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노동자학생 공동의 생존권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2011년 반값등록금 운동, 대학생들의 분노를 모아내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4~5년 전만 해도 매번 투쟁을 갈라놓던 ‘등록금이 높아야 우리 학교가 발전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잃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지키지 못한 공약 ‘반값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2011년 여름, 모아지지 않던 대학생들의 분노가 모인 것이다. 등록금 투쟁이라 하면, 대학 본부 앞에서 함성을 지르다가 본관 점거하고, 구호 외치다가 만약 투쟁에서 승리하면 3만원을 통장에 돌려받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올해는 분명 달랐다. 각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전 사회적 문제로서 반값등록금이 제기되는 순간, 정부도 피할 길이 없었다. 대학가 여기저기서는 최근 몇 년간 볼 수 없었던 학생총회가 성사되었고, 이 흐름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과거 대학생 교육투쟁 과정에서의 쟁점
학생운동은 과거에도 꾸준히 등록금 투쟁을 전개해왔다. 살인적인 교육비로 인해 먹고 살기 힘겨운 민중들의 생존권 쟁취, 평등한 교육기회 보장이라는 정치적 목표 하에 말이다. 하지만 1997년 IMF 이후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과도한 교육비가 쟁점이 되던 시기와 달리, 2000년대 중후반에는 등록금 인하가 전국적인 이슈를 선도하지 못했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것보다, 빨리 취직해서 등록금을 갚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대학가를 지배하면서, 매년 진행되던 등록금 투쟁은 어려움을 겪는다.
더불어 2000년대 후반부터는 대학 구조조정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이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의 상업화, 교육의 상품화가 당연시되었다. 이제 교육투쟁의 핵심과제였던 등록금 동결, 인하만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바가 별로 없었으며, 실제 학생들의 분노도 쉽사리 모이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대학기업화에 대한 연구 그리고 이를 중심에 놓는 교육투쟁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자본은 등록금은 동결할지언정, 학문단위 구조조정 및 대학 간 통폐합을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하는 등 대학기업화를 가속화했다. 취업이 어려우니 대학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세련된 논리를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그 논리는 자신들의 책임을 학생 개개인에게 돌리는 것이었고,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전국학생행진(이하 행진)의 교육투쟁의 핵심 슬로건은 신자유주의 대학재편의 핵심인 ‘대학기업화 저지’가 된다.
‘대학기업화’라는 말은 다양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중 핵심은 ‘연구의 상업화’와 ‘교육의 상품화’다. 먼저 연구의 상업화는 ‘산학협력, 대학 기술 지주회사’와 같이 지식의 생산 자체가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대학에서 연구 개발한 지식은 대학에는 돈벌이가 되고, 기업은 이를 독점한다. 다음으로 교육의 상품화는 교육영역에 시장논리를 도입하여 교육 담론 자체를 바꾸고, 학습 과정을 기업 활동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기업 혹은 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학생선발부터 커리큘럼 개발, 강사진 운영과 졸업생 채용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는 ‘계약학과’가 대표적인 예다.
