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조직화와 국제연대를 위한 공공운수노조 CtW 방문기
나는 승리혁신연맹(Change to Win, 이하 CtW) 방문단(공공노조 6명,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1명)과 함께 7월 10일에서 16일까지 남부 캘리포니아를 방문하여 CtW 소속 운송 및 서비스 노조를 만났다. 이번 방문은 작년 G20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CtW와 공공운수노조 간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기획된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번 방문을 통해 현재 공공운수노조가 진행 중인 전략 조직화 사업 영역에서 CtW 소속 노조들이 사용한 조직화 전략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로 삼았다. CtW는 소속 노조가 한국의 해당 분야 노조와 만남을 가짐으로써 국제연대와 세계적 차원의 공동행동을 모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을 목표로 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노조들과 직접적 관계를 맺고 아마도 내가 가장 편안하게 위치할 수 있는 양국의 노동운동 사이의 경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 방문은 원래 공공운수노조에서 제안한 것인데, 그 재정은 거의 다 CtW에서 부담하였다. 이 사실은 CtW가 한국 노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존경(국제 노동운동계에 유명한 한국 노동운동의 “전투성”)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세계적 차원의 캠페인을 조직하고자 하는 CtW의 관심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는 또한 미국 노조의 상대적 재정 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공공운수노조는 재정에서의 부족분을 준비과정의 치밀함으로 메웠다. 방문단은 방미 전 5차례의 사전 미팅을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될 노조들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고,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동선을 토론하였다. 미국에 가면서 미국 노동운동에 대한 정보가 담긴 자료집을 읽어 가고, 미국 활동가들 앞에서 발표할 공공운수노조 영문 발표문을 준비하고, 조끼, 머리띠, 버튼을 비롯한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승리혁신연맹(Change to Win)
CtW는 미국 제2의 내셔널센터다. 2005년 AFL-CIO와 이견을 보이던 노조가 이탈하여 CtW를 결성하였다. 당시 쟁점이 되었던 문제는 민주당 로비에 대한 조합비 사용 규모, 새로운 조직화의 방법과 속도에 대한 것 등이었다. CtW는 AFL-CIO에 비하면 그 규모가 매우 작았는데, 현재도 4개의 가맹 노조와 대규모 전략 조직화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그 규모는 크지 않다. CtW의 웹사이트를 보면 자신의 임무를 “외주화되거나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산업에 종사하는 5,000만 미국 노동자를 강력한 노동조합으로 단결시켜 높은 임금, 양질의 노동조건, 직장에서 발언권을 누릴 수 있는 중산층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CtW는 SEIU가 주도적으로 건설한 조직인데, SEIU는 노조 조직율을 높이는 데 사력을 다하는 것으로, 또 앤디 스턴(Andy Stern) 전 위원장이라는 논쟁적 인물로 유명하다. 수백만 달러의 예산과 100명이 넘는 인원을 보유한 CtW의 시카고 소재 전략조직화센터(Strategic Organizing Center)는 SEIU의 톰 우드러프(Tom Woodruff) 부위원장이 그 수장을 맡고 있다. 전략조직화센터는 각 노조들간의 조직화 사업 협력을 조율하고, 전례 없는 규모의 독자적인 조직화 캠페인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현재 소매, 항만 트럭운송, 창고업 영역에서 그러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전략조직화센터는 암스테르담에 해외사업본부를 두고 있는데, 해외사업본부는 유럽의 공항 및 청소노동자 조직화에 기여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대부분 초민족적 기업에 고용된 이들로서 미국에 SEIU 소속 조합원과 같은 기업에 고용되어 있다.
일정
방문단은 LA에 7월 10일 오후에 도착하였다. 이후 4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 9~10시까지 CtW 소속 노조를 방문하고 조합원들이 일하는 현장을 방문하였다. 간략한 일정은 다음과 같다.
7/10 (일) 16:50 인천 출발 한국 출국, 15:05 LA 도착, 미국 입국; 숙소 체크인, 환영 만찬
7/11 (월) 창고노동자연합(WWU) 사무실 방문, 인사말, WWU캠페인 소개, 남캘리포니아지역 창고단지 (Inland Empire Warehouse Complex) 방문; 창고노동자 간담회, 저녁식사
7/12 (화) 북미서비스노조 서부보건노동자연합(UHW) 방문 간담회, 월마트 캠페인과 대안경제연합 간담회; 저녁식사(월마트캠페인)
7/13 (수) 항만트럭운송 캠페인 및 화물운송노조(Teamsters) 간담회;
공공운수노조 발표: 동영상 상영 LA 및 롱비치 항 방문; 전미트럭운수노조(Teamsters) 간담회; 공공운수노조 발표: 화물연대 투쟁과 전략; 저녁식사(항만트럭운송 캠페인)
7/14 (목) 북미서비스노조 서부서비스노동자연합(USWW) 간담회; 공공운수노조 발표: 시설관리노동자 조직화, 민족학교방문(비공식 일정)
한인타운노동연대(KIWA) 간담회; 코리아타운 순회; 공공운수노조 발표: 동영상 상영; 저녁식사
7/15 (금) 평가회의; 방문단 주최만찬
7/16 (토) 06:50 LA 출발; 11:00 샌프란시스코 공항, 출국
일정을 하나하나 되짚기 보다는(공공운수노조에서 자세한 방문기를 작성할 예정이다), 이번 방문을 진행하면서 몇 개의 주목할 만한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조직화를 정의하는 방식 하나
우리는 항상 ‘조직화’를 이야기하지만 종종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조직화’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방식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CtW 소속의 많은 노조들, 특히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SEIU에게 조직화는 지난 수십 년간 ‘포괄적 캠페인’을 통해 고용주로부터 노조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했다. 포괄적 캠페인이란 노동자를 만나서, 이들을 노조에 가입시키고, 파업을 비롯한 여러 저항행동을 벌이는 것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SEIU는 또한 다양한 측면에서 고용주를 압박하기 위해 연구작업, 언론활동, 로비, 법정싸움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기업의 불법적, 반환경적, 기타 불미스러운 측면을 폭로하여 이들을 압박하는 전략을 기업상대캠페인이라고 한다. 기업상대캠페인의 궁극적 목적은 미국노동관계법(National Labor Relations Act, 이하 NLRA)에서 규정하고 있는 까다로운 노조인정 선거 없이 고용주가 노조를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업상대 캠페인에서 다루어지는 이슈는 임금이나 노동조건뿐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병원의 수납 방식이 너무 공격적이라거나, 건물 주인의 새 건설 프로젝트가 환경파괴를 일으키는 문제, 기업의 탈세 행위 등을 가지고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기업상대캠페인은 노동자들이라기보다는 지역사회 활동가, 변호사, 정치인,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업상대캠페인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사례가 몇 개 있는데, 우리가 방미 이튿날 방문했던 노조인 SEIU의 캘리포니아 보건의료 지부인 서부보건의료연합(United Healthcare Workers West, 이하 UHW)을 들 수 있다. UHW는 기업상대캠페인을 통해 캘리포니아 주 전역의 카톨릭계 병원들에서 노조조직화를 위한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기업상대캠페인을 잘 벌이면 노조-NGO-지역사회 동맹의 긍정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 보겠지만,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조직화가 기업상대캠페인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할 노동자를 배제하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UHW는 최근 조직화를 위한 공간을 열기 위한 방법으로 기업상대캠페인을 비롯한 기업에 적대적인 전술에서 기업과의 협조로 바꿨다고 말했다. 