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이주노동자 투쟁과 이주노동조합
“Stop EPS! Stop EPS! Stop EPS!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
세차게 내리던 비도 잠시 주춤했던 8월 19일 일요일 오후 보신각에는 각국에서 모인 8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분노의 함성이 보신각에 가득했던 것은 근 몇 년간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보신각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서로의 나라, 언어, 피부색은 달랐지만 ‘고용허가제도 자체를 폐지하라!’는 절박한 구호를 함께 외쳤다. 이들의 함성소리는 보신각을 출발해서 명동성당에 도착할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외려 그 함성은 더욱 커졌고 행진이 끝난 뒤에도 백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유발언을 이어가면서 이후의 더 큰 투쟁을 결의하였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날 집회에 모인 800여명의 절반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어느 센터나 노조에도 가입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흡사 2008년 촛불정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였던 시민들처럼 고용허가제에 짓눌려 신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던 이주노동자들의 분노가 전국에서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왜 분노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이 분노는 지난 6월 4일 고용노동부가 ,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변경에서 문제가 많다고 발표한 보도 자료(내부지침)에서 시작되었다. 보도 자료에서 노동부는 매해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건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의 불법적인 개입이 포착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리고 노동부는 브로커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존에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하던 구인업체 리스트를 브로커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더 이상 제공하지 않고, 대신 반대로 사업주에게 구직중인 이주노동자 리스트를 제공하겠다는 해괴망측한 대책을 8월 1일부터 시행할 것이라 예고했다. 즉, 기존에는 그나마 회사가 몇 개 적혀있는 알선장을 가지고 이주노동자가 회사를 고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업주가 전화를 해줄 때까지 24시간 핸드폰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업주의 채용요구를 거부하면 2주 동안 알선을 받지 못한다는 조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다.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마저 없는 고용노동부의 부당한 내부지침을 폐지하기 위하여 이주노동조합을 비롯한 전국의 이주노동자인권단체들이 7월 19일 “이주노동자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 내부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려서 전국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뜨거운 여름 과천 고용노동부 앞 릴레이투쟁
비대위에서 가장 먼저 결의한 내용은 이번 지침을 직접 만든 과천 고용노동부 앞에서 릴레이투쟁을 하는 것이었다. 7월 23일부터 8월1일 지침시행까지 전국의 각 지역공대위가 돌아가면서 1인 시위, 퀼트 짜기, 규탄집회, 기자회견, 선전전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고용노동부를 압박했다. 본인도 지금까지 과천고용노동부 앞에만 다섯 번 이상 가서 매번 목이 터져라 발언을 하곤 했다. 선전전을 하면서 사업장을 변경하는게 이렇게 어렵게 바뀌면 차라리 힘들더라도 원래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게 낮지 않겠냐는 이주노동자들의 힘없는 목소리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왈칵 올라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는 내내 비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전국에 있는 수십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의 생존권이 걸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종이 몇 장으로 결정해버리려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였다. 규탄행동 도중에 진행한 몇 번의 면담과정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장변경은 고용허가제 취지에 맞지 않다’, ‘공개간담회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못하겠고 실무자끼리만 토론하자’는 식의 망발을 일삼았다.
8월 1일 내부지침 시행,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비대위의 강력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8월 1일 고용노동부는 기어코 내부지침을 시행하고 말았다. 하지만 투쟁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용노동부는 내부지침 시행과 함께 2주간 알선이 금지한다는 조항을 없애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추천한 사업장 연락처를 발송해주는 등 세부적인 내용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면 조용히 넘어가겠지라고 생각한 고용노동부의 의도와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오히려 내부지침이 시행된 이후로 그 투쟁의 불길은 더욱 타오르기 시작했다. 8월 12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지침 대응을 위한 이주공동체 연대회의>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이번 사안에 대해 토론하고 향후 투쟁방향을 결의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한편 고용노동부내부지침에 반대하는 서명은 불과 시작한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서 1,000명 이상의 서명을 모았고,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시행 8년 즈음하여 진행된 각계각층의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 촉구 1천인 선언>에는 무려 1,549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참여하였다. 그동안 고용허가제도의 수많은 변화에도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주노동자들이 이번 사업장변경문제만큼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각자의 공동체에서 교육을 하고 조직을 하고 있다.
