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버스 투쟁, 노동자들의 자신감 회복이 가장 큰 성과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이창석 사무처장 인터뷰
지난 11월 8일,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전주 시내버스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전주시청 앞에서 기습적으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이후 삼보일배 투쟁, 11월 29일 3차 전면 파업 투쟁, 12월 8일 회차 투쟁 등을 통해 전주시를 압박했다. 12월 2일 새벽에는 전북고속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두 명의 노동자가 전주 야구장 조명탑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결국 12월 10일 전주시는 전주 시내버스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발표했고, 12월 17일에는 전북고속의 민주노조 인정을 골자로 전라북도와 전북고속 사측, 전북본부가 합의를 이루었다. 민주노조를 인정하고 전주시와 전라북도의 책임을 확인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 외에도, 위축되었던 전주 시내버스 조합원들이 자신감을 찾아 이후 투쟁을 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성과를 남겼다.
12월 21일, 천막농성부터 파업투쟁까지 헌신적으로 버스 투쟁을 함께 해온 이창석 민주노총 전북본부 사무처장을 만나 전주 버스 투쟁의 과정과 성과, 이후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어용으로는 못 살겠다. 민주노조 하자”
사회운동: 재작년 한국노총 사업장인 버스 사업장 조직화가 이루어지면서 전주 버스 투쟁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버스 투쟁의 시작, 경과, 주요 요구 등을 간략히 설명해 달라.
이창석 사무처장(이하 이창석): 2010년 7월, 제일여객이라는 시내버스 회사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는데 ‘CCTV 수당’ 문제가 있었다. 운전석 앞에 CCTV를 달아 기사들이 요금을 가로채는 것을 감시했는데, CCTV 설치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이 심했다. 그래서 그 대가로 ‘CCTV 수당’을 줬고, 대법원은 이 수당이 매달 정률적으로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결국 CCTV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키게 됐는데 한국노총이 이걸 임금인상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임금이 2.9% 인상됐는데, 계산해보니 통상임금에 적용된 CCTV 수당, 정근수당 부분을 기본급으로 분류하고 허풍을 친 것이었다. 그래서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3-4일이 지나자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이 통상임금 소송을 막기 위해 재빨리 합의를 했다. 합의 내용은 100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소송을 하면 70%에서 많게는 95%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버스를 지배해온 30년 전통의 한국노총에 대해 조합원들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제일여객이 민주노조로 조직전환을 했다.
그 이전에 2010년 2월, 민주버스에서 담당하던 전북고속 노조가 최초로 민주노총으로 전환했고, 그해 9월까지 전주 시내버스가 거의 다 민주노총으로 전환했다. 모두 과반수는 아니지만 40% 정도의 조직화를 이뤄냈다. 버스노조를 개혁하자고 한 지 딱 10년 만에 성과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5개 회사가 조직되었다.
(조직 전환의)핵심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어용으로는 못 살겠다. 민주노조 하자.” “통상임금 제대로 받아내자.” 앞서 얘기한 CCTV 수당 관련해 100만 원 받고 ‘퉁치자는’ 시점에서 한국노총 전임자들 임금이 370만원으로, 약 40-50만 원 정도 인상됐다. 노동자와 전임자의 임금을 맞바꾼 셈인데, 한국노총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여겨지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에게 민주노조에 대한 신념이 생겼고, 투쟁이 계속 이어졌다.
본격적인 1차 파업은 2010년 11월인데, 그때의 파업도 민주노조 인정을 위한 것으로 153일 정도 싸웠다. 이 투쟁으로 민주노조를 인정받고 복귀하자 전체 시내버스의 약 85%가 민주노조로 가입했다. 이 성과에 이어 2012년 3월 9일, 2차 투쟁에 들어갔다. 2차 투쟁의 요구는 임단협 승리였는데 교섭 몇 번 못하고 3월 중순에 사측이 직장폐쇄를 해 투쟁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사측은 노조 조끼 벗고 조합원 탈퇴하지 않으면 교섭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140일 정도 싸웠고 결국 7월 3일부터 업무에 복귀했다. 얻은 것은 거의 없고 징계하지 않고, 조합탈퇴 회유하지 않고, 조건 없이 직장폐쇄 해제한다는 구두 약속을 받는 데 그쳤다. 2차 파업 당시에 4월 5일을 기점으로 해서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조합원 400명 이상을 잃었다.
무너진 현장, 투쟁으로 바꾸다
사회운동: 전주 시내버스의 경우 11월 8일부터 전주시청 천막농성을 시작으로 삼보일배, 파업 투쟁 등을 벌였다. 이번 3차 투쟁을 준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이고, 구체적인 투쟁 과정은 어떠했나.
이창석: 2차 투쟁 후 현장으로 복귀하고 보니 1, 2차 투쟁이 길어 참가자들의 생계문제가 심각했다. 조합원들 모두 쉬는 날 아르바이트를 나가야 했다. 투쟁의 패배와 상관없이 임금이 너무 낮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임금이 6호봉(중간층) 기준으로 180만 원 수준인데, 세금 제하면 160만 원 정도로 전주 버스가 전국 최하다. 이렇게 7, 8, 9월을 보냈다. 2차 파업 때 탈퇴한 조합원들 중에 한국노총으로 간 조합원들도 있었고, 복귀하면서 현장투쟁을 일구자고 약속했지만 사실상 무력화됐다. 사측은 시간을 끌면서 징계하고 배차에 불이익을 줬다. 한 달에 24일을 일해야 160-180만 원 정도를 받는데 22일만 시켰다. 임금은 더 떨어지고, 조합원들이 상당히 위축되고 힘든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이 3차 파업의 계기가 되었다. 계속된 불이익으로 조직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집회나 교육을 잡아도 조합원이 모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완전히 무너지겠다 싶어 3차 파업투쟁 결의했다. 선도투를 벌인 것이다.
