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총선 투쟁, 노조답게 진행되었는가
민주노총의 총선 대응 평가
4.11 총선이 끝났다. 새누리당이 단독과반을 확보함으로써, 여소야대 정국을 조성하여 노동 관련 악법들을 폐기 또는 개정하겠다는 민주노총의 구상에 심대한 차질이 생겼다. 그러자 당장 총파업의 목표와 수위를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 민주노총 안에서 제출되었다. 투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조건을 국회 내 세력관계로 전제하고, 그것에 투쟁의 성사 여부를 맞춘 결과다. 이는 민주노총의 총선대응 계획이 애초부터 주체적인 역량과 투쟁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데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선거정치적인 해법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는 점을 말해 준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들과, 복수노조와 타임오프로 움츠러드는 현장을 복구해야 할 절박한 과제가 놓여있다. 민주노총의 총선 사업은 과연 눈앞에 놓인 노동자운동의 절박한 과제와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민주노총의 총선 투쟁을 승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으려면, 여소야대의 성사 여부보다는 민주노총이 직면한 절실한 과제와 투쟁을 조금이라도 전진시켰는가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의 총선 투쟁이 실제 노조운동의 투쟁을 강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함으로써, 여소야대가 안 되었으니 실패했고 투쟁이 어려워졌다는 식의 정서가 팽배한 노조운동의 상황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총선 사업의 목표와 활동은 어떠했는가
민주노총은 지난 1월 31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함께 살자! 2012년 총파업 및 총대선 투쟁 승리’를 총목표로 하는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이 사업계획에 따르면 “모든 힘을 2012 총파업 승리, ‘함께 살자! 1-10-100’ 노동관련법 재개정 투쟁의 승리로 모아내”며 “선거투쟁, 의회투쟁과 총파업 투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총파업 승리를 조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구체적인 시기별 흐름은 1시기(4.11 총선까지) 노동의제 쟁점화 및 강력한 대중투쟁을 통해 총선에서 승리하고, 2시기(8월말 총파업까지) 1-10-100 당론 결정을 압박하고 법안통과를 위한 8월말 총파업을 진행하여 노동법 재개정투쟁을 성사시키고, 3시기(대선까지) 노동자민중 총궐기로 대선을 승리하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시기별 계획을 보면 드러나듯, 1-10-100 운동은 총선 승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때 총선승리란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의 원내 과반이상 확보를 의미한다. 즉 민주노총의 2012년 핵심 사업계획은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형성하여 의회권력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한다.
실제 민주노총의 총선 사업계획은 노동법 전면재개정 및 노동기본권 확대, 진보정당의 원내 교섭단체 진출(최소 20석 이상) 및 한미FTA 폐기와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여소야대 정국 조성을 목표로, 진보진영 후보단일화와 야권연대,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 투표 및 세액공제, 당원확대 적극 참여를 주요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통합진보당을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 투표 대상으로 선정하고, 야권연대를 전제로 한 진보진영 후보단일화를 강제하고자 했다. 이러한 총선 방침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통합진보당을 노동자 정당이라 볼 수 있는가, 민주노총이 지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가 민주노총 내부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집행부는 자신들이 총선승리로 규정한 진보정당(정확히 말하자면 통합진보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여소야대 정국 조성을 위해 여러 문제제기와 비판을 묵살하며 총선방침을 밀어붙였다.
이러한 목표 하에 민주노총의 총선 시기 활동은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지지 및 조합원들의 투표 독려와 상층에서의 정책협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민주노총의 활동은 총선‘투쟁’이라기보다는 총선‘선거운동’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포함한 임원들은 총선 기간 내내 통합진보당 선거운동과 야권에 대한 지지를 조직하느라 바빴다. 노조로서 최소한의 집단적인 행동이나 집회조차 없었다. 가장 단적인 예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민주노총의 태도일 것이다. 총선의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3월 30일,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한 22번째 희생자가 나왔고 쌍용차 지부가 대한문 분향소를 중심으로 처절한 투쟁을 전개했지만, 민주통합당의 선거 유세에는 모습을 보였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한문 투쟁의 현장에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쌍용차 투쟁은 1-10-100 캠페인의 핵심 요구 중 하나인 정리해고를 의제로 한 투쟁이었고, 대한문 농성으로 한 사업장에서 정리해고로 인해 22명의 희생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대한 사회적인 충격과 분노가 확산되는 상황이었다. 쌍차 투쟁이 정리해고 금지라는 민주노총 요구를 중심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고 투쟁을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고, 그래야만 했음에도, 총선지원 사업에 매몰된 민주노총 활동 속에서 단위사업장의 투쟁으로 방치되었던 것이다.
