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으로 둔갑한 저출산 대책
박근혜 정부 여성정책을 비판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전 정부와 다른 특별한 여성정책을 내건 것이 아니었음에도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은 여성들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지난 3월 민주노총이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50.1%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매우 기대한다"거나 "약간 기대한다"고 답했다. 박근혜 정부 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거나 유지될 것이라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인식을 고려할 때, 여성노동자들의 절반이 기대감을 표명한 것은 의외다. ‘여성대통령이니까 여성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가 여성노동자들에게도 상당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기대는 위험하다. 박근혜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라는 기조 하에 크게 여성정책을 가족정책, 임신출산양육 지원책과 여성 일자리 정책 세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른 어떤 의의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저하에 대처한다는 의의가 강조되면서, 임신출산은 권리라기보다 의무가 되고 있다. 또한 여성의 노동도 여성 스스로의 자립이 아니라 국가의 성장률에 기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저출산 대책은 여성의 출산을 주요 문제로 삼고, 그 지원을 논한다는 점에서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사고하기 쉽다. 또 실제 여성운동이 여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저출산 문제를 레토릭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출산을 당연한 여성의 ‘의무’로 만드는 지원책과, 성장률 기여를 목적으로 여성을 ‘활용’하고자 하는 여성 일자리 정책이 과연 ‘여성을 위한’ 정책일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저출산고령화의 해결책으로 제출되는 출산율과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제고 정책이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이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과 앞으로의 운동방향을 밝히고자 한다.
한국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처법
저출산고령화는 세계 여러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일반적으로 △출산율 제고 △고령층여성 등 유휴인력 활용 △이주노동자 활용 △연금제도 개혁이 꼽히며, 세계 각국은 이 네 가지 정책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정책수단의 선택, 각각의 정책지향은 국가별로 상이하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영국은 노동인구의 부족에 대해 출산에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보다는 해외로부터의 노동력 유입을 택해왔다. 이들 국가와 달리 출산율 제고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스웨덴이나 프랑스의 경우도 정책지향은 각각 상이하다. 스웨덴이 2인 소득가구 모델을 지향하는 반면, 프랑스는 생계부양자-가정주부 가족 모델을 지향한다고 분석되는데, 이러한 지향에 따라 출산율 제고를 위해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정책 수단도 차이가 난다.
한국 역시 이 네 가지 방법을 모두 택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갖는 특징은 출산율 제고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을 시도한다는 점, 고용률 제고 등의 과제와 맞물려 유휴인력활용을 주요하게 사고한다는 점, 연금개혁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 이주노동력의 활용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1970년대 강력한 출산억제책 사용 등 국가가 출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출산율 제고를 위한 국가개입 자체에 대해 별다른 비판이 없다. 또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강해 노동인구의 부족을 이주노동자의 유입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있다. 이는 곧 노동인구의 확보를 위해서는 출산율 제고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책은 저출산의 배경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저출산의 배경은 △가족 형성 및 구성의 변화 (비혼 및 만혼의 증가, 이혼율 증가 등) △여성의 교육수준 및 경제활동 참가 증가라는 것이 통용된다. 그러나 여성의 교육수준과 경제활동 참가 증가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단순한 분석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OECD국가의 경우 1990년대 중반부터는 여성의 교육수준과 여성고용율이 각각 출산율 상승과 비례관계를 갖는데,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처음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출산율이 감소하지만, 경제활동참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안정을 이룬 상태에서는 출산율 역시 안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의 노동참여가 당연한 사회에서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히려 성평등 수준인데, 여성에게 여전히 가사와 양육의 1차적 책임을 지우는 국가보다 성차별과 성별분업 해체를 지향해온 국가들에서 대체로 출산율이 높게 나타난다.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는, 한국의 저출산 원인으로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결혼과 출산을 연기하거나 중단하는 현상을 꼽는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로는, △고용과 소득 불안정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환경 △경제적 부담과 양육 인프라 부족을 들고 있다. 특히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이유로 풀타임위주의 고용문화와 여성에 편중한 과도한 육아부담을 들며,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한국에서 출산율 제고 정책은 주로 일·가정 양립 정책과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경제적 지원책으로 구성된다.
정부의 정책지향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저출산 정책이 국가의 의도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를 낸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가족옹호의 성격을 띠는가, 어떤 가족모델을 지향하는가, 노동정책은 어떠한가 등에 따라 저출산 대책이 성별분업을 해체하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하며, 여성 일자리의 신축성이 강화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지향하는 가족의 상과 일하는 여성상은 어떠할까.
어떤 가족을 옹호하는가
가족옹호는 한국의 저출산 대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에도 ‘건강한 가정 만들기’라는 국정과제 하에 ‘가족 가치 확산’이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정부가 옹호하고자 하는 ‘건강가정’ 혹은 ‘가족 가치’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가 이에 대해 명확히 설명한 적은 없다. 하지만 ‘건강가정’이 이전부터 언급되어 왔으며,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으로까지 반영되었다는 점,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족 가치의 개념에 기대 정부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정부가 옹호하는 가족의 상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은 국가가 가족에 대한 개입 의사를 가족정책의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표명한 최초의 법이다. 여기서 국가가 상정하는 가족의 기본적인 상이 무엇인지 확인 가능하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고,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는 가족은 (합법적인) 혼인 관계가 없이는 구성될 수 없으며, 출산이 전제되는 가족구성이 바람직하다는 사고를 반영한다.
