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론이 제시하는 개별 정책담론의 한계
무상의료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의 주요 내용은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부담률을 90%까지 높이고(현행 61.7%), 본인부담 상한액을 최대 100만원으로 낮추어(현행 최고 400만원) 실질적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필수의료 중 비급여 의료를 전면 급여화, 간병·상병 등의 비용을 급여대상에 포함, 차상위 계층을 의료급여대상으로 재전환을 제시한다. 진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지출구조 합리화 방안으로는 포괄수가제(입원)와 주치의제도(외래), 중장기적으로 총액계약제, 지역별 병상총량제가 제시된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은 노무현 정권의 보건의료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정권은 보건의료 공약으로 건강보험보장성 80%로 확대, 공공병상 30%까지 확대, 총액예산제, 본인부담금상한제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공공의료의 경우 2005년이 되어서야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을 마련했으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료기관 수 기준 2002년 8.01%에서 2006년 6.6%로, 병상 수 기준 2002년 15.07%에서 2006년 12.32%로 감소했다. 총액예산제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2004년 상반기 공공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대한의사협회 등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최초로 도입되기는 했으나, 병원비 중 비급여의 비율이 높아서 현실적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못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보장성이 강화될 리 없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1인당 보험료가 79% 인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은 59%에서 64%로 겨우 5% 증가했다.
노무현 정권이 공공의료 확충과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신 추진한 것이 의료민영화다. 노무현 정권은 자본에게 새로운 이윤창출 시장을 제공하기 위해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신성장동력론’을 공격적으로 제기하고, 그 일환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했던 것을 이어받아, 2004년 10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으로 외국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여 영리법인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로 가는 길을 열었다. 2006년 12월에는 ‘1단계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병원경영지원회사설립, 인수합병, 환자유인알선행위를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2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데, 이 법안은 그간 추진해온 의료민영화정책들을 거의 망라한 법안이었다.
의료민영화는 무상의료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의료민영화는 대형병원, 제약회사, 의료기기, 민간보험 등 의료자본이 마음껏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시장을 열어준다. 따라서 의료민영화는 의료비를 급격히 증가시키는데, 그 의료비는 모두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들에게서 나온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기 위해 공적 재정을 확충해도 의료기관의 이윤추구가 제어되지 않는다면, 공적재정은 다시 의료자본의 확장에 들어가고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무상의료는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나아가 무상의료는 대형병원, 제약회사, 의료기기, 민간보험회사의 이윤추구행위를 억제하여 의료비 상승을 제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이를 억제할 능력도 의지도 갖추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을 키우고 자본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지금의 민주당 역시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올해 4월 국회에서 제주영리병원을 통과시키려다 사회단체 등 여론에 밀려 이를 일시적으로 미룬 바 있다. 민주당의 송영길 인천시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송도의 영리병원 설치를 공언하였다. 민주당 지지를 선언하며 제주도에서 당선된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계속해서 제주도 국내영리병원 설립을 시도하고 있고 제주도의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이에 동조하거나 묵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약값 상승, 민영의료보험의 무분별한 확대, 영리병원 허용을 촉진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 한EU FTA 비준 동의안에 사실상 합의했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참여정부 시절 자신들이 체결한 협정은 별 문제가 없고, 작년 이명박 정부가 타결한 재협상안은 ‘굴욕ㆍ퍼주기 협상’이라고 주장하지만, 2007년 민주당이 체결한 협정은 의료민영화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민주당이 생각하는 무상의료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이런 태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의료민영화나 의료자본 통제에 대한 무상의료 운동 진영의 안이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상보육
민주당의 무상보육 정책안 주요 내용을 보자. 이명박 정부는 시설이용 아동에 대해 소득 하위 70%까지 정부지원 단가로 제공하지만, 민주당은 법정시설 이용 모든 아동에게 표준보육비용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시설 미이용 아동에 대한 양육수당 역시 이명박 정부는 0~2세 아동 중 차상위 계층까지만 제공하고 있는데 비하여 민주당은 0~5세 모든 아동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목표를 집권 5년간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상보육 역시 획기적인 내용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5년간 42.2조원(저출산 부문 19.7조원)을 투입했고, 이명박 정부는 2011년부터 5년간 78.5조원(저출산 부문 39.7조원)을 투여하는 2차 계획을 세웠다. 두 계획은 보육정책으로 보육비 지원과 동시에 보육의 시장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핵심 내용이 동일하다. 민주당의 무상보육도 이러한 연장선에 위치하기 때문에 현 정부 정책을 좀 더 확장하는 수준일 뿐 획기적인 내용은 없다. 보육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그 지원 금액을 높이는 방향이다.