적대적인 전술을 통한 성과가 없던 것이 아니지만, UHW의 지도부는 이 방식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힘이 드는 사업이라고 한다. 몇 년간 가톨릭계 병원과 이러한 방식의 싸움을 벌인 UHW는 최근 정부 보조금 인상을 위한 로비를 병원과 함께 함으로써 노조 인정을 얻는 방식의 전략을 채택했다. UHW는 이러한 전략을 훨씬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UHW는 이렇게 협조적인 전략을 통해 10여 년 동안 노조를 거부해 왔던 성빈센트(St. Vincent) 병원에서 최근 조직화 권한을 획득했다. 분명한 것은 UHW가 이해하는 조직화에선 고용주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 역량 증진이 핵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직화를 정의하는 방식 둘
CtW 소속 전 노조들이 UHW와 같은 방식으로 조직화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CtW 노조들에게 조직화는 노동자를 만나고, 이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노동자들이 조합원이나 리더로서 활동할 수 있을 잠재성을 평가하고, 이들의 잠재성을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만난 창고노동자연합(Warehouse Workers United, 이하 WWU)의 간부들과 조합원들은 조직화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WWU는 CtW의 직할 전략조직화 캠페인(CtW 산하 산별연맹이 주도하는 캠페인이 아니라)으로 남부 캘리포니아의 인랜드엠파이어(Inland Empire) 지역과 미국 전역 대형 창고단지의 파견노동자 조직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WWU는 캠페인을 통해서 동일한 이름의 노동자조직을 건설하여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힘을 결집시키는 경로로 삼고 있다. WWU는 아직 정식승인을 받은 노조가 아니며 당분간 노조승인을 신청할 계획도 없다. 현재 창고 노동자의 고용형태나 미국의 노동법제를 고려하면 WWU가 노조승인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WWU는 파견업체, 창고운영업체(warehouse operator), 원청(창고를 사용하는 거대 유통업체)등에 노조승인 선거 없이 노조 인정을 요구할 수 있을 때까지 힘을 기를 예정이다.
WWU의 조직활동가들은 자신들의 노동자 조직화 체계를 설명해 주었다. 먼저 조직화는 가정방문으로 시작된다. 가정방문이란 방식은 한국 노동운동에는 생소한 방식일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참가단은 주소를 얻거나, 노조활동가가 여러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는 것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뿐더러, 문화적으로도 어색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러한 방식이 효과적일 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WWU의 조직활동가들과 우리가 만난 다른 노조의 조직활동가들은 가정방문을 노동자들의 신뢰를 얻고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한 핵심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집이 주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노동자들은 직장, 심지어는 직장에서 떨어진 곳에서 약속을 잡고 만나도 이야기하지 않았을 사업장의 문제들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는 조직활동가들이 기본원칙(역시 SEIU로부터 기원한 것이다)을 적절히 따를 때 특히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그 원칙이란 70-75%의 시간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곱 단계에 걸쳐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그 7단계란 (1) 기본 사안에 대한 대화 (2) 노동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 파악 (3) 노동자의 분노를 고용주에게 돌리기 (4) 노조의 비전을 설명 (5) 노조 참여 의지를 북돋움 (6) 고용주의 반노조 전술에 대한 사전 대응 (7) 참여의지에 대한 재확인으로 이루어진다. SEIU와 WWU의 교육프로그램의 초점은 주로 신규 조직활동가가 성공적으로 가정방문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맞추어져 있다.
WWU에게 가정방문은 매우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우리가 만난 현장 조직활동가 중 절반 이상이 자신이 처음 WWU를 알게 된 계기가 가정방문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WWU가 설명한 대화 모델이 한국에서 일상적인 상담을 통한 조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정방문을 통해 노동자들은 자신이 문제라고 느끼는 부분을 분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혹은 조직)에 참여할 것인지 질문을 받으면서 조직활동가와 노동자 사이에는 평등한 관계가 형성되고 처음부터 노동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상담의 경우 노조를 찾아오는 노동자는 노조가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전문가를 기대하게 된다.
WWU의 조직화 방식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노동자의 조직/노조에 대한 성향을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가정방문이 끝나면 조직활동가들은 회의를 가지고 가정방문 시 있었던 일을 토론한다. 이러한 토론을 통해 조직활동가들은 각 노동자의 성향을 1에서 5까지 나누어 파악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에 불만이 많고, 노조(조직)에 대해 열성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있어, 활동가나 리더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는 노동자는 1을 매긴다. 반면 노조에 매우 부정적이며, 노조에 반대하여 다른 노동자를 조직할 이들은 5를 매기는 식이다.
WWU의 조직활동가들은 목표 창고의 각 부서와 근무조에서 1에 속하는 노동자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여한다. WWU는 우리에게 각 부서 및 근무조별 노동자의 등급과 이들에 대한 조직화 내역이 적혀 있는 커다란 모의 ‘조직화 도표’를 보여주었는데, 이 도표를 보자마자 참가단은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다른 경험에서 시사점을 찾아내고자 하는 한국참가자의 의지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또한 한국에서의 조직화 방식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지만, WWU 조직화 방식의 철저함과 체계화 수준은 관심을 가질 정도로 드물다는 의미였다. 물론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해 두어야겠다.