한국의 가족주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한국사회에서 지향되는 바람직한 가족의 상을 추측해볼 수도 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강화된 가족주의의 특징으로는 △ 3세대 가족보다 핵가족, 세대관계보다는 부부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성애 중심성을 확인하는 핵가족 담론이었다는 점, △가정적인 아버지상 옹호, 전업주부 아내의 지위 상승 등 가족주의가 젠더 평등의 이념과 부분적으로 결합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해져야 하는 여성을 핵가족의 아내 혹은 주부로 정체화하여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이상적으로 사고되는 ‘가족’은 ‘가정적인 아버지와 전업주부 아내가 일정정도 평등한 관계를 맺는 이성애 핵가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과는 다른 점이 있지만, 여전히 성별분업이 유지되는 가족이다.
왜 여성인력활용을 강조하는가
저출산 시대 여성의 노동은 노동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현오석 부총리가 여성가족부에 보낸 기고문이 이를 잘 드러내준다. 현오석 부총리는 기고문에서 “저출산ㆍ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각국이 최선으로 꼽는 정책 대안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것”, “여성인력 활용이야말로 ‘늙어가는 거시경제’에 제동을 거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고, 우리경제의 성장동력” 이라고 언급했다. 다음날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부총리가 여성인력 활용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표 1] 저출산 극복을 위한 법안 및 계획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이기도 했던 고용률 제고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서도 여성인력 활용이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의 대상으로 청년장년여성이 꼽히는데, 그 중 여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미 이명박 정부 시기부터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은 대부분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선전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자리는 단기적이고 저임금인 경우가 많아, 수치상으로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언정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고용률 포장에만 급급하고, 일자리의 질은 낮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한국의 대기업 중심의 수출지향적 경제구조가 노동신축화를 필수로 한다는 점과 연결된다. 이러한 경제구조를 유지하려면 물량에 따라 노동자들의 수를 신축적으로 조절해야 하고,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저임금을 유지해야 한다. 노동인구가 감소하면 노동자들의 조달이 어려워지고, 저임금 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는 4-5%의 실업률이 유지되는 것을 완전고용이라 보는데, 이는 신자유주의가 특징으로 하는 노동자의 신축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일정한 규모의 산업예비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인력 활용정책도 이러한 맥락 하에서 진행된다.
박근혜 정부 여성정책의 문제점
정상가족 규범 강화
‘건강한 가정 만들기’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가족정책은 가족의 이상적인 상을 설정하고 그렇지 않은 가정에 대한 지원을 통해 가족을 육성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가족 구성의 변화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가족이 사회에 기능적인 단위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가족정책은 ‘가족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단위로서의 가족’을 지원하는데, 이는 가족의 강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가족 규범의 강화는 비혼동거부부동성애자 등의 권리를 제약한다. 또한 여성의 이중부담도 강화한다. 여성들은 가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도 해야 하고, 가정에서는 가사와 양육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가족 해체 등 위기가족 지원 강화’ ‘취약가족의 가족기능 회복 및 자립 강화’ 등 건강가정이 아닌 가족에 대한 가족정책을 따로 설정하고 있다. 지원이 필요한 특별한 가족에는 다문화 가족 역시 포함된다. 그런데 이렇게 취약가족과 다문화가족을 특별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정의하는 것은 낙인효과를 낳고, 정상적인 가족에 대한 옹호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여성은 합법적인 혼인관계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른 가족을 구성할 수도 있고, 결혼이 반드시 출산을 전제할 필요는 없으며, 출산이 정상가족 내에서만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건강한 가정’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모든 자기결정을 비정상인 것으로 여기고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비혼모 지원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건강한 가정’을 강조하는 이상 공식적 남성 파트너가 없는 비혼여성의 출산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족주의 강화 속에서는 그 어떤 선별적 지원도 가족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공공 보육은 뒷전인 양육지원정책
그 동안 여성운동노동운동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서 보육의 공공성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해 왔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은 최근 남성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 여성들이 사용함으로써 성별분업 완화효과가 적고, 대다수 비정규직 여성들은 산전후 휴가조차 쓸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했을 때 보육의 공적보장이야말로 비정규직 여성들까지 그 성과가 공유될 방안이기 때문이다.
[표 2]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
그러나 지금까지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어린이집은 1990년 이후 해마다 증설되어 2011년 39,842개가 설치운영되고 있으나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율은 5.3%에 불과하다. (<표 3> 참고) 영아전담 보육시설은 2005년 883개에서 2011년 638개로 오히려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확대’를 계획으로 세웠는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국공립 보육시설을 매년 50개씩 신축, 매년 100개씩 기존 운영시설을 국공립으로 전환’이 전부다. 4만에 육박하는 보육시설 규모를 고려할 때 국공립보육시설 비중을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면피용 계획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보육 시스템의 확충은 뒤로 한 채, 0~5세의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확대에 힘을 쏟으며 금전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당장 올해 3월부터 보육료 지원이 확대되고, 양육수당이 처음으로 지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민간보육시설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육료 지원은 실제 보육료의 일부만을 지원할 뿐이다. 또한 양육수당 지급은 여성들을 가정에 머무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한국과 같이 소득재분배 제도가 미비하고 여성들이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해 전체 가처분소득 중 양육수당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지 않은 국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 욕구를 낮추고, 여성들이 스스로 가족 내에서 자녀양육을 선택하게 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표 3] 어린이집 연도별 설치 및 운영 현황(2007년-2011년, 단위: 개소)
여전히 강조되는 시간제 일자리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취해진 정책은 시간제 일자리(유연근무제)였다. 그동안 시간제 일자리는 기존의 정규직 일자리를 쪼개 자릿수를 늘리는 것이며, 노동시간과 장소는 유연화하되 시간활용도를 높여 집중적으로 생산량을 높이고, 노동통제를 통해 노동강도를 높이고자 하는 정책이라고 비판되었다.
