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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3-4.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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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투자, 고용 확대 중심의 주간연속2교대제는 불가능한가

한지원 |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한국의 장시간 노동

최근 고용노동부가 완성차 장시간 근로 실태 조사를 실시하며, 노동시간 문제가 다시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 문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1980년대 군부독재 하에서도 장시간 노동 문제는 매년 관계 당국과 언론을 통해 자주 회자되었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는 한국 노동 문제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다루어져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 해봐도 한국의 노동시간은 고도성장을 한 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부동의 1위다.
물론 노동시간은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기는 하다. 1980년 2,864시간에 달했던 연평균 노동시간은 30년이 지난 2010년 2,193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노동시간은 1980년 OECD 평균 노동시간인 1,911시간보다도 많다. 2010년 한국의 1인당 GDP가 1980년 OECD 평균 1인당 GDP보다도 33%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30년 동안의 기술발전까지 감안한다면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을 바탕으로 한 경제 체제를 확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로의 대한민국’ 속에서도 자동차산업은 더욱 긴 노동시간으로 악명 높다. 금속노조 조사에 따르면 현대, 기아차의 평균 노동시간은 2,546시간에 달하며, 부품사는 2,752시간에 이른다. 자동차산업만 놓고 보면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1980년과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2000년대 들어 법정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가운데서도 자동차산업에서는 오히려 잔업 특근이 늘어나며 노동시간 단축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1993년 37시간이던 월 잔업, 특근 시간은 2010년 45시간으로 늘어났다.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 자동차 부품 업체 노동자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장시간 노동은 더욱 첨예한 사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현대차, 기아차, 한국GM 조합원들의 50% 가까이가 40대 이상이며, 50대 이상도 20%를 넘어선다. 장시간 노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심혈관질환, 수면장애 등은 고령화 진행도와 더불어 매년 더욱 심각해 질 가능성이 크다.


주간연속2교대제의 쟁점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완성차 업체를 중심으로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2004년 현대차 노동조합은 야간노동을 없애자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사측에 공식 요구했고, 2005년 교섭에서 2009년 실시를 사측과 합의했다. 하지만 2006년부터 현재까지 생산량 보전 방식, 임금 보전 방식, 노동강도에 관한 기준 마련 방법 등을 둘러싸고 노사 간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측은 초지일관 생산량 대비 비용을 고정시켜 놓은 채, 생산량이 줄면 임금도 줄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임금 보전을 원한다면 노동시간 감소만큼 노동강도를 상승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현대차 지부는 임금, 노동강도는 현재와 같은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사측이 생산량 유지를 원한다면 노동시간 단축분 만큼 고용과 설비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둘러싼 논쟁은 노동자운동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크게 입장을 나누면, 임금, 노동강도를 다소 양보하더라도 일과 여가의 균형, 건강권 확보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조합 주도로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과 임금과 노동조건 저하 없이 노동시간이 단축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이와 연동되어 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노동조합 간부와 연구자들은 노사 노동강도 기준(맨아워)을 마련하여 생산량 보전을 위한 적정 노동강도와 적정 인력을 산정하자고 이야기하는 반면, 후자 입장을 지지하는 노동조합 간부와 연구자들은 노동강도 측정의 기준이 되는 모답스(MODAPTS) 등의 방법이 노동자의 다양한 노동 지출을 반영하지 못할뿐더러 이렇게 노동강도가 강제로 정해지면 지금까지 노동강도를 완화하기 위해 싸워온 노동조합의 현장권력이 무너진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가운데 지금까지는 ‘노동의 양보선’이 어디까지인가라는 논쟁이 주를 이뤄왔다. 자본의 양보가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채 사측이 제시한 각종 수치에 근거한 노동의 양보 목록만 논의되어 왔다는 것이다. 자본의 양보를 요구하는 입장은 주로 원칙주의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러한가? 노동의 양보는 현실적인데 반해 자본의 양보는 비현실적 이야기인가?


과연 투자 중심의 시간단축이 불가능할까?: 현대차 사례

현대차의 상황을 보자. 현대차그룹은 2011년 77.8조 매출에 8조원의 순익을 거뒀다. 수익률 10%대로 전세계 자동차 기업 중 최고 수준의 수익률이다. 자동차 생산 대수로 1위인 GM이 165조 원 매출에 10조 원 정도의 순익을 얻은 것에 비하면 현재 현대차의 수익성이 얼마나 좋은 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현대차는 현재 11개인 플랫폼을 6개 정도로 통합하면서 신차 개발 및 생산 비용을 기술적으로 더욱 낮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른바 구조적 비용이라 불리는 장기간의 생산 비용이 기술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현대차가 돈이 없어서 추가 고용을 못하거나, 설비투자를 못할 상황은 아니다.
현대차지부가 요구하는 신규인력 채용, 설비투자 중심의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대해 현대차 사측은 자본이 언제나 하는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장기적으로 인건비 비중이 높아져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고, 경기 변동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런 비용 증가가 현대차 경영에 큰 문제를 발생시킬까? 10년 전인 2002년과 2011년을 비교해보자. 2004년 이후 해외공장이 크게 늘어나서 발생한 변화를 제외하기 위해 해외 계열사를 제외하고 국내 현대차 법인에 한해서 살펴본다.


