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저지 투쟁 시즌 3를 예비하며
점점 종영을 향해 가고 있는 한미 FTA 시즌2
매주 토요일 진행되는 한미 FTA반대 범국민대회의 열기가 가라앉고 있다. 날치기 직후인 11월 26일에 열린 주말집회에 2만 명이 결집한 이래로 점점 규모가 줄어, 12월 24일 집회에는 400여 명이 모였다. 지난 한 두 달 간 나름 꾸준히 FTA집회에 참석한 입장에서 김이 안 빠지는 건 아니지만, 이 시점에서 다시 차분히 지난 싸움의 경과를 돌이켜보면서 나름의 개인적 평가를 적어볼까 한다.
귀국 후 현기증
개인적인 이유로 1년 간의 외유 생활을 하고 나서 추석쯤 한국에 돌아왔다. 1년 만에 돌아와보니 역시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전국민이 스마트 폰을 쓰고 카카오톡을 하는 것도 새로웠지만, 정치적인 상황 역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급변해 있었다. 국민참여당은 어느 새 진보정당이 되어 있었고, 선거에서의 단일화는 아예 하나의 ‘공식’으로 굳어졌으며, ‘통합’이라는 단어 없이는 정당 이름 하나 지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정체 모를 해적 방송 하나가 민주주의의 전위투사가 되어 여론을 이끌고 있었다.
FTA가 보이다
현기증 나는 정세를 이렇게 쫓아가다가, 10월 13일 미 의회가 한미 FTA를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안의 중차대함에 비해서 민중운동은 어이 없을 정도로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 2007년 한미 FTA 시즌1 때 모든 기력을 쏟아 부어서였을까? 아니면 모두들 통합과 질서재편에 동분서주하고 있어서일까? 한미 FTA는 그대로 시즌1을 끝으로 주저앉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당선으로 결집한 시민들은 “다음은 FTA!”라며, 시즌2의 주인공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제2의 촛불이 되나?
한나라당의 몇 차례 본회의 통과 시도로, 촛불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페이스북으로만 발을 동동 구르던 나도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사안의 중요함을 반영하듯 많은 회원들도 결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한 역할 분담. 본회의가 열리는 날 낮 집중집회에는 조직대오가, 밤에는 촛불이 주력이 되어 주야 맞교대를 했다. 촛불 여고생, 20~30대 여성이 주축인 인터넷 까페들, 아고라를 넘어 이제 트위터 깃발까지… 2008년 촛불이 재연될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약간의 기대를 머금고 시내에서 하는 첫 주말 집회에 나가봤다. 하지만 대오는 3~4,000 명을 넘지 못했으며, 그마저도 경찰에 둘러 싸여 대한문 앞에 묶여 있었다. 결과적으로 촛불의 열기는 충분치 않았다. 강행처리 의사가 확고한 한나라당. 촛불의 열기는 엉거주춤 눈치 보는 민주당을 압박할 만큼 세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11월 22일, 비준안은 통과되고 말았다.
