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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1-2.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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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유럽 좌파의 입장

조은석 |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2010년 4월 27일 신용평가기관인 S&P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투자 부적격 등급인 BB+로 3등급 하향조정했다. 이 조치는 유로존 회원국과 IMF가 그리스에 대한 지원의사를 확정한 이후에 내려진 조치이므로, 그 여파가 상당했다. 이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에 대한 최초의 투자부적격 사례로서, 신용평가기관들의 이와 같은 조치는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같은 해 5월 2일 유로존 회원국들과 IMF가 단일 국가에 대해서는 사상최대 규모인 1,100억 유로의 구제 금융을 그리스에 지원하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5월 10일 유로존 회원국들은 회원국에 대한 대출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목적법인(SPV)인 유럽금융안정기금(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 EFSF)을 설립에 합의하여, IMF의 지원금까지 포함하면 약 7,500억 유로에 달하는 유럽안정메커니즘(Europe Stabilization Mechanism, ESM)을 갖추게 되었다(표1).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 남유럽의 재정위기는 그리스에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로 번져갔고, 2011년 10월 유럽 정상들은 민간 채권자의 그리스 국채 손실부담률(헤어컷비율)을 50%로 상향조정하고 EFSF의 레버리지, 즉 EFSF가 채권을 매입하여 금융기관의 자본을 확충하고 이렇게 매입한 채권을 담보로 차입을 해서 다시 채권을 매입하는 신용차입을 가능케 하여 EFSF의 규모를 1조 유로까지 확대하기로 합의한다.

[표 1] 유럽안정 메커니즘의 구조

그리고 같은 해 12월 9일 영국을 제외한 EU 26개국 정상은 연간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최대 3.5% 이하, 누적 공공적자를 60% 이하로 유지하지 못하는 회원국을 자동제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재정통합에 합의했다. ‘통화동맹’이었던 유로존이 ‘재정동맹’으로 한걸음 옮긴 것이다.
그리고 같은 달 21일 ECB(유럽중앙은행)가 새로 도입한 3년 만기 장기대출(LTRO) 입찰이 실시됐다. 3년 만기 LTRO는 ECB가 유럽의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A- 등급 이상의 유럽 국채를 담보로 이들에게 3년간 1%의 저리로 무제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ECB의 대출프로그램 만기는 1년이 가장 긴 것이었다. 유로존 국가들의 부채 위기가 심화되면서 국채 수익률이 치솟자(국채 가격 하락) 유럽권 은행들은 신용시장 경색으로 유동성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ECB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이 시행되어 국채 위기 안정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이날 스페인 정부가 실시한 3개월과 6개월물 단기국채 입찰은 56억 유로 규모를 발행해 목표치를 웃돌았고 발행수익률도 크게 떨어졌다. 참고로 앞서 ECB가 실시한 가장 큰 규모의 단일 대출프로그램은 2009년 6월의 4,420억 유로였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시스템 안전망 공급에도 불구하고 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은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AAA 등급 국가에 대해 신용등급 강등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숨가쁘게 진행되어 온 유럽 재정위기의 전개를 제도적 측면에서 정리하자면 대략 위와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재정위기에 대한 유럽 좌파의 분석과 입장을 정리하고 소개한다.