전북본부는 10월 초부터 천막농성을 준비했다. 전주시청에 천막을 치려고만하면 다 때려 부수니, 11월 8일 새벽 6시에 기습적으로 천막을 쳤다. 기습적인 상황인데다 지역본부가 한 것이기 때문에 시청도 정치적 부담을 느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천막농성 돌입에 앞서 서울 문재인 캠프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어 서울과 전주에서 같이 싸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천막을 치고 현장에 알리면서 간부 간담회부터 제안했다. 천막을 치고 우리가 버틸 테니 간담회를 하자고.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 삼보일배 투쟁을 시작했는데 7명밖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흘간 간부 간담회를 계속 했지만 동력이 생기지 않아서 그 다음 주에 조합원 전체간담회를 시작했다. ‘투쟁 안 할 거면 탈퇴해라, 조끼 입었다고 다 민주노총 아니다’라고 거의 조합원들을 협박하는 수준이었다. 조합원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지역본부는 파업을 전제로 하지 않는 투쟁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체 조합원 388명 중 비번인 조합원들 100-120명 정도가 간담회에 나와야 되는데, 80명 정도가 참여했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대체 파업을 하면 조합원들이 얼마나 따라오겠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본부는 30%만 참가해도 강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날 삼보일배 대오가 120명으로 불어났다. 조합원 간담회를 계속하면서 조합원들이 삼보일배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거 놓치면 안 되겠다는 판단에 전격 파업 돌입을 결정했다.
조합원들은 파업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늘 보안이 문제였기에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다가 11월 29일 새벽 4시, 출근시간 20분 전에 전면파업 지침(비번자 집결은 전날 밤 10시 30분)을 내렸다. 첫날 파업에 280명 정도 모였다. 우리만이 아니라 조합원들도 놀랐다. 그렇게 모일지 몰랐던 것이다. 매번 한 개 사업장씩을 틀어막는 방식(버스 출차저지)으로 파업을 했다. 둘째 날에는 320명이 참가했다. 숫자가 늘어날지 몰랐으니 또 놀랐다. 출차 저지 투쟁하고, 시청까지 행진하고, 시청부터 삼보일배 후 해산하는 일정으로 진행했다. 이렇게 3차 파업이 시작됐다. 이틀 파업 후 조합원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다. 서로 얼굴 쳐다보면서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행진 시작하고 30분 만에 직장폐쇄 공고문을 뗐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회운동: 전주시의 태도나 대응은 어땠나.
이창석: 전주시는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만나주지 않을 뿐더러 대답도 안 했다. 우리가 소수노조가 됐고, 파업을 못 할 거라고 본 것이다. 전주시청은 민주당 중앙당에도 계속 이런 식으로 보고하면서 버스 문제는 시청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천막농성 시작하면서 전주시에 ‘7대 선결과제, 2대 약속’(87쪽 참조)을 받아내겠다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여기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가 12월 5일에 유세하러 전주에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은 맞아 죽더라도 유세장으로 밀고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문 후보는 그날 오지 않았다. 우리 때문에 안 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나중에 버스 해결되자마자 다음 날 유세하러 온 걸 보니 그 얘기가 맞았던 것 같다.
민중대회를 하는 12월 8일, 11시부터 회차투쟁을 시작했다. 버스는 출근시간에 파업하면 부담이 있다. 그래서 출근시간을 피해 토요일에 투쟁을 시작했는데 낙오자가 단 한 명뿐이었다.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지역 민중대회를 진행하던 중 13시에 조합원이 가장 많은 제일여객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대회 분위기가 직장폐쇄 때려 부수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직장폐쇄 공고문을 떼지 않는 한 버스 한 대도 못나간다는 입장이었다. ‘민중대회를 신속하게 끝내고 제일여객까지 행진해서 끝장을 보겠다’고 대회 때 공개적으로 밝혔다. 행진 시작하고 30분 만에 직장폐쇄 공고문을 뗐다는 연락을 받았다.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날 저녁에 전주시에서 ‘7대 선결과제, 2대 약속’에 대한 입장을 조율하자는 연락이 왔다. 구체적인 금액까지 조율했고, 12월 10일에 전격적으로 ‘7대 선결과제, 2대 약속’에 대한 전주시의 답변을 받고 투쟁을 마무리했다.
