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1-2.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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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조합원대회 현장 스케치

김혜진 | 노조 페미니즘팀
우리의 삶은 행복한가? 여성노동자의 노동과 삶

정규직에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명랑한 친구 하나가 어느 날 심각한 표정으로 “너네는 삶이 행복해?”라고 물었다. 그 친구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 선배 때문에 직장 생활이 너무나 괴로워 밤마다 마음을 다잡고 출근을 하기 위한 기도를 할 정도란다. 몇 년간의 고생스런 공부 끝에 합격하여 얻은 자랑스러운 직장이었는데, 이제는 출근하는 것 자체가 곤욕이고 심지어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우울하게 자문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다름 아닌 커피 심부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 친구를 괴롭게 하는 직장 선배는 남자 과장님도 아닌, 남자 부장님도 아닌 같은 여직원 선배였다. 둘 간의 갈등의 시작은 사무실 내 커피심부름을 두고 “젊고 어린 네가 해야지!”와 “내가 왜 이런 걸해야 해? 업무도 별로 없는 아줌마가 해야지!”로 요약되는데 그 갈등의 골은 이미 너무 깊어지고 다른 것에까지 확장되어 버려서 “왜 커피 심부름은 여자만 하느냐”는 식상한 질문조차도 던져보기 난감한 상황이라 그저 씁쓸한 마음으로 그 친구의 심난함에 동참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이보다 더 확장되고 다양한 버전으로 여성 노동자 사이의 이해가 서로 상충되거나 갈등 관계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여러 관계들이 존재하고 얽혀있다. 간병비를 아끼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접 할머니 수발을 하고 있는 어머니께 간병 노동자의 저임금과 노동권 문제를 대화의 주제로 꺼내보기는 쉽지 않다. 또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긴 우리 언니는 어린이집에 CCTV가 설치되어 보육 교사와 아이들을 감시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 생각할 수 있고, 퇴근 이후 늦게 장을 봐야 하는 내 친구는 영업시간 연장을 반대하는 마트나 백화점의 여성 노동자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각자의 상황에 따라 권리를 요구할 때 그것이 마치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결국 이 모든 여성들의 해방을 만들어내기 위한 답은 바로 여성 노동자의 연대와 투쟁이다. 그리고 이번 서울 여성조합원 대회는 여성 노동자의 연대와 투쟁을 만들어가기 위해 다른 위치에서 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를 이루어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준비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치러진 서울여성조합원대회는 지난 12월 17일 이화여대 학생 회관에서 막을 열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여는 공연과 이재웅 민주노총 서울본부 본부장의 대회사, 그리고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의 감동적인 연대 공연 이후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든 기획 공연이 이어졌다.

기획공연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다]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해서 만든 이 집체극에서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환자복을 입고 만난 보육노동자, 마트 노동자, 청소 노동자, 급식실 노동자와 간병 노동자, 그리고 그녀들을 간호하는 간호사가 직접 자신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보육 노동자는 “하루 12시간 노동에 월100만원…”, 마트 노동자는 “24시간 영업에 하루 종일 서서 일해 하지정맥류에 불면증…”을 노래했고, 그 때 대걸레로 바닥청소를 하며 등장한 청소 노동자는 읊조리던 대사가 어느새 진짜 울분이 되어 “우리가 없으면 쓰레기가 넘치고 병균이 득실득실 할 텐데 왜 우릴 유령 취급하냐! 아주 몹쓸 놈의 세상이다!”라고 내질러 청중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각기 다른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마주치고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오늘은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서 만나는 모습이었지만 내일은 그녀들이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연대 투쟁 속에서 만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현장노동자들의 발언

다음으로는 현장 노동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한 부모 가장으로서 장애를 가진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다는 한 학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생계와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노동부에서 하는 여성가장 대상 전문 직업 교육을 받아 몬테소리 아동 지도사, 미용사, 텔레마케터 과정을 수료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2급, 보육교사 2급, 장애인활동보조원, 특수아동지도사, 요양보호사,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여전히 12월만 되면 해고 통지가 날아 올까봐 두려움에 떤다”고 했다. 큰 자리에서 발언하는 것이 낯선 그녀는 종이에 미리 하고픈 말을 적어와 차분히 읽어내려 갔는데 그 가운데 그녀가 살기 위해 취득한 수많은 각종 자격증 이름들이 언급되었다. 언젠가 우리 어머니께서 “너도 결혼하고도 일하고 먹고 살려면 이런 거라도 따 놔라”며 몇 번씩 훈계하셨던, 동네 아주머니들과 새댁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그 자격증 이름들이 그녀의 발언 속에서 줄줄이 흘러나왔지만 그 모든 것을 취득하고 아둥바둥 살아온 후 지금 발언대에 선 그녀가 마지막으로 찾은 것은 노동조합이었다. ‘더 이상 해고되지 않고 두려움에 떨지 않겠다, 나와 내 아이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권리를 이제는 스스로 찾아나가겠다’는 그녀와 같이 다른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자격증의 자리를 노동조합과 연대투쟁이 대신하고 어머니에게서 “너도 제대로 먹고 살고 일하고 싶으면 노동조합 가입해라”라는 잔소리를 듣게 될 날은 이미 그러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어왔기 때문에 멀지 않았으리라는 희망도 가져봄직하다. 이어서 발언한 윤명순 공공노조 서경지부 부지부장은 “우리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정말 생활할 수 있고, 먹고 살 수 있는 생활 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집단 교섭과 투쟁으로 시급 인상을 쟁취해가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쥐어주지 않는다”며 여성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만이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는 길이며 이미 그러한 길에 서있다고 자신했다. 유령처럼 존재감 없는 청소 아줌마가 아니라 사회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당당한 여성 노동자로서 그녀들의 목소리가 자신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곳곳을 깨끗이 청소해버리고 있는 것처럼 “여성을 값싸게 부려먹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여성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 침해에 맞서, 우리의 권리를 우리 손으로 되찾기 위해 나설 때” 여성 노동자의 삶은 더욱 살맛나게 될 것이다.

