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총파업,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총선 이후 상황의 변화
민주노총은 2012년 정기 대의원대회를 통해 10대 요구 쟁취를 위한 정치총파업을 공식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경로로 총선을 설정하였다. 즉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거 지원활동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야권이 총선에서 과반수를 점하게 되면 총선에서 민주노총이 행한 역할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제반의 노동관련법 재개정을 강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구상에서 총파업의 위상은 의회 내 입법을 강제하는 압박성 정치파업이었다. 그런데 소위 ‘1-10-100’(한번에 10개 법안을 100일안에 입법)이라고 불렸던 이 계획은 여러 가지 무리수와 변수를 낳았다.
첫째, 민주노총 내부의 반발이다. 이는 작년 말에 민주노동당과 새진보통합연대, 국민참여당이 합당할 때부터 격렬하게 전개되었는데, 민주노총 내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은 ‘3자 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를 건설하여 체계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즉 3자 통합이 국민참여당이라는 신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하는 것이므로 통합된 당을 진보정당으로 볼 수 없고 민주노총은 당연히 이 당에 대한 지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선언운동본부에는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하여 민주노총 내 대부분의 좌파세력들이 참여하였고 이후에 임시대의원대회 소집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둘째, 민주노총 집행부 스스로의 무리수이다. 3자 통합당인 통합진보당에 대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고 외부에서도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러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조직하지 않았다. 총선방침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비례대표 투표방침에 대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성원부족으로 논의하지 못하게 되자 민주노총 집행부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표결로 통합진보당 투표방침을 관철시켰다. 그것도 조합원 의사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전화여론조사를 하고 그에 응답한 2만 4천여 명 가운데 1만 9천여 명이 통합진보당 지지의사를 표시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례투표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민주노총 내의 분열이 없도록 단결을 실현하는 것이 최대의 정치방침이라던 민주노총 위원장의 공언이 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셋째, 야권연대 중심의 총선운동과 총선패배라는 결과이다. 애초 야권연대는 반MB를 최대의 전략으로 설정한 바, 그 외의 담론은 묻혀버렸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박근혜는 MB와 거리를 두면서 반MB의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고 민주당은 선거전략상으로도 지리멸렬을 면치 못했으며 이에 편승한 통합진보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거 이전에는 야권연대가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비전보다 반MB, 민간인사찰 등의 이슈만 앞세운 야권연대는 별다른 쟁점도 만들지 못하고 패배로 귀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를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선거운동에 매달리며 중앙과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운동을 한 것은 민주노총 조합원들로부터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과반을 차지하리라 여겼던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야권연대에 올인했던 민주노총 집행부와 민주노총 내 세력들은 충격에 빠졌다.
넷째, 총선패배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내부 선거부정과 그로 인한 진보진영에 대한 총체적 비난이다. 이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공공연히 행해지던 일들이 국민참여당계의 폭로와 미디어의 확대재생산으로 일파만파 퍼졌고, 그에 따른 통합진보당 내의 내분과 폭력사태는 한 달이 넘도록 한국 사회의 모든 쟁점을 압도하였으며 진보진영에 대한 대중적인 불신을 고조시켰다. 그 와중에 이 문제는 민주노총 내부로도 이어져 각 세력 간에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고 조합원들에게 냉소와 환멸을 가중시켰다.
결국 총선을 전후한 이러한 상황은 민주노총 내의 단결을 약화시켰고 투쟁동력이라든지 조합원의 신뢰마저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왔다. 변화된 상황은 원래 계획을 계속 추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야권이 총선에서 패배한 상황에서, 승리를 전제로 한 1-10-100 계획은 현실성과 추진력을 잃었기 때문에 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10개 법안 쟁취 요구를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악법재개정’이라는 3대 요구로 변경하였다.
