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읽는 키워드
북한 체제의 안정성, 북중 관계의 변화, 동아시아의 권력 재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어린 지도자’, ‘준비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마치 당장에라도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듯 호들갑을 떨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시기 벌어졌던 이른바 ‘조문파동’을 의식했는지 이명박 정부는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지만 결국 조문을 제한했고, 북한은 강력한 어조로 이를 비난했다. 애초 북한의 우라늄 농축문제와 식량 지원의 ‘빅딜’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이 나왔던 북미대화는 중단되었고, 언제 재개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이후 지금까지 약 17년간 북한을 직접 통치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것은 1974년 2월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는 약 20년간의 권력 이양의 준비기간을 거친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북한 권력을 승계하게 된 김정은이 공식적인 승계과정에 돌입한 것은 1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7년 5월 무렵 심장 수술을 받았고, 2008년 8월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사건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후계자 선정과 후계체계 확립에 속도를 내왔다. 12월에만 9차례 공식 시찰을 다닐 정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왕성하게 활동한 것에는 후계체계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김정은 체제 이양기는 2008년 이후 아무리 속도를 냈다고 하더라도 3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으로,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이양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짧은 기간이다. 더구나 후계자 지명 이전부터 당 선전위원장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경력을 쌓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달리 김정은은 해외 유학 등으로 인해 북한에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할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북한체제의 권력 이양이 지닌 이러한 취약점은 북한을 넘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12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는 북한체제의 권력 이양과 이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대응 방식에 따라 커다란 변화를 겪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본 글에서는 △북한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북중 관계의 변화, △동아시아 각국의 대응이라는 3가지 축을 중심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를 분석하고자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북한 체제
김정은 체제로의 권력 이양은 일반적인 관측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애초 김일성 주석의 사망 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년 상을 치렀던 것처럼 김정은 역시 이러한 시기를 거치며 권력 재편을 준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2월 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앙추도대회에서 김정은을 최고지도자로 하는 새 시대의 개막을 선포했다.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날 추도사를 통해 “우리의 전도에는 계승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며, 김정은을 ‘최고 영도자’, ‘영도의 중심’ 등으로 표현했다. 또한 <조선중앙통신>의 31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 부위원장이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해 북한 체제의 권력 공백은 어쩔 수 없는 조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맡고 있던 당내 직위는 당 총비서, 당 중앙군사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장 겸 정치국원, 당 비서국 내 조직담당 비서 겸 조직지도부 부장이었다. 한마디로 김정일 위원장이 당의 모든 요직을 겸직하고 있던 상황이다. 당의 의사결정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고도로 집중되었고, 변칙적인 당 운영이 일상화되었다. 김정은이 이러한 김정일 위원장의 역할을 하루아침에 대체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원만한 권력 이양을 위해서는 상당 기간 기존 정책을 유지하면서 북한 지배 세력 내에서 일정하게 권력을 배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북한이 2012년 1월 1일 발표한 새해 공동사설은 이러한 북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로동신문>(당보)과 <조선인민군>(군보), <청년전위>(청년동맹 기관지)의 새해 공동사설은 “김정은 동지는 곧 김정일 동지”라며, “김정일 동지의 유훈, 정책을 … 관철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사설은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는 선군조선의 승리와 영광의 기치”라며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선군정치가 유지될 것임을 내비쳤다.
북한의 정권 담당자들은 당분간 급격한 정치적, 사회적 변동을 막고 안정화를 추구하기 위해 어린 후계자를 중심으로 한 체제 유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 대한 대응과 재편에 대한 일사 분란한 움직임 속에서 ‘북한 급변사태’의 시나리오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표 1] 북한 신년 공동사설 주요 내용
하지만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당과 국가의 운영이 상당히 변칙적으로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성정(性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요직을 독점한 채 일관되게 북한 체제를 이끌어갈 수 있었던 ‘일인 체제’의 특성을 의미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부재 속에서 북한은 당장의 안정화는 가능할지라도, 향후 체제의 방향을 둘러싼 논의에서 심각한 정책 갈등이 표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신년 사설은 식량문제 해결을 ‘강성국가 건설의 초미의 문제’로 언급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원조는 물론이거니와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 진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구나 어린 후계자가 자신의 지도체제를 시작하는 2012년은 김일성 탄생 100년을 맞아 북한이 선포한 ‘강성대국의 해’다. 북한 민중의 삶이 다소나마 실질적으로 개선되고 체제의 안정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외관계가 핵심적인 열쇠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향후 북한의 대외관계, 직접적으로는 개혁개방을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하며, 이를 둘러싼 지배계급 내의 권력투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6자회담
북한 체제를 전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중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이다. 예전부터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같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군사적 대책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주시하고, 기다리고, 준비한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새로운 정권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접촉을 준비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고집해왔으나, 이는 2012년 미국의 대선을 겨냥한 국내용 제스처에 가깝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발표가 있기 하루 전(실제 사망한 다음날)까지 식량지원과 핵 협상 재개 문제를 두고 북한과 접촉을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미 관계는 얼마간 접촉이 유지되더라도 상당 기간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핵 프로그램을 핵심적인 쟁점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북한이 당장에 획기적인 결단을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향후 북한 체제는 중국과의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내적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체제에서 중국의 인정과 후원은 필수적이다. 갑작스런 권력의 공백, UN 결의안 1874호로 인한 전략 물자 부족, 식량 공급 감소 등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북한이 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파트너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 후진타오 주석이 대사관을 찾아 조문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월 31일 후진타오 주석은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와 관련 북한에 축전을 보내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서 전통적 중-조 친선협조 관계가 강화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을 인정하고 향후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는 적극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중국과 북한이 단지 ‘혈맹’이기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중국의 대외 정책에 입각한 전략적 선택이다.
