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강점에 맞서다
제주 군사기지 저지 범도민 대책위원회 오영덕 공동대표를 만나다
강정이 뜨겁다. 정부가 2007년 6월 제주 해군기지를 서귀포 강정마을 해안에 건설하기로 결정한 후 4년이 넘도록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는 해군기지 건설에 반발해 싸우고 있다. 주민들은 매일 밤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천주교 신부들의 공사 강행 저지를 위한 연좌농성과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평화미사를 비롯해 종교단체들의 종교행사도 이어지고 있다. 한진 중공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희망버스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한 ‘희망 비행기’로 확대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강정 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해군의 입장은 단호하다. 지난 10월 6일 해군은 강정마을 해안의 구럼비 바위에서 여섯 차례 시험 발파를 진행했고, 발파에 항의하던 활동가들을 모두 연행했다. 다음 날에는 발파 지역에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구럼비 바위는 전문가들이 제주도에 ‘문화재 가지정’을 요청할 정도로 민속학적,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2009년 12월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이 제주도의회에서 통과되었지만, 2011년 3월 도의회가 절대보전지역 변경(해제) 등의 취소를 의결한 상태라 구럼비는 다시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에 대한 폭력적 탄압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이후 올 8월까지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하여 134명이 공무집행방해, 공용물손상, 집시법 위반 등으로 사법 처리되었고, 이 중 4명은 구속되었다. 이외에도 총 73명의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이 주거침입, 폭행,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고발되었다. 10월 초에는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매일 아침 구럼비 바위까지 헤엄쳐 가 기도를 하던 종교인을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바다 한 가운데서 세 차례에 걸쳐 20-30초간 물속에 빠뜨리고 오리발을 빼앗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제주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올레 7코스’ 길목을 가로막은 흉물스런 철제 담장 앞에서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과 해군의 폭력적인 탄압으로 매일같이 주민들과 활동가들, 심지어는 신부님들까지 연행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10월 초 강정을 찾아 제주 군사기지저지 범도민 대책위원회(이하 군사기지 범대위) 오영덕 공동대표를 만났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
오영덕 대표는 제주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기도 하다. 환경단체 활동가로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단체로서 사업 처음부터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했기에 이 투쟁에 나서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 앞바다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생물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곳이다. 천연기념물 442호인 ‘연산호’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는 ‘붉은발 말똥게’의 대규모 서식지이기도 하다. 또한 제주도개발 특별법 상 ‘절대 보전지역’으로 선정된 곳이기 때문에 건축물의 건축, 시설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공유수면의 매립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2007년 8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진행된 사전환경성 검토가 부실하다는 비판이 일자 환경부는 관계행정기관과 찬반 양측에서 각각 추천한 조사기관, 주민대표, 전문가 등의 협으로 2009년 2월 9일부터 2월 25일까지 공통생태계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해군본부에 추가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해군본부는 반대 측에서 추천한 조사기관을 통해 2009년 6월 추가 조사를 실시했고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환경부 주관으로 수행된 공동생태계 조사에서 연산호 분포 사실이 확인되어 전문가들은 계절별 조사가 필요하며 다양한 어류가 출현하는 7-9월에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해군은 6월에만 추가조사를 진행한 채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또 사전 환경영향평가에서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붉은발 말똥게’와 ‘맹꽁이’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빠졌다. 제주도는 보완평가서 작성에서 붉은발 말똥게 서식을 반영하여 대책을 제시했다고 하지만, 근래에도 ‘제주새뱅이’ 등 멸종위기 후보종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그만큼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진행된 것이다.
제주도에는 군사기지 필요없다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도 문제지만, 제주에 군사기지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환경단체 활동가로서의 입장을 넘어서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환경 문제, 절차 문제와 함께 제주도에 건설되는 군사기지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해군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1>국가안보 측면에서 북한의 도발 억제와 해양영토 보호 등 해군 함정의 활동 보장, 2>국가경제와 전략적 측면에서 남방해역 해상교통로와 풍부한 해저자원 확보, 3>해군 작전 측면에서 제주 남방해역 보호와 해상 교통로 확보를 위한 해군함정의 군수 지원 등 세 가지다.