노동조합의 선거 투쟁, 노조답게
물론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노동탄압 하에서 매우 위축되어 있는 운동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조금이라도 노동자에게 유리하도록 법·제도 개선을 이루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 정치권을 압박하고 활용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높아진 대중의 분노와 불만이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심판하는 것으로 드러날 수 있고, 이런 판세 변화가 노조법 전면재개정 투쟁의 유리한 국면을 열 수 있다는 낙관적인 예측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선거대응은 노조다운 선거투쟁의 계획이어야 했다. 정리해고로 노동자와 그의 가족 22명이 죽어도 사측과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회, 복수노조가 허용되었지만 실상은 사측이 어용노조를 키워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말살하는 사회, 법원이 정규직이라 판결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는커녕 오히려 해고의 위협으로 내모는 대기업이 가장 잘 나가는 사회가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직면한 현실이었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선거에서 통합진보당과 야권에 대한 지지를 조직하며 선거운동에 헌신할 때, 현장은 사측과 정부의 공세와 탄압,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고통을 이겨낼 수 없다는 패배감 속에 위축되어 오히려 선거와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팽배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의 투쟁을 조직하는 데 헌신하고 그 힘을 전국적인 싸움으로 모아가면서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기댈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민주노총 총선투쟁의 제일 과제였다. 단위 사업장의 노조들이 정부와 사측의 공세에 눌려 투쟁의 엄두조차 내지 못할 때, 민주노총이 전국적인 전선 속에서 이들을 엄호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계획을 보여주면서 아래로부터 투쟁을 조직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 노조다운 선거투쟁의 출발이다. 그리고 이 과제가 실현될 때만이 정치권에 대한 압박이나 활용도 민주노총의 의도대로 가능한 것이다.
노동자 정치투쟁의 심각한 왜곡
민주노총이 노조다운 총선투쟁 계획을 방기한 채 여소야대 정국 조성에 모든 것을 걸면서, 노동자 정치투쟁을 심각하게 왜곡시켰다는 점은 가장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민주노조의 정치투쟁은 단순히 선거에서 표를 대고 특정 정당의 정책을 선택하는 문제로 치환되지 않는다. 민주노조의 정치투쟁은 노동자들만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투쟁도 아니고, 그저 국회나 정당이라는 제도정치 공간 안으로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조 운동은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키면서 사회를 바꿔왔고, 이것이 바로 민주노조의 정치투쟁이었다. 지난날 한국노총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당과 정책연대를 하면서 자신들의 이해만 챙기는 것을 민주노총이 비판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그 차이가 확연히 인식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정치활동을 펼쳤다. 노동중심성이 불분명한 통합진보당을 전적으로 지지·지원했고, 민주통합당과도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소야대 국면을 만들면 노동법 재개정 투쟁에 획기적인 정세가 열릴 수 있다는 선전과 호소에 집중했다. 민주노총의 이번 총선 사업계획은 지역과 현장의 힘을 아래로부터 조직하고 복구하겠다는 계획은 없이 노동자를 어떻게 득표에 효율적으로 동원할 것인가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총선에서 민주노총은 야권의 지지부대, 다수의 유권자를 확보한 특수계층(이익)집단으로 기능했다.