시간제노동자들은 서구 국가들에서도 전일제 근로보다 2배 이상 높은 빈곤률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짧은 노동시간으로 실업보험 등의 수급조건을 맞추지 못해 복지제도로부터도 배제되는 등 이중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양육기의 2-3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양육책임의 부담을 벗은 그 외 연령대의 여성에게도 시간제 일자리를 강요한다. 그리고 시간제 일자리는 대부분 경력개발이 불가능한 저임금 서비스직에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제 일자리를 늘린 결과 여성 시간제노동자는 급증하고 있다. 2012년 3월 현재 시간제노동자는 170만 1천 명인데 비정규직 중 시간제노동자는 29.3%로 불과 1년 전에 비해 2.8% 포인트 상승하였다. 이 중 여성은 2011년 3월 35.6%에서 2012년 3월 39.5%로 15만 명이나 증가한 반면, 남성의 경우 16.6%에서 17.5%로 약 1.5만 명 증가하는 소폭 상승에 그쳤다. 이렇게 늘어난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만족도는 낮다. 이는 여성들이 단시간 일자리에 만족해서 선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있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여 내놓은 개선안이 바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기 이미 제출되었던 정책으로, 박근혜 정부 여성정책에도 그대로 들어가 있다. ‘반듯한’은 상용직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하루에 3-6시간 일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저임금일 수밖에 없고, 여성의 소득은 가족 내에서 부차적인 지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 또한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비정규직 여성들은 정규직 여성들보다 일·가족 갈등을 더 많이 경험하고 가족의 정서적 지원은 더 적게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실제 시간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장과 가족 모두에서 경제활동이 저평가되는데, 이는 가족 내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가사분담을 요구하는 것도 어렵게 만든다. 즉 현재 한국의 일가정 양립정책으로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며, 가사와 육아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여성이 져야 한다는 인식도 바꿀 수 없다.
질 낮은 여성일자리 창출
여성운동은 정부가 여성고용정책의 범위를 협소하게 사고한 것에 대해 비판해왔다. 노동정책 전반이 여성 차별적인 효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성고용정책의 범위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특수한 정책에 한정하면서 여성에게 맞는 일자리를 따로 제시하는 경우는 많았다.
박근혜 정부는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이전부터 추진되어 온 정책이다. 2008년에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이 마련되었고,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 여성 특화 교육이나 취업지원을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더욱 강화하겠다고는 하나 이는 효과도 미미하고 설령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성별 직무분리나 여성의 저임금 직종으로의 집중현상을 지속시킬 수 있다.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일자리는 주로 여성들이 일하면서 생기는 돌봄의 공백을 메꾸는 사회서비스 일자리이다. 사회서비스는 사회 내 구성원의 재생산을 위한 제반의 사회적 기반 서비스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교육, 교통, 주택, 의료, 에너지, 물 등의 공적 기반시설을 전제로 한 서비스영역과 보육, 가사, 간병, 장애인 활동보조 등 돌봄 서비스 중심의 대인 서비스가 모두 포함되는데, 여성 일자리로 강조되는 것은 후자이다.
사회서비스는 설비투자 비용의 부담이 없는 대인서비스이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의 사회서비스산업 취업자가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 1.5%에서 2012년 5.7%로 크게 증가하였고, 특히 2005년 이후 증가한 취업자(212만명)의 약 42%(81만명)가 사회서비스산업에서 창출되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산업의 월평균 임금(188만원)은 전체 산업 평균(210만원)보다 낮고 연평균 임금 증가율도 산업 평균을 하회한다.