행진은 대학의 기업화가 1)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걸맞은 노동력 재생산의 틀을 만드는 시도 (고급인력과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평생 직무수행능력을 발전시키며 불만을 갖지 않는 인력을 동시 양성), 2)저비용으로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지식(주로 과학기술)의 편향된 발전-유통, 3)지배계급이 해결할 수 없는 청년실업, 지속적인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대학개혁임을 비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0년, 행진은 지배계급이 청년실업 해결 방안으로서 내놓은 대학구조조정 비판을 진행했다. 또한 학교발전이데올로기에 의해 대학기업화조차도 지지받는 조건에서 이러한 투쟁을 벌이자는 것은, 곧 학우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넘어 전 대학이 어떤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지를 알리고,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교육투쟁이 중요해졌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현 시기 교육 불평등의 핵심쟁점은 교육비용을 포함한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아니라 교육내용의 차별화를 매개로 관철되는 ‘경제적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이는 등록금 투쟁과 함께 대학사회 핵심 쟁점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마다 쟁점이 달랐고, 분위기도 너무 달랐기 때문에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등록금은 물론이고, 대학기업화 역시 커다란 쟁점이 되지는 못하였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이슈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렇다면 과거 교육투쟁과 달리 이번 반값등록금이 커다란 투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등록금 문제는 대학 등록금이 폭등한 이래 대표적인 민생문제였고, 등록금 인하 요구는 매년 꾸준히 제기되었다. 본격적으로 등록금 투쟁이 반값등록금 이슈로 떠올랐던 것은 지난 5월 말,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명박 정부 대선 공약인 반값 등록금을 당장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대학생들은 이 말을 놓치지 않았다. 소득별 차등지원이니, 성적별 우선순위니 할 것 없는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대중들은 더 이상 위기의 책임과 비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세계 여러 나라도 마찬가지이듯 남한 경제위기를 적당하게 관리할 실력조차 되지 않는 지배계급들의 무능함에 대중들의 분노는 여과 없이 분출되었다. 과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학이라는 공간이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교육비용에 대한 불만은 관리되곤 했다. 하지만 낮아지는 취업률과 불안정 일자리 확산에서 드러나듯 대학이 더 이상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조차 담보해주지 못하면서 불만은 축적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곧장 모든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취업 요건에 맞게 나를 다듬고, 이명박 대통령 말대로 눈높이를 낮추면서 저성장/고실업 상태의 사회구조적 위기를 개인적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요건이 된 대학에 다니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살인적 고액 등록금 앞에서 사람들은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복지로 묶이는 민생문제가 정치권의 화두로 작용했고 이 중, 등록금과 청년 일자리 문제가 교육복지의 주요 축을 구성했기 때문에 2012년 총대선을 앞둔 지배계급에게 등록금은 놓쳐서는 안 되는 의제가 되었다. 한나라당 역시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에 앞장섰던 황우여 의원의 발언은 대학생들의 잠자고 있던 불만에 불씨를 지폈다.
실제 등록금 비용의 심각성은 엄청나다. 우리나라 등록금은 비슷한 경제규모의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더불어 우리나라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대부분 민간부문에 의하여 이뤄지고 있으며, 총투자의 약 20.7%만이 공공부문에서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한국의 등록금 의존율은 국립대 39.9%, 사립대 65.2%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다. 특히 2000년대 이후 10여 년 동안 등록금이 물가상승률의 두 배 이상 오르면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다 대학의 대중화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여서 대학 등록금 문제는 일부 중산층이 아닌, 전 국민의 민생문제가 된 것이다. 직접적으로 대학 등록금이 가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의 수만 1,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반값등록금에 대한 이명박 정부 대책의 문제점
반값등록금을 향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자 정부와 여당은 대책을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연초 소득하위 50% 이하 계층, B학점 이상을 전제로 국가장학금을 지원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반값등록금 이슈로 인해 압박을 받자 6월 23일 황우여 원내대표는 2014년까지 3년간 정부재정 6조 8천 억 원 투입을 통해 명목등록금을 30% 인하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정부와 입장이 조정된 것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후 다시 입장이 바뀌어 8월 17일 당정협의에서는 다시 내년에 1조 5천 억 원을 통한 명목등록금 10% 인하를 발표하였다.