설비투자, 아산 공장 규모로 증설 여력 있다

먼저 설비투자 부분을 보자. 설비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설비를 통해 한 해 얼마만큼의 매출액을 올리느냐다. 유형자산회전율이라고도 부르는 것인데, 여기서는 생산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설비(구축물, 기계, 금형/공구, 운반구)에 한해서 회전율을 살펴본다. 2002년 현대차의 매출액은 26조3천억 원이었고, 설비 순액은 3조6천억 원이었다. 즉 설비 1원 당 7.3원의 매출을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2011년에는 4조4천억 원의 설비로 40조5천억 원의 매출을 발생시켜, 설비 1원당 9.2원의 매출을 만들어냈다.
2002년에도 경영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는 최소한 2002년과 2011년의 회전율의 중간치인 8.2 정도의 설비투자 여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2011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약 5천억 원 정도의 설비투자를 진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2011년에 회사가 제시한 2천9백억 원에 2천1백억 원 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공장 증설, 설비 개선 등에 신규 투자해도 된다. 노동시간 단축 분을 노동강도 강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5천억 원 투자액으로 현재 공장 부지에서 증설을 한다면 아산 공장 규모를 하나 더 짓고도 남을 액수다. 현대차 아산 공장의 구축물, 기계, 금형/공구, 운반구 자산은 3천9백억 원 규모다.


9천 사내하청 정규직화와 2천3백여 신규채용도 가능하다

다음으로 인력 충원과 신규투자에 따라 매년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을 살펴보자. 먼저 신규 채용 부분. 현대차는 2010년 제조에 직접 필요한 인건비(급여+복리후생비+퇴직금)로 약 4조1천억 원을 지출했다. 현대차가 36조7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여기서 재료비, 감가상각비, 외주가동비, 제조 인건비 등 27조 8천억 원의 비용이 지출되어 제조과정에서 남은 이익은 8조9천억 원이다. 가치의 생산과 직접 연관된 과정에서 보면 현대차 노동자들은 2010년 1원 임금을 받아 약 2.2원의 이익을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다. 2011년에는 매출액이 10% 가까이 올랐으니 이 액수가 조금 더 올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자본이 조금만 양보해 인건비 1원 당 2.2배의 이익이 아니라(2.2배의 착취) 2배의 이익(2배의 착취)으로만 조금 조정하면, 인건비 여력은 매년 3천6백억 원 가량이 발생한다. 이 액수는 2012년 1월에 한 4천8백억 원 배당금의 75% 수준으로 사실 현대차 입장에서 보면 별로 큰 액수라 말할 수도 없는 금액이다.
추가 여력이 생산 3천6백억 원 중 공장 신규 증설로 발생할 350억 가량의 감가상각을 제외하면, 약 3천2백억 원 가량이 매년 신규 인력을 위해 임금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인건비에서 퇴직금, 복리후생비 등을 제외하고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80% 정도다.
이를 이용하면 첫째,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약 9천 명에 이르는 사내하청을 모두 정규직화 할 수 있다. 금속노조 조사에 따르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은 같은 근속연수의 정규직 대비 68% 수준이다. 2011년 임금 명세표(근속 4~5년) 기준으로 정규직과의 1년 임금 총액 차이는 약 1천5백만 원 정도다. 9천명의 사내하청을 정규직화 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천4백억 원 수준이다. 둘째, 남은 1천8백억 원으로는 약 2천3백여 명을 신규채용할 수 있다. 현재 현대차지부 아산위원회 조합원 수인 2천5백여 명의 90%에 이르는 숫자다. 사측은 신규 채용 시 근속 연수 증가에 따라 비용이 계속 증가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앞으로 10년간 현대차에서 퇴직할 인원(근속연수가 20~30년인 노동자들)이 1만 명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는다.