중국은 북한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제고하는 한편, 중국의 지역 개발을 위한 교두보로 삼고자 한다. 최근 우칸 지역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는 중국이 처한 곤란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중국 남부 광둥성 루펑시 우칸촌에서는 공산당 간부들이 마을의 토지를 부동산 회사에 불법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데 분노한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주민들은 지난 12월 12일 당과 정부, 공안 관계자들을 모두 추방하고 마을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등 4개월간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중국 당국은 우칸촌이 해방구가 된지 열흘만인 21일 주민들의 모든 요구를 수용했다. 중국이 대단히 억압적인 체제임을 감안할 때 우칸 지역 민중봉기의 성공은 더 이상 통제와 탄압만으로 체제의 안정적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급격한 개혁개방과 이로 인한 빈부 격차와 지역 격차, SNS의 확대로 상징되는 시민의식의 성장과 비판적 여론 형성은 더 이상 중국이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안보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낙후된 동북 3성의 개발,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 등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북한은 중국에 중요한 존재가 되어 왔다.
최근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0년 북한과 중국의 무역 총액은 총 34억6천5백만 달러다. 2010년 한중 교역액인 2,071억 달러와 비교할 수도 없는 수치지만, 2009년에 비해 29%나 증가해 그 증가율이 어마어마하다. 또한 중국의 대북 자원개발 투자는 급증하고 있다. 석탄 수요가 2030년에는 지금의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에너지와 자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북한이 2010년에 중국에 수출한 광물 자원은 8억6239만 달러어치에 이르며, 2009년에 비해 석탄과 철광석의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표 2] 북한의 대중국 무연탄 및 철 수출 현황
뿐만 아니라 중국은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의 통화철강그룹은 무산광산에 약 70억 위안을 투자하여 50년 동안의 채굴권을 확보했으며, 중국 최대 광물자원 수입회사인 우쾅집단도 고열탄 매장지인 용등탄광의 50년 채굴권을 획득했다. 혜산청년광산은 중국과 합작회사 형태로 전환하여 대주주인 중국의 완샹그룹이 25년간 구리광산을 독점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만포의 아연광산, 회령의 금광도 중국 기업들이 합작투자 형식으로 개발권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은 증가하는 에너지와 자원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외환수요가 높다는 점과 유일한 파트너가 중국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러한 투자는 매우 불공평하게 진행되고 있다. 1995년부터 2009년까지 중국이 북한에 적용한 수입단가는 다른 국가들과의 거대 단가보다 훨씬 낮다. 2008년 석탄 거래의 경우를 보면 중국은 다른 나라에서 톤당 192달러에 구매한 반면, 북한으로부터는 절반도 안 되는 77달러에 구매했다. 2010년 철광석의 거래를 보아도 중국은 다른 나라로부터는 톤당 평균 130달러를 주고 구매했지만, 북한에는 평균 111달러만 쳐주었다. 또한 중국은 북한에서 자원을 싸게 수입하지만, 연료를 북한에 수출할 경우 다른 나라보다 10%정도 높은 가격으로 판매한다. 쉽게 말해 중국이 북한에 지원하는 물품의 비용이 포함된 형태로 거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차별적인 광물 자원 독점과 단가 후려치기가 북한에도 편할 리는 없다. 그러나 현재 중국을 대체할 대안이 부재하며, 체제 안정을 위해서도 중국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강화된 북중 관계는 남한과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의 대북정책에 상당부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모두 북한의 태도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에 기대어 얼마간 버틸 수 있다면, 남한이나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그 실효성을 잃게 된다. 더구나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남한이나 미국에서 급격한 정책 변화도, 취약한 리더십과 군부의 반발 가능성으로 인해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도 당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동안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미대화의 진척은 어려울 것이며, 6자회담의 모멘텀 역시 상당부분 침식될 수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한미 군사동맹의 강화와 대미외교 올인
지난 10월 이명박 대통령은 5일 간 미국을 방문했는데, 이 대통령은 방미 기간 동안 미국 국방부(펜타곤)를 방문했다. 이때 펜타곤의 작전상황실인 탱크룸에서 리온 파네타 국방장관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 등 미군 최고 수뇌부 12명이 총출동하여 한국 대통령을 맞이하여 한반도의 안보정세에 관해 브리핑을 진행했다. 냉전 시기에도 없었던 이러한 이벤트는 한미 군사동맹이 얼마나 강고해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방미 기간 동안 총 13조7천억 원대의 무기 구입을 약속했다. 여기에는 차세대전투기 F-X 3차 사업과 대형공격헬기 사업, KF-16 전투기 성능개량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2011 회계연도 기준으로 미국의 전체 해외 무기 수출액(461억 달러)의 30%에 근접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번 무기 계약은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연평도 사태에 대응하고 있는 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연평도 사태 이후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은 적극적인 군사력 증강으로 대응하고 있다. 군사력 증강은 언제나 상대방의 수준을 압도하거나 상회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위협은 실제보다 과장되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가 연평도 사태 이후 주민 생활의 안정이 아니라 군사력을 증강하고 호전적인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데 연평도 사태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미 중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의 ‘재관여’를 주문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니 미국이 나서 중국을 견제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 보면 도발에 가까운 발언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파병 정책을 펼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적극적으로 편승해 왔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가가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이기 때문에 ‘참관’에 머물겠다던 한국은 이명박 정부 들어 말을 바꿔 정식 참가하는 한편, 부산 앞바다에서 해방 후 처음으로 일본 자위대 함선까지 불러들여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를 빌미로 미국의 핵 항공모함이 동해와 서해에 진입하는 군사훈련으로 북한은 물론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초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한 전략동맹은 냉전적 의미의 군사동맹으로의 회귀와 심화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전략동맹의 대상은 오로지 미국이며, 한국의 대외 정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에 올인하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대북 정책의 유연성도,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 완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핵안보정상회의
