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이 더 많은 세상으로 향해 가는 핵안보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평가와 반핵평화운동의 과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지난 3월 26-27일 진행됐다. 53개 국가와 국제기구 정상급 인사들을 비롯해 수행원 5천여 명, 행사 관련 인원 4만여 명, 내외신 기자 3,7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의전용 차량만 360여 대가 동원되었다. 핵안보정상회의 뿐만 아니라 250여 차례에 달하는 참가국 정상간 양자회담이 진행되었고, 핵산업계회의와 전문가회의가 부대행사로 열렸다. 정부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은 정상들이 모인 회의’라고 선전하지만 실상 그 회의가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회의장 주변은 높이 2m, 길이 1570m의 담장형 펜스로 차단되고, 주변 도로에는 높이 2.2m, 길이 1882m의 철제 펜스까지 설치되었다. 말이 ‘자발적인 차량운행 2부제’이지 심히 쌍팔년도 올림픽 때를 생각나게 하는 요란스러움에, 외국 정상들을 볼 수 있는 주택과 아파트 등지에 옥상 이용을 자제하고 창문을 열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는 뻔뻔함까지 추가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핵안보정상회의가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전부터 회의장 주변의 노점상은 철거되었고, 강남경찰서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노숙자풍’의 사람들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치안대책을 내놓아 많은 이들의 질타를 받았다.
핵테러를 막고, 핵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해 인류의 평화적인 생존을 보장하겠다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실상 그 생존을 보장받아야 할 사람들의 생존권, 기본적인 권리를 짓밟는 역설. 그것은 핵안보정상회의가 내놓은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더니
정부는 이번 핵안보정상회의가 2010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 말해왔다. 그러나 그리 호들갑을 떨면서 진행한 정상회의의 결과를 보면, 이렇게 많은 정상들이 모여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수준이다.
무기급 핵물질 감축
정부는 현재 전 세계에는 126,000여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이 산재해 있다면서, 이러한 물질을 줄이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정상성명(서울 코뮤니케)을 보자.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고농축우라늄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획을 2013년 말까지 자발적으로 제시하도록 권고하고 있을 뿐, 어떠한 강제조치도 없다.
자발적인 감축의 경우 핵물질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산 고농축우라늄을 제공받았던 국가들로부터 고농축우라늄을 회수하기로 했으며, 헝가리는 사용하지 않은 고농축우라늄을 2013년 중에 러시아로 반환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사용후 고농축우라늄을 미국에 반환 완료했다. 역사를 봤을 때 핵전쟁의 위협을 현실화시켰고, 다른 나라들에 수없이 핵공격 위협을 가했던 나라가 무기급 핵물질을 보관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는 없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34톤의 플루토늄을 처분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핵무기 17,000개에 해당하는 분량이지만, 약 500톤에 달하는 플루토늄 비축량에 비해 감축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전 세계 핵물질 비축량의 90%가 미국과 러시아에 산재해 있지만, 양국은 추가적인 감축목표도 제시하지 않았다.
핵물질의 불법거래 방지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는 ‘개정 핵물질방호협약’을 2014년까지 발효시키기 위해 참가국들의 국내 승인 절차를 촉구했다. 핵물질방호협약은 핵물질의 불법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제안해 1980년에 채택, 1987년에 발효되었으며, 핵물질 관리에 관해서 유일하게 법적 강제력을 지니는 국제협약이다.
2005년 7월, 핵물질방호협약 개정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를 통해 협약의 적용 범위를 국가 간 운반중인 핵물질에서 국내에 소재한 핵물질 및 핵시설에 대한 물리적 방호까지 확대하고, 협약의 적용 대상을 핵물질 생산, 처리, 사용, 취급, 저장, 처분하는 건물 및 장비 일체를 포함하는 핵시설로 확대하는 개정안이 채택되었다.