그러나 북한과 가장 거리가 먼 제주도에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해군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해군기지 위치 선정의 원칙인 지리적 인접성과 배치된다. 또한 해상교통로 확보와 해저자원 확보는 해군이 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무력으로 해상교역로와 자원을 독점하는 ‘대항해시대’가 아니다. 해군은 말라카 해협 등의 해적 활동을 근거로 들지만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안정화와 함께 이 지역 해적 발생 빈도는 이미 많이 줄어들었다. 또한 말라카 해협에서 발생한 해적 문제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제주에 있는 한국 해군이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해적이 아니라면 해상교통로와 해저자원 문제는 외교와 정치의 영역이지 무력의 영역이 아니다. 이를 빌미로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킨다면 오히려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만 높일 뿐이다.
막 나가는 해군
해군은 공사 강행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SSU는 살인 행위에 가까운 짓을 저지르고, 작은 보트를 이용해 해상시위를 하고 있는 활동가를 물대포를 쏘아 바다에 빠뜨리는 등 민간인에 대한 폭력도 서슴지 않고 있다. 또한 문화재 발굴 조사가 진행되면서 문화재청장이 유선으로 공사 중단을 요구했음에도 해군은 현장 견학조차 거부하고 있다. 오영덕 대표는 이러한 흐름이 ‘해군 측의 조바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올 초 만해도 (해군기지 건설이) 완전히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해군이 공사를 추진해왔다. 그러다가 이 얘기(강정 해군기지 건설)가 점차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한진중공업 문제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슈가 되었다”
“구럼비 바위를 부수고, 폭파하고, 도로를 내는 것이 사실 이미 다 예정되었던 것인데, 외부로 점차 알려지면서 해군이 당황하고 있다. 해군이 나름의 돌파 작전을 쓰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들 힘이 미약했다면 외부로 알려지지도 않고, 큰 이슈가 되지도 않았을 일들이 하나하나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현재 상황은 안타깝지만 큰 그림을 보자면 나쁘지 않은 진행이라고 생각한다.”
해군과 경찰의 폭력적인 행동이 오히려 강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의 정당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기하려던 싸움, 그러나
매일같이 지속되는 해군과 경찰의 폭력과 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과 고소고발. 정말 힘든 상황에서 오영덕 대표는 오히려 이후 투쟁의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지금까지 이 투쟁을 진행해오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를 물었다.
“사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거의 포기한 상태로, 물 건너 간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놓고 있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수면으로 떠오른 건 지난 2001년이다. 제주도 전체로 보자면 꼬박 10년을 끌어 온 사업이고, 강정마을만도 5년째 지역 사회를 휘젓고 있는 문제다. 오랜 세월을 지지부진하게 흘러오면서 제주도민들도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오영덕 대표는 해군이 구럼비 바위에 담장을 설치하기 전까지는 기자회견을 해도 지역 언론조차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애초 강정은 해군기지 건설지가 아니었다. 1993년 말 156차 합동참모회의에서 제주전략기지 신규소요가 결정되고,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제주해군기지 후보지가 검토되었다. 당시 후보지는 화북항, 성산일출봉 근해, 신양리, 화순황, 형제도지역, 모슬포 등으로 강정마을은 포함조차 되지 않았다. 처음 후보지로 선정된 화순은 2002년 제주도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해군은 2005년 위미지역으로 후보지를 변경했다. 그러다 위미에서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해군은 추가 후보지를 검토하게 되는데, 이때 강정이 포함되었다. 더 이상 다른 곳을 찾을 수 없는 해군과 정부는 ‘민군 관광미항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지원금을 들먹이며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였다. 지속된 도민 사회의 혼란 때문에 생긴 피로도, 막대한 지원금이 들어온다는 기대감은 제주도민의 해군기지 반대 여론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찬성 주민들을 이용한 지속적인 유치 강행 작전, 화순이나 위미 지역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할 때와는 다른 도내 여론,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는 투쟁은 점차 고립되고 활력을 잃어 갔다.
“그러다가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될 즈음에 평화 운동가들이 내려오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반전이 되기 시작했다.”