이러한 흐름은 2012년 3월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는 측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2010년 4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심의제는 ‘핵안보’(Nuclear Security)다. 기존의 핵문제가 핵 군축, 핵 기술 통제, 핵의 평화적 이용에 맞추어져 있었다면, 핵안보정상회의는 여기에 핵 테러의 문제를 추가한다. 때문에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테러 위협에 대한 공동대처와 예방, 그리고 핵물질과 핵발전소의 안전을 강조한다. 핵 테러를 예방하고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반확산’ 정책이 강조된다. 핵관련 기술이나 물품의 수출입 통제 등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비확산’ 정책을 넘어, PSI와 같이 무력 사용을 동반한 반확산 정책이 국제적인 틀을 확보해가고 있다. 애초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핵군축, 비확산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현재 핵안보정상회의는 체계를 갖춘 국제기구도 아니고, 앞으로 회의가 지속될지 여부도 지금으로서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워싱턴 회의 때 47개국 정상과 3개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인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문제를 중심으로 한 안보분야의 실질적인 세계 최대 회의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2차 회의는 50여 개국 정상들과 IAEA, EU, UN등의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일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는 상황이 북한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거나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 그 자체가 정상회의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심 의제인 PSI에 대해 휴전협정 위반과 주권 침해라는 이유를 들어 극렬하게 반발해왔다. 군사조치를 전제로 한 공격적인 통제 정책은 필연적으로 무력 충돌의 위험을 내포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PSI나 ‘세계핵테러방지구상’(GICNT)에 참가하면서 미국의 반확산 정책, 군사 정책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한국 정부의 대외 정책은 북한이나 중국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핵발전 확대, 핵발전소 수출 증대를 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에 우리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2012년, 동북아시아의 재편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한국뿐만 아니라 2012년은 여러 나라의 정권교체 시기다. 동아시아만 보아도 3월에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가 있으며, 중국은 10월 중에 새 국가주석을 선임한다. 4월에 총선과 12월에 대선을 치르는 한국, 11월에 대선을 치르는 미국과 1월에 총통 선거를 치르는 대만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동북아시아의 정권 재편기라 부를 만한 시기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차기 대통령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최근 치러진 하원의원 부정 선거 문제로 푸틴과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에 대한 극렬한 반발이 표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푸틴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이미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낸 바 있으며, 2008년부터 현재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대외정책이나 군사력 증강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세계 2위의 무기 수출국으로 10년간 약 7,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군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1년 국방예산 630억 달러 중 약 150억 달러를 무기 구매에 할당할 정도로 적극적인 군사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과 함께 육해공군을 총동원하는 합동 군사훈련 ‘평화미션 2011’을 진행할 정도로 중국과 적극적인 협력을 모색하면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대응하는 등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10월에 중국 공산당 제18기 전국대표대회를 열어 새 국가주석을 뽑을 예정이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국가 부주석을 맡고 있는 시진핑이 차기 국가주석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중국 동남 연안지방인 저장성 당서기 출신인 시진핑은 2007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서열 6위)에 선출되었고, 2008년에는 국가 부주석에, 2010년에는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중국 체제의 3대 포스트라고 할 수 있는 당과 국가, 군의 요직을 두루 겸직하고 있는 것이며,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칸 지역 민중봉기와 같이 지역 격차, 빈부 격차 문제를 해결하고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최근 중국의 중요한 과제지만, 시진핑은 분배 문제와 함께 성장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의 중국이 어떠한 대외 정책을 취할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군사력 증강의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2011년 국방예산은 6,010억 위안(약 102조6천억 원)에 달하며, 2001년부터 국방예산의 평균 증가율이 15%에 이를 정도로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작년에는 첫 항공모함을 진수하여 8월에 시험항해를 진행한 바 있으며,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20의 개발을 본격화했다. 명실상부 G2로 성장한 중국은 일본이나 베트남과 영토분쟁을 진행하며 지역 강자의 자리를 굳히기 위해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작년 9월 간 나오토 총리가 물러나고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일본의 총리 임기는 평균 1년 정도로 향후 어떠한 상황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후쿠시마 사고의 해결과 경제적 부흥이 현재 일본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어 애초 일본이 계획하고 있던 잠수함 전력 증강 계획 등이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평소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주장하면서 민주당 내 극우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노다 총리는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도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표 3] 아시아의 군비 경쟁
2012년 평화운동의 과제
2012년이 동북아시아의 정권 교체기라는 것은 우리에게 다음의 것들을 시사한다.