민주노총이 선거에 참여한 정당들과 어느 때보다 밀착된 관계를 가졌음에도, 총선시기 노동 문제가 전혀 쟁점이 되지 않고 노동자들의 존재감 자체도 미미해졌다는 사실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야권단일화와 여소야대 조성을 위해 민주노총은 자신의 요구안을 후퇴시키고 양보를 수용했다.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야권단일화 합의에서 파견법 폐지가 불법파견 금지로, 한미 FTA 폐기가 이명박식 한미 FTA 재협상으로 후퇴했지만, 민주노총은 야권단일화 합의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이를 수용했다. 민주통합당과의 정책협약도 민주노총의 요구안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노동정책(정리해고 금지가 아니라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을 민주노총이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요구를 일정 수준 양보하면서 두 당에 대한 지지와 조합원들의 표를 약속한 순간, 오히려 민주노총의 존재감과 노동의제는 총선에서 사라졌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 모두 노동 문제를 쟁점으로 삼겠다는 전략을 갖지 않았고, 노동 문제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 쟁점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MB 정권 심판’을 위해 야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현안과 요구를 쟁점으로 부각시킬 투쟁이나 힘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총선 지형을 변화시킬 방도도 없었다.
결국 이번 총선은 민주노조운동이 정치투쟁을 유권자 운동, 특정 정당에 대한 표 조직화로 협소화시킬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사회의 변화나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분출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자의 의제조차 제대로 제기하지 못한 채, 한국사회의 권력을 재편하는 정치투쟁의 장에서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결과를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우려스러운 것은 대선을 앞두고 다시금 야권연대를 통한 진보적 정권교체가 민주노총의 주요 목표로 상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계속해서 정치의 문제를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특정 정당의 정책을 선택하는 문제로 협소화시키는 경향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일방적인 총선방침 밀어붙이기와 그 부정적 효과
이번 총선 이후 민주노총의 향후 투쟁과 계획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민주노총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총선방침이 지역과 현장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사실 이번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은 적합한 의결절차와 논의를 거쳐서 결정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결정하면서 ‘민주노동당을 통해 정치세력화한다’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새로 논의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집권세력이었고 지금도 그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과연 국민참여당을 품은 통합진보당이 노동자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냐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민주노동당을 승계한다는 논리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새로운 정치방침으로 삼으려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계획에 반대하며 <3자통합당 배타적지지 반대,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이하 선언운동본부)가 구성되었다.
<선언운동본부>는 신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하여 자본주의를 넘어설 전망을 포기한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고, 따라서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지지 방침을 가질 수 없으며 조합원들의 광범한 토론과 논의를 통해 올바른 노동자정치세력화 방향과 경로를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1천 인 선언운동을 시작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런 문제제기를 의식하여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은 다루지 않고 4.11 총선방침만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기대의원대회에 제출된 4.11 총선방침에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이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 투표’라는 변형된 형태로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민주노총의 정당투표를 정당 지지율이 높은 당으로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곧 통합진보당에 대한 집중 투표를 방침으로 갖겠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정기대의원대회는 성원 미달로 총선방침을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유회되었다. 이후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 ‘반MB 야권연대’와 ‘정당명부 1당 투표’를 기조로 한 총선방침이 표결로 강행처리 되었다. 대의원대회라는 상위 의결기구에서 다루지 못한 안건을, 게다가 조직 내 첨예한 의견 대립이 확인되는 안건을 하위 의결기구인 중집에서 표결로 강행처리한 것은 집행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집행부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대의원들의 임시대의원대회 소집 요청이 있었지만, 집행부는 일사천리로 조합원 여론조사를 통해 통합진보당을 정당명부 1당 투표 정당으로 결정했다.
문제는 이렇게 결정된 총선방침이 지역과 현장에서는 심각한 갈등과 혼란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지역본부들의 대의원대회가 총선방침 때문에 갈등과 파행을 겪었으며, 영남권 노동자 밀집지역에서는 통합진보당, 진보신당의 후보가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노총 집행부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중앙의 방침을 어기고 단결을 해치는 종파적 행위라 비난하지만, 이는 분명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갈등과 이견이 심각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구상과 목표를 위해 대중조직에서 일방적인 방침을 밀어붙이기 한 현 집행부의 책임에서 비롯된 문제다.