유로존에 내재한 근본적 모순

유로화 도입의 편익과 위험
전후 유럽의 통화제도는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미국의 달러는 금의 가치에 고정되고 유럽 각국의 통화는 다시 달러를 중심으로 ±1%, 일시적으로는 ±2%의 변동을 허용하는 고정환율제로 운영되었다. 유럽 각국이 고정환율제를 선호했던 것은 1919-26년 변동환율제를 일시적으로 도입한 결과 무역수지 흑자를 위해 자국화폐를 경쟁적으로 평가절하하며 벌어졌던 화폐전쟁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동시에 당시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의 성공을 위해서는 각국 농산물 가격의 안정이 절실히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0년대 독일의 경기과열과 그에 따른 독일정부당국의 통화환수 정책으로 인해 마르크화의 가치가 급등한 반면 프랑스 프랑화의 가치는 절하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유럽 공동체 차원의 통화협력의 틀이 필요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EC 집행위원회는 EMU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통화통합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는데(베르너 보고서), 1971년 미국의 달러 불태환 선언으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면서 베르너 보고서의 내용이 실제로 집행이 되지는 않았지만, 유럽 각국의 통화 통합을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1970년대 초 EEC 6개국과 노르웨이는 일종의 공동변동환율제(joint float)를 채택하게 된다(달러화에 대해선 변동폭의 제한 없으나, 유럽 각국 화폐간에는 고정환율제). 유럽의 공동통화를 향한 시도는 1979년 유럽통화제도(European Monetary System)의 도입으로 한 단계 진전을 맞게 된다. 유럽통화제도의 특징은 외환보유고로서의 역할을 하는 유럽통화단위(European Currency Unit, ECU)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전의 체제와 차별화된다.
이러한 통화협력과 관세동맹의 출범으로 역내교역이 원칙적으로는 자유화되었으나, 규범과 제도적 차이로 인해 비관세 장벽은 여전히 존재하였고 이로 인해 국가 간의 시장은 분절현장을 보였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단일시장을 향한 논의가 지지를 얻으면서부터 단일통화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 역시 진전을 보이게 된다. 1991년 합의된 마스트리히트 조약(Treaty on European Union)은 유럽연합(EU)의 제도적 틀을 완성시키고 통화동맹의 완성을 위한 3단계 계획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게 되는데, 여기에 명시된 EMU의 원칙은 1) 통화정책의 주체는 ECB이며, 2)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ECB는 물가안정을 우선 목표로 하고, 3) 재정준칙을 기반으로 회원국들간의 경제정책 수렴을 목표로 하고, 4) ECU를 단일통화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2년 영국의 고금리 정책으로 인한 경기침체는 파운드화에 대한 평가절하 압력으로 작용했고, 영란은행의 환율 방어 시도는 조지 소로스로 대표되는 헤지 펀드의 파운드에 대한 대규모 투기 때문에 실패한다. 결국, 영국은 1992년 9월 17일 유럽 환율 조정 메커니즘에서 탈퇴한다. 이러한 유럽적 차원의 외환위기를 겪으며 통화동맹에 대한 공감대가 더욱 절실해져 통화동맹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는 진전을 보이게 된다.

유로존의 모순: 불균형성 심화, 정책 제약
이러한 단일시장과 이를 위한 단일통화 사용을 통해 노릴 수 있는 명목상의 편익은 다음과 같다.

1) 교환비용의 감소: 환전비용의 감소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독일, 프랑스 같은 큰 국가에는 GDP의 0.1~0.2% 정도로 측정되며, 작은 국가들에서는 1%까지 나타난다.
2) 환율 불확실성 제거: 금융자본의 이동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명목환율은 경제력을 반영하는 실질환율로부터 괴리되는 것이 보통이며, 이러한 환위험 관리를 위한 정부나 개별 기업의 헤징은 부가적인 비용을 발생시킨다. 또 개별통화에 대한 대규모 환투기에 대한 직접 노출을 피할 수 있다.
3) 투명성 제고: 재화에 대한 직접적 가격비교가 가능해져 일물일가 법칙에 가까운 가격체계가 나타난다.

이러한 편익에 대비해 단일통화 사용이 갖는 비용은 다음과 같다.