추석 즈음이었던 9월 8일에는 민심공략 3종 세트 중 하나로 등록금부담 완화정책이 발표된다. 그 내용은 2조 2500억 원을 투입하여 등록금을 5% 인하하고 소득 7분위 이하는 국가장학금 지급으로 등록금 부담액을 평균 22% 인하한다는 것이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그 동안 450만 원씩 지급됐던 기초생활수급대상자와 220만 원씩 지급됐던 차상위계층대상자의 장학금은 계속 유지되고, 소득2분위와 3분위 학생들에게 각각 135만 원과 90만 원의 장학금이 추가된다.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이 7천5백억 원이다. 어찌됐든 저소득층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이 확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득3분위까지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으려면 평점 B 학점 이상 받아야 하며, 더욱 중요한 부분은 나머지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으려면 대학 자구 노력 결과에 따라 감면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등록금 문제 해결 주체에서 정부는 한 발 빼겠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요구를 정부가 생색만 내고 책임은 대학에 묻는 꼼수다. 물론 무분별한 등록금 인상으로 일차적 원인을 제공한 대학들 책임도 작지 않지만, 몇 달 사이에 등록금 지원 예산을 몇 조 원씩 변동하더니 대학에 그 책임을 맡겨버리는 것에서 진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니 경제위기 시대에 막대한 재정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 해결을 해보자니 지배계급 내부적으로도 합의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뚜렷한 대안이 나올 수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인 것이다.
직접적인 등록금대책보다 문제인 것은 부실대학퇴출을 기본 골격으로 하는 대학구조조정이다. 8월 17일 교과부는 하위 15% 내외의 대학을 선정해 정부재정지원을 제한하는 ‘2012학년도 평가순위 하위 대학 정부재정지원 제한 계획’을 발표했다.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학사관리, 장학금 지급률, 교육비 환원율, 학자금대출 상환율, 등록금 인상 수준, 산학협력수익률(전문대만 해당)의 9개 지표로 전체 대학을 평가해, 하위 15% 대학은 부실대학으로 선정해 정부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하위 15% 대학 선정을 시작으로 이들 중 '학자금대출 제한 대학 선정 → 경영부실대학 선정 → 퇴출'로 이어지는 구상을 그려놓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되는 각 대학에서의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위의 9개 지표로 부실 대학을 걸러내는 방법에는 우려점이 많다. 먼저 재학생 충원율(30%)과 취업률(20%)이 부실대학 평가 총점의 50%를 차지하는데, 이러한 기준에 의한 부실대학퇴출은 곧 지방대학 축소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권 대학들이 현재 입학 정원을 유지할 경우 10여년 후에는 전국 고교 졸업생의 절반가량이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이럴 경우 극심한 지역 간 격차가 발생하고, 그 결과로 파생되는 문제는 교육적 측면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엇보다, 부실대학퇴출이라는 구조조정 대책은 전체 대학의 체질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라 현 사회 기준을 그대로 두고 하위 대학을 퇴출시키기 때문에 또 다른 부실대학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학을 퇴출시키는 과정에서도 부실대학의 잔여재산을 운영자에게 돌려줌으로써 그 피해는 오로지 학생에게 전가된다.
대학전반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의 부실대학 퇴출이 근본적인 개혁을 담보해줄 수 없다. 과도하게 팽창한 대학의 수를 축소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현재 수도권과 지방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구조를 고려해야 하며, 취업률과 같은 기준으로만 대학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로 자라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내가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즉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의 개혁은 등록금을 인하함으로써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고, 지역 교육 거점으로서 대학의 역할을 재고해야 한다. 또한 대학은 취업양성소의 역할에만 갇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한다.
