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조 개정 운동을 제안한다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하라,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하라
총선이 ‘야권연대’의 패배로 끝났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서 고통 받은 국민들 눈에 야권연대가 그다지 차별성이 없어 보인 것이 큰 이유로 보인다. 새누리당마저도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야권연대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보장에 관해 차별성과 진정성 모두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각 산별연맹들이 앞다투어 야당들과 수십 개의 정책협약을 체결했지만 정작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는 핵심의제가 되지 못했다. 노동계의 요구를 빌린 정책과 공약은 난무했지만 정작 이러한 요구가 부각된 것이 아니라 ‘야권연대로 여소야대 정국 창출이 곧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논리가 득세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도시라 하는 울산과 창원에서도 노동자들은 야권연대를 선택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공약과 실제의 차이를 느끼고 있고, 투쟁의 힘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 어느 공약 하나도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논평처럼 “더 많은 투표 참여”, “흔들림 없는 야권연대”가 핵심이 아니라, 어떻게 노동자의 요구를 조직하고 투쟁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 요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금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등은 모두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제도들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조직화와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들은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 그 중에서도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간접고용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핵심요구로 제기한다. 근로계약을 맺고 있건 아니건 실제 노동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자가 책임을 지라는 것, 노동조합이 이들과 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각 정당의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
19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각 정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입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법안을 비롯한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1차 추진법안으로 발의했다. 같은 날 민주통합당도 기간제 사용사유제한을 비롯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렇게 여야 각 정당이 비정규직 문제를 총선 공약으로 비중있게 내놓을 수밖에 없고, 19대 국회에서 우선 다루어야 할 법안으로 발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 일하는 사람들의 민생 문제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거나 그 실효성이 매우 의심되는 것들이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안은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고 간접고용을 지금보다 한층 더 확산시키리라는 점에서 비정규직 양산법안이라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시절 자신들이 한사코 반대했었던 기간제 사용사유제한을 포함한 기간제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기간제 고용보다 더 열악한 간접고용 및 특수고용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책이 없다. 그리고 두 정당 모두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불법파견과 사용자책임 회피에 면죄부
현행법상 타인의 노무를 활용하는 계약형태는 도급과 파견 두 가지 밖에 없다. 원청이 수급인의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관해 지배력을 가지면 근로자파견이요 그렇지 않다면 민법상 도급이 되는 것이다.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면 원청이 그에 합당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고, 도급 관계라면 원칙적으로 원청은 사용자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내하도급법안은 파견도 도급도 아닌 ‘사내하도급’이라는 제3의 지대를 설정하고,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경감시켜 주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사내하도급’은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및 「직업안정법」 위반의 불법적 간접고용이라는 사실이 십 수 년간 지적돼 왔다. 그동안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제조업을 비롯한 청소경비업, 요식숙박업, 유통업, 정보통신업, 금융업, 공공서비스부문의 ‘용역계약’이 사실상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법적 판단을 받았다. 이러한 법적 판단의 정점에 있는 것이 현대차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이다. 사내하도급법안은 이처럼 산업 전반에 만연한 불법파견을 “사내하도급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합법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안: 간접고용은 허용하되 파견노동자는 보호한다?
김대중정권이 파견법을 제정했고, 노무현정권이 그 파견허용업무를 대폭 확대하고 불법파견시 직접고용 의제조항을 직접고용 의무조항으로 사문화시켰다는 사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 공약은 사람장사중간착취를 합법화하는 파견법의 본질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현재 ‘지침’으로 되어 있는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을 파견법에 명시하고, 불법파견시 고용의무조항을 고용의제조항으로 회귀시키자는 것이 민주통합당 공약의 골자이다. 문제는 2006년 파견법 개악으로 인해 ‘불법파견’으로 규제할 영역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한국표준직업분류표상 세세분류로 197개의 직업에서는 파견노동자를 2년 동안 사용할 수 있고, 2년마다 노동자를 교체할 경우 상시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다. 이상의 허용업무 이외의 업무에 있어서도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나 ‘일시적간헐적 인력확보의 필요성’이 있으면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 현행 파견법 하에서 건설공사현장의 업무, 의료인의 업무 등 소수 금지업무를 제외하고는 합법적이고 상시적으로 파견노동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을 잘 구분해내고 불법파견시 직접고용의제를 하겠다는 공약은 사실 그다지 쓰일 데가 없다. 비유하자면 형법상 범죄의 목록을 대폭 줄여 놓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격이다.