1) 독자적 통화정책의 상실: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명목환율의 변동을 통해 대외불균형을 교정할 수 있는 수단을 상실한다.
2) 독자적 재정정책 제약: 통화정책 이외에도 재정정책의 독립성 또한 상당히 제한된다. 각 회원국들간의 정책 수렵을 요건으로 하는 통화동맹의 특성상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수준을 규정하는 1997년 성장-안정 협약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통화동맹 구축의 함의는 세계시장에서 통용되는 지불과 축장(보유통화)의 수단인 세계통화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안정적인 회계단위를 창출하여 금융화 아래서 유럽 산업 및 금융자본의 이해에 복무한다. 중심부 국가의 자본으로서는 역내교역증가의 수혜를 입을 수 있고, 달러만이 독점적으로 누리던 발권이익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며, 자국의 통화가치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주변부 소규모 국가로서는 상존하는 외환위기의 위험성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 2] 유럽 각국의 명목 단위 노동비용

유로화가 출범하고 유로존의 모든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ECB가 재정적자와 총 공공부채 비율에 대한 상한선을 설정하였으나, 이를 준수할 것인지는 개별국가에 맡겨두었다. 문제는 통화 및 재정 정책에 대한 제약이 설정된 아래서 한 국가의 경쟁력은 생산성 향상과 노동 비용 절감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로존 전체에서 노동자의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을 두고 “바닥을 향한 경쟁”이 심화되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중심부 유럽과 주변부 유럽으로의 분화의 핵심에는 (노동에 대한 통제를 기반으로 한) 독일의 경쟁력 향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경쟁력의 근원은 전적으로 임금 제약을 통해 독일 노동자들의 명목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다(표2).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과 같은 중심부 국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희생하여 획득된 경쟁력은 중심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와 주변부 국가의 적자로 귀결되며, 주변부 국가는 중심부 국가로부터 자본을 차입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주변부 국가의 부채는 증가한다.
이러한 격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2007년 금융위기 전까지는 거시경제적으로는 물가가 안정되고, 유럽 각국의 국채수익률이 수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표3) 유로화 도입을 통한 리스크가 감소 효과가 나타났고, 역내 교역이 크게 증가하여 독일이 세계 2위의 수출국으로 부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국가채무 역시 일본이나 미국의 그것을 하회하는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7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각국 정부는 재정지출을 증가시킬 수 밖에 없었고, 특히 이미 대외 불균형과 중심과의 격차가 확대되어가던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재정건전성은 크게 약화되었다. 게다가 그리스가 숨겨온 재정적자 있음을 인정하면서 남유럽 국가의 재정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유럽 각국과 대형금융기관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되는 도미노현상이 벌어졌다. 2011년 12월 현재 유로존에서 최상위 트리플A(AAA) 국가는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네덜란드 등 6개국 뿐이다.
EU는 재정위기 국가에 대한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가혹한 구조조정 프로그램 시행을 요구했고, 이미 졸라맨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긴축’은 ‘99%’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겼으며, 국가시스템의 변화까지 초래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추가긴축 재정안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으로 정부가 무너지고 과도내각이 들어섰으며, 스페인에서는 실업률이 20%선(청년실업 약 45%)을 넘어서면서, 이른바 ‘분노한 사람들’의 대규모 시위가 수도 마드리드를 넘어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 등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은 청년세대가 부모세대보다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게 됐고, 프랑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비유로존 국가인 영국에서도 은퇴연령과 연금전액수령 연령이 늦춰지면서, 유럽인들은 더 오래 일하고, 더 적은 연금과 복지혜택을 받는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표 3] 독일 국채 기준 주요국채 스프레드

