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정세와 조직화 전략
7기 금속노조의 조직화 사업에 대한 제언
10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금속노조 7기 집행부 역시 이전 집행부와 마찬가지로 2년 사업의 핵심 중 하나로 조직화 사업을 꼽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매년 말로만 반복되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의 정세는 일상적 정세가 아니고 세계 경제 위기가 언제 어디서 다시 크게 한국 경제를 덮칠지 모르는 정세다. 그만큼 조직화 사업도 매년 반복되는 패턴이 아니라 보다 정세 변화에 맞게 재조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투쟁 전선 구축과 조직화는 하나의 전략이다
노조의 당연한 활동인 일상적 조직화 사업과는 다른 의미에서 전략 조직화 사업 등으로 불리는 대규모 조직화 사업은 2000년대 초반 노동운동 재활성화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서비스노조(SEIU)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한 조직화 모델 중심의 노동운동이 대표적이다. 조직 노동자의 교섭 중심이 아니라 신규 조합원 조직화를 중심으로 사업을 배치해야 조직 전반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서비스노조는 동부 지역 건물 청소노동자 조직화 운동, 서부 지역 재가요양보호사 조직화 운동 등을 통해 큰 조직 성장을 이뤄냈으며 이 과정에서 예전에는 미국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강화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의 민주노조운동을 살펴보면 신규 조직된 노동조합이 노동운동 전반에 활력을 가져다 준 경우를 다수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조직된 화물연대노조, 완성차 사내하청노조, 이랜드 일반노조, 최근의 대학 청소노동자 등이 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놓고 본다면 신규 노조 조직화, 노동운동 재활성화, 노동운동 영향력 확대, 노조 조직화 확대라는 선순환은 아직까지 성공적이지 않아 보인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진행된 신규 노조 조직화는 기존 정규직 조직 노동운동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채 각개격파 되기 일쑤였고, 종종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 간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노조 조직률은 2000년대에도 계속 하락하여 작년에는 두 자리 수 조직률마저 무너졌다. 전략조직화 사업의 가장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미국 노동운동 역시 전반적으로는 노조 조직률 하락을 막지 못했다.
사실 노조 조직화는 계급투쟁의 결과 중 하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년 넘게 계속 하락 중인 노조 조직률은 90년대 이후 계속된 계급투쟁의 패배를 반영한다. 민주노조 운동은 그 시작부터 현재까지 조직화를 강조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2000년대에는 전략 조직화라는 이름으로 자원 집중을 통한 대규모 조직화까지도 시도해보았지만 민주노조 운동의 계속된 패배는 조직화 노력만으로는 반전을 도모하기 쉽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조직화 전략은 독립된 사업이 아니라 전국적, 산업적 투쟁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계급 역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국적, 산업적 투쟁과 투쟁의 성과를 노조 성장으로 수렴시킬 수 있는 조직화 전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와 금속노조, 조직화 전략은 재벌 대기업에 대한 중요한 투쟁
투쟁 전선과 조직화 사업을 하나의 틀에서 생각한다면 금속노조 7기 집행부가 조직화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경제 위기 정세다. 2008년 경제위기가 올해 다시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로 나타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세계 경제 위기는 점점 더 빠른 주기로, 점점 더 강한 강도로 발발하고 있다.
사실 금속노조의 전략 사업은 지난 몇 년간 산별교섭 쟁취에 집중되었다. 5기 집행부 평가와 6기 집행부 건설 과정에서 한국형 산별 등의 이름으로 기존 산별 전략에 대한 수정론이 여럿 제시되었지만, 최근까지 중앙교섭은 업종, 특성에 따른 다중 교섭과 패턴 교섭으로, 기업지부 편제는 기업지부 해소 유예와 공동 사업비 신설로 정리되고 있다. 교섭 전략, 조직 편제 전략 양자 모두 사실상 별다른 진전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핵심 원인은 결국 산별노조가 중앙교섭의 키를 쥐고 있는 재벌 대기업 노사 관계에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지금까지와 같이 재벌 대기업 지부(또는 지회)의 투쟁만 바라보는 방식으로는 교섭과 조직편제 모두 현 상황을 타개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세계경제위기라는 조건은 기존 지형을 근본적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경기 변동에 따른 일시적 고용 임금 충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축적 체계의 근본적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이후 이윤율 상승 국면에서의 자본 축적 방식과 계급투쟁 형태가 전형적인 서유럽 산별노조를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80년대 이래 이윤율 하락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계급 투쟁의 지속적 패배가 노동조합의 실리주의화와 분권화를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자본의 변화, 계급투쟁의 변화는 노동운동 노선, 노동운동의 힘에 근본적 영향을 미친다. 결국 금속노조의 전략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 자본주의의 극단적 불안정성과 저임금 노동통제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등장이라는 현 자본주의 변화가 어떻게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칠지 자세하게 바라보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세와 무관한 관성적 전략은 실현되기 어렵다.