소위 ‘묻지마 야권연대’라는 잘못된 전략, 이를 조직 내에서 관철하기 위한 무리한 과정, 야권연대 승리 및 정치적 압박용을 전제로 한 총파업의 상 등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전략적 오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
하지만 민주노총 집행부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와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만들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민주노총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더 이상 나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그렇기에 야권에 기댄 파업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요구를 내걸고 단결을 확대하는 전 사회적인 투쟁이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처지를 살펴보자.
국내 전체 가계부채는 1000조에 달하고, 네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매월 적자 상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시급 5757원(월급 약 120만원) 미만을 받는 저임금노동자는 468만 명이나 된다. 이러한 저임금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매월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자가 가져가는 소득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도 59.2%로 낮아졌고 이는 OECD 평균 70%에 턱없이 모자란다. 전체 노동자 1천764만7천명의 25.7%(454만1천명)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런 소규모 사업장은 일주일에 단 하루만 쉬거나 365일 휴무 없이 운영되는 곳이 태반이다. 한 달에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업체가 63만4천개(28.3%)에 이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2012년 3월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은 47.8%(833만 명)이고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은 49.7%에 그치고 있다.
총파업 투쟁에 나선 화물연대, 건설노조의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극악한 생존권 말살 상황에 노동자들이 놓여 있다. 화물연대의 경우 하루 15시간을 일해도 실질적으로 최저임금 이하를 버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는 기름값의 폭등도 원인이지만 정부가 스스로 약속한 표준운임제도 실시하지 않는 등 노동배제노동탄압민중생존 외면 정책이 주된 원인이다. 건설노조에서 총파업 투쟁에 나선 이유도 고질적인 임금체불로 인해 건설일용노동자, 건설기계노동자 등의 체불임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4대강 공사 등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한 관급 공사들에서 급격히 늘어났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은 2011년에 1660억 원에 달한다. 처음으로 교육감을 대상으로 임단협 투쟁에 나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도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기본급이 똑같은 현실”에 15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놓여있다는 기막힌 상황을 폭로하고 있다.
최근 구로디지털단지 전략조직화사업단인 ‘노동자의 미래’에서는 구로지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노동 이제그만’ 집중 캠페인을 벌였는데, 유인물을 뿌리기가 무섭게 받아가는가 하면 노동자들에게서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즉 다수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상태와 노동상태가 노동자들이 참고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도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특히 복수노조를 활용한 민주노조 탄압은 자본측이 공공연히 휘두르는 무기가 되었다. 각 지역의 여러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고, 공공운수노조 소속의 대학청소비정규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사측은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공작을 하여 어용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탄압하여 노조에서 탈퇴시켜 어용노조에 가입시킨다. 이렇게 어용노조를 다수노조로 만든 후 민주노조의 교섭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민주노조를 고사시키는 경우가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단결하고 연대하여 이러한 탄압을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연말 대선을 고려했을 때에도 그러하다. 총선에서 실패한 무조건적 야권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스스로의 정확한 요구를 제기하고 그 요구로써 노동자 대중을 조직해나가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거의 실종되다시피 한 노동자의 집단적 목소리와 힘을 키우는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총파업, 어떻게?