과거를 돌아보기: 2004~2006년 기간제법 제정파견법 개악 국면
2004년 이전까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는 90년대 말 이래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투쟁 과정에서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입법 대안’으로서 교육선전의 차원을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면의 전환은 2004년 9월 정부가 기간제단시간 고용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파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시점에 일어났다. 2000년 이래 매년 예고되었던 비정규직 관련 법개악이 드디어 가시화되었고,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이하 전비연)는 즉시 열린우리당 항의점거농성을 조직하여 정부 법안의 본질을 고발하였다.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의 선도 투쟁에 화답하여 민주노총이 2004년 하반기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는 중심 투쟁 요구가 되었다.
그런데 투쟁 국면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이와 동시에 내부에 잠복되어 있던 쟁점들도 드러나게 되었다. 파견법 철폐는 여전히 민주노총의 공식적 입장이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제기되지 않았다. 대신 현행 파견법 유지냐 개악이냐가 실제적인 공방의 지점이 되었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나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는 아예 논의의 대상으로 오르지도 못했다.
2005년 투쟁 과정에서 이러한 동요는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2005년 4월에 열린 노사정대표자교섭에서 양 노총이 수정안을 제출하면서부터 동요는 본격화되었다.(표1 참고) 기간제 고용에서 사유제한원칙을 사실상 포기하고, 파견법 철폐가 아닌 현행 파견법 유지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노동계 단일안’이 교섭석상에서 제안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비연은 민주노총 비정규실장과의 간담회에서 분명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러나 경총의 견해 번복 및 정부의 강경한 입장으로 말미암아 4월 교섭 자체가 파탄나면서 이 문제는 내부적으로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표 1] 2005. 4. 30 민주노총 비정규실과 간담회시 비정규실에서 제출한 노사정 교섭자료
해결되지 못한 쟁점은 2005년 11월 노사대표자교섭이 재개되면서 다시 떠오르게 되었는데, 민주노총이 이른바 ‘4월 교섭내용’에 기초하여 교섭할 것을 주장하면서부터다. 4월 교섭당시 제기하였다가 교섭결렬로 사라졌다던 양 노총 수정안이 노동계의 공식요구로 재등장하였던 것이다. 전비연과 국회 앞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단위들이 이러저러한 통로를 통해 민주노총에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역시 분명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11월 교섭이 파국에 이르고 한국노총시민단체가 일방적으로 최종안을 발표하면서야 비로소 민주노총은 원래의 권리입법요구가 민주노총의 입장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미 논의구도는 기울어졌고 이목희 의원과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의 비겁함을 질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2005년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논의가 진행되면서 단병호 의원이 기간제 사용사유를 대폭 확대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비정규직 주체들을 중심으로 수정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2월 8일 법안심사소위 논의까지 거치면서 정부여당의 법안은 ‘몇 가지 쟁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통과되었다. 이어진 2006년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통과, 법사위 통과, 본회의 통과는 그 때마다 운동진영에 비상동원령을 내리게 했지만 이미 예정된 수순을 밟은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2008년 개원한 18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은 파견법 폐지안 발의조차 하지 않았다.
2000년 이래 민주노총의 공식적 요구는 계속 ‘파견법 폐지간접고용 철폐’였으나 이는 한 번도 공세적으로 제기된 바 없다. “지금시기 파견법 철폐는 불가하다”는 노동운동 진영의 자기검열 속에 처음부터 ‘현행 파견법 유지’가 주장되었고, “지금 특수고용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교섭틀을 깨자는 것”이라는 주장 속에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문제는 교섭의 의제로 오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나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기간제 사유제한 문제와 불법파견시 직접고용의제 문제에서조차도 양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양보안을 제출하였다. 이처럼 운동진영 스스로가 포기할 의사를 내비쳤던 권리입법요구에 대해 정부가 무시하고 사회적 쟁점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적극적 개입이나 공동의 투쟁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현재와 같은 조건이라면 올해의 상황도 그 때와 다르지 않게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
기업이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저임금과 해고의 자유에 있다. 그런데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대해서는 항상 노동자들의 저항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이러한 저항을 통해 일정한 제도적 보호장치를 획득한 것이 ‘정규직’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과 비교할 때 노동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 조직화와 투쟁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법이 실제 작동하도록 만들어 왔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대항하는 전략으로서 자본이 활용한 것이 비정규직 고용형태이다. 비정규직은 단결하고 저항하기 어렵기에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게 되고, 현행 노동법은 비정규직의 이러한 무권리 상태를 묵인해 왔다.
