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태평양으로의 선회’와 박근혜 정부의 출범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 11월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는 한국이 포함된 두 개의 지역무역협정 협상 개시가 선언되었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에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6개국을 포함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그것이다. 정부와 자유무역론자들은 교역의존도가 50%에 달하는 ASEAN+6 지역무역협정을 통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기존 선진국 시장의 수요 감소를 대체할 역내시장 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단적으로, 한중일 3국과 RCEP 참여 16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2011년 기준 각각 20%, 28%를 상회한다. 이와 함께 경제협력관계 심화를 통한 안정적 정치협력관계 구축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2011년부터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한 미국도 이번 정상회의 기간 중 자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TPP를 발판 삼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자신이 속하지 않은 한중일 FTA와 RCEP의 개시는 역내에서 자국의 영향력 축소, 다시 말해 자신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상회의 보름 전 재선에 성공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가 태국, 버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2기를 맞아 자신의 ‘태평양으로의 선회’(pivot to the Pacific) 노선을 다시 한 번 확고히 천명한 것이다.
미국의 ‘태평양으로의 선회’는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재관여재균형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왔다. 한편으로 오마바 정부는 2011년 이라크 철군과 2014년에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기존 부시 정부의 유럽대서양 중심 정책을 아시아태평양 중심 정책으로 전환했다. 다른 한편으로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하기 위해 정치군사 정책을 변화시켰다. 미국의 정치군사력 투사 범위가 본토에서 일본한국, 인도네시아, 인도, 오스트레일리아로 확대되었는데, 이는 정확히 중국을 포위하는 것이다. 이에 동반하여 미국의 군사정책도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해상공중전’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그에 따라 한미일 군사동맹의 재편 및 강화가 적극 추진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중시 전략은 특히 미국의 경제위기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이번 대선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이 현재 미국인들의 주요한 정치적 관심사는 경제위기 극복, 다시 말해 일자리 창출과 재정적자 축소다. 그리고 이 문제들과 긴밀히 연관된 것이 바로 무역적자 및 대외부채 축소를 목표로 하는 통상정책이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여 오바마 정부는 국가수출확대정책(NEI)과 같은 수출장려 정책과 무역흑자국에 대한 환율절상 압력, 그리고 TPP와 같은 다자 지역무역협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중 특히 후자의 경우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에 대한 경제협력 강화와 더불어 역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통상압력 강화라는 이중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경우 FTAAP를 달성하는 경로로서 자국 주도의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EAFTA) 외에도, 일본 주도의 동아시아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EA)이나 미국 주도의 TPP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개방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면서도 TPP가 중국의 FTA 추진 전략과 동아시아 경제협력 구상에 차질을 가져온다는 인식 하에 실제로는 ASEAN과의 FTA를 심화, 발전시키는 동시에 한중일 FTA를 가속화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협력에서 동아시아 국가의 영향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대응해왔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듯, 어느 미국의 외교전문가는 이번 EAS를 미국과 중국이 동남아 각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외교적 각축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TPP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의 범위와 경제규모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환태평양’이라는 이름에 현저히 미달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11개국의 GDP(2011년 기준)는 전 세계의 30%에 달하지만, 이중 미국호주캐나다멕시코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규모는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 TPP 협상국 규모로는 ASEAN+6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RCEP에 대항하기 버겁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2013년 APEC에서 TPP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2기 오바마 정부가 일본과 한국에 TPP 참여를 강력 권유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시되고 있다. 