경제위기 정세는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노동 대 재벌 대기업의 전면전 정세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위기 정책은 재벌들의 수출을 지원하는 것 이상의 내용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조세감면, 고용지원, 임금 억제, 전후방 지원시설 구축, 노사 관계 관리, 환율 관리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의 중심에 재벌 수출을 둔다. 무역수지부터 발생하는 한국 외환위기 특성 상 이것이 핵심이다. 그 결과 전자, 자동차, 조선, 화학, 철강 등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재벌 대기업은 언제나 경제 위기에는 국민경제를 수탈하며 더욱 크게 성장해 왔다.
하지만 기업별 노조가 산별노조로 융합하지 못한 현재 상태에서는 당위만으로 재벌 대기업 기업 지부(또는 지회)에 대한 산별 노조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에 곤란함이 있다. 바로 이것이 현재 금속노조가 정세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핵심 이유이며, 결국 타개책도 이에 대한 해법일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 조직화 사업은 이러한 점에서 막연하게 조직의 규모를 늘린다는 의미보다도 정세적 의미, 경제위기 정세 하에서 재벌 대기업에 대한 산별노조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재벌 대기업 포위 전략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지부들을 혁신하여 산별 노조에 좀 더 강하게 융합할 수 있도록 하고, 많다고는 하지만 산업적 차원에서 보자면 여전히 20% 내외에 불과한 100인 이상 자동차부품사 조직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조직화 사업, 지금 역량으로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봐야 한다
금속노조(연맹)는 양적 축소, 한국 제조업의 핵심 산업인 전자, 조선 등에서 대형사업장 상실, 중소기업 조직률 하락 등을 지난 10년간 겪었다. 금속노조(연맹)의 이러한 변화는 한국 제조업의 초국적기업화, 해외생산 확대 등을 통한 탈생산화, 재벌 대기업 중심의 산업 지배력 확대와 중소영세사업장의 교섭력 약화와 궤를 같이 한다.
[표 1] 2000년 금속연맹과 2011년 금속노조 조합원 증감
2000년 2011년(증감율)
조합원 총수 17만6천 14만 (21%↓)
산업별 자동차 9만9천 11만6천 (17%↑)
일반기계 2만8천 1만3천 (54%↓)
조선 3만5천 5천 (86% ↓)
전자 9천4백 3천2백 (66%↓)
철강 3천6백 5천6백 (55%↑)
비정규직 수백여 6천
중소사업장조합원 2만6천 1만5천(43%↓)
중소사업장비중 15% 11%
자료: 금속연맹 조직현황(2000), 금속노조 조직현황(2011)에서 재구성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동차가 2000년 9만9천 명에서 2011년 11만6천 명으로 1만7천 명 증가했다. 완성차는 7만5천 명에서 8만7천 명 으로 1만2천 명이 늘었고, 부품사는 2만4천 명에서 2만9천 명으로 5천여 명 증가했다. 조선은 3만5천 명에서 5천 명으로 3만 명이 감소했다. 일반기계는 2000년 2만8천 명에서 2011년 1만3천 명으로 1만5천 명이 줄었고, 전자전기는 9천4백 명에서 3천2백 명으로 6천2백여 명이 줄었다. 철강은 2000년 3천6백 명에서 2011년 5천6백 명으로 2천 명 늘었다.