간담회가 끝나고 다음 일정으로 데려다 줄 차를 기다리면서 WWU 상근자 한 명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 상근자는 가정방문을 통해 그룹 1로 분류되었다가 결국엔 전임 조직활동가가 된 사람이었다. 이 상근자는 매우 솔직하게 자신이 창고단지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멸시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버티기조차 힘들었던 점, 자신을 인간이 아닌 단지 하나의 소모품으로 취급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투명인간처럼 느껴졌던 점 등. 그녀에게 WWU는 자신의 존엄성을 찾고 자아를 찾는 계기였다. 이 상근자는 곧 있을 직접행동은 WWU에게 ‘커밍아웃’이 될 거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행동은 그녀는 자신에게 새로 부여된 힘을 공개적으로 천명할 기회가 될 것이며, 창고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는 투쟁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통해 느낀 바가 있었고, 이는 WWU가 어떤 자세로 노동자 조직화와 리더 양성에서 성공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중심에 두지 않은 결과
팀스터(Teamster) 지부 848의 상황은 WWU와는 사뭇 달랐다. 지난 몇 년 동안 CtW는 항구에서 화물을 실어 나르는 트럭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팀스터를 지원했다. LA와 롱비치(Long Beach)에 있는 대규모 항구가 이 캠페인의 주요 목표이다.
한국의 다수 화물운송노동자와 같이, 미국의 항만 트럭 노동자 역시 지입차주로서 노조결성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CtW의 전략은 최근까지도 주로 입법을 통한 것이었다. 트럭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기 위해선 먼저 이들이 직고용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CtW는 트럭노동자를 직접 만나기 보다는 NGO등과 함께 트럭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변화시키는 입법 노력에 방점을 찍었다. 2006년 환경단체와 변호사 단체등과 함께 깨끗하고 안전한 항구연합(Coalition for Clean and Safe Ports, 이하 항구연합)을 결성한 CtW는 항구의 환경기준 강화와 함께 노동권을 요구하였다. 캘리포니아에서 항구연합은 청정트럭 프로그램(Clean Truck Program)을 위한 로비활동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 이 프로그램은 롱비치와 LA 항구에 배기가스 배출이 많은 경유 차량을 퇴출시키고 더 ‘친환경적인’ 차량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트럭회사에는 기사를 직고용하고 새 차량 구입을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항구연합은 대중선전 활동을 진행하고, LA에서 ‘친환경적인’ 인사를 시장으로 선출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 결국 2008년 청정트럭 프로그램이 도입되었다. 그렇지만 그 직후 미국트럭연합회(American Trucking Association, 트럭회사 연합체)가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청정트럭법 중에 회사가 기사를 직고용하도록 되어 있는 부분을 무력화하는 가처분을 내렸다. 현재 트럭 회사는 새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항만 트럭 노동자들로 하여금 친환경 트럭을 리스형식으로 구입하게 해서 구입비용을 전가하고 있다.
팀스터를 방문한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불러온 결과를 명확히 볼 수 있었다. 항구를 돌아보며 화물 적재를 기다리고 있는 트럭 기사 한 명이 처음 한 말은 새 트럭 때문에 비용이 더 들어가는 데 대한 분노였다. 트럭기사는 격앙된 표정으로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이 트럭에 들어가는 리스 비용이 매달 임금에서 빠져나가요”라고 말했다. “내가 리스비용을 다 지불하고 이 차를 소유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어요.” 우리가 CtW의 항만 운송노동자 캠페인 담당자에게 노조가 노동자들의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 담당자는 어느 정도 그러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노조 간부들은 최선을 다해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결과는 고용주들이 교묘한 전술 때문에 촉발된 것이지, 노조가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한다고 했다.
직고용에 대한 법원의 최종판단은 올해 말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법원의 판단이 노조에 유리하게 내려진다면 CtW로서는 중요한 승리를 거두게 되고, 팀스터는 훨씬 수월하게 노조 조직화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이 투쟁에 대한 이해와 지지는 미약해 보였다. 회사들이 법 효력 금지 신청소송을 낸 이후에야 노조 상근자들은 노동자를 만나고 노동자 위원회를 건설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항만 운송노동자 조직화 캠페인은 투쟁의 법적 측면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노동자들을 부차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집단적인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때, 그것을 만들어가기가 훨씬 쉽지 않아 보인다.
계급이라는 문제
여기서 왜 노동자를 활동가와 리더로 만드는 노조가 있는 반면 어떤 노조는 노동자들의 권력 강화를 포기하면서까지 로비와 고용주와의 협력관계 설정에 집중하는지를 완전히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각 산업의 특수성과 각 노조의 역사와 내부 분위기가 그 노조가 택하는 전략에 큰 영향을 준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노동조합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조건이며 동시에 한국과 명확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바로 한국의 노조들이 계급의식과 계급투쟁의 개념에 익숙해진 반면, 미국의 노동운동에서는 이러한 개념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신 AFL-CIO나 CtW 모두 노동자를 중산층으로 상승시키는 것을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 CtW의 임무에서도 볼 수 있다. 결국 미국의 노조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근본적으로 자본과 적대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신의 ‘몫’을 찾도록 하고, 미국 사회와 정치계에 노동운동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미국에서 계급권력 건설이라는 목표는 노조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 확대라는 목표로 대체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CtW 노조들은 최대한 빨리 조합원 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의 행동을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경우 강력한 노동자 리더 양성에 방점이 찍힌다. 만약 고용주와의 협력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면 그것을 우선하는 것이다. 더욱이 CtW나 AFL-CIO 모두 고용주에 압박을 가하거나 협상을 하는 데 도움을 받아 조직화를 촉진할 수만 있다면 중도 정치인(민주당)과 손잡는 것을 저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노동운동은 오랜 기간 연방 및 지역 차원에서 민주당과 긴밀한 동맹이 있었다. 이 동맹이야말로 노조가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이해되어 온 측면이 있다.
한국 방문단과 우리가 만난 미국 노조 활동가들 사이에 계급과 투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이번 일정 내내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양 쪽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통역’을 하려다 보니 이러한 시각의 차이가 ‘오해’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미국 노조의 계급지향(혹은 그러한 지향의 부재)은 냉전시기와 맥카시즘이라는 반공 선풍의 역사를 거치며 거의 뼈에 각인된 수준이 되었다. 미국 노조에 정파가 있냐는 질문에 미국의 활동가들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냉전 이후 대부분의 좌파들이 투쟁의 기초로서 보편적인 이데올로기와 이론(계급과 혁명 이데올로기 및 이론)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국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분할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전략적 전술적 관점과 기타 차이에 기반한 분할이 없지 않다.