반면 무상보육 논란에 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에 대해서 민주당은 침묵하고 있다. 현재 전국 보육시설 중 국공립 보육시설은 전체 보육시설의 5.4%이고, 보육시설 이용 아동의 11%만 이용가능하며 평균대기자는 78명에 이르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아동 수 대비 30%까지 확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추진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민간보육 시장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의 무상보육 계획에도 보육에 대한 공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내용은 없다. 민간보육 시장 활성화가 초래할 보육의 양극화와 비용 상승에 대한 대책도 없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노무현과 이명박 두 정부 모두 <저출산·고령사회 대책>과 동시에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두 정책이 하나의 세트이자 상호보완물인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1차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은 2010년까지 여성경제활동참가율 55% 달성, 여성일자리 60만개 확대를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과 노동유연화 확대를 핵심 수단으로 삼았다. 탄력근무제 확대, 단시간 근로모델 개발,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이라는 노동유연화를 내세운 것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2010년 2차 여성인력개발 종합계획을 제시했다. 1차 계획을 대부분 이어가는 한편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높이는 방안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보육이 화두가 되는 이유는 낮은 출산율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가운데 양육에 대한 부담도 져야하는 상황이 출산을 기피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은 저출산 문제의 해법으로 고용안정과 임금상승, 보육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의 산업예비군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의 출산의무를 강요하고,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여성에게 더욱 필요하고 적합하다는 사회 인식을 강화하며, 이를 빌미로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고용불안을 감내할 것을 강요하는 단시간 근로모델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또 가정에서 여성이 담당하던 돌봄노동의 공백은 시장화하는 동시에, 돌봄노동에 대한 저평가로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각광받고 있는 사회서비스 산업 노동자들을 값싸게 활용하려고 한다.
민주당의 ‘무상보육’이 보육의 공적 인프라 구축에 대한 계획 없이 보육의 시장화와 동시에 추진되는 보육비 지원 확대라면, 이는 비용 상승과 보육의 양극화로 이어질 것이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한 민주당이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여성인력 활용정책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단절할 것인가에 진지하게 답하지 않는다면 ‘무상보육’도 여성인력활용을 위한 보완책에 머물 것이다.
반값등록금
[표3]은 지난 1월 31일에 민주당이 ‘3+1 보편적 복지 정책’ 재원 조달 방안을 발표한 자료에서 반값등록금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소득 하위 50%에 등록금을 전액에서 30%까지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민주당이 6월 국회 추경 예산안에 반값등록금 정책을 반영하겠다며 5월 26일에 발표한 자료 역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면서 한나라당 정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자 6월 7일, 반값등록금 정책의 전면재검토를 발표하였다. 국공립대부터 등록금 자체를 인하하고, 사립대도 이월적립금 활용, 구조조정 등을 통해 등록금을 인하하며, 등록금 지원 범위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후 구체적인 내용 없이 고지서상 명목등록금 반값, 추가 예산 5조 7천억 원을 주장하고 있다.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입장이 갈팡질팡 하는 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다. 한나라당은 애초 소득하위 50% 이하 계층, B학점 이상을 전제로 국가장학금을 지원하는 내용이었으나 촛불문화제로 압박을 받자 6월 23일, 황우여 원내대표가 2014년까지 3년간 정부재정 6조 8천억 원 투입을 통해 명목등록금을 30% 인하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정부와 입장이 조정된 것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고, 7월 21일 고위 당정회의에서 소득구간별 차등 지원과 대학 구조조정을 협의하는 등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고 있다. 지난 17일 당정회의에서는 다시 내년에 1조 5천억 원 투입을 통한 명목등록금 10%인하를 협의하였다.
의료나 보육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재정 지원과 함께 공공적으로 고등교육을 제공하는 체계를 갖추는 대신 민간자본(사학자본)에 운영과 재정을 맡겨왔다. 그 결과 고등교육은 대부분 민간에 의해 이루어져 현재 한국의 사립대 비율은 78%로 매우 높은 편이다(OECD 평균 22%). 전 사회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행되면서 대학 역시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진행되었다. 대학은 경쟁 속에서 산학협력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등 대학 운영을 기업 운영과 비슷하게 바꾸어갔고,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은 다른 분야에 통폐합하거나, 자본의 이해에 맞는 지식을 생산하게 되었다. 민주당을 포함한 지배세력은 ‘산업교육진흥법’을 제·개정하고,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는 등 이러한 대학의 기업화 흐름을 적극적으로 촉진하였다.