야권 연대에 갇힌 비준무효 싸움
하지만 비준안이 날치기되고 난 후, 집회대오는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가두시위로 새로운 정치의 공간이 열리면서 11월 26일에는 2만 명이 모였고, 경찰의 봉쇄를 뚫고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하지만 날치기로 모아진 분노도 딱 거기까지였다. 이미 통과된 비준안을 무효화시킬 뚜렷한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의 힘은 모아지지 않았다. 민주노총도 두 차례의 확대간부파업 이상의 흐름을 조직해내지 못하였고, 농민들도 과거와 같은 대규모 상경시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조직대오가 이렇게 무기력한 상황에서, 왜 촛불은 광우병 때만큼 타 오르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FTA라는 사안이 광우병보다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끝내 FTA대세론을 꺾지 못한 탓도 크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2008년 촛불 학습효과 ? 100만이 모여도 MB는 꿈쩍도 안 한다 - 와 <나꼼수>가 설파하는 선거 심판론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선거의 계절을 앞두고 대중들은 시위보다는 투표가 효율적인 정치 수단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FTA집회보다 <나꼼수> 여의도 콘서트에 더 많은 사람들(약 10만 명)이 모인 것도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총선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거리에서 끝장내자는 외침들도 간혹 들리긴 했지만, 집회장은 점점 야당 사전선거운동장을 방불케 하며 맥이 빠지기 시작했다. 정당들은 앞다투어 집회장에서 자신들의 ‘통합 신상품’을 선보였고, 범국본은 다가오는 선거를 의식한 듯 야권 연대를 강조했다. 12월 3일 집회에서는 사회자가 그 전 주 손학규 대표가 봉변 당한 것을 의식해, 아예 노골적으로 특정 정당(민주당)에 대한 야유를 자제해달라고 참가자들에게 부탁하기도 하였다. (물론 착한 시위자들은 순순히 따랐다.) 근데 생각해보면 이게 참 이상하다. 사실 FTA집회에 나와보면 민주당 지지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날치기 직후 잠깐 지구당 깃발까지 들고 나온 적은 있지만, 그것도 한번의 시늉으로 그쳤고, 집회대오에서는 오히려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작태에 대한 분노가 더 큰 편이다. 아니, 오죽했으면 사회자가 야유를 자제해달라고 했겠는가? 이쯤 되면 무엇을 위한 ‘비준무효’이고, ‘야권연대’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우리의 정당한 정치적 분노까지 자제해가며, 대중동원도 못하고, FTA 폐기에 소극적인 민주당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민주당이 집권 후 FTA를 폐기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데다가, 함께 장외 투쟁한다고 해서 투쟁대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민주당까지 포괄하면 투쟁의 외연이 확대되어 힘이 생길 때도 있다. 하지만 FTA의 경우 시민들은 이미 민주당이 날치기 공범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명분으로 보나, 실리로 보나 민주당은 포괄해서 득 될 게 별로 없는 상대였다. 차라리 날치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범국본 단독으로 시민들의 분노를 단단하게 모아내고 급진화시켜서, FTA에 찬성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모든 정치 세력들을 전 방위적으로 압박하는 전술을 택했어야 한다고 본다.
SNS 시대, 간명하고 정확한 정책 자료가 아쉬워
싸움을 하면서 또 하나 아쉬웠던 것은 대국민 여론전이었다. 인터넷 공간과 언론매체들에서 이뤄진 찬반 공방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런데 사안이 워낙 어려워서도 그랬겠지만, 반대측 논거에는 부정확한 얘기도 많이 섞여 있었다. 초기에 떠돌던 민주노동당 명의의 독소조항 웹자보는 오류투성이로 밝혀졌다. (당의 공식자료는 아니었다고 함) 또 정부에서 내놓는 주된 해명 - 주요 공공부문은 ‘유보’시켜 놨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식의 논리 - 에 대한 반대 측의 재반박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명박 골수 반대층은 아랑곳하지 않고 FTA를 반대했지만, FTA가 막연히 대세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중간층은 이러한 혼탁한 지형 때문에 설득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책역량이 뛰어난 사회진보연대에서 대중용/인터넷용으로 정확하고도, 간명한 쟁점소개 자료를 기동적으로 생산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던 어쨌거나 세상은 140자 이내의 트위터 글과 각종 인포그래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새롭게 형성된 SNS 공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촛불과 조직대오 사이