해군기지 건설이 본격화되자 평화 활동가들이 하나둘씩 강정 마을로 모여들었다. 단순히 여행을 하다 구럼비 바위에 반해 강정마을에 눌러 앉아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이도 있다.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이들은 ‘강정마을 100일 순례’를 진행하고 매일 아침 구럼비 바위에서 100배를 진행하면서 주민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강정마을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내기 시작했다. 오영덕 대표는 이들이 비록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활동했다고 강조했다.
“저는 그게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굉장히 큰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와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구럼비 바위가 깨지는 것에 자기 마음이 깨지는 것처럼 아파했다. 이런 분위기가 투쟁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정말로 진정성 있는 싸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진정성이 주변을 감동시키고 투쟁을 확산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정으로, 강정으로
그렇다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 진행되는 공사를 막지 않으면 구럼비 바위를 비롯한 강정마을과 주변 생태계의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 지역은 현재 해군의 공사금지가처분 신청에 묶여 있다. 강동균 마을 회장 등 개인 37명과 5개 단체를 적시하여 위반 시 행위 1회당 200만원 씩의 벌금을 물게 된다. 농성장이 설치된 철제 담장 너머에서는 해군이 감시탑과 감시견, 365도 회전하는 카메라를 세워 감시하고 있다. 오영덕 대표는 말했다.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를 위해 싸워나갈 것이며, 중간에 좌절하거나 꺾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싸움이 현장만이 아니라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적인 여론 형성이 좀 더 적극적으로 되어야 한다. 사회의 많은 분들이 강정 마을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정치적인 해법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희망 버스가 희망 비행기로 옮아가고, 여론의 관심이 강정마을에까지 미치자 정부와 해군은 비행기를 빌려준 항공사를 압박해 비행기 전세를 못하게 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처럼 주민들을 고립시키고 여론 확산을 차단해 투쟁을 고사시키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정부와 군 당국의 이러한 방식에 우리는 어떠한 해답을 갖고 있나. 오영덕 대표는 강정마을에 들어와 농성장을 지키고, 자신의 몸을 차 바퀴에 내던지며 공사 차량을 저지한 평화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투쟁이 이 싸움을 지속하게 만든 밑거름이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평화 활동가들이 벌인 활동들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면, 이 투쟁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강정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은 공사를 빨리 중단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더불어 현재 공사현장 철제 담장을 넘어가고 버티는 투쟁도 분명 필요하다.”
국책사업이 파괴한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서귀포신문이 2009년 9월 2일부터 11일까지 강정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적대감, 우울, 불안, 강박 등 정신적인 이상 소견이 있는 사람이 전체 주민의 75.5%를 차지했으며, 주민 10명 중 4-5명이 정신 건강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전체 주민의 43.9%나 되어 제주도민의 자살 충동 평균치인 8.1%에 비해 5.4배나 높게 나왔다. 신문은 “이같이 집단적인 피해 양상은 국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결정적인 결함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분석했다.
[표 1] 강정마을 주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정신적 피해
[표 2] 강정마을 주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자살 충동의 이유
대규모 국책사업이 시행되는 곳에서는 대부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과 같은 위험 시설을 비롯해 군사기지와 같은 민감한 사안들은 해당 지역의 찬반 갈등을 심각하게 불러일으킨다. 사업이 실시되는 지역의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몇 십 년을 이어온 지역 공동체는 해체되고, 찬반으로 갈려 반목하면서 생긴 상처는 고스란히 남는다. 이는 정부나 지자체가 주는 경제적 보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도 제주도민이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은 다른 어떤 지역에 비해 순하고, 마을에 대한 애착이 크다. 5년 동안 싸우면서 정서적으로 피폐해지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주민들 간의 물리적 충돌은 거의 없다.”
위의 실태조사 결과에서 보듯 5년 동안의 갈등으로 정서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지만 마을 공동체에 대한 애정으로 물리적 충돌을 피하고 있다고 오영덕 대표는 말했다.
