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과 갈등을 만드는 맞춤형 복지
박근혜 정부 사회보장정책 평가와 운동과제
새롭지 않은 국정목표, ‘맞춤형 고용복지’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비전으로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제시하고, 다섯 가지 국정목표를 설정하였다. 그 두 번째 목표가 ‘맞춤형 고용복지’이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맞춤형 고용복지와 관련, "출산에서 노령층이 될 때까지 생애주기별 다양한 복지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도, 국민들이 근로를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한편, 고용과 복지가 긴밀히 연계되는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림1]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2. 맞춤형 고용복지
‘희망의 새 시대’, ‘복지국가의 원년’ 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강조하는 것을 새로운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선진’, ‘일류’를 강조한 이명박 정부와 달리 박근혜 정부가 ‘희망’, ‘행복’을 강조한다는 점도 차이를 크게 느끼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17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소위원회 활동을 통해 ‘한국형 복지국가’라는 자신만의 복지 담론을 구축했고, 일명 박근혜 법이라 불리는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을 입안하기도 했다. 복지는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직결된 ‘브랜드’가 되었다.
[그림2] 이명박 정부의 복지투자원칙
그러나 그 내용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먼저 맞춤형 고용복지란 표현과 그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는 복지투자원칙으로 ‘일하는 복지’, ‘맞춤형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를 제시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의 맞춤형 고용복지란 근로연계복지를 의미하는 ‘일하는 복지’와 사회서비스 중심의 복지를 의미하는 ‘맞춤형 복지’의 조합이다.
또한 박근혜의 정부 복지국가 담론이라 할 수 있는 ‘한국형 복지국가론’은 스스로 ‘사회투자형 생활보장국가’라고 표현하듯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인 사회투자국가론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형 복지국가는 인적자본 및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현금이전보다 현물급여를 강조하며, 재정건전성의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 한국형 복지국가는 ‘경제 성장을 위한 인적 투자’로서 복지의 의미를 부여하는데, 따라서 보육교육과 같은 기회의 평등을 강조한다. 복지 관련 공약 대부분이 인수위 국정과제에 반영된 반면, 인적투자의 성격이 약한 연금과 보건의료 공약만 후퇴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사회투자국가론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 기조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한국형 복지국가론’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담론을 주장하는 주체가 보수정당, 새누리당의 박근혜라는 사실이 새로울 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복지 담론을 당시 야당대표가 계승했다는 아이러니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지배계급의 한계를 보여준다.
박근혜의 복지국가론이 새로울 수 없는 이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시기 주요 공약인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이것이 기반을 두고 있는 한국형 복지국가론이 역대 정부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에서 큰 차이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의회가 통제력을 갖는다고 간주되는 재정정책과 사회정책이 낮은 이자율과 낮은 부채비율 유지를 목표로 하는 화폐정책에 종속되는데, 이는 재정제약을 낳는 한 요소가 된다. 실제 지난 대선 시기 기재부, 조세연구원, 보건사회연구원 등은 선거 공약 비용 추계를 저마다 발표하면서 사회정책을 둘러싼 논쟁에 개입했다. 이러한 개입으로 복지 공약은 사회정책의 이념과 방향에 대한 정치적 쟁점보다 비용 추계와 재원 마련 방안이라는 기술적 쟁점이 주요 의제가 되었다.