자동차 부분의 조직 확대는 완성차 4사 노조와 핵심 부품사 노조들의 투쟁이 상대적으로 그럭저럭 조직을 유지하여 미조직 핵심 부품사들을 여러 정세적 계기(예를 들면 법정노동시간단축 등)를 통해 조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2000년대 초부터 힘을 기울인 사내하청 조직화가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산업에서는 산업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노조들이 금속노조를 탈퇴하거나, 폐업 등으로 노조가 해산되며 사실상 조직화를 방치한 결과 노조 조직률이 급락 또는 정체되었다.
지난 10년간 금속의 경험과 산업적 강점으로 보면 재벌 대기업에 대한 투쟁에서 여전히 자동차 산업이 핵심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국의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는 5천6백여 개 사업장 약 18만이고, 이중 100인 이상 사업장은 350여개 사업장 7만 5천여 명 규모이다. 금속노조 부품사 조합원 2만 9천여 명 대부분은 100인 이상 사업장인 것을 감안하면 100인 이상 중대형 부품사들에 대한 조직율은 40% 내외다.
공단은 경제위기가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곳, 조건에 맞는 전략적 선택이 중요하다
지난 몇 년간 금속노조 조직화의 한 축은 공단 조직화였다. 한국에는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40개의 국가산업단지와 6개의 자유무역지역, 6개의 첨단산업단지가 있고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347개의 일반산업단지, 10개의 외국인투자지역, 396개의 농공단지가 존재한다. 이곳의 약 6만 개 기업이 145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단에는 300인 미만 중소사업장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공단은 한국 제조업의 골간을 이룬다.
하지만 이들 공단은 재벌 중심의 산업 체계에서 가장 많은 수탈을 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공급 사슬의 맨 밑바닥에 위치한 기업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경제위기가 미친 영향을 보면 이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경제위기 기간 재벌 대기업들은 창사 이래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반대로 공단의 많은 중소기업들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표 2] 주요 산단의 300인 미만 기업 중 영업적자 기업 비중
2007년 2008년 2009년
서울디지털 0.2% 21.9% 17.7%
반월시화 0.1% 17.2% 15.9%
인천남동 0.0% 13.0% 10.3%
광주첨단 0.0% 19.9% 21.2%
전남대불 0.0% 16.7% 23.0%
구미 0.0% 15.4% 21.9%
창원 0.1% 6.8% 8.4%
자료: 통계청 광업제조업조사 각년도에서 재구성
주요 산업단지의 중소기업들은 경제위기가 한참이던 2009년 영업적자를 내는 기업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열악한 재무 상황에서 생산을 하는 중소 제조업 기업들은 한 두 해만 적자가 나도 바로 부도 상태로 내몰린다. 아직 2010년 자료가 발표되지 않아 경제위기 이후 상황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재벌 대기업들의 비용 관리 정책이 작년에도 이어진 점을 생각해보면 2009년에 비해 크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경제위기가 더욱 가혹한 형태로 한국에서 진행된다면 이 지역에서의 조직화 사업은 그야말로 해고와 임금삭감 등 매우 불안정한 노동시장 상태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역노조, 산업노조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별 지불 능력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현재 노동운동이 얼마만큼 객관적 악조건을 뚫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 할 것이다. 대공장 조직화를 통한 연쇄 조직화 효과, 대규모로 밀집되어 있는 생산직 중심 조직화 등 예전의 조직화 패턴이 통용되기 힘든 조건이 더욱 커지고 있고, 지역 노조(공단 노조) 형태의 조직화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으나, 교섭 대상을 만드는 것이나 현실적인 노동조건 개선을 달성하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금속노조는 규모를 근거로 대형 국가산업단지 중심으로 조직화 대상을 선정하기보다는 이른바 노른자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중소규모 지방산단, 농공산단, 지역에 개별입지 대공장들 등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8년 전후 경주 외동 농공산단과 인근 개별입지 기업들에서의 집중 조직화는 중요한 사례다.
