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현장] 우리가 멈추면 교육이 멈춘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을 시작하며
비정규직 백화점이 되어버린 학교
“처음으로 월급에 숫자 1이 찍혔어요. 이 월급명세서 코팅 좀 해다 주세요. 집에 붙여놓게.”
학교에서 10년간 조리사로 일한 한 조합원이 웃으며 말한다. 그녀의 환한 웃음 뒤에 맺힌 피멍과도 같은 현실이 아파 가슴이 먹먹해진다.
20년 전부터 ‘일용잡급직’으로 존재하다가, 이제는 학교회계에서 임금을 지급한다고 하여 ‘학교회계직’이라 불리는 사람들. 교사, 공무원과 달리 호봉이 인정되지 않아 1년 일한 사람이나 10년 일한 사람이나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학교 홈페이지에 뜬 신규채용 광고를 통해 계약해지를 받아들이게 되는 사람들. 그녀들의 이름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다.
전국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에는 15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직종만 50여 개에 달한다. 학교급식을 책임지는 영양사조리사조리원, 과학실험실의 숨은 일꾼인 과학실험실무원, 도서관의 체계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사서, 학교 주요 공문 접수 및 민원처리를 담당하는 교무행정실무원, 장애학생의 교육을 지원하는 특수교육실무원, 저소득층 및 맞벌이 가정의 학생들을 위한 돌봄강사, 방과후 강사, 학교폭력예방과 정서교육을 담당하는 전문상담사 등이 모두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고 가르치는 학교. 바로 그 학교가 차별을 양산해내고 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2월은 이른바 “해고 시즌”으로 불린다. 계약기간 만료를 근거로 무기계약을 회피하는 사례가 다수다. 멀쩡히 일하다가 “공정한 경쟁” 운운하며, 신규채용 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가져오라는 말에 어리둥절해하다가 결국 해고통보를 맞이하게 된다.
무기계약이 되었다 해도 안심하기엔 이르다. 정부에서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분류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과부와 교육청 등에서 해당 사업예산을 삭감하면 자연스럽게 퇴사권유를 받게 된다. 임금 항목이 별도로 책정되어 있지 않고 사업예산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보니, 사용자 측에서는 예산부족을 핑계로 해고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상시적 고용불안은 노동자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상실하게 한다. 교직원 간의 불화를 이유로 재계약을 거부당한 조합원과 함께 학교에 원직복직을 요구하러 간 적이 있었다. 2년 가까이 일한 노동자를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평가기준으로 해고하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오히려 학교장은 너무나 당당하게 “내가 알아서 다 잘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걸 못 믿고 노동조합을 불러오냐”고 조합원을 향해 다그치기 시작했다. 교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합원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기 시작했고, 노동조합 측에서 요구안을 제시하는 내내 그랬다. 심지어 교장과의 면담이 끝난 이후에도 멈출 줄 몰랐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다행히 해고는 막았지만 그것이 문제의 해결일까, 찜찜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조합 사무실로 걸려오는 상담 전화 중 99%는 익명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명을 알려달라고 해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나마 노동조합에 문의를 해 오는 경우는 다행이다. 끙끙대며 혼자 설움을 겪고 있을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8년간 초과근무수당을 단 한 번도 지급하지 않은 학교, 노동절에 일을 시키고도 돈은 줄 수 없다고 우기는 학교. 진짜 문제는 이런 일들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에 가입은 했지만, 차마 학교장과 싸울 엄두는 내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까.
도대체 누가 그녀들을 이런 상황으로 내 몰았나. 도대체 무엇이 그녀들을 고개 숙이게 하는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사람이 사람으로 살기 위한 기본권은 왜 허용되지 않는가. 관리자의 협박 한 번에 덜컥 겁이나 단체로 노동조합 탈퇴를 ‘애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의 영혼까지 바싹 말라가는 기분이다.
성장하는 신규 노동조합, 성과와 극복해야 할 과제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공동의 요구를 통해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지 알 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뭉친다. 2009년 교육감 선거를 기점으로 처우개선에 대한 기대는 일정하게 커져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조직화 성과로 이어졌다.