정부는 2010년에 열린 1차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2년 동안 개정 핵물질방호협약에 20개국이 추가로 비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게 20개국이 늘어난 2012년 4월 현재, 비준국은 55개 나라에 불과하다. 개정 협약의 발효를 위해서는 협약 당사국인 145개국의 2/3인 97개국이 비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수치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핵안보정상회의는 개정 핵물질방호협약이 발효될 수 있도록 참가국들의 협조를 촉구하는 수준에 그침으로써 구속력을 갖는 핵물질 불법거래 방지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실패했다.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의 통합적 접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원자력 안전 조치와 핵안보 조치가 공동의 목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원자력 안전 문제, 방사성 안보는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와 달리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추가된 의제다. 이는 2011년 3월에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따라 핵발전 문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증가한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핵산업계회의(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는 후쿠시마 이후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의 연계 및 증진 방안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시설의 안전 문제를 핵안보와 연결지어 핵시설에 대한 테러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리는 현존하는 핵발전소의 위험이 아니라 아직 발생하지 않은 핵테러로 두려움의 대상을 전화시킨다. 이는 핵시설의 안전을 강조함으로써 핵발전 확대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발간한 홍보책자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위축된 원자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킴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원자력 시장의 지속적이고 안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핵발전 정책을 강화, 확대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또한 핵산업계회의 이후 국내 핵시설에 대한 시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가 이명박 정부의 ‘핵발전소 세일즈’와 깊은 연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핵안보정상회의의 이면
이쯤에서 그렇게 많은 정상들이 모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핵물질 감축이나 방호보다 그들이 열을 올리고 있는 사안이 있다. 그리고 이 사안들을 보면 핵안보정상회의가 실제로 무엇을 노리고 열리는지 알 수 있다.
핵테러 방지를 빌미로 한 군사적 조치의 확산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전 세계의 핵안보를 강화하는데 있어 UN안보리결의 1540호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2010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안보리결의 1540호의 전면적인 이행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안보리결의 1540호에 따라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동 결의안의 전면적인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기술적 지원, 협조 제공 등을 촉구했다.
UN안보리결의 1540호는 2004년 4월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결의안이다. 2003년 9월 UN 총회에서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수출 통제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따라 결의안 1540호가 만들어졌다.
결의안 1540호는 모든 회원국이 핵무기 확산 방지와 수출 통제를 위한 법률의 마련과 집행을 의무화하고 있다. 때문에 결의안 1540호는 국제법적 근거가 없어 ‘깡패짓’이라 비판받아 왔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를 제도화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결의안 1540호를 강조해 핵테러 방지를 위해 세계 각국이 필요한 체제를 갖추도록 요구한다. 이는 PSI로 대표되는 미국의 적극적 반확산 정책의 국제적 수용과 확산을 의미한다.
고농축우라늄 사용 최소화는 핵산업을 지속시키기 위한 고육지책
핵안보정상회의는 ‘기술적,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경우’에, 고농축우라늄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장려한다고 밝혔다. 고농축우라늄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는 주로 두 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고농축우라늄 사용 시설을 저농축우라늄 시설로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존하는 고농축우라늄을 저농축우라늄으로 희석시키는 것이다.
1) 고농축우라늄 시설을 저농축우라늄 시설로 전환하는 방안
이는 앞서 언급한 핵산업계회의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졌다. 그런데 이들의 논의를 보면 저농축우라늄 시설 전환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기술적 측면에서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게 되면 성능이 저하되고 폐기물이 추가 발생한다는 점, 재정적 측면에서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게 되면 비용이 증가하고, 이를 부담할 수 있는 주체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 제도적 측면에서 저농축우라늄 사용을 유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리하자면 고농축우라늄 시설을 저농축우라늄 시설로 전환하게 될 경우 폐기물이 늘어나고 비용이 증가하며, 이러한 전환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부재하다. 지금도 핵발전 국가들은 폐기물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폐연료봉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또 부안 방사성 폐기장 건설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 폐기물 처리장 문제는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핵무기로 전환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의 사용을 줄이면 핵무기 확산을 차단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핵시설의 위험 정도는 다르지 않으며, 그것이 현존하는 핵무기 축소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2) 고농축우라늄 희석
고농축우라늄 사용 저감을 위해 보다 중요한 방안은 고농축우라늄을 희석해 저농축우라늄을 만드는 것이다. 고농축우라늄의 희석을 통한 저농축우라늄으로의 전환은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과 러시아가 추진한 ‘메가톤 투 메가와트’(Megatons to Megawatts) 프로그램이다.