특히 팀스터를 방문하였을 때 이러한 계급지향성(의 부재)의 영향이 쉽게 눈에 띄었다. 화물연대의 역사와 전략을 파워포인트와 투쟁영상을 통해 발표를 하였다. 조합원들이 각목을 들고 대체인력의 트럭 진입을 막고 경찰버스를 부수는 장면을 본 미국 노조의 조합원들과 간부들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발표가 끝난 뒤 항만 운송노동자 캠페인 담당자는 “미국에서 이렇게 싸울 수는 없어요. 당장 소송에 걸릴 것이고, 조합원들도 힘들어 할 겁니다. 다른 투쟁방식을 찾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이 말을 통역하자 많은 공공노조 참가단이 웃었다. “물론 우리도 법정으로 갑니다. 체포되고 투옥되기도 해요. 돈도 많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만큼 조합원들의 요구가 절박한 겁니다. 이 정도의 결의를 가지고 싸우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러면 화물연대에 가입할 이유도 없는 것이죠.” 참가단의 대답이었다.
항만 운송노동자 캠페인 담당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질문을 계속 했다. “노조가 파산하지는 않나요? 더 나은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그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목숨을 건 투쟁의 문제이며, 그렇게나 큰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를 못하고,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생각으로 여기는 듯 했다. 이러한 반응을 미국의 평화적인 저항문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60~1970년대 이래 정부와 사회운동 모두 폭력적 대응을 삼가 온 것이다. 그렇지만 양국 운동의 차이는 또한 이데올로기적 차이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자본가와 노동계급 사이의 근본적 적대관계로 인식하지 않는 한 노동운동을 목숨을 건 무엇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미국에서는 완전히 질식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깊이 숨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산업간 경계를 뛰어넘은 세계적 조직화
미국 노동운동의 계급의식 부재를 비판한다는 것이 CtW가 자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에 맞서는 이 적의 힘과 규모를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CtW의 전략조직화 캠페인은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전세계적 차원에서 조직되어 산업을 넘나들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국적 기업을 상대로 해야만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CtW의 활동가들은 또한 이를 위해서는 산업간 연대와 구체적인 국제 연대와 국제 활동을 조직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아래 CtW의 초국적 소매업체 캠페인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초국적 소매업체들이 미국 내 최고의 고용주이며 전 세계적에 거친 공급사슬에 있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친다. 특이 제품을 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강요함으로 비용을 절감한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CtW와 CtW 소속의 미국식품산업노조(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Union, 이하 UFCW)는 다산업과 세계적인 틀에서 생각하고 더 넓은 차원에서 조직화 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CtW의 조직활동가들은 이들은 미국 소매업체의 수입 공급사슬을 따라 창고에서부터 항만까지, 또 바다 건너 공급업체들이 위치한 나라들까지 시선을 넓히고 있다. CtW는 제조업과 유통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임금은 소매업체와 공급업체에 의해 통제되고, 이들 자본의 이해는 자본의 초국적 조직을 따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 활동은 시작한 지 아직 일년이 되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적 차원의 조직화를 실제로 실천하는 것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인랜드 엠파이어 창고단지를 차로 돌아보면서 ‘한진’이라는 마크가 선명한 컨테이너를 싣고 가는 기차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월마트나 기타 미국의 대형 소매점 선반에서 팔리게 될 상품일 수도 있다. 이 때 역시 참가단은 모두 카메라를 꺼내 이 장면을 찍었다. 자본이란 실로 유동하는 가치(value in motion)임을, 그것도 세계적 차원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미국의 CtW와 한국의 공공운수노조는 유통 노동자들의 잠재적 힘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가치가 움직임을 멈출 때 그것은 자본이기를 멈춘다. 그리고 자본가들에게 더 이상 이익이 아니게 될 것이다. 유통산업 노동자들은 주요 항구, 공항, 창고, 즉 CtW가 병목점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공급사슬을 끊어버리고 고용주들에게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초국적 기업과 그들의 공급사슬은 거대하고, 복잡하며 다양하다. 노동자와 노조가 자신의 잠재적 힘을 사용하려면 자신들이 초국적 기업과 그들의 공급사슬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서로를 배우며,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말하고 있는 국제적 조직화라는 그림을 실현하는 것은 여기에 글로 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힘들다. 하지만 미국을 방문하면서 그러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항만 운송노동자 캠페인을 통해 우리는 머스크(Maersk)와 같은 초국적 해운사들이 자신이 활동하는 전 세계 항구에서 운송비를 정하고, 이것이 트럭노동자의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서부서비스노조(United Service Workers West, 이하 USWW)는 1980년대 잘 알려진 '청소노동자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itors) 캠페인을 주도한 SEIU의 지부다. 이곳을 방문한 우리는 동일한 초국적 기업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항의 청소 및 서비스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데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USWW의 활동가들은 또한 LA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에 관계된 여객서비스 노동자 조직화를 희망하고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잠재적인 공통의 목표를 밝혀내기 위하여 그러한 연결점을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지역 투쟁을 강화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자의 힘을 쌓기 위한 진정한 국제연대를 만드는 첫 걸음일 것이다.