반값등록금 운동에서 드러난 우려지점
하지만 이와 같은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며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강화해나가야 할 반값등록금 운동은 우려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반값등록금 집회의 결론이 정권 교체와 이를 위한 야권연대로 수렴되면서, 촛불을 통해 이후 노동자민중에게 어떤 문제의식을 남길 것인지, 이후 단결은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축소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이라는 적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감정적 분노를 동원하는 것이 등록금 문제의 해결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이번 9월 29일 반값등록금 범국민촛불문화제를 주최했던 <반값등록금 국민본부>에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 보수 야당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운동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을 철저히 단행했던, 그리고 실제 엄청난 등록금 폭등을 야기했던 노무현 정권과 이념을 공유하고 있는 자들이 뻔뻔하게 무대에서 ‘등록금 문제, 심각하니 이명박 정권 갈아엎자’고 말하는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적어도, 등록금 문제를 통해 학생들을 주체화해야 한다는 관점만 있다면, 오히려 민주당 세력이 과거 어떤 일을 했고 그들을 왜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남기는 판이 되어야 했다. 등록금만 조금 깎아준다면, 대학을 자본의 이해로 삼켜버릴 보수 야당들과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무리 대중들이 많이 모인다 한들, 이후 전망이 야권연대-친 민주당으로 흐른다면 희망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반값등록금 투쟁이 등록금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간과하게 되는 노동시장의 실질적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노동시장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고액의 등록금을 스스로 선택하고서라도 대학 졸업장을 얻으려 하는 이유는 결국 노동시장에서의 실질적 불평등을 피해가기 위해서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자에게만 덜 불안한 일자리를 선물해주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하기에 지금도 자기소개서만 몇 백 개를 써가며 일자리에서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경험을 하는 청년백수들이 많은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학생들이 겪는 일자리에 대한 불만이 도대체 어디서 해결되어야 하는지, 누구에게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지, 문제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상 대학에 가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노동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의 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대다수가 대학에 가는 시대라도,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복지의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재정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분배 싸움을 대신해주는 정치인들만 남고, 정작 주체화되어야 할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우려가 크다. 하기에 반값등록금 투쟁은, 대중들의 불만을 고용, 노동에 대한 불만으로 끌고 가야 그 의미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비판에서 행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바
그렇다면, 반값등록금 운동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반값등록금으로 표출된 분노가 단지 대학생들의 몸부림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학생들이 고액의 졸업장을 얻고도 안정적인 일자리에 취업하지 못하는 사회에 문제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생들의 투쟁이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와 함께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불안정 노동에 맞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소외되고 있는데 대학생들이 노동자가 아니라 이들을 짓밟았던 친 민주당 세력과 함께 한다면, 등록금 투쟁은 그야말로 ‘공부 좀 해서 지배계급이 쉽게 될 수 있는 싸움’ 아니겠는가. 등록금이라는 요구로 모인 대학생들이 자신들 내부에 강제되고 있는 학벌과 좋은 일자리를 향한 경쟁을 구조적으로 보지 못한다면, 등록금 투쟁은 신자유주의에 포섭되고 말 것이다.