이러한 재정제약은 한국 경제의 장기적 저성장과 세계 경제위기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내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조세연구원은 조세부담률을 고정하면 2050년 국가 채무비율은 128.2%로 남유럽국가 평균 120%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고, 가계부채로 인한 공공부문 부채위기의 현실화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2050년 국가 채무비율은 165%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2008년 한시적으로 도입한 재정준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재정준칙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1세대 재정준칙은 균형재정 달성까지 지출증가율을 수입증가율보다 낮게 유지해 재정수지 적자를 감축하는 것이었다. 조세연구원은 2013년부터 균형재정이 달성된 후에는 균형재정 혹은 소폭 재정수지 흑자를 목표로 한 2세대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을 확대하면서 1세대 재정준칙이 유명무실화 되는데, 이를 반영해 2세대 재정준칙은 경제상황에 따라 목표를 변동할 수 있도록 하되 그러한 변동에 대한 원칙을 설정하고 제재수단을 강화하고 있다. 경제위기시 탄력적 대응을 열어두긴 하지만, 균형재정이라는 원칙은 더욱 강화하고 재량적 예산 조정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재정의 한계는 사회보장의 확대를 제약한다. 특히 현재 공적 사회복지지출 비중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보건의료가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상급식, 무상보육은 말해도 무상의료는 말하지 않는 것은 사회투자국가론에 의거하여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향후 고령화로 인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연금도 보장성 강화에 대한 상당한 제약이 있다. OECD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심화되는 건강불평등 속에서 국가가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현 체제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형성될 것이다.
[그림 3] 2013년 1분기 국세수입과 전년대비 증감액
위기관리와 통치력 강화를 위한 전략으로서 복지
재정제약으로 인한 복지 확대의 한계 속에서, 빈곤의 확산과 그로 인한 대중적 불만을 관리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첫째, 사회서비스 보장과 같은 현물급여 중심의 복지 정책 전환으로 적은 비용으로 복지 체감도를 높이려고 한다.둘째, ‘행정 혁신’을 통해 사회정책 추진기반을 재확립한다. 이는 ‘국민중심의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개편’이라는 국정과제로 나타난다.
개정 사회보장기본법
2012년 전부개정되어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시행되기 시작한 사회보장기본법은 박근혜 정부가 사회서비스와 복지 정책의 부처 간 정책조율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형 복지국가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인 2010년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법안에는 한국형 복지국가론의 특징이 담겨있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사회보장의 의미를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 사회참여자아실현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확보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사회보장기본법은 또한 사회보장의 기능으로 소득보장과 서비스보장을 명시하였고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맞춤형 사회보장을 평생사회안전망으로 규정하였다. 사회보장제도를 구성하는 제도로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정의한다.
[표 1] 신구 사회보장법안 비교
1995년 제정된 기존 법안과 비교했을 때,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사회서비스로 개념을 바꾸면서 정의도 새롭게 한 것이 특징적이다. 개정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서비스를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국민에게 복지, 보건의료, 교육, 고용, 주거, 문화, 환경 등의 분야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상담, 재활, 돌봄, 정보의 제공, 관련 시설의 이용, 역량 개발, 사회참여 지원 등을 통하여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정의하고 있다. 이전 법에서 정의했던 사회복지서비스 개념보다 더 많은 분야(복지, 의료, 문화, 환경)를 언급하고 있고, 제공방식도 더 다양하다.