물론 노동조합다운 활동과 현장 대응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노동자로서 의식 향상과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노동조합에 가입 안한 사람들도 혜택은 똑같이 받는데 뭐 하러 노동조합에 가입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노동조합원들의 이해만 챙기겠다.”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돈을 내면 자동으로 처우개선이 자판기 커피 뽑듯 나오는 줄 아는 현실, 언제든 달려가는 서비스센터처럼 인식되는 현실을 극복할 방법은 현장과 일상에 노동조합 활동을 뿌리내리는 것일 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고민은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지역 노동조합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교육감이 직접 각종 처우개선에 앞장서면서,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매개로만 역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기고 있다. 투쟁 없이 조직된 노동조합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성장하지 않는다. 투쟁을 통해 하나하나 쟁취해가는 지역에서 노동조합 가입률이 급증하고 있는 것에 비해, 면담 한 번으로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지역의 노동조합의 가입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런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교육기관으로서, 사회에서의 자기 역할을 긍정하게 만드는 공간으로서 노동조합의 역할을 적극 확대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의 가치와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에 대한 열망을 실현해가는 기본 단위로서 노동조합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앞서 말한 노동자들의 침묵과 굴종을 조금씩 깨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복수의 노동조합. 그러나 민주노조답게 단결하자
지난 4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그녀들이 저임금과 불안정노동, 권위주의와 부당한 차별에 맞선 싸움을 선포했다. “교육감 직고용, 호봉제 도입, 정규직과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적용, 전 직종 고용안정”이라는 요구를 걸고, 16개 시도교육감을 상대로 첫 임단협 쟁취 투쟁에 나선 것이다. 학교단위로 학교장과의 개별교섭이 이루어진 몇몇 사례가 있었지만,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집단적이고 전국적인 교섭요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있는 강원, 경기, 전남, 광주에서 학교비정규직의 교육감 직접고용을 쟁취하는 성과를 이루면서, 교육감 사용자성을 인정받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전국적 투쟁전선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번 교섭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종 및 업무의 다양성과 개별화되어 있는 현장의 조건을 넘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일한 요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복수로 존재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들도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단결을 위해 지혜를 모아나가는 중이다. 교섭투쟁을 앞두고 공공운수노조(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 지역지부 학비지회)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그리고 전국여성노동조합은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를 구성하여 공동투쟁 결의를 모았다. 교섭요구 공문도 연대회의 이름으로 발송하고 있으며, 공동협약서를 만들어 투쟁의 기본원칙에 대해 합의하고, 세 조직 교섭위원들의 전국 공동연수를 추진하는 등 합력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 23일에는 연대회의 주최로 전국에서 약 6,000여명이 모인 학교비정규직노동자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간 조직편제를 둘러싼 갈등에도 불구하고, 큰 뜻을 모아가는 모습은 매우 소중한 성과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연대회의 참여를 거부하고 단독 교섭을 추진하는 일반노조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 일반노조는 총연맹의 중재와 연대회의 차원의 여러 제안들을 계속 거부하면서, 교섭대표 노조 결정을 위해 지방노동위원회까지 가는 상황을 기어이 만들고야 말았다. 민주노조 공동투쟁의 의미를 훼손한 부끄러운 일이다. 자본과 정권이 만든 복수노조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리는 이런 현실로 인해 실망한 조합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또 다른 지역에서도 근거 없는 타 노조 비방, 조합원 빼가기 등 문제가 발생하여 연대회의가 조정에 나섰다. 과도한 조직화 경쟁과 무원칙한 관행으로 인해 공동투쟁이 와해되지 않도록 단결과 연대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 속에 연대회의가 중심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역의 투쟁으로- 충북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편, 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회는 6월 27일부터 전국적인 쟁의행위 찬반투표 돌입을 선언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에 따라 하반기에는 전국적인 단체행동에 돌입할 수도 있다. 실제로 파업이 조직될 경우, 그 파장이 얼마나 클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학교급식에 차질이 올 것이고, 교무와 행정업무가 마비될 것이며, 교사들도 수업진행의 어려움을 호소하게 될 것이다. 정부와 보수단체 그리고 언론에서는 즉각적인 여론 공세에 들어갈 것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체 역량만으로 버티기에는 쉽지 않은 싸움이다. 각 학교별로 산개되어 있고, 직종별로 다양한 조건에 놓인 학교비정규직의 특성상 대규모 파업 시 개별 조합원에 대한 압력이나 회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급격하게 조직률이 증가한 데 비해 실제 학교 현장에서의 대응력이나 조직력이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 현장에서의 싸움은 일정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때문에 총연맹 지역본부와 산별노조 지역본부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엄호하고 상승시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지역사회의 이해와 지지를 끌어내고, 폭넓은 연대투쟁을 조직하여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싸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전회련본부 충북지부는 7월 2일부터 교육청 앞에 천막투표소를 설치하고 직종별 집회를 릴레이로 이어가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할 것을 결의했다. 우리의 사용자는 교육감임을 분명히 하고, 개별화 되어 있는 현장을 하나로 모아 힘 있게 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함이다. 이런 투쟁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역본부도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지역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현장간부 간담회를 학교비정규직 투쟁일정에 맞추어 제안하고, 7월 13일 지역 총력투쟁 계획을 학교비정규직 투쟁과 맞물리게 할 계획을 수립하는 등 천막 설치 및 이후 투쟁계획에 대해서도 긴밀하게 논의하고 공유하고 있다.