사회운동: 3차 파업투쟁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이창석: 3차 파업의 가장 큰 성과는 조합원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두 번째 성과는 그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전주시가 이후 책임을 지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향후 계획은 노동부 전주지청을 겨냥한 총력 투쟁이다. 전주시는 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본다. 하지만 사측은 끝까지 버티려 하고 있다. 사실상 파업에 준하는 방식으로 계속 투쟁해서 3년을 끌어온 임단협을 끝내야 한다. 다음 주부터 투쟁에 돌입하기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변호사도 이해 못하는 임금 체계
사회운동: 임단협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이창석: 근무일수를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에 맞춰 지키라는 것이 핵심 요구다. 이전에 한국노총이 만든 단협에도 주 40시간을 지키게 되어 있다. 그러려면 한 달에 22일을 만근으로 잡아야 한다. 전국적으로 모두 22일이 만근이다. 그런데 전주는 만근 일수를 22일로 정해놓고도 24일을 일하지 않으면 22일치 만근(임금)을 받을 수가 없다. 이해가 안 되지 않나? 노무사 세 명에 변호사까지 붙어서 이 임금 테이블을 분석해 봐도 이해를 못한다. 노동부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다. 사실상 24일 만근 체계를 22일로 줄이는 것, 즉 법을 지키라는 것으로 굉장히 단순한 요구다.
근무시간을 줄이면 전체적으로 30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전주시 버스회사들은 거의 자본잠식 상태에 있어서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주시가 근무시간 단축에 필요한 30억 원 정도를 예산에 배정해서 보조금을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비용문제가 해결되었는데도 사측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민주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사측의 속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노조 활동은 위축되고, 도청의 책임을 요구하기도 어려웠던 상황인데 중요한 기점을 만들었다”
사회운동: 시내버스가 1차, 2차 투쟁을 하면서 파업과 복귀를 하는 동안에도 전북고속은 계속 파업을 진행했던 것인가? 전북고속 투쟁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고, 투쟁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이창석: 계속 복귀를 안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시내버스와 같이 1차 때 복귀를 했다. 복귀하지 않은 일부가 있었고, 그것은 시내버스도 마찬가지다. 사업장별로 3-4명 정도가 남아서 파업을 이어왔지만, 전면파업은 아니었던 것이다.
쟁점과 상황은 시내버스와 비슷하다. 가장 중요한 요구는 ‘민주노조 인정’이다. 12월 2일부터 전주시 덕진구 야구장 조명탑에서 두 분이 고공농성을 벌였고, 서울 민주통합당 당사 앞에서도 농성을 진행했다. 12월 17일에 노조 인정 합의 후 철탑농성과 상경투쟁을 정리했다. 주요 합의 내용은 조합비 일괄 공제와 노조사무실 제공이다. 도지사와 도의원이 함께한 자리에서 전북고속 황의종 사장은 조합비를 일괄 공제하고, 한국노총과 협의해서 이른 시일 내에 노조사무실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합의 직후 황의종 사장이 노조사무실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일단은 일괄 공제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려 한다. 사장이 워낙 ‘독종’이라 약속을 깰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구두 합의 후 전북본부가 합의 내용을 담아 성명서를 내면, 도에서 기자브리핑을 해서 합의 내용을 확인해주도록 했다. 지키지 않으면 압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도지사 입장이 아무리 좋아도 사측이 지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데, 이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게 우리의 몫이다. 그동안 노조 활동은 위축되고, 도청의 책임을 요구하기도 어려웠던 상황인데 중요한 기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아주 좋지는 않지만 소중한 성과라 생각한다.
사회운동: 버스투쟁의 과정에서 지역본부의 역할은 어떠했나.
이창석: 열심히 몸을 대는 것이 지역본부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파업 과정에서 지역본부는 본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조합원들 설득하고, 함께 직접 투쟁하는 것. 이것이 민주노총 지역본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섭권이 지역본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투쟁하는 사업장들을 정치적으로 엄호하고 함께 투쟁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운동: 지역차원의 연대는 활발했나.
이창석: 1차 파업 때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2차 파업 과정에서 연대망이 많이 깨져버렸다. 2차 파업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3차 파업 때는 보안을 유지하려다보니 시민사회단체와 소통할 수가 없었다. 1차 파업 때처럼 촘촘하게 여론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파업 돌입 후에야 지역 연대단위들이 (투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시민사회단체들에 죄송한 부분이다. 문규현 신부님이 철탑 고공농성장을 찾아 매일 100배를 했고, 시민사회단체들이 문신부님의 투쟁을 이어가자고 결의한 날 투쟁이 끝나 지역 연대단위들에 설명을 할 수 있었다. 끝까지 민주노총을 믿고 지지해주는 단체들이 있다. 민주노총이 하면 제대로 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파업을 조직하려면 두세 달 전부터 파업의 이유에 대해 조합원들과 공감대를 만들고, 조직 동력까지 점검해 제시해야한다”
사회운동: 버스 투쟁 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이창석: 조직 정도를 예측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단순히 지침을 내린다고 파업투쟁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파업을 조직하려면 두세 달 전부터 파업의 이유에 대해 조합원들과 공감대를 만들고, 조직 동력까지 점검해 제시해야 한다. 100명 규모의 조직이어도 파업을 하게 되면 10명이 한다, 90명이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하는 것이다. 파업밖에 없다는 선동이 아니라, 구체적 수치를 가지고 설득해야 파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조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3차 파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파업 전술을 100% 가깝게 따랐다. 놀라운 결과다. 분회 간부들 설득하면서 버스노조는 ‘투쟁을 통해 조직되었고, 투쟁을 통해 돌파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는데, 이것이 적중했다. 투쟁 돌입 후에 동력이 커지면서 조합원들이 놀라운 전술 수행능력을 발휘해주었다. 역시 간부들이 선도하는 건 초반이고 그 이후에는 조합원을 믿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조합원을 믿지 않는 간부는 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파업을 통해서 절실하게 느꼈다.
