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파는 노동자들의 짝퉁 같은 노동조건을 바꾸는 투쟁!
백화점 화장품판매 노동자 조직화 과정과 현황
몇 년 전부터 백화점 판매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다수의 여성들이 서비스 판매직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집단적 저항이 녹록치 않아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있던 차에, 백화점 노조 결성은 다른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 희소식이었다. 또한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의 특성상 발생하는 감정적 소모와 스트레스를 감정노동으로 인정받아 수당으로까지 쟁취했다.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환기시켜 준 사례이다. 백화점 노동자 조직화 과정과 현재 투쟁과제를 알아보기 위해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서비스연맹) 이경옥 사무처장과 이성종 정책실장을 찾아갔다.
사회운동: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의 업무와 노동 조건은 어떠한가?
이성종 정책실장(이하 이성종) : 서비스연맹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백화점 1층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알다시피 백화점에는 의류, 식품, 가구 등의 다양한 품목들이 판매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는데 실제 백화점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은 전체 고용인원의 10% 이내이다. 90%가 넘는 노동자들은 입점업체 직원이다. 백화점 입점업체란 협력업체와 같은 의미이므로 백화점에는 간접 고용 노동자들이 90%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의 임금 총액은 전체산업 평균 수준이거나 조금 모자라는 수준이다. 문제는 자동차 제조업처럼 초과근로를 해야 이 정도 금액이 된다는 것이다. 연장근로 수당이 많을 때에는 임금 총액에서 30% 정도를 차지하기도 한다. 만약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이 지켜진다면 임금수준은 중하위로 하락할 것으로 본다. 한편 이 같은 장시간 노동은 육아와 가사 등을 병행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더 힘겹게 만들고 있다.
사회운동： 노동시간이 단축된다면 기존 수준의 임금을 확보하기 위해 기본급을 인상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겠다.
이성종: 조합원들과 노동조합은 당연히 바라고 있으며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기본급 인상보다는 다른 수당으로 보조하자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감정노동은 육체노동과 같은 노동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감정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노동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운동: 판매직 업무의 특성상 고객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작년에 서비스연맹에서는 감정노동과 관련한 조합원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는데 결과는 어떠한가?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이성종: 감정노동뿐만 아니라 건강을 비롯 삶의 질 전반에 대해 폭넓게 조사했다. 판매직 다수가 서서 일하기 때문에 하지정맥류 등의 질환이 발병하는 경우가 많고, 유산율도 다른 직종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또한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제때 가기 어려워 방광염도 많이 걸린다.
감정노동의 문제도 심각하다. 어딜 가나 꼭 있는 소위 ‘진상고객’이 나타나면 판매직 노동자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고 적절한 해소가 어려운 경우 대인기피증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그리고 화가 나도 표출하지 못하고 삭히기를 반복해 화병이 생긴 경우도 있다. 조합원들이 서로 비슷하게 증언한 자신의 변화는 동료와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화를 자주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친다거나, 관리자급 같은 경우는 하급 직원에게 화를 내는 식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감정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 그러나 감정노동은 육체노동과 같은 노동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감정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노동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서비스연맹은 4-5년째 연구조사와 선전사업 등을 지속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감정노동에 대한 소개와 대응 매뉴얼을 담은 가이드북을 제작하여 조합원들에게 배포했다. 그리고 사업주들에게도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책자도 제공했다.
뿐만 아니다. 서비스연맹 소속노조들은 회사와 교섭을 통해 감정수당을 요구하고 있으며 화장품 판매직종 대부분은 감정수당을 쟁취했다. 물론 감정수당을 받는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보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감정수당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권리이므로 이를 기반으로 해서 앞으로 감정휴가와 치유프로그램 등으로 확대해 갈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을 산재로 인정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운동: 스트레스로 인한 감정적 소모가 발생하고 나서 이를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스트레스 자체를 낮출 수 있도록 기업의 업무 평가 기준 등이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이성종: 감정노동이 최소화 되려면 노동자, 기업, 정부, 고객 등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고객을 가장한 평가원이 매장을 방문하는 미스터리 쇼퍼와 같은 방식은 노동자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준다. 이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객관적 업무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매출압박을 줄일 것을 회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 역시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꿔서 감정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의 경우 자신이 감정노동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괜찮아, 별 문제가 아니야’라는 식으로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요구를 할 수 있다. 소비자의 경우 판매 노동자를 종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쇼핑을 돕는 도우미로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이 필요하다.
