, 위기에 처한 조직을 천신만고 끝에 복원하니까 외면당하는 경우다. 이럴 때에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조직화가 자기 세력 만들기는 아니니까 세상에 조직할 노동자들이 많다는 생각으로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심동진 조직국장은 조직가의 강인한 의지와 능력, 그리고 대중들의 상태가 들어맞아야 조직화 사업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조직가의 활동지침

계속해서 심동진 조직국장은 조직가로서 명심해야 할 활동지침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투쟁에 나설 때 자신의 몸에 맞는 무기를 지니고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을 따라 해도 좋지만 자기 처지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될 수도 있다. 1993년 현총련 투쟁의 경우 위원장이 직권조인하고 날라버린 상황이었지만 조합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멋지게 승리한 사례다. 정말 교과서에 나올법하게 단계별로 투쟁 수위를 높여가면서 싸워서 이겼고 사람들을 고무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조건이 다른 사업장에서 같은 전술을 쓴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600여 명 있는 사업장인데 조합원 200명이고 그중에서 적극적인 조합원이 50명이라면, 현총련처럼 부서별 파업 돌입은 불가능하다. 투쟁이 확대 상승되는 것이 아니라 앞서나간 단위만 탄압받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총련 투쟁처럼 해야 승리한다고 주장하며 우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할 때 왕이 쓰던 갑옷과 칼을 거절하고 돌팔매를 선택한 것이 거인을 쓰러뜨린 비결인 것처럼 자기 조건에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둘째, 물이 흐를 때 웅덩이를 만나면 채우고 다시 흐르듯, 어디를 조직하면 조직하던 사람이 떠나도 그 단위가 굴러갈 수 있도록 전천후 활동가를 양성해야 한다. 심동진 조직국장은 활동가들이 조직화를 시작한 곳에서 떠나려면 “본인을 복제할 수 있는 확실한 세포를 구축해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전주 버스 사업장에서 민주노조 건설 투쟁이 비교적 잘 되고 있는데, 조합원 가운데 화물연대 투쟁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 놓아야 나중에 기회를 만나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는 현장에 있는 다양한 모임들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씩 늘려가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조직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얘기를 귓등으로 들어도 그 사람들을 배척해서는 안 되고, 충분히 친해지기 전에는 느슨하고 넉넉하게 대해야 한다. 좌파들의 고질적 맹점이 처음부터 원칙을 들이미는 것인데 조급하게 굴면 일을 그르친다는 지적이다. 물론 친해지고 나서도 원칙과 규율을 세우지 못하면 어용과 다를 바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현장에서 영향력이 큰 기존 조직을 포섭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공동투쟁은 ‘퍼펙트 스톰’처럼 해야 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퍼펙트 스톰’은, 위력적이지 않던 소용돌이가 합쳐지면서 엄청난 규모의 파괴력을 지닌 폭풍이 된다는 뜻인데, 공동투쟁 역시 그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화물연대가 철도, 덤프와 공동투쟁을 기획했던 사례를 들면서 공동투쟁의 원칙을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자력갱생이다. 공동투쟁에 돌입하면 적들은 우리를 분할, 각개격파하려 드는데, 공동투쟁을 제안한 조직이 나서서 ‘우리가 계속 남을 테니 제안 받은 단위는 성과를 얻어가라’라는 마음가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투쟁에 임해야 공동투쟁의 성과를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공동투쟁이 수세적이고 품앗이 투쟁에 그치곤 하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동투쟁을 위력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 번의 눈물 그 후

강연 뒤에는 참가자들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세 번의 눈물을 흘린 다음에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에는 자만하면 안 되고, 배신과 허무의 눈물을 흘릴 때에는 다른 일을 찾아 운동을 지속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배신의 눈물을 흘린 뒤에는 자다가도 벌떡 깰 정도로 힘겨웠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활동을 망설이던 사람들 엄청 꼬드겨서 같이 활동하면서 돈 때려 박게 하고 감옥에도 보내고 했는데 내가 배신당했다고 떠날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힘들어도 함께해온 동지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붙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 질문은 구체적인 조직화 사례에 관한 것이었다. 심동진 조직국장은 2003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조합원들은 임계상태에 있었다고 회고한다. 개별 사업장별로 싸움이 수없이 벌어질 수 있었지만 하나씩 대응하다가는 진이 빠지는 수가 있기 때문에 ‘큰 놈을 쓰러뜨리고 작은 놈을 굴복시키자’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2002년부터 꼬박 1년간 준비해서 대정부 투쟁에 나선 것이 2003년 파업이었다. 그는 당장 나서자는 조합원들을 진정시켜 가면서 준비했기 때문에 위력적인 투쟁이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남의 손을 빌린 것이 아니라 자력갱생을 기본 원칙으로 세웠던 것도 중요했다. 맨바닥, 무일푼에서 시작해 사람 모으고 돈 모았으며, 투쟁에 나설 때에도 독자적으로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화물연대가 2003년에 위력적인 힘을 발휘하며 투쟁했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투쟁 목표를 근시안적으로 세울 것이 아니라 길게 봐야 한다. 화물연대 출범식을 앞두고 우리가 왜 노동자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교육을 잡아야 할 정도로 정체성이 모호했지만 지속적인 토론과 교육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계급의식을 자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노동기본권 쟁취를 목표로 정부에게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을 만들어 갔다고 한다. 그가 말한 대중운동의 원칙들이 조직화 사례 구석구석에서 빛을 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달은 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고

노련한 베테랑 활동가라면 두려움도 없고 흔들림도 없을 것이란 생각과 다르게, 고뇌하고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준 심동진 조직국장. 본인의 경험이 하나하나 묻어나는 이야기라 참가자들에게 더욱 호소력 있게 와 닿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마음을 다잡아 줄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시 한수를 소개했다.

梅不賣香(매불매향) - 신흠(申欽)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그가 풀이하기를, 사상이념이 분명해야 오동나무처럼 천년이 지나도 후회 없이 아름다운 노래가 흐르고,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힘들다고 변절해서는 아니 되고, 달의 모습이 바뀐다고 해서 본질이 변치 않듯 계급투쟁의 본질도 바뀌지 않으며, 버드나무 가지가 꺾여도 새로 돋아나듯이 노동자는 투쟁에 패배해도 다시 투쟁에 나선다. 그는 평소 이 시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참석자들에게는 그의 삶 자체가 마음을 다잡아 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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