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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7-8. 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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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쟁점

정지현 | 노조페미니즘팀
가깝고도 먼 당신, 유통서비스 노동자

지난 6월 19일, 상암 월드컵경기장 옆 공터에서는 홈플러스노조 월드컵 지부의 다섯 번째 생일이 열렸다. 지난 20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이랜드노조 파업 이후 5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처음으로 외박을 하며 동지애를 느끼고 노동자로서의 해방감을 느꼈던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에게 해방구를 만들어줬던 상암동 마트는 여전히 물건을 사러오는 손님들로 붐비고 있고, 여전히 많은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우리는 2007년 투쟁 이후 유통서비스 부문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2007년 투쟁에서는 ‘비정규직법에 의한 해고’ 문제가 가장 시급했으므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어떤 고충을 가지고 노동하고 투쟁하고 있는지 부각되지는 않았고, 우리도 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는 지하철역 한 정거장 간격으로 대형할인마트가 있고, 터미널과 주요 철도역에는 백화점이 있으며, 길거리에서는 발에 차이는 돌맹이만큼 자주 편의점을 만나고, 집에 가서 TV만 틀면 한 채널 건너 홈쇼핑이 펼쳐진다. 이렇게 유통서비스 노동자는 우리 주변 가까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그들을 잘 알지는 못한다.
우리가 투쟁을 통해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존재를 인식한지 5년이 지난 지금, 유통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쟁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후 활동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유통서비스 노동의 최근 쟁점

최근 유통서비스업의 쟁점은 ‘감정노동’의 문제와 ‘영업시간제한’의 문제이다. 유통서비스업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백화점’과 마트라고 불리는 ‘대형(소매)할인점’이다. 백화점의 가장 큰 문제는 장시간노동이며, 대형할인점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의 기간(基幹)노동력화이다. 하지만, 두 영역 모두 공통점으로 서비스노동이라는 점에서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쉴 권리 없이 일한다는 점에서 건강권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감정노동자가 진짜 웃을 수 있는 일터 만들기

① 감정노동의 문제 살펴보기
6월 19일 홈플러스노조 월드컵 지부 출범 5주년 문화제에서 가장 많이 나온 구호는 “감정노동수당 쟁취하자”였다. 감정노동수당 월 10만원 쟁취가 올해 노조 임단협에서도 주요 요구로 다뤄지고 있는데, 물론 한계도 있지만 의미도 있다. 현재 감정노동수당은 서비스업계에서 비행기 승무원부터 시작하여 백화점 화장품 판매직원에게까지 보편화되어 있다. 비슷하게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대형할인마트 직원들도 감정노동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통서비스노동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감정노동이라는 직무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데 있다. 서비스직종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은 노동자들의 심리적 탈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통서비스업 노동자들의 주된 업무가 상품판매와 고객 상담이기 때문에 일의 성격상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스트레스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유통서비스업 노동자들에게 부과되는 월별 판매 목표에 따른 실적부담 역시 감정노동을 가중시키고 스트레스를 높인다. 판매량에 대한 실적 이외에도 감정노동을 끊임없이 체크하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라 불리는 일상적 감시체계가 존재하므로 감정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일상의 감시는 노동자들의 피를 말린다.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또 그 감정노동을 평가받는다. 소위 고객평가단이라는 감시원들이 언제 어디서 평가하고 감시할지 몰라서 항상 긴장해야 한다. 게다가 이 평가의 기준이라는 것이 애매하다. 친절이라는 다소 주관적인 감정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고작 기준이 있는 것은 인사 여부 정도이다. 대형할인점의 경우 어느 매장이나 ‘맞이인사, 전송인사’가 기본 평가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인사 여부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주관적이다. 대형할인마트의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에 있는 모든 매장의 CS평가(고객서비스 평가) 순위를 매겨놓는다. 순위가 하위권인 매장은 직원교육이 강화되거나 다소 엄격한 규율이 생긴다. 전국의 모든 매장뿐 아니라 각 파트별, 개별 직원별 고객평가 내용이 게시되고 언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의 내용은 모두 고객평가단이라는 사람들에 의한 주관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유통서비스업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사업장내 성희롱 문제에 그대로 노출되는 심각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유통서비스업에서 성희롱은 직장 동료나 상사로부터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고객으로부터 발생한다. 대부분이 언어적 성폭력인데, 현재 유통서비스업 대부분 이에 대한 조처가 거의 전무하다. 관련 법률을 재정비하거나 사용자의 적극적인 대응지침 마련이 필요하나 친절을 강조하는 사업장 분위기상 이러한 대책을 마련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② 감정노동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감정노동의 문제는 유통서비스 노동자라면 대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대부분 개별적인 방법에 머무른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가장 많이 하는 방법은 음주와 흡연이다. 2010년 서비스여맹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노동자 삶의 질’ 조사에서도 여성응답자의 흡연율은 한국 여성 평균인 7.1% 보다 5배 높은 35.2%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는 어렵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개인적인 방법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고민들이 나오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대형할인점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이 ‘감정노동수당 10만원’ 쟁취를 임단협 요구로 내건 것이다. 이는 감정노동의 문제를 사회화시키는데 있어 분명 의미있는 활동이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사실 하루 종일 손님의 비위를 맞추고, 때로는 ‘진상고객’을 상대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이는 단지 월 10만원의 수당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의 문제가 아니다. 간 쓸개 다 내놓고 인격을 내다파는 것 같은 노동에 시달리는 유통서비스노동자의 현실을 폭로하는 출발점으로서 감정노동 수당 10만원 쟁취는 의미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한 지속적인 개선이다.