개정 사회보장기본법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의 사회보장심의위원회를 격상해 실질적 정책조율 기능을 가지는 사회보장위원회를 신설하고 사회보장기본계획을 매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보장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 기획재정부복지부 장관을 부위원장으로 두고 법무부교육과학기술부 등 각 부처 장관을 포함한 정부 위원 총 15명과 노사대표와 사회복지전문가 중 대통령이 위촉하는 민간위원 15명으로 구성된다. 이 기본계획에 따라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격년으로 재정추계도 시행한다. 또한 중앙정부 각 부처가 사회보장정책을 도입변경할 때 보건복지부와 사전에 협의를 하도록 했다. 이러한 조율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사회서비스품질관련전담기구 설치, 사회보장통계의 취합,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운영을 법으로 규정했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자아실현과 같은 수사를 통해 사회보장의 개념을 더 확대, 강화한 것처럼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기능에 대한 규정을 보면 현물급여, 즉 ‘사회서비스’ 보장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법안이 언급하고 있는 사회서비스의 개념은 모호한데, 사회서비스는 제도이자, 제도가 제공하는 혜택이자, 그 혜택을 통해 보장받는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부처 별로 사회보장정책이 흩어진 채 상호 연계도 부족해서 중복과 누락이 발생하는 ‘부처 간 칸막이 현상’을 극복하고 각 정책들을 통합조정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투입되는 재정대비 복지만족도와 복지실효성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정책 조율은 행정의 효율을 기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그러한 통합적 조정과정에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기 위한 구체적 계획이 존재하지 않는 점이 우려스럽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맞춤형 개별급여 체계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급여 제공 방식을 중복수급이었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실제 부처 간 정책 조율은 수급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부정수급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빈곤에 대한 낙인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관리의 강화와 낙인이 사각지대를 만들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인수위는 “국민 중심의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개편”이라는 국정과제의 주요 추진계획으로 ▲사회보장위원회 중심의 복지거버넌스 ▲주민센터 복지허브화 ▲범정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확대 ▲민간자원 활성화를 제시한다. 복지거버넌스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와 같이 복지 전달체계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기업, 지역사회 등이 역할을 분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국가의 한정된 인력과 재원으로 급증하는 사회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방식이기도 하다. 한정된 재정으로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박근혜 정부가 복지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990년대 초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정부혁신 운동’이 확산되면서 기존의 공적 행정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 ‘새로운 공적 경영’, ‘우량통치(거버넌스)’라는 패러다임이 부상한다. 신자유주의 하 법인기업에서 금융관리부서가 자율적 권한을 행사했던 것처럼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이 자율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경제적 국가장치가 정책 입안과 실행의 통제력을 획득한다. 한편 법인기업이 홍보, 생산 등 다층적 영역에서 외주와 하청을 발전시킨 것처럼 사회정책의 실행 및 전달은 다수의 행정적 기관과 비정부적 기구 또는 민간 기업 등으로 분권화되는 현상이 출현한다. 그 결과 조직혁신의 방향으로 지출과 실적을 연계해 비용을 절감하려고 하는 경영자주의가 확산되고, 그 과정에서 관리의 경제적 효율성을 강화하면서 사회정책 전문가의 재량권과 자율성은 약화된다. 기존의 국가장치는 비정부기구와 같은 전통적인 국가장치 외부의 조직들에게 부분적으로 관리업무를 위임하거나 또는 외부의 조직들로부터 생산된 정책적 처방을 활용함으로써 효율적인 관리와 함께 관리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이 확대된 국가적 관리의 틀 내로 흡수되면서 관리의 제도적 안정성은 더욱 약화된다. 정부, 비정부기구는 대체적으로 분절적이고 단기적인 관심에 지배되고, 더 적은 비용으로 사회문제를 봉합하려는 노력은 정부기구 내, 정부와 비정부기구, 통치구조와 사회운동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단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최근 진주의료원 사태는 복지전달체계의 불안정성과 그로 인한 갈등을 보여준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건국 후 최초의 지방의료원 폐업 시도였다.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과 관련하여 새누리당과 중앙정부는 초기에 이 사안이 지자체 소관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였다. 그 후 공공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확산되자 새누리당은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보건복지부는 권고를 내렸다. 분할된 국가기구는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갈등을 국가 관리의 틀 안으로 내부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운동은 갈등을 조율하기 위한 국가장치 내로 포섭되거나, 국가장치로부터 완전히 배제되는 양자의 선택에 내몰린다. 재정적자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노동자운동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공공부문 노동자의 노동권을 박탈한다. 공공적 기능보다 수익성을 중시하고,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통해서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흐름은 ‘거버넌스’의 이름으로 복지전달체계의 민간참여를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정부들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났다. 사회정책의 신자유주의적 행정체계인 ‘맞춤형 복지전달체계’는 복지전달체계 내 주체들 간의 분할과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편적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정책비전, ‘국민100% 행복사회’
박근혜 정부 복지 정책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복지를 강조하지만, 실상 그 내용은 이전 정부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을 계승하는 것이다. 둘째, 사회서비스를 강조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그간 비판 받아온 신자유주의 민영화 정책을 복지와 결합시켜 놓은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서 박근혜의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와 대별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종속된 사회정책일 뿐이라는 것, 다만 새로운 수사와 민간부문의 활용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와 사회보장제도 구상은 ‘국민100% 행복사회’라는 보건복지부의 정책 비전으로 구체화되었다. 핵심 목표는 중산층 형성, 안락과 건강, 사회통합이다. 이를 위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라는 국정목표에 따라 아동, 청장년, 노인별로 정책을 분류했고, 추가적으로 취약계층과 보건의료를 따로 분류했다.