[그림 1] 돌봄노동의 임금수준 :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 대비 (자료:LIS)
임금 수준이 이렇게 낮은 것은 돌봄 서비스가 전통적인 여성의 일이고, 사회가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대신 민간시장을 활성화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재원을 부담해서 이용권(바우처)을 지급한다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러한 돌봄의 시장화는 일자리의 질을 더욱 떨어뜨린다. 각국 돌봄노동자의 임금수준을 비교해보면, 공공부문을 통해서 사회서비스를 주로 제공하는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았지만 한국을 비롯하여 민간시장 메커니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국가들에서는 낮게 나타난다. ([그림 1] 참고)
이중부담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
여성들이 가사와 양육의 1차적인 책임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가정의 양립정책과 여성 일자리 정책 역시 여성에게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이중부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출산을 포기하거나 직장을 포기하거나
모성이 노동시장에서의 약점으로 작용하고 장시간 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에서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족 내로 역할을 제한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가족 내 역할을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가족 내 역할을 맡아야 하는 관계를 형성하지 않거나, 의도한 것보다 적은 수의 아이를 갖거나 아이를 갖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선택은 출산율을 저하시켜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출산을 선택할 권리가 박탈되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일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 중 50%가 5년 내에 외벌이 부부가 된다. 여기에서 여성들이 일가정의 양립을 시도할 것인가, 육아에 전념할 것인가를 저울질 할 때는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보아야 한다. 직업전망의 부재, 자녀양육을 어머니가 담당하는 것이 좋다는 사고, 남편과의 가사와 양육 분담의 어려움, 보육시설의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둘러싼 갈등을 거친 뒤에, 여성들은 전망 없는 일자리를 이중부담을 안고 유지하느니 육아에 전념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친족관계를 활용하거나 공백으로 두거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선택한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중부담을 줄여 양쪽을 병행하려 노력한다. 우선 육아휴직 활용이 있다. 그러나 이를 선택할 수 있는 여성들은 정규직 등으로 제한된다. 또한 활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이 영유아 보육 기간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길지 않으며, 육아휴직의 사용이 오히려 직장에서의 승진 등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자녀보육을 시설을 이용하거나 친족관계를 활용하여 해결할 수도 있다. 한국은 여전히 보육시설이 부족하고, 시설양육에 대한 불신도 커 친족관계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녀보육은 주로 친족 내 여성노인이 맡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도 경제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저소득층은 가족 내 여성노인도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보육을 대행하는 친족 내 여성노인에게 일정한 경제적 보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친족관계를 이용해 가족 내 돌봄의 공백과 복지의 공백 양자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돌봄의 (재)가족화가 장기적으로 보면 반(反)사회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첫째, 보육의 공공성이 확충되고 보육의 사각지대가 해소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돌봄을 다시 가족 내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공공 보육교육이 강화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둘째,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45%라는 높은 노인 빈곤율을 보이는 상황에서 노인복지를 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노후 소득보장 등 사회안전망 재구축에 대한 요구를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저소득층 여성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 있다. 특히 이들이 종사하고 있는 서비스생산직 노동은 전문직에 비해 노동에 대한 통제권이 부족하고, 저임금이기 때문에 자녀돌봄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자녀를 양질의 보육환경에 맡길 수도, 친족 내에서 보육대행자를 구하기도 어려운데, 취학 전에는 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취학 후에는 가정에 혼자 두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보살핌 경험의 차이는 보살핌의 위계를 형성하고 시설양육의 낙인으로 이어지고, 계급 재생산의 기제로 기능하게 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된다.
여성,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여성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직장과 가사양육으로 인한 이중부담을 지고 있었고, 이것이 곧 저출산으로 드러났다. 이중부담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책이 없고, 저출산 대책은 오히려 이를 전제하거나 강화했다. 각자의 조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감내해 온 여성들은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여성에 대한 복지 확대?
저출산 시대, 주류 여성운동은 이를 레토릭으로 삼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지원을 따냈다. 그러나 일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여성의 현실을 나아지게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성에 대한 일부 지원은 전체 여성들을 저임금과 빈곤으로 내모는 노동조건의 악화에서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오히려 성별분업의 재생산과 이중부담의 강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정책대안을 요구하는 식의 여성운동은 이제 그 조건조차 해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류 여성운동의 정책대안을 수용하는 매개였던 여성가족부는 그 위상이 계속 하락해왔고, 이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역전되지 않을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 중 핵심을 차지하는 임신출산양육지원정책은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며, 여성을 위한 맞춤형 복지로 선전된다. 이러한 조건은 여성운동이 여성의 권리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떤 사회적 조건이 변화해야 하는지 보다 복지의 수혜자로서 여성이 왜 더 많은 복지를 얻어야 하는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성이 더 많은 복지를 얻어내는 것이 여성의 권리 강화와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엄마가 키우는 것이 옳으므로 보육료 지원보다 양육수당이 더 많아야 한다.’ 는 논리로 여성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페미니즘이 이를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 강화를 위한 운동이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가사와 양육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픈 여성들 스스로가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여성,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우리는 적극적으로 여성이 처한 조건을 드러내고 ‘여성을 위한 것’으로 추진되는 정책의 기만성을 고발하되, 이것이 단순히 부족한 여성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해체할 수 있는지,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횟수와 시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지하는지를 정책에 대한 판단 뿐 아니라 우리의 요구를 정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우선 ‘단위로서의 가족’을 지원하는 가족정책을 비판해야 한다. 가족을 사회의 기본단위로 설정하는 가족정책은 그 자체로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 이는 여성이 가족을 구성하면 대부분 이중부담을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감내한 채 선별적 지원을 받으라는 이야기와 같다. 또한 양육지원은 현금급여보다 공공 보육 시설의 확충공공 보육 시스템의 강화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누구나 양육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또 가정과 시설양육에 대한 위계화를 막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여성을 위해 ‘여성’을 넘어선 요구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노동신축화 정책이 여성에게 더 큰 차별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하고, 여성의 이름으로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인상을 외쳐야 한다. 또한 사회복지시스템의 재구축이 돌봄 서비스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의 일자리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여성들 스스로가 나서야 한다. 특히 이중부담으로 인해 가장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려 있는 저소득층 여성들, 정부가 ‘여성 일자리’라 강조해 온 돌봄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여성노동자들이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산발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단결된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여성과 노동자의 이름으로 연대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보육교사간병인장애인활동보조인 등이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보육협의회의료연대 돌봄지부 등 노동조합을 통해 투쟁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을 노동자운동의 과제로 삼아, 박근혜 정부의 기만적 여성정책에 맞서 싸우자.