“백화점 1층에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는데, 정기적으로 브랜드 매니저 회의를 한다. 거기에서 입소문이 난 것이다.”
사회운동: 2004년 샤넬 판매 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을 시작으로 현재 조합원이 4,000여 명이 넘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조직화 과정은 어떠했고 지속적으로 조합원이 늘어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이성종: 화려한 백화점에서 일한다고 하면 좋은 직장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노동자들이 자각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매출압박과 장시간 노동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기고 있었다. 회사에서 할당량을 과도하게 내리면서 노동자를 닦달하다보니 스트레스가 크다. 그리고 IMF 이후 백화점 업계가 롯데, 현대, 신세계 빅3로 재편이 되면서 경쟁이 심화되자, 휴일근무가 당연해졌다. IMF 이전에는 주 1회 휴점을 했는데, 이후에는 월 1회 정기 휴점 마저 안 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이처럼 백화점, 대형마트, 면세점 시장의 80%를 재벌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노동조건은 갈수록 나빠지면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매년 한 곳씩 꾸준히 노조가 결성되었다. 물론 노조가 생겼다가 사측에 의해 깨진 경우도 있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을 규합하기가 어려워서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조직화는 확대되고 있다.
이경옥 사무처장(이하 이경옥): 백화점 판매직 노조결성이 확대되는 계기가 특이했다. 백화점 1층에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는데, 정기적으로 브랜드 매니저 회의를 한다. 거기에서 입소문이 난 것이다. 노조를 결성한 브랜드 매니저에게 무엇이 달라졌냐고 물으면, 임금과 근로조건 달라졌다고 자랑하니 다른 브랜드에서도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성과급을 올려달라거나,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복지혜택 등을 따내는 것이 노동자들의 목표였는데 이제는 기본급 인상하고 노동조건 전반을 개선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사회운동: 민주노총에 가입한 백화점 판매직 사업장은 대다수 외국계 기업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이경옥: 지적한대로 서비스연맹 가입조합은 대부분 외국계 수입 화장품 사업장이다. 국내 회사의 경우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한국노총 소속인 경우가 많다. 한국계기업이 노조에 대한 반감이 큰 반면 외국계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노조 설립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물론 프랑스 회사인 샤넬과 로레알 등과 다르게 미국 회사인 엘카처럼 노조 탄압이 심한 경우도 있다.
“특별법의 핵심은 첫째 주1회 휴점 할 것, 둘째 백화점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 대형마트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 사이에만 영업하도록 시간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사회운동: 지금까지 백화점 노동자들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어 왔으나, 정부는 올해 법 개정을 통해 노동시간 제한규정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서비스연맹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 영업시간과 휴일영업에 대해서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 개정 추진 경과와 전망에 대해서 말씀해 달라.
이성종: 작년 노사정 위원회에서 판매직종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겠다고 했으므로 법 개정 역시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백화점판매직 노동자들이 주 57-60시간 일하고 있는데 앞으로 52시간 이내로 줄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모성에 대한 보호이다. 출산을 앞두거나 육아를 맡고 있는 경우나,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 모두에게 의미 있는 진전이다. 다른 하나는 장시간 노동으로 발생하는 질병의 문제이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2년 넘게 주 1회 노동시간 단축 선전전 하고 있다. 국회의원과 함께 작업하여 유통서비스노동자 및 환경 보호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입법발의까지 했으나 아직은 환노위에 올라가있는 상태다. 특별법의 내용은 유통여성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19대 국회에 들어가면 법안을 조정해서 재 발의할 계획이다. 핵심은 첫째 주1회 휴점 할 것, 둘째 백화점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 대형마트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 사이에만 영업하도록 시간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이경옥: 작년 유통산업 발전법이 통과되고 지자체 조례 제정 등이 이루어진 결과, 할인점의 경우 월 2회 휴점하게 되었다. 또한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을 금지시켜 심야노동도 규제하게 되었다. 서비스연맹이 추진하고 있는 특별법은 밤 10시에서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금지 시키고 있으므로 현재보다 더 진전된 안이라고 볼 수 있다. 고무적인 것은 할인점 심야영업이 사라진 점이고, 이러한 추세를 이어 백화점 역시도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화점 1층에 검은 휘장을 두르고 파업한다면 위력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사회운동: 마지막으로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이성종: 화려한 곳에서 일하지만 노동조건은 너무나 열악한 백화점 노동자의 실제모습을 봐달라. 