일회성 방문이 아닌 장기적인 교류의 기반으로
이번 방문 기간 내내 우리는 조직화 방법 교류를 일회성 행사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야 함을 이야기했다. CtW와 소속 노조들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공운수노조가 배울 것이 있는 전략과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또한 팀스터 노조를 보면서 공공운수노조가 투쟁의 방향성과 관련해 미국의 노조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피상적인 비교와 (미국 노조는 이성적이고 돈이 많으며, 한국 노조는 ‘전투적’이고 감성적이다라는 식의) 정형화된 형상화를 넘기 위해선 양국의 노조가 가진 강점과 약점이 어떤 구체적인 조건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해하고,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더 심도 깊은 논의를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접촉과 소통을 통해 논의를 심화시켜 나갈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국제연대 사업이 제안될 때마다 자원의 문제는 항상 불거질 수밖에 없다. 몇 사람이 잠깐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가는 데 돈을 쓰느니 그 재원을 지부로 돌리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주장도 있다. 확실히 그러한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노동운동이 지속적으로 활력을 가지기 위해서 전략조직화가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고, 새롭고 혁신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이번 CtW와의 교류 프로그램과 같은 사업에 대한 투자가 갖는 유용함을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자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국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조직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자원 부족이라는 문제를 절대적인 장애물로 볼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과제로 여겨야 한다. 나는 이번 캘리포니아의 CtW 방문이 일회성 행사가 되어서는 안되며 앞으로도 계속되고 구체화되어야 할 전략과 집단행동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와 사회진보연대가 그러한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이번 방문은 원래 공공운수노조에서 제안한 것인데, 그 재정은 거의 다 CtW에서 부담하였다. 이 사실은 CtW가 한국 노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존경(국제 노동운동계에 유명한 한국 노동운동의 “전투성”)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세계적 차원의 캠페인을 조직하고자 하는 CtW의 관심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는 또한 미국 노조의 상대적 재정 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공공운수노조는 재정에서의 부족분을 준비과정의 치밀함으로 메웠다. 방문단은 방미 전 5차례의 사전 미팅을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될 노조들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고,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동선을 토론하였다. 미국에 가면서 미국 노동운동에 대한 정보가 담긴 자료집을 읽어 가고, 미국 활동가들 앞에서 발표할 공공운수노조 영문 발표문을 준비하고, 조끼, 머리띠, 버튼을 비롯한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승리혁신연맹(Change to Win)
CtW는 미국 제2의 내셔널센터다. 2005년 AFL-CIO와 이견을 보이던 노조가 이탈하여 CtW를 결성하였다. 당시 쟁점이 되었던 문제는 민주당 로비에 대한 조합비 사용 규모, 새로운 조직화의 방법과 속도에 대한 것 등이었다. CtW는 AFL-CIO에 비하면 그 규모가 매우 작았는데, 현재도 4개의 가맹 노조와 대규모 전략 조직화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그 규모는 크지 않다. CtW의 웹사이트를 보면 자신의 임무를 “외주화되거나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산업에 종사하는 5,000만 미국 노동자를 강력한 노동조합으로 단결시켜 높은 임금, 양질의 노동조건, 직장에서 발언권을 누릴 수 있는 중산층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CtW는 SEIU가 주도적으로 건설한 조직인데, SEIU는 노조 조직율을 높이는 데 사력을 다하는 것으로, 또 앤디 스턴(Andy Stern) 전 위원장이라는 논쟁적 인물로 유명하다. 수백만 달러의 예산과 100명이 넘는 인원을 보유한 CtW의 시카고 소재 전략조직화센터(Strategic Organizing Center)는 SEIU의 톰 우드러프(Tom Woodruff) 부위원장이 그 수장을 맡고 있다. 전략조직화센터는 각 노조들간의 조직화 사업 협력을 조율하고, 전례 없는 규모의 독자적인 조직화 캠페인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현재 소매, 항만 트럭운송, 창고업 영역에서 그러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전략조직화센터는 암스테르담에 해외사업본부를 두고 있는데, 해외사업본부는 유럽의 공항 및 청소노동자 조직화에 기여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대부분 초민족적 기업에 고용된 이들로서 미국에 SEIU 소속 조합원과 같은 기업에 고용되어 있다.
일정
방문단은 LA에 7월 10일 오후에 도착하였다. 이후 4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 9~10시까지 CtW 소속 노조를 방문하고 조합원들이 일하는 현장을 방문하였다. 간략한 일정은 다음과 같다.
7/10 (일) 16:50 인천 출발 한국 출국, 15:05 LA 도착, 미국 입국; 숙소 체크인, 환영 만찬
7/11 (월) 창고노동자연합(WWU) 사무실 방문, 인사말, WWU캠페인 소개, 남캘리포니아지역 창고단지 (Inland Empire Warehouse Complex) 방문; 창고노동자 간담회, 저녁식사
7/12 (화) 북미서비스노조 서부보건노동자연합(UHW) 방문 간담회, 월마트 캠페인과 대안경제연합 간담회; 저녁식사(월마트캠페인)
7/13 (수) 항만트럭운송 캠페인 및 화물운송노조(Teamsters) 간담회;
공공운수노조 발표: 동영상 상영 LA 및 롱비치 항 방문; 전미트럭운수노조(Teamsters) 간담회; 공공운수노조 발표: 화물연대 투쟁과 전략; 저녁식사(항만트럭운송 캠페인)
7/14 (목) 북미서비스노조 서부서비스노동자연합(USWW) 간담회; 공공운수노조 발표: 시설관리노동자 조직화, 민족학교방문(비공식 일정)
한인타운노동연대(KIWA) 간담회; 코리아타운 순회; 공공운수노조 발표: 동영상 상영; 저녁식사
7/15 (금) 평가회의; 방문단 주최만찬
7/16 (토) 06:50 LA 출발; 11:00 샌프란시스코 공항, 출국
일정을 하나하나 되짚기 보다는(공공운수노조에서 자세한 방문기를 작성할 예정이다), 이번 방문을 진행하면서 몇 개의 주목할 만한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조직화를 정의하는 방식 하나
우리는 항상 ‘조직화’를 이야기하지만 종종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조직화’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방식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CtW 소속의 많은 노조들, 특히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SEIU에게 조직화는 지난 수십 년간 ‘포괄적 캠페인’을 통해 고용주로부터 노조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했다. 포괄적 캠페인이란 노동자를 만나서, 이들을 노조에 가입시키고, 파업을 비롯한 여러 저항행동을 벌이는 것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SEIU는 또한 다양한 측면에서 고용주를 압박하기 위해 연구작업, 언론활동, 로비, 법정싸움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기업의 불법적, 반환경적, 기타 불미스러운 측면을 폭로하여 이들을 압박하는 전략을 기업상대캠페인이라고 한다. 