또 대학 재정 확보를 위해 노태우 정권은 1989년 사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고, 김대중 정권은 2002년에 산업대학 등록금을, 2003년에는 모든 국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1989년에서 약 10년간 사립대학 등록금이 폭등하였고, 2002~2008년 국립대학의 등록금이 크게 인상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부문 투자는 총 투자의 20.7%(OECD 국가 중 28위, OECD 평균 69.1%)에 불과한 반면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70%(OECD 평균 대학 등록금 의존율 25%)에 이른다. 한편 대학은 등록금 인상으로 마련한 재정을 적립금으로 이월하여 그 규모가 10조 원에 이른다.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2007년 말, 정부가 대학 이월 적립금의 주식 투자를 허용하면서 2008년 하반기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수많은 대학들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결국 지금의 높은 등록금은 고등 교육이 공공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되어 온 결과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주장대로 재정을 확보해서 등록금을 낮추고, 사립대학의 투명성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사립대학 중심의 구조는 변하지 않으며, 대학의 기업화 흐름은 대학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더욱 심화될 것이다. 당장 민중에게 절박한 등록금 인하 요구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제로 사립대학 의존 구조의 변화와 대학의 기업화·상업화 흐름의 중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세금이 고스란히 사학자본에 들어가고, 이후에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된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사회적 지지를 받은 이유는 연간 500~1300만 원에 육박하는 높은 등록금 때문만은 아니다. 비싼 교육비를 지불해 대학 졸업하더라도 취업이 어렵고, 일자리의 질이 낮으며, 나아가 인생을 설계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대졸자의 취업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일자리의 질도 낮아졌다. 정부측 통계에 따르면, 고등교육 이수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58.4%에서 2007년 56.8%, 2008년 56.1%, 2009년은 48.3%로 낮아졌다. 반면 비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15.7%, 2007년 17.7%, 2008년 18.8%, 2009년 26.2%로 상승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이력추적 연구에 따르면, 남성 대졸자 취업률은 53.1%, 여성 대졸자는 31.6%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등록금 인하가 제도적으로 달성된다 하더라도 높은 청년 실업률,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의 늪, 열악한 노동조건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와 한나라당이 장학금 지원의 전제로 제시하는 부실대학 구조조정은 노동시장의 조건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취업의 최소 조건마저도 박탈하게 된다.
무상급식
무상급식을 내세워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많은 당선자를 내었던 민주당(서울시의회)은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2011년 1월 6일, 서울시에서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위한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 시장은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조례안에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발의하였다. 주민투표용지에 기재될 두 가지 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2.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무상급식은 2010년 기준 저소득층 11%(초중고 평균)에 실시되었다. 서울시가 애초에 냈던 계획은 11%에서 매년 5%씩 늘려 2014년까지 소득 하위 30%로 끌어올린다는 것이었으나 주민투표를 앞두고 소득 하위 50%까지 확대하였다. 서울시의회가 의결한 조례는 초ㆍ중학생에 대한 100% 무상급식인 데 비해 서울시 안은 저소득층에 대해서만 무상급식을 제공하되 초ㆍ중학생뿐 아니라 고등학생도 포함하는 차이가 있다.
무상급식 조례안에 따르면, 무상급식과 관련한 지원할당은 교육청이 50%, 지자체가 20%, 서울시가 30%를 부담해야 하므로 각 기관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다음과 같다.
오세훈은 전면 무상급식이 부자들에게 부당한 혜택을 주는 것이므로 그 예산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안의 전체예산 차이는 1000억 원이며, 서울시가 부담해야 할 예산 차이는 300억 원에 불과하다. 주민투표에 드는 예산이 200억 원임을 생각하면, 오세훈이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예산 문제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내년 두 번의 큰 선거를 앞두고 여야 구분 없이 민심 얻기 경쟁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무상급식에 대해 진보진영은 아이들 밥 먹이는 것에 대한 이슈로 자꾸 의미를 축소하지만 실제로 지난해 6·2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였다. 진보진영에서 이른바 보편적 복지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복지를 화두로 론칭 역할을 했던 이슈이고, 그렇게 하면서 내년 선거를 보편적 복지로 치른다는 입장이다.