그 결과 비대위가 구성된 지 만 한 달 만인 8월 19일 보신각에서 열린 <고용허가제 폐지! 사업장이동의 자유 보장! 노동기본권 쟁취!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에는 8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했고 대전, 대구, 부산 등지에서 열린 집회인원까지 합하면 1,200명이 넘는다. 그리고 8월 중순 열린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이번 지침과 관련하여 한국정부에 공식적인 답변을 요구하였고, 네팔노총과 국제엠네스티는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국내외에서 이번 투쟁에 연대하는 흐름이 더욱 강화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8월 26일 민주노총에서 다시 열린 2차 이주공동체 연대회의에서는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9월 23일 서울역에서 대대적인 투쟁을 벌이자는 결의를 모았다. 또한 각 나라 대사관 항의, 이주민 밀집지역 선전전,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상제작 등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다양한 방법으로 투쟁을 만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이주노동자 투쟁, 어디로 가야 하는가
비대위가 꾸려져서 전국적으로 연일 집회와 규탄행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주노조도 수도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투쟁이 계속 확산될 수 있도록 그 힘을 보태고 있다. 나아가 이주노조는 사업집행에 힘을 쏟는 것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열기가 고양되는 국면에서 이주노동자의 조직화와 주체화를 핵심적인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미 이번 투쟁으로 여러 나라 이주노동자들의 조합가입이 늘어나고 있다. 19일 집회에서는 가입원서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관심을 보였고 이번 투쟁이 지속되는 동안 이러한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 가입자가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더 많은 과제를 던져준다. 신규조합원교육 등을 통해서 이번 고용노동부 사업장 변경 내부지침에 대한 내용을 기반으로 고용허가제 자체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2003년 명동성당 이주농성투쟁의 힘을 기반으로 이주노동조합을 건설했던 것처럼 이번 투쟁을 현재 위축되어 있는 이주노조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다시 한 번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을 조직화하고 새로운 주체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재 비대위에 많은 노동조합이 참여하도록 해야한다. 이번 투쟁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한 부문(건설, 공단 중소 제조업, 서비스업 등)에서의 투쟁과 조직화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계기다. 앞으로 이 투쟁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이 투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 투쟁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투쟁전략과 조직화전략을 가져야 한다. 이는 민주노총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략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도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가령, 건설부문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시장을 형성하고 있어 내국인노동자들과 일자리 경쟁을 하는 노노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내부의 분할과 경쟁이 결국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하락시킨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건설노조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불법도급철폐를 내국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공통투쟁과제로 제기하고, 건설부문 이주노동자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조직화여, 내외국인 가릴 것없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미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주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노동조합이 여럿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많은 노동조합에서 이주노동자를 조합원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반인종주의, 국제주의에 대한 교육을 진행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 내 인식의 전환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이는 단순히 ‘서로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강조하는 다문화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종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ㆍ제도적 관계, 그리고 한국인종주의와 노동유연화의 관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주노조 역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정주노동자와 함께 연대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어떠한 요구사항을 함께 내걸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다시 불붙는 이주노동자 투쟁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몇 년 만에 이주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천명이 넘게 모여 한목소리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고용허가제 폐지라는 구호는 마치 관용구처럼 매해 때가 되면 나오는 그런 구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투쟁을 통해 고용허가제 폐지 투쟁에 새로운 획이 그어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했고 2012년 하반기 내내 그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주노조도 투쟁의 불길 안에서 보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고 스스로의 문제를 조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질 수 있는 하반기 투쟁을 만들어 갈 것이다.
세차게 내리던 비도 잠시 주춤했던 8월 19일 일요일 오후 보신각에는 각국에서 모인 8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분노의 함성이 보신각에 가득했던 것은 근 몇 년간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보신각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서로의 나라, 언어, 피부색은 달랐지만 ‘고용허가제도 자체를 폐지하라!’는 절박한 구호를 함께 외쳤다. 이들의 함성소리는 보신각을 출발해서 명동성당에 도착할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외려 그 함성은 더욱 커졌고 행진이 끝난 뒤에도 백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유발언을 이어가면서 이후의 더 큰 투쟁을 결의하였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날 집회에 모인 800여명의 절반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어느 센터나 노조에도 가입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흡사 2008년 촛불정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였던 시민들처럼 고용허가제에 짓눌려 신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던 이주노동자들의 분노가 전국에서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왜 분노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이 분노는 지난 6월 4일 고용노동부가 ,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변경에서 문제가 많다고 발표한 보도 자료(내부지침)에서 시작되었다. 보도 자료에서 노동부는 매해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건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의 불법적인 개입이 포착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리고 노동부는 브로커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존에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하던 구인업체 리스트를 브로커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더 이상 제공하지 않고, 대신 반대로 사업주에게 구직중인 이주노동자 리스트를 제공하겠다는 해괴망측한 대책을 8월 1일부터 시행할 것이라 예고했다. 즉, 기존에는 그나마 회사가 몇 개 적혀있는 알선장을 가지고 이주노동자가 회사를 고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업주가 전화를 해줄 때까지 24시간 핸드폰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업주의 채용요구를 거부하면 2주 동안 알선을 받지 못한다는 조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다.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마저 없는 고용노동부의 부당한 내부지침을 폐지하기 위하여 이주노동조합을 비롯한 전국의 이주노동자인권단체들이 7월 19일 “이주노동자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 내부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려서 전국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뜨거운 여름 과천 고용노동부 앞 릴레이투쟁
비대위에서 가장 먼저 결의한 내용은 이번 지침을 직접 만든 과천 고용노동부 앞에서 릴레이투쟁을 하는 것이었다. 7월 23일부터 8월1일 지침시행까지 전국의 각 지역공대위가 돌아가면서 1인 시위, 퀼트 짜기, 규탄집회, 기자회견, 선전전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고용노동부를 압박했다. 본인도 지금까지 과천고용노동부 앞에만 다섯 번 이상 가서 매번 목이 터져라 발언을 하곤 했다. 선전전을 하면서 사업장을 변경하는게 이렇게 어렵게 바뀌면 차라리 힘들더라도 원래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게 낮지 않겠냐는 이주노동자들의 힘없는 목소리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왈칵 올라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는 내내 비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전국에 있는 수십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의 생존권이 걸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종이 몇 장으로 결정해버리려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였다. 규탄행동 도중에 진행한 몇 번의 면담과정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장변경은 고용허가제 취지에 맞지 않다’, ‘공개간담회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못하겠고 실무자끼리만 토론하자’는 식의 망발을 일삼았다.
