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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9-10.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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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건강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이승운 | 보건의료팀
뜨겁게 불붙은 약국 외 판매 논쟁

지난 7월 4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 일정을 밝혔다. 전문가 간담회와 공청회 등의 일정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약사법을 상정하는 일정이다. 약국이 운영하는 주간에는 판매하지 않고 심야와 공휴일에만 판매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지만 약국 외 판매 추진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는 의약분업 도입 시기에도 논의된 적이 있으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이하 경실련)는 십여 년 동안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해 왔다. 해묵은 논쟁거리였던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가 올해 갑자기 이슈가 된 것은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서의 감기약 슈퍼 판매를 언급하면서 국내에서 이것이 가능한지 알아보라는 발언이 시발점이었다. 이에 발맞춰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 ‘서비스산업 선진화 평가 및 향후 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 추진’을 예시로 들어 드라이브를 걸었다. 경실련 역시 3월부터 ‘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전국운동’을 선언하면서 불이 붙기 시작했다. 대한 약사회는 이에 반발하였고,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약사회의 의견을 일정 부분 받아들여 지난 6월 초, 약국 외 판매를 유보하고, 당번약국의 확대와 저소득층부터 상비약 보관함을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의 방안은 언론을 포함한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고, 청와대는 약국 외 판매 추진을 다시 지시하였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태도를 바꿔 우선 박카스, 액상 소화제 등의 약품을 의약외품으로 지정하여 약국 외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3차례의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의 논의 결과 7월 4일 약국 외 판매 추진 로드맵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 로드맵에 따라 7월 21일부터 의약외품으로 지정된 박카스, 액상소화제 등을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게 되었으며, 7월 28일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고, 9월 중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대해 의약품 오남용 우려를 이유로 반대를 표명했던 대한 약사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다. 언론에 의해서 조장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약사회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불신은 실체가 있었다. 실제로 심야에 상비약을 구하지 못하는 불편은 차치하더라도, 현재 의약품 구매과정에서 있으나 마나 한 복약지도와 약국 내에서의 무자격자 의약품 판매라는 대중의 경험은 대한약사회의 의약품 오남용 우려 주장을 근거 없는 주장으로 간주하게 하였고, 심지어 약사 직능 자체에 대한 무용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는 단순히 여론 수렴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의 도입 논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 편의’만큼이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의약품 안전성’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쟁에서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반의약품 중 안전성이 확립된 품목을 굳이 약국에서 살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의약품의 안전성이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한국인의 두통약’으로 알려진 진통제 ‘게보린’의 주성분인 이소프로필 안티피린(IPA)의 경우 2008년부터 재생불량성 빈혈 등 혈액학적 부작용 문제로 식약청이 ‘15세 미만 사용 금지, 장기 복용 금지’라는 조건을 걸었고, 결국 올해 식약청은 IPA가 포함된 제제를 생산하는 제조사에 직접 안전성을 검증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이에 따라 퇴출 여부를 판단하기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2004년에는 유명한 감기약 ‘콘택600’의 주성분인 페닐프로판올아민(PPA)이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식약청이 직접 시판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비충혈제거제로 콧속의 혈관을 수축시켜 코막힘을 완화하는 이 성분은 뇌혈관까지 수축시켜 뇌졸중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식약청의 조치가 뒤늦었다는 여론이 확산되어 식약청장이 중도 사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처럼 일반의약품 중 다빈도로 사용되는 감기약, 진통제도 언제든지 안전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안전성이 확립된 약을 철저히 분류해야 하며 안전성이 확립되었다고 판단된 약품에 대해서도 충분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지는 영국의 발표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13,000여 명이 의약품 부작용을 겪었고 이 중 3,000명이 사망하였다. 이 중 일반의약품으로 인한 부작용 대다수는 진통제로 인한 위출혈 등이다. 미국은 매년 18만 명 이상이 의약품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이 때문에 미국 식품의약청(FDA)는 자유판매약을 약사의 관리 하에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이러한 의약품 부작용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의약품 부작용 보고 건수는 2006년 인구 천 명당 0.05명이며, 일본의 0.5명(2005년) 미국의 1.5명(2004년)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는 한국에서 의약품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고되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안 된다는 의미이다. 비록 2006년 이후 보고 건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올해 5월에서야 의약품안전관리원이 신설될 정도로 의약품 부작용 관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또 한국은 영국의 주치의 제도처럼 개인의 병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의료 전달 체계가 부실하므로 약국 외 판매 시 발생할 의약품 부작용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결국 국민의 건강은 위협받고, 이로 인한 의료비 지출은 증가할 것이다. 의약품 관리는 국민 건강이라는 원칙 아래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안전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지, 복약지도의 부실이라는 현 실태와 국민 불편이라는 근거만으로 손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의약품 안전성 문제가 일반의약품을 약국에서 판매한다고 해결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재 약국에서 일반의약품 판매 시 충분한 복약지도가 되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현재도 약국에서 슈퍼에서 사듯이 약을 살 수가 있는데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진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약국에서 약을 다룬다는 것은 단순히 판매의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 관리와 복약지도에 대한 책임을 사회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복약지도가 불성실하다면, 복약지도를 성실하게 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우선이어야지 약국 외 판매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약사에게 부과된 책임을 개개인에게 분산시켜 결국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부담까지 개인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의약품 재분류, 타협의 문제가 아니다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약사회는 안전성 확립을 이유로 일부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주장했고, 이에 맞서 의사협회에서는 오히려 일부 일반의약품의 안전성을 우려하며 전문의약품 전환을 주장했다. 