…… 이기면 민주당의 프레임에 갇혀 있던 선거 프레임이 풀리는 것이다. 민주당이 설정한 보편적 복지 프레임에서 해체되면 내년 총선과 대선 때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설정할 국가적 어젠다가 무엇인가, 지금처럼 보편적 복지냐, 아니면 어렵고 힘든 부분을 도와주고 여력이 있으면 성장에 투자해야 하느냐의 프레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오세훈 홈페이지
즉 오세훈은 300억 원의 예산이 부자급식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인기를 얻기 위해 무상급식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및 복지국가 논자들은 선별적 무상급식을 하면 아이들이 ‘눈칫밥’을 먹게 된다는 것을 주요 근거로 내세운다. 취약계층을 낙인찍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통해서 누구나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안의 차이는 초·중학생 상위 50%(서울시의회, 민주당)와 고등학생 하위 50%(서울시, 오세훈)에 대한 무상급식 여부이며, 그 예산 차이가 고작 300억 원이다. 민중의 삶에 큰 변화를 준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서울시 교육청은 올해 초등학교 1,2,3학년에 무상급식을 위해 1162억 원의 재원을 확보하면서 영어전용교실 설치 예산, 과학실 현대화 예산, 보건실 개선, 학교 신설비 예산을 삭감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 무상급식이 실제 민중에게 도움이 되느냐보다 ‘보편적 복지’라는 프레임을 유지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 찬성론자들도 이미 무상급식 논쟁을 ‘선별적 복지 세력과 보편주의 복지국가 세력의 대결’로 인식하고 있다. 무상급식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여 보편적 복지국가를 필두로 2012년 총대선을 유리하게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민주당을 주축으로 하는 복지국가 논자들이 지지하는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매년 건강보험료가 오르는데도 건강보험보장률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의료자본의 영리추구로 전체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보육이 중요한 민생 현안이 된 이유는 여성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가운데 양육에 대한 부담도 져야하는 상황이 출산을 기피하도록 만들면서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폭발한 이유는 사립대학의 자산 늘리기에 사용되는 높은 등록금을 내고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취업률이 낮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는 이러한 모든 근본 문제를 우회하여 세금으로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식이다. 이 세금은 모두 의료자본, 민간보육시설, 사학자본 등의 민간자본으로 고스란히 들어가며, 이후 의료비, 보육비, 등록금을 더 올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결국 근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무상복지 정책은 지속 불가능하게 된다.
둘째,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를 주도하는 민주당은 실제로 이를 추진할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추진하려고 하더라도 실현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무상의료를 당론으로 확정한 후에도 의료민영화 추진 행보를 계속해왔다. 의료민영화는 의료비를 증가시키고 이는 무상의료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무상의료를 실현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재원 조달 방안으로 부자감세 철회, 4대강 사업 등 비효율적 예산 절감, 건강보험료 부과 기반 개선(건강보험료 부과 기준을 현행 근로소득에서 종합소득 기준으로 변경하고 고소득자의 피부양자도 건강보험료를 내도록)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자본가 계급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노사의 대화와 참여를 활성화하여 미래지향의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민주당이 자본가 계급과 한 판 싸움을 벌일 리는 없다.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의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는 실현될 수 없다. 이것이 정책연대가 계급투쟁을 대신할 수 없으며, 다른 운동 전략이 필요한 이유이다.