전국학생행진은 반값등록금에 대한 요구를 통해 드러난 대중들의 교육비에 대한 불만을 고용에 대한 불만으로 모으기 위한 투쟁을 강조해왔다. 이번 9.29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에 앞선 9.29 노동자-학생 MEEING DAY (TV는 투쟁을 싣고)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대학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와 함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로 대기업 재벌과 싸우고 있는 노동자와 함께, 등록금 문제와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노동자학생의 연대투쟁의 가능성을 지폈다. 물론 대학생들의 공분을 ‘청년 일자리’, ‘청년 실업’으로 이끌어내어 많은 이를 조직화하는 데 부족했다. 그럼에도, 2006년 CPE(최초고용계약제도)에 맞서 노동자, 학생이 함께 투쟁해 법안을 막아냈던 프랑스의 사례처럼, 최근 칠레에서의 노동자, 학생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가능성을 본다.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학생운동이든, 노동자투쟁이든 모든 정치투쟁이 의회정치 표 몰이로 수렴될 우려가 크다. 선거가 의미 있으려면, 선거과정에서 누가 우리 편인지를 확실히 보고 당당하게 노동자민중의 빼앗겼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옭죄지 말고, 외칠 수 있게 말이다. 어느 때보다도 학생운동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변화는 한국 사회 신자유주의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다. 대학이 자본의 이해에 더욱 깊숙이 편입되어 가는 현실에 맞서 싸우면서,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며 야당에게 의탁하는 경향을 제어하는 것, 이는 이제까지,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4~5년 전만 해도 매번 투쟁을 갈라놓던 ‘등록금이 높아야 우리 학교가 발전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잃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지키지 못한 공약 ‘반값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2011년 여름, 모아지지 않던 대학생들의 분노가 모인 것이다. 등록금 투쟁이라 하면, 대학 본부 앞에서 함성을 지르다가 본관 점거하고, 구호 외치다가 만약 투쟁에서 승리하면 3만원을 통장에 돌려받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올해는 분명 달랐다. 각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전 사회적 문제로서 반값등록금이 제기되는 순간, 정부도 피할 길이 없었다. 대학가 여기저기서는 최근 몇 년간 볼 수 없었던 학생총회가 성사되었고, 이 흐름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과거 대학생 교육투쟁 과정에서의 쟁점
학생운동은 과거에도 꾸준히 등록금 투쟁을 전개해왔다. 살인적인 교육비로 인해 먹고 살기 힘겨운 민중들의 생존권 쟁취, 평등한 교육기회 보장이라는 정치적 목표 하에 말이다. 하지만 1997년 IMF 이후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과도한 교육비가 쟁점이 되던 시기와 달리, 2000년대 중후반에는 등록금 인하가 전국적인 이슈를 선도하지 못했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것보다, 빨리 취직해서 등록금을 갚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대학가를 지배하면서, 매년 진행되던 등록금 투쟁은 어려움을 겪는다.
더불어 2000년대 후반부터는 대학 구조조정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이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의 상업화, 교육의 상품화가 당연시되었다. 이제 교육투쟁의 핵심과제였던 등록금 동결, 인하만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바가 별로 없었으며, 실제 학생들의 분노도 쉽사리 모이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대학기업화에 대한 연구 그리고 이를 중심에 놓는 교육투쟁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자본은 등록금은 동결할지언정, 학문단위 구조조정 및 대학 간 통폐합을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하는 등 대학기업화를 가속화했다. 취업이 어려우니 대학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세련된 논리를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그 논리는 자신들의 책임을 학생 개개인에게 돌리는 것이었고,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전국학생행진(이하 행진)의 교육투쟁의 핵심 슬로건은 신자유주의 대학재편의 핵심인 ‘대학기업화 저지’가 된다.
‘대학기업화’라는 말은 다양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중 핵심은 ‘연구의 상업화’와 ‘교육의 상품화’다. 먼저 연구의 상업화는 ‘산학협력, 대학 기술 지주회사’와 같이 지식의 생산 자체가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대학에서 연구 개발한 지식은 대학에는 돈벌이가 되고, 기업은 이를 독점한다. 다음으로 교육의 상품화는 교육영역에 시장논리를 도입하여 교육 담론 자체를 바꾸고, 학습 과정을 기업 활동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기업 혹은 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학생선발부터 커리큘럼 개발, 강사진 운영과 졸업생 채용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는 ‘계약학과’가 대표적인 예다.