백화점 노동자들은 근무시간이나 휴일 휴가 등을 자기가 속한 업체에서 결정할 수 없다. 백화점이 입점업체에 고용된 판매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 자동차 원청회사가 하청노동자에게 사용자로서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백화점 판매직은 여성노동자가 다수이므로 이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곧 모성보호라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경옥: 개인적으로 할인매장에서 일했었는데, 백화점도 똑같은 구조라고 보면 된다. 할인매장에서도 노동자에게 월급 주는 회사와 업무 지시하는 회사가 다르다. 대형할인매장 관리자가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다. 백화점도 유사하다. 노동시간 단축 캠페인을 2년 넘게 하고 있는데 원청인 백화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자들이 특별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백화점 관리자들 눈치 보느라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 안타깝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이처럼 원청인 백화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조직하려고 했던 것인 만큼 분발해서 꼭 이뤄낼 생각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백화점 1층을 올스톱시키는 집단적 투쟁을 만들고 싶다. 백화점 1층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백화점의 꽃은 1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교섭력이 있다는 의미다. 엘카라는 브랜드에서 노조 탄압에 맞서 투쟁할 때, 파업하면서 그 코너에만 검은 색 휘장을 쳤다. 해당 브랜드는 이미지 손상을 걱정했고 백화점 측에서도 그 브랜드 때문에 전체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엘카에 압력을 넣기도 했다. 이처럼 백화점 1층에 검은 휘장을 두르고 파업한다면 위력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백화점 판매 조합원들에게 ‘공공노조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소속이어도 집단교섭, 파업을 해서 성과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서 이야기 하고는 한다. 조합원들이 직접적인 실천을 보여줄 때만이 원청인 백화점을 꼬리 내리게 할 수 있고, 법 개정 역시 집단적 힘을 투쟁으로 발휘하지 않으면 통과시킬 수 없다.
이성종: 마지막으로 면세점 얘기를 덧붙이겠다. 면세점에도 조합원이 있는데, 2010년 11월에 신라면세점이 폐점 시간을 밤 8시에서 9시로 늦췄다. 이에 질세라 경쟁업체인 롯데도 영업시간을 연장하면서 시내 면세점 영업시간이 9시로 맞춰졌다. 인천공항은 특수성이 있어서 9시 반까지 영업하고 있다.
이처럼 유통부문 핵심인 백화점, 대형마트, 면세점에 장시간 노동이 팽배한 상황이었는데, 유통산업 발전법으로 마트 영업시간을 축소한 것을 시작으로, 백화점과 면세점 역시도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투쟁을 벌여갈 것이다. 관심과 연대를 부탁한다.
바쁜 와중에도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경옥 사무처장과 이성종 정책실장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회운동: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의 업무와 노동 조건은 어떠한가?
이성종 정책실장(이하 이성종) : 서비스연맹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백화점 1층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알다시피 백화점에는 의류, 식품, 가구 등의 다양한 품목들이 판매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는데 실제 백화점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은 전체 고용인원의 10% 이내이다. 90%가 넘는 노동자들은 입점업체 직원이다. 백화점 입점업체란 협력업체와 같은 의미이므로 백화점에는 간접 고용 노동자들이 90%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의 임금 총액은 전체산업 평균 수준이거나 조금 모자라는 수준이다. 문제는 자동차 제조업처럼 초과근로를 해야 이 정도 금액이 된다는 것이다. 연장근로 수당이 많을 때에는 임금 총액에서 30% 정도를 차지하기도 한다. 만약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이 지켜진다면 임금수준은 중하위로 하락할 것으로 본다. 한편 이 같은 장시간 노동은 육아와 가사 등을 병행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더 힘겹게 만들고 있다.
사회운동： 노동시간이 단축된다면 기존 수준의 임금을 확보하기 위해 기본급을 인상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겠다.
이성종: 조합원들과 노동조합은 당연히 바라고 있으며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기본급 인상보다는 다른 수당으로 보조하자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감정노동은 육체노동과 같은 노동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감정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노동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운동: 판매직 업무의 특성상 고객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작년에 서비스연맹에서는 감정노동과 관련한 조합원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는데 결과는 어떠한가?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이성종: 감정노동뿐만 아니라 건강을 비롯 삶의 질 전반에 대해 폭넓게 조사했다. 판매직 다수가 서서 일하기 때문에 하지정맥류 등의 질환이 발병하는 경우가 많고, 유산율도 다른 직종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또한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제때 가기 어려워 방광염도 많이 걸린다.