전교조, 공무원노조,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 단위가 함께 모여 구성한 <충북교육노동조합 연석회의> 역시 큰 지원군이 되어 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초 합동 간부 교육을 진행하고, 이번 달에 서로의 이야기를 담은 공동 신문을 발행하는 등 이해와 연대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사실 이러한 소통구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개별 조직, 산별 업종본부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중요한 사업에 대해 일상적으로 지역본부와 공유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다. 지역연대의 중요성을 현장에서부터 실천해 온 충북지역 운동의 건강한 기풍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지침에 따라 각 노조에서 보내온 이기용 충북도교육감의 교섭촉구 서명용지가 매일매일 책상 앞에 놓이는 것을 보며, 지역운동의 희망을 발견한다. 지역운동 안에서 현장 노동자들과 간부들의 성장이 담보될 수 있도록,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에 새로운 활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교류의 장을 만들어야겠다.
노동조합이 희망이다
어느 선선한 저녁, 길을 걷다 “이제서야 노동조합이 뭔지 조금 알겠다. 호봉제도 좋지만, 노동조합이 더 소중한 것 같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우리는 편하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매번 싸워야 되는 거냐.”고 한숨 쉬면서도 누구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투쟁에 임하는 “최강 충북”의 지부장 및 임원들, 뜨거운 여름, 추운 겨울을 가리지 않고 집회 현장에 나와 “투쟁!”을 외치는 조합원들. 그녀들과 함께 이제 진짜 싸움을 시작한다. 어느새 동지라는 말도 하게 되고, 원피스를 입고 아스팔트 바닥 위에 앉는 것도 자연스러워진 그녀들과 지내며, 노동조합이야말로 노동자들의 희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는 중이다. 당당한 노동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남들 앞에 나선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를 느끼게 된다.
올 해, 우리는 투쟁 속에서 또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그것이 직접적인 성과로 이어지든 아니든, 그녀들이 노동조합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기를 기대해본다.
“처음으로 월급에 숫자 1이 찍혔어요. 이 월급명세서 코팅 좀 해다 주세요. 집에 붙여놓게.”
학교에서 10년간 조리사로 일한 한 조합원이 웃으며 말한다. 그녀의 환한 웃음 뒤에 맺힌 피멍과도 같은 현실이 아파 가슴이 먹먹해진다.
20년 전부터 ‘일용잡급직’으로 존재하다가, 이제는 학교회계에서 임금을 지급한다고 하여 ‘학교회계직’이라 불리는 사람들. 교사, 공무원과 달리 호봉이 인정되지 않아 1년 일한 사람이나 10년 일한 사람이나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학교 홈페이지에 뜬 신규채용 광고를 통해 계약해지를 받아들이게 되는 사람들. 그녀들의 이름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다.
전국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에는 15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직종만 50여 개에 달한다. 학교급식을 책임지는 영양사조리사조리원, 과학실험실의 숨은 일꾼인 과학실험실무원, 도서관의 체계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사서, 학교 주요 공문 접수 및 민원처리를 담당하는 교무행정실무원, 장애학생의 교육을 지원하는 특수교육실무원, 저소득층 및 맞벌이 가정의 학생들을 위한 돌봄강사, 방과후 강사, 학교폭력예방과 정서교육을 담당하는 전문상담사 등이 모두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고 가르치는 학교. 바로 그 학교가 차별을 양산해내고 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2월은 이른바 “해고 시즌”으로 불린다. 계약기간 만료를 근거로 무기계약을 회피하는 사례가 다수다. 멀쩡히 일하다가 “공정한 경쟁” 운운하며, 신규채용 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가져오라는 말에 어리둥절해하다가 결국 해고통보를 맞이하게 된다.