만일 일본과 한국이 합류할 경우 TPP는 역내 GDP가 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초대형 경제블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역협정 체결은 국내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TPP의 향방을 속단하기는 어렵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트너였던 일본만 하더라도 지난 2년간 민주당 내각 하에서 미국 주도의 TPP 체결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협상 참여 여부만을 놓고 논란을 거듭한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자민당 역시 ‘국익에 맞는 최선의 길을 선택한다’며 TPP 참여 가능성을 원론적으로 열어 두었지만, 전통적 지지층인 농촌지역을 의식해서 ‘성역 없는 관세 철폐를 요구하는 TPP 협상에는 반대한다’는 신중론을 취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일본이 가까운 시일 내 TPP 참여를 추진할 동력이 약화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이 TPP를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교두보로 인식한다는 점, 그리고 아베 내각이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언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1월 말로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쨌든 아베 정부가 TPP 참여를 당장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공은 박근혜 정부로 넘어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한국 대선 직후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들이나 외교전문가들은 북핵 문제나 한미동맹 강화와 연계해 미국이 차기 정부에 TPP 참여를 강력 권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을 폭넓게 구사하면서도 아직 채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TPP에 대해서는 다소 관망하는 제스처를 취해왔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지금으로서는 TPP보다 한중일 FTA나 RCEP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의 TPP 참여 여부와 한중 FTA 및 한중일 FTA 등의 추이를 지켜보며 TPP 참여 여부와 전략을 확정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장기적으로도 ‘APEC 차원의 지역 경제통합인 FTAAP는 미국과 중국을 모두 포괄하는 경제통합 논의이므로 한국은 어느 일방에 치우치지 않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조언한다. 그렇다면 과연 차기 정부는 TPP를 비롯하여 난마처럼 얽힌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어떤 외교안보 노선을 취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이번 대선에서는 미중 간 갈등을 배경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영토 분쟁이 전례 없이 격화되고 북한도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동아시아 정세가 비상하게 고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국방통상 등 외교안보정책이 거의 이슈화 되지 않았다. ‘민생위기’라는 사정을 반영하여 ‘경제민주화’가 핵심 쟁점으로 제기되었고, 또 양대 후보가 자기 나름의 선거 전략에 따라 안보 사안을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현실적 이유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자는 한미 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심화발전’시키고 한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걸맞게 업그레이드’ 하겠다고 주장하였다. 문재인 후보도 ‘공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균형외교’를 주장한 바 있다. 약간의 뉘앙스 차이는 있지만 공히 한미동맹의 우위 하에 한미한중 관계의 조화 또는 균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양자 사이의 실질적 차이는 없었다. 즉 대선에서 외교안보 정책이 쟁점화 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사실 미국이 TPP의 기본형으로 사고하는 한미 FTA를 비준하고 미군의 아시아태평양 전력 투사의 전진기지인 평택제주기지를 건설하는 데 매진한 이들에게 ‘동북아 균형 외교’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망한 일이다. 한국이 ‘태평양을 통해 미국과 하나의 대륙으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더구나 미국이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플랜 B’로 추진하는 ‘태평양으로의 선회’에 이미 깊숙이 가담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번 『사회운동』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맞이하여 지난 18대 대선을 평가하고 이후 노동자운동의 과제를 전망하는 두 개의 기사를 [특집]으로 구성했다. 전준범은 이번 대선 결과를 분석하면서 민중운동의 대선 대응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박하순은 정치경제적 조건에 대한 분석과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상황에 대한 진단을 통해 올해 과제와 투쟁방향을 제시한다. [제언]으로는 2013년 서울지역 사회운동의 조건과 과제를 분석하는 김정래의 기사와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로 진행되는 세계이주사회포럼에 참가하고 온 정영섭의 기사를 실었다. 이어서 [분석]으로는 지난 해 4선에 성공한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의 명암을 묘사하는 제임스 페트라스의 논문을 번역했다. 노동자운동에 많은 교훈을 남긴 전북버스 투쟁과 인천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이야기를 [인터뷰]와 [지역과 현장] 코너에서 각각 다룬다. 깊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시점인 만큼 이번 호에는 [서평]을 비중 있게 다뤘다. 작년 10월에 타계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유작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성매매의 현실과 문제점을 상세하게 추적한 『은밀한 호황』,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광범한 실사를 통해 그 대안적 방향을 모색하는 조돈문의 『비정규직 주체 형성과 전략적 선택』을 검토한다. 1월 20일로 4주기를 맞는 용산참사 투쟁의 경과와 과제를 다룬 이원호의 기사를 [시론]으로 싣는다.