영업시간 제한을 둘러싼 쟁점

① ‘영업시간 제한’은 노동자의 건강권(쉴 권리) 문제
최근 일요일 의무휴업의 문제로 유통업계가 시끌벅적하다. 급기야는 일요일 의무휴업으로 매출이 줄었다며 소송을 낸 대형마트 측에 행정법원이 손을 들어준 일이 발생했다. 서울행정법원이 대형마트, SSM의 영업시간 제한을 규정한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미 유통서비스 시장을 독식한 재벌기업들의 집착으로 아마도 이러한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일요일 의무휴업이 시행된 배경에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있다. 유통산업 발전법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과 노동자 건강권, 대규모 점포와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지자체장이 대규모 점포에 대해 영업시간을 제한(오전 0시~오전 8시)하거나 의무휴업일(매월 1일 이상 2일 이내)을 지정해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다. 또한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입법발의 된 유통산업근로자보호와대규모점포등주변생활환경보호등에관한특별법에서는 대형유통매장은 공휴일과 일요일엔 휴업해야 하고 백화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대형마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사이에만 영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업시간 제한은 대부분 중소영세상인,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전개가 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고 짚어봐야 할 문제는 유통노동자의 건강권의 문제다. 세계 최대의 장시간노동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모든 노동자가 엄청난 노동시간에 허덕이고 있다. 2010년 OECD국가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평균 1,749시간인데, 한국의 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2,109시간 일하는 그리스와 함께 유일하게 2,000시간이 넘는 나라로 악명이 높았다. 유통서비스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② 유통서비스 노동자는 외계인?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싶은 유통노동자
유통서비스업에서 영업시간 제한은 크게 세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일요일 의무휴업 문제로 대두된 주말 영업시간 제한 문제와 둘째로는 연말 명절 세일 기간 등 특정일의 영업시간 제한 문제, 셋째 평일의 야간 영업시간 제한 문제이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정리한다면 ‘휴일노동, 장시간 노동, 심야노동’ 이라 명명할 수 있다.
첫 번째, 일요일 의무휴업의 문제를 보자. 많은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이 공감하는 문제 중의 하나는 인간관계의 축소다. 일요일에도 노동을 해야 하는 유통서비스 노동의 특성상 유통노동자로 일하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가던 등산도 갈 수 없고,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종교 활동을 하기 힘들며, 여러 경조사가 대부분 주말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지인이나 친인척의 결혼식조차 참석하기 힘든 것이 유통노동자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축소된다.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놀 때 놀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존재로 느끼기도 한다. 일례로 메이데이에 근무를 하지 않거나 선거일에 근무하지 않는 일반적인 노동자들과 달리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려야할 시간에도 일을 해야 한다.
둘째로는 연말명절세일 기간 등 특정일의 영업시간 제한 문제이다. 이 장시간 노동의 문제는 아주 고질적이다. 백화점의 경우 세일기간이 되면 이미 일상적이었던 장시간 노동이 더욱 늘어난다. 유통업체간의 과당경쟁으로 인해 백화점과 할인점의 영업시간 연장이 거의 관행화되고 있어, 입점업체 판매사원들은 장시간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상적으로 백화점 화장품 판매사원들은 대부분 아침 8시30분에서 9시 사이에 출근하여, 저녁 8시 정도에 퇴근하지만, 백화점 세일기간이나 주말(금, 토, 일)은 영업시간 연장으로 인해 퇴근이 1시간 이상 연장된다. 게다가 근래에는 백화점의 주 1회 정기휴무마저 거의 사라지고 매장의 인력부족과 맞물려서 백화점 판매사원들은 자신의 휴무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백화점 판매직의 75.7%가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할인마트의 경우 명절 바로 전날 늦은 밤까지 일하고 나면 녹초가 되는데, 대부분 40-50대 기혼여성이 많아, 근무하고 바로 다음날 명절 가사노동까지 겹쳐 그야말로 2중의 고통 속에 놓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명절 당일에도 휴업하지 않는 백화점과 대형할인마트가 있어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고달프다.
세 번째는 평일의 야간 영업시간 문제이다. 이제는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한 때 24시간 영업이나 12시까지 영업하는 매장이 꽤 많았다. 이 심야노동은 그 자체로 노동자의 건강을 갉아먹고, 또 야간까지 일하느라 차가 끊기게 되더라도 그 비용 역시 고스란히 노동자의 부담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심야노동은 노동자의 단결권마저 보장해주지 않는다. 퇴근 후의 회식이나 모임 등 노동자들의 단체 활동 등에도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이러한 문제점을 알리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형할인마트의 경우 ‘연장영업반대’, 백화점의 경우 ‘주 1회 정기휴점제’로 그 요구안이 제출되고 있다.