무기계약이 되었다 해도 안심하기엔 이르다. 정부에서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분류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과부와 교육청 등에서 해당 사업예산을 삭감하면 자연스럽게 퇴사권유를 받게 된다. 임금 항목이 별도로 책정되어 있지 않고 사업예산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보니, 사용자 측에서는 예산부족을 핑계로 해고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상시적 고용불안은 노동자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상실하게 한다. 교직원 간의 불화를 이유로 재계약을 거부당한 조합원과 함께 학교에 원직복직을 요구하러 간 적이 있었다. 2년 가까이 일한 노동자를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평가기준으로 해고하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오히려 학교장은 너무나 당당하게 “내가 알아서 다 잘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걸 못 믿고 노동조합을 불러오냐”고 조합원을 향해 다그치기 시작했다. 교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합원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기 시작했고, 노동조합 측에서 요구안을 제시하는 내내 그랬다. 심지어 교장과의 면담이 끝난 이후에도 멈출 줄 몰랐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다행히 해고는 막았지만 그것이 문제의 해결일까, 찜찜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조합 사무실로 걸려오는 상담 전화 중 99%는 익명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명을 알려달라고 해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나마 노동조합에 문의를 해 오는 경우는 다행이다. 끙끙대며 혼자 설움을 겪고 있을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8년간 초과근무수당을 단 한 번도 지급하지 않은 학교, 노동절에 일을 시키고도 돈은 줄 수 없다고 우기는 학교. 진짜 문제는 이런 일들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에 가입은 했지만, 차마 학교장과 싸울 엄두는 내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까.
도대체 누가 그녀들을 이런 상황으로 내 몰았나. 도대체 무엇이 그녀들을 고개 숙이게 하는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사람이 사람으로 살기 위한 기본권은 왜 허용되지 않는가. 관리자의 협박 한 번에 덜컥 겁이나 단체로 노동조합 탈퇴를 ‘애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의 영혼까지 바싹 말라가는 기분이다.
성장하는 신규 노동조합, 성과와 극복해야 할 과제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공동의 요구를 통해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지 알 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뭉친다. 2009년 교육감 선거를 기점으로 처우개선에 대한 기대는 일정하게 커져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조직화 성과로 이어졌다.
물론 노동조합다운 활동과 현장 대응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노동자로서 의식 향상과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노동조합에 가입 안한 사람들도 혜택은 똑같이 받는데 뭐 하러 노동조합에 가입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노동조합원들의 이해만 챙기겠다.”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돈을 내면 자동으로 처우개선이 자판기 커피 뽑듯 나오는 줄 아는 현실, 언제든 달려가는 서비스센터처럼 인식되는 현실을 극복할 방법은 현장과 일상에 노동조합 활동을 뿌리내리는 것일 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고민은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지역 노동조합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교육감이 직접 각종 처우개선에 앞장서면서,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매개로만 역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기고 있다. 투쟁 없이 조직된 노동조합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성장하지 않는다. 투쟁을 통해 하나하나 쟁취해가는 지역에서 노동조합 가입률이 급증하고 있는 것에 비해, 면담 한 번으로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지역의 노동조합의 가입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런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교육기관으로서, 사회에서의 자기 역할을 긍정하게 만드는 공간으로서 노동조합의 역할을 적극 확대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의 가치와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에 대한 열망을 실현해가는 기본 단위로서 노동조합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앞서 말한 노동자들의 침묵과 굴종을 조금씩 깨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복수의 노동조합. 그러나 민주노조답게 단결하자
지난 4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그녀들이 저임금과 불안정노동, 권위주의와 부당한 차별에 맞선 싸움을 선포했다. “교육감 직고용, 호봉제 도입, 정규직과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적용, 전 직종 고용안정”이라는 요구를 걸고, 16개 시도교육감을 상대로 첫 임단협 쟁취 투쟁에 나선 것이다. 학교단위로 학교장과의 개별교섭이 이루어진 몇몇 사례가 있었지만,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집단적이고 전국적인 교섭요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있는 강원, 경기, 전남, 광주에서 학교비정규직의 교육감 직접고용을 쟁취하는 성과를 이루면서, 교육감 사용자성을 인정받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전국적 투쟁전선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번 교섭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종 및 업무의 다양성과 개별화되어 있는 현장의 조건을 넘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일한 요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복수로 존재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들도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단결을 위해 지혜를 모아나가는 중이다. 