민주노총은 현재 8월 말 정치총파업을 상정하고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악법 재개정’을 주요 요구로 하고 있다. 8월 총파업의 의의로 민주노총은 노동중심 진보의제와 담론의 주도적 확산, 하반기 이후 주요 의제에 대한 공세적 전선형성을 위한 전환점 마련, 민주노총 발전전망과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추동력 확보의 계기를 들고 있고, 입법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야권-양노총 입법 논의기구로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야당-양노총 공동대책위원회(가)’(노동법공대위)를 제안하고 있다. 이 틀에서 최저임금,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 노조법 등에 관한 연속 국회토론회를 열어 이슈화를 꾀하고, 한축으로는 비정규직 철폐 1천만 서명운동 등을 통해 사회적 연대전선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총파업의 목표로는 주요법안 관철, 사내하도급법 등 개악법안 저지, 민주노총의 정치투쟁력 복원과 사회정치적 위상제고 등이 제시되고 있고 파업의 상은 독자적인 정치파업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화물연대, 건설노조의 파업에 이어 6월 28일 경고파업 집회, 7월 금속노조 시기집중파업으로 8월 총파업까지 투쟁의 기세와 동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계획은 이전의 1-10-100에서 수정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세력에 대한 압박과 협조를 바탕에 깔고 있고 입법이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야권은 총선패배로 다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고, 대선을 앞둔 정치일정상 하반기에는 급격하게 대선 중심으로 국회가 굴러갈 수밖에 없으므로 입법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물론 국회에서 입법이 안되면 대선 공약화를 목표로 하겠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금 대선에서 야권연대에 베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민주통합당 쪽에서도 법안 발의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대선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통합진보당의 내홍으로 민주노총이 홍역을 치른 상황에서 대선에서 야권연대 문제는 또다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욱이 총선과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정치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싸늘할 대로 싸늘해진 상황이기에 야권연대 혹은 야권을 매개로 한 전술이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야권을 고리로 한 입법 압박 중심의 파업이 아니라 다른 상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이 처한 내외부의 조건을 고려하면 민주노총 내부의 단결과 연대, 민주노조운동의 총력투쟁전선 구축,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및 노동법개정에 대한 전 사회적인 문제제기 확산 등의 과정 자체가 목표가 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간부와 조합원들이 함께 뭉쳐 싸울 수 있다는 투쟁의 자신감과 사기를 고양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전북본부에서 이전에 지역차원의 파업투쟁을 성사시키고 가장 큰 성과로 꼽은 것이 파업을 조직하는 과정이 간부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조합원들의 신뢰와 지역 연대투쟁을 복구하는 과정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파업투쟁 조직화의 문제가 있다. 산별임단투 동력에 기대지 않는 정치파업이므로 이에 대한 조합원 조직화가 핵심인데 이것이 가능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8월 28일부터 파업에 돌입해서 29일에 민중대회를 개최하고 31일에 10만 상경투쟁을 한다는 계획을 실현하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조합원을 교육하고 조직해야 하는 간부들도 이런 흐름보다는 대규모 집회투쟁을 한 번 제대로 조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파업사업장들의 시기를 맞추고 최대한 31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해서 모양새를 갖추는 것을 넘어서려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재개정이라는 핵심의제에 관해 이를 중심으로 투쟁하고 있는 단위들을 묶어 세워서 연대를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한 희생자 문제 해결과 해고자 복직을 위한 투쟁이 중심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현대차 사내하청 정규직화 문제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수많은 사업장에서 복수노조로 인한 민주노조 탄압, 노조 불인정,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인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투쟁들이 현안문제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총파업 조직화 과정에 있어서 주요한 요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총파업의 요구가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오를 점점 불려나가는 방식으로 파업이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서 총파업 요구가 투쟁현안과 결합되어 생생히 선동되고 또 투쟁하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연대파업의 필요성을 다른 노동자들에게 선전 선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금 민주노총이 투쟁전선을 구축하려 노력하고 화물-건설 파업을 비롯한 산하 많은 노조의 투쟁을 헌신적으로 지지 엄호하고 연대를 조직해서 투쟁의 기세를 만들어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북, 대구, 충북 등 지역본부들에서 지역차원의 총파업총궐기를 조직하기 위해 현장선전전, 간부활동가 교육, 간담회, 지역거점 농성 등을 전개하는 노력들도 널리 알려지고 확산될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운동 재건과 혁신의 길로
이명박 정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4년의 이명박 정권 임기 동안, 민주노총은 총노동전선 구축보다는 야권연대와 선거정치에 더 힘을 쏟아 왔다. 내용은 오른쪽으로 더 이동하고 투쟁은 약화되었다. 내부의 세력 간 분열도 더 커졌다. 그 와중에 정권과 자본의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고 무너진 현장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민주노조운동을 재건하고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안고 있다. 파업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그러한 결의를 모아내는 과정이자 실천하는 과정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고 들썩이게 하자. 서로가 서로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해서 상승시키도록 하자.