그러나 이런 단순한 기대는 위험하다. 박근혜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라는 기조 하에 크게 여성정책을 가족정책, 임신출산양육 지원책과 여성 일자리 정책 세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른 어떤 의의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저하에 대처한다는 의의가 강조되면서, 임신출산은 권리라기보다 의무가 되고 있다. 또한 여성의 노동도 여성 스스로의 자립이 아니라 국가의 성장률에 기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저출산 대책은 여성의 출산을 주요 문제로 삼고, 그 지원을 논한다는 점에서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사고하기 쉽다. 또 실제 여성운동이 여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저출산 문제를 레토릭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출산을 당연한 여성의 ‘의무’로 만드는 지원책과, 성장률 기여를 목적으로 여성을 ‘활용’하고자 하는 여성 일자리 정책이 과연 ‘여성을 위한’ 정책일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저출산고령화의 해결책으로 제출되는 출산율과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제고 정책이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이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과 앞으로의 운동방향을 밝히고자 한다.
한국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처법
저출산고령화는 세계 여러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일반적으로 △출산율 제고 △고령층여성 등 유휴인력 활용 △이주노동자 활용 △연금제도 개혁이 꼽히며, 세계 각국은 이 네 가지 정책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정책수단의 선택, 각각의 정책지향은 국가별로 상이하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영국은 노동인구의 부족에 대해 출산에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보다는 해외로부터의 노동력 유입을 택해왔다. 이들 국가와 달리 출산율 제고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스웨덴이나 프랑스의 경우도 정책지향은 각각 상이하다. 스웨덴이 2인 소득가구 모델을 지향하는 반면, 프랑스는 생계부양자-가정주부 가족 모델을 지향한다고 분석되는데, 이러한 지향에 따라 출산율 제고를 위해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정책 수단도 차이가 난다.
한국 역시 이 네 가지 방법을 모두 택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갖는 특징은 출산율 제고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을 시도한다는 점, 고용률 제고 등의 과제와 맞물려 유휴인력활용을 주요하게 사고한다는 점, 연금개혁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 이주노동력의 활용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1970년대 강력한 출산억제책 사용 등 국가가 출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출산율 제고를 위한 국가개입 자체에 대해 별다른 비판이 없다. 또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강해 노동인구의 부족을 이주노동자의 유입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있다. 이는 곧 노동인구의 확보를 위해서는 출산율 제고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책은 저출산의 배경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저출산의 배경은 △가족 형성 및 구성의 변화 (비혼 및 만혼의 증가, 이혼율 증가 등) △여성의 교육수준 및 경제활동 참가 증가라는 것이 통용된다. 그러나 여성의 교육수준과 경제활동 참가 증가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단순한 분석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OECD국가의 경우 1990년대 중반부터는 여성의 교육수준과 여성고용율이 각각 출산율 상승과 비례관계를 갖는데,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처음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출산율이 감소하지만, 경제활동참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안정을 이룬 상태에서는 출산율 역시 안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의 노동참여가 당연한 사회에서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히려 성평등 수준인데, 여성에게 여전히 가사와 양육의 1차적 책임을 지우는 국가보다 성차별과 성별분업 해체를 지향해온 국가들에서 대체로 출산율이 높게 나타난다.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는, 한국의 저출산 원인으로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결혼과 출산을 연기하거나 중단하는 현상을 꼽는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로는, △고용과 소득 불안정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환경 △경제적 부담과 양육 인프라 부족을 들고 있다. 특히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이유로 풀타임위주의 고용문화와 여성에 편중한 과도한 육아부담을 들며,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한국에서 출산율 제고 정책은 주로 일·가정 양립 정책과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경제적 지원책으로 구성된다.
정부의 정책지향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저출산 정책이 국가의 의도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를 낸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가족옹호의 성격을 띠는가, 어떤 가족모델을 지향하는가, 노동정책은 어떠한가 등에 따라 저출산 대책이 성별분업을 해체하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하며, 여성 일자리의 신축성이 강화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지향하는 가족의 상과 일하는 여성상은 어떠할까.
어떤 가족을 옹호하는가
가족옹호는 한국의 저출산 대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에도 ‘건강한 가정 만들기’라는 국정과제 하에 ‘가족 가치 확산’이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정부가 옹호하고자 하는 ‘건강가정’ 혹은 ‘가족 가치’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가 이에 대해 명확히 설명한 적은 없다. 하지만 ‘건강가정’이 이전부터 언급되어 왔으며,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으로까지 반영되었다는 점,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족 가치의 개념에 기대 정부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정부가 옹호하는 가족의 상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은 국가가 가족에 대한 개입 의사를 가족정책의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표명한 최초의 법이다. 여기서 국가가 상정하는 가족의 기본적인 상이 무엇인지 확인 가능하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고,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는 가족은 (합법적인) 혼인 관계가 없이는 구성될 수 없으며, 출산이 전제되는 가족구성이 바람직하다는 사고를 반영한다.