아동, 청장년, 노인별로 정책 대상을 생애주기별로 구분한 것이 특징이지만 정책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아동의 경우 보육, 임신출산 지원 등 사회서비스 정책으로 이뤄져 있고, 청장년은 일자리 정책이다. 노인의 경우 사회보험으로서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돌봄서비스와 같은 사회서비스, 일자리 정책이 혼재 되어 있다. 보건의료의 경우도 의료민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창조경제 성장동력인 보건산업 육성강화’ 계획은 청장년 복지 정책으로 분리시키고 나머지 건강보험, 사회서비스 등의 사회정책이 혼재되어 있다.
분류별로 제도의 성격과 내용이 상이하다보니 사실상 수급권자가 중복되는 경우도 많고, 각 제도의 가치가 충돌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공공부조제도를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로 둔갑시켰지만 아동과 노인 역시 취약계층이다. 또한 청장년에 대한 일자리 복지 정책에는 의료민영화,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을 확대하는 문제는 외면한 채 ‘처우개선’ 수준의 소극적 태도만 보이고 있다. 청장년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는 다시 양육부담, 의료비 부담, 노인시기 빈곤으로 이어지게 되어 아동, 노인과 보건의료에 대한 복지 강화라는 목표를 무색케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사회보장정책을 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의 분류에 따라 공공부조(기초생활보장제도), 사회서비스, 사회보험제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개별 정책의 내용은 관련 분야 관료,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전문적 용어들로 인해 일반인은 이해가 어렵다. 이러한 복잡함과 난해함이 사회정책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정치적 주체로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아직 제도 변화 방향을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아래에서는 다양한 사회정책들 중 주요 쟁점으로 제기되며 논의가 이뤄지는 정책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맞춤형 개별급여’, 기초생활보장정책의 주요 내용과 문제점
제1차 사회보장위원회를 통해 밝혀진 박근혜 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 정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차상위계층의 기준을 현 기준인 최저생계비의 120%(중위소득 45.6% 수준)에서 중위소득 50%로 바꿔,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의 대상자를 확대한다. 둘째, 수급자 선정기준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된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아도 일촌 직계혈족 혹은 그 배우자가 부양능력이 있으면 수급을 받지 못하도록 설정해 둔 것인데, 이 부양능력의 판정기준이 되는 소득이 올라간다. 셋째, 통합급여 체계에서 개별급여 체계로 바뀐다. 현행 기초법에 따르면 수급자 선정기준을 만족하는 수급권자는 현금으로 지급되는 생계급여, 주거급여를 받고, 그 외 교육, 의료, 해산, 장제, 자활급여를 필요가 발생할 때 받게 된다. 개별급여 체계로 바뀌면 각 급여의 수급자 선정 기준이 달라진다. 생계급여의 경우 중위소득 30%이하 저소득층에게 적용된다.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38%의 근로무능력자, 주거급여교육급여는 각각 중위소득의 40%, 50%를 기준으로 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더 많은 차상위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이를 통해 빈곤예방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수급자 중 17.7%의 근로능력자를 노동시장으로 더욱 참여시키기 위해 근로인센티브를 강화한다.