1998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가 대중적으로 진행되면서, 저임금고용불안차별 등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 못지않게 전면에 떠올랐던 문제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였다. 노조 결성과 동시에 자행되는 계약해지폐업 등 사용자의 탄압에 맞서 단결을 유지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였지만, 1996~97 총파업 및 1999년 합법화로 일정한 제도적 발언력을 확보해가고 있었던 민주노총의 상황을 고려하면, “아직도 노동조합 때문에 해고 또는 폐업을 당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만큼 비동시대적 요구로 보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보아도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관련하여 ‘노동조합 인정’ 혹은 ‘노동기본권 보장’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노동기본권의 문제는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자본의 전략의 핵심적 지점과 충돌하는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비정규직이 급격히 확산된 데에는,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탄력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의 요구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정규직을 통해 노동자의 내부 분할을 확대하고 단결을 어렵게 만들고자 하는 자본의 전략이 깔려 있었다. 특히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집중되어 있는 공기업 및 대기업의 경우 조직노동자를 고립시키고 소수화시키려 했던 사용자의 태도가 비정규직 확산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비정규직 조직화가 시작된 곳도 특수고용 부문을 제외하면, 이미 정규직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는 곳부터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에서의 차별뿐만 아니라 기존 노동조합으로부터의 소외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고용을 지키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방법은 실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실질 사용자(원청)에게 요구하는 길뿐이다. 그런데 실질 사용자는 이들의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법상 책임을 거의 완벽히 피해갈 수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포기하도록 갖은 탄압을 하고도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면하고, 단체교섭 요구에도 ‘합법적으로’ 응하지 않을 수 있고, 이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업무방해죄손해배상 등으로 도리어 노동자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계속 실질 사용자를 상대로 싸워 왔기에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승계 내지 직접고용을 쟁취할 수 있었다. 올해만 따져도 인천공항 세관 노동자들이,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들이, 베스킨라빈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리고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의 합의서를 통해 기본적 권리를 쟁취하고 있다.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동법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병가라도 쓸 수 있었던 것은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의 단체협약이 있었기 때문이고,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고 임금체불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노조로 단결했기 때문이고, 최저임금제에 해당하는 표준운임제를 시범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화물연대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야가 내놓은 비정규직 해법은 공통적으로 비정규직 활용은 허용하면서 차별을 줄이겠다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단결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어떠한 차별해소책도 실효성이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이미 1989년부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이 최악인 사회이다. 여성 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이고 7%만이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요구: “노동자에게 권리를! 사용자에게 책임을! 노조법 2조 개정!”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금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모두 다 필요하지만, 핵심은 이런 제도들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고 조직화와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들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관해 고민을 집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 그 중에서도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간접고용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핵심요구로 제기한다. 근로계약을 맺고 있건 아니건 실제 노동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자가 책임을 지라는 것, 노동조합이 이들과 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그 요지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건설기계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건설노조의 예를 들어 보자. 건설현장에서 8시간 노동을 안착시키는 것도, 고질적인 임금체불을 해결하는 것도 오직 노조의 힘이다. 덤프 노동자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로 취급되지만 건설노조의 투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임대료(임금) 지급을 원청 및 발주처가 보장하도록 하는 조례를 확산시키고 있다. 건설노조는 이런 투쟁을 바탕으로 조직을 굴삭기, 펌프카, 크롤라크레인 등 다른 건설기계직종으로 확대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기륭분회,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인천공항 세관분회, 서울일반노조 한일병원분회 등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 투쟁이 원청과의 교섭으로 요구를 쟁취했다.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 역시 원청인 현대차를 상대로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단체교섭 등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할 때 정부와 자본이 활용하는 무기는 이들은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활동을 할 수도 없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며, 설사 단체협약이 체결되더라도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바지사장’을 제치고 실제 사용자인 원청을 상대로 투쟁할 때 이들은 역시 “원청은 노동법상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투쟁을 통해 이런 주장들을 격파해 왔는데, 이제는 입법화를 통해 교두보를 확보할 시점이다. 이 두 가지의 요구는 노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 범위를 현실에 맞게 확대하자는 요구로 집약된다.