“복수노조 때문에 소수노조로 전락해버린 노조들에 그저 버티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형벌이다. 전체가 같이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민주노조를 지키기 어렵다”
사회운동: 복수노조 시행 이후 많은 민주노조 사업장들이 어용노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버스의 경우는 한국노총 사업장에서 민주노조를 조직하는 경우였는데, 복수노조 시대에 민주노조를 조직하거나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투쟁에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창석: 복수노조 하에서 어용노조가 민주노조를 잠식하고 있는데, 창구단일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전국단위 총파업을 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이를 통해 (민주노조 활성화라는) 복수노조의 원래 취지를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수노조 때문에 소수노조로 전락해버린 노조들에 그저 버티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형벌이다. 전체가 같이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민주노조 지키기 어렵다. 복수노조로 고통 받고 있는 사업장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죽을 힘을 다해서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사측이 복수노조를 통해 노동자를 갈라치기 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이 견디지 못하고 분열할 것이라는 사측의 계산이 실제 먹혀들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노동자들 스스로에게 달려있을 수밖에 없다. 고통스럽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총파업 아니면 정말 대안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박근혜가 당선됐다고 슬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동자계급답게 자신감을 유지하자”
사회운동: 마지막으로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이창석: 우선은 노동자계급답게 자신감을 유지하자는 말을 하고 싶다. 투쟁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물론 패배가 장기화되면 힘들겠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투쟁의 결단과 연대에 대한 것이다. 생존권이 달린 문제에 쉽게 모험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기투쟁 사업장들은 일정한 모험이 필요하다. 때로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그 결단이 실천될 수 있도록 주변이 결집해서 엄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운동의 고질적 병폐인 정파주의는 해소되어야 한다. 사업장 투쟁에서 투쟁 방법이나 전술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을 분열시키면 안 된다. 노동조합이 자리를 잡고 민주노조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지, 분열시켜 내 편 만들고 집행부 공격해 권력을 잡으려 들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는 권력을 잡기도 불가능할뿐더러 노동조합과 현장도 망가진다. 정파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파는 필요하다.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투쟁을 책임지는 부위가 있어야겠지만, 그것이 자신들만의 정파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례가 너무 많다. 활동가들이 현장이 올곧게 설 수 있도록 합심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참고] 7대 선결과제 2대 약속에 대한 전주시 답변
7대 선결과제
○ 버스 임단협 교섭 연내 타결
노사 임단협 협상은 노사가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교섭이 원활히 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방법으로 조정을 해왔음. 회사와 민주노총의 노사 교섭이 성실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전주지방고용노동지청과 함께 연내 및 조속한 타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독려하겠음.
○ 노사합의 사항 준수를 전제로 한 전주시의 예산 배정
법정근로시간 준수는 노동법에 의해 당연히 지켜져야 함. 노사 합의사항 준수를 전제로 한 예산배정요구에 대해 전주시에서는 불법적인 사항이 아니고 관계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주시의회와 협의를 통하여 어떠한 절차를 통해서라도 해결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음.
○ 버스현장의 노동탄압 즉각 중단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노동법에도 있듯이 부당 노동행위로 법적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며, 회사 측에 부당한 처우를 하지 않도록 전주지방고용노동지청과 함께 전주시가 관련법에 따라 적극 지도해 나가겠음. 징계에 대해서는 회사 사규에 의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가 없도록 고용노동부와 전주시가 함께 노력하겠음.
○ 버스 임금 체불 해결과 전임자 임금 즉각 지급
임금협약서에 명시된 임금지급일 10일을 준수하도록 회사측에 강력히 권고하고, 모든 지급액은 임금부터 줄 수 있도록 하겠음. 현재 어려운 회사 사정 때문에 상여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회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회사측에서도 우선적으로 상여금을 지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조속한 시일 내에 지급될 수 있도록 행정지도를 하겠음. 노조 전임자 임금 부분은 단체협약에 포함하는 내용으로, 노사 협약 결과를 토대로 지급여부를 결정토록 권고하겠음.
○ 자본잠식 해결을 위한 경영개선이 없을 경우 사업면허권 환수
전국적으로 버스회사는 매우 경영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전주시내버스 5개사도 경영상태가 어려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 전주시에서는 버스회사에 경영개선대책을 요구하고, 단계적으로 경영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강력한 행정지도를 펼쳐 나가겠음.
○ 임금 체계 즉각 변경을 통해 법정 근로시간 준수
법정 근로시간인 주40시간은 법으로 정해진 사안으로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관련법에 의해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노동자들의 임금체계 변경과 법정근로시간 준수는 단체협약을 통해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음. 노사가 협약을 통해 근로시간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하고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과 함께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의거 강력한 행정지도를 하겠음.
○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한 차별금지
회사 세부 경영상황에 대해 시가 직접적으로 관여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나, 부당노동행위의 소관청인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철저히 해 줄 것을 건의하고, 우리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즉각 실시 권고하겠음.
2대 약속
○ 불법 파업 명명으로 인한 피해 원상회복을 위한 방안 제시 약속
2010. 12. 8일 파업에 대해 전주지방고용노동부의 불법파업이라는 유권해석을 통보받고 불법파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바 있으나 이후에는 불법파업이라 단정 또는 사용하지 않았음. 앞으로 노사 정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열악한 근무여건으로 고생하는 전체 시내버스 노동자에 대하여 상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음.