‘메가톤 투 메가와트’ 프로그램은 러시아의 핵무기 해체로 얻어진 고농축우라늄을 저농축우라늄으로 전환해 핵발전소에서 사용하기 위해 1993년 미국과 러시아가 협정을 맺으면서 시작되었다. 1995년부터 러시아의 핵탄두로부터 얻어진 고농축우라늄 400톤이 미국의 핵발전소에 사용되는 저농축우라늄 연료로 전환되었는데, 이는 핵탄두 16,000개 분량에 해당한다. 이 프로그램은 2013년까지 핵탄두에 포함된 핵물질 500톤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미국 민간 전력 사용의 10%가 이 프로그램으로 충당되고 있다.
고농축우라늄을 희석하면 더 많은 양의 저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 우라늄 생산이 하향세로 접어든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우라늄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OECD/NEA(경제협력개발기구 내 핵에너지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그동안 가장 많이 쓰이는 가격대(40$/1kgU 미만)의 우라늄의 확인매장량은 796,000tU(우라늄톤)이다. 2008년 기준으로 세계 우라늄 수요는 연간 59,065tU이므로, 현재 추세대로라면 13년 정도면 저렴한 우라늄이 고갈되어 우라늄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고농축우라늄은 무기로 전용될 수 있어 고농축우라늄 희석은 일정 핵무기 개발을 방지하는 효과를 지니는 것은 사실이나, 우라늄 가격을 안정화시켜 핵발전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림 1] 연간 우라늄 생산과 수요(1945-2007년)
국가-학계-산업계로 이어지는 핵발전 이권 네트워크의 강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서울 핵안보정상회에서는 부대행사로 핵산업계회의와 전문가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핵산업계회의는 핵산업계의 최고경영자들과 핵 관련 국제기구 대표 200여 명이 참석했다. 핵산업계회의는 ‘핵안보 및 원자력 안전 증진을 위한 원자력 산업계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핵산업계의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핵안보정상회의에 건의해 산업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 심포지엄은 핵안보 전문가, 학자, 핵과 관련된 연구소 책임자 등 50개 국가의 160여 명의 전문가가 참석하여 주요 핵안보 이슈, 후쿠시마 이후 핵안보와 안전 연계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핵산업계-전문가-찬핵 관료로 이어진 이른바 ‘핵 마피아’는 핵발전과 관련된 거대한 이권 네트워크로 핵발전의 유지, 확대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세력이다.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들의 핵산업 이권 네트워크는 전에 없이 강고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통령이 나서 핵발전소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며,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발전 확대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어 정부와 핵산업계의 연계가 훨씬 더 강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호전적인 한미 군사동맹의 강화, 확장
3월 25일 저녁, 이명박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로 방한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언제나 그렇듯 양국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북한 위협을 빌미로 군사력 증강과 미국의 군사력 투사를 정당화한다.
더불어 양국은 한미동맹이 한반도를 넘어 범세계적 차원의 전략동맹이며,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략에 있어 핵심적인 위치에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한미동맹을 더욱 현대화하기 위해 6월 양국 외교·국방장관들이 만나 동맹 강화조치를 논의할 계획도 밝혔다. 한미 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미동맹의 광범위한 범세계적 안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말 국회의 사전 동의 없이도 해외파병을 가능하게 하는 일명 ‘PKO 신속 파견법’을 제정하고, 2010년 7월에는 파병전담부대를 만들어 한국 군대가 세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한국 군대가 한반도 방어라는 굴레를 벗고, 미국의 전 세계적 패권 유지의 첨병으로 ‘활약’하게 되는 것이며, ‘한미동맹의 글로벌화’가 완성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또한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었다. 현재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는 한미 미사일 지침에 따라 사거리 300km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대해 일단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단순히 사거리를 늘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MD) 체제를 추진하는 것이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길이라 밝혔다.