여야가 진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비정규직의 노동3권 행사에 제한을 가하는 노조법을 개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노조법 2조의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3권을 보장하고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올해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를 필두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3권 보장과 산재보험 동등적용을 핵심요구로 총력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 홍익대, 전주대 등 용역노동자를 조직한 노조들이 투쟁 중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조직을 정비하고 다시금 정규직화 투쟁을 준비 중이고, 조선업 하청노동자들도 임금삭감산재은폐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이렇게 각각 벌어지고 있는 투쟁들을 지지엄호하면서 또한 결집시키기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요구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민주노총 소속의 특수고용간접고용 노조를 위시한 비정규직 노조단위가 결집하여,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조직해 가자.
이제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논평처럼 “더 많은 투표 참여”, “흔들림 없는 야권연대”가 핵심이 아니라, 어떻게 노동자의 요구를 조직하고 투쟁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 요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금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등은 모두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제도들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조직화와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들은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 그 중에서도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간접고용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핵심요구로 제기한다. 근로계약을 맺고 있건 아니건 실제 노동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자가 책임을 지라는 것, 노동조합이 이들과 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각 정당의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
19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각 정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입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법안을 비롯한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1차 추진법안으로 발의했다. 같은 날 민주통합당도 기간제 사용사유제한을 비롯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렇게 여야 각 정당이 비정규직 문제를 총선 공약으로 비중있게 내놓을 수밖에 없고, 19대 국회에서 우선 다루어야 할 법안으로 발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 일하는 사람들의 민생 문제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거나 그 실효성이 매우 의심되는 것들이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안은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고 간접고용을 지금보다 한층 더 확산시키리라는 점에서 비정규직 양산법안이라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시절 자신들이 한사코 반대했었던 기간제 사용사유제한을 포함한 기간제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기간제 고용보다 더 열악한 간접고용 및 특수고용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책이 없다. 그리고 두 정당 모두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불법파견과 사용자책임 회피에 면죄부
현행법상 타인의 노무를 활용하는 계약형태는 도급과 파견 두 가지 밖에 없다. 원청이 수급인의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관해 지배력을 가지면 근로자파견이요 그렇지 않다면 민법상 도급이 되는 것이다.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면 원청이 그에 합당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고, 도급 관계라면 원칙적으로 원청은 사용자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내하도급법안은 파견도 도급도 아닌 ‘사내하도급’이라는 제3의 지대를 설정하고,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경감시켜 주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사내하도급’은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및 「직업안정법」 위반의 불법적 간접고용이라는 사실이 십 수 년간 지적돼 왔다. 그동안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제조업을 비롯한 청소경비업, 요식숙박업, 유통업, 정보통신업, 금융업, 공공서비스부문의 ‘용역계약’이 사실상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법적 판단을 받았다. 이러한 법적 판단의 정점에 있는 것이 현대차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이다. 사내하도급법안은 이처럼 산업 전반에 만연한 불법파견을 “사내하도급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합법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안: 간접고용은 허용하되 파견노동자는 보호한다?
김대중정권이 파견법을 제정했고, 노무현정권이 그 파견허용업무를 대폭 확대하고 불법파견시 직접고용 의제조항을 직접고용 의무조항으로 사문화시켰다는 사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 공약은 사람장사중간착취를 합법화하는 파견법의 본질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현재 ‘지침’으로 되어 있는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을 파견법에 명시하고, 불법파견시 고용의무조항을 고용의제조항으로 회귀시키자는 것이 민주통합당 공약의 골자이다. 문제는 2006년 파견법 개악으로 인해 ‘불법파견’으로 규제할 영역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한국표준직업분류표상 세세분류로 197개의 직업에서는 파견노동자를 2년 동안 사용할 수 있고, 2년마다 노동자를 교체할 경우 상시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다. 이상의 허용업무 이외의 업무에 있어서도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나 ‘일시적간헐적 인력확보의 필요성’이 있으면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 현행 파견법 하에서 건설공사현장의 업무, 의료인의 업무 등 소수 금지업무를 제외하고는 합법적이고 상시적으로 파견노동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을 잘 구분해내고 불법파견시 직접고용의제를 하겠다는 공약은 사실 그다지 쓰일 데가 없다. 비유하자면 형법상 범죄의 목록을 대폭 줄여 놓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격이다.
과거를 돌아보기: 2004~2006년 기간제법 제정파견법 개악 국면
2004년 이전까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는 90년대 말 이래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투쟁 과정에서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입법 대안’으로서 교육선전의 차원을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면의 전환은 2004년 9월 정부가 기간제단시간 고용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파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시점에 일어났다. 2000년 이래 매년 예고되었던 비정규직 관련 법개악이 드디어 가시화되었고,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이하 전비연)는 즉시 열린우리당 항의점거농성을 조직하여 정부 법안의 본질을 고발하였다.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의 선도 투쟁에 화답하여 민주노총이 2004년 하반기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는 중심 투쟁 요구가 되었다.