○ 노조탄압 발생시 사업장 근로감독 및 행정감사 즉각 실시 약속
노동탄압은 당연히 전주지방고용노동지청의 근로감독 대상이며, 전주시에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행정지도를 철저히 하겠음.
12월 21일, 천막농성부터 파업투쟁까지 헌신적으로 버스 투쟁을 함께 해온 이창석 민주노총 전북본부 사무처장을 만나 전주 버스 투쟁의 과정과 성과, 이후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어용으로는 못 살겠다. 민주노조 하자”
사회운동: 재작년 한국노총 사업장인 버스 사업장 조직화가 이루어지면서 전주 버스 투쟁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버스 투쟁의 시작, 경과, 주요 요구 등을 간략히 설명해 달라.
이창석 사무처장(이하 이창석): 2010년 7월, 제일여객이라는 시내버스 회사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는데 ‘CCTV 수당’ 문제가 있었다. 운전석 앞에 CCTV를 달아 기사들이 요금을 가로채는 것을 감시했는데, CCTV 설치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이 심했다. 그래서 그 대가로 ‘CCTV 수당’을 줬고, 대법원은 이 수당이 매달 정률적으로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결국 CCTV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키게 됐는데 한국노총이 이걸 임금인상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임금이 2.9% 인상됐는데, 계산해보니 통상임금에 적용된 CCTV 수당, 정근수당 부분을 기본급으로 분류하고 허풍을 친 것이었다. 그래서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3-4일이 지나자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이 통상임금 소송을 막기 위해 재빨리 합의를 했다. 합의 내용은 100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소송을 하면 70%에서 많게는 95%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버스를 지배해온 30년 전통의 한국노총에 대해 조합원들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제일여객이 민주노조로 조직전환을 했다.
그 이전에 2010년 2월, 민주버스에서 담당하던 전북고속 노조가 최초로 민주노총으로 전환했고, 그해 9월까지 전주 시내버스가 거의 다 민주노총으로 전환했다. 모두 과반수는 아니지만 40% 정도의 조직화를 이뤄냈다. 버스노조를 개혁하자고 한 지 딱 10년 만에 성과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5개 회사가 조직되었다.
(조직 전환의)핵심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어용으로는 못 살겠다. 민주노조 하자.” “통상임금 제대로 받아내자.” 앞서 얘기한 CCTV 수당 관련해 100만 원 받고 ‘퉁치자는’ 시점에서 한국노총 전임자들 임금이 370만원으로, 약 40-50만 원 정도 인상됐다. 노동자와 전임자의 임금을 맞바꾼 셈인데, 한국노총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여겨지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에게 민주노조에 대한 신념이 생겼고, 투쟁이 계속 이어졌다.
본격적인 1차 파업은 2010년 11월인데, 그때의 파업도 민주노조 인정을 위한 것으로 153일 정도 싸웠다. 이 투쟁으로 민주노조를 인정받고 복귀하자 전체 시내버스의 약 85%가 민주노조로 가입했다. 이 성과에 이어 2012년 3월 9일, 2차 투쟁에 들어갔다. 2차 투쟁의 요구는 임단협 승리였는데 교섭 몇 번 못하고 3월 중순에 사측이 직장폐쇄를 해 투쟁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사측은 노조 조끼 벗고 조합원 탈퇴하지 않으면 교섭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140일 정도 싸웠고 결국 7월 3일부터 업무에 복귀했다. 얻은 것은 거의 없고 징계하지 않고, 조합탈퇴 회유하지 않고, 조건 없이 직장폐쇄 해제한다는 구두 약속을 받는 데 그쳤다. 2차 파업 당시에 4월 5일을 기점으로 해서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조합원 400명 이상을 잃었다.
무너진 현장, 투쟁으로 바꾸다
사회운동: 전주 시내버스의 경우 11월 8일부터 전주시청 천막농성을 시작으로 삼보일배, 파업 투쟁 등을 벌였다. 이번 3차 투쟁을 준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이고, 구체적인 투쟁 과정은 어떠했나.
이창석: 2차 투쟁 후 현장으로 복귀하고 보니 1, 2차 투쟁이 길어 참가자들의 생계문제가 심각했다. 조합원들 모두 쉬는 날 아르바이트를 나가야 했다. 투쟁의 패배와 상관없이 임금이 너무 낮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임금이 6호봉(중간층) 기준으로 180만 원 수준인데, 세금 제하면 160만 원 정도로 전주 버스가 전국 최하다. 이렇게 7, 8, 9월을 보냈다. 2차 파업 때 탈퇴한 조합원들 중에 한국노총으로 간 조합원들도 있었고, 복귀하면서 현장투쟁을 일구자고 약속했지만 사실상 무력화됐다. 사측은 시간을 끌면서 징계하고 배차에 불이익을 줬다. 한 달에 24일을 일해야 160-180만 원 정도를 받는데 22일만 시켰다. 임금은 더 떨어지고, 조합원들이 상당히 위축되고 힘든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이 3차 파업의 계기가 되었다. 계속된 불이익으로 조직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집회나 교육을 잡아도 조합원이 모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완전히 무너지겠다 싶어 3차 파업투쟁 결의했다. 선도투를 벌인 것이다.