문제는 주변부 국가의 채무불이행은 곧바로 중심부 은행의 건전성을 위협하고, 나아가 또 다른 세계 경제 위기의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부 국가의 채무위기 극복은 중심부 국가에게도 사활적 이해가 걸린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ECB는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주변부 국가 부채를 유통시장에서 구매하였고, 중심부 국가들은 공동 지급보증을 통해 위기국가들이 공개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치의 결과 2010년 4/4분기와 2011년 1/4분기 그리스의 GDP 성장률 저하와 실업률 증가는 1930년대 대불황 시기 미국의 그것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이는 또다시 부채 부담을 증폭시키고 건전성 위험을 심화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해법은 독일의 지배계급의 이해에는 정확히 부합한다. 은행위기를 회피함으로써 유로의 세계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시키고, 주변부 국가의 디폴트에 따른 비용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에는 유동성을 공급하고, 주변부 국가에는 긴축재정을 압박한다. 이러한 전략의 성공 가능성 역시 낮기는 하지만, 만약 성공하기만 한다면 독일은 명실상부한 유럽 자본주의의 패자로 등극하며, 제2세계 화폐에 대한 통제권을 쥐게 된다.

유로화 논쟁: 유로존을 유지해야 하는가 탈퇴(혹은 해체)해야 하는가

유럽의 좌파 사이에서 일단 광의의 합의가 있는 해법은 다음과 같다. 1) 긴축재정 반대 2) 누진세/부유세 도입과 자본 통제 3) 은행의 국유화/사회와와 민주적 통제 4) 디폴트 후 민주적 통제 아래 부채 감사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구체적인 디폴트의 방식과 디폴트 이후의 전략에 있어서는 여러 상이한 입장이 제출되고 있다. 일단 좌파적 입장에서 재정긴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해법인 것은 당연하다. 재정긴축을 통해 노릴 수 있는 효과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긴축재정을 통해 채무 이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얻어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어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긴축은 오히려 경기침체와 조세감소를 수반하여 지급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 하나의 효과는 인위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일으켜 임금을 억제함으로써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인데, 이는 위기 극복 비용을 노동자 민중에게로 전가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유로존 해체?
부채위기에 대한 유럽 좌파 진영의 대응을 구분하기 위해 먼저 유로존 유지와 해체라는 양 스펙트럼으로 거칠게 나누어 보자. 먼저 유로존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주장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은 유럽좌파당과 유럽 전반에 걸쳐 널리 퍼져 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그 적극성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유로존 유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입장은 유로화의 위기가 소위 “사회적” 유럽의 위기를 의미하고, 유로존의 해체는 반동적인 국민국가로의 퇴행이라는 점 때문에 유로존을 유지시키는 것이 노동권과 복지를 지키는 길이라는 입장이다. 또 다른 흐름은 유로존이라는 구상 자체가 민족주의와 고립주의적 위험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유로존 유지를 정치적 목표로서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이미 유럽의 인민이 공동체 구조 안에 깊숙이 포섭되었기 때문에 이의 붕괴 대신 유럽을 근본적으로 (아래로부터) 재설계할 것을 주장한다. 전자의 입장을 유럽좌파당 내의 전반적 흐름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입장은 제4인터내셔널의 후송(Michel Husson)이나 구 LCR의 사마리(Catherine Samary), 또 다른 IS계열 Socialist Resistance지의 오나란(Ozelam Onaran) 등이 대표한다. 후자의 입장에서는 ‘위기’의 원인을 유로에 내재된 모순이 아니라 “EU의 약한 고리에서 작동하는 투기적 금융”에서 찾는다. 이들의 주장은 대규모 디폴트 선언을 통해 범유럽적인 중심과 주변부 노동자들의 은행과 EU기구들에 대항한 투쟁을 촉발하고, 은행 사회화를 통해 ECB가 실질적으로 유럽의 중앙은행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탈바꿈시키자는 것이다.