이런 가운데 총선이 끝난 이후에도 지역과 현장의 갈등과 앙금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총선 시기 갈등을 이유로 산적한 투쟁의 응집력을 높이고 전국적 전선을 구축하여 총파업을 성사시키겠다는 지역본부들의 의지와 계획을 방기하고 해태하는 지역 산별들이 나타나는 등, 총선방침을 둘러싼 갈등이 투쟁의 원심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마저도 중앙의 방침을 따르지 않은 단위들의 책임이라는 태도로 안일하게 넘긴다면 향후 민주노총의 투쟁전선 구축과 조직 강화는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총파업 성사, 총노동전선 복구에 온 힘을 기울여야
민주노총은 총선 이후에도 8월말 총파업 투쟁은 그대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애초에 8월 파업과 관련된 모든 사업은 통합진보당 원내교섭단체 구성과 여소야대 조성을 대전제로 삼고 계획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실제적인 조직화전략과 투쟁준비 정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나마 통합진보당이 13석을 얻고 민주통합당이 지난 회기보다 의석이 늘었으나, 총선 과정에서 어떤 노동의제도 쟁점화하지 않았다. 여소야대도 실패했고, 실질적인 투쟁준비도 부족하고, 산적한 투쟁과제들에 대한 여론 쟁점화도 이루지 못한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민주노총은 다시 현장과 지역으로부터 노동조합의 힘을 복구하고 투쟁을 조직화하여 묶어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대선에서의 야권연대와 진보적 정권교체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전국에 산적한 투쟁을 투쟁답게 조직하고 전국적 전선으로 묶어내면서 노조의 자신감과 힘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총선을 통해 드러났듯이,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정치권 활용 전술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도 못할뿐더러 지역과 현장 노동자들의 패배감과 사기저하를 심화시킨다는 점을 중요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총선 시기 갈등과 분열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비판적 평가를 겸허히 수용하고, 다시 단결과 투쟁의 동력을 모아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KTX 민영화 저지 투쟁, 간접고용·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사업장들의 투쟁, 6월부터 본격화될 임단투, 주간연속2교대제 투쟁과 같은 여러 투쟁을 어떻게 모아내어 전국적인 투쟁으로 만들 것인가. 8월말 총파업 투쟁의 성사 여부는 바로 여기에 달렸다. 지역과 현장에서는 8월 총파업 투쟁이 성사되기 어렵다는, 그저 또 한 번의 선언으로 그칠 것이라는 정서가 팽배하다.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지역과 현장의 간부들과 함께 총연맹이 나서서 현안 투쟁을 엄호하고 현장을 조직하겠다는 의지와 계획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치투쟁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들과, 복수노조와 타임오프로 움츠러드는 현장을 복구해야 할 절박한 과제가 놓여있다. 민주노총의 총선 사업은 과연 눈앞에 놓인 노동자운동의 절박한 과제와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민주노총의 총선 투쟁을 승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으려면, 여소야대의 성사 여부보다는 민주노총이 직면한 절실한 과제와 투쟁을 조금이라도 전진시켰는가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의 총선 투쟁이 실제 노조운동의 투쟁을 강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함으로써, 여소야대가 안 되었으니 실패했고 투쟁이 어려워졌다는 식의 정서가 팽배한 노조운동의 상황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총선 사업의 목표와 활동은 어떠했는가
민주노총은 지난 1월 31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함께 살자! 2012년 총파업 및 총대선 투쟁 승리’를 총목표로 하는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이 사업계획에 따르면 “모든 힘을 2012 총파업 승리, ‘함께 살자! 1-10-100’ 노동관련법 재개정 투쟁의 승리로 모아내”며 “선거투쟁, 의회투쟁과 총파업 투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총파업 승리를 조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구체적인 시기별 흐름은 1시기(4.11 총선까지) 노동의제 쟁점화 및 강력한 대중투쟁을 통해 총선에서 승리하고, 2시기(8월말 총파업까지) 1-10-100 당론 결정을 압박하고 법안통과를 위한 8월말 총파업을 진행하여 노동법 재개정투쟁을 성사시키고, 3시기(대선까지) 노동자민중 총궐기로 대선을 승리하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시기별 계획을 보면 드러나듯, 1-10-100 운동은 총선 승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때 총선승리란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의 원내 과반이상 확보를 의미한다. 즉 민주노총의 2012년 핵심 사업계획은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형성하여 의회권력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한다.