셋째, 민중운동은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를 민주당의 좌선회로 오인하여 정책 연대에 의존하고, 변혁적 전망을 상실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보건의료운동에서 그나마 이어오던 의료민영화 반대 운동의 흐름은 공식적·비공식적으로 민주당과 함께 하는 무상의료 운동으로 대체되고 있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안이 민중운동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앞에서 설명하였다. 그러나 보건의료운동 진영은 ‘민주당을 잘 견인하여 무상의료 정책안을 실현하는 것’을 운동의 목표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반값등록금 투쟁 역시 일부학생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시민사회단체, 민주당과 공동행보의 흐름을 만들어 가면서, 근본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외연 확장, 상층 연대, 제도적 성과 쟁취에 집중하고 있다. 결국 반값등록금 운동은 새로운 운동 주체 형성이나 실질적인 민생 문제 해결보다는 민주대연합의 근거로 활용되어 그 성과가 민주당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무상급식 문제는 실제로 민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오세훈이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지나치게 정치쟁점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무상급식을 보편적 복지를 대표하는 중요한 사안으로 여겨 한 톨이 아쉬운 전력을 민주당에 실어주고 있다. 결국 민주당이 주민투표에서 이기더라도 민중의 삶에는 큰 변화 없이 민주당의 정치적 성과로 수렴될 것이다.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의 주요 내용은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부담률을 90%까지 높이고(현행 61.7%), 본인부담 상한액을 최대 100만원으로 낮추어(현행 최고 400만원) 실질적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필수의료 중 비급여 의료를 전면 급여화, 간병·상병 등의 비용을 급여대상에 포함, 차상위 계층을 의료급여대상으로 재전환을 제시한다. 진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지출구조 합리화 방안으로는 포괄수가제(입원)와 주치의제도(외래), 중장기적으로 총액계약제, 지역별 병상총량제가 제시된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은 노무현 정권의 보건의료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정권은 보건의료 공약으로 건강보험보장성 80%로 확대, 공공병상 30%까지 확대, 총액예산제, 본인부담금상한제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공공의료의 경우 2005년이 되어서야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을 마련했으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료기관 수 기준 2002년 8.01%에서 2006년 6.6%로, 병상 수 기준 2002년 15.07%에서 2006년 12.32%로 감소했다. 총액예산제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2004년 상반기 공공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대한의사협회 등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최초로 도입되기는 했으나, 병원비 중 비급여의 비율이 높아서 현실적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못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보장성이 강화될 리 없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1인당 보험료가 79% 인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은 59%에서 64%로 겨우 5% 증가했다.
노무현 정권이 공공의료 확충과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신 추진한 것이 의료민영화다. 노무현 정권은 자본에게 새로운 이윤창출 시장을 제공하기 위해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신성장동력론’을 공격적으로 제기하고, 그 일환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했던 것을 이어받아, 2004년 10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으로 외국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여 영리법인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로 가는 길을 열었다. 2006년 12월에는 ‘1단계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병원경영지원회사설립, 인수합병, 환자유인알선행위를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2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데, 이 법안은 그간 추진해온 의료민영화정책들을 거의 망라한 법안이었다.
의료민영화는 무상의료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의료민영화는 대형병원, 제약회사, 의료기기, 민간보험 등 의료자본이 마음껏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시장을 열어준다. 따라서 의료민영화는 의료비를 급격히 증가시키는데, 그 의료비는 모두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들에게서 나온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기 위해 공적 재정을 확충해도 의료기관의 이윤추구가 제어되지 않는다면, 공적재정은 다시 의료자본의 확장에 들어가고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무상의료는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나아가 무상의료는 대형병원, 제약회사, 의료기기, 민간보험회사의 이윤추구행위를 억제하여 의료비 상승을 제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이를 억제할 능력도 의지도 갖추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을 키우고 자본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지금의 민주당 역시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올해 4월 국회에서 제주영리병원을 통과시키려다 사회단체 등 여론에 밀려 이를 일시적으로 미룬 바 있다. 민주당의 송영길 인천시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송도의 영리병원 설치를 공언하였다. 민주당 지지를 선언하며 제주도에서 당선된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계속해서 제주도 국내영리병원 설립을 시도하고 있고 제주도의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이에 동조하거나 묵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약값 상승, 민영의료보험의 무분별한 확대, 영리병원 허용을 촉진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 한EU FTA 비준 동의안에 사실상 합의했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참여정부 시절 자신들이 체결한 협정은 별 문제가 없고, 작년 이명박 정부가 타결한 재협상안은 ‘굴욕ㆍ퍼주기 협상’이라고 주장하지만, 2007년 민주당이 체결한 협정은 의료민영화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민주당이 생각하는 무상의료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이런 태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의료민영화나 의료자본 통제에 대한 무상의료 운동 진영의 안이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상보육
민주당의 무상보육 정책안 주요 내용을 보자. 이명박 정부는 시설이용 아동에 대해 소득 하위 70%까지 정부지원 단가로 제공하지만, 민주당은 법정시설 이용 모든 아동에게 표준보육비용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시설 미이용 아동에 대한 양육수당 역시 이명박 정부는 0~2세 아동 중 차상위 계층까지만 제공하고 있는데 비하여 민주당은 0~5세 모든 아동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목표를 집권 5년간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상보육 역시 획기적인 내용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5년간 42.2조원(저출산 부문 19.7조원)을 투입했고, 이명박 정부는 2011년부터 5년간 78.5조원(저출산 부문 39.7조원)을 투여하는 2차 계획을 세웠다. 두 계획은 보육정책으로 보육비 지원과 동시에 보육의 시장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핵심 내용이 동일하다. 민주당의 무상보육도 이러한 연장선에 위치하기 때문에 현 정부 정책을 좀 더 확장하는 수준일 뿐 획기적인 내용은 없다. 보육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그 지원 금액을 높이는 방향이다.