사내하청, 경제위기 시기의 고용 방파제에서 재벌 대기업 투쟁의 선봉으로
사내하청 조직화 사업은 일상적인 조직화 사업으로 계속 진행해야 한다. 원청에 민주노조가 건실하게 있는 노조는 한국지엠 등 몇 개 사업장을 제외하면 추가 대규모 조직은 쉽지 않다. 사내하청노동자가 밀집되어 있는 조선산업의 경우 현재 원청 노조가 사실상 현장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고, 전자산업은 아예 민주노조가 없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완성차 공장 외에 사내하청노동자가 300인 이상 존재하는 대형 제조업 사업장은 101개 사업장이고, 총 사내하청 노동자는 16만2천여 명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경제위기로 인한 생산량 감소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2009년에도 정규직 전환배치부터 일부 공정 폐쇄에 이르기까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고용에 직접적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규직과 직접적 갈등을 겪었다. 사내하청 조직화는 이러한 인력 감축 과정에서 산별노조가 기업 수준의 일자리 경쟁을 넘어서 투쟁을 조직하고 대책을 수립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표 3] 사내하청 300인 이상 사업장
성공적 조직화 전략의 특징은 조직 전체의 사업과 기풍을 투쟁과 조직화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어 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직화 전략의 핵심은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더불어 기존 노조를 새롭게 ‘재조직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면 미국서비스노조는 해고자 또는 업종 변경하는 현장 노동자들을 적게는 40여 명, 많게는 200여 명까지 노조가 직접 채용해 2주~3개월 가까이 집중 훈련을 한 뒤에 전략 조직화가 필요한 현장으로 투입하는 ‘조직화 실천단’을 상시적으로 운영하는데, 이는 막대한 재정과 헌신적 조직 활동가들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서비스노조는 이러한 실천단을 운영하기 위해 조직 전반의 사업구조와 집행구조를 지난 십 수년간 바꾸어 왔다. 많은 조직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었으나, 지도부가 수년 간의 토론을 통해 이들을 설득하고, 새롭게 조직된 노동자들을 통해 조직의 활기를 불어 넣으며 조직화 사업의 중요성을 조직 노동자에게 입증해 왔다.
즉 조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노조 사업 기풍과 노선에 대해 먼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말’만 난무하는 조직화 사업이 되기 쉽다. 7기 금속노조의 조직화 사업은 정세적 투쟁부터 미조직 노동자 조직에 이르기까지 내부를 혁신하는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투쟁 전선 구축과 조직화는 하나의 전략이다
노조의 당연한 활동인 일상적 조직화 사업과는 다른 의미에서 전략 조직화 사업 등으로 불리는 대규모 조직화 사업은 2000년대 초반 노동운동 재활성화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서비스노조(SEIU)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한 조직화 모델 중심의 노동운동이 대표적이다. 조직 노동자의 교섭 중심이 아니라 신규 조합원 조직화를 중심으로 사업을 배치해야 조직 전반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서비스노조는 동부 지역 건물 청소노동자 조직화 운동, 서부 지역 재가요양보호사 조직화 운동 등을 통해 큰 조직 성장을 이뤄냈으며 이 과정에서 예전에는 미국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강화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의 민주노조운동을 살펴보면 신규 조직된 노동조합이 노동운동 전반에 활력을 가져다 준 경우를 다수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조직된 화물연대노조, 완성차 사내하청노조, 이랜드 일반노조, 최근의 대학 청소노동자 등이 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놓고 본다면 신규 노조 조직화, 노동운동 재활성화, 노동운동 영향력 확대, 노조 조직화 확대라는 선순환은 아직까지 성공적이지 않아 보인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진행된 신규 노조 조직화는 기존 정규직 조직 노동운동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채 각개격파 되기 일쑤였고, 종종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 간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노조 조직률은 2000년대에도 계속 하락하여 작년에는 두 자리 수 조직률마저 무너졌다. 전략조직화 사업의 가장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미국 노동운동 역시 전반적으로는 노조 조직률 하락을 막지 못했다.