첫째로 2012년에 각국 대외정책의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권 말기에 급격한 정책 변화를 추동할 만한 정치력이 부재하거니와 차기 선거를 의식해 전통적인 지지층 이탈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제스처도 이러한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태도로 나온다면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함께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 대북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번 연설에서는 천암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원래 6자회담의 (전제조건인) 비핵화에는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엄격하게 연계하지는 않았었다”며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북한의 기본 책임을 면해준다는 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부연했다. 파탄난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명박 정부의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는 대체로 이전 정권의 대외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각국의 상황에서 한동안 변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권력 교체기에 접어든 북한의 상황에서 한국이나 미국과의 정치적 빅딜을 예상하기도 어렵다.
둘째, 정권 말기 각국 정부의 대외정책에서 큰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지금 시기의 반전평화운동이 중요하다. 북한에 대한 고립 정책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이미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북한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이제는 설득력을 잃었다. ‘고립과 압박,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 이것이 초래하는 군사력 증강의 레이스’가 아니라, 진정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길을 대중적으로 밝혀가야 한다.
셋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의 길은 6자회담의 재개나 햇볕정책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민통 진영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공개와 연평도 사건으로 파탄나고, 2011년 들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협상이 본격화되었고, 2012년에는 일정한 결실을 맺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희망 섞인 관측과는 달리 미국은 북미대화를 진전시킬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월 5일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3차 북미대화의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특별히 대답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북한과의 관계 진전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대북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빌미로 북미 직접 협상을 미루고 있는 셈이다.
북미대화가 진척되지 않는 한 6자회담의 재개는 불가능하다. 또한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6자회담 프로세스는 북한이 신고한 핵 프로그램에 대해 미국이 제동을 걸면서 중단되었고, 북한이 그동안 부인해오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공개했기에 기존의 신고는 무의미해졌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중국이 굳건히 버텨준다면 북한으로서는 핵을 포기하면서까지 6자회담에 나서야할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정치적 실적을 포장하기 위해 대북 관계에서 성과를 내야하는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고 다른 참가국들에서 특별히 6자회담 재개의 동인을 찾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역시 기존의 강경한 대북정책에 스스로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중운동 진영 대다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과 한미동맹 올인 정책이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이라고 믿는 듯하다. 때문에 결론은 반MB 전선의 확대를 통한 정권 교체이고, 정권 교체를 통해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 즉 햇볕정책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615 선언과 104 선언이 상징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봉쇄와 대결 정책에 비해 상대적 안정감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한 축으로 남한 자본이 주도하는 북한 사회의 경제적 재편을 추구하고, 다른 축으로는 북한 봉쇄를 예비하는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남북관계에 새로운 형태의 긴장을 형성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00대 중심과제에서 한반도 군축이 아니라 확고한 한미 안보협력 유지를 강조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 대북 선제공격을 포함한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이 등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이 강행되어, 미군 육해공 군사허브의 중심이자 전진기지가 마련되었다.
햇볕정책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표방했다. 즉 북한과의 정치 문제와는 별도로 경제적 협력을 추진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는 결국 한반도의 정치문제와 군사문제의 주도권을 미국이 행사하는 가운데 그에 위배되지 않는 수준에서의 경제협력을 남한 정부가 담당한다는 것으로, 한국의 대북정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종속되게 되었다. 한미 FTA 추진이 그러하듯 한미 전쟁동맹의 강화는 ‘MB만의 문제’가 아니며, 햇볕정책이 민중운동이 지향해야할 무엇도 아니다.
이를 통해 평화운동 진영이 고민해야 할 2012년의 과제를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는 어떠한 행위에도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연평도 사태를 통해서도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공격적인 군사훈련은 그 자체로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군사적 긴장 고조와 뒤이은 군사력 증강, 이를 빌미로 한 적대 정책의 강화와 군사적 충돌의 반복이라는 악순환은 한반도의 미래를 점점 더 어둡게 만들며 민중들의 삶을 위협할 뿐이다. 보수 강경 세력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테러 집단이라면 그들의 눈앞에서 총칼을 휘두르는 것이 결코 평화를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3월에 예정된 키리졸브 훈련을 비롯해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행해지는 다양한 군사훈련의 문제를 대중적으로 제기하면서 단호하게 비판하자.
둘째, 2012년 권력 재편의 시기 속에서 노동자민중운동이 군축과 안보 프레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반전평화의 문제는 결코 노동자민중의 삶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며, 한반도의 전쟁 위협은 지배세력의 거짓 선동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은 반복되어 왔으며, 한미 군사동맹과 대북 적대정책, 군사력 증강을 통해 우발적인 충돌마저도 큰 참화로 비화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왔다. 안보문제는 지배세력이 노동자 민중의 정당한 요구와 목소리를 짓밟는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연평도 사태처럼 실질적으로 민중의 생명을 위협한다. 때문에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체제의 구축과 그 궤를 함께 해야 한다. 평화운동의 지향은 맹목적인 반MB도,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종속되는 햇볕정책도 아니다. 한미 군사동맹의 문제, 군사력 증강의 문제, 위협적인 군사훈련의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하면서 반전평화의 흐름을 노동자민중운동이 주도하자.