용산철거민들과 지난 연말 숨져간 노동자들을 기리는 뜻에서 검은 표지에 하얀 국화를 새겼다.
2011년부터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한 미국도 이번 정상회의 기간 중 자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TPP를 발판 삼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자신이 속하지 않은 한중일 FTA와 RCEP의 개시는 역내에서 자국의 영향력 축소, 다시 말해 자신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상회의 보름 전 재선에 성공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가 태국, 버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2기를 맞아 자신의 ‘태평양으로의 선회’(pivot to the Pacific) 노선을 다시 한 번 확고히 천명한 것이다.
미국의 ‘태평양으로의 선회’는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재관여재균형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왔다. 한편으로 오마바 정부는 2011년 이라크 철군과 2014년에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기존 부시 정부의 유럽대서양 중심 정책을 아시아태평양 중심 정책으로 전환했다. 다른 한편으로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하기 위해 정치군사 정책을 변화시켰다. 미국의 정치군사력 투사 범위가 본토에서 일본한국, 인도네시아, 인도, 오스트레일리아로 확대되었는데, 이는 정확히 중국을 포위하는 것이다. 이에 동반하여 미국의 군사정책도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해상공중전’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그에 따라 한미일 군사동맹의 재편 및 강화가 적극 추진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중시 전략은 특히 미국의 경제위기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이번 대선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이 현재 미국인들의 주요한 정치적 관심사는 경제위기 극복, 다시 말해 일자리 창출과 재정적자 축소다. 그리고 이 문제들과 긴밀히 연관된 것이 바로 무역적자 및 대외부채 축소를 목표로 하는 통상정책이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여 오바마 정부는 국가수출확대정책(NEI)과 같은 수출장려 정책과 무역흑자국에 대한 환율절상 압력, 그리고 TPP와 같은 다자 지역무역협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중 특히 후자의 경우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에 대한 경제협력 강화와 더불어 역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통상압력 강화라는 이중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경우 FTAAP를 달성하는 경로로서 자국 주도의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EAFTA) 외에도, 일본 주도의 동아시아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EA)이나 미국 주도의 TPP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개방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면서도 TPP가 중국의 FTA 추진 전략과 동아시아 경제협력 구상에 차질을 가져온다는 인식 하에 실제로는 ASEAN과의 FTA를 심화, 발전시키는 동시에 한중일 FTA를 가속화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협력에서 동아시아 국가의 영향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대응해왔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듯, 어느 미국의 외교전문가는 이번 EAS를 미국과 중국이 동남아 각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외교적 각축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TPP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의 범위와 경제규모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환태평양’이라는 이름에 현저히 미달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11개국의 GDP(2011년 기준)는 전 세계의 30%에 달하지만, 이중 미국호주캐나다멕시코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규모는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 TPP 협상국 규모로는 ASEAN+6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RCEP에 대항하기 버겁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2013년 APEC에서 TPP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2기 오바마 정부가 일본과 한국에 TPP 참여를 강력 권유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시되고 있다. 만일 일본과 한국이 합류할 경우 TPP는 역내 GDP가 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초대형 경제블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역협정 체결은 국내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TPP의 향방을 속단하기는 어렵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트너였던 일본만 하더라도 지난 2년간 민주당 내각 하에서 미국 주도의 TPP 체결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협상 참여 여부만을 놓고 논란을 거듭한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자민당 역시 ‘국익에 맞는 최선의 길을 선택한다’며 TPP 참여 가능성을 원론적으로 열어 두었지만, 전통적 지지층인 농촌지역을 의식해서 ‘성역 없는 관세 철폐를 요구하는 TPP 협상에는 반대한다’는 신중론을 