미사일 사거리 연장은 필연적으로 주변국들과의 긴장을 조성하고, 또 다른 군사력 증강을 불러오기 때문에 미국에도 부담스런 문제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허용하기보다는 미국의 MD 체제에 편입시킴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군사력 투사를 보다 용이하게 하고, 보다 효과적인 억제 전략을 취하려고 한다. 한국 정부는 겉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이미 상당 부분 MD 체제 편입이 진척되어 있다. 북한의 로켓 발사 직후 보수 언론들은 ‘한국이 이지스함이 있어도 요격 미사일 체제가 부재해 북한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없다’며 미국의 MD 체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렸다. 향후 한국 정부는 미사일 사거리 연장과 함께 미국의 MD 체제 편입하기 위한 무기 도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반핵평화운동의 대응 평가
핵안보정상회의의 문제점에 공감하는 국내 민중·시민운동 진영은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을 결성하고 활동을 진행했다. 대항행동은 2월 15일 발족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대중 강연회, 기자회견을 비롯한 언론 사업, 집중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대항행동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격 규정 및 대응 기조, 활동방식에 대한 이견이 부각되었다. 일부 시민단체는 핵시설의 안전과 핵물질 방호를 강화하고, 핵물질을 감축하는 핵안보 조치 자체는 필요하기 때문에 ‘핵안보정상회의를 반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민중운동 진영은 핵안보정상회의는 핵테러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핵무기 보유국의 패권을 강화하고, 핵발전을 확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차이는 대항행동 명칭과 기조 결정, 선전물 제작, 집회 기획 등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났다. 이는 결국 대항행동의 활동 전반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참가단체들의 결합력이 떨어지고, 구체적인 활동 계획 논의가 지연되면서 집중 행동주간의 결합도 매우 저조하게 진행되었다. 결국 정작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 3월 26일에는 대항행동이 주관하는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고, ‘민중의 힘’을 중심으로 한 민중운동 진영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 진영이 각각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되었다. 대항행동 참가단체들 간 입장 차이가 크게 부각되고 결합도가 떨어지면서 핵안보정상회의의 문제점을 적극 폭로하고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또한 참가단체들의 향후 공동 활동 동인도 축소되었다. 핵안보정상회의 대응을 위한 초동모임부터 결합해 논의를 주도한 단체들 간에는 향후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 문제, 핵무기협약(NWC)에 대한 논의 확대 등 핵안보정상회의 대응 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정상회의 이후 사업을 함께 진행하고자 하는 일정 정도의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대항행동 논의과정에서 참가단체들 간 입장 차이가 크게 부각되고 결합도가 떨어지면서 상호신뢰가 손상되고, 향후 공동 대응 활동의 동인이 축소된 것이다. 결국 대항행동 전체 평가회의에서 향후 활동은 개별 단체들의 의사에 따라 진행하기로 하고 대항행동은 해소하기로 결정했다.
투쟁과제를 중심으로 반핵평화운동의 연대활동을 강화해가자
지난 2월 9일 한국의 핵발전소 고리 1호기 정비 중 전원 상실 사고 발생했으나 이를 한 달여간 이를 은폐했던 사실이 귀 밝은 한 시의원에 의해 밝혀졌다. 수명 연장된 노후 핵발전소는 잦은 고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정부와 핵 산업계는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고 싼 값에 핵발전을 지속하려 한다.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은 경제적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해 민중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며, 핵발전소 자체의 위험을 훨씬 더 크게 증가시킨다.
한국 정부는 2012년 내에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완료하려 한다. 한국 정부는 핵발전소 수출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협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고, 이것은 플루토늄 추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반핵평화운동 진영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핵안보정상회의는 그 규모에 비해 조용히 지나갔다. 총선과 다른 사안들에 묻혔기 때문도 있겠지만, 핵안보정상회의의 의도나 목적, 결과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정상회의가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조용하게 치러진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한국 정부는 핵발전과 핵발전소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또한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물질과 핵무기의 감축보다는 핵테러에 대응하는 일련의 군사적 흐름을 뒷받침하기 위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반핵평화운동 진영은 이번 핵안보정상회의 대응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 문제, 핵안보 조치를 빌미로 한 군사력 증강 문제, 플루토늄 재처리로 이어질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 문제에 반핵운동 진영의 중지를 모으자.