반면 무상보육 논란에 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에 대해서 민주당은 침묵하고 있다. 현재 전국 보육시설 중 국공립 보육시설은 전체 보육시설의 5.4%이고, 보육시설 이용 아동의 11%만 이용가능하며 평균대기자는 78명에 이르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아동 수 대비 30%까지 확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추진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민간보육 시장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의 무상보육 계획에도 보육에 대한 공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내용은 없다. 민간보육 시장 활성화가 초래할 보육의 양극화와 비용 상승에 대한 대책도 없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노무현과 이명박 두 정부 모두 <저출산·고령사회 대책>과 동시에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두 정책이 하나의 세트이자 상호보완물인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1차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은 2010년까지 여성경제활동참가율 55% 달성, 여성일자리 60만개 확대를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과 노동유연화 확대를 핵심 수단으로 삼았다. 탄력근무제 확대, 단시간 근로모델 개발,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이라는 노동유연화를 내세운 것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2010년 2차 여성인력개발 종합계획을 제시했다. 1차 계획을 대부분 이어가는 한편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높이는 방안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보육이 화두가 되는 이유는 낮은 출산율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가운데 양육에 대한 부담도 져야하는 상황이 출산을 기피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은 저출산 문제의 해법으로 고용안정과 임금상승, 보육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의 산업예비군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의 출산의무를 강요하고,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여성에게 더욱 필요하고 적합하다는 사회 인식을 강화하며, 이를 빌미로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고용불안을 감내할 것을 강요하는 단시간 근로모델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또 가정에서 여성이 담당하던 돌봄노동의 공백은 시장화하는 동시에, 돌봄노동에 대한 저평가로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각광받고 있는 사회서비스 산업 노동자들을 값싸게 활용하려고 한다.
민주당의 ‘무상보육’이 보육의 공적 인프라 구축에 대한 계획 없이 보육의 시장화와 동시에 추진되는 보육비 지원 확대라면, 이는 비용 상승과 보육의 양극화로 이어질 것이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한 민주당이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여성인력 활용정책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단절할 것인가에 진지하게 답하지 않는다면 ‘무상보육’도 여성인력활용을 위한 보완책에 머물 것이다.
반값등록금
[표3]은 지난 1월 31일에 민주당이 ‘3+1 보편적 복지 정책’ 재원 조달 방안을 발표한 자료에서 반값등록금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소득 하위 50%에 등록금을 전액에서 30%까지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민주당이 6월 국회 추경 예산안에 반값등록금 정책을 반영하겠다며 5월 26일에 발표한 자료 역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면서 한나라당 정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자 6월 7일, 반값등록금 정책의 전면재검토를 발표하였다. 국공립대부터 등록금 자체를 인하하고, 사립대도 이월적립금 활용, 구조조정 등을 통해 등록금을 인하하며, 등록금 지원 범위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후 구체적인 내용 없이 고지서상 명목등록금 반값, 추가 예산 5조 7천억 원을 주장하고 있다.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입장이 갈팡질팡 하는 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다. 한나라당은 애초 소득하위 50% 이하 계층, B학점 이상을 전제로 국가장학금을 지원하는 내용이었으나 촛불문화제로 압박을 받자 6월 23일, 황우여 원내대표가 2014년까지 3년간 정부재정 6조 8천억 원 투입을 통해 명목등록금을 30% 인하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정부와 입장이 조정된 것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고, 7월 21일 고위 당정회의에서 소득구간별 차등 지원과 대학 구조조정을 협의하는 등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고 있다. 지난 17일 당정회의에서는 다시 내년에 1조 5천억 원 투입을 통한 명목등록금 10%인하를 협의하였다.
의료나 보육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재정 지원과 함께 공공적으로 고등교육을 제공하는 체계를 갖추는 대신 민간자본(사학자본)에 운영과 재정을 맡겨왔다. 그 결과 고등교육은 대부분 민간에 의해 이루어져 현재 한국의 사립대 비율은 78%로 매우 높은 편이다(OECD 평균 22%). 전 사회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행되면서 대학 역시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진행되었다. 대학은 경쟁 속에서 산학협력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등 대학 운영을 기업 운영과 비슷하게 바꾸어갔고,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은 다른 분야에 통폐합하거나, 자본의 이해에 맞는 지식을 생산하게 되었다. 민주당을 포함한 지배세력은 ‘산업교육진흥법’을 제·개정하고,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는 등 이러한 대학의 기업화 흐름을 적극적으로 촉진하였다.