셋째, 핵안보정상회의를 단호하게 비판해야 한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없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핵 물질의 통제, 핵 테러에 대비한 군사 조치는 결국 핵무기 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새로운 틀거리에 다름 아니다. 더불어 각국 정부와 핵 산업계는 핵발전소 사고를 테러와 연결 지어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강하게 일고 있는 세계적인 탈핵 여론을 거슬러 핵발전소 안전과 확대, PSI 같이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공격적인 정책들을 정당화하려 한다. 핵안보정상회의가 그 자체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핵 기술과 무기의 확대를 꾀한다는 점을 단호하게 비판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이후 지금까지 약 17년간 북한을 직접 통치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것은 1974년 2월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는 약 20년간의 권력 이양의 준비기간을 거친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북한 권력을 승계하게 된 김정은이 공식적인 승계과정에 돌입한 것은 1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7년 5월 무렵 심장 수술을 받았고, 2008년 8월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사건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후계자 선정과 후계체계 확립에 속도를 내왔다. 12월에만 9차례 공식 시찰을 다닐 정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왕성하게 활동한 것에는 후계체계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김정은 체제 이양기는 2008년 이후 아무리 속도를 냈다고 하더라도 3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으로,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이양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짧은 기간이다. 더구나 후계자 지명 이전부터 당 선전위원장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경력을 쌓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달리 김정은은 해외 유학 등으로 인해 북한에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할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북한체제의 권력 이양이 지닌 이러한 취약점은 북한을 넘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12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는 북한체제의 권력 이양과 이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대응 방식에 따라 커다란 변화를 겪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본 글에서는 △북한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북중 관계의 변화, △동아시아 각국의 대응이라는 3가지 축을 중심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를 분석하고자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북한 체제
김정은 체제로의 권력 이양은 일반적인 관측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애초 김일성 주석의 사망 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년 상을 치렀던 것처럼 김정은 역시 이러한 시기를 거치며 권력 재편을 준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2월 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앙추도대회에서 김정은을 최고지도자로 하는 새 시대의 개막을 선포했다.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날 추도사를 통해 “우리의 전도에는 계승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며, 김정은을 ‘최고 영도자’, ‘영도의 중심’ 등으로 표현했다. 또한 <조선중앙통신>의 31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 부위원장이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해 북한 체제의 권력 공백은 어쩔 수 없는 조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맡고 있던 당내 직위는 당 총비서, 당 중앙군사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장 겸 정치국원, 당 비서국 내 조직담당 비서 겸 조직지도부 부장이었다. 한마디로 김정일 위원장이 당의 모든 요직을 겸직하고 있던 상황이다. 당의 의사결정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고도로 집중되었고, 변칙적인 당 운영이 일상화되었다. 김정은이 이러한 김정일 위원장의 역할을 하루아침에 대체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원만한 권력 이양을 위해서는 상당 기간 기존 정책을 유지하면서 북한 지배 세력 내에서 일정하게 권력을 배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북한이 2012년 1월 1일 발표한 새해 공동사설은 이러한 북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로동신문>(당보)과 <조선인민군>(군보), <청년전위>(청년동맹 기관지)의 새해 공동사설은 “김정은 동지는 곧 김정일 동지”라며, “김정일 동지의 유훈, 정책을 … 관철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사설은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는 선군조선의 승리와 영광의 기치”라며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선군정치가 유지될 것임을 내비쳤다.
북한의 정권 담당자들은 당분간 급격한 정치적, 사회적 변동을 막고 안정화를 추구하기 위해 어린 후계자를 중심으로 한 체제 유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 대한 대응과 재편에 대한 일사 분란한 움직임 속에서 ‘북한 급변사태’의 시나리오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표 1] 북한 신년 공동사설 주요 내용
하지만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당과 국가의 운영이 상당히 변칙적으로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성정(性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요직을 독점한 채 일관되게 북한 체제를 이끌어갈 수 있었던 ‘일인 체제’의 특성을 의미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부재 속에서 북한은 당장의 안정화는 가능할지라도, 향후 체제의 방향을 둘러싼 논의에서 심각한 정책 갈등이 표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신년 사설은 식량문제 해결을 ‘강성국가 건설의 초미의 문제’로 언급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원조는 물론이거니와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 진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구나 어린 후계자가 자신의 지도체제를 시작하는 2012년은 김일성 탄생 100년을 맞아 북한이 선포한 ‘강성대국의 해’다. 북한 민중의 삶이 다소나마 실질적으로 개선되고 체제의 안정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외관계가 핵심적인 열쇠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향후 북한의 대외관계, 직접적으로는 개혁개방을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하며, 이를 둘러싼 지배계급 내의 권력투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6자회담
북한 체제를 전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중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이다. 예전부터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같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군사적 대책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주시하고, 기다리고, 준비한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새로운 정권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접촉을 준비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고집해왔으나, 이는 2012년 미국의 대선을 겨냥한 국내용 제스처에 가깝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발표가 있기 하루 전(실제 사망한 다음날)까지 식량지원과 핵 협상 재개 문제를 두고 북한과 접촉을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미 관계는 얼마간 접촉이 유지되더라도 상당 기간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핵 프로그램을 핵심적인 쟁점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북한이 당장에 획기적인 결단을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향후 북한 체제는 중국과의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내적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체제에서 중국의 인정과 후원은 필수적이다. 갑작스런 권력의 공백, UN 결의안 1874호로 인한 전략 물자 부족, 식량 공급 감소 등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북한이 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파트너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 후진타오 주석이 대사관을 찾아 조문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월 31일 후진타오 주석은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와 관련 북한에 축전을 보내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서 전통적 중-조 친선협조 관계가 강화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을 인정하고 향후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는 적극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중국과 북한이 단지 ‘혈맹’이기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중국의 대외 정책에 입각한 전략적 선택이다.