대신 회의장 주변은 높이 2m, 길이 1570m의 담장형 펜스로 차단되고, 주변 도로에는 높이 2.2m, 길이 1882m의 철제 펜스까지 설치되었다. 말이 ‘자발적인 차량운행 2부제’이지 심히 쌍팔년도 올림픽 때를 생각나게 하는 요란스러움에, 외국 정상들을 볼 수 있는 주택과 아파트 등지에 옥상 이용을 자제하고 창문을 열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는 뻔뻔함까지 추가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핵안보정상회의가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전부터 회의장 주변의 노점상은 철거되었고, 강남경찰서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노숙자풍’의 사람들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치안대책을 내놓아 많은 이들의 질타를 받았다.
핵테러를 막고, 핵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해 인류의 평화적인 생존을 보장하겠다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실상 그 생존을 보장받아야 할 사람들의 생존권, 기본적인 권리를 짓밟는 역설. 그것은 핵안보정상회의가 내놓은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더니
정부는 이번 핵안보정상회의가 2010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 말해왔다. 그러나 그리 호들갑을 떨면서 진행한 정상회의의 결과를 보면, 이렇게 많은 정상들이 모여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수준이다.
무기급 핵물질 감축
정부는 현재 전 세계에는 126,000여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이 산재해 있다면서, 이러한 물질을 줄이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정상성명(서울 코뮤니케)을 보자.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고농축우라늄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획을 2013년 말까지 자발적으로 제시하도록 권고하고 있을 뿐, 어떠한 강제조치도 없다.
자발적인 감축의 경우 핵물질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산 고농축우라늄을 제공받았던 국가들로부터 고농축우라늄을 회수하기로 했으며, 헝가리는 사용하지 않은 고농축우라늄을 2013년 중에 러시아로 반환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사용후 고농축우라늄을 미국에 반환 완료했다. 역사를 봤을 때 핵전쟁의 위협을 현실화시켰고, 다른 나라들에 수없이 핵공격 위협을 가했던 나라가 무기급 핵물질을 보관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는 없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34톤의 플루토늄을 처분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핵무기 17,000개에 해당하는 분량이지만, 약 500톤에 달하는 플루토늄 비축량에 비해 감축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전 세계 핵물질 비축량의 90%가 미국과 러시아에 산재해 있지만, 양국은 추가적인 감축목표도 제시하지 않았다.
핵물질의 불법거래 방지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는 ‘개정 핵물질방호협약’을 2014년까지 발효시키기 위해 참가국들의 국내 승인 절차를 촉구했다. 핵물질방호협약은 핵물질의 불법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제안해 1980년에 채택, 1987년에 발효되었으며, 핵물질 관리에 관해서 유일하게 법적 강제력을 지니는 국제협약이다.
2005년 7월, 핵물질방호협약 개정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를 통해 협약의 적용 범위를 국가 간 운반중인 핵물질에서 국내에 소재한 핵물질 및 핵시설에 대한 물리적 방호까지 확대하고, 협약의 적용 대상을 핵물질 생산, 처리, 사용, 취급, 저장, 처분하는 건물 및 장비 일체를 포함하는 핵시설로 확대하는 개정안이 채택되었다.