또 대학 재정 확보를 위해 노태우 정권은 1989년 사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고, 김대중 정권은 2002년에 산업대학 등록금을, 2003년에는 모든 국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1989년에서 약 10년간 사립대학 등록금이 폭등하였고, 2002~2008년 국립대학의 등록금이 크게 인상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부문 투자는 총 투자의 20.7%(OECD 국가 중 28위, OECD 평균 69.1%)에 불과한 반면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70%(OECD 평균 대학 등록금 의존율 25%)에 이른다. 한편 대학은 등록금 인상으로 마련한 재정을 적립금으로 이월하여 그 규모가 10조 원에 이른다.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2007년 말, 정부가 대학 이월 적립금의 주식 투자를 허용하면서 2008년 하반기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수많은 대학들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결국 지금의 높은 등록금은 고등 교육이 공공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되어 온 결과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주장대로 재정을 확보해서 등록금을 낮추고, 사립대학의 투명성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사립대학 중심의 구조는 변하지 않으며, 대학의 기업화 흐름은 대학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더욱 심화될 것이다. 당장 민중에게 절박한 등록금 인하 요구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제로 사립대학 의존 구조의 변화와 대학의 기업화·상업화 흐름의 중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세금이 고스란히 사학자본에 들어가고, 이후에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된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사회적 지지를 받은 이유는 연간 500~1300만 원에 육박하는 높은 등록금 때문만은 아니다. 비싼 교육비를 지불해 대학 졸업하더라도 취업이 어렵고, 일자리의 질이 낮으며, 나아가 인생을 설계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대졸자의 취업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일자리의 질도 낮아졌다. 정부측 통계에 따르면, 고등교육 이수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58.4%에서 2007년 56.8%, 2008년 56.1%, 2009년은 48.3%로 낮아졌다. 반면 비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15.7%, 2007년 17.7%, 2008년 18.8%, 2009년 26.2%로 상승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이력추적 연구에 따르면, 남성 대졸자 취업률은 53.1%, 여성 대졸자는 31.6%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등록금 인하가 제도적으로 달성된다 하더라도 높은 청년 실업률,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의 늪, 열악한 노동조건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와 한나라당이 장학금 지원의 전제로 제시하는 부실대학 구조조정은 노동시장의 조건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취업의 최소 조건마저도 박탈하게 된다.
무상급식
무상급식을 내세워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많은 당선자를 내었던 민주당(서울시의회)은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2011년 1월 6일, 서울시에서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위한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 시장은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조례안에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발의하였다. 주민투표용지에 기재될 두 가지 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2.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무상급식은 2010년 기준 저소득층 11%(초중고 평균)에 실시되었다. 서울시가 애초에 냈던 계획은 11%에서 매년 5%씩 늘려 2014년까지 소득 하위 30%로 끌어올린다는 것이었으나 주민투표를 앞두고 소득 하위 50%까지 확대하였다. 서울시의회가 의결한 조례는 초ㆍ중학생에 대한 100% 무상급식인 데 비해 서울시 안은 저소득층에 대해서만 무상급식을 제공하되 초ㆍ중학생뿐 아니라 고등학생도 포함하는 차이가 있다.
무상급식 조례안에 따르면, 무상급식과 관련한 지원할당은 교육청이 50%, 지자체가 20%, 서울시가 30%를 부담해야 하므로 각 기관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다음과 같다.
오세훈은 전면 무상급식이 부자들에게 부당한 혜택을 주는 것이므로 그 예산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안의 전체예산 차이는 1000억 원이며, 서울시가 부담해야 할 예산 차이는 300억 원에 불과하다. 주민투표에 드는 예산이 200억 원임을 생각하면, 오세훈이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예산 문제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내년 두 번의 큰 선거를 앞두고 여야 구분 없이 민심 얻기 경쟁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무상급식에 대해 진보진영은 아이들 밥 먹이는 것에 대한 이슈로 자꾸 의미를 축소하지만 실제로 지난해 6·2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였다. 진보진영에서 이른바 보편적 복지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복지를 화두로 론칭 역할을 했던 이슈이고, 그렇게 하면서 내년 선거를 보편적 복지로 치른다는 입장이다.