실제 민주노총의 총선 사업계획은 노동법 전면재개정 및 노동기본권 확대, 진보정당의 원내 교섭단체 진출(최소 20석 이상) 및 한미FTA 폐기와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여소야대 정국 조성을 목표로, 진보진영 후보단일화와 야권연대,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 투표 및 세액공제, 당원확대 적극 참여를 주요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통합진보당을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 투표 대상으로 선정하고, 야권연대를 전제로 한 진보진영 후보단일화를 강제하고자 했다. 이러한 총선 방침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통합진보당을 노동자 정당이라 볼 수 있는가, 민주노총이 지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가 민주노총 내부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집행부는 자신들이 총선승리로 규정한 진보정당(정확히 말하자면 통합진보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여소야대 정국 조성을 위해 여러 문제제기와 비판을 묵살하며 총선방침을 밀어붙였다.
이러한 목표 하에 민주노총의 총선 시기 활동은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지지 및 조합원들의 투표 독려와 상층에서의 정책협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민주노총의 활동은 총선‘투쟁’이라기보다는 총선‘선거운동’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포함한 임원들은 총선 기간 내내 통합진보당 선거운동과 야권에 대한 지지를 조직하느라 바빴다. 노조로서 최소한의 집단적인 행동이나 집회조차 없었다. 가장 단적인 예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민주노총의 태도일 것이다. 총선의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3월 30일,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한 22번째 희생자가 나왔고 쌍용차 지부가 대한문 분향소를 중심으로 처절한 투쟁을 전개했지만, 민주통합당의 선거 유세에는 모습을 보였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한문 투쟁의 현장에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쌍용차 투쟁은 1-10-100 캠페인의 핵심 요구 중 하나인 정리해고를 의제로 한 투쟁이었고, 대한문 농성으로 한 사업장에서 정리해고로 인해 22명의 희생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대한 사회적인 충격과 분노가 확산되는 상황이었다. 쌍차 투쟁이 정리해고 금지라는 민주노총 요구를 중심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고 투쟁을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고, 그래야만 했음에도, 총선지원 사업에 매몰된 민주노총 활동 속에서 단위사업장의 투쟁으로 방치되었던 것이다.
노동조합의 선거 투쟁, 노조답게
물론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노동탄압 하에서 매우 위축되어 있는 운동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조금이라도 노동자에게 유리하도록 법·제도 개선을 이루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 정치권을 압박하고 활용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높아진 대중의 분노와 불만이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심판하는 것으로 드러날 수 있고, 이런 판세 변화가 노조법 전면재개정 투쟁의 유리한 국면을 열 수 있다는 낙관적인 예측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선거대응은 노조다운 선거투쟁의 계획이어야 했다. 정리해고로 노동자와 그의 가족 22명이 죽어도 사측과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회, 복수노조가 허용되었지만 실상은 사측이 어용노조를 키워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말살하는 사회, 법원이 정규직이라 판결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는커녕 오히려 해고의 위협으로 내모는 대기업이 가장 잘 나가는 사회가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직면한 현실이었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선거에서 통합진보당과 야권에 대한 지지를 조직하며 선거운동에 헌신할 때, 현장은 사측과 정부의 공세와 탄압,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고통을 이겨낼 수 없다는 패배감 속에 위축되어 오히려 선거와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팽배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의 투쟁을 조직하는 데 헌신하고 그 힘을 전국적인 싸움으로 모아가면서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기댈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민주노총 총선투쟁의 제일 과제였다. 단위 사업장의 노조들이 정부와 사측의 공세에 눌려 투쟁의 엄두조차 내지 못할 때, 민주노총이 전국적인 전선 속에서 이들을 엄호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계획을 보여주면서 아래로부터 투쟁을 조직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 노조다운 선거투쟁의 출발이다. 그리고 이 과제가 실현될 때만이 정치권에 대한 압박이나 활용도 민주노총의 의도대로 가능한 것이다.