사실 노조 조직화는 계급투쟁의 결과 중 하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년 넘게 계속 하락 중인 노조 조직률은 90년대 이후 계속된 계급투쟁의 패배를 반영한다. 민주노조 운동은 그 시작부터 현재까지 조직화를 강조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2000년대에는 전략 조직화라는 이름으로 자원 집중을 통한 대규모 조직화까지도 시도해보았지만 민주노조 운동의 계속된 패배는 조직화 노력만으로는 반전을 도모하기 쉽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조직화 전략은 독립된 사업이 아니라 전국적, 산업적 투쟁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계급 역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국적, 산업적 투쟁과 투쟁의 성과를 노조 성장으로 수렴시킬 수 있는 조직화 전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와 금속노조, 조직화 전략은 재벌 대기업에 대한 중요한 투쟁
투쟁 전선과 조직화 사업을 하나의 틀에서 생각한다면 금속노조 7기 집행부가 조직화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경제 위기 정세다. 2008년 경제위기가 올해 다시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로 나타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세계 경제 위기는 점점 더 빠른 주기로, 점점 더 강한 강도로 발발하고 있다.
사실 금속노조의 전략 사업은 지난 몇 년간 산별교섭 쟁취에 집중되었다. 5기 집행부 평가와 6기 집행부 건설 과정에서 한국형 산별 등의 이름으로 기존 산별 전략에 대한 수정론이 여럿 제시되었지만, 최근까지 중앙교섭은 업종, 특성에 따른 다중 교섭과 패턴 교섭으로, 기업지부 편제는 기업지부 해소 유예와 공동 사업비 신설로 정리되고 있다. 교섭 전략, 조직 편제 전략 양자 모두 사실상 별다른 진전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핵심 원인은 결국 산별노조가 중앙교섭의 키를 쥐고 있는 재벌 대기업 노사 관계에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지금까지와 같이 재벌 대기업 지부(또는 지회)의 투쟁만 바라보는 방식으로는 교섭과 조직편제 모두 현 상황을 타개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세계경제위기라는 조건은 기존 지형을 근본적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경기 변동에 따른 일시적 고용 임금 충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축적 체계의 근본적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이후 이윤율 상승 국면에서의 자본 축적 방식과 계급투쟁 형태가 전형적인 서유럽 산별노조를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80년대 이래 이윤율 하락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계급 투쟁의 지속적 패배가 노동조합의 실리주의화와 분권화를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자본의 변화, 계급투쟁의 변화는 노동운동 노선, 노동운동의 힘에 근본적 영향을 미친다. 결국 금속노조의 전략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 자본주의의 극단적 불안정성과 저임금 노동통제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등장이라는 현 자본주의 변화가 어떻게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칠지 자세하게 바라보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세와 무관한 관성적 전략은 실현되기 어렵다.
경제위기 정세는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노동 대 재벌 대기업의 전면전 정세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위기 정책은 재벌들의 수출을 지원하는 것 이상의 내용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조세감면, 고용지원, 임금 억제, 전후방 지원시설 구축, 노사 관계 관리, 환율 관리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의 중심에 재벌 수출을 둔다. 무역수지부터 발생하는 한국 외환위기 특성 상 이것이 핵심이다. 그 결과 전자, 자동차, 조선, 화학, 철강 등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재벌 대기업은 언제나 경제 위기에는 국민경제를 수탈하며 더욱 크게 성장해 왔다.
하지만 기업별 노조가 산별노조로 융합하지 못한 현재 상태에서는 당위만으로 재벌 대기업 기업 지부(또는 지회)에 대한 산별 노조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에 곤란함이 있다. 바로 이것이 현재 금속노조가 정세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핵심 이유이며, 결국 타개책도 이에 대한 해법일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 조직화 사업은 이러한 점에서 막연하게 조직의 규모를 늘린다는 의미보다도 정세적 의미, 경제위기 정세 하에서 재벌 대기업에 대한 산별노조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재벌 대기업 포위 전략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지부들을 혁신하여 산별 노조에 좀 더 강하게 융합할 수 있도록 하고, 많다고는 하지만 산업적 차원에서 보자면 여전히 20% 내외에 불과한 100인 이상 자동차부품사 조직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조직화 사업, 지금 역량으로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봐야 한다
금속노조(연맹)는 양적 축소, 한국 제조업의 핵심 산업인 전자, 조선 등에서 대형사업장 상실, 중소기업 조직률 하락 등을 지난 10년간 겪었다. 금속노조(연맹)의 이러한 변화는 한국 제조업의 초국적기업화, 해외생산 확대 등을 통한 탈생산화, 재벌 대기업 중심의 산업 지배력 확대와 중소영세사업장의 교섭력 약화와 궤를 같이 한다.