8월 1일 내부지침 시행,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비대위의 강력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8월 1일 고용노동부는 기어코 내부지침을 시행하고 말았다. 하지만 투쟁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용노동부는 내부지침 시행과 함께 2주간 알선이 금지한다는 조항을 없애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추천한 사업장 연락처를 발송해주는 등 세부적인 내용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면 조용히 넘어가겠지라고 생각한 고용노동부의 의도와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오히려 내부지침이 시행된 이후로 그 투쟁의 불길은 더욱 타오르기 시작했다. 8월 12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지침 대응을 위한 이주공동체 연대회의>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이번 사안에 대해 토론하고 향후 투쟁방향을 결의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한편 고용노동부내부지침에 반대하는 서명은 불과 시작한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서 1,000명 이상의 서명을 모았고,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시행 8년 즈음하여 진행된 각계각층의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 촉구 1천인 선언>에는 무려 1,549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참여하였다. 그동안 고용허가제도의 수많은 변화에도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주노동자들이 이번 사업장변경문제만큼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각자의 공동체에서 교육을 하고 조직을 하고 있다.
그 결과 비대위가 구성된 지 만 한 달 만인 8월 19일 보신각에서 열린 <고용허가제 폐지! 사업장이동의 자유 보장! 노동기본권 쟁취!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에는 8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했고 대전, 대구, 부산 등지에서 열린 집회인원까지 합하면 1,200명이 넘는다. 그리고 8월 중순 열린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이번 지침과 관련하여 한국정부에 공식적인 답변을 요구하였고, 네팔노총과 국제엠네스티는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국내외에서 이번 투쟁에 연대하는 흐름이 더욱 강화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8월 26일 민주노총에서 다시 열린 2차 이주공동체 연대회의에서는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9월 23일 서울역에서 대대적인 투쟁을 벌이자는 결의를 모았다. 또한 각 나라 대사관 항의, 이주민 밀집지역 선전전,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상제작 등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다양한 방법으로 투쟁을 만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이주노동자 투쟁, 어디로 가야 하는가
비대위가 꾸려져서 전국적으로 연일 집회와 규탄행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주노조도 수도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투쟁이 계속 확산될 수 있도록 그 힘을 보태고 있다. 나아가 이주노조는 사업집행에 힘을 쏟는 것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열기가 고양되는 국면에서 이주노동자의 조직화와 주체화를 핵심적인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미 이번 투쟁으로 여러 나라 이주노동자들의 조합가입이 늘어나고 있다. 19일 집회에서는 가입원서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관심을 보였고 이번 투쟁이 지속되는 동안 이러한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 가입자가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더 많은 과제를 던져준다. 신규조합원교육 등을 통해서 이번 고용노동부 사업장 변경 내부지침에 대한 내용을 기반으로 고용허가제 자체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2003년 명동성당 이주농성투쟁의 힘을 기반으로 이주노동조합을 건설했던 것처럼 이번 투쟁을 현재 위축되어 있는 이주노조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다시 한 번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을 조직화하고 새로운 주체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재 비대위에 많은 노동조합이 참여하도록 해야한다. 이번 투쟁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한 부문(건설, 공단 중소 제조업, 서비스업 등)에서의 투쟁과 조직화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계기다. 앞으로 이 투쟁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이 투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 투쟁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투쟁전략과 조직화전략을 가져야 한다. 이는 민주노총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략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도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가령, 건설부문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시장을 형성하고 있어 내국인노동자들과 일자리 경쟁을 하는 노노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내부의 분할과 경쟁이 결국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하락시킨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건설노조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불법도급철폐를 내국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공통투쟁과제로 제기하고, 건설부문 이주노동자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조직화여, 내외국인 가릴 것없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미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주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노동조합이 여럿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많은 노동조합에서 이주노동자를 조합원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반인종주의, 국제주의에 대한 교육을 진행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 내 인식의 전환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이는 단순히 ‘서로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강조하는 다문화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종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ㆍ제도적 관계, 그리고 한국인종주의와 노동유연화의 관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주노조 역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정주노동자와 함께 연대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어떠한 요구사항을 함께 내걸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다시 불붙는 이주노동자 투쟁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몇 년 만에 이주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천명이 넘게 모여 한목소리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고용허가제 폐지라는 구호는 마치 관용구처럼 매해 때가 되면 나오는 그런 구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투쟁을 통해 고용허가제 폐지 투쟁에 새로운 획이 그어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했고 2012년 하반기 내내 그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주노조도 투쟁의 불길 안에서 보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고 스스로의 문제를 조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질 수 있는 하반기 투쟁을 만들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