전북본부는 10월 초부터 천막농성을 준비했다. 전주시청에 천막을 치려고만하면 다 때려 부수니, 11월 8일 새벽 6시에 기습적으로 천막을 쳤다. 기습적인 상황인데다 지역본부가 한 것이기 때문에 시청도 정치적 부담을 느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천막농성 돌입에 앞서 서울 문재인 캠프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어 서울과 전주에서 같이 싸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천막을 치고 현장에 알리면서 간부 간담회부터 제안했다. 천막을 치고 우리가 버틸 테니 간담회를 하자고.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 삼보일배 투쟁을 시작했는데 7명밖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흘간 간부 간담회를 계속 했지만 동력이 생기지 않아서 그 다음 주에 조합원 전체간담회를 시작했다. ‘투쟁 안 할 거면 탈퇴해라, 조끼 입었다고 다 민주노총 아니다’라고 거의 조합원들을 협박하는 수준이었다. 조합원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지역본부는 파업을 전제로 하지 않는 투쟁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체 조합원 388명 중 비번인 조합원들 100-120명 정도가 간담회에 나와야 되는데, 80명 정도가 참여했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대체 파업을 하면 조합원들이 얼마나 따라오겠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본부는 30%만 참가해도 강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날 삼보일배 대오가 120명으로 불어났다. 조합원 간담회를 계속하면서 조합원들이 삼보일배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거 놓치면 안 되겠다는 판단에 전격 파업 돌입을 결정했다.
조합원들은 파업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늘 보안이 문제였기에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다가 11월 29일 새벽 4시, 출근시간 20분 전에 전면파업 지침(비번자 집결은 전날 밤 10시 30분)을 내렸다. 첫날 파업에 280명 정도 모였다. 우리만이 아니라 조합원들도 놀랐다. 그렇게 모일지 몰랐던 것이다. 매번 한 개 사업장씩을 틀어막는 방식(버스 출차저지)으로 파업을 했다. 둘째 날에는 320명이 참가했다. 숫자가 늘어날지 몰랐으니 또 놀랐다. 출차 저지 투쟁하고, 시청까지 행진하고, 시청부터 삼보일배 후 해산하는 일정으로 진행했다. 이렇게 3차 파업이 시작됐다. 이틀 파업 후 조합원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다. 서로 얼굴 쳐다보면서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행진 시작하고 30분 만에 직장폐쇄 공고문을 뗐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회운동: 전주시의 태도나 대응은 어땠나.
이창석: 전주시는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만나주지 않을 뿐더러 대답도 안 했다. 우리가 소수노조가 됐고, 파업을 못 할 거라고 본 것이다. 전주시청은 민주당 중앙당에도 계속 이런 식으로 보고하면서 버스 문제는 시청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천막농성 시작하면서 전주시에 ‘7대 선결과제, 2대 약속’(87쪽 참조)을 받아내겠다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여기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가 12월 5일에 유세하러 전주에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은 맞아 죽더라도 유세장으로 밀고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문 후보는 그날 오지 않았다. 우리 때문에 안 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나중에 버스 해결되자마자 다음 날 유세하러 온 걸 보니 그 얘기가 맞았던 것 같다.
민중대회를 하는 12월 8일, 11시부터 회차투쟁을 시작했다. 버스는 출근시간에 파업하면 부담이 있다. 그래서 출근시간을 피해 토요일에 투쟁을 시작했는데 낙오자가 단 한 명뿐이었다.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지역 민중대회를 진행하던 중 13시에 조합원이 가장 많은 제일여객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대회 분위기가 직장폐쇄 때려 부수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직장폐쇄 공고문을 떼지 않는 한 버스 한 대도 못나간다는 입장이었다. ‘민중대회를 신속하게 끝내고 제일여객까지 행진해서 끝장을 보겠다’고 대회 때 공개적으로 밝혔다. 행진 시작하고 30분 만에 직장폐쇄 공고문을 뗐다는 연락을 받았다.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날 저녁에 전주시에서 ‘7대 선결과제, 2대 약속’에 대한 입장을 조율하자는 연락이 왔다. 구체적인 금액까지 조율했고, 12월 10일에 전격적으로 ‘7대 선결과제, 2대 약속’에 대한 전주시의 답변을 받고 투쟁을 마무리했다.
사회운동: 3차 파업투쟁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이창석: 3차 파업의 가장 큰 성과는 조합원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두 번째 성과는 그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전주시가 이후 책임을 지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향후 계획은 노동부 전주지청을 겨냥한 총력 투쟁이다. 전주시는 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본다. 하지만 사측은 끝까지 버티려 하고 있다. 사실상 파업에 준하는 방식으로 계속 투쟁해서 3년을 끌어온 임단협을 끝내야 한다. 다음 주부터 투쟁에 돌입하기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변호사도 이해 못하는 임금 체계
사회운동: 임단협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이창석: 근무일수를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에 맞춰 지키라는 것이 핵심 요구다. 이전에 한국노총이 만든 단협에도 주 40시간을 지키게 되어 있다. 그러려면 한 달에 22일을 만근으로 잡아야 한다. 전국적으로 모두 22일이 만근이다. 그런데 전주는 만근 일수를 22일로 정해놓고도 24일을 일하지 않으면 22일치 만근(임금)을 받을 수가 없다. 이해가 안 되지 않나? 노무사 세 명에 변호사까지 붙어서 이 임금 테이블을 분석해 봐도 이해를 못한다. 노동부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다. 사실상 24일 만근 체계를 22일로 줄이는 것, 즉 법을 지키라는 것으로 굉장히 단순한 요구다.