행진은 대학의 기업화가 1)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걸맞은 노동력 재생산의 틀을 만드는 시도 (고급인력과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평생 직무수행능력을 발전시키며 불만을 갖지 않는 인력을 동시 양성), 2)저비용으로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지식(주로 과학기술)의 편향된 발전-유통, 3)지배계급이 해결할 수 없는 청년실업, 지속적인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대학개혁임을 비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0년, 행진은 지배계급이 청년실업 해결 방안으로서 내놓은 대학구조조정 비판을 진행했다. 또한 학교발전이데올로기에 의해 대학기업화조차도 지지받는 조건에서 이러한 투쟁을 벌이자는 것은, 곧 학우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넘어 전 대학이 어떤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지를 알리고,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교육투쟁이 중요해졌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현 시기 교육 불평등의 핵심쟁점은 교육비용을 포함한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아니라 교육내용의 차별화를 매개로 관철되는 ‘경제적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이는 등록금 투쟁과 함께 대학사회 핵심 쟁점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마다 쟁점이 달랐고, 분위기도 너무 달랐기 때문에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등록금은 물론이고, 대학기업화 역시 커다란 쟁점이 되지는 못하였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이슈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렇다면 과거 교육투쟁과 달리 이번 반값등록금이 커다란 투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등록금 문제는 대학 등록금이 폭등한 이래 대표적인 민생문제였고, 등록금 인하 요구는 매년 꾸준히 제기되었다. 본격적으로 등록금 투쟁이 반값등록금 이슈로 떠올랐던 것은 지난 5월 말,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명박 정부 대선 공약인 반값 등록금을 당장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대학생들은 이 말을 놓치지 않았다. 소득별 차등지원이니, 성적별 우선순위니 할 것 없는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대중들은 더 이상 위기의 책임과 비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세계 여러 나라도 마찬가지이듯 남한 경제위기를 적당하게 관리할 실력조차 되지 않는 지배계급들의 무능함에 대중들의 분노는 여과 없이 분출되었다. 과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학이라는 공간이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교육비용에 대한 불만은 관리되곤 했다. 하지만 낮아지는 취업률과 불안정 일자리 확산에서 드러나듯 대학이 더 이상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조차 담보해주지 못하면서 불만은 축적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곧장 모든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취업 요건에 맞게 나를 다듬고, 이명박 대통령 말대로 눈높이를 낮추면서 저성장/고실업 상태의 사회구조적 위기를 개인적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요건이 된 대학에 다니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살인적 고액 등록금 앞에서 사람들은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복지로 묶이는 민생문제가 정치권의 화두로 작용했고 이 중, 등록금과 청년 일자리 문제가 교육복지의 주요 축을 구성했기 때문에 2012년 총대선을 앞둔 지배계급에게 등록금은 놓쳐서는 안 되는 의제가 되었다. 한나라당 역시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에 앞장섰던 황우여 의원의 발언은 대학생들의 잠자고 있던 불만에 불씨를 지폈다.
실제 등록금 비용의 심각성은 엄청나다. 우리나라 등록금은 비슷한 경제규모의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더불어 우리나라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대부분 민간부문에 의하여 이뤄지고 있으며, 총투자의 약 20.7%만이 공공부문에서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한국의 등록금 의존율은 국립대 39.9%, 사립대 65.2%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다. 특히 2000년대 이후 10여 년 동안 등록금이 물가상승률의 두 배 이상 오르면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다 대학의 대중화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여서 대학 등록금 문제는 일부 중산층이 아닌, 전 국민의 민생문제가 된 것이다. 직접적으로 대학 등록금이 가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의 수만 1,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반값등록금에 대한 이명박 정부 대책의 문제점
반값등록금을 향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자 정부와 여당은 대책을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연초 소득하위 50% 이하 계층, B학점 이상을 전제로 국가장학금을 지원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반값등록금 이슈로 인해 압박을 받자 6월 23일 황우여 원내대표는 2014년까지 3년간 정부재정 6조 8천 억 원 투입을 통해 명목등록금을 30% 인하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정부와 입장이 조정된 것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후 다시 입장이 바뀌어 8월 17일 당정협의에서는 다시 내년에 1조 5천 억 원을 통한 명목등록금 10% 인하를 발표하였다.