중국은 북한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제고하는 한편, 중국의 지역 개발을 위한 교두보로 삼고자 한다. 최근 우칸 지역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는 중국이 처한 곤란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중국 남부 광둥성 루펑시 우칸촌에서는 공산당 간부들이 마을의 토지를 부동산 회사에 불법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데 분노한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주민들은 지난 12월 12일 당과 정부, 공안 관계자들을 모두 추방하고 마을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등 4개월간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중국 당국은 우칸촌이 해방구가 된지 열흘만인 21일 주민들의 모든 요구를 수용했다. 중국이 대단히 억압적인 체제임을 감안할 때 우칸 지역 민중봉기의 성공은 더 이상 통제와 탄압만으로 체제의 안정적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급격한 개혁개방과 이로 인한 빈부 격차와 지역 격차, SNS의 확대로 상징되는 시민의식의 성장과 비판적 여론 형성은 더 이상 중국이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안보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낙후된 동북 3성의 개발,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 등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북한은 중국에 중요한 존재가 되어 왔다.
최근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0년 북한과 중국의 무역 총액은 총 34억6천5백만 달러다. 2010년 한중 교역액인 2,071억 달러와 비교할 수도 없는 수치지만, 2009년에 비해 29%나 증가해 그 증가율이 어마어마하다. 또한 중국의 대북 자원개발 투자는 급증하고 있다. 석탄 수요가 2030년에는 지금의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에너지와 자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북한이 2010년에 중국에 수출한 광물 자원은 8억6239만 달러어치에 이르며, 2009년에 비해 석탄과 철광석의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표 2] 북한의 대중국 무연탄 및 철 수출 현황
뿐만 아니라 중국은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의 통화철강그룹은 무산광산에 약 70억 위안을 투자하여 50년 동안의 채굴권을 확보했으며, 중국 최대 광물자원 수입회사인 우쾅집단도 고열탄 매장지인 용등탄광의 50년 채굴권을 획득했다. 혜산청년광산은 중국과 합작회사 형태로 전환하여 대주주인 중국의 완샹그룹이 25년간 구리광산을 독점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만포의 아연광산, 회령의 금광도 중국 기업들이 합작투자 형식으로 개발권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은 증가하는 에너지와 자원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외환수요가 높다는 점과 유일한 파트너가 중국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러한 투자는 매우 불공평하게 진행되고 있다. 1995년부터 2009년까지 중국이 북한에 적용한 수입단가는 다른 국가들과의 거대 단가보다 훨씬 낮다. 2008년 석탄 거래의 경우를 보면 중국은 다른 나라에서 톤당 192달러에 구매한 반면, 북한으로부터는 절반도 안 되는 77달러에 구매했다. 2010년 철광석의 거래를 보아도 중국은 다른 나라로부터는 톤당 평균 130달러를 주고 구매했지만, 북한에는 평균 111달러만 쳐주었다. 또한 중국은 북한에서 자원을 싸게 수입하지만, 연료를 북한에 수출할 경우 다른 나라보다 10%정도 높은 가격으로 판매한다. 쉽게 말해 중국이 북한에 지원하는 물품의 비용이 포함된 형태로 거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차별적인 광물 자원 독점과 단가 후려치기가 북한에도 편할 리는 없다. 그러나 현재 중국을 대체할 대안이 부재하며, 체제 안정을 위해서도 중국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강화된 북중 관계는 남한과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의 대북정책에 상당부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모두 북한의 태도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에 기대어 얼마간 버틸 수 있다면, 남한이나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그 실효성을 잃게 된다. 더구나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남한이나 미국에서 급격한 정책 변화도, 취약한 리더십과 군부의 반발 가능성으로 인해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도 당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동안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미대화의 진척은 어려울 것이며, 6자회담의 모멘텀 역시 상당부분 침식될 수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한미 군사동맹의 강화와 대미외교 올인
지난 10월 이명박 대통령은 5일 간 미국을 방문했는데, 이 대통령은 방미 기간 동안 미국 국방부(펜타곤)를 방문했다. 이때 펜타곤의 작전상황실인 탱크룸에서 리온 파네타 국방장관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 등 미군 최고 수뇌부 12명이 총출동하여 한국 대통령을 맞이하여 한반도의 안보정세에 관해 브리핑을 진행했다. 냉전 시기에도 없었던 이러한 이벤트는 한미 군사동맹이 얼마나 강고해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방미 기간 동안 총 13조7천억 원대의 무기 구입을 약속했다. 여기에는 차세대전투기 F-X 3차 사업과 대형공격헬기 사업, KF-16 전투기 성능개량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2011 회계연도 기준으로 미국의 전체 해외 무기 수출액(461억 달러)의 30%에 근접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번 무기 계약은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연평도 사태에 대응하고 있는 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연평도 사태 이후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은 적극적인 군사력 증강으로 대응하고 있다. 군사력 증강은 언제나 상대방의 수준을 압도하거나 상회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위협은 실제보다 과장되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가 연평도 사태 이후 주민 생활의 안정이 아니라 군사력을 증강하고 호전적인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데 연평도 사태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미 중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의 ‘재관여’를 주문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니 미국이 나서 중국을 견제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 보면 도발에 가까운 발언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파병 정책을 펼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적극적으로 편승해 왔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가가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이기 때문에 ‘참관’에 머물겠다던 한국은 이명박 정부 들어 말을 바꿔 정식 참가하는 한편, 부산 앞바다에서 해방 후 처음으로 일본 자위대 함선까지 불러들여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를 빌미로 미국의 핵 항공모함이 동해와 서해에 진입하는 군사훈련으로 북한은 물론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초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한 전략동맹은 냉전적 의미의 군사동맹으로의 회귀와 심화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전략동맹의 대상은 오로지 미국이며, 한국의 대외 정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에 올인하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대북 정책의 유연성도,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 완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핵안보정상회의