그런데 투쟁 국면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이와 동시에 내부에 잠복되어 있던 쟁점들도 드러나게 되었다. 파견법 철폐는 여전히 민주노총의 공식적 입장이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제기되지 않았다. 대신 현행 파견법 유지냐 개악이냐가 실제적인 공방의 지점이 되었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나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는 아예 논의의 대상으로 오르지도 못했다.
2005년 투쟁 과정에서 이러한 동요는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2005년 4월에 열린 노사정대표자교섭에서 양 노총이 수정안을 제출하면서부터 동요는 본격화되었다.(표1 참고) 기간제 고용에서 사유제한원칙을 사실상 포기하고, 파견법 철폐가 아닌 현행 파견법 유지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노동계 단일안’이 교섭석상에서 제안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비연은 민주노총 비정규실장과의 간담회에서 분명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러나 경총의 견해 번복 및 정부의 강경한 입장으로 말미암아 4월 교섭 자체가 파탄나면서 이 문제는 내부적으로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표 1] 2005. 4. 30 민주노총 비정규실과 간담회시 비정규실에서 제출한 노사정 교섭자료
해결되지 못한 쟁점은 2005년 11월 노사대표자교섭이 재개되면서 다시 떠오르게 되었는데, 민주노총이 이른바 ‘4월 교섭내용’에 기초하여 교섭할 것을 주장하면서부터다. 4월 교섭당시 제기하였다가 교섭결렬로 사라졌다던 양 노총 수정안이 노동계의 공식요구로 재등장하였던 것이다. 전비연과 국회 앞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단위들이 이러저러한 통로를 통해 민주노총에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역시 분명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11월 교섭이 파국에 이르고 한국노총시민단체가 일방적으로 최종안을 발표하면서야 비로소 민주노총은 원래의 권리입법요구가 민주노총의 입장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미 논의구도는 기울어졌고 이목희 의원과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의 비겁함을 질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2005년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논의가 진행되면서 단병호 의원이 기간제 사용사유를 대폭 확대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비정규직 주체들을 중심으로 수정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2월 8일 법안심사소위 논의까지 거치면서 정부여당의 법안은 ‘몇 가지 쟁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통과되었다. 이어진 2006년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통과, 법사위 통과, 본회의 통과는 그 때마다 운동진영에 비상동원령을 내리게 했지만 이미 예정된 수순을 밟은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2008년 개원한 18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은 파견법 폐지안 발의조차 하지 않았다.
2000년 이래 민주노총의 공식적 요구는 계속 ‘파견법 폐지간접고용 철폐’였으나 이는 한 번도 공세적으로 제기된 바 없다. “지금시기 파견법 철폐는 불가하다”는 노동운동 진영의 자기검열 속에 처음부터 ‘현행 파견법 유지’가 주장되었고, “지금 특수고용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교섭틀을 깨자는 것”이라는 주장 속에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문제는 교섭의 의제로 오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나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기간제 사유제한 문제와 불법파견시 직접고용의제 문제에서조차도 양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양보안을 제출하였다. 이처럼 운동진영 스스로가 포기할 의사를 내비쳤던 권리입법요구에 대해 정부가 무시하고 사회적 쟁점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적극적 개입이나 공동의 투쟁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현재와 같은 조건이라면 올해의 상황도 그 때와 다르지 않게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
기업이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저임금과 해고의 자유에 있다. 그런데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대해서는 항상 노동자들의 저항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이러한 저항을 통해 일정한 제도적 보호장치를 획득한 것이 ‘정규직’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과 비교할 때 노동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 조직화와 투쟁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법이 실제 작동하도록 만들어 왔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대항하는 전략으로서 자본이 활용한 것이 비정규직 고용형태이다. 비정규직은 단결하고 저항하기 어렵기에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게 되고, 현행 노동법은 비정규직의 이러한 무권리 상태를 묵인해 왔다.