유통서비스업의 시장구조와 노동자 현황

유통시장에서 감정노동의 문제나 영업시간 규제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통 산업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노동시장 역시 급속한 변화를 겪어왔다. 유통서비스 산업 역시 초민족 자본의 유입과 확장, 인수합병 등의 과정 속에서 고용 불안이 일반화되고 심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국내 유통서비스 산업에서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전개되었으며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유통산업 구조조정과 재벌 독식

1990년대 중후반부터 확대된 한국의 유통시장은 1996년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된 이후 세계 1-2위의 다국적 유통그룹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들어오면서부터 두 차례의 큰 변화를 맞는다. 첫 번째는 1998년 경제위기 전후 유통업체의 도산 등으로 인한 국내 유통업체 간 1차 재편이고, 두 번째는 2000년대 중반에 외국 업체들(월마트와 까르푸)이 철수한 이후 국내 업체들 간의 인수합병(M&A)이다. 이 과정에서 유통업은 재벌그룹이 장악한 지금의 형태로 재편된다.
국내 주요 유통업의 시장 점유율 현황을 보면, 백화점 Big 3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시장 점유율은 2001년 61%, 2003년 74%, 2005년 78%, 2007년 78%, 2009년 81%로 계속 증가하고 있고, 면세점 Big 2 (롯데, 신라 면세점)의 2012년 4월 현재 시장 점유율은 85% 이상이다. 대형할인마트 Big 3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시장점유율은 2001년 52%, 2003년 62%, 2005년 67%, 2007년 76%, 2009년 80%로 나타났다. 결국 현재 유통업의 대부분은 몇몇 소수 재벌에 의해 독과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재벌 대기업에서 골목 상권을 겨냥한 기업형 수퍼마켓(SSM) 형태의 확장과 창고형 할인매장(도매 할인점)까지 등장하여 유통서비스업의 재벌 독식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유통서비스 노동자 현황