그러나 강정마을이 마냥 평화롭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반대 주민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고소고발을 계속하고 있다. 일례로 찬성 측 주민 한 명은 자신의 가게 옥상에 올라가 해군의 폭력적 탄압 모습을 찍은 반대 측 활동가를 고소하기도 했다. 오영덕 대표와의 인터뷰 하루 전에 만난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대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가 찬성 쪽으로 결론이 나건, 반대쪽으로 결론이 나건, 지금 이렇게 갈라져있는 주민들의 관계를 다 복원하고 지역 공동체를 되살려 앞으로의 삶을 같이 꾸려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찬성하는 측이 고소고발을 많이 해도 우리는 고소고발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운동, 강정에서 꽃피다
끝으로 오영덕 대표에게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저는 활동가들에게 말한 만한 자격은 없는데, 이런 운동을 하면서 외부 활동가들로부터 굉장히 많은 자극을 받았다. 생명평화결사나 개척자들 같은 평화 활동가들이 강정에서 열심히 활동했는데, 그들이 찬성 측과 반대 측을 가리지 않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보듬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모습들이 전국에 전해지면서 전국의 평화 활동가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그들은 굉장히 적극적인 투쟁을 펼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포크레인이 들어왔을 때 그 밑으로 들어가서 눕는다는 생각을 우리는 하지 못했다. 이런 것들이 큰 자극이 되었다.”
“제주 지역에서 기존에 해왔던 행태대로만 운동을 해왔던 입장에서는 운동이 시대에 맞게 변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이나 영상을 활용하는 힘,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힘, 자신의 몸을 던지는 적극적인 투쟁. 이것들을 다 품어 안아 보듬어주는 것이 또한 강정마을 주민들의 넉넉함이라고 생각한다. 제주 해군기지가 다양한 형태의 운동들의 장점들이 발현이 되어서 짧은 시간에 한국 사회 주요 이슈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운동이라는 게 살면서 머리 속의 고정된 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벗어나서 창조적이고 적극적으로 발현이 된다면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군의 강점에 맞서는 힘든 싸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굳건하게 싸워가고 있는 강정 사람들. 강정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도 농성장을 지키며 올레길을 지나는 관광객들을 만나 서명을 받고, 공사가 진행되면 몸을 던져 막고, 영상으로 투쟁 상황을 기록하고 있으며, 매일 저녁 모여 촛불을 들고 있다. 오영덕 대표가 ‘변화’라고 언급한 영상과 인터넷, 몸을 던지는 투쟁은 어쩌면 그리 새로운 요소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러한 요소들이 투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강정마을의 투쟁을 살아나게 한 더욱 중요한 요소는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가며 함께 대중투쟁을 일구어 온 주민과 활동가들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강정마을 투쟁을 지켜내고, 제주 군사기지 저지 투쟁의 전국적 확산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반전평화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때다.
그러나 해군의 입장은 단호하다. 지난 10월 6일 해군은 강정마을 해안의 구럼비 바위에서 여섯 차례 시험 발파를 진행했고, 발파에 항의하던 활동가들을 모두 연행했다. 다음 날에는 발파 지역에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구럼비 바위는 전문가들이 제주도에 ‘문화재 가지정’을 요청할 정도로 민속학적,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2009년 12월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이 제주도의회에서 통과되었지만, 2011년 3월 도의회가 절대보전지역 변경(해제) 등의 취소를 의결한 상태라 구럼비는 다시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에 대한 폭력적 탄압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이후 올 8월까지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하여 134명이 공무집행방해, 공용물손상, 집시법 위반 등으로 사법 처리되었고, 이 중 4명은 구속되었다. 이외에도 총 73명의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이 주거침입, 폭행,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고발되었다. 10월 초에는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매일 아침 구럼비 바위까지 헤엄쳐 가 기도를 하던 종교인을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바다 한 가운데서 세 차례에 걸쳐 20-30초간 물속에 빠뜨리고 오리발을 빼앗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제주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올레 7코스’ 길목을 가로막은 흉물스런 철제 담장 앞에서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과 해군의 폭력적인 탄압으로 매일같이 주민들과 활동가들, 심지어는 신부님들까지 연행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10월 초 강정을 찾아 제주 군사기지저지 범도민 대책위원회(이하 군사기지 범대위) 오영덕 공동대표를 만났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
오영덕 대표는 제주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기도 하다. 환경단체 활동가로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단체로서 사업 처음부터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했기에 이 투쟁에 나서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 앞바다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생물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곳이다. 천연기념물 442호인 ‘연산호’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는 ‘붉은발 말똥게’의 대규모 서식지이기도 하다. 또한 제주도개발 특별법 상 ‘절대 보전지역’으로 선정된 곳이기 때문에 건축물의 건축, 시설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공유수면의 매립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2007년 8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진행된 사전환경성 검토가 부실하다는 비판이 일자 환경부는 관계행정기관과 찬반 양측에서 각각 추천한 조사기관, 주민대표, 전문가 등의 협으로 2009년 2월 9일부터 2월 25일까지 공통생태계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해군본부에 추가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해군본부는 반대 측에서 추천한 조사기관을 통해 2009년 6월 추가 조사를 실시했고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환경부 주관으로 수행된 공동생태계 조사에서 연산호 분포 사실이 확인되어 전문가들은 계절별 조사가 필요하며 다양한 어류가 출현하는 7-9월에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해군은 6월에만 추가조사를 진행한 채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또 사전 환경영향평가에서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붉은발 말똥게’와 ‘맹꽁이’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빠졌다. 제주도는 보완평가서 작성에서 붉은발 말똥게 서식을 반영하여 대책을 제시했다고 하지만, 근래에도 ‘제주새뱅이’ 등 멸종위기 후보종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그만큼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진행된 것이다.