취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일본이 가까운 시일 내 TPP 참여를 추진할 동력이 약화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이 TPP를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교두보로 인식한다는 점, 그리고 아베 내각이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언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1월 말로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쨌든 아베 정부가 TPP 참여를 당장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공은 박근혜 정부로 넘어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한국 대선 직후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들이나 외교전문가들은 북핵 문제나 한미동맹 강화와 연계해 미국이 차기 정부에 TPP 참여를 강력 권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을 폭넓게 구사하면서도 아직 채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TPP에 대해서는 다소 관망하는 제스처를 취해왔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지금으로서는 TPP보다 한중일 FTA나 RCEP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의 TPP 참여 여부와 한중 FTA 및 한중일 FTA 등의 추이를 지켜보며 TPP 참여 여부와 전략을 확정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장기적으로도 ‘APEC 차원의 지역 경제통합인 FTAAP는 미국과 중국을 모두 포괄하는 경제통합 논의이므로 한국은 어느 일방에 치우치지 않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조언한다. 그렇다면 과연 차기 정부는 TPP를 비롯하여 난마처럼 얽힌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어떤 외교안보 노선을 취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이번 대선에서는 미중 간 갈등을 배경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영토 분쟁이 전례 없이 격화되고 북한도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동아시아 정세가 비상하게 고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국방통상 등 외교안보정책이 거의 이슈화 되지 않았다. ‘민생위기’라는 사정을 반영하여 ‘경제민주화’가 핵심 쟁점으로 제기되었고, 또 양대 후보가 자기 나름의 선거 전략에 따라 안보 사안을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현실적 이유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자는 한미 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심화발전’시키고 한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걸맞게 업그레이드’ 하겠다고 주장하였다. 문재인 후보도 ‘공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균형외교’를 주장한 바 있다. 약간의 뉘앙스 차이는 있지만 공히 한미동맹의 우위 하에 한미한중 관계의 조화 또는 균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양자 사이의 실질적 차이는 없었다. 즉 대선에서 외교안보 정책이 쟁점화 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사실 미국이 TPP의 기본형으로 사고하는 한미 FTA를 비준하고 미군의 아시아태평양 전력 투사의 전진기지인 평택제주기지를 건설하는 데 매진한 이들에게 ‘동북아 균형 외교’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망한 일이다. 한국이 ‘태평양을 통해 미국과 하나의 대륙으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더구나 미국이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플랜 B’로 추진하는 ‘태평양으로의 선회’에 이미 깊숙이 가담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번 『사회운동』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맞이하여 지난 18대 대선을 평가하고 이후 노동자운동의 과제를 전망하는 두 개의 기사를 [특집]으로 구성했다. 전준범은 이번 대선 결과를 분석하면서 민중운동의 대선 대응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박하순은 정치경제적 조건에 대한 분석과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상황에 대한 진단을 통해 올해 과제와 투쟁방향을 제시한다. [제언]으로는 2013년 서울지역 사회운동의 조건과 과제를 분석하는 김정래의 기사와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로 진행되는 세계이주사회포럼에 참가하고 온 정영섭의 기사를 실었다. 이어서 [분석]으로는 지난 해 4선에 성공한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의 명암을 묘사하는 제임스 페트라스의 논문을 번역했다. 노동자운동에 많은 교훈을 남긴 전북버스 투쟁과 인천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이야기를 [인터뷰]와 [지역과 현장] 코너에서 각각 다룬다. 깊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시점인 만큼 이번 호에는 [서평]을 비중 있게 다뤘다. 작년 10월에 타계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유작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성매매의 현실과 문제점을 상세하게 추적한 『은밀한 호황』,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광범한 실사를 통해 그 대안적 방향을 모색하는 조돈문의 『비정규직 주체 형성과 전략적 선택』을 검토한다. 1월 20일로 4주기를 맞는 용산참사 투쟁의 경과와 과제를 다룬 이원호의 기사를 [시론]으로 싣는다.
용산철거민들과 지난 연말 숨져간 노동자들을 기리는 뜻에서 검은 표지에 하얀 국화를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