부채에 관한 입장에서도 전자는 “채권자 주도”의 부채탕감(헤어컷)을 주장하는데, 이는 채권자(중심부 은행, 중심부 국가)의 합의를 통한 부채 탕감이다. 이 경우 충분한 규모의 부채가 탕감될 수 있을 지가 미지수이다. 오나란 등은 “아래로부터의 디폴트”를 주장하는데 이는 “채무자 주도”의 일방적인 디폴트 선언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경우 디폴트 비용을 중심부 국가, 그 중에서도 중심부 국가의 은행들이 부담하게 될 수 밖에 없는데, 은행이 여전히 국민국가적 경계 속에서 활동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중심부 은행의 부담은 중심부 국가 정부와 나아가 그 국민들이 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연 주변부 국가의 일방적인 디폴트 이후 유로존의 해체는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때 기존의 유럽공동체의 구조가 유지될 수 있을 지는 낙관할 수 없다.
유럽적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는 기술적 경로는 ECB의 대출(수량 완화)과 유로본드 발행으로 정리할 수 있다. 수량완화와 관련된 근본적인 논쟁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ECB의 주변부 국가의 부채 인수를 놓고 보자면, 1) ECB가 채무를 평가절하된 가격으로 인수하는 경우, 주변부 은행의 자본을 확충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으며, 또 이를 액면가로 인수한다고 하면 그 위험부담은 ECB, 따라서 공적인 부담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는 중심부 국가 노동자들의 세금으로 충당될 수 밖에 없다. 유로본드의 경우에도 이러한 논리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유로본드는 개별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재정통합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유로본드가 발행되면 원칙적으로는 유럽 각국은 1차 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하지 못하거나, 만기연장 차환(롤오버, 만기 때 현금지급 대신 새로운 채권을 발행해 만기를 연장하는 것)을 하지 못해 재정위기에 빠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또 국채금리를 낮추어 재정조달 비용이 감소한다. 이 경우 해당 국가의 국채 스프레드(기준채권, 미연준국채나 독일 국채와 해당 국가의 국채와의 금리 차이, 스프레드가 높을수록 국채의 발행비용에 대한 부담이 높아진다)는 그리스나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국가의 위험도를 반영하기 때문에 독일이 단독으로 국채를 발행할 경우에 비해서 높아 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독일이나 프랑스는 이를 극렬히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며, 더욱이 유로화 사용국의 공공채무에 대해 EU의 재정지원을 금하고 있는 조약에도 수정이 불가피하나, 각국의 국민투표시 통과될 지는 미지수이다. 또 ECB의 부채 인수는 세계 화폐로서의 유로화의 위상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기 때문에, 독일이나 프랑스 지배계급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유로존 유지를 전제로 한 입장과는 반대로 유럽 좌파당의 코스타스 라파비사스(Costas Lapavitsas)는 부채 위기에 대한 “급진적” 해결책으로 유럽 공동체의 해체를 주장한다. 유로화를 세계통화로 만들려는 시도는 중심부나 주변부 국가 노동자에게 모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으며, 노동조건의 하락만을 불러오기 때문에 중심부 국가 노동자들은 통화 공동체로부터 부과되는 제약을 투쟁을 통해 거부해야 할 뿐 아니라, 금융통제를 통해 은행을 국유화하고 채무 이행을 위한 세금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이 수출중심 성장전략을 버리고 내수 중심의 정책을 취할 필요가 있는데, 따라서 통화정책 결정권한을 ECB로부터 되찾아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변부 국가에서는 채무자 주도의 디폴트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때문에 금융시장 접근권 상실, 스프레드 급상승 등의 어려움을 겪겠지만, 노동자 주도의 부채감사 위원회를 설치하여 부채를 분류하여 이를 처리하고, 디폴트 선언에 따른 필연적인 유로존 탈퇴 이후 통화제도의 변화에 따른 충격이 은행위기로 번져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은행 사회화와 민주적 통제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화폐 도입에 따른 평가절하는 피할 수 없을 것이나 이를 통해 생산부문이 활성화 되고 수출 증대를 도모할 수 있으며,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득하락은 부의 재분배를 위한 누진세/부유세 도입을 요구함으로써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먼저 평가절하를 통해 과연 급속한 경쟁력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궁극적으로는 생산성에 종속되는 대외경쟁력을 평가절하만으로 역전시키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반론은 유로화 탈퇴에 이은 평가절하는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져 실질임금이 저하되는 효과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가절하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의 평가절하에 따라 얻어지는 일시적인 경쟁우위는 뒤이은 중심부 국가 통화의 평가절하로 상쇄된다는 것이다. 또 유로존 탈퇴를 전후로 한 은행의 대량인출 사태(뱅크런)의 위험도 있다. 2001년 말을 전후해 발생한 아르헨티나 외환위기가 역사적 사례인데, 당시 아르헨티나는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 속에 미 달러화의 1:1 고정환율 제도의 붕괴 가능성이 부각되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금리를 인상하고 재정긴축을 단행하는 등 이를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존 페소화 예금을 달러화 예금으로 바꾸려는 행렬이 줄을 이으면서 결국 외환위기를 맞이했다.