제주도에는 군사기지 필요없다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도 문제지만, 제주에 군사기지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환경단체 활동가로서의 입장을 넘어서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환경 문제, 절차 문제와 함께 제주도에 건설되는 군사기지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해군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1>국가안보 측면에서 북한의 도발 억제와 해양영토 보호 등 해군 함정의 활동 보장, 2>국가경제와 전략적 측면에서 남방해역 해상교통로와 풍부한 해저자원 확보, 3>해군 작전 측면에서 제주 남방해역 보호와 해상 교통로 확보를 위한 해군함정의 군수 지원 등 세 가지다.
그러나 북한과 가장 거리가 먼 제주도에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해군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해군기지 위치 선정의 원칙인 지리적 인접성과 배치된다. 또한 해상교통로 확보와 해저자원 확보는 해군이 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무력으로 해상교역로와 자원을 독점하는 ‘대항해시대’가 아니다. 해군은 말라카 해협 등의 해적 활동을 근거로 들지만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안정화와 함께 이 지역 해적 발생 빈도는 이미 많이 줄어들었다. 또한 말라카 해협에서 발생한 해적 문제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제주에 있는 한국 해군이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해적이 아니라면 해상교통로와 해저자원 문제는 외교와 정치의 영역이지 무력의 영역이 아니다. 이를 빌미로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킨다면 오히려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만 높일 뿐이다.
막 나가는 해군
해군은 공사 강행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SSU는 살인 행위에 가까운 짓을 저지르고, 작은 보트를 이용해 해상시위를 하고 있는 활동가를 물대포를 쏘아 바다에 빠뜨리는 등 민간인에 대한 폭력도 서슴지 않고 있다. 또한 문화재 발굴 조사가 진행되면서 문화재청장이 유선으로 공사 중단을 요구했음에도 해군은 현장 견학조차 거부하고 있다. 오영덕 대표는 이러한 흐름이 ‘해군 측의 조바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올 초 만해도 (해군기지 건설이) 완전히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해군이 공사를 추진해왔다. 그러다가 이 얘기(강정 해군기지 건설)가 점차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한진중공업 문제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슈가 되었다”
“구럼비 바위를 부수고, 폭파하고, 도로를 내는 것이 사실 이미 다 예정되었던 것인데, 외부로 점차 알려지면서 해군이 당황하고 있다. 해군이 나름의 돌파 작전을 쓰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들 힘이 미약했다면 외부로 알려지지도 않고, 큰 이슈가 되지도 않았을 일들이 하나하나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현재 상황은 안타깝지만 큰 그림을 보자면 나쁘지 않은 진행이라고 생각한다.”
해군과 경찰의 폭력적인 행동이 오히려 강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의 정당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기하려던 싸움, 그러나
매일같이 지속되는 해군과 경찰의 폭력과 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과 고소고발. 정말 힘든 상황에서 오영덕 대표는 오히려 이후 투쟁의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지금까지 이 투쟁을 진행해오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를 물었다.