…… 이기면 민주당의 프레임에 갇혀 있던 선거 프레임이 풀리는 것이다. 민주당이 설정한 보편적 복지 프레임에서 해체되면 내년 총선과 대선 때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설정할 국가적 어젠다가 무엇인가, 지금처럼 보편적 복지냐, 아니면 어렵고 힘든 부분을 도와주고 여력이 있으면 성장에 투자해야 하느냐의 프레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오세훈 홈페이지
즉 오세훈은 300억 원의 예산이 부자급식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인기를 얻기 위해 무상급식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및 복지국가 논자들은 선별적 무상급식을 하면 아이들이 ‘눈칫밥’을 먹게 된다는 것을 주요 근거로 내세운다. 취약계층을 낙인찍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통해서 누구나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안의 차이는 초·중학생 상위 50%(서울시의회, 민주당)와 고등학생 하위 50%(서울시, 오세훈)에 대한 무상급식 여부이며, 그 예산 차이가 고작 300억 원이다. 민중의 삶에 큰 변화를 준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서울시 교육청은 올해 초등학교 1,2,3학년에 무상급식을 위해 1162억 원의 재원을 확보하면서 영어전용교실 설치 예산, 과학실 현대화 예산, 보건실 개선, 학교 신설비 예산을 삭감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 무상급식이 실제 민중에게 도움이 되느냐보다 ‘보편적 복지’라는 프레임을 유지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 찬성론자들도 이미 무상급식 논쟁을 ‘선별적 복지 세력과 보편주의 복지국가 세력의 대결’로 인식하고 있다. 무상급식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여 보편적 복지국가를 필두로 2012년 총대선을 유리하게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민주당을 주축으로 하는 복지국가 논자들이 지지하는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매년 건강보험료가 오르는데도 건강보험보장률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의료자본의 영리추구로 전체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보육이 중요한 민생 현안이 된 이유는 여성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가운데 양육에 대한 부담도 져야하는 상황이 출산을 기피하도록 만들면서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폭발한 이유는 사립대학의 자산 늘리기에 사용되는 높은 등록금을 내고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취업률이 낮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는 이러한 모든 근본 문제를 우회하여 세금으로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식이다. 이 세금은 모두 의료자본, 민간보육시설, 사학자본 등의 민간자본으로 고스란히 들어가며, 이후 의료비, 보육비, 등록금을 더 올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결국 근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무상복지 정책은 지속 불가능하게 된다.
둘째,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를 주도하는 민주당은 실제로 이를 추진할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추진하려고 하더라도 실현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무상의료를 당론으로 확정한 후에도 의료민영화 추진 행보를 계속해왔다. 의료민영화는 의료비를 증가시키고 이는 무상의료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무상의료를 실현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재원 조달 방안으로 부자감세 철회, 4대강 사업 등 비효율적 예산 절감, 건강보험료 부과 기반 개선(건강보험료 부과 기준을 현행 근로소득에서 종합소득 기준으로 변경하고 고소득자의 피부양자도 건강보험료를 내도록)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자본가 계급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노사의 대화와 참여를 활성화하여 미래지향의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민주당이 자본가 계급과 한 판 싸움을 벌일 리는 없다.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의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는 실현될 수 없다. 이것이 정책연대가 계급투쟁을 대신할 수 없으며, 다른 운동 전략이 필요한 이유이다.
셋째, 민중운동은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를 민주당의 좌선회로 오인하여 정책 연대에 의존하고, 변혁적 전망을 상실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보건의료운동에서 그나마 이어오던 의료민영화 반대 운동의 흐름은 공식적·비공식적으로 민주당과 함께 하는 무상의료 운동으로 대체되고 있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안이 민중운동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앞에서 설명하였다. 그러나 보건의료운동 진영은 ‘민주당을 잘 견인하여 무상의료 정책안을 실현하는 것’을 운동의 목표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반값등록금 투쟁 역시 일부학생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시민사회단체, 민주당과 공동행보의 흐름을 만들어 가면서, 근본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외연 확장, 상층 연대, 제도적 성과 쟁취에 집중하고 있다. 결국 반값등록금 운동은 새로운 운동 주체 형성이나 실질적인 민생 문제 해결보다는 민주대연합의 근거로 활용되어 그 성과가 민주당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무상급식 문제는 실제로 민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오세훈이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지나치게 정치쟁점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무상급식을 보편적 복지를 대표하는 중요한 사안으로 여겨 한 톨이 아쉬운 전력을 민주당에 실어주고 있다. 결국 민주당이 주민투표에서 이기더라도 민중의 삶에는 큰 변화 없이 민주당의 정치적 성과로 수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