촛불시민과 조직대오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다. 조직대오가 줄기차게 싸워오던 문제에 대해서 촛불시민들이 뒤늦게 합류하여 투쟁이 대중화되는 경우가 과거에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신기해 하면서도 그저 어정쩡하게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번 FTA 싸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쟁에 동참한 촛불시민들과 상호침투를 시도하기 보다, 우리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지 않았나 싶다. 어쩌다가 집회 나오는 평회원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모습이 좀 답답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우리가 나서서 FTA의 문제점에 대해서 보다 심화된 쟁점을 던지거나, 선거심판론으로 기우는 투쟁방향에 대해 비판을 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촛불시민들이 몇 마디 선동이나, 유인물로 단박에 설득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우리의 제한된 역량을 감안했을 때, 집회대오를 상대로 하는 선동이 우리의 주된 활동이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모처럼 계급적인 의제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과 제대로 된 논쟁을 벌여내지 못하면 언제 또 기회가 오겠는가? 앞으로 닥칠 경제위기 시대의 폭발적 투쟁들을 지금부터 제대로 엄호해낼 수 있는 든든한 우군을 조직해내기 위해서라도 이제 갓 사회 문제에 눈뜬 촛불시민들을 가벼이 넘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정치적 언어를 대중적으로 쇄신해내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일반 회원들도 단순히 머릿수 채우는 것 이상의 긴장감 있는 활동이 있을 때, 집회 참가가 더욱 의미 있어 지고, 신명 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미 FTA투쟁 시즌3를 준비하자
지금 FTA투쟁이 일시적인 소강국면을 맞긴 했지만, 투쟁의 성과로 FTA의 반민중성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지반이 형성되기는 하였다. 이제 2012년 투쟁을 예비하면서 FTA투쟁 시즌3를 어떻게 업그레이드된 내용과 형식으로 채워갈 지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먼저 다가오는 총선 국면이 중요한 결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 진영이 먼저 독자성을 유지한 가운데, 기층의 투쟁력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용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독자적인 투쟁대오를 형성해내지 못하면, 이번 FTA투쟁이 야권연대에 빠지면서 보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민주당에게 또 다시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특정 정당, 특정 후보에 얽매이지 않고, FTA폐기라는 분명한 요구를 갖고 외부적인 압박을 가해야 한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참신한 기획들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또한 FTA폐기라는 총론은 표를 의식해야 하는 선거시기에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도 있으므로, FTA와 연관된 세부적인 각론(보건의료, 공공 서비스 민영화 등)까지 포함하는 요구사항들을 정리해내고 쟁점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미 FTA폐기를 위해서 각 정당 혹은 후보가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방안들(당선 후 몇 일 이내 FTA폐기 특별법 제정 등)을 로드맵 형태로 제시하고, 이행을 촉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쪼록 함께 머리를 맞대어 혼탁한 정세를 시원하게 뚫고 나갈 시즌3를 준비해나갔으면 좋겠다.
매주 토요일 진행되는 한미 FTA반대 범국민대회의 열기가 가라앉고 있다. 날치기 직후인 11월 26일에 열린 주말집회에 2만 명이 결집한 이래로 점점 규모가 줄어, 12월 24일 집회에는 400여 명이 모였다. 지난 한 두 달 간 나름 꾸준히 FTA집회에 참석한 입장에서 김이 안 빠지는 건 아니지만, 이 시점에서 다시 차분히 지난 싸움의 경과를 돌이켜보면서 나름의 개인적 평가를 적어볼까 한다.
귀국 후 현기증
개인적인 이유로 1년 간의 외유 생활을 하고 나서 추석쯤 한국에 돌아왔다. 1년 만에 돌아와보니 역시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전국민이 스마트 폰을 쓰고 카카오톡을 하는 것도 새로웠지만, 정치적인 상황 역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급변해 있었다. 국민참여당은 어느 새 진보정당이 되어 있었고, 선거에서의 단일화는 아예 하나의 ‘공식’으로 굳어졌으며, ‘통합’이라는 단어 없이는 정당 이름 하나 지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정체 모를 해적 방송 하나가 민주주의의 전위투사가 되어 여론을 이끌고 있었다.
FTA가 보이다
현기증 나는 정세를 이렇게 쫓아가다가, 10월 13일 미 의회가 한미 FTA를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안의 중차대함에 비해서 민중운동은 어이 없을 정도로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 2007년 한미 FTA 시즌1 때 모든 기력을 쏟아 부어서였을까? 아니면 모두들 통합과 질서재편에 동분서주하고 있어서일까? 한미 FTA는 그대로 시즌1을 끝으로 주저앉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당선으로 결집한 시민들은 “다음은 FTA!”라며, 시즌2의 주인공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제2의 촛불이 되나?