“사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거의 포기한 상태로, 물 건너 간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놓고 있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수면으로 떠오른 건 지난 2001년이다. 제주도 전체로 보자면 꼬박 10년을 끌어 온 사업이고, 강정마을만도 5년째 지역 사회를 휘젓고 있는 문제다. 오랜 세월을 지지부진하게 흘러오면서 제주도민들도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오영덕 대표는 해군이 구럼비 바위에 담장을 설치하기 전까지는 기자회견을 해도 지역 언론조차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애초 강정은 해군기지 건설지가 아니었다. 1993년 말 156차 합동참모회의에서 제주전략기지 신규소요가 결정되고,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제주해군기지 후보지가 검토되었다. 당시 후보지는 화북항, 성산일출봉 근해, 신양리, 화순황, 형제도지역, 모슬포 등으로 강정마을은 포함조차 되지 않았다. 처음 후보지로 선정된 화순은 2002년 제주도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해군은 2005년 위미지역으로 후보지를 변경했다. 그러다 위미에서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해군은 추가 후보지를 검토하게 되는데, 이때 강정이 포함되었다. 더 이상 다른 곳을 찾을 수 없는 해군과 정부는 ‘민군 관광미항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지원금을 들먹이며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였다. 지속된 도민 사회의 혼란 때문에 생긴 피로도, 막대한 지원금이 들어온다는 기대감은 제주도민의 해군기지 반대 여론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찬성 주민들을 이용한 지속적인 유치 강행 작전, 화순이나 위미 지역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할 때와는 다른 도내 여론,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는 투쟁은 점차 고립되고 활력을 잃어 갔다.
“그러다가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될 즈음에 평화 운동가들이 내려오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반전이 되기 시작했다.”
해군기지 건설이 본격화되자 평화 활동가들이 하나둘씩 강정 마을로 모여들었다. 단순히 여행을 하다 구럼비 바위에 반해 강정마을에 눌러 앉아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이도 있다.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이들은 ‘강정마을 100일 순례’를 진행하고 매일 아침 구럼비 바위에서 100배를 진행하면서 주민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강정마을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내기 시작했다. 오영덕 대표는 이들이 비록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활동했다고 강조했다.
“저는 그게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굉장히 큰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와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구럼비 바위가 깨지는 것에 자기 마음이 깨지는 것처럼 아파했다. 이런 분위기가 투쟁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정말로 진정성 있는 싸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진정성이 주변을 감동시키고 투쟁을 확산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정으로, 강정으로
그렇다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 진행되는 공사를 막지 않으면 구럼비 바위를 비롯한 강정마을과 주변 생태계의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 지역은 현재 해군의 공사금지가처분 신청에 묶여 있다. 강동균 마을 회장 등 개인 37명과 5개 단체를 적시하여 위반 시 행위 1회당 200만원 씩의 벌금을 물게 된다. 농성장이 설치된 철제 담장 너머에서는 해군이 감시탑과 감시견, 365도 회전하는 카메라를 세워 감시하고 있다. 오영덕 대표는 말했다.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를 위해 싸워나갈 것이며, 중간에 좌절하거나 꺾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싸움이 현장만이 아니라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적인 여론 형성이 좀 더 적극적으로 되어야 한다. 사회의 많은 분들이 강정 마을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정치적인 해법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희망 버스가 희망 비행기로 옮아가고, 여론의 관심이 강정마을에까지 미치자 정부와 해군은 비행기를 빌려준 항공사를 압박해 비행기 전세를 못하게 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처럼 주민들을 고립시키고 여론 확산을 차단해 투쟁을 고사시키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정부와 군 당국의 이러한 방식에 우리는 어떠한 해답을 갖고 있나. 오영덕 대표는 강정마을에 들어와 농성장을 지키고, 자신의 몸을 차 바퀴에 내던지며 공사 차량을 저지한 평화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투쟁이 이 싸움을 지속하게 만든 밑거름이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평화 활동가들이 벌인 활동들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면, 이 투쟁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강정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은 공사를 빨리 중단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더불어 현재 공사현장 철제 담장을 넘어가고 버티는 투쟁도 분명 필요하다.”