정부는 2010년에 열린 1차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2년 동안 개정 핵물질방호협약에 20개국이 추가로 비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게 20개국이 늘어난 2012년 4월 현재, 비준국은 55개 나라에 불과하다. 개정 협약의 발효를 위해서는 협약 당사국인 145개국의 2/3인 97개국이 비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수치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핵안보정상회의는 개정 핵물질방호협약이 발효될 수 있도록 참가국들의 협조를 촉구하는 수준에 그침으로써 구속력을 갖는 핵물질 불법거래 방지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실패했다.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의 통합적 접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원자력 안전 조치와 핵안보 조치가 공동의 목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원자력 안전 문제, 방사성 안보는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와 달리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추가된 의제다. 이는 2011년 3월에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따라 핵발전 문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증가한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핵산업계회의(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는 후쿠시마 이후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의 연계 및 증진 방안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시설의 안전 문제를 핵안보와 연결지어 핵시설에 대한 테러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리는 현존하는 핵발전소의 위험이 아니라 아직 발생하지 않은 핵테러로 두려움의 대상을 전화시킨다. 이는 핵시설의 안전을 강조함으로써 핵발전 확대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발간한 홍보책자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위축된 원자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킴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원자력 시장의 지속적이고 안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핵발전 정책을 강화, 확대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또한 핵산업계회의 이후 국내 핵시설에 대한 시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가 이명박 정부의 ‘핵발전소 세일즈’와 깊은 연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핵안보정상회의의 이면
이쯤에서 그렇게 많은 정상들이 모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핵물질 감축이나 방호보다 그들이 열을 올리고 있는 사안이 있다. 그리고 이 사안들을 보면 핵안보정상회의가 실제로 무엇을 노리고 열리는지 알 수 있다.
핵테러 방지를 빌미로 한 군사적 조치의 확산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전 세계의 핵안보를 강화하는데 있어 UN안보리결의 1540호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2010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안보리결의 1540호의 전면적인 이행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안보리결의 1540호에 따라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동 결의안의 전면적인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기술적 지원, 협조 제공 등을 촉구했다.
UN안보리결의 1540호는 2004년 4월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결의안이다. 2003년 9월 UN 총회에서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수출 통제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따라 결의안 1540호가 만들어졌다.
결의안 1540호는 모든 회원국이 핵무기 확산 방지와 수출 통제를 위한 법률의 마련과 집행을 의무화하고 있다. 때문에 결의안 1540호는 국제법적 근거가 없어 ‘깡패짓’이라 비판받아 왔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를 제도화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결의안 1540호를 강조해 핵테러 방지를 위해 세계 각국이 필요한 체제를 갖추도록 요구한다. 이는 PSI로 대표되는 미국의 적극적 반확산 정책의 국제적 수용과 확산을 의미한다.
고농축우라늄 사용 최소화는 핵산업을 지속시키기 위한 고육지책
핵안보정상회의는 ‘기술적,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경우’에, 고농축우라늄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장려한다고 밝혔다. 고농축우라늄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는 주로 두 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고농축우라늄 사용 시설을 저농축우라늄 시설로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존하는 고농축우라늄을 저농축우라늄으로 희석시키는 것이다.
1) 고농축우라늄 시설을 저농축우라늄 시설로 전환하는 방안
이는 앞서 언급한 핵산업계회의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졌다. 그런데 이들의 논의를 보면 저농축우라늄 시설 전환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기술적 측면에서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게 되면 성능이 저하되고 폐기물이 추가 발생한다는 점, 재정적 측면에서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게 되면 비용이 증가하고, 이를 부담할 수 있는 주체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 제도적 측면에서 저농축우라늄 사용을 유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리하자면 고농축우라늄 시설을 저농축우라늄 시설로 전환하게 될 경우 폐기물이 늘어나고 비용이 증가하며, 이러한 전환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부재하다. 지금도 핵발전 국가들은 폐기물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폐연료봉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또 부안 방사성 폐기장 건설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 폐기물 처리장 문제는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핵무기로 전환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의 사용을 줄이면 핵무기 확산을 차단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핵시설의 위험 정도는 다르지 않으며, 그것이 현존하는 핵무기 축소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2) 고농축우라늄 희석
고농축우라늄 사용 저감을 위해 보다 중요한 방안은 고농축우라늄을 희석해 저농축우라늄을 만드는 것이다. 고농축우라늄의 희석을 통한 저농축우라늄으로의 전환은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과 러시아가 추진한 ‘메가톤 투 메가와트’(Megatons to Megawatts) 프로그램이다.