한국의 가족주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한국사회에서 지향되는 바람직한 가족의 상을 추측해볼 수도 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강화된 가족주의의 특징으로는 △ 3세대 가족보다 핵가족, 세대관계보다는 부부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성애 중심성을 확인하는 핵가족 담론이었다는 점, △가정적인 아버지상 옹호, 전업주부 아내의 지위 상승 등 가족주의가 젠더 평등의 이념과 부분적으로 결합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해져야 하는 여성을 핵가족의 아내 혹은 주부로 정체화하여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이상적으로 사고되는 ‘가족’은 ‘가정적인 아버지와 전업주부 아내가 일정정도 평등한 관계를 맺는 이성애 핵가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과는 다른 점이 있지만, 여전히 성별분업이 유지되는 가족이다.
왜 여성인력활용을 강조하는가
저출산 시대 여성의 노동은 노동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현오석 부총리가 여성가족부에 보낸 기고문이 이를 잘 드러내준다. 현오석 부총리는 기고문에서 “저출산ㆍ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각국이 최선으로 꼽는 정책 대안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것”, “여성인력 활용이야말로 ‘늙어가는 거시경제’에 제동을 거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고, 우리경제의 성장동력” 이라고 언급했다. 다음날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부총리가 여성인력 활용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표 1] 저출산 극복을 위한 법안 및 계획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이기도 했던 고용률 제고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서도 여성인력 활용이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의 대상으로 청년장년여성이 꼽히는데, 그 중 여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미 이명박 정부 시기부터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은 대부분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선전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자리는 단기적이고 저임금인 경우가 많아, 수치상으로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언정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고용률 포장에만 급급하고, 일자리의 질은 낮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한국의 대기업 중심의 수출지향적 경제구조가 노동신축화를 필수로 한다는 점과 연결된다. 이러한 경제구조를 유지하려면 물량에 따라 노동자들의 수를 신축적으로 조절해야 하고,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저임금을 유지해야 한다. 노동인구가 감소하면 노동자들의 조달이 어려워지고, 저임금 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는 4-5%의 실업률이 유지되는 것을 완전고용이라 보는데, 이는 신자유주의가 특징으로 하는 노동자의 신축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일정한 규모의 산업예비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인력 활용정책도 이러한 맥락 하에서 진행된다.
박근혜 정부 여성정책의 문제점
정상가족 규범 강화
‘건강한 가정 만들기’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가족정책은 가족의 이상적인 상을 설정하고 그렇지 않은 가정에 대한 지원을 통해 가족을 육성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가족 구성의 변화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가족이 사회에 기능적인 단위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가족정책은 ‘가족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단위로서의 가족’을 지원하는데, 이는 가족의 강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가족 규범의 강화는 비혼동거부부동성애자 등의 권리를 제약한다. 또한 여성의 이중부담도 강화한다. 여성들은 가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도 해야 하고, 가정에서는 가사와 양육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가족 해체 등 위기가족 지원 강화’ ‘취약가족의 가족기능 회복 및 자립 강화’ 등 건강가정이 아닌 가족에 대한 가족정책을 따로 설정하고 있다. 지원이 필요한 특별한 가족에는 다문화 가족 역시 포함된다. 그런데 이렇게 취약가족과 다문화가족을 특별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정의하는 것은 낙인효과를 낳고, 정상적인 가족에 대한 옹호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여성은 합법적인 혼인관계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른 가족을 구성할 수도 있고, 결혼이 반드시 출산을 전제할 필요는 없으며, 출산이 정상가족 내에서만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건강한 가정’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모든 자기결정을 비정상인 것으로 여기고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비혼모 지원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건강한 가정’을 강조하는 이상 공식적 남성 파트너가 없는 비혼여성의 출산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족주의 강화 속에서는 그 어떤 선별적 지원도 가족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공공 보육은 뒷전인 양육지원정책
그 동안 여성운동노동운동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서 보육의 공공성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해 왔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은 최근 남성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 여성들이 사용함으로써 성별분업 완화효과가 적고, 대다수 비정규직 여성들은 산전후 휴가조차 쓸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했을 때 보육의 공적보장이야말로 비정규직 여성들까지 그 성과가 공유될 방안이기 때문이다.
[표 2]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
그러나 지금까지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어린이집은 1990년 이후 해마다 증설되어 2011년 39,842개가 설치운영되고 있으나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율은 5.3%에 불과하다. (<표 3> 참고) 영아전담 보육시설은 2005년 883개에서 2011년 638개로 오히려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확대’를 계획으로 세웠는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국공립 보육시설을 매년 50개씩 신축, 매년 100개씩 기존 운영시설을 국공립으로 전환’이 전부다. 4만에 육박하는 보육시설 규모를 고려할 때 국공립보육시설 비중을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면피용 계획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보육 시스템의 확충은 뒤로 한 채, 0~5세의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확대에 힘을 쏟으며 금전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당장 올해 3월부터 보육료 지원이 확대되고, 양육수당이 처음으로 지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민간보육시설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육료 지원은 실제 보육료의 일부만을 지원할 뿐이다. 또한 양육수당 지급은 여성들을 가정에 머무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한국과 같이 소득재분배 제도가 미비하고 여성들이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해 전체 가처분소득 중 양육수당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지 않은 국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 욕구를 낮추고, 여성들이 스스로 가족 내에서 자녀양육을 선택하게 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표 3] 어린이집 연도별 설치 및 운영 현황(2007년-2011년, 단위: 개소)
여전히 강조되는 시간제 일자리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취해진 정책은 시간제 일자리(유연근무제)였다. 그동안 시간제 일자리는 기존의 정규직 일자리를 쪼개 자릿수를 늘리는 것이며, 노동시간과 장소는 유연화하되 시간활용도를 높여 집중적으로 생산량을 높이고, 노동통제를 통해 노동강도를 높이고자 하는 정책이라고 비판되었다.