국책사업이 파괴한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서귀포신문이 2009년 9월 2일부터 11일까지 강정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적대감, 우울, 불안, 강박 등 정신적인 이상 소견이 있는 사람이 전체 주민의 75.5%를 차지했으며, 주민 10명 중 4-5명이 정신 건강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전체 주민의 43.9%나 되어 제주도민의 자살 충동 평균치인 8.1%에 비해 5.4배나 높게 나왔다. 신문은 “이같이 집단적인 피해 양상은 국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결정적인 결함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분석했다.
[표 1] 강정마을 주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정신적 피해
[표 2] 강정마을 주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자살 충동의 이유
대규모 국책사업이 시행되는 곳에서는 대부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과 같은 위험 시설을 비롯해 군사기지와 같은 민감한 사안들은 해당 지역의 찬반 갈등을 심각하게 불러일으킨다. 사업이 실시되는 지역의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몇 십 년을 이어온 지역 공동체는 해체되고, 찬반으로 갈려 반목하면서 생긴 상처는 고스란히 남는다. 이는 정부나 지자체가 주는 경제적 보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도 제주도민이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은 다른 어떤 지역에 비해 순하고, 마을에 대한 애착이 크다. 5년 동안 싸우면서 정서적으로 피폐해지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주민들 간의 물리적 충돌은 거의 없다.”
위의 실태조사 결과에서 보듯 5년 동안의 갈등으로 정서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지만 마을 공동체에 대한 애정으로 물리적 충돌을 피하고 있다고 오영덕 대표는 말했다.
그러나 강정마을이 마냥 평화롭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반대 주민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고소고발을 계속하고 있다. 일례로 찬성 측 주민 한 명은 자신의 가게 옥상에 올라가 해군의 폭력적 탄압 모습을 찍은 반대 측 활동가를 고소하기도 했다. 오영덕 대표와의 인터뷰 하루 전에 만난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대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가 찬성 쪽으로 결론이 나건, 반대쪽으로 결론이 나건, 지금 이렇게 갈라져있는 주민들의 관계를 다 복원하고 지역 공동체를 되살려 앞으로의 삶을 같이 꾸려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찬성하는 측이 고소고발을 많이 해도 우리는 고소고발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운동, 강정에서 꽃피다
끝으로 오영덕 대표에게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저는 활동가들에게 말한 만한 자격은 없는데, 이런 운동을 하면서 외부 활동가들로부터 굉장히 많은 자극을 받았다. 생명평화결사나 개척자들 같은 평화 활동가들이 강정에서 열심히 활동했는데, 그들이 찬성 측과 반대 측을 가리지 않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보듬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모습들이 전국에 전해지면서 전국의 평화 활동가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그들은 굉장히 적극적인 투쟁을 펼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포크레인이 들어왔을 때 그 밑으로 들어가서 눕는다는 생각을 우리는 하지 못했다. 이런 것들이 큰 자극이 되었다.”
“제주 지역에서 기존에 해왔던 행태대로만 운동을 해왔던 입장에서는 운동이 시대에 맞게 변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이나 영상을 활용하는 힘,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힘, 자신의 몸을 던지는 적극적인 투쟁. 이것들을 다 품어 안아 보듬어주는 것이 또한 강정마을 주민들의 넉넉함이라고 생각한다. 제주 해군기지가 다양한 형태의 운동들의 장점들이 발현이 되어서 짧은 시간에 한국 사회 주요 이슈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운동이라는 게 살면서 머리 속의 고정된 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벗어나서 창조적이고 적극적으로 발현이 된다면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군의 강점에 맞서는 힘든 싸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굳건하게 싸워가고 있는 강정 사람들. 강정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도 농성장을 지키며 올레길을 지나는 관광객들을 만나 서명을 받고, 공사가 진행되면 몸을 던져 막고, 영상으로 투쟁 상황을 기록하고 있으며, 매일 저녁 모여 촛불을 들고 있다. 오영덕 대표가 ‘변화’라고 언급한 영상과 인터넷, 몸을 던지는 투쟁은 어쩌면 그리 새로운 요소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러한 요소들이 투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강정마을의 투쟁을 살아나게 한 더욱 중요한 요소는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가며 함께 대중투쟁을 일구어 온 주민과 활동가들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강정마을 투쟁을 지켜내고, 제주 군사기지 저지 투쟁의 전국적 확산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반전평화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