① 왜 여성노동자의 문제인가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유통서비스업에는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일부를 제외하면 주로 비정규직의 일자리다. 단순히 일하는 여성노동자들 수가 많다는 것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여성화를 이루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하고 있다.
특히 대형 할인점의 경우 ‘소수의 관리자와 기간노동력화한 다수의 비정규직’ 패턴으로 굴러가고 있는데, 이 다수의 비정규직이 여성노동자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형할인마트의 고용형태를 보면 계산과 판매판촉 부분에서 성별 직무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계산, 판매, 식품, 안내 및 고객서비스 등은 여성들이 대부분 담당하고 있고, 유통업 정규직 남성은 매장관리나 구매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유통업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별반 차이가 없는 노동(8시간 근무)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불안정하다. 1998년 경제위기 이후 기혼여성노동력의 급속한 유입으로 노동력이 남아도는 가운데, 기업은 굳이 높은 임금을 주지 않고,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아도 일하려는 의사를 지닌 이 기혼여성들을 비정규직군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형 할인점의 경우 대다수가 기혼 여성인데, 가사노동이나 육아와 병행하기 위해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적합한 것처럼 포장된다. 이에 점점 유통 서비스업 자체가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구성되고 있다. 또한, 유통업이라는 산업적 성격은 특정 기술을 요구하지 않으며 노동력의 대체가능성이 높은 직종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노동시장 밖에 머물도록 구조화된 기혼여성의 고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② 불안한 고용은 이제 그만!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 대다수의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은 용역업체를 통해 채용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그들이 일하고 있는 해당 유통업체(백화점, 대형할인점)의 노동자라고 생각하며, 또 이들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도 이러한 바탕 위에서 생산되고 평가된다는 점에서 용역업체와 원청 간의 관계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백화점, 대형할인점에 가면 진열대에서 상품을 선전하고 홍보하면서 구매를 권유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보게 된다. 이들 대부분은 상품 제조업체에서 판매를 위해 매장에 파견한 사원들로 유통업체의 직원들은 아니다. 백화점의 경우 직영매장, 수수료 매장, 임대 매장이라는 형태로 구분되어 근무하고 있고, 대형할인점의 경우 해당 상품의 판매대에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다. 이런 노동자를 판촉노동자라고 하는데 판촉노동자는 유통업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비정규직 형태이다. 판촉노동자는 입점업체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유통회사의 요구에 의해 생겨났다. 상품 판매업무를 입점업체에 맡겨서 판매 관련 인건비를 입점업체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유통회사 판매직은 대부분 판촉노동자로 구성된다.
판촉노동자는 근무는 유통업체에서 하고, 임금은 상품제조업체에서 받기 때문에 소속업체와 사용업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파견노동자와 유사하다. 그러나 소속업체가 인력파견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고, 상품을 제조하거나 중개하는 업체라는 점에서 근로자파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법논리상으로 파견노동자와 다르나 판촉노동자는 파견노동자가 겪는 이중의 고통을 똑같이 겪고 있다. 노동시간, 휴일 휴가 사용, 근로감독 등에 있어 대형 할인점의 영향력이 더 크지만, 소속은 상품제조업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외 근로 산정 같은 급여 문제나 승급, 투입매장 선정 같은 인사문제는 상품제조업체에서 관리한다. 이러다 보니 고용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형 할인점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유통업은 산업구조변화와 노동유연화에 의해 비정규직 고용이 증가하고 있는 업종 중 하나이다. 고용현황을 보면 정규직보다 직접고용 비정규직(계약직, 파트타임)과 간접고용 비정규직(파견 및 촉탁 형태) 노동자들이 더 많다. 1998년 경제위기 이후 기존의 정규직 업무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했으며, 유통업 핵심 업무 중 하나인 계산, 판매판촉 업무를 기간제 및 파트타임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유통업체에서도 파견업이 허용된 직종의 경우 대부분의 직무는 간접고용으로 전환되었다. 청소, 경비, 주차안내 등의 업무는 거의 간접고용이다.
최근 건강권(감정노동), 노동시간(영업시간규제) 문제를 중심으로 유통서비스노동의 문제점을 폭로해 왔다면 고용불안(간접고용화)에 대한 쟁점 또한 이후에 이슈화시켜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또한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아우르고 작업장 내에서 서로의 조건을 이해하고 연대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 또한 남아 있는 문제이다.

