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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9-10.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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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주민투표 무산과 노동자운동의 태세

전준범 | 정책위원
8월 24일 진행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개표요건인 투표율 33.3%를 넘기지 못하고 무효 처리되었다. 대선 불출마 선언, 1인 시위에 이어 시장직 연계라는 벼랑 끝 전술까지 동원한 오세훈 시장의 승부수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은 25.7%에 머물렀다.
곽노현 교육감은 이번 투표무산을 두고 “서울시민이 보편적 복지에 동의했다”고 평가했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복지사회로 가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향후 보편적 복지 프레임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임을 예고했다. 반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불안감을 감추며 “사실상 오세훈의 승리”라는 아전인수격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주민투표가 각종 무상복지 논란의 결절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만큼, 향후 정세에 미칠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게다가 26일 오세훈 시장이 “즉각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두 달도 채 남지않은 10ㆍ26 재보선이 내년 총대선 승리를 위한 지배 양당 간 치열한 전장으로 떠올랐다.


오세훈이 명운을 걸게 된 이유

무상급식은 6·2 지방선거 때부터 민주당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 온 보편적 복지 프레임의 대표 정책이었고, 야권연대의 정책적 매개이기도 하다.
반면 한나라당은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해왔지만, 복지 이외의 의제를 부각시키는 데 실패함에 따라 끊임없이 동요해왔다. 100% 무상보육을 주장한 황우여 원내대표를 비롯 여러 의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의 복지 공약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내 유력 대권주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이미 무상급식을 수용하고 ‘맞춤형 무한복지’를 주장하는가 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생애주기별 맞춤형복지’를 제시했다.
이러한 가운데 오세훈은 이명박 정권의 입장이자 한나라당의 당론인 선별적 복지를 원칙적으로 고수해왔다. 오세훈은 이번 주민투표가 “과잉 복지냐 합리적 복지냐를 선택”하는 것이라며 납세부담은 적고 소득재분배 효과는 큰 합리적 대안을 찾자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오세훈의 무상급식 조례 거부는 보수세력 내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폭우 피해, 미국 신용평가등급 하락 등으로 인해 주민투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또한 주민투표가 오세훈의 차별화 전략인 한, 한나라당 내 계파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힘들었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오세훈 시장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제기되어왔다. 차별화 전략을 통해 대권 주자를 꿈꾸던 오세훈은 정치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명운을 걸고 전력투구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오세훈-이명박의 부자감세와 복지공격

오세훈은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는 한편 선별적 복지를 통해 약자를 지원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대변했다. 즉, 재정 건전성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복지를 쟁점으로 제기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무상급식 정책을 ‘망국적’이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2010년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는 33.5%로 양호한 편이지만, 향후 △잠재성장률 저하 △저출산ㆍ고령화 △무역ㆍ투자 자유화에 따른 법인세, 관세와 같은 세입감소 등 재정위기 위험요인이 존재하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복지지출의 증대 역시 위험요인으로 분류되며, 무상급식이 각종 무상복지 시리즈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위험을 가지는 정책으로 인식된다.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재정 건전성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경제위기가 발생한 나라들에 IMF가 강요하는 정책 패키지 중 하나가 항상 재정 건전성이었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금융자산 보호를 위한 물가안정에는 통화량 규제와 재정 건전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및 유럽 재정위기와 맞물려, 재정 건전성은 세계적으로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이명박 역시 최근 8ㆍ15 경축사에서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재정 건전화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기업과 투자자에 대한 각종 세금혜택을 줄일 수 없으므로 복지지출의 추가 발생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기업과 투자자에 대한 감세 혜택은 늘어나지만, 이를 통해 얻은 이윤의 처분권은 고스란히 자본이 가진다. 부자감세와 재정긴축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부·여당의 정책 기조는 지배세력의 반동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명박 정부의 선별적 복지는 복지 혜택의 대상을 끊임없이 선별해 보장범위를 좁히는 동시에 복지를 노동과 연계시킨다는 문제점을 가진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해 기초생활 수급자를 엄격하게 선별하는 기초법은 선별적 복지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노동연계복지는 직업훈련, 구직과 같은 노동시장 참여 의무를 복지수급 조건과 연계시킴으로써 산업예비군을 광범위하게 조성하여 기업이 저임금ㆍ비정규직 노동자를 활용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세훈 주민투표 무산이 미칠 효과

주민투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 내년 총대선을 앞둔 전초전이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민생파탄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무상 복지’로 흡수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6·2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주민투표 무산은 민주당이 자신의 복지 전략이 가진 유효성을 재확인하고, 총대선까지 3+1복지정책 시리즈(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를 더욱 강도높게 추진하는 근거로 작동할 것이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오세훈식 정치쇼를 통해 민주당의 ‘무상 복지’에 맞불을 놓았으나, 투표함 개봉에 실패했다. 한나라당 내에서 오세훈의 ‘벼랑 끝 전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야권의 ‘무상 복지’ 공세를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오세훈식 정치쇼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투표무산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승리’라며 오세훈을 감싸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투표 무산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부자감세-복지축소’에 대한 일부 교정의 필요성과 ‘무상 복지’ 정책 패키지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인하는 의미로 해석됨에 따라, 오세훈 패배 효과로부터의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민주당과의 복지정책 경쟁을 본격화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한편, 민중운동 주류는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연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민주당식 복지 프레임에 흡수되어왔다. 민중운동 주류가 이번 주민투표 무산을 보편적 복지 프레임의 승리이자, 야권 연대의 승리로 사고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주민투표 무산이 “야권이 한 명의 후보를 내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투표 무산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반동적 공세에 반대하는 민중운동의 목소리가 민주당식 복지 프레임으로 모조리 흡수되는 효과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전략으로서 민주당식 보편적 복지

하지만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론은 선거용 정책으로 설계되었을 뿐, 진정성과 현실성을 모두 결여하고 있다. 단적으로, 수출경쟁력 확보와 투자 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 전반에 대한 반성없이 법인세ㆍ소득세 인상과 같은 부자증세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또한 민주당의 복지정책은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을 기정사실화한 채 부족한 생계비 일부를 보전해주겠다는 맥락에서 추진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위기를 관리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향후 국회 비준 과정에서 지배 양당 간 중대 쟁점으로 떠오를 한미FTA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부문별 피해에 대한 예방이나 보상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한미FTA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역과 투자를 자유화함으로써 자본의 소유권을 전반적으로 강화한다는 데 있다. 민주당은 무역과 투자 자유화를 기정사실화한 채 피해부문의 소득감소 일부를 예방하거나 보상해주겠다는 맥락에서 중소기업이나 골목상권과 관련된 유보조항 문제에 주목한다.
이들은 승자독식에 대한 일부 교정을 주장하지만 자본에 대한 통제방안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고통을 모두 이명박 정권의 책임으로 돌리고, 민주당이 총대선에서 승리해 복지를 확대하면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론은 결코 한나라당의 선별적 복지론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민중운동이 지배양당 간 허구적 프레임대결을 넘어서야

이런 조건에서 민중운동이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어 10ㆍ26 재보선, 내년 총대선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식 복지 프레임을 수용하고 상층 야권연합에 몰두할 경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침식당할 위험이 있다.
민중운동은 진정한 의미의 복지를 실현하고 임금과 고용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히 추구해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에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경제위기와 민생파탄 속에서 민중운동이 정세주도력을 발휘하는 것만이 앞으로 반복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놀음에 대처하는 올바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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