주간연속2교대제, 자본이 아주 조금만 양보해도 충분히 노동조건 개악 없이 실현 가능

2011년 노사 합의에 따르면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위해서는 시간당 생산 대수가 30대가 늘어야 하고, 식사시간, 휴게시간 축소 등으로 연 184.1시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사측은 자기 기준에 따른 맨아워를 재측정, 노동강도를 높일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본이 조금, 아주 조금만 양보하면 굳이 이러한 현장통제 강화, 노동강도 강화 방안이 아니어도 생산량을 유지하며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할 수 있다. 자본의 탐욕을 조금만 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현재 8+9 체제로 변화 시 생산량 부족분은 18만 7천대 수준이다. 이 생산량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를 두고 맨아워위원회부터, 일부 공정의 3교대제 도입, 편성효율 증가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방식으로 투자 및 운용비를 마련할 수 있다면 굳이 노동이 양보해야만 하는 쟁점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아산 공장이 8+9로 변경 시 22만대 생산이 가능하니, 아산 공장 규모의 증설을 하면 될 일이다. 설비투자부터 운영비까지 모두 그렇게 어렵지 않게 확보 가능하다.

자본이 조금만 양보하면 될 일이고, 노동조합이 조금만 더 단결된 힘으로 싸워서 쟁취하면 될 일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과 노동의 역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앞서 제시한 투자, 고용에 관한 시뮬레이션도 결국 노동의 힘으로 자본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가에 그 현실성 여부가 달려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를 비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인 것을 오직 노동의 양보 속에서만 찾는 것이야 말로 노동시간이 결국 자본의 이윤과 노동의 몫이라는 계급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노동강도 강화, 중장기적인 패배일 뿐

자동차산업의 축적 전략을 들여다보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의 거래는 중장기적으로 노동의 손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OECD 산업분석 데이터(STAN DB)와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요국 자동차산업의 장기 축적 추이를 분석했다. 교대제 변경과 같이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주는 변화는 단기간의 경기 변동에 따른 손익 변화보다는 장기 변화의 핵심 변수인 고정자본(기계설비 등) 변화를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1998년 이전과 이후로 분명하게 구별되는데, 1998년 이전에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1998년 이후에는 소규모 설비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1980년대 후반부터 현대 대우 기아차 등은 일본 따라잡기를 하겠다면서 대규모 자동화 설비를 들여왔다. 정주영, 김우중 등 재벌 오너들은 대규모 해외차입까지 하며 공장 증설과 자동화에 열을 올렸다. 이 시기는 자동차산업 기계설비가 연평균 26%씩 고도성장했고,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20%씩 성장했으며, 고용은 연평균 3%씩 늘어났다. 한국자동차산업의 황금기였다. 그리고 87년 투쟁을 통해 형성된 현장권력이 현장통제를 억누르며 노동강도 강화를 막아내던 시기다. 노동생산성은 노동강도 강화가 아니라 기계화 자동화로 높아졌다. 산업적 확장세였기 때문에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줄어들지는 않았고, 오히려 늘어났다.

[그림] 한국자동차산업의 기계화, 노동생산성 추이. 1990~2007

1998년 이후에는 상황이 변화했다. 2010년까지 11년 간 기계설비(고정자본)는 연 7% 성장으로 급락했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연 8% 성장하며 기계설비 증가분보다 더 크게 성장했다. 바로 현장통제를 통해 노동강도 상승으로 노동생산성을 올려왔다는 것이다. 1998년 이전이 자본 지출에 의한 성장기였다면 1998년 이후는 바로 노동 지출에 의한 성장기였다는 의미다. 생산량은 매년 느는데 설비는 노후하여 너무 힘들다는 현대차 조합원의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성장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15년간 이렇게 성장해 온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인다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치명적이다.
첫째, 현장 투쟁 속에서 어렵사리 올리던 노동강도를 노동이 합의까지 해준다면 현대기아차 사측은 더욱 설비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노동은 더욱 노후한 설비 속에 자신의 몸을 마모시켜 출혈적 생산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시간단축분 보다 더 큰 정신과 육체의 손실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일부 타협론자들이 잘 인용하는 폴크스바겐의 1990년대 타협도 이런 식의 노동강도 상승을 용인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노동생산성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1%씩 하락했다. 설비투자는 연 0.3%씩 증가했다. 사실상 폴크스바겐의 협약은 결과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완화를 동시에 추구하여 고용 유지를 달성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추진하는 것은 1990년대 폴크스바겐의 사례에도 맞지 않는다.
둘째, 현장권력이 무너지며 노동시간과 임금 모두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노동강도 강화는 미시적 통제를 필요로 하며 사측의 현장 통제력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현장권력을 잃을 경우 우리가 이미 예전에 겪었듯이 유무형의 방식으로 노동시간과 임금조건이 악화된다. 현대차지부가 유지해온 주간연속2교대제와 관련한 3무정책(노동강도, 임금, 고용 조건 하락 없는 교대제 개편)은 정세적으로, 현실적으로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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