③ 건강하게 일할 권리
▶ ‘서서 일하는 서비스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앞서 언급한 ‘감정노동’의 문제와 ‘영업시간제한’의 문제 말고도 유통업에는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애초에 의자 놓기 캠페인이 나온 이유도 유통노동자의 건강권 때문이었다. 유통노동자는 제대로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내내 서서 일을 하는데, 장시간 서서 일할 경우 하지정맥류나 관절염 등 질병을 유발할 수 있어서 건강에 상당히 좋지 않다.
2008년부터 진행되어 온 의자놓기 캠페인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가 제공되는 비율은 30%로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실제 근무하면서 의자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거나 또는 보이지 않는 회사의 압력 또는 눈치로 거의 의자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변한 경우가 많아 여전히 풀어야할 문제로 남겨져 있다.
이에 대해 2011년 ‘서비스 노동자 건강권 실현을 위한 캠페인단’은 대형 유통업체가 여성 노동자에게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의자를 제공하는지 감시하고 고발하는 ‘의자 감시단’을 발족하여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또한 서울시가 올해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의 삶을 바꾸는 서울 비전’을 통해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여성 근로자들이 2시간이상 서서 일하지 않고,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제시하기도 했다.

▶ 휴게 공간, 휴게 시간 부족
쉴 공간은 물론 쉴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통 점심시간 외에 하루에 한 번 30분의 휴게시간이 주어지는데,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이는 무척 짧은 시간이다.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쉬려고 작업하던 것 정리하고 휴게공간까지 가서 물이라도 마시고 담배라도 피려고 하면 금방 30분이 가버린다. 고작 의자에 앉아 쉬는 시간은 5분 남짓도 안 된다. 대부분의 사업장 휴게실은 왜 그리 멀리 있는지 잠깐 쉬고 다시 일하러 작업장에 돌아가려면 잠깐 쉬고 나올 수밖에 없다. 휴게 공간도 부족하여, 유통서비스 노동자가 가장 많고 가장 피로한 주말의 경우 휴게실에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부족한 휴게시간과 휴게공간으로 탈의실이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계단 등에서 쉬는 경우도 많다.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 기본적으로 적정한 규모와 거리 등이 모두 보장된 제대로 된 휴게공간과 휴게시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④ 저임금 노동
유통업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007년 8월 기준으로 93만 원(남성비정규직 120만 원, 여성정규직 145만 원, 남성정규직 216만 원)으로 소매업 전체 평균 임금 117만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유통서비스 노동자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앞서 살펴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통서비스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은 미진하지만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가 많이 진행되어야 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유통서비스 노동자를 가깝고도 먼 당신이 아닌 가까운 존재로 만들어가기 위한 방안 역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유통서비스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고민들

① 조직화의 계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은 일상적인 현장 투쟁을 벌이기가 쉽지 않은데, 유통서비스 부문도 마찬가지이다. 갑작스런 해고가 아니면 일상적인 어려움으로 투쟁이 조작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 노동조건의 어려움을 감내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고용문제가 아닌 근무조건의 불합리나 임금체불 같은 문제에 있어서 투쟁을 조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정규직 노조가 있는 경우 이러한 일상의 투쟁을 만들기가 다소 용이하지만, 노조가 아예 없는 경우는 쉽지 않다. 2000년 이랜드노조의 경우 단기계약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간접고용 노동자도 조합가입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규약을 개정하여 함께 파업에 동참하고 약 20여명의 조합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냈다. 일단 노조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이러한 투쟁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고, 정규직노조는 있으나 규약에 비정규직노동자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공동의 투쟁을 만들어갈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② 지역조직화의 가능성
지역운동의 가능성도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유통서비스노동자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지역 구성원으로서 투쟁을 만들어 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도시의 경우) 지역별로 존재하는 대형 할인점의 경우 지역 운동 단위들이 지역의 성원으로써 결합하고 지역의 이슈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2001년 까르푸 일산점 여성노동자들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로 활동이 미진한 기존 노조를 재조직화하여 노조를 정비했고 지역의 운동 단체와 함께 활동을 펼쳤다. 2007년 비정규직법으로 파업에 들어간 홈플러스 노조(구 홈에버 상암점) 월드컵지부의 경우도 마포 서대문 등의 지역의 운동단체와 주민들의 지지와 연대로 투쟁을 만들어 갔다.
또한, 기존의 정규직 노조가 없는 경우 지역일반노조의 형태로 조직되기도 한다. 2005년 투쟁했던 이마트 수지점 계산원의 경우 경기일반노조로 조직된 사례이다. 물론 무노조를 자랑하는 삼성 계열 회사인 까닭에 사측의 노조 탄압은 심각했다. 2004년 12월 21일 계산원 22명이 경기일반노조에 가입하고 분회 창립총회를 했지만, 사측의 회유 협박 등 극심한 노조탄압으로 창립총회 3일 만에 18명이 탈퇴서를 제출했고 남은 4명이 힘겹게 싸웠다.