노동자 정치투쟁의 심각한 왜곡
민주노총이 노조다운 총선투쟁 계획을 방기한 채 여소야대 정국 조성에 모든 것을 걸면서, 노동자 정치투쟁을 심각하게 왜곡시켰다는 점은 가장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민주노조의 정치투쟁은 단순히 선거에서 표를 대고 특정 정당의 정책을 선택하는 문제로 치환되지 않는다. 민주노조의 정치투쟁은 노동자들만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투쟁도 아니고, 그저 국회나 정당이라는 제도정치 공간 안으로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조 운동은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키면서 사회를 바꿔왔고, 이것이 바로 민주노조의 정치투쟁이었다. 지난날 한국노총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당과 정책연대를 하면서 자신들의 이해만 챙기는 것을 민주노총이 비판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그 차이가 확연히 인식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정치활동을 펼쳤다. 노동중심성이 불분명한 통합진보당을 전적으로 지지·지원했고, 민주통합당과도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소야대 국면을 만들면 노동법 재개정 투쟁에 획기적인 정세가 열릴 수 있다는 선전과 호소에 집중했다. 민주노총의 이번 총선 사업계획은 지역과 현장의 힘을 아래로부터 조직하고 복구하겠다는 계획은 없이 노동자를 어떻게 득표에 효율적으로 동원할 것인가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총선에서 민주노총은 야권의 지지부대, 다수의 유권자를 확보한 특수계층(이익)집단으로 기능했다.
민주노총이 선거에 참여한 정당들과 어느 때보다 밀착된 관계를 가졌음에도, 총선시기 노동 문제가 전혀 쟁점이 되지 않고 노동자들의 존재감 자체도 미미해졌다는 사실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야권단일화와 여소야대 조성을 위해 민주노총은 자신의 요구안을 후퇴시키고 양보를 수용했다.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야권단일화 합의에서 파견법 폐지가 불법파견 금지로, 한미 FTA 폐기가 이명박식 한미 FTA 재협상으로 후퇴했지만, 민주노총은 야권단일화 합의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이를 수용했다. 민주통합당과의 정책협약도 민주노총의 요구안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노동정책(정리해고 금지가 아니라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을 민주노총이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요구를 일정 수준 양보하면서 두 당에 대한 지지와 조합원들의 표를 약속한 순간, 오히려 민주노총의 존재감과 노동의제는 총선에서 사라졌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 모두 노동 문제를 쟁점으로 삼겠다는 전략을 갖지 않았고, 노동 문제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 쟁점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MB 정권 심판’을 위해 야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현안과 요구를 쟁점으로 부각시킬 투쟁이나 힘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총선 지형을 변화시킬 방도도 없었다.
결국 이번 총선은 민주노조운동이 정치투쟁을 유권자 운동, 특정 정당에 대한 표 조직화로 협소화시킬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사회의 변화나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분출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자의 의제조차 제대로 제기하지 못한 채, 한국사회의 권력을 재편하는 정치투쟁의 장에서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결과를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우려스러운 것은 대선을 앞두고 다시금 야권연대를 통한 진보적 정권교체가 민주노총의 주요 목표로 상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계속해서 정치의 문제를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특정 정당의 정책을 선택하는 문제로 협소화시키는 경향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일방적인 총선방침 밀어붙이기와 그 부정적 효과
이번 총선 이후 민주노총의 향후 투쟁과 계획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민주노총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총선방침이 지역과 현장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사실 이번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은 적합한 의결절차와 논의를 거쳐서 결정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결정하면서 ‘민주노동당을 통해 정치세력화한다’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새로 논의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집권세력이었고 지금도 그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과연 국민참여당을 품은 통합진보당이 노동자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냐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민주노동당을 승계한다는 논리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새로운 정치방침으로 삼으려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계획에 반대하며 <3자통합당 배타적지지 반대,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이하 선언운동본부)가 구성되었다.