감정노동의 문제도 심각하다. 어딜 가나 꼭 있는 소위 ‘진상고객’이 나타나면 판매직 노동자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고 적절한 해소가 어려운 경우 대인기피증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그리고 화가 나도 표출하지 못하고 삭히기를 반복해 화병이 생긴 경우도 있다. 조합원들이 서로 비슷하게 증언한 자신의 변화는 동료와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화를 자주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친다거나, 관리자급 같은 경우는 하급 직원에게 화를 내는 식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감정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 그러나 감정노동은 육체노동과 같은 노동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감정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노동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서비스연맹은 4-5년째 연구조사와 선전사업 등을 지속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감정노동에 대한 소개와 대응 매뉴얼을 담은 가이드북을 제작하여 조합원들에게 배포했다. 그리고 사업주들에게도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책자도 제공했다.
뿐만 아니다. 서비스연맹 소속노조들은 회사와 교섭을 통해 감정수당을 요구하고 있으며 화장품 판매직종 대부분은 감정수당을 쟁취했다. 물론 감정수당을 받는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보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감정수당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권리이므로 이를 기반으로 해서 앞으로 감정휴가와 치유프로그램 등으로 확대해 갈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을 산재로 인정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운동: 스트레스로 인한 감정적 소모가 발생하고 나서 이를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스트레스 자체를 낮출 수 있도록 기업의 업무 평가 기준 등이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이성종: 감정노동이 최소화 되려면 노동자, 기업, 정부, 고객 등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고객을 가장한 평가원이 매장을 방문하는 미스터리 쇼퍼와 같은 방식은 노동자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준다. 이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객관적 업무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매출압박을 줄일 것을 회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 역시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꿔서 감정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의 경우 자신이 감정노동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괜찮아, 별 문제가 아니야’라는 식으로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요구를 할 수 있다. 소비자의 경우 판매 노동자를 종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쇼핑을 돕는 도우미로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이 필요하다.
“백화점 1층에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는데, 정기적으로 브랜드 매니저 회의를 한다. 거기에서 입소문이 난 것이다.”
사회운동: 2004년 샤넬 판매 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을 시작으로 현재 조합원이 4,000여 명이 넘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조직화 과정은 어떠했고 지속적으로 조합원이 늘어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이성종: 화려한 백화점에서 일한다고 하면 좋은 직장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노동자들이 자각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매출압박과 장시간 노동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기고 있었다. 회사에서 할당량을 과도하게 내리면서 노동자를 닦달하다보니 스트레스가 크다. 그리고 IMF 이후 백화점 업계가 롯데, 현대, 신세계 빅3로 재편이 되면서 경쟁이 심화되자, 휴일근무가 당연해졌다. IMF 이전에는 주 1회 휴점을 했는데, 이후에는 월 1회 정기 휴점 마저 안 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이처럼 백화점, 대형마트, 면세점 시장의 80%를 재벌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노동조건은 갈수록 나빠지면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매년 한 곳씩 꾸준히 노조가 결성되었다. 물론 노조가 생겼다가 사측에 의해 깨진 경우도 있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을 규합하기가 어려워서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조직화는 확대되고 있다.
이경옥 사무처장(이하 이경옥): 백화점 판매직 노조결성이 확대되는 계기가 특이했다. 백화점 1층에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는데, 정기적으로 브랜드 매니저 회의를 한다. 거기에서 입소문이 난 것이다. 노조를 결성한 브랜드 매니저에게 무엇이 달라졌냐고 물으면, 임금과 근로조건 달라졌다고 자랑하니 다른 브랜드에서도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성과급을 올려달라거나,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복지혜택 등을 따내는 것이 노동자들의 목표였는데 이제는 기본급 인상하고 노동조건 전반을 개선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사회운동: 민주노총에 가입한 백화점 판매직 사업장은 대다수 외국계 기업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이경옥: 지적한대로 서비스연맹 가입조합은 대부분 외국계 수입 화장품 사업장이다. 국내 회사의 경우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한국노총 소속인 경우가 많다. 한국계기업이 노조에 대한 반감이 큰 반면 외국계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노조 설립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물론 프랑스 회사인 샤넬과 로레알 등과 다르게 미국 회사인 엘카처럼 노조 탄압이 심한 경우도 있다.
“특별법의 핵심은 첫째 주1회 휴점 할 것, 둘째 백화점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 대형마트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 사이에만 영업하도록 시간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사회운동: 지금까지 백화점 노동자들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어 왔으나, 정부는 올해 법 개정을 통해 노동시간 제한규정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서비스연맹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 영업시간과 휴일영업에 대해서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 개정 추진 경과와 전망에 대해서 말씀해 달라.