1998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가 대중적으로 진행되면서, 저임금고용불안차별 등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 못지않게 전면에 떠올랐던 문제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였다. 노조 결성과 동시에 자행되는 계약해지폐업 등 사용자의 탄압에 맞서 단결을 유지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였지만, 1996~97 총파업 및 1999년 합법화로 일정한 제도적 발언력을 확보해가고 있었던 민주노총의 상황을 고려하면, “아직도 노동조합 때문에 해고 또는 폐업을 당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만큼 비동시대적 요구로 보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보아도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관련하여 ‘노동조합 인정’ 혹은 ‘노동기본권 보장’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노동기본권의 문제는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자본의 전략의 핵심적 지점과 충돌하는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비정규직이 급격히 확산된 데에는,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탄력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의 요구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정규직을 통해 노동자의 내부 분할을 확대하고 단결을 어렵게 만들고자 하는 자본의 전략이 깔려 있었다. 특히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집중되어 있는 공기업 및 대기업의 경우 조직노동자를 고립시키고 소수화시키려 했던 사용자의 태도가 비정규직 확산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비정규직 조직화가 시작된 곳도 특수고용 부문을 제외하면, 이미 정규직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는 곳부터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에서의 차별뿐만 아니라 기존 노동조합으로부터의 소외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고용을 지키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방법은 실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실질 사용자(원청)에게 요구하는 길뿐이다. 그런데 실질 사용자는 이들의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법상 책임을 거의 완벽히 피해갈 수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포기하도록 갖은 탄압을 하고도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면하고, 단체교섭 요구에도 ‘합법적으로’ 응하지 않을 수 있고, 이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업무방해죄손해배상 등으로 도리어 노동자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계속 실질 사용자를 상대로 싸워 왔기에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승계 내지 직접고용을 쟁취할 수 있었다. 올해만 따져도 인천공항 세관 노동자들이,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들이, 베스킨라빈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리고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의 합의서를 통해 기본적 권리를 쟁취하고 있다.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동법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병가라도 쓸 수 있었던 것은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의 단체협약이 있었기 때문이고,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고 임금체불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노조로 단결했기 때문이고, 최저임금제에 해당하는 표준운임제를 시범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화물연대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야가 내놓은 비정규직 해법은 공통적으로 비정규직 활용은 허용하면서 차별을 줄이겠다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단결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어떠한 차별해소책도 실효성이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이미 1989년부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이 최악인 사회이다. 여성 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이고 7%만이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요구: “노동자에게 권리를! 사용자에게 책임을! 노조법 2조 개정!”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금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모두 다 필요하지만, 핵심은 이런 제도들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고 조직화와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들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관해 고민을 집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 그 중에서도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간접고용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핵심요구로 제기한다. 근로계약을 맺고 있건 아니건 실제 노동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자가 책임을 지라는 것, 노동조합이 이들과 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그 요지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건설기계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건설노조의 예를 들어 보자. 건설현장에서 8시간 노동을 안착시키는 것도, 고질적인 임금체불을 해결하는 것도 오직 노조의 힘이다. 덤프 노동자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로 취급되지만 건설노조의 투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임대료(임금) 지급을 원청 및 발주처가 보장하도록 하는 조례를 확산시키고 있다. 건설노조는 이런 투쟁을 바탕으로 조직을 굴삭기, 펌프카, 크롤라크레인 등 다른 건설기계직종으로 확대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기륭분회,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인천공항 세관분회, 서울일반노조 한일병원분회 등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 투쟁이 원청과의 교섭으로 요구를 쟁취했다.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 역시 원청인 현대차를 상대로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단체교섭 등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할 때 정부와 자본이 활용하는 무기는 이들은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활동을 할 수도 없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며, 설사 단체협약이 체결되더라도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바지사장’을 제치고 실제 사용자인 원청을 상대로 투쟁할 때 이들은 역시 “원청은 노동법상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투쟁을 통해 이런 주장들을 격파해 왔는데, 이제는 입법화를 통해 교두보를 확보할 시점이다. 이 두 가지의 요구는 노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 범위를 현실에 맞게 확대하자는 요구로 집약된다.
여야가 진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비정규직의 노동3권 행사에 제한을 가하는 노조법을 개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노조법 2조의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3권을 보장하고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올해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를 필두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3권 보장과 산재보험 동등적용을 핵심요구로 총력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 홍익대, 전주대 등 용역노동자를 조직한 노조들이 투쟁 중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조직을 정비하고 다시금 정규직화 투쟁을 준비 중이고, 조선업 하청노동자들도 임금삭감산재은폐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이렇게 각각 벌어지고 있는 투쟁들을 지지엄호하면서 또한 결집시키기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요구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민주노총 소속의 특수고용간접고용 노조를 위시한 비정규직 노조단위가 결집하여,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조직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