민주노총은 2012년 정기 대의원대회를 통해 10대 요구 쟁취를 위한 정치총파업을 공식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경로로 총선을 설정하였다. 즉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거 지원활동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야권이 총선에서 과반수를 점하게 되면 총선에서 민주노총이 행한 역할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제반의 노동관련법 재개정을 강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구상에서 총파업의 위상은 의회 내 입법을 강제하는 압박성 정치파업이었다. 그런데 소위 ‘1-10-100’(한번에 10개 법안을 100일안에 입법)이라고 불렸던 이 계획은 여러 가지 무리수와 변수를 낳았다.
첫째, 민주노총 내부의 반발이다. 이는 작년 말에 민주노동당과 새진보통합연대, 국민참여당이 합당할 때부터 격렬하게 전개되었는데, 민주노총 내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은 ‘3자 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를 건설하여 체계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즉 3자 통합이 국민참여당이라는 신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하는 것이므로 통합된 당을 진보정당으로 볼 수 없고 민주노총은 당연히 이 당에 대한 지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선언운동본부에는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하여 민주노총 내 대부분의 좌파세력들이 참여하였고 이후에 임시대의원대회 소집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둘째, 민주노총 집행부 스스로의 무리수이다. 3자 통합당인 통합진보당에 대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고 외부에서도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러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조직하지 않았다. 총선방침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비례대표 투표방침에 대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성원부족으로 논의하지 못하게 되자 민주노총 집행부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표결로 통합진보당 투표방침을 관철시켰다. 그것도 조합원 의사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전화여론조사를 하고 그에 응답한 2만 4천여 명 가운데 1만 9천여 명이 통합진보당 지지의사를 표시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례투표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민주노총 내의 분열이 없도록 단결을 실현하는 것이 최대의 정치방침이라던 민주노총 위원장의 공언이 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셋째, 야권연대 중심의 총선운동과 총선패배라는 결과이다. 애초 야권연대는 반MB를 최대의 전략으로 설정한 바, 그 외의 담론은 묻혀버렸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박근혜는 MB와 거리를 두면서 반MB의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고 민주당은 선거전략상으로도 지리멸렬을 면치 못했으며 이에 편승한 통합진보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거 이전에는 야권연대가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비전보다 반MB, 민간인사찰 등의 이슈만 앞세운 야권연대는 별다른 쟁점도 만들지 못하고 패배로 귀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를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선거운동에 매달리며 중앙과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운동을 한 것은 민주노총 조합원들로부터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과반을 차지하리라 여겼던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야권연대에 올인했던 민주노총 집행부와 민주노총 내 세력들은 충격에 빠졌다.
넷째, 총선패배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내부 선거부정과 그로 인한 진보진영에 대한 총체적 비난이다. 이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공공연히 행해지던 일들이 국민참여당계의 폭로와 미디어의 확대재생산으로 일파만파 퍼졌고, 그에 따른 통합진보당 내의 내분과 폭력사태는 한 달이 넘도록 한국 사회의 모든 쟁점을 압도하였으며 진보진영에 대한 대중적인 불신을 고조시켰다. 그 와중에 이 문제는 민주노총 내부로도 이어져 각 세력 간에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고 조합원들에게 냉소와 환멸을 가중시켰다.
결국 총선을 전후한 이러한 상황은 민주노총 내의 단결을 약화시켰고 투쟁동력이라든지 조합원의 신뢰마저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왔다. 변화된 상황은 원래 계획을 계속 추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야권이 총선에서 패배한 상황에서, 승리를 전제로 한 1-10-100 계획은 현실성과 추진력을 잃었기 때문에 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10개 법안 쟁취 요구를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악법재개정’이라는 3대 요구로 변경하였다.
