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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9-10.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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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는 살아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파업 투쟁을 마무리하며

김성영 |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 제천단양지부 사무국장
유성기업 투쟁이 한 고비를 넘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지난 8월 16일 법원이 제시한 ‘8월 31일까지 전원 복귀’하는 조정안에 합의했다. 유성지회는 사측의 직장폐쇄로 인해 타의로 석 달 간 파업 투쟁을 진행하며 수많은 난관을 뚫어야 했다. 많은 조합원들이 사측의 탄압과 회유로 개별 복귀했으며 어용 복수노조가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 수년간 수차례 반복된 금속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유성에서도 예외 없이 벌어졌다.
하지만 민주노조는 쓰러지지 않았다. 현대차가 사전 사후 노조 파괴 공작을 총괄 지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까지 득달같이 달려들어 자본을 거들고 공권력을 투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성기업지회는 건재하다. 이것이 유성기업 투쟁의 중간 결과이다. 정권과 자본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유성기업지회와의 싸움에서만은 결론이 어긋났다.


민주노조를 깨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5월 18일, 유성지회가 단체협약에 명시된 2시간 총회를 진행하고 난 뒤 사측은 갑자기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조합원들은 의아해하며 아산공장으로 모였다. 다음 날 새벽, 공장 앞에 모여 있던 조합원들에게 용역깡패의 차량이 돌진했다. 13명 부상. 이렇게 용역깡패의 대포차 테러사건으로 유성기업지회는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측은 당황한 나머지 용역업체의 우발적인 실수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어지는 자본의 폭력을 예고하는 것에 불과했다.

[표 ] 유성지회 투쟁 경과
2009 2011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합의
2010 11차례 교섭 중 사측 제시안 없음
2011.5.13 조정중지
5.17 쟁의행위 찬반 투표. 78%가결
5.18 직장폐쇄, 용역깡패 대포차 테러
5.24 공권력 투입
5.27 유성기업 아산지회장 등 구속
6.22 이구영 영동지회장과 엄기한 아산부지회장 조계사 농성 돌입
8.5 직장폐쇄 1차심리
8.12 직장폐쇄 2차심리
8.16 직장폐쇄 3차심리. 조정안 수용
8.22 현장복귀 시작
8.31 현장복귀 완료 예정일

8월 3일 열린 ‘직장폐쇄 폭력행위 증언대회’에 따르면 5·18 직장폐쇄는 사전에 철저히 기획된 일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조합원은 19일 새벽 벌어진 용역경비의 대포차 뺑소니 사건은 ‘테러’였다고 증언했다. “차가 지나가면서 아수라장이 되고 처참했어요. 만약 경찰이 이야기 하는 대로 그것이 운전자의 실수였으면 차가 그 자리에서 섰어야 하는데··· 그걸 누가 실수라고 보겠어요.” 또 다른 조합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사측의 수상한 행동들은 직장폐쇄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직장폐쇄 전에 회사가 관리직원들에게 여행용 가방을 나눠줬는데, 그 안에는 런닝 5장, 팬티 5장, 세면도구 등이 들어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측이 직장폐쇄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증거였죠.” 무엇보다도 공장 안에 있던 현대자동차 총괄이사의 차량 안에서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담긴 대외비 문건이 발견된 점, 현대차 직원이 유성기업에 상주한 점, 노무관리 지원부서가 깔고 잘 스티로폼이 미리 준비되었던 점 등을 볼 때, 상급단체(?)와 농성을 먼저 예비한 것은 사측이었다.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불사하는 사측의 행동은 가관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용역경비업체 CJ씨큐리티, 노무관리업체 창조컨설팅, 그들을 비호하기 위해 신속히 투입된 공권력 등 사측은 노동조합을 궁지에 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사측의 지시로 생산물품까지 사용하며 폭력을 휘두른 용역은 물론, “연봉 7천만 원을 받는 근로자들이 불법 파업을 벌이는” 운운하며 유성기업지회 탄압을 진두지휘한 이명박 대통령은 조합원들의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켰다. 자본과 정권은 언제나처럼 공고한 연대를 자랑했다. 연대 대오에 대한 경찰의 도를 넘는 수사, 조사도 우리를 위축시키려는 시도였다.