시간제노동자들은 서구 국가들에서도 전일제 근로보다 2배 이상 높은 빈곤률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짧은 노동시간으로 실업보험 등의 수급조건을 맞추지 못해 복지제도로부터도 배제되는 등 이중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양육기의 2-3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양육책임의 부담을 벗은 그 외 연령대의 여성에게도 시간제 일자리를 강요한다. 그리고 시간제 일자리는 대부분 경력개발이 불가능한 저임금 서비스직에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제 일자리를 늘린 결과 여성 시간제노동자는 급증하고 있다. 2012년 3월 현재 시간제노동자는 170만 1천 명인데 비정규직 중 시간제노동자는 29.3%로 불과 1년 전에 비해 2.8% 포인트 상승하였다. 이 중 여성은 2011년 3월 35.6%에서 2012년 3월 39.5%로 15만 명이나 증가한 반면, 남성의 경우 16.6%에서 17.5%로 약 1.5만 명 증가하는 소폭 상승에 그쳤다. 이렇게 늘어난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만족도는 낮다. 이는 여성들이 단시간 일자리에 만족해서 선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있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여 내놓은 개선안이 바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기 이미 제출되었던 정책으로, 박근혜 정부 여성정책에도 그대로 들어가 있다. ‘반듯한’은 상용직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하루에 3-6시간 일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저임금일 수밖에 없고, 여성의 소득은 가족 내에서 부차적인 지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 또한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비정규직 여성들은 정규직 여성들보다 일·가족 갈등을 더 많이 경험하고 가족의 정서적 지원은 더 적게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실제 시간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장과 가족 모두에서 경제활동이 저평가되는데, 이는 가족 내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가사분담을 요구하는 것도 어렵게 만든다. 즉 현재 한국의 일가정 양립정책으로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며, 가사와 육아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여성이 져야 한다는 인식도 바꿀 수 없다.
질 낮은 여성일자리 창출
여성운동은 정부가 여성고용정책의 범위를 협소하게 사고한 것에 대해 비판해왔다. 노동정책 전반이 여성 차별적인 효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성고용정책의 범위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특수한 정책에 한정하면서 여성에게 맞는 일자리를 따로 제시하는 경우는 많았다.
박근혜 정부는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이전부터 추진되어 온 정책이다. 2008년에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이 마련되었고,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 여성 특화 교육이나 취업지원을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더욱 강화하겠다고는 하나 이는 효과도 미미하고 설령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성별 직무분리나 여성의 저임금 직종으로의 집중현상을 지속시킬 수 있다.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일자리는 주로 여성들이 일하면서 생기는 돌봄의 공백을 메꾸는 사회서비스 일자리이다. 사회서비스는 사회 내 구성원의 재생산을 위한 제반의 사회적 기반 서비스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교육, 교통, 주택, 의료, 에너지, 물 등의 공적 기반시설을 전제로 한 서비스영역과 보육, 가사, 간병, 장애인 활동보조 등 돌봄 서비스 중심의 대인 서비스가 모두 포함되는데, 여성 일자리로 강조되는 것은 후자이다.
사회서비스는 설비투자 비용의 부담이 없는 대인서비스이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의 사회서비스산업 취업자가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 1.5%에서 2012년 5.7%로 크게 증가하였고, 특히 2005년 이후 증가한 취업자(212만명)의 약 42%(81만명)가 사회서비스산업에서 창출되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산업의 월평균 임금(188만원)은 전체 산업 평균(210만원)보다 낮고 연평균 임금 증가율도 산업 평균을 하회한다.