이러한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 보장 대상의 범위를 확대할 계획을 밝히고 있으나 이미 확대, 심화되고 있는 빈곤의 규모에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개별급여 전환으로 급여 수급자가 140만에서 220만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는 현재 비수급 빈곤층 600만 중 80만에게만 적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현금으로 지급되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의 보장 수준은 거의 변동이 없다.
둘째, 보장 대상을 늘리기는 하지만 보장 내용과 보장 수준이 제각각 분할된다. 개별급여 전환으로 인해 늘어날 것이라는 80만의 수급자는 이전의 수급자처럼 최저생계비를 모두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주거, 교육과 같은 개별급여 하나만 받는 수급자들이다.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생계급여 대상자는 10만 명 증가할 뿐이다. 주거급여, 교육급여는 각각 국토교통부, 교육부가 주관부처가 되어서 선정기준과 급여수준을 정할 예정이다. 선정기준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국민들이 제도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더욱 어려워지고, 더 많은 갈등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연이은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자살사태에서 알 수 있듯, 이런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노동 강도가 포화상태라는 점에서, 의도하지 않은 사각지대가 형성될 수도 있다. 2012년 6월 기준, 읍면동 수준에서 전체 주민센터 10개소 중 8개소는 1-2명의 사회복지공무원이 복지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점은 기초생활보장제도뿐만 아니라 정부, 지자체가 수행하는 복지 사업 전반에서 나타날 것이다. 차상위계층의 범위가 확대되지만 구체적인 복지사업의 대상범위가 확대된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정부가 수행하는 297개 복지사업들은 사업별로 대상자 선정기준이 상이하다. 사업들의 상당수가 현재 최저생계비 개념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의 몇% 이하 소득 가구’ 와 같은 방식으로 대상을 선정하고, 급여를 제공하고 있는데, 각각의 사업들의 대상선정 기준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즉 중위소득 몇% 이하로 정해질 것인지 명확히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재원 마련이 부족한 경우 대상은 늘려도 오히려 보장수준은 줄어들 수도 있다.
셋째, 그간 수급 당사자를 포함해 사회운동이 요구한 의제들을 일부분 제도화했지만,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있다.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투쟁은, 가난한 이에 대한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 전가하는 국가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가난한 이와 장애인이 자립하면서 기본적 생활을 영유할 권리가 있음을 밝히는 실천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비현실적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지 ‘덜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변경했을 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관료전문가가 주도하는 해법은 합리성과 혜택의 확대라는 명목으로 부양의무자라는 관념을 더욱 공고화한다. 부양의무제 기준을 완화하는 정부의 대책이 밝혀졌지만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 공동행동은 여전히 광화문 지하도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넷째, ‘맞춤형 개별급여’ 제도는 가난한 이로 하여금 저임금불안전 노동을 감내하도록 강제하고, 이 과정에서 빈곤에 대한 낙인을 강화한다. 단적으로 사회보장위원회는 ‘탈수급 저해 급여 구조’를 문제로 지적하면서 개별급여 체계 도입의 기대효과로 ‘일할수록 유리한 체계’를 명시하고 있다. 지금도 수급대상자들은 근로능력이 있다고 평가되면 최저임금도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근로 인센티브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해도 실제 노동시장의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해도 빈곤할 수밖에 없다. ‘탈수급’이 확대될 뿐 ‘탈빈곤’은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생활보장 정책은 보장 범위와 보장 수준은 여전히 부족해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수치상으로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별적 관리를 강화하여 사회운동의 요구를 희석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 당사자를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이들은 보편적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주체로 형성되지 못하고, 적절한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지 혜택에 의존하면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사회서비스 보장 정책의 특징과 모순
사회서비스라는 개념은 노무현 정부의 일자리창출 정책 추진과정에서 일반화되었다. 사회서비스는 표준산업분류체계에 따라 공공행정, 교육, 보건 등 공공서비스 대부분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규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사회적 일자리는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만 수익성이 낮아 정부나 민간 비영리단체가 창출하는 일자리로서 자활사회적 기업, 가사간병도우미, 장애인 활동보조, 숲 가꾸기 등이 있다. 이러한 일자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좁은 의미의 사회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사회서비스 보장과 관련한 박근혜 정부 정책의 특징은 ‘창조경제’라는 경제정책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라는 첫 번째 국정목표 하에 서비스 산업 전략적 육성 기반 구축, 청년 친화적 일자리 확충기반 조성, 협동조합 및 사회적기업 활성화, 보건산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이라는 국정과제가 보건복지부의 실천계획과 긴밀히 연관된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통해 ‘(일자리 확충을 통한) 성장 잠재력 제고와 복지수준 향상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사회서비스를 일자리 창출 전략으로 본다. 미세한 차이점은 사회서비스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면서, 사회서비스를 미래 성장 전략, 창조 경제 전략으로 강조를 하는 것이다. ‘고부가가치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이라는 국정과제가 이를 대표한다.