태풍을 뚫고 연대가 도착하다

날씨만 궂은 것은 아니었다. 건설기계 충남지부의 강력한 연대투쟁 이후 검경은 혈안이 되었다. 수배와 영장이 남발되었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를 끊으려는 시도도 날로 거세졌다. 하지만 궂은 날씨도, 거센 탄압도 연대의 물결을 막지 못했다. 유성기업 공장으로 들어가는 굴다리 아래에는 올빼미들의 둥지가 꾸려졌다.
올빼미 둥지란 연대 대오의 투쟁 거점을 뜻한다. 아산공장 앞 비닐하우스에는 찾아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같은 금속노조 소속 투쟁 사업장들이 찾아와 조언과 힘을 더했다. 연대 온 동지들은 굴다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대학생들이 찾아오고 문화 예술인들이 방문했다. 농성장은 힘든 와중에서도 외로운 적은 없었다.
누군가 복귀하지 않고 하루를 더 농성할 수 있었던 것은 연대의 힘이었다. ‘물심양면으로 이 투쟁을 지지한다’는 표현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노동자든 자본가든 서로의 실력을 뻔히 알고 있는 단위 사업장에서 사측이 예상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연대의 힘이다.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는 매 주말의 집회를 주관했다. 충북 지역의 노동조합들은 모두 유성기업지회의 연대투쟁에 참여하고 기억하고 있다. 일례로 수 천만원이 모금되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전달되었고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힘을 불어 넣었다.


유성기업지회는 건재하다!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문서의 마지막에 ‘발레오 사례를 맹신하지 말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전의 금속노조 탄압 사례와는 다르게 유성기업지회는 조직력을 상당부분 유지하며 현장으로 복귀했다. 법원 조정안 수용 이후 수련회를 거치고 현장에 돌아갈 채비도 단단히 하고 있다. 조합원들 스스로 사측의 탄압을 예상하고 대응하는 계획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조합원들이 예상했던 일들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고, 조합원들은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100일 가까이 공장 밖에서 버틴 240명의 조합원들이 있다. 어떤 민중가요 가사처럼 단련된 강철 같은 동지들이다. 유성기업지회 선배 조합원들은 90년의 파업투쟁과 공권력 투입을 경험한 세대다. 그 뒤를 이어 이번 투쟁을 거치며 새로운 세대들이 생겨났다. 실제 유성기업지회는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노조를 굳건히 이끌고 나갈 수많은 활동가들을 단련시켰다. 평소의 평가가 무색하게 누군가는 개별 복귀하였지만 묵묵하게 비닐하우스를 지킨 동지들이 이제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우뚝 서게 되었다.


요구와 대응

투쟁 진행 과정에서 많은 쟁점들이 제기되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야간노동 철폐, 사측의 공격적 직장폐쇄의 위법성, 용역 폭력, 원청의 하청 노무관리, 사측이 개입한 어용 복수노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주간연속 2교대제 요구와 공격적 직장폐쇄 규제는 금속노조의 2011년 중앙교섭과 대정부 요구안에 포함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연대를 조직하고 투쟁을 배치하였는지는 검토해볼 문제다. 금속노조 주최 집회의 횟수나 기조 등 여러 가지 지점을 돌아볼 때, 금속노조의 투쟁의지에 대해 조합원들이 불만과 불신을 가질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전 금속노조 탄압 사례와도 비교해 볼 지점들이 있다. 정치권의 개입을 촉구한 뒤 그것을 매개로 중재안을 받아들이고 복귀한 사업장들과 이번 유성기업지회 투쟁을 과정과 결과 측면에서 비교, 평가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개별 전술은 시기와 역량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하나 그동안 소위 정치권의 중재로 현장으로 복귀한 노동조합들은 요구안에서 후퇴할뿐더러 현장에서 받는 탄압이 거세진 것이 사실이다. 결국 정치권의 개입 문제도 투쟁을 지속해 나갔을 때 부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자체로 문제해결을 도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여러 사례들이 증명하는 잘못된 길을 굳이 다시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조합원들은 속속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치졸한 대응들로 민주노조를 지속적으로 탄압하려 하고 있다. 원직에 배치하지 않으려는 시도, 합의되지 않은 교육을 진행하려는 시도 등등. 모두 현장으로 들어가기 전 예상됐던 부분들이다. 이런 사측의 탄압에 절대 굴할 수 없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의연한 대응을 해내리라 믿는다. 또 복수노조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160여 명이라는 만만찮은 숫자이지만 유성기업지회가 금속노조 파괴시나리오에 굴하지 않은 것처럼 복수노조 대응에서도 훌륭한 선례를 남기는 투쟁을 진행할 것을 기대해본다.
앞으로도 사측의 상시적 탄압과 우발적 폭력 유발 등 민주노조를 깨기 위한 갖은 시도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100여 일간 배운 그대로, 노동자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으로 뭉칠 때에만 노동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힘찬 투쟁을 해나가야 한다.
바야흐로 금속노조 선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유성기업지회의 투쟁에서 배운 것들을 기억하고 이어나가야 하는 시기이다. 유성기업지회 투쟁 이후 조합원들은 일상적 연대투쟁과 단단한 현장통제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우리가 단절해야 할 것은 경제위기를 틈탄 협조주의나 실리주의지 손가락이 아니다. 언제든 틈만 보이면 치고 들어올 자본의 공격에 대비해 탄탄한 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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