<선언운동본부>는 신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하여 자본주의를 넘어설 전망을 포기한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고, 따라서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지지 방침을 가질 수 없으며 조합원들의 광범한 토론과 논의를 통해 올바른 노동자정치세력화 방향과 경로를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1천 인 선언운동을 시작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런 문제제기를 의식하여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은 다루지 않고 4.11 총선방침만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기대의원대회에 제출된 4.11 총선방침에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이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 투표’라는 변형된 형태로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민주노총의 정당투표를 정당 지지율이 높은 당으로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곧 통합진보당에 대한 집중 투표를 방침으로 갖겠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정기대의원대회는 성원 미달로 총선방침을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유회되었다. 이후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 ‘반MB 야권연대’와 ‘정당명부 1당 투표’를 기조로 한 총선방침이 표결로 강행처리 되었다. 대의원대회라는 상위 의결기구에서 다루지 못한 안건을, 게다가 조직 내 첨예한 의견 대립이 확인되는 안건을 하위 의결기구인 중집에서 표결로 강행처리한 것은 집행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집행부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대의원들의 임시대의원대회 소집 요청이 있었지만, 집행부는 일사천리로 조합원 여론조사를 통해 통합진보당을 정당명부 1당 투표 정당으로 결정했다.
문제는 이렇게 결정된 총선방침이 지역과 현장에서는 심각한 갈등과 혼란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지역본부들의 대의원대회가 총선방침 때문에 갈등과 파행을 겪었으며, 영남권 노동자 밀집지역에서는 통합진보당, 진보신당의 후보가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노총 집행부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중앙의 방침을 어기고 단결을 해치는 종파적 행위라 비난하지만, 이는 분명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갈등과 이견이 심각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구상과 목표를 위해 대중조직에서 일방적인 방침을 밀어붙이기 한 현 집행부의 책임에서 비롯된 문제다.
이런 가운데 총선이 끝난 이후에도 지역과 현장의 갈등과 앙금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총선 시기 갈등을 이유로 산적한 투쟁의 응집력을 높이고 전국적 전선을 구축하여 총파업을 성사시키겠다는 지역본부들의 의지와 계획을 방기하고 해태하는 지역 산별들이 나타나는 등, 총선방침을 둘러싼 갈등이 투쟁의 원심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마저도 중앙의 방침을 따르지 않은 단위들의 책임이라는 태도로 안일하게 넘긴다면 향후 민주노총의 투쟁전선 구축과 조직 강화는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총파업 성사, 총노동전선 복구에 온 힘을 기울여야
민주노총은 총선 이후에도 8월말 총파업 투쟁은 그대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애초에 8월 파업과 관련된 모든 사업은 통합진보당 원내교섭단체 구성과 여소야대 조성을 대전제로 삼고 계획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실제적인 조직화전략과 투쟁준비 정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나마 통합진보당이 13석을 얻고 민주통합당이 지난 회기보다 의석이 늘었으나, 총선 과정에서 어떤 노동의제도 쟁점화하지 않았다. 여소야대도 실패했고, 실질적인 투쟁준비도 부족하고, 산적한 투쟁과제들에 대한 여론 쟁점화도 이루지 못한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민주노총은 다시 현장과 지역으로부터 노동조합의 힘을 복구하고 투쟁을 조직화하여 묶어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대선에서의 야권연대와 진보적 정권교체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전국에 산적한 투쟁을 투쟁답게 조직하고 전국적 전선으로 묶어내면서 노조의 자신감과 힘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총선을 통해 드러났듯이,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정치권 활용 전술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도 못할뿐더러 지역과 현장 노동자들의 패배감과 사기저하를 심화시킨다는 점을 중요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총선 시기 갈등과 분열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비판적 평가를 겸허히 수용하고, 다시 단결과 투쟁의 동력을 모아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KTX 민영화 저지 투쟁, 간접고용·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사업장들의 투쟁, 6월부터 본격화될 임단투, 주간연속2교대제 투쟁과 같은 여러 투쟁을 어떻게 모아내어 전국적인 투쟁으로 만들 것인가. 8월말 총파업 투쟁의 성사 여부는 바로 여기에 달렸다. 지역과 현장에서는 8월 총파업 투쟁이 성사되기 어렵다는, 그저 또 한 번의 선언으로 그칠 것이라는 정서가 팽배하다.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지역과 현장의 간부들과 함께 총연맹이 나서서 현안 투쟁을 엄호하고 현장을 조직하겠다는 의지와 계획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치투쟁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