기업상대캠페인의 궁극적 목적은 미국노동관계법(National Labor Relations Act, 이하 NLRA)에서 규정하고 있는 까다로운 노조인정 선거 없이 고용주가 노조를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업상대 캠페인에서 다루어지는 이슈는 임금이나 노동조건뿐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병원의 수납 방식이 너무 공격적이라거나, 건물 주인의 새 건설 프로젝트가 환경파괴를 일으키는 문제, 기업의 탈세 행위 등을 가지고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기업상대캠페인은 노동자들이라기보다는 지역사회 활동가, 변호사, 정치인,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업상대캠페인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사례가 몇 개 있는데, 우리가 방미 이튿날 방문했던 노조인 SEIU의 캘리포니아 보건의료 지부인 서부보건의료연합(United Healthcare Workers West, 이하 UHW)을 들 수 있다. UHW는 기업상대캠페인을 통해 캘리포니아 주 전역의 카톨릭계 병원들에서 노조조직화를 위한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기업상대캠페인을 잘 벌이면 노조-NGO-지역사회 동맹의 긍정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 보겠지만,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조직화가 기업상대캠페인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할 노동자를 배제하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UHW는 최근 조직화를 위한 공간을 열기 위한 방법으로 기업상대캠페인을 비롯한 기업에 적대적인 전술에서 기업과의 협조로 바꿨다고 말했다. 적대적인 전술을 통한 성과가 없던 것이 아니지만, UHW의 지도부는 이 방식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힘이 드는 사업이라고 한다. 몇 년간 가톨릭계 병원과 이러한 방식의 싸움을 벌인 UHW는 최근 정부 보조금 인상을 위한 로비를 병원과 함께 함으로써 노조 인정을 얻는 방식의 전략을 채택했다. UHW는 이러한 전략을 훨씬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UHW는 이렇게 협조적인 전략을 통해 10여 년 동안 노조를 거부해 왔던 성빈센트(St. Vincent) 병원에서 최근 조직화 권한을 획득했다. 분명한 것은 UHW가 이해하는 조직화에선 고용주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 역량 증진이 핵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직화를 정의하는 방식 둘
CtW 소속 전 노조들이 UHW와 같은 방식으로 조직화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CtW 노조들에게 조직화는 노동자를 만나고, 이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노동자들이 조합원이나 리더로서 활동할 수 있을 잠재성을 평가하고, 이들의 잠재성을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만난 창고노동자연합(Warehouse Workers United, 이하 WWU)의 간부들과 조합원들은 조직화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WWU는 CtW의 직할 전략조직화 캠페인(CtW 산하 산별연맹이 주도하는 캠페인이 아니라)으로 남부 캘리포니아의 인랜드엠파이어(Inland Empire) 지역과 미국 전역 대형 창고단지의 파견노동자 조직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WWU는 캠페인을 통해서 동일한 이름의 노동자조직을 건설하여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힘을 결집시키는 경로로 삼고 있다. WWU는 아직 정식승인을 받은 노조가 아니며 당분간 노조승인을 신청할 계획도 없다. 현재 창고 노동자의 고용형태나 미국의 노동법제를 고려하면 WWU가 노조승인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WWU는 파견업체, 창고운영업체(warehouse operator), 원청(창고를 사용하는 거대 유통업체)등에 노조승인 선거 없이 노조 인정을 요구할 수 있을 때까지 힘을 기를 예정이다.
WWU의 조직활동가들은 자신들의 노동자 조직화 체계를 설명해 주었다. 먼저 조직화는 가정방문으로 시작된다. 가정방문이란 방식은 한국 노동운동에는 생소한 방식일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참가단은 주소를 얻거나, 노조활동가가 여러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는 것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뿐더러, 문화적으로도 어색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러한 방식이 효과적일 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WWU의 조직활동가들과 우리가 만난 다른 노조의 조직활동가들은 가정방문을 노동자들의 신뢰를 얻고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한 핵심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집이 주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노동자들은 직장, 심지어는 직장에서 떨어진 곳에서 약속을 잡고 만나도 이야기하지 않았을 사업장의 문제들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는 조직활동가들이 기본원칙(역시 SEIU로부터 기원한 것이다)을 적절히 따를 때 특히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그 원칙이란 70-75%의 시간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곱 단계에 걸쳐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그 7단계란 (1) 기본 사안에 대한 대화 (2) 노동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 파악 (3) 노동자의 분노를 고용주에게 돌리기 (4) 노조의 비전을 설명 (5) 노조 참여 의지를 북돋움 (6) 고용주의 반노조 전술에 대한 사전 대응 (7) 참여의지에 대한 재확인으로 이루어진다. SEIU와 WWU의 교육프로그램의 초점은 주로 신규 조직활동가가 성공적으로 가정방문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맞추어져 있다.
WWU에게 가정방문은 매우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우리가 만난 현장 조직활동가 중 절반 이상이 자신이 처음 WWU를 알게 된 계기가 가정방문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WWU가 설명한 대화 모델이 한국에서 일상적인 상담을 통한 조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정방문을 통해 노동자들은 자신이 문제라고 느끼는 부분을 분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혹은 조직)에 참여할 것인지 질문을 받으면서 조직활동가와 노동자 사이에는 평등한 관계가 형성되고 처음부터 노동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상담의 경우 노조를 찾아오는 노동자는 노조가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전문가를 기대하게 된다.
WWU의 조직화 방식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노동자의 조직/노조에 대한 성향을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가정방문이 끝나면 조직활동가들은 회의를 가지고 가정방문 시 있었던 일을 토론한다. 이러한 토론을 통해 조직활동가들은 각 노동자의 성향을 1에서 5까지 나누어 파악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에 불만이 많고, 노조(조직)에 대해 열성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있어, 활동가나 리더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는 노동자는 1을 매긴다. 반면 노조에 매우 부정적이며, 노조에 반대하여 다른 노동자를 조직할 이들은 5를 매기는 식이다.
WWU의 조직활동가들은 목표 창고의 각 부서와 근무조에서 1에 속하는 노동자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여한다. WWU는 우리에게 각 부서 및 근무조별 노동자의 등급과 이들에 대한 조직화 내역이 적혀 있는 커다란 모의 ‘조직화 도표’를 보여주었는데, 이 도표를 보자마자 참가단은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다른 경험에서 시사점을 찾아내고자 하는 한국참가자의 의지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또한 한국에서의 조직화 방식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지만, WWU 조직화 방식의 철저함과 체계화 수준은 관심을 가질 정도로 드물다는 의미였다. 물론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해 두어야겠다.