이러한 흐름은 2012년 3월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는 측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2010년 4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심의제는 ‘핵안보’(Nuclear Security)다. 기존의 핵문제가 핵 군축, 핵 기술 통제, 핵의 평화적 이용에 맞추어져 있었다면, 핵안보정상회의는 여기에 핵 테러의 문제를 추가한다. 때문에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테러 위협에 대한 공동대처와 예방, 그리고 핵물질과 핵발전소의 안전을 강조한다. 핵 테러를 예방하고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반확산’ 정책이 강조된다. 핵관련 기술이나 물품의 수출입 통제 등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비확산’ 정책을 넘어, PSI와 같이 무력 사용을 동반한 반확산 정책이 국제적인 틀을 확보해가고 있다. 애초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핵군축, 비확산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현재 핵안보정상회의는 체계를 갖춘 국제기구도 아니고, 앞으로 회의가 지속될지 여부도 지금으로서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워싱턴 회의 때 47개국 정상과 3개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인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문제를 중심으로 한 안보분야의 실질적인 세계 최대 회의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2차 회의는 50여 개국 정상들과 IAEA, EU, UN등의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일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는 상황이 북한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거나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 그 자체가 정상회의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심 의제인 PSI에 대해 휴전협정 위반과 주권 침해라는 이유를 들어 극렬하게 반발해왔다. 군사조치를 전제로 한 공격적인 통제 정책은 필연적으로 무력 충돌의 위험을 내포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PSI나 ‘세계핵테러방지구상’(GICNT)에 참가하면서 미국의 반확산 정책, 군사 정책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한국 정부의 대외 정책은 북한이나 중국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핵발전 확대, 핵발전소 수출 증대를 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에 우리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2012년, 동북아시아의 재편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한국뿐만 아니라 2012년은 여러 나라의 정권교체 시기다. 동아시아만 보아도 3월에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가 있으며, 중국은 10월 중에 새 국가주석을 선임한다. 4월에 총선과 12월에 대선을 치르는 한국, 11월에 대선을 치르는 미국과 1월에 총통 선거를 치르는 대만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동북아시아의 정권 재편기라 부를 만한 시기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차기 대통령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최근 치러진 하원의원 부정 선거 문제로 푸틴과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에 대한 극렬한 반발이 표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푸틴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이미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낸 바 있으며, 2008년부터 현재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대외정책이나 군사력 증강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세계 2위의 무기 수출국으로 10년간 약 7,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군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1년 국방예산 630억 달러 중 약 150억 달러를 무기 구매에 할당할 정도로 적극적인 군사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과 함께 육해공군을 총동원하는 합동 군사훈련 ‘평화미션 2011’을 진행할 정도로 중국과 적극적인 협력을 모색하면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대응하는 등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10월에 중국 공산당 제18기 전국대표대회를 열어 새 국가주석을 뽑을 예정이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국가 부주석을 맡고 있는 시진핑이 차기 국가주석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중국 동남 연안지방인 저장성 당서기 출신인 시진핑은 2007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서열 6위)에 선출되었고, 2008년에는 국가 부주석에, 2010년에는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중국 체제의 3대 포스트라고 할 수 있는 당과 국가, 군의 요직을 두루 겸직하고 있는 것이며,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칸 지역 민중봉기와 같이 지역 격차, 빈부 격차 문제를 해결하고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최근 중국의 중요한 과제지만, 시진핑은 분배 문제와 함께 성장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의 중국이 어떠한 대외 정책을 취할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군사력 증강의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2011년 국방예산은 6,010억 위안(약 102조6천억 원)에 달하며, 2001년부터 국방예산의 평균 증가율이 15%에 이를 정도로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작년에는 첫 항공모함을 진수하여 8월에 시험항해를 진행한 바 있으며,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20의 개발을 본격화했다. 명실상부 G2로 성장한 중국은 일본이나 베트남과 영토분쟁을 진행하며 지역 강자의 자리를 굳히기 위해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작년 9월 간 나오토 총리가 물러나고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일본의 총리 임기는 평균 1년 정도로 향후 어떠한 상황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후쿠시마 사고의 해결과 경제적 부흥이 현재 일본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어 애초 일본이 계획하고 있던 잠수함 전력 증강 계획 등이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평소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주장하면서 민주당 내 극우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노다 총리는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도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표 3] 아시아의 군비 경쟁
2012년 평화운동의 과제
2012년이 동북아시아의 정권 교체기라는 것은 우리에게 다음의 것들을 시사한다.
첫째로 2012년에 각국 대외정책의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권 말기에 급격한 정책 변화를 추동할 만한 정치력이 부재하거니와 차기 선거를 의식해 전통적인 지지층 이탈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제스처도 이러한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태도로 나온다면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함께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 대북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번 연설에서는 천암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원래 6자회담의 (전제조건인) 비핵화에는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엄격하게 연계하지는 않았었다”며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북한의 기본 책임을 면해준다는 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부연했다. 파탄난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명박 정부의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는 대체로 이전 정권의 대외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각국의 상황에서 한동안 변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권력 교체기에 접어든 북한의 상황에서 한국이나 미국과의 정치적 빅딜을 예상하기도 어렵다.