의약품 안전성을 근거로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반대하던 약사회와 찬성하던 의사협회가 의약품 재분류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논리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사회와 의사협회가 직능이기주의로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비판받는 이유이다. 의약분업 이후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재분류가 이뤄지지 않아서 재분류 논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의약품 재분류가 의약분업 이후 처음 있는 일이기에 다양한 측면에서 진통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8월 8일 제5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약품분류 소분과위원회 회의에서 소비자 단체가 재분류를 요청한 17개 의약품 품목에 대해 논의한 결과는 약사, 의사 단체들의 주장에 일정부분 타협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의약품분류 소분과위원회 자체 구성이 의료계 단체 대표 4인과 약계 대표 4인, 공익 대표 4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일부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은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에 따른 광고시장의 확대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시한 방안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유럽은 우선 전문의약품으로 등록하면, 일정 정도 이상 사용한 후 의약품의 안전성 결과를 토대로 일반의약품 전환을 결정하며, 미국은 일반의약품 전환 시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에게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일반의약품의 허가 및 전환을 전담으로 하는 부서가 마련되어 있으며, 허가 및 전환 과정에서의 절차와 기준이 명확하고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으므로 심의 과정에서 심사자와 신청자의 마찰을 최소화한다. 하지만 한국은 의약품의 허가를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의약품 평가부에서 주관하지만 일반의약품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이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모두 관장한다. 또한 안전성, 유효성에 관한 자문이 필요한 경우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해당 분과위원회(의약품분류 소분과위원회)의 자문을 받을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의약품의 안정성, 유효성을 판단하는데 이해당사자들의 자문을 받는 것이다. 한국의 의약품 분류기준은 일본의 분류기준과 매우 유사한 편이지만, 일반의약품 허가 및 전환에 있어서 일본과 달리 의약품 표준제조기준의 확립, 허가 과정에서의 규정과 절차의 일목요연함이 명확하지 않다. 투명하게 재분류가 결정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이는 의약품 재분류가 첫 시도라는 점에서 시급한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난 8월 8일 식약청이 발표한 ‘의약품 재분류에 대한 기본입장’에 따르면 식약청은 현재의 의약품을 제로베이스에서부터 다시 재분류하는 작업을 연말까지 완료하며, ‘상시재분류시스템’을 새로 구축하고, 의약품 분류업무의 활성화를 위해 ‘분류추진TF’를 구성, 운영할 것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약품분류 소분과위원회의 구성을 객관성을 위해 관련단체 대표가 아닌 외부전문가로 구성하기로 했다. 이 같은 식약청의 기본입장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게 될지 주의가 필요하다. 의사, 약사들 관련단체뿐 아니라 광고시장을 노리는 종합편성채널 등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도록 충분히 과학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의료 공백’으로 인한 불편, 필요한 것은 올바른 의료전달 체계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심야 혹은 공휴일에 감기약, 해열제 등 상비약을 구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이러한 불편을 해소할 수는 있지만 앞서 말했던 의약품 오남용과 안전성의 문제를 피해가기 힘들다.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 측에서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은 당번약국의 확대였는데, 약사들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이 방식은 약사회 내부에서도 반발을 낳았고, 결국 적절하게 시행되지도 못했다.
이렇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또 다른 문제를 낳는 이유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심야와 공휴일에 의약품 구매의 불편함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은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1차 의료시스템의 부재이다. 한국 보건의료체계는 국가의 중장기적 계획 속에서 공공적으로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조정해왔다기보다 민간에 의존하고 의료 공백에 대해서는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왔던 것이다. 의약품 약국 외 판매는 이 상황에서 당장의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 공백을 아예 시장에 맡기는 것이고, 공공의료체계의 구축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진화된 사례인 양 언급했던) 미국에서의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는 비싼 의료비와 왜곡된 의료체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료기관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보건의료체계에서 공백의 문제는 공공의료를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은 24시간 보건서비스(NHS Direct, NHS Walk-In)를 통해 병원 진료시간 외에 발생하는 환자를 관리한다. 24시간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간호사의 문진 하에 의사(주치의)의 진료가 필요한지, 자가 치료로 해결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한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도 심야나 공휴일 진료를 위해 지역별로 거점을 두고 당직 의사들이 전화, 왕진 등을 통해 진료 공백을 해결한다. 일본에서도 인구 5만 명당 한 개 꼴로 ‘휴일야간급환센터’를 설치하며, 재택당번의제도(의무사항은 아님) 등을 시행하여 시간 외 진료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편의성을 이유로 약국 외 판매를 검토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응급실을 이용할 정도로 급한 질환이 아닌 경우 멀고 비싼 응급실이 아닌 시간 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시간 외 진료를 통해 약을 구매할 경우 약국 역시 현재처럼 자율적인 당번 약국 방식이 아닌 일정 수준 인구 혹은 면적당 거점 약국을 통해서 처방약, 일반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혹은 일정 수준 인구 혹은 면적 당 공공거점진료소를 통해 당직 의사, 약사를 두어 진료 및 처방조제가 가능한 방식을 고민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응급 의료체계 구축은 한국에서도 2000년대 주 5일 근무제 시행 이후를 대비하여 논의가 지속되어 왔으며, 보건복지부 차원에서도 2005년부터 응급 진료 체계 구축에 대한 정책 논의를 하고 있다. 이번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쟁은 이처럼 공공적인 응급 의료 체계 구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주도한 약국 외 판매, 핵심은 ‘시장화’

우리가 약국 외 판매 논의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논의가 기획재정부의 주도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9년 취임 초부터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강력히 주장했고, 대통령 발언 이후 올해 4월 「서비스산업 선진화 평가 및 향후 추진방향」(이하 「선진화 방안」)을 통해 약국 외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은 보건복지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기획재정부는 무엇 때문에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이토록 적극적인 것일까.