추석 즈음이었던 9월 8일에는 민심공략 3종 세트 중 하나로 등록금부담 완화정책이 발표된다. 그 내용은 2조 2500억 원을 투입하여 등록금을 5% 인하하고 소득 7분위 이하는 국가장학금 지급으로 등록금 부담액을 평균 22% 인하한다는 것이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그 동안 450만 원씩 지급됐던 기초생활수급대상자와 220만 원씩 지급됐던 차상위계층대상자의 장학금은 계속 유지되고, 소득2분위와 3분위 학생들에게 각각 135만 원과 90만 원의 장학금이 추가된다.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이 7천5백억 원이다. 어찌됐든 저소득층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이 확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득3분위까지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으려면 평점 B 학점 이상 받아야 하며, 더욱 중요한 부분은 나머지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으려면 대학 자구 노력 결과에 따라 감면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등록금 문제 해결 주체에서 정부는 한 발 빼겠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요구를 정부가 생색만 내고 책임은 대학에 묻는 꼼수다. 물론 무분별한 등록금 인상으로 일차적 원인을 제공한 대학들 책임도 작지 않지만, 몇 달 사이에 등록금 지원 예산을 몇 조 원씩 변동하더니 대학에 그 책임을 맡겨버리는 것에서 진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니 경제위기 시대에 막대한 재정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 해결을 해보자니 지배계급 내부적으로도 합의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뚜렷한 대안이 나올 수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인 것이다.
직접적인 등록금대책보다 문제인 것은 부실대학퇴출을 기본 골격으로 하는 대학구조조정이다. 8월 17일 교과부는 하위 15% 내외의 대학을 선정해 정부재정지원을 제한하는 ‘2012학년도 평가순위 하위 대학 정부재정지원 제한 계획’을 발표했다.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학사관리, 장학금 지급률, 교육비 환원율, 학자금대출 상환율, 등록금 인상 수준, 산학협력수익률(전문대만 해당)의 9개 지표로 전체 대학을 평가해, 하위 15% 대학은 부실대학으로 선정해 정부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하위 15% 대학 선정을 시작으로 이들 중 '학자금대출 제한 대학 선정 → 경영부실대학 선정 → 퇴출'로 이어지는 구상을 그려놓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되는 각 대학에서의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위의 9개 지표로 부실 대학을 걸러내는 방법에는 우려점이 많다. 먼저 재학생 충원율(30%)과 취업률(20%)이 부실대학 평가 총점의 50%를 차지하는데, 이러한 기준에 의한 부실대학퇴출은 곧 지방대학 축소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권 대학들이 현재 입학 정원을 유지할 경우 10여년 후에는 전국 고교 졸업생의 절반가량이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이럴 경우 극심한 지역 간 격차가 발생하고, 그 결과로 파생되는 문제는 교육적 측면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엇보다, 부실대학퇴출이라는 구조조정 대책은 전체 대학의 체질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라 현 사회 기준을 그대로 두고 하위 대학을 퇴출시키기 때문에 또 다른 부실대학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학을 퇴출시키는 과정에서도 부실대학의 잔여재산을 운영자에게 돌려줌으로써 그 피해는 오로지 학생에게 전가된다.
대학전반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의 부실대학 퇴출이 근본적인 개혁을 담보해줄 수 없다. 과도하게 팽창한 대학의 수를 축소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현재 수도권과 지방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구조를 고려해야 하며, 취업률과 같은 기준으로만 대학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로 자라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내가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즉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의 개혁은 등록금을 인하함으로써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고, 지역 교육 거점으로서 대학의 역할을 재고해야 한다. 또한 대학은 취업양성소의 역할에만 갇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한다.