[표 1] 2000년 금속연맹과 2011년 금속노조 조합원 증감
2000년 2011년(증감율)
조합원 총수 17만6천 14만 (21%↓)
산업별 자동차 9만9천 11만6천 (17%↑)
일반기계 2만8천 1만3천 (54%↓)
조선 3만5천 5천 (86% ↓)
전자 9천4백 3천2백 (66%↓)
철강 3천6백 5천6백 (55%↑)
비정규직 수백여 6천
중소사업장조합원 2만6천 1만5천(43%↓)
중소사업장비중 15% 11%
자료: 금속연맹 조직현황(2000), 금속노조 조직현황(2011)에서 재구성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동차가 2000년 9만9천 명에서 2011년 11만6천 명으로 1만7천 명 증가했다. 완성차는 7만5천 명에서 8만7천 명 으로 1만2천 명이 늘었고, 부품사는 2만4천 명에서 2만9천 명으로 5천여 명 증가했다. 조선은 3만5천 명에서 5천 명으로 3만 명이 감소했다. 일반기계는 2000년 2만8천 명에서 2011년 1만3천 명으로 1만5천 명이 줄었고, 전자전기는 9천4백 명에서 3천2백 명으로 6천2백여 명이 줄었다. 철강은 2000년 3천6백 명에서 2011년 5천6백 명으로 2천 명 늘었다.
자동차 부분의 조직 확대는 완성차 4사 노조와 핵심 부품사 노조들의 투쟁이 상대적으로 그럭저럭 조직을 유지하여 미조직 핵심 부품사들을 여러 정세적 계기(예를 들면 법정노동시간단축 등)를 통해 조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2000년대 초부터 힘을 기울인 사내하청 조직화가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산업에서는 산업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노조들이 금속노조를 탈퇴하거나, 폐업 등으로 노조가 해산되며 사실상 조직화를 방치한 결과 노조 조직률이 급락 또는 정체되었다.
지난 10년간 금속의 경험과 산업적 강점으로 보면 재벌 대기업에 대한 투쟁에서 여전히 자동차 산업이 핵심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국의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는 5천6백여 개 사업장 약 18만이고, 이중 100인 이상 사업장은 350여개 사업장 7만 5천여 명 규모이다. 금속노조 부품사 조합원 2만 9천여 명 대부분은 100인 이상 사업장인 것을 감안하면 100인 이상 중대형 부품사들에 대한 조직율은 40% 내외다.
공단은 경제위기가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곳, 조건에 맞는 전략적 선택이 중요하다
지난 몇 년간 금속노조 조직화의 한 축은 공단 조직화였다. 한국에는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40개의 국가산업단지와 6개의 자유무역지역, 6개의 첨단산업단지가 있고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347개의 일반산업단지, 10개의 외국인투자지역, 396개의 농공단지가 존재한다. 이곳의 약 6만 개 기업이 145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단에는 300인 미만 중소사업장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공단은 한국 제조업의 골간을 이룬다.