간담회가 끝나고 다음 일정으로 데려다 줄 차를 기다리면서 WWU 상근자 한 명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 상근자는 가정방문을 통해 그룹 1로 분류되었다가 결국엔 전임 조직활동가가 된 사람이었다. 이 상근자는 매우 솔직하게 자신이 창고단지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멸시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버티기조차 힘들었던 점, 자신을 인간이 아닌 단지 하나의 소모품으로 취급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투명인간처럼 느껴졌던 점 등. 그녀에게 WWU는 자신의 존엄성을 찾고 자아를 찾는 계기였다. 이 상근자는 곧 있을 직접행동은 WWU에게 ‘커밍아웃’이 될 거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행동은 그녀는 자신에게 새로 부여된 힘을 공개적으로 천명할 기회가 될 것이며, 창고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는 투쟁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통해 느낀 바가 있었고, 이는 WWU가 어떤 자세로 노동자 조직화와 리더 양성에서 성공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중심에 두지 않은 결과
팀스터(Teamster) 지부 848의 상황은 WWU와는 사뭇 달랐다. 지난 몇 년 동안 CtW는 항구에서 화물을 실어 나르는 트럭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팀스터를 지원했다. LA와 롱비치(Long Beach)에 있는 대규모 항구가 이 캠페인의 주요 목표이다.
한국의 다수 화물운송노동자와 같이, 미국의 항만 트럭 노동자 역시 지입차주로서 노조결성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CtW의 전략은 최근까지도 주로 입법을 통한 것이었다. 트럭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기 위해선 먼저 이들이 직고용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CtW는 트럭노동자를 직접 만나기 보다는 NGO등과 함께 트럭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변화시키는 입법 노력에 방점을 찍었다. 2006년 환경단체와 변호사 단체등과 함께 깨끗하고 안전한 항구연합(Coalition for Clean and Safe Ports, 이하 항구연합)을 결성한 CtW는 항구의 환경기준 강화와 함께 노동권을 요구하였다. 캘리포니아에서 항구연합은 청정트럭 프로그램(Clean Truck Program)을 위한 로비활동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 이 프로그램은 롱비치와 LA 항구에 배기가스 배출이 많은 경유 차량을 퇴출시키고 더 ‘친환경적인’ 차량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트럭회사에는 기사를 직고용하고 새 차량 구입을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항구연합은 대중선전 활동을 진행하고, LA에서 ‘친환경적인’ 인사를 시장으로 선출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 결국 2008년 청정트럭 프로그램이 도입되었다. 그렇지만 그 직후 미국트럭연합회(American Trucking Association, 트럭회사 연합체)가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청정트럭법 중에 회사가 기사를 직고용하도록 되어 있는 부분을 무력화하는 가처분을 내렸다. 현재 트럭 회사는 새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항만 트럭 노동자들로 하여금 친환경 트럭을 리스형식으로 구입하게 해서 구입비용을 전가하고 있다.
팀스터를 방문한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불러온 결과를 명확히 볼 수 있었다. 항구를 돌아보며 화물 적재를 기다리고 있는 트럭 기사 한 명이 처음 한 말은 새 트럭 때문에 비용이 더 들어가는 데 대한 분노였다. 트럭기사는 격앙된 표정으로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이 트럭에 들어가는 리스 비용이 매달 임금에서 빠져나가요”라고 말했다. “내가 리스비용을 다 지불하고 이 차를 소유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어요.” 우리가 CtW의 항만 운송노동자 캠페인 담당자에게 노조가 노동자들의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 담당자는 어느 정도 그러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노조 간부들은 최선을 다해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결과는 고용주들이 교묘한 전술 때문에 촉발된 것이지, 노조가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한다고 했다.
직고용에 대한 법원의 최종판단은 올해 말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법원의 판단이 노조에 유리하게 내려진다면 CtW로서는 중요한 승리를 거두게 되고, 팀스터는 훨씬 수월하게 노조 조직화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이 투쟁에 대한 이해와 지지는 미약해 보였다. 회사들이 법 효력 금지 신청소송을 낸 이후에야 노조 상근자들은 노동자를 만나고 노동자 위원회를 건설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항만 운송노동자 조직화 캠페인은 투쟁의 법적 측면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노동자들을 부차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집단적인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때, 그것을 만들어가기가 훨씬 쉽지 않아 보인다.
계급이라는 문제
여기서 왜 노동자를 활동가와 리더로 만드는 노조가 있는 반면 어떤 노조는 노동자들의 권력 강화를 포기하면서까지 로비와 고용주와의 협력관계 설정에 집중하는지를 완전히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각 산업의 특수성과 각 노조의 역사와 내부 분위기가 그 노조가 택하는 전략에 큰 영향을 준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노동조합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조건이며 동시에 한국과 명확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바로 한국의 노조들이 계급의식과 계급투쟁의 개념에 익숙해진 반면, 미국의 노동운동에서는 이러한 개념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신 AFL-CIO나 CtW 모두 노동자를 중산층으로 상승시키는 것을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 CtW의 임무에서도 볼 수 있다. 결국 미국의 노조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근본적으로 자본과 적대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신의 ‘몫’을 찾도록 하고, 미국 사회와 정치계에 노동운동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미국에서 계급권력 건설이라는 목표는 노조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 확대라는 목표로 대체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CtW 노조들은 최대한 빨리 조합원 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의 행동을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경우 강력한 노동자 리더 양성에 방점이 찍힌다. 만약 고용주와의 협력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면 그것을 우선하는 것이다. 더욱이 CtW나 AFL-CIO 모두 고용주에 압박을 가하거나 협상을 하는 데 도움을 받아 조직화를 촉진할 수만 있다면 중도 정치인(민주당)과 손잡는 것을 저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노동운동은 오랜 기간 연방 및 지역 차원에서 민주당과 긴밀한 동맹이 있었다. 이 동맹이야말로 노조가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이해되어 온 측면이 있다.
한국 방문단과 우리가 만난 미국 노조 활동가들 사이에 계급과 투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이번 일정 내내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양 쪽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통역’을 하려다 보니 이러한 시각의 차이가 ‘오해’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미국 노조의 계급지향(혹은 그러한 지향의 부재)은 냉전시기와 맥카시즘이라는 반공 선풍의 역사를 거치며 거의 뼈에 각인된 수준이 되었다. 미국 노조에 정파가 있냐는 질문에 미국의 활동가들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냉전 이후 대부분의 좌파들이 투쟁의 기초로서 보편적인 이데올로기와 이론(계급과 혁명 이데올로기 및 이론)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국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분할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전략적 전술적 관점과 기타 차이에 기반한 분할이 없지 않다.
