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딛고 노동해방 그날에 꼭 살리라
지난 4월 8일 경주역 인근 한 후보의 유세장에 검은 상복을 입은 네 명의 여성들이 나타났다. 전재숙, 김영덕, 권명숙, 유영숙. 용산참사로 남편을 잃은 유가족들이었다. 이들이 경주에 내려간 것은 용산 진압작전을 총지휘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김석기 후보의 출마의 변은 “용산 진압은 정당했고, (새누리당이) 국민을 지킨 나를 낙천시켰다”는 것이었다. 1년간의 장례 끝에 겨우 탈상할 수 있었던 유가족들이 2년 만에 다시 상복을 챙겨 입고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유가족들은 ‘후보직을 사퇴하라’며 다가섰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선거운동원과 경찰이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다. 김석기 후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고 유세를 시작했다. 유가족을 지근거리에 두고 유세차량에 오른 김석기 후보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로서 불법점거 사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며 진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유가족의 울분에 찬 항의가 이어지자 그도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수도 지방경찰청장으로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경주의 아들, 당선된 후 새누리당으로 돌아가 박근혜 대표를 도와 경주 발전에 힘쓰겠습니다.”
일말의 반성의 기미는커녕 금의환향이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범법자인 김석기는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고, 철거민들은 옥살이를 하고 있다. 김석기가 구속돼야 한다”는 유가족들의 호소가 두려웠던 것일까. 김석기 후보 측은 이날 ‘선거운동에서 입은 피해가 심각하다’며 선관위에 조치를 요구했고,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유가족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결과적으로 김석기 후보는 30% 포인트 차이로 육군대장 출신 새누리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지만, 씁쓸한 여운이 남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 지독한 ‘블랙 코미디’랄까, 2009년 용산참사와 함께 공권력의 잔혹성을 낱낱이 드러낸 쌍용자동차 진압이 경찰청 자체 평가에서 최근 3년간 우수 진압사례 5위에 꼽히는 일이 3월에 있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2009년 경기경찰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진압작전을 ‘안전하게’ 완수한 공로로 경찰 총수로 영전한 것을 기리기라도 하듯 말이다. 용산 유가족들이 김석기 전 청장의 후안무치한 모습에 응어리진 가슴을 다시 한 번 쓸어내려야 했듯이, 쌍용차 조합원들은 조현오 청장의 자화자찬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피맺힌 가슴을 두드려야 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쌍용차 노동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했다. 스물두 번째 죽음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현오 청장은 수원 성폭력 살인사건의 책임을 지고 4월 9일 물러났다. 대신 퇴임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사회적 타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증시켜주는 단서를 제공했다. ‘경기경찰청장 시절에 쌍용차 진압작전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해 승인을 얻었고, 진압 이후 대통령으로부터 치하의 전화를 받았다’는. 이로부터 같은 해에 같은 방식으로 진압이 이뤄졌던 용산참사도 같은 이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동시에, 2009년 용산과 쌍용차, 그리고 2012년 제주 강정마을에서 2005년 여의도에서 두 농민을 숨지게 한 살인진압과 2006년 대추리·도두리에서 주민들을 군홧발로 짓밟은 군경의 합동작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05년의 허준영 전 경찰청장과 2006년 어청수 전 경기경찰청장이 각각 국회의원 후보와 청와대 경호처장으로 승승장구하는 현실은 곧 김석기·조현오 전 청장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경찰이 국가 내부의 적을 상대하는, 다시 말해 계급투쟁을 공공연히 수행하는 전투기계라는 사실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여기서 ‘세계화 시대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불법에 무관용으로 대처하겠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그림자가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물두 번째로 동지들 곁을 떠나야했던 쌍용차 이○○ 조합원의 49재가 5월 18일이다. 파업 및 점거농성 3년이 지나도록 삶과 노동의 뿌리를 되찾지 못한 쌍용차 노동자들 앞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다짐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끝내 살리라’의 한 구절이 적절하리라. 해방의 땅 금남로에 되살아나리니, 죽음을 딛고 노동해방 그날에 꼭 살리라.
이번 『사회운동』은 [특집]으로 ‘19대 총선 평가와 전망’을 다룬다. 총선 결과를 분석하고 향후 정세를 전망하는 기사와 민주노총 총선 대응을 평가하는 기사, 6-8월 민주노총 총파업 계획을 진단하는 인터뷰 기사로 구성했다.
[기획]에서는 두 개의 주제를 다룬다. 최근 이슈로 떠오른 노동시간 단축 문제와 핵안보정상회의 결과를 비평하는 기사들이다. [지상중계]에서는 충북지역 노동자운동의 역사와 현황을, [인터뷰]에서는 민간서비스 부문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를 다룬다.