하지만 이들 공단은 재벌 중심의 산업 체계에서 가장 많은 수탈을 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공급 사슬의 맨 밑바닥에 위치한 기업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경제위기가 미친 영향을 보면 이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경제위기 기간 재벌 대기업들은 창사 이래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반대로 공단의 많은 중소기업들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표 2] 주요 산단의 300인 미만 기업 중 영업적자 기업 비중
2007년 2008년 2009년
서울디지털 0.2% 21.9% 17.7%
반월시화 0.1% 17.2% 15.9%
인천남동 0.0% 13.0% 10.3%
광주첨단 0.0% 19.9% 21.2%
전남대불 0.0% 16.7% 23.0%
구미 0.0% 15.4% 21.9%
창원 0.1% 6.8% 8.4%
자료: 통계청 광업제조업조사 각년도에서 재구성
주요 산업단지의 중소기업들은 경제위기가 한참이던 2009년 영업적자를 내는 기업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열악한 재무 상황에서 생산을 하는 중소 제조업 기업들은 한 두 해만 적자가 나도 바로 부도 상태로 내몰린다. 아직 2010년 자료가 발표되지 않아 경제위기 이후 상황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재벌 대기업들의 비용 관리 정책이 작년에도 이어진 점을 생각해보면 2009년에 비해 크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경제위기가 더욱 가혹한 형태로 한국에서 진행된다면 이 지역에서의 조직화 사업은 그야말로 해고와 임금삭감 등 매우 불안정한 노동시장 상태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역노조, 산업노조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별 지불 능력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현재 노동운동이 얼마만큼 객관적 악조건을 뚫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 할 것이다. 대공장 조직화를 통한 연쇄 조직화 효과, 대규모로 밀집되어 있는 생산직 중심 조직화 등 예전의 조직화 패턴이 통용되기 힘든 조건이 더욱 커지고 있고, 지역 노조(공단 노조) 형태의 조직화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으나, 교섭 대상을 만드는 것이나 현실적인 노동조건 개선을 달성하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금속노조는 규모를 근거로 대형 국가산업단지 중심으로 조직화 대상을 선정하기보다는 이른바 노른자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중소규모 지방산단, 농공산단, 지역에 개별입지 대공장들 등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8년 전후 경주 외동 농공산단과 인근 개별입지 기업들에서의 집중 조직화는 중요한 사례다.
사내하청, 경제위기 시기의 고용 방파제에서 재벌 대기업 투쟁의 선봉으로
사내하청 조직화 사업은 일상적인 조직화 사업으로 계속 진행해야 한다. 원청에 민주노조가 건실하게 있는 노조는 한국지엠 등 몇 개 사업장을 제외하면 추가 대규모 조직은 쉽지 않다. 사내하청노동자가 밀집되어 있는 조선산업의 경우 현재 원청 노조가 사실상 현장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고, 전자산업은 아예 민주노조가 없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완성차 공장 외에 사내하청노동자가 300인 이상 존재하는 대형 제조업 사업장은 101개 사업장이고, 총 사내하청 노동자는 16만2천여 명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경제위기로 인한 생산량 감소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2009년에도 정규직 전환배치부터 일부 공정 폐쇄에 이르기까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고용에 직접적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규직과 직접적 갈등을 겪었다. 사내하청 조직화는 이러한 인력 감축 과정에서 산별노조가 기업 수준의 일자리 경쟁을 넘어서 투쟁을 조직하고 대책을 수립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표 3] 사내하청 300인 이상 사업장
성공적 조직화 전략의 특징은 조직 전체의 사업과 기풍을 투쟁과 조직화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어 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직화 전략의 핵심은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더불어 기존 노조를 새롭게 ‘재조직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면 미국서비스노조는 해고자 또는 업종 변경하는 현장 노동자들을 적게는 40여 명, 많게는 200여 명까지 노조가 직접 채용해 2주~3개월 가까이 집중 훈련을 한 뒤에 전략 조직화가 필요한 현장으로 투입하는 ‘조직화 실천단’을 상시적으로 운영하는데, 이는 막대한 재정과 헌신적 조직 활동가들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서비스노조는 이러한 실천단을 운영하기 위해 조직 전반의 사업구조와 집행구조를 지난 십 수년간 바꾸어 왔다. 많은 조직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었으나, 지도부가 수년 간의 토론을 통해 이들을 설득하고, 새롭게 조직된 노동자들을 통해 조직의 활기를 불어 넣으며 조직화 사업의 중요성을 조직 노동자에게 입증해 왔다.
즉 조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노조 사업 기풍과 노선에 대해 먼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말’만 난무하는 조직화 사업이 되기 쉽다. 7기 금속노조의 조직화 사업은 정세적 투쟁부터 미조직 노동자 조직에 이르기까지 내부를 혁신하는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