근무시간을 줄이면 전체적으로 30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전주시 버스회사들은 거의 자본잠식 상태에 있어서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주시가 근무시간 단축에 필요한 30억 원 정도를 예산에 배정해서 보조금을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비용문제가 해결되었는데도 사측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민주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사측의 속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노조 활동은 위축되고, 도청의 책임을 요구하기도 어려웠던 상황인데 중요한 기점을 만들었다”
사회운동: 시내버스가 1차, 2차 투쟁을 하면서 파업과 복귀를 하는 동안에도 전북고속은 계속 파업을 진행했던 것인가? 전북고속 투쟁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고, 투쟁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이창석: 계속 복귀를 안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시내버스와 같이 1차 때 복귀를 했다. 복귀하지 않은 일부가 있었고, 그것은 시내버스도 마찬가지다. 사업장별로 3-4명 정도가 남아서 파업을 이어왔지만, 전면파업은 아니었던 것이다.
쟁점과 상황은 시내버스와 비슷하다. 가장 중요한 요구는 ‘민주노조 인정’이다. 12월 2일부터 전주시 덕진구 야구장 조명탑에서 두 분이 고공농성을 벌였고, 서울 민주통합당 당사 앞에서도 농성을 진행했다. 12월 17일에 노조 인정 합의 후 철탑농성과 상경투쟁을 정리했다. 주요 합의 내용은 조합비 일괄 공제와 노조사무실 제공이다. 도지사와 도의원이 함께한 자리에서 전북고속 황의종 사장은 조합비를 일괄 공제하고, 한국노총과 협의해서 이른 시일 내에 노조사무실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합의 직후 황의종 사장이 노조사무실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일단은 일괄 공제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려 한다. 사장이 워낙 ‘독종’이라 약속을 깰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구두 합의 후 전북본부가 합의 내용을 담아 성명서를 내면, 도에서 기자브리핑을 해서 합의 내용을 확인해주도록 했다. 지키지 않으면 압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도지사 입장이 아무리 좋아도 사측이 지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데, 이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게 우리의 몫이다. 그동안 노조 활동은 위축되고, 도청의 책임을 요구하기도 어려웠던 상황인데 중요한 기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아주 좋지는 않지만 소중한 성과라 생각한다.
사회운동: 버스투쟁의 과정에서 지역본부의 역할은 어떠했나.
이창석: 열심히 몸을 대는 것이 지역본부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파업 과정에서 지역본부는 본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조합원들 설득하고, 함께 직접 투쟁하는 것. 이것이 민주노총 지역본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섭권이 지역본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투쟁하는 사업장들을 정치적으로 엄호하고 함께 투쟁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운동: 지역차원의 연대는 활발했나.
이창석: 1차 파업 때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2차 파업 과정에서 연대망이 많이 깨져버렸다. 2차 파업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3차 파업 때는 보안을 유지하려다보니 시민사회단체와 소통할 수가 없었다. 1차 파업 때처럼 촘촘하게 여론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파업 돌입 후에야 지역 연대단위들이 (투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시민사회단체들에 죄송한 부분이다. 문규현 신부님이 철탑 고공농성장을 찾아 매일 100배를 했고, 시민사회단체들이 문신부님의 투쟁을 이어가자고 결의한 날 투쟁이 끝나 지역 연대단위들에 설명을 할 수 있었다. 끝까지 민주노총을 믿고 지지해주는 단체들이 있다. 민주노총이 하면 제대로 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파업을 조직하려면 두세 달 전부터 파업의 이유에 대해 조합원들과 공감대를 만들고, 조직 동력까지 점검해 제시해야한다”
사회운동: 버스 투쟁 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이창석: 조직 정도를 예측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단순히 지침을 내린다고 파업투쟁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파업을 조직하려면 두세 달 전부터 파업의 이유에 대해 조합원들과 공감대를 만들고, 조직 동력까지 점검해 제시해야 한다. 100명 규모의 조직이어도 파업을 하게 되면 10명이 한다, 90명이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하는 것이다. 파업밖에 없다는 선동이 아니라, 구체적 수치를 가지고 설득해야 파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조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3차 파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파업 전술을 100% 가깝게 따랐다. 놀라운 결과다. 분회 간부들 설득하면서 버스노조는 ‘투쟁을 통해 조직되었고, 투쟁을 통해 돌파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는데, 이것이 적중했다. 투쟁 돌입 후에 동력이 커지면서 조합원들이 놀라운 전술 수행능력을 발휘해주었다. 역시 간부들이 선도하는 건 초반이고 그 이후에는 조합원을 믿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조합원을 믿지 않는 간부는 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파업을 통해서 절실하게 느꼈다.