반값등록금 운동에서 드러난 우려지점
하지만 이와 같은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며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강화해나가야 할 반값등록금 운동은 우려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반값등록금 집회의 결론이 정권 교체와 이를 위한 야권연대로 수렴되면서, 촛불을 통해 이후 노동자민중에게 어떤 문제의식을 남길 것인지, 이후 단결은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축소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이라는 적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감정적 분노를 동원하는 것이 등록금 문제의 해결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이번 9월 29일 반값등록금 범국민촛불문화제를 주최했던 <반값등록금 국민본부>에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 보수 야당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운동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을 철저히 단행했던, 그리고 실제 엄청난 등록금 폭등을 야기했던 노무현 정권과 이념을 공유하고 있는 자들이 뻔뻔하게 무대에서 ‘등록금 문제, 심각하니 이명박 정권 갈아엎자’고 말하는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적어도, 등록금 문제를 통해 학생들을 주체화해야 한다는 관점만 있다면, 오히려 민주당 세력이 과거 어떤 일을 했고 그들을 왜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남기는 판이 되어야 했다. 등록금만 조금 깎아준다면, 대학을 자본의 이해로 삼켜버릴 보수 야당들과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무리 대중들이 많이 모인다 한들, 이후 전망이 야권연대-친 민주당으로 흐른다면 희망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반값등록금 투쟁이 등록금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간과하게 되는 노동시장의 실질적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노동시장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고액의 등록금을 스스로 선택하고서라도 대학 졸업장을 얻으려 하는 이유는 결국 노동시장에서의 실질적 불평등을 피해가기 위해서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자에게만 덜 불안한 일자리를 선물해주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하기에 지금도 자기소개서만 몇 백 개를 써가며 일자리에서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경험을 하는 청년백수들이 많은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학생들이 겪는 일자리에 대한 불만이 도대체 어디서 해결되어야 하는지, 누구에게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지, 문제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상 대학에 가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노동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의 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대다수가 대학에 가는 시대라도,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복지의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재정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분배 싸움을 대신해주는 정치인들만 남고, 정작 주체화되어야 할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우려가 크다. 하기에 반값등록금 투쟁은, 대중들의 불만을 고용, 노동에 대한 불만으로 끌고 가야 그 의미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비판에서 행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바
그렇다면, 반값등록금 운동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반값등록금으로 표출된 분노가 단지 대학생들의 몸부림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학생들이 고액의 졸업장을 얻고도 안정적인 일자리에 취업하지 못하는 사회에 문제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생들의 투쟁이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와 함께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불안정 노동에 맞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소외되고 있는데 대학생들이 노동자가 아니라 이들을 짓밟았던 친 민주당 세력과 함께 한다면, 등록금 투쟁은 그야말로 ‘공부 좀 해서 지배계급이 쉽게 될 수 있는 싸움’ 아니겠는가. 등록금이라는 요구로 모인 대학생들이 자신들 내부에 강제되고 있는 학벌과 좋은 일자리를 향한 경쟁을 구조적으로 보지 못한다면, 등록금 투쟁은 신자유주의에 포섭되고 말 것이다.
전국학생행진은 반값등록금에 대한 요구를 통해 드러난 대중들의 교육비에 대한 불만을 고용에 대한 불만으로 모으기 위한 투쟁을 강조해왔다. 이번 9.29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에 앞선 9.29 노동자-학생 MEEING DAY (TV는 투쟁을 싣고)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대학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와 함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로 대기업 재벌과 싸우고 있는 노동자와 함께, 등록금 문제와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노동자학생의 연대투쟁의 가능성을 지폈다. 물론 대학생들의 공분을 ‘청년 일자리’, ‘청년 실업’으로 이끌어내어 많은 이를 조직화하는 데 부족했다. 그럼에도, 2006년 CPE(최초고용계약제도)에 맞서 노동자, 학생이 함께 투쟁해 법안을 막아냈던 프랑스의 사례처럼, 최근 칠레에서의 노동자, 학생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가능성을 본다.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학생운동이든, 노동자투쟁이든 모든 정치투쟁이 의회정치 표 몰이로 수렴될 우려가 크다. 선거가 의미 있으려면, 선거과정에서 누가 우리 편인지를 확실히 보고 당당하게 노동자민중의 빼앗겼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옭죄지 말고, 외칠 수 있게 말이다. 어느 때보다도 학생운동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변화는 한국 사회 신자유주의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다. 대학이 자본의 이해에 더욱 깊숙이 편입되어 가는 현실에 맞서 싸우면서,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며 야당에게 의탁하는 경향을 제어하는 것, 이는 이제까지,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