③ 업체별 조직화의 사례
현재 할인점 판촉노동자를 노조로 조직한 사례로는 동원F&B 노동조합이 있다. 백화점 입점 업체로는 화장품 업체가 대부분인데, 로레알코리아 노동조합, 샤넬 노동조합, 엘카코리아 노동조합, 클라란스코리아 노동조합 등이 있다.
대형할인점에 유일하게 노조가 결성된 곳은 동원F&B 노조이다. 동원F&B 노조는 상품제조업체에서 결성된 기업별 노조이다. 그래서 유통업체에 노조가 결성되어도 다수를 형성하는 판촉노동자는 다른 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조직대상에서 제외된다. 동원F&B 노조처럼 소속업체 노조를 결성한 경우 가장 큰 어려움은 조합원이나 조직 대상자들이 전국 곳곳의 유통업체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대형할인점에서 한 상품제조업체당 판촉노동자들은 1~3명씩 각 매장별로 흩어져 있다. 이런 상태에서 조합원을 조직하고 조합활동을 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단 유통업체 매장에 배치되면 상품제조업체보다는 유통업체의 지휘 감독 하에 있기 때문에 판촉 노동자의 소속감이 확실하지 않은 것도 소속업체 노조로 조직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된다. 또한 이직이 잦고, 판촉 노동자의 대다수가 40-50대 기혼여성이어서 노조 활동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낮은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백화점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입점업체 종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서비스유통노조’를 만들었지만 아직 가입률이 높지는 않다고 한다.
백화점 노동자들의 경우 입점업체로 구성된 노조로 더 많이 조직되고 있다. 로레알코리아 노동조합, 샤넬 노동조합 등과 같은 백화점 화장품 입점 업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노조가 두드러지고 있다. 백화점 입점업체 중에서도 유독 화장품 업체의 노조 설립이 활발한 이유는, ‘숍마스터’라는 소사장이 매장 직원 1~2명을 고용하고 규모도 영세하며 직원들이 회사에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의류업체와 달리, 업체의 규모가 크고 직원들도 수백에서 수천 명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2004년 샤넬 노동조합 처음 생겨난 이후, 로레알클라란스시세이도 등 유명 업체들에서 해마다 1곳 정도 노조가 결성되어 현재 노조가 결성된 화장품 업체는 8곳에 이른다. 한편, 백화점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대형할인점 판매직 보다는 다소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백화점 입점업체로 구성된 이러한 노조들은 조합원 교육과 각종 집회 참여 등의 집단활동으로 노조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손님은 왕! 그럼 노동자는? - 사회적 시선 바꾸기

소비자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비판하더라도, 유통서비스 분야에 있어서는 소비자의 역할이라는 부분 역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 등의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인식전환이다.
서비스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노동자가 생산한 물건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서비스상품을 바로 판매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노동자는 사용자만이 아니라 소비자와의 제3의 관계가 생긴다는 점에서 제조업 노동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감정노동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 때문인데, 감정노동에 대한 법제화, 감정노동에 대한 사용자들의 각성, 개선책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건전한 소비 의식도 필요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벗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지역사회 시민의 정체성으로 유통서비스 노동자를 대해야 한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의식이 자리 잡아야 감정노동의 쇠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고 감정노동을 끊임없이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의 관행, 그리고 이윤을 위해 이를 더욱 부추기는 자본의 각성이 필요하다. 이제는 ‘손님은 왕’이라는 허위의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가령, 단협에 노사공동 캠페인을 반영하고 소비자 인식전환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가 유통서비스노동자에게 고객응대 매뉴얼을 통한 서비스 교육만 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이용 매뉴얼을 만들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하고 삐뚤어진 욕망을 부추기는 방식의 서비스 산업이 확대되지 않도록 지역사회 운동이나 언론 등을 통한 사회 전반의 건전한 문화 형성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 또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조합에서도 서비스노동에 대한 인식 전환 교육을 하거나 이러한 현실을 알려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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