특히 팀스터를 방문하였을 때 이러한 계급지향성(의 부재)의 영향이 쉽게 눈에 띄었다. 화물연대의 역사와 전략을 파워포인트와 투쟁영상을 통해 발표를 하였다. 조합원들이 각목을 들고 대체인력의 트럭 진입을 막고 경찰버스를 부수는 장면을 본 미국 노조의 조합원들과 간부들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발표가 끝난 뒤 항만 운송노동자 캠페인 담당자는 “미국에서 이렇게 싸울 수는 없어요. 당장 소송에 걸릴 것이고, 조합원들도 힘들어 할 겁니다. 다른 투쟁방식을 찾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이 말을 통역하자 많은 공공노조 참가단이 웃었다. “물론 우리도 법정으로 갑니다. 체포되고 투옥되기도 해요. 돈도 많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만큼 조합원들의 요구가 절박한 겁니다. 이 정도의 결의를 가지고 싸우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러면 화물연대에 가입할 이유도 없는 것이죠.” 참가단의 대답이었다.
항만 운송노동자 캠페인 담당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질문을 계속 했다. “노조가 파산하지는 않나요? 더 나은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그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목숨을 건 투쟁의 문제이며, 그렇게나 큰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를 못하고,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생각으로 여기는 듯 했다. 이러한 반응을 미국의 평화적인 저항문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60~1970년대 이래 정부와 사회운동 모두 폭력적 대응을 삼가 온 것이다. 그렇지만 양국 운동의 차이는 또한 이데올로기적 차이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자본가와 노동계급 사이의 근본적 적대관계로 인식하지 않는 한 노동운동을 목숨을 건 무엇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미국에서는 완전히 질식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깊이 숨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산업간 경계를 뛰어넘은 세계적 조직화
미국 노동운동의 계급의식 부재를 비판한다는 것이 CtW가 자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에 맞서는 이 적의 힘과 규모를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CtW의 전략조직화 캠페인은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전세계적 차원에서 조직되어 산업을 넘나들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국적 기업을 상대로 해야만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CtW의 활동가들은 또한 이를 위해서는 산업간 연대와 구체적인 국제 연대와 국제 활동을 조직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아래 CtW의 초국적 소매업체 캠페인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초국적 소매업체들이 미국 내 최고의 고용주이며 전 세계적에 거친 공급사슬에 있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친다. 특이 제품을 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강요함으로 비용을 절감한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CtW와 CtW 소속의 미국식품산업노조(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Union, 이하 UFCW)는 다산업과 세계적인 틀에서 생각하고 더 넓은 차원에서 조직화 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CtW의 조직활동가들은 이들은 미국 소매업체의 수입 공급사슬을 따라 창고에서부터 항만까지, 또 바다 건너 공급업체들이 위치한 나라들까지 시선을 넓히고 있다. CtW는 제조업과 유통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임금은 소매업체와 공급업체에 의해 통제되고, 이들 자본의 이해는 자본의 초국적 조직을 따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 활동은 시작한 지 아직 일년이 되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적 차원의 조직화를 실제로 실천하는 것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인랜드 엠파이어 창고단지를 차로 돌아보면서 ‘한진’이라는 마크가 선명한 컨테이너를 싣고 가는 기차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월마트나 기타 미국의 대형 소매점 선반에서 팔리게 될 상품일 수도 있다. 이 때 역시 참가단은 모두 카메라를 꺼내 이 장면을 찍었다. 자본이란 실로 유동하는 가치(value in motion)임을, 그것도 세계적 차원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미국의 CtW와 한국의 공공운수노조는 유통 노동자들의 잠재적 힘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가치가 움직임을 멈출 때 그것은 자본이기를 멈춘다. 그리고 자본가들에게 더 이상 이익이 아니게 될 것이다. 유통산업 노동자들은 주요 항구, 공항, 창고, 즉 CtW가 병목점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공급사슬을 끊어버리고 고용주들에게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초국적 기업과 그들의 공급사슬은 거대하고, 복잡하며 다양하다. 노동자와 노조가 자신의 잠재적 힘을 사용하려면 자신들이 초국적 기업과 그들의 공급사슬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서로를 배우며,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말하고 있는 국제적 조직화라는 그림을 실현하는 것은 여기에 글로 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힘들다. 하지만 미국을 방문하면서 그러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항만 운송노동자 캠페인을 통해 우리는 머스크(Maersk)와 같은 초국적 해운사들이 자신이 활동하는 전 세계 항구에서 운송비를 정하고, 이것이 트럭노동자의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서부서비스노조(United Service Workers West, 이하 USWW)는 1980년대 잘 알려진 '청소노동자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itors) 캠페인을 주도한 SEIU의 지부다. 이곳을 방문한 우리는 동일한 초국적 기업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항의 청소 및 서비스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데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USWW의 활동가들은 또한 LA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에 관계된 여객서비스 노동자 조직화를 희망하고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잠재적인 공통의 목표를 밝혀내기 위하여 그러한 연결점을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지역 투쟁을 강화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자의 힘을 쌓기 위한 진정한 국제연대를 만드는 첫 걸음일 것이다.
일회성 방문이 아닌 장기적인 교류의 기반으로
이번 방문 기간 내내 우리는 조직화 방법 교류를 일회성 행사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야 함을 이야기했다. CtW와 소속 노조들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공운수노조가 배울 것이 있는 전략과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또한 팀스터 노조를 보면서 공공운수노조가 투쟁의 방향성과 관련해 미국의 노조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피상적인 비교와 (미국 노조는 이성적이고 돈이 많으며, 한국 노조는 ‘전투적’이고 감성적이다라는 식의) 정형화된 형상화를 넘기 위해선 양국의 노조가 가진 강점과 약점이 어떤 구체적인 조건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해하고,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더 심도 깊은 논의를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접촉과 소통을 통해 논의를 심화시켜 나갈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국제연대 사업이 제안될 때마다 자원의 문제는 항상 불거질 수밖에 없다. 몇 사람이 잠깐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가는 데 돈을 쓰느니 그 재원을 지부로 돌리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주장도 있다. 확실히 그러한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노동운동이 지속적으로 활력을 가지기 위해서 전략조직화가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고, 새롭고 혁신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이번 CtW와의 교류 프로그램과 같은 사업에 대한 투자가 갖는 유용함을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자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국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조직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자원 부족이라는 문제를 절대적인 장애물로 볼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과제로 여겨야 한다. 나는 이번 캘리포니아의 CtW 방문이 일회성 행사가 되어서는 안되며 앞으로도 계속되고 구체화되어야 할 전략과 집단행동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와 사회진보연대가 그러한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