‘메가톤 투 메가와트’ 프로그램은 러시아의 핵무기 해체로 얻어진 고농축우라늄을 저농축우라늄으로 전환해 핵발전소에서 사용하기 위해 1993년 미국과 러시아가 협정을 맺으면서 시작되었다. 1995년부터 러시아의 핵탄두로부터 얻어진 고농축우라늄 400톤이 미국의 핵발전소에 사용되는 저농축우라늄 연료로 전환되었는데, 이는 핵탄두 16,000개 분량에 해당한다. 이 프로그램은 2013년까지 핵탄두에 포함된 핵물질 500톤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미국 민간 전력 사용의 10%가 이 프로그램으로 충당되고 있다.
고농축우라늄을 희석하면 더 많은 양의 저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 우라늄 생산이 하향세로 접어든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우라늄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OECD/NEA(경제협력개발기구 내 핵에너지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그동안 가장 많이 쓰이는 가격대(40$/1kgU 미만)의 우라늄의 확인매장량은 796,000tU(우라늄톤)이다. 2008년 기준으로 세계 우라늄 수요는 연간 59,065tU이므로, 현재 추세대로라면 13년 정도면 저렴한 우라늄이 고갈되어 우라늄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고농축우라늄은 무기로 전용될 수 있어 고농축우라늄 희석은 일정 핵무기 개발을 방지하는 효과를 지니는 것은 사실이나, 우라늄 가격을 안정화시켜 핵발전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림 1] 연간 우라늄 생산과 수요(1945-2007년)
국가-학계-산업계로 이어지는 핵발전 이권 네트워크의 강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서울 핵안보정상회에서는 부대행사로 핵산업계회의와 전문가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핵산업계회의는 핵산업계의 최고경영자들과 핵 관련 국제기구 대표 200여 명이 참석했다. 핵산업계회의는 ‘핵안보 및 원자력 안전 증진을 위한 원자력 산업계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핵산업계의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핵안보정상회의에 건의해 산업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 심포지엄은 핵안보 전문가, 학자, 핵과 관련된 연구소 책임자 등 50개 국가의 160여 명의 전문가가 참석하여 주요 핵안보 이슈, 후쿠시마 이후 핵안보와 안전 연계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핵산업계-전문가-찬핵 관료로 이어진 이른바 ‘핵 마피아’는 핵발전과 관련된 거대한 이권 네트워크로 핵발전의 유지, 확대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세력이다.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들의 핵산업 이권 네트워크는 전에 없이 강고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통령이 나서 핵발전소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며,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발전 확대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어 정부와 핵산업계의 연계가 훨씬 더 강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호전적인 한미 군사동맹의 강화, 확장
3월 25일 저녁, 이명박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로 방한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언제나 그렇듯 양국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북한 위협을 빌미로 군사력 증강과 미국의 군사력 투사를 정당화한다.
더불어 양국은 한미동맹이 한반도를 넘어 범세계적 차원의 전략동맹이며,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략에 있어 핵심적인 위치에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한미동맹을 더욱 현대화하기 위해 6월 양국 외교·국방장관들이 만나 동맹 강화조치를 논의할 계획도 밝혔다. 한미 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미동맹의 광범위한 범세계적 안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말 국회의 사전 동의 없이도 해외파병을 가능하게 하는 일명 ‘PKO 신속 파견법’을 제정하고, 2010년 7월에는 파병전담부대를 만들어 한국 군대가 세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한국 군대가 한반도 방어라는 굴레를 벗고, 미국의 전 세계적 패권 유지의 첨병으로 ‘활약’하게 되는 것이며, ‘한미동맹의 글로벌화’가 완성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또한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었다. 현재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는 한미 미사일 지침에 따라 사거리 300km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대해 일단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단순히 사거리를 늘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MD) 체제를 추진하는 것이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길이라 밝혔다.