소위 ‘묻지마 야권연대’라는 잘못된 전략, 이를 조직 내에서 관철하기 위한 무리한 과정, 야권연대 승리 및 정치적 압박용을 전제로 한 총파업의 상 등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전략적 오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
하지만 민주노총 집행부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와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만들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민주노총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더 이상 나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그렇기에 야권에 기댄 파업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요구를 내걸고 단결을 확대하는 전 사회적인 투쟁이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처지를 살펴보자.
국내 전체 가계부채는 1000조에 달하고, 네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매월 적자 상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시급 5757원(월급 약 120만원) 미만을 받는 저임금노동자는 468만 명이나 된다. 이러한 저임금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매월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자가 가져가는 소득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도 59.2%로 낮아졌고 이는 OECD 평균 70%에 턱없이 모자란다. 전체 노동자 1천764만7천명의 25.7%(454만1천명)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런 소규모 사업장은 일주일에 단 하루만 쉬거나 365일 휴무 없이 운영되는 곳이 태반이다. 한 달에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업체가 63만4천개(28.3%)에 이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2012년 3월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은 47.8%(833만 명)이고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은 49.7%에 그치고 있다.
총파업 투쟁에 나선 화물연대, 건설노조의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극악한 생존권 말살 상황에 노동자들이 놓여 있다. 화물연대의 경우 하루 15시간을 일해도 실질적으로 최저임금 이하를 버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는 기름값의 폭등도 원인이지만 정부가 스스로 약속한 표준운임제도 실시하지 않는 등 노동배제노동탄압민중생존 외면 정책이 주된 원인이다. 건설노조에서 총파업 투쟁에 나선 이유도 고질적인 임금체불로 인해 건설일용노동자, 건설기계노동자 등의 체불임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4대강 공사 등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한 관급 공사들에서 급격히 늘어났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은 2011년에 1660억 원에 달한다. 처음으로 교육감을 대상으로 임단협 투쟁에 나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도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기본급이 똑같은 현실”에 15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놓여있다는 기막힌 상황을 폭로하고 있다.
최근 구로디지털단지 전략조직화사업단인 ‘노동자의 미래’에서는 구로지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노동 이제그만’ 집중 캠페인을 벌였는데, 유인물을 뿌리기가 무섭게 받아가는가 하면 노동자들에게서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즉 다수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상태와 노동상태가 노동자들이 참고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도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특히 복수노조를 활용한 민주노조 탄압은 자본측이 공공연히 휘두르는 무기가 되었다. 각 지역의 여러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고, 공공운수노조 소속의 대학청소비정규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사측은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공작을 하여 어용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탄압하여 노조에서 탈퇴시켜 어용노조에 가입시킨다. 이렇게 어용노조를 다수노조로 만든 후 민주노조의 교섭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민주노조를 고사시키는 경우가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단결하고 연대하여 이러한 탄압을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연말 대선을 고려했을 때에도 그러하다. 총선에서 실패한 무조건적 야권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스스로의 정확한 요구를 제기하고 그 요구로써 노동자 대중을 조직해나가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거의 실종되다시피 한 노동자의 집단적 목소리와 힘을 키우는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총파업, 어떻게?