한나라당의 몇 차례 본회의 통과 시도로, 촛불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페이스북으로만 발을 동동 구르던 나도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사안의 중요함을 반영하듯 많은 회원들도 결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한 역할 분담. 본회의가 열리는 날 낮 집중집회에는 조직대오가, 밤에는 촛불이 주력이 되어 주야 맞교대를 했다. 촛불 여고생, 20~30대 여성이 주축인 인터넷 까페들, 아고라를 넘어 이제 트위터 깃발까지… 2008년 촛불이 재연될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약간의 기대를 머금고 시내에서 하는 첫 주말 집회에 나가봤다. 하지만 대오는 3~4,000 명을 넘지 못했으며, 그마저도 경찰에 둘러 싸여 대한문 앞에 묶여 있었다. 결과적으로 촛불의 열기는 충분치 않았다. 강행처리 의사가 확고한 한나라당. 촛불의 열기는 엉거주춤 눈치 보는 민주당을 압박할 만큼 세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11월 22일, 비준안은 통과되고 말았다.
야권 연대에 갇힌 비준무효 싸움
하지만 비준안이 날치기되고 난 후, 집회대오는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가두시위로 새로운 정치의 공간이 열리면서 11월 26일에는 2만 명이 모였고, 경찰의 봉쇄를 뚫고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하지만 날치기로 모아진 분노도 딱 거기까지였다. 이미 통과된 비준안을 무효화시킬 뚜렷한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의 힘은 모아지지 않았다. 민주노총도 두 차례의 확대간부파업 이상의 흐름을 조직해내지 못하였고, 농민들도 과거와 같은 대규모 상경시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조직대오가 이렇게 무기력한 상황에서, 왜 촛불은 광우병 때만큼 타 오르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FTA라는 사안이 광우병보다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끝내 FTA대세론을 꺾지 못한 탓도 크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2008년 촛불 학습효과 ? 100만이 모여도 MB는 꿈쩍도 안 한다 - 와 <나꼼수>가 설파하는 선거 심판론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선거의 계절을 앞두고 대중들은 시위보다는 투표가 효율적인 정치 수단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FTA집회보다 <나꼼수> 여의도 콘서트에 더 많은 사람들(약 10만 명)이 모인 것도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총선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거리에서 끝장내자는 외침들도 간혹 들리긴 했지만, 집회장은 점점 야당 사전선거운동장을 방불케 하며 맥이 빠지기 시작했다. 정당들은 앞다투어 집회장에서 자신들의 ‘통합 신상품’을 선보였고, 범국본은 다가오는 선거를 의식한 듯 야권 연대를 강조했다. 12월 3일 집회에서는 사회자가 그 전 주 손학규 대표가 봉변 당한 것을 의식해, 아예 노골적으로 특정 정당(민주당)에 대한 야유를 자제해달라고 참가자들에게 부탁하기도 하였다. (물론 착한 시위자들은 순순히 따랐다.) 근데 생각해보면 이게 참 이상하다. 사실 FTA집회에 나와보면 민주당 지지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날치기 직후 잠깐 지구당 깃발까지 들고 나온 적은 있지만, 그것도 한번의 시늉으로 그쳤고, 집회대오에서는 오히려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작태에 대한 분노가 더 큰 편이다. 아니, 오죽했으면 사회자가 야유를 자제해달라고 했겠는가? 이쯤 되면 무엇을 위한 ‘비준무효’이고, ‘야권연대’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우리의 정당한 정치적 분노까지 자제해가며, 대중동원도 못하고, FTA 폐기에 소극적인 민주당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민주당이 집권 후 FTA를 폐기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데다가, 함께 장외 투쟁한다고 해서 투쟁대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민주당까지 포괄하면 투쟁의 외연이 확대되어 힘이 생길 때도 있다. 하지만 FTA의 경우 시민들은 이미 민주당이 날치기 공범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명분으로 보나, 실리로 보나 민주당은 포괄해서 득 될 게 별로 없는 상대였다. 차라리 날치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범국본 단독으로 시민들의 분노를 단단하게 모아내고 급진화시켜서, FTA에 찬성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모든 정치 세력들을 전 방위적으로 압박하는 전술을 택했어야 한다고 본다.