기획재정부에서 발표한 「선진화 방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선진화 방안」에서 보건의료와 관계된 분야를 살펴보면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 설립을 위한 법 개정 추진, 제주특별자치도 내 국내투자병원 도입, 원격진료 도입 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의료를 시장으로 편입시켜 신규 수요를 창출하여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선진화 방안」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전문자격사 제도 선진화’다. 이는 약사, 변호사, 법무사 등 전문자격사 제도의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자본의 진입을 허용하여 대형화, 법인화하여 일반 법인이 전문자격사를 고용, 전문자격사 공급을 늘리고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이다. 약국도 여기에 포함되며, 현재 약사만이 개설할 수 있는 약국도 법인화가 가능하도록 해서 대형 유통자본들이 약국 개설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약국의 영리법인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며, 지난 8월 10일 기획재정부 주도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는 약국 영리법인 관련 법안을 조속히 통과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선진화 방안」에서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는 사업서비스 부문에서 전문자격사 제도 선진화 방안의 세부 항목으로 다뤄지고 있다. 약국 외 판매는 이처럼 국민 건강에 대한 고려가 아닌 편의성과 신규 시장 창출의 잣대로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유통 자본은 이미 올리브 영(CJ), GS왓슨스(GS), W-store(코오롱) 등 소위 ‘한국형 드럭스토어’라는 이름으로 진입하여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의 드럭스토어에서 일반의약품과 조제의 비중이 더 큰 반면, ‘한국형 드럭스토어’에서는 약국 개설 요건의 장벽으로 건강식품, 화장품 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에게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는 호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일단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지고, 후속작업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약국의 영리법인화 법안이 통과된다면, 대형 유통자본의 주도로 약국의 대형화, 체인화가 일반화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형 드럭스토어’는 당연히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일반의약품의 자유판매 허용 이후 드럭스토어의 성장과 최근 이들이 편의점 유통 자본들과의 합병으로 더욱 대형화하고 있는 현실을 보아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현재 기업형 슈퍼마켓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기업과 중소상인의 대립이 약국 가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가 시행됨에 따라 광고시장 역시 확대될 것이다. 이는 10월부터 방송을 시작할 종합편성채널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희소식이다. 그리고 광고의 증가에 따라 늘어난 비용부담과 광고로 인한 의약품 오남용의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가될 것이다.
결국 기획재정부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이렇게 대형 자본들의 신규 시장 창출을 통한 이윤 추구와 맞물려 있으며, 이는 영리병원 설립, 민간의료보험 도입 등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보건의료를 시장화하려는 움직임과 일맥상통한다. 기획재정부의 논의에서 국민 건강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청와대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며 추진하고 있으며, 국민건강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보건복지부는 이 흐름을 막아내기는커녕 슬금슬금 함께 추진하는 모양새이다.


‘건강’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그리고 기획재정부가 굳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들고 나온 것은 어찌 보면 현재의 보건의료체계를 더 시장화하기 위한 하나의 약한 고리를 건드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단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현 정권의 시장화 의도가 들어있다고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로 의약품의 구입과 복약지도, 심야, 응급 상황에서의 진료 공백 등의 불편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편은 아직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보건의료체계의 실태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여전히 병이 발생한 이후에나 역할을 한다. 1차 의료를 통해 지역 주민의 병력을 관리하고 질병을 미리 예방하는 기능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의료비 지불 제도가 행위별 수가제이므로 병원은 더 많은 환자를 받아야 이익이 남고, 약국 역시 더 많은 처방환자를 받기 위해 복약지도를 줄이거나 생략한다. 의약품 사용은 더욱 늘어나고 오남용은 증가하며, 이로 인해 또 다른 병이 발생하고 환자도 계속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금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반대하는 것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로 전화시켜 생각해야 한다. 보건의료체계가 어떻게 공공성을 가지고 대중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며, 최근까지도 논쟁이 되고 있는 무상의료 논쟁과 연관하여 보건의료체계 개편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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