둘째, 정권 말기 각국 정부의 대외정책에서 큰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지금 시기의 반전평화운동이 중요하다. 북한에 대한 고립 정책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이미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북한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이제는 설득력을 잃었다. ‘고립과 압박,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 이것이 초래하는 군사력 증강의 레이스’가 아니라, 진정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길을 대중적으로 밝혀가야 한다.
셋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의 길은 6자회담의 재개나 햇볕정책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민통 진영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공개와 연평도 사건으로 파탄나고, 2011년 들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협상이 본격화되었고, 2012년에는 일정한 결실을 맺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희망 섞인 관측과는 달리 미국은 북미대화를 진전시킬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월 5일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3차 북미대화의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특별히 대답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북한과의 관계 진전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대북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빌미로 북미 직접 협상을 미루고 있는 셈이다.
북미대화가 진척되지 않는 한 6자회담의 재개는 불가능하다. 또한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6자회담 프로세스는 북한이 신고한 핵 프로그램에 대해 미국이 제동을 걸면서 중단되었고, 북한이 그동안 부인해오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공개했기에 기존의 신고는 무의미해졌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중국이 굳건히 버텨준다면 북한으로서는 핵을 포기하면서까지 6자회담에 나서야할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정치적 실적을 포장하기 위해 대북 관계에서 성과를 내야하는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고 다른 참가국들에서 특별히 6자회담 재개의 동인을 찾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역시 기존의 강경한 대북정책에 스스로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중운동 진영 대다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과 한미동맹 올인 정책이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이라고 믿는 듯하다. 때문에 결론은 반MB 전선의 확대를 통한 정권 교체이고, 정권 교체를 통해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 즉 햇볕정책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615 선언과 104 선언이 상징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봉쇄와 대결 정책에 비해 상대적 안정감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한 축으로 남한 자본이 주도하는 북한 사회의 경제적 재편을 추구하고, 다른 축으로는 북한 봉쇄를 예비하는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남북관계에 새로운 형태의 긴장을 형성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00대 중심과제에서 한반도 군축이 아니라 확고한 한미 안보협력 유지를 강조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 대북 선제공격을 포함한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이 등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이 강행되어, 미군 육해공 군사허브의 중심이자 전진기지가 마련되었다.
햇볕정책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표방했다. 즉 북한과의 정치 문제와는 별도로 경제적 협력을 추진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는 결국 한반도의 정치문제와 군사문제의 주도권을 미국이 행사하는 가운데 그에 위배되지 않는 수준에서의 경제협력을 남한 정부가 담당한다는 것으로, 한국의 대북정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종속되게 되었다. 한미 FTA 추진이 그러하듯 한미 전쟁동맹의 강화는 ‘MB만의 문제’가 아니며, 햇볕정책이 민중운동이 지향해야할 무엇도 아니다.
이를 통해 평화운동 진영이 고민해야 할 2012년의 과제를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는 어떠한 행위에도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연평도 사태를 통해서도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공격적인 군사훈련은 그 자체로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군사적 긴장 고조와 뒤이은 군사력 증강, 이를 빌미로 한 적대 정책의 강화와 군사적 충돌의 반복이라는 악순환은 한반도의 미래를 점점 더 어둡게 만들며 민중들의 삶을 위협할 뿐이다. 보수 강경 세력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테러 집단이라면 그들의 눈앞에서 총칼을 휘두르는 것이 결코 평화를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3월에 예정된 키리졸브 훈련을 비롯해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행해지는 다양한 군사훈련의 문제를 대중적으로 제기하면서 단호하게 비판하자.
둘째, 2012년 권력 재편의 시기 속에서 노동자민중운동이 군축과 안보 프레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반전평화의 문제는 결코 노동자민중의 삶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며, 한반도의 전쟁 위협은 지배세력의 거짓 선동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은 반복되어 왔으며, 한미 군사동맹과 대북 적대정책, 군사력 증강을 통해 우발적인 충돌마저도 큰 참화로 비화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왔다. 안보문제는 지배세력이 노동자 민중의 정당한 요구와 목소리를 짓밟는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연평도 사태처럼 실질적으로 민중의 생명을 위협한다. 때문에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체제의 구축과 그 궤를 함께 해야 한다. 평화운동의 지향은 맹목적인 반MB도,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종속되는 햇볕정책도 아니다. 한미 군사동맹의 문제, 군사력 증강의 문제, 위협적인 군사훈련의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하면서 반전평화의 흐름을 노동자민중운동이 주도하자.
셋째, 핵안보정상회의를 단호하게 비판해야 한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없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핵 물질의 통제, 핵 테러에 대비한 군사 조치는 결국 핵무기 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새로운 틀거리에 다름 아니다. 더불어 각국 정부와 핵 산업계는 핵발전소 사고를 테러와 연결 지어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강하게 일고 있는 세계적인 탈핵 여론을 거슬러 핵발전소 안전과 확대, PSI 같이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공격적인 정책들을 정당화하려 한다. 핵안보정상회의가 그 자체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핵 기술과 무기의 확대를 꾀한다는 점을 단호하게 비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