[그림 1] 돌봄노동의 임금수준 :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 대비 (자료:LIS)
임금 수준이 이렇게 낮은 것은 돌봄 서비스가 전통적인 여성의 일이고, 사회가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대신 민간시장을 활성화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재원을 부담해서 이용권(바우처)을 지급한다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러한 돌봄의 시장화는 일자리의 질을 더욱 떨어뜨린다. 각국 돌봄노동자의 임금수준을 비교해보면, 공공부문을 통해서 사회서비스를 주로 제공하는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았지만 한국을 비롯하여 민간시장 메커니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국가들에서는 낮게 나타난다. ([그림 1] 참고)
이중부담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
여성들이 가사와 양육의 1차적인 책임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가정의 양립정책과 여성 일자리 정책 역시 여성에게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이중부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출산을 포기하거나 직장을 포기하거나
모성이 노동시장에서의 약점으로 작용하고 장시간 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에서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족 내로 역할을 제한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가족 내 역할을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가족 내 역할을 맡아야 하는 관계를 형성하지 않거나, 의도한 것보다 적은 수의 아이를 갖거나 아이를 갖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선택은 출산율을 저하시켜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출산을 선택할 권리가 박탈되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일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 중 50%가 5년 내에 외벌이 부부가 된다. 여기에서 여성들이 일가정의 양립을 시도할 것인가, 육아에 전념할 것인가를 저울질 할 때는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보아야 한다. 직업전망의 부재, 자녀양육을 어머니가 담당하는 것이 좋다는 사고, 남편과의 가사와 양육 분담의 어려움, 보육시설의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둘러싼 갈등을 거친 뒤에, 여성들은 전망 없는 일자리를 이중부담을 안고 유지하느니 육아에 전념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친족관계를 활용하거나 공백으로 두거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선택한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중부담을 줄여 양쪽을 병행하려 노력한다. 우선 육아휴직 활용이 있다. 그러나 이를 선택할 수 있는 여성들은 정규직 등으로 제한된다. 또한 활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이 영유아 보육 기간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길지 않으며, 육아휴직의 사용이 오히려 직장에서의 승진 등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자녀보육을 시설을 이용하거나 친족관계를 활용하여 해결할 수도 있다. 한국은 여전히 보육시설이 부족하고, 시설양육에 대한 불신도 커 친족관계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녀보육은 주로 친족 내 여성노인이 맡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도 경제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저소득층은 가족 내 여성노인도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보육을 대행하는 친족 내 여성노인에게 일정한 경제적 보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친족관계를 이용해 가족 내 돌봄의 공백과 복지의 공백 양자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돌봄의 (재)가족화가 장기적으로 보면 반(反)사회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첫째, 보육의 공공성이 확충되고 보육의 사각지대가 해소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돌봄을 다시 가족 내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공공 보육교육이 강화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둘째,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45%라는 높은 노인 빈곤율을 보이는 상황에서 노인복지를 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노후 소득보장 등 사회안전망 재구축에 대한 요구를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저소득층 여성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 있다. 특히 이들이 종사하고 있는 서비스생산직 노동은 전문직에 비해 노동에 대한 통제권이 부족하고, 저임금이기 때문에 자녀돌봄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자녀를 양질의 보육환경에 맡길 수도, 친족 내에서 보육대행자를 구하기도 어려운데, 취학 전에는 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취학 후에는 가정에 혼자 두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보살핌 경험의 차이는 보살핌의 위계를 형성하고 시설양육의 낙인으로 이어지고, 계급 재생산의 기제로 기능하게 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된다.
여성,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여성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직장과 가사양육으로 인한 이중부담을 지고 있었고, 이것이 곧 저출산으로 드러났다. 이중부담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책이 없고, 저출산 대책은 오히려 이를 전제하거나 강화했다. 각자의 조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감내해 온 여성들은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여성에 대한 복지 확대?
저출산 시대, 주류 여성운동은 이를 레토릭으로 삼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지원을 따냈다. 그러나 일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여성의 현실을 나아지게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성에 대한 일부 지원은 전체 여성들을 저임금과 빈곤으로 내모는 노동조건의 악화에서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오히려 성별분업의 재생산과 이중부담의 강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정책대안을 요구하는 식의 여성운동은 이제 그 조건조차 해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류 여성운동의 정책대안을 수용하는 매개였던 여성가족부는 그 위상이 계속 하락해왔고, 이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역전되지 않을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 중 핵심을 차지하는 임신출산양육지원정책은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며, 여성을 위한 맞춤형 복지로 선전된다. 이러한 조건은 여성운동이 여성의 권리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떤 사회적 조건이 변화해야 하는지 보다 복지의 수혜자로서 여성이 왜 더 많은 복지를 얻어야 하는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성이 더 많은 복지를 얻어내는 것이 여성의 권리 강화와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엄마가 키우는 것이 옳으므로 보육료 지원보다 양육수당이 더 많아야 한다.’ 는 논리로 여성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페미니즘이 이를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 강화를 위한 운동이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가사와 양육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픈 여성들 스스로가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여성,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우리는 적극적으로 여성이 처한 조건을 드러내고 ‘여성을 위한 것’으로 추진되는 정책의 기만성을 고발하되, 이것이 단순히 부족한 여성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해체할 수 있는지,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횟수와 시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지하는지를 정책에 대한 판단 뿐 아니라 우리의 요구를 정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우선 ‘단위로서의 가족’을 지원하는 가족정책을 비판해야 한다. 가족을 사회의 기본단위로 설정하는 가족정책은 그 자체로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 이는 여성이 가족을 구성하면 대부분 이중부담을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감내한 채 선별적 지원을 받으라는 이야기와 같다. 또한 양육지원은 현금급여보다 공공 보육 시설의 확충공공 보육 시스템의 강화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누구나 양육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또 가정과 시설양육에 대한 위계화를 막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여성을 위해 ‘여성’을 넘어선 요구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노동신축화 정책이 여성에게 더 큰 차별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하고, 여성의 이름으로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인상을 외쳐야 한다. 또한 사회복지시스템의 재구축이 돌봄 서비스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의 일자리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여성들 스스로가 나서야 한다. 특히 이중부담으로 인해 가장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려 있는 저소득층 여성들, 정부가 ‘여성 일자리’라 강조해 온 돌봄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여성노동자들이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산발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단결된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여성과 노동자의 이름으로 연대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보육교사간병인장애인활동보조인 등이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보육협의회의료연대 돌봄지부 등 노동조합을 통해 투쟁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을 노동자운동의 과제로 삼아, 박근혜 정부의 기만적 여성정책에 맞서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