SNS 시대, 간명하고 정확한 정책 자료가 아쉬워
싸움을 하면서 또 하나 아쉬웠던 것은 대국민 여론전이었다. 인터넷 공간과 언론매체들에서 이뤄진 찬반 공방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런데 사안이 워낙 어려워서도 그랬겠지만, 반대측 논거에는 부정확한 얘기도 많이 섞여 있었다. 초기에 떠돌던 민주노동당 명의의 독소조항 웹자보는 오류투성이로 밝혀졌다. (당의 공식자료는 아니었다고 함) 또 정부에서 내놓는 주된 해명 - 주요 공공부문은 ‘유보’시켜 놨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식의 논리 - 에 대한 반대 측의 재반박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명박 골수 반대층은 아랑곳하지 않고 FTA를 반대했지만, FTA가 막연히 대세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중간층은 이러한 혼탁한 지형 때문에 설득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책역량이 뛰어난 사회진보연대에서 대중용/인터넷용으로 정확하고도, 간명한 쟁점소개 자료를 기동적으로 생산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던 어쨌거나 세상은 140자 이내의 트위터 글과 각종 인포그래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새롭게 형성된 SNS 공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촛불과 조직대오 사이
촛불시민과 조직대오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다. 조직대오가 줄기차게 싸워오던 문제에 대해서 촛불시민들이 뒤늦게 합류하여 투쟁이 대중화되는 경우가 과거에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신기해 하면서도 그저 어정쩡하게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번 FTA 싸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쟁에 동참한 촛불시민들과 상호침투를 시도하기 보다, 우리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지 않았나 싶다. 어쩌다가 집회 나오는 평회원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모습이 좀 답답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우리가 나서서 FTA의 문제점에 대해서 보다 심화된 쟁점을 던지거나, 선거심판론으로 기우는 투쟁방향에 대해 비판을 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촛불시민들이 몇 마디 선동이나, 유인물로 단박에 설득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우리의 제한된 역량을 감안했을 때, 집회대오를 상대로 하는 선동이 우리의 주된 활동이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모처럼 계급적인 의제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과 제대로 된 논쟁을 벌여내지 못하면 언제 또 기회가 오겠는가? 앞으로 닥칠 경제위기 시대의 폭발적 투쟁들을 지금부터 제대로 엄호해낼 수 있는 든든한 우군을 조직해내기 위해서라도 이제 갓 사회 문제에 눈뜬 촛불시민들을 가벼이 넘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정치적 언어를 대중적으로 쇄신해내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일반 회원들도 단순히 머릿수 채우는 것 이상의 긴장감 있는 활동이 있을 때, 집회 참가가 더욱 의미 있어 지고, 신명 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미 FTA투쟁 시즌3를 준비하자
지금 FTA투쟁이 일시적인 소강국면을 맞긴 했지만, 투쟁의 성과로 FTA의 반민중성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지반이 형성되기는 하였다. 이제 2012년 투쟁을 예비하면서 FTA투쟁 시즌3를 어떻게 업그레이드된 내용과 형식으로 채워갈 지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먼저 다가오는 총선 국면이 중요한 결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 진영이 먼저 독자성을 유지한 가운데, 기층의 투쟁력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용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독자적인 투쟁대오를 형성해내지 못하면, 이번 FTA투쟁이 야권연대에 빠지면서 보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민주당에게 또 다시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특정 정당, 특정 후보에 얽매이지 않고, FTA폐기라는 분명한 요구를 갖고 외부적인 압박을 가해야 한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참신한 기획들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또한 FTA폐기라는 총론은 표를 의식해야 하는 선거시기에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도 있으므로, FTA와 연관된 세부적인 각론(보건의료, 공공 서비스 민영화 등)까지 포함하는 요구사항들을 정리해내고 쟁점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미 FTA폐기를 위해서 각 정당 혹은 후보가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방안들(당선 후 몇 일 이내 FTA폐기 특별법 제정 등)을 로드맵 형태로 제시하고, 이행을 촉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쪼록 함께 머리를 맞대어 혼탁한 정세를 시원하게 뚫고 나갈 시즌3를 준비해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