[서평]에서는 정당 정치의 위기와 빈민운동의 역사에 관한 저작을 각각 비평, 소개한다. 보건의료운동의 이념·역사·현실을 정리한 [기획연재] 세 번째 기사도 예정대로 실렸다. [지역과 현장]에 실린 각지 회원들의 고민도 일독을 권한다. 서울구치소에서 배달된 손승환 동지의 반가운 편지로 이번 『사회운동』 마지막 페이지를 채웠다.
유가족들은 ‘후보직을 사퇴하라’며 다가섰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선거운동원과 경찰이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다. 김석기 후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고 유세를 시작했다. 유가족을 지근거리에 두고 유세차량에 오른 김석기 후보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로서 불법점거 사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며 진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유가족의 울분에 찬 항의가 이어지자 그도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수도 지방경찰청장으로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경주의 아들, 당선된 후 새누리당으로 돌아가 박근혜 대표를 도와 경주 발전에 힘쓰겠습니다.”
일말의 반성의 기미는커녕 금의환향이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범법자인 김석기는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고, 철거민들은 옥살이를 하고 있다. 김석기가 구속돼야 한다”는 유가족들의 호소가 두려웠던 것일까. 김석기 후보 측은 이날 ‘선거운동에서 입은 피해가 심각하다’며 선관위에 조치를 요구했고,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유가족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결과적으로 김석기 후보는 30% 포인트 차이로 육군대장 출신 새누리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지만, 씁쓸한 여운이 남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 지독한 ‘블랙 코미디’랄까, 2009년 용산참사와 함께 공권력의 잔혹성을 낱낱이 드러낸 쌍용자동차 진압이 경찰청 자체 평가에서 최근 3년간 우수 진압사례 5위에 꼽히는 일이 3월에 있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2009년 경기경찰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진압작전을 ‘안전하게’ 완수한 공로로 경찰 총수로 영전한 것을 기리기라도 하듯 말이다. 용산 유가족들이 김석기 전 청장의 후안무치한 모습에 응어리진 가슴을 다시 한 번 쓸어내려야 했듯이, 쌍용차 조합원들은 조현오 청장의 자화자찬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피맺힌 가슴을 두드려야 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쌍용차 노동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했다. 스물두 번째 죽음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현오 청장은 수원 성폭력 살인사건의 책임을 지고 4월 9일 물러났다. 대신 퇴임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사회적 타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증시켜주는 단서를 제공했다. ‘경기경찰청장 시절에 쌍용차 진압작전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해 승인을 얻었고, 진압 이후 대통령으로부터 치하의 전화를 받았다’는. 이로부터 같은 해에 같은 방식으로 진압이 이뤄졌던 용산참사도 같은 이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동시에, 2009년 용산과 쌍용차, 그리고 2012년 제주 강정마을에서 2005년 여의도에서 두 농민을 숨지게 한 살인진압과 2006년 대추리·도두리에서 주민들을 군홧발로 짓밟은 군경의 합동작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05년의 허준영 전 경찰청장과 2006년 어청수 전 경기경찰청장이 각각 국회의원 후보와 청와대 경호처장으로 승승장구하는 현실은 곧 김석기·조현오 전 청장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경찰이 국가 내부의 적을 상대하는, 다시 말해 계급투쟁을 공공연히 수행하는 전투기계라는 사실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여기서 ‘세계화 시대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불법에 무관용으로 대처하겠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그림자가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물두 번째로 동지들 곁을 떠나야했던 쌍용차 이○○ 조합원의 49재가 5월 18일이다. 파업 및 점거농성 3년이 지나도록 삶과 노동의 뿌리를 되찾지 못한 쌍용차 노동자들 앞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다짐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끝내 살리라’의 한 구절이 적절하리라. 해방의 땅 금남로에 되살아나리니, 죽음을 딛고 노동해방 그날에 꼭 살리라.
이번 『사회운동』은 [특집]으로 ‘19대 총선 평가와 전망’을 다룬다. 총선 결과를 분석하고 향후 정세를 전망하는 기사와 민주노총 총선 대응을 평가하는 기사, 6-8월 민주노총 총파업 계획을 진단하는 인터뷰 기사로 구성했다.
[기획]에서는 두 개의 주제를 다룬다. 최근 이슈로 떠오른 노동시간 단축 문제와 핵안보정상회의 결과를 비평하는 기사들이다. [지상중계]에서는 충북지역 노동자운동의 역사와 현황을, [인터뷰]에서는 민간서비스 부문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를 다룬다.
[서평]에서는 정당 정치의 위기와 빈민운동의 역사에 관한 저작을 각각 비평, 소개한다. 보건의료운동의 이념·역사·현실을 정리한 [기획연재] 세 번째 기사도 예정대로 실렸다. [지역과 현장]에 실린 각지 회원들의 고민도 일독을 권한다. 서울구치소에서 배달된 손승환 동지의 반가운 편지로 이번 『사회운동』 마지막 페이지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