미사일 사거리 연장은 필연적으로 주변국들과의 긴장을 조성하고, 또 다른 군사력 증강을 불러오기 때문에 미국에도 부담스런 문제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허용하기보다는 미국의 MD 체제에 편입시킴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군사력 투사를 보다 용이하게 하고, 보다 효과적인 억제 전략을 취하려고 한다. 한국 정부는 겉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이미 상당 부분 MD 체제 편입이 진척되어 있다. 북한의 로켓 발사 직후 보수 언론들은 ‘한국이 이지스함이 있어도 요격 미사일 체제가 부재해 북한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없다’며 미국의 MD 체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렸다. 향후 한국 정부는 미사일 사거리 연장과 함께 미국의 MD 체제 편입하기 위한 무기 도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반핵평화운동의 대응 평가
핵안보정상회의의 문제점에 공감하는 국내 민중·시민운동 진영은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을 결성하고 활동을 진행했다. 대항행동은 2월 15일 발족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대중 강연회, 기자회견을 비롯한 언론 사업, 집중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대항행동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격 규정 및 대응 기조, 활동방식에 대한 이견이 부각되었다. 일부 시민단체는 핵시설의 안전과 핵물질 방호를 강화하고, 핵물질을 감축하는 핵안보 조치 자체는 필요하기 때문에 ‘핵안보정상회의를 반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민중운동 진영은 핵안보정상회의는 핵테러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핵무기 보유국의 패권을 강화하고, 핵발전을 확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차이는 대항행동 명칭과 기조 결정, 선전물 제작, 집회 기획 등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났다. 이는 결국 대항행동의 활동 전반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참가단체들의 결합력이 떨어지고, 구체적인 활동 계획 논의가 지연되면서 집중 행동주간의 결합도 매우 저조하게 진행되었다. 결국 정작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 3월 26일에는 대항행동이 주관하는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고, ‘민중의 힘’을 중심으로 한 민중운동 진영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 진영이 각각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되었다. 대항행동 참가단체들 간 입장 차이가 크게 부각되고 결합도가 떨어지면서 핵안보정상회의의 문제점을 적극 폭로하고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또한 참가단체들의 향후 공동 활동 동인도 축소되었다. 핵안보정상회의 대응을 위한 초동모임부터 결합해 논의를 주도한 단체들 간에는 향후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 문제, 핵무기협약(NWC)에 대한 논의 확대 등 핵안보정상회의 대응 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정상회의 이후 사업을 함께 진행하고자 하는 일정 정도의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대항행동 논의과정에서 참가단체들 간 입장 차이가 크게 부각되고 결합도가 떨어지면서 상호신뢰가 손상되고, 향후 공동 대응 활동의 동인이 축소된 것이다. 결국 대항행동 전체 평가회의에서 향후 활동은 개별 단체들의 의사에 따라 진행하기로 하고 대항행동은 해소하기로 결정했다.
투쟁과제를 중심으로 반핵평화운동의 연대활동을 강화해가자
지난 2월 9일 한국의 핵발전소 고리 1호기 정비 중 전원 상실 사고 발생했으나 이를 한 달여간 이를 은폐했던 사실이 귀 밝은 한 시의원에 의해 밝혀졌다. 수명 연장된 노후 핵발전소는 잦은 고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정부와 핵 산업계는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고 싼 값에 핵발전을 지속하려 한다.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은 경제적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해 민중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며, 핵발전소 자체의 위험을 훨씬 더 크게 증가시킨다.
한국 정부는 2012년 내에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완료하려 한다. 한국 정부는 핵발전소 수출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협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고, 이것은 플루토늄 추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반핵평화운동 진영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핵안보정상회의는 그 규모에 비해 조용히 지나갔다. 총선과 다른 사안들에 묻혔기 때문도 있겠지만, 핵안보정상회의의 의도나 목적, 결과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정상회의가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조용하게 치러진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한국 정부는 핵발전과 핵발전소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또한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물질과 핵무기의 감축보다는 핵테러에 대응하는 일련의 군사적 흐름을 뒷받침하기 위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반핵평화운동 진영은 이번 핵안보정상회의 대응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 문제, 핵안보 조치를 빌미로 한 군사력 증강 문제, 플루토늄 재처리로 이어질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 문제에 반핵운동 진영의 중지를 모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