교섭투쟁을 앞두고 공공운수노조(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 지역지부 학비지회)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그리고 전국여성노동조합은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를 구성하여 공동투쟁 결의를 모았다. 교섭요구 공문도 연대회의 이름으로 발송하고 있으며, 공동협약서를 만들어 투쟁의 기본원칙에 대해 합의하고, 세 조직 교섭위원들의 전국 공동연수를 추진하는 등 합력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 23일에는 연대회의 주최로 전국에서 약 6,000여명이 모인 학교비정규직노동자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간 조직편제를 둘러싼 갈등에도 불구하고, 큰 뜻을 모아가는 모습은 매우 소중한 성과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연대회의 참여를 거부하고 단독 교섭을 추진하는 일반노조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 일반노조는 총연맹의 중재와 연대회의 차원의 여러 제안들을 계속 거부하면서, 교섭대표 노조 결정을 위해 지방노동위원회까지 가는 상황을 기어이 만들고야 말았다. 민주노조 공동투쟁의 의미를 훼손한 부끄러운 일이다. 자본과 정권이 만든 복수노조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리는 이런 현실로 인해 실망한 조합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또 다른 지역에서도 근거 없는 타 노조 비방, 조합원 빼가기 등 문제가 발생하여 연대회의가 조정에 나섰다. 과도한 조직화 경쟁과 무원칙한 관행으로 인해 공동투쟁이 와해되지 않도록 단결과 연대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 속에 연대회의가 중심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역의 투쟁으로- 충북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편, 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회는 6월 27일부터 전국적인 쟁의행위 찬반투표 돌입을 선언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에 따라 하반기에는 전국적인 단체행동에 돌입할 수도 있다. 실제로 파업이 조직될 경우, 그 파장이 얼마나 클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학교급식에 차질이 올 것이고, 교무와 행정업무가 마비될 것이며, 교사들도 수업진행의 어려움을 호소하게 될 것이다. 정부와 보수단체 그리고 언론에서는 즉각적인 여론 공세에 들어갈 것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체 역량만으로 버티기에는 쉽지 않은 싸움이다. 각 학교별로 산개되어 있고, 직종별로 다양한 조건에 놓인 학교비정규직의 특성상 대규모 파업 시 개별 조합원에 대한 압력이나 회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급격하게 조직률이 증가한 데 비해 실제 학교 현장에서의 대응력이나 조직력이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 현장에서의 싸움은 일정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때문에 총연맹 지역본부와 산별노조 지역본부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엄호하고 상승시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지역사회의 이해와 지지를 끌어내고, 폭넓은 연대투쟁을 조직하여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싸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전회련본부 충북지부는 7월 2일부터 교육청 앞에 천막투표소를 설치하고 직종별 집회를 릴레이로 이어가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할 것을 결의했다. 우리의 사용자는 교육감임을 분명히 하고, 개별화 되어 있는 현장을 하나로 모아 힘 있게 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함이다. 이런 투쟁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역본부도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지역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현장간부 간담회를 학교비정규직 투쟁일정에 맞추어 제안하고, 7월 13일 지역 총력투쟁 계획을 학교비정규직 투쟁과 맞물리게 할 계획을 수립하는 등 천막 설치 및 이후 투쟁계획에 대해서도 긴밀하게 논의하고 공유하고 있다.
전교조, 공무원노조,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 단위가 함께 모여 구성한 <충북교육노동조합 연석회의> 역시 큰 지원군이 되어 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초 합동 간부 교육을 진행하고, 이번 달에 서로의 이야기를 담은 공동 신문을 발행하는 등 이해와 연대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사실 이러한 소통구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개별 조직, 산별 업종본부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중요한 사업에 대해 일상적으로 지역본부와 공유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다. 지역연대의 중요성을 현장에서부터 실천해 온 충북지역 운동의 건강한 기풍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지침에 따라 각 노조에서 보내온 이기용 충북도교육감의 교섭촉구 서명용지가 매일매일 책상 앞에 놓이는 것을 보며, 지역운동의 희망을 발견한다. 지역운동 안에서 현장 노동자들과 간부들의 성장이 담보될 수 있도록,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에 새로운 활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교류의 장을 만들어야겠다.
노동조합이 희망이다
어느 선선한 저녁, 길을 걷다 “이제서야 노동조합이 뭔지 조금 알겠다. 호봉제도 좋지만, 노동조합이 더 소중한 것 같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우리는 편하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매번 싸워야 되는 거냐.”고 한숨 쉬면서도 누구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투쟁에 임하는 “최강 충북”의 지부장 및 임원들, 뜨거운 여름, 추운 겨울을 가리지 않고 집회 현장에 나와 “투쟁!”을 외치는 조합원들. 그녀들과 함께 이제 진짜 싸움을 시작한다. 어느새 동지라는 말도 하게 되고, 원피스를 입고 아스팔트 바닥 위에 앉는 것도 자연스러워진 그녀들과 지내며, 노동조합이야말로 노동자들의 희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는 중이다. 당당한 노동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남들 앞에 나선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를 느끼게 된다.
올 해, 우리는 투쟁 속에서 또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그것이 직접적인 성과로 이어지든 아니든, 그녀들이 노동조합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