유로존 탈퇴에 대한 이 같은 현실적인 비판 이외에 후송(Husson)은 유로화를 둘러싼 논쟁 자체가 진정한 쟁점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오나란 등과 같이 후송은 현재 유로화의 폐기를 주장하는 라파비사스와 사피르(Jacques Sapir) 등이 전제하고 있는 (자국통화로의 복귀에 이은) 평가절하를 통한 경쟁력 회복은 재분배, 임금인상, 사회시스템의 개조, 자본통제, 은행에 대한 사회적 통제 등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며, 유로화를 탈퇴하는 동시에 투기의 위험에 노출되고, 유로화 탈퇴가 노동에 호의적인 측면으로의 역관계 전환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후송은 오히려 유로존 탈퇴는 은행과 사회의 민주적 통제 및 재구조화를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자체로 적극적인 좌파의 전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량완화 정책
프랑스 공산당, 체코 사민당, 독일 좌파당 등이 소속된 유럽 좌파당의 의장단(presidium)은 2011년 11월 22일 공동성명을 통해 긴축재정정책 철회, 부채 탕감 및 남은 부분의 ECB로의 이전, ECB 또는 특별기구를 통한 유동성 공급을 주문하였다. 한편 2011년 12월 3년 만기 LTRO의 무제한 공급이 시작되면서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쟁점이 부각되었다.
인플레이션은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했지만, 미국 정부의 순 부채는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바로 인플레이션 때문인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가의 조세수입은 증가하며, 또 기존 채권의 가치는 큰 폭으로 절하되어 국가부채의 부담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재정긴축 정책 등의 시행을 조건으로 IMF, EU, ECB가 그리스 등에 제공한 구제금융에서 보여지듯 유동성 공급을 요구하는 것 자체는 결코 민중들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또 수량완화에 이은 인플레이션은 거의 전적으로 임금에 수입을 의존하는 대다수 민중들의 실질 임금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위기의 해법이 가지는 딜레마

2011년 한 해 동안 EU 회원국들 중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곳은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핀란드, 덴마크, 슬로비니아 등 6개국이다. 추가 긴축재정안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를 제안했다가 물러난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정권과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까지 합치면 8개국이다. 과도정부가 들어선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도 조기총선 결과 야당이 승리할 경우, 소위 PIIGS에서 모두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된다. 이미 민중들은 기존의 세력과 체제가 대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의 극우정단인 대중정교회(LAOS)가 그리스 내각 구성에 참여한 것을 보면, 이러한 민중들의 움직임이 유럽적 차원의 연대가 아니라 반동적 민족주의, 퇴행적 고립주의로 귀결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하겠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입장들이 진정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자본통제, 재분배, 산업정책, 국가 재구조화와 같은 광범위한 경제/사회적 프로그램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거나, 위기 극복의 전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시행을 위해서는 중심부와 주변부 국가 민중들의 연대, 현재의 계급 역관계를 뒤바꿀 아래로부터의 흐름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유럽에서 좌파들의 위기 해법에 대한 논의만이 아니라, 정치적 운동의 동향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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