“복수노조 때문에 소수노조로 전락해버린 노조들에 그저 버티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형벌이다. 전체가 같이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민주노조를 지키기 어렵다”
사회운동: 복수노조 시행 이후 많은 민주노조 사업장들이 어용노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버스의 경우는 한국노총 사업장에서 민주노조를 조직하는 경우였는데, 복수노조 시대에 민주노조를 조직하거나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투쟁에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창석: 복수노조 하에서 어용노조가 민주노조를 잠식하고 있는데, 창구단일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전국단위 총파업을 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이를 통해 (민주노조 활성화라는) 복수노조의 원래 취지를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수노조 때문에 소수노조로 전락해버린 노조들에 그저 버티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형벌이다. 전체가 같이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민주노조 지키기 어렵다. 복수노조로 고통 받고 있는 사업장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죽을 힘을 다해서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사측이 복수노조를 통해 노동자를 갈라치기 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이 견디지 못하고 분열할 것이라는 사측의 계산이 실제 먹혀들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노동자들 스스로에게 달려있을 수밖에 없다. 고통스럽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총파업 아니면 정말 대안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박근혜가 당선됐다고 슬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동자계급답게 자신감을 유지하자”
사회운동: 마지막으로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이창석: 우선은 노동자계급답게 자신감을 유지하자는 말을 하고 싶다. 투쟁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물론 패배가 장기화되면 힘들겠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투쟁의 결단과 연대에 대한 것이다. 생존권이 달린 문제에 쉽게 모험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기투쟁 사업장들은 일정한 모험이 필요하다. 때로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그 결단이 실천될 수 있도록 주변이 결집해서 엄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운동의 고질적 병폐인 정파주의는 해소되어야 한다. 사업장 투쟁에서 투쟁 방법이나 전술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을 분열시키면 안 된다. 노동조합이 자리를 잡고 민주노조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지, 분열시켜 내 편 만들고 집행부 공격해 권력을 잡으려 들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는 권력을 잡기도 불가능할뿐더러 노동조합과 현장도 망가진다. 정파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파는 필요하다.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투쟁을 책임지는 부위가 있어야겠지만, 그것이 자신들만의 정파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례가 너무 많다. 활동가들이 현장이 올곧게 설 수 있도록 합심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참고] 7대 선결과제 2대 약속에 대한 전주시 답변
7대 선결과제
○ 버스 임단협 교섭 연내 타결
노사 임단협 협상은 노사가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교섭이 원활히 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방법으로 조정을 해왔음. 회사와 민주노총의 노사 교섭이 성실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전주지방고용노동지청과 함께 연내 및 조속한 타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독려하겠음.
○ 노사합의 사항 준수를 전제로 한 전주시의 예산 배정
법정근로시간 준수는 노동법에 의해 당연히 지켜져야 함. 노사 합의사항 준수를 전제로 한 예산배정요구에 대해 전주시에서는 불법적인 사항이 아니고 관계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주시의회와 협의를 통하여 어떠한 절차를 통해서라도 해결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음.
○ 버스현장의 노동탄압 즉각 중단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노동법에도 있듯이 부당 노동행위로 법적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며, 회사 측에 부당한 처우를 하지 않도록 전주지방고용노동지청과 함께 전주시가 관련법에 따라 적극 지도해 나가겠음. 징계에 대해서는 회사 사규에 의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가 없도록 고용노동부와 전주시가 함께 노력하겠음.
○ 버스 임금 체불 해결과 전임자 임금 즉각 지급
임금협약서에 명시된 임금지급일 10일을 준수하도록 회사측에 강력히 권고하고, 모든 지급액은 임금부터 줄 수 있도록 하겠음. 현재 어려운 회사 사정 때문에 상여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회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회사측에서도 우선적으로 상여금을 지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조속한 시일 내에 지급될 수 있도록 행정지도를 하겠음. 노조 전임자 임금 부분은 단체협약에 포함하는 내용으로, 노사 협약 결과를 토대로 지급여부를 결정토록 권고하겠음.
○ 자본잠식 해결을 위한 경영개선이 없을 경우 사업면허권 환수
전국적으로 버스회사는 매우 경영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전주시내버스 5개사도 경영상태가 어려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 전주시에서는 버스회사에 경영개선대책을 요구하고, 단계적으로 경영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강력한 행정지도를 펼쳐 나가겠음.
○ 임금 체계 즉각 변경을 통해 법정 근로시간 준수
법정 근로시간인 주40시간은 법으로 정해진 사안으로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관련법에 의해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노동자들의 임금체계 변경과 법정근로시간 준수는 단체협약을 통해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음. 노사가 협약을 통해 근로시간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하고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과 함께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의거 강력한 행정지도를 하겠음.
○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한 차별금지
회사 세부 경영상황에 대해 시가 직접적으로 관여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나, 부당노동행위의 소관청인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철저히 해 줄 것을 건의하고, 우리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즉각 실시 권고하겠음.
2대 약속
○ 불법 파업 명명으로 인한 피해 원상회복을 위한 방안 제시 약속
2010. 12. 8일 파업에 대해 전주지방고용노동부의 불법파업이라는 유권해석을 통보받고 불법파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바 있으나 이후에는 불법파업이라 단정 또는 사용하지 않았음. 앞으로 노사 정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열악한 근무여건으로 고생하는 전체 시내버스 노동자에 대하여 상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음.
○ 노조탄압 발생시 사업장 근로감독 및 행정감사 즉각 실시 약속
노동탄압은 당연히 전주지방고용노동지청의 근로감독 대상이며, 전주시에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행정지도를 철저히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