민주노총은 현재 8월 말 정치총파업을 상정하고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악법 재개정’을 주요 요구로 하고 있다. 8월 총파업의 의의로 민주노총은 노동중심 진보의제와 담론의 주도적 확산, 하반기 이후 주요 의제에 대한 공세적 전선형성을 위한 전환점 마련, 민주노총 발전전망과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추동력 확보의 계기를 들고 있고, 입법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야권-양노총 입법 논의기구로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야당-양노총 공동대책위원회(가)’(노동법공대위)를 제안하고 있다. 이 틀에서 최저임금,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 노조법 등에 관한 연속 국회토론회를 열어 이슈화를 꾀하고, 한축으로는 비정규직 철폐 1천만 서명운동 등을 통해 사회적 연대전선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총파업의 목표로는 주요법안 관철, 사내하도급법 등 개악법안 저지, 민주노총의 정치투쟁력 복원과 사회정치적 위상제고 등이 제시되고 있고 파업의 상은 독자적인 정치파업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화물연대, 건설노조의 파업에 이어 6월 28일 경고파업 집회, 7월 금속노조 시기집중파업으로 8월 총파업까지 투쟁의 기세와 동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계획은 이전의 1-10-100에서 수정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세력에 대한 압박과 협조를 바탕에 깔고 있고 입법이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야권은 총선패배로 다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고, 대선을 앞둔 정치일정상 하반기에는 급격하게 대선 중심으로 국회가 굴러갈 수밖에 없으므로 입법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물론 국회에서 입법이 안되면 대선 공약화를 목표로 하겠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금 대선에서 야권연대에 베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민주통합당 쪽에서도 법안 발의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대선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통합진보당의 내홍으로 민주노총이 홍역을 치른 상황에서 대선에서 야권연대 문제는 또다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욱이 총선과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정치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싸늘할 대로 싸늘해진 상황이기에 야권연대 혹은 야권을 매개로 한 전술이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야권을 고리로 한 입법 압박 중심의 파업이 아니라 다른 상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이 처한 내외부의 조건을 고려하면 민주노총 내부의 단결과 연대, 민주노조운동의 총력투쟁전선 구축,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및 노동법개정에 대한 전 사회적인 문제제기 확산 등의 과정 자체가 목표가 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간부와 조합원들이 함께 뭉쳐 싸울 수 있다는 투쟁의 자신감과 사기를 고양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전북본부에서 이전에 지역차원의 파업투쟁을 성사시키고 가장 큰 성과로 꼽은 것이 파업을 조직하는 과정이 간부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조합원들의 신뢰와 지역 연대투쟁을 복구하는 과정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파업투쟁 조직화의 문제가 있다. 산별임단투 동력에 기대지 않는 정치파업이므로 이에 대한 조합원 조직화가 핵심인데 이것이 가능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8월 28일부터 파업에 돌입해서 29일에 민중대회를 개최하고 31일에 10만 상경투쟁을 한다는 계획을 실현하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조합원을 교육하고 조직해야 하는 간부들도 이런 흐름보다는 대규모 집회투쟁을 한 번 제대로 조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파업사업장들의 시기를 맞추고 최대한 31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해서 모양새를 갖추는 것을 넘어서려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재개정이라는 핵심의제에 관해 이를 중심으로 투쟁하고 있는 단위들을 묶어 세워서 연대를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한 희생자 문제 해결과 해고자 복직을 위한 투쟁이 중심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현대차 사내하청 정규직화 문제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수많은 사업장에서 복수노조로 인한 민주노조 탄압, 노조 불인정,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인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투쟁들이 현안문제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총파업 조직화 과정에 있어서 주요한 요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총파업의 요구가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오를 점점 불려나가는 방식으로 파업이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서 총파업 요구가 투쟁현안과 결합되어 생생히 선동되고 또 투쟁하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연대파업의 필요성을 다른 노동자들에게 선전 선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금 민주노총이 투쟁전선을 구축하려 노력하고 화물-건설 파업을 비롯한 산하 많은 노조의 투쟁을 헌신적으로 지지 엄호하고 연대를 조직해서 투쟁의 기세를 만들어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북, 대구, 충북 등 지역본부들에서 지역차원의 총파업총궐기를 조직하기 위해 현장선전전, 간부활동가 교육, 간담회, 지역거점 농성 등을 전개하는 노력들도 널리 알려지고 확산될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운동 재건과 혁신의 길로
이명박 정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4년의 이명박 정권 임기 동안, 민주노총은 총노동전선 구축보다는 야권연대와 선거정치에 더 힘을 쏟아 왔다. 내용은 오른쪽으로 더 이동하고 투쟁은 약화되었다. 내부의 세력 간 분열도 더 커졌다. 그 와중에 정권과 자본의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고 무너진 현장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민주노조운동을 재건하고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안고 있다. 파업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그러한 결의를 모아내는 과정이자 실천하는 과정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고 들썩이게 하자. 서로가 서로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해서 상승시키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