이성종: 작년 노사정 위원회에서 판매직종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겠다고 했으므로 법 개정 역시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백화점판매직 노동자들이 주 57-60시간 일하고 있는데 앞으로 52시간 이내로 줄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모성에 대한 보호이다. 출산을 앞두거나 육아를 맡고 있는 경우나,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 모두에게 의미 있는 진전이다. 다른 하나는 장시간 노동으로 발생하는 질병의 문제이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2년 넘게 주 1회 노동시간 단축 선전전 하고 있다. 국회의원과 함께 작업하여 유통서비스노동자 및 환경 보호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입법발의까지 했으나 아직은 환노위에 올라가있는 상태다. 특별법의 내용은 유통여성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19대 국회에 들어가면 법안을 조정해서 재 발의할 계획이다. 핵심은 첫째 주1회 휴점 할 것, 둘째 백화점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 대형마트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 사이에만 영업하도록 시간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이경옥: 작년 유통산업 발전법이 통과되고 지자체 조례 제정 등이 이루어진 결과, 할인점의 경우 월 2회 휴점하게 되었다. 또한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을 금지시켜 심야노동도 규제하게 되었다. 서비스연맹이 추진하고 있는 특별법은 밤 10시에서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금지 시키고 있으므로 현재보다 더 진전된 안이라고 볼 수 있다. 고무적인 것은 할인점 심야영업이 사라진 점이고, 이러한 추세를 이어 백화점 역시도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화점 1층에 검은 휘장을 두르고 파업한다면 위력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사회운동: 마지막으로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이성종: 화려한 곳에서 일하지만 노동조건은 너무나 열악한 백화점 노동자의 실제모습을 봐달라. 백화점 노동자들은 근무시간이나 휴일 휴가 등을 자기가 속한 업체에서 결정할 수 없다. 백화점이 입점업체에 고용된 판매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 자동차 원청회사가 하청노동자에게 사용자로서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백화점 판매직은 여성노동자가 다수이므로 이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곧 모성보호라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경옥: 개인적으로 할인매장에서 일했었는데, 백화점도 똑같은 구조라고 보면 된다. 할인매장에서도 노동자에게 월급 주는 회사와 업무 지시하는 회사가 다르다. 대형할인매장 관리자가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다. 백화점도 유사하다. 노동시간 단축 캠페인을 2년 넘게 하고 있는데 원청인 백화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자들이 특별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백화점 관리자들 눈치 보느라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 안타깝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이처럼 원청인 백화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조직하려고 했던 것인 만큼 분발해서 꼭 이뤄낼 생각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백화점 1층을 올스톱시키는 집단적 투쟁을 만들고 싶다. 백화점 1층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백화점의 꽃은 1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교섭력이 있다는 의미다. 엘카라는 브랜드에서 노조 탄압에 맞서 투쟁할 때, 파업하면서 그 코너에만 검은 색 휘장을 쳤다. 해당 브랜드는 이미지 손상을 걱정했고 백화점 측에서도 그 브랜드 때문에 전체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엘카에 압력을 넣기도 했다. 이처럼 백화점 1층에 검은 휘장을 두르고 파업한다면 위력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백화점 판매 조합원들에게 ‘공공노조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소속이어도 집단교섭, 파업을 해서 성과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서 이야기 하고는 한다. 조합원들이 직접적인 실천을 보여줄 때만이 원청인 백화점을 꼬리 내리게 할 수 있고, 법 개정 역시 집단적 힘을 투쟁으로 발휘하지 않으면 통과시킬 수 없다.
이성종: 마지막으로 면세점 얘기를 덧붙이겠다. 면세점에도 조합원이 있는데, 2010년 11월에 신라면세점이 폐점 시간을 밤 8시에서 9시로 늦췄다. 이에 질세라 경쟁업체인 롯데도 영업시간을 연장하면서 시내 면세점 영업시간이 9시로 맞춰졌다. 인천공항은 특수성이 있어서 9시 반까지 영업하고 있다.
이처럼 유통부문 핵심인 백화점, 대형마트, 면세점에 장시간 노동이 팽배한 상황이었는데, 유통산업 발전법으로 마트 영업시간을 축소한 것을 시작으로, 백화점과 면세점 역시도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투쟁을 벌여갈 것이다. 관심과 연대를 부탁한다.
바쁜 와중에도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경옥 사무처장과 이성종 정책실장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