스피드 게임 참여마당과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발언 이후 선물 마구주는 스피드 게임이 참여마당으로 진행됐다. 이어진 노가바(노래가사바꿔부르기)의 가사처럼 “이 세상에 엄마들은 다같은 마음~♪”인가보다. 게임에 참여해 받은 작은 선물 하나로 살림 하나 보탰다며 환하게 퍼지는 웃음꽃이 모두들 귀엽다.

“이 세상의 엄마들은 다 같은 마음 한푼 두푼 벌어서 가정 지키자고
사람으로 알아주는 노조가 있다 힘없는 여성이라 얕보지 마라
세상을 바꾸는 건 여성들이다 얼씨구 절씨구 엄마의 청춘!
단결 투쟁 여성노동자 만세!“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여자, 애정녀

다음 이어진 애정녀(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여자) 코너에서는 “다음 중 성폭력 당해도 되는 여성은 누구냐”면서 ‘① MT에서 술취한 여자, ② 밤길에 만난 섹시한 여자, ③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④ 장애인 여성/아동’의 보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다음중 성희롱, 성폭력해도 되는 남성은 누구냐”며 ‘① 용역업체 사장이나 관리자, ② 국회의원, ③ 장애인 학교 교직원, ④ 믿었던 학교 친구’를 보기로 들어 2011년 한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성희롱, 성폭력 사건들을 재치 있게 조망했다. 애정녀가 말한 대로 이 보기에는 답이 없는 게 답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직 풀지 못한 문제다.

직장성희롱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는 한 후배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날 한 직장 남자 동료가 끈적한 손길로 일에 열중하고 있던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고 지나갔단다. 충격을 받은 이 후배는 며칠 고민 끝에 용기를 내서 평소 자신이 신뢰하던 직장 상사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는데 기대와 달리 그녀에게 돌아온 이야기는 “이 사람이 왜 이래. 사회생활하려면 이러면(그 정도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안돼!”였단다. 또 어느 이른 아침에는 그 후배에게서 분노와 고민이 가득담긴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한통 왔다. 야간 노동을 끝낸 아침 퇴근시간이 되어 통근 버스에 올라타 피곤한 몸을 누이려는데 버스 기사님이 버스 출발 전에 너무도 자연스레 버스 안에서 포르노 비디오를 틀어주더란다. 민망한 건 둘 째 치고 그 내용도 단순히 야한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성적 폭력을 행사하는 끔찍한 내용이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이 너무나 괴로웠단다. 그날은 토요일 아침이었고 이제 퇴근하고 주말에 쉴 생각을 하며 퇴근하는 노동자들에게 포르노를 틀어주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그 순간과 현실이 충격적이고 괴로워 고민에 휩싸인 그녀가 보낸 그 문자 메세지를 보고나니 나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면서도 노동조합이나 다른 어떤 안전장치도 없는 현장에 있는 그녀에게 어떤 위로도 섣불리 하기 어려웠었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현대차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성희롱 사건이 승리로 일단락 됐다는 소식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서울 여성 조합원대회에 참석한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금양물류 성희롱 피해자 대리인(권수정)은 “197일 여성 가족부 앞 농성 투쟁 이후 가해자 해고, 피해자 복직이라는 성과를 내고 피해자는 2월 1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이 싸움은 미친 또라이 같은 남자 하나, 문란하고 나대는 여자 한명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는 게 가장 큰 의미인 것 같다”고 발언하며 이 사건은 바로 여성 노동자 모두의 문제임을 시사했다. “정부도, 자본도 모두 외면할 때 정의로운 시민들과 다른 여성노동자들이 우리를 지지해주었다”면서 “심지어 단 한명의 여성 노동자가 현대자동차와 싸워서 이겼는데 못 이길 다른 싸움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달했다.

여성 노동자 권리 선언문

마지막으로 서울여성조합원대회 공동 기획단과 재능 지부가 함께 여성 노동자 권리 선언문을 낭독하며 이 날의 막을 내렸다. 그녀들이 선언한 것처럼 여성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변화시키는 투쟁에 함께 하며, 여성들의 집단적인 힘과 목소리로 노동조합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해 나갈 때 간병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고 각종 간염과 산업재해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으며 식탁에 앉아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고, 마트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화장실에 가고, 의자에 앉아서 일할 수 있으며, 청소 노동자가 당당한 여성 노동자로서 생활 임금을 받으며, 반도체 산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충분한 보호구와 안전장치 속에서 유해한 화학약품에 노출되지 않으며 이 모든 여성들이 하루 8시간 노동만으로도 온전히 먹고 살고 생활할 수 있고 성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날이 만들어질 것이다.
주제어
노동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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