보건복지부는 실천계획에서 ‘창조경제 성장동력인 보건산업 육성 강화’를 명시하고 있다. 보육, 요양보호와 같은 사회적일자리 정책에 포괄되었던 사회서비스들은 수익성이 낮고, 이제 민간 공급자가 확대 형성되고 있는 단계다. 그러나 의료의 경우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부터 민간 공급이 확대되기 시작해서, 민간의료가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민간병원 간 경쟁과정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한 재벌병원이 공급체계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영리병원의 추진 근거로 외국인 환자 유치, 병원 시스템 수출을 통한 국부창출을 주장해왔다. 이러한 재벌 병원자본의 수익창출 전략을 창조경제의 성장전략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서비스 정책은 갖는 또 다른 특징은, 국가가 사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활성화를 통해 민간부문이 공급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국가는 이것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등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회운동은 노무현 정부부터 시작된 이러한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사회서비스 시장화라고 비판해 왔다. 그에 따르면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은 지난 10년간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하지 못했고, 양질의 복지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늘어난 민간 공급자는 제도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일자리 확충 및 처우개선’이라는 국정과제를 통해서 단순히 민간공급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와 감독을 강화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관리와 감독의 방식은 공정한 경쟁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사회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는 시장화 된 사회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의 권리와 동일시된다. 보건복지부는 사회서비스 품질관리 및 사업관리에 관한 법률을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 가칭 ‘사회서비스 품질관리원’을 설립하여 사회서비스에 대한 평가 및 지원을 수행할 전담기관을 설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나눔문화 확산,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운영 활성화, 공공민간 복지자원 통합시스템처럼 비정부기구를 포함한 민간자원의 발굴 및 활용도를 제고할 계획이다.
이렇듯 사회서비스라는 개념이 확장되고 사회보장정책의 일부로서 자리 잡은 반면,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는 방식은 여전히 시장에 맡겨지면서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될 사회서비스’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할 사회서비스’라는 개념 간의 긴장과 모순이 심화되고, 정부의 민간시장에 대한 관리도 실패하고 있다.
국정과제인 ‘보건산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과 보건복지부 실천과제인 ‘창조경제 성장동력인 보건산업 육성 강화’에는 그동안 의료민영화로 비판받았던 정책이 총망라 되어있다. 한편 ‘건강의 질을 높이는 보건의료서비스체계 구축’에는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지역간 의료이용 격차 해소를 위한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수립할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민영화는 지역간 의료이용 격차를 더욱 확대한다는 점에서 국정과제는 서로 모순되고 있다. 민간의료의 영리추구는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명목상’ 목적과도 배치된다.
보육 정책이 확대되면서 민간 어린이집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최근 시군구청의 영유아 보육 담당 공무원들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추진되다가 어린이집 원장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집단 항의로 보름 만에 추진이 중단되었다. 물론 이 법안이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복지 전달체계 내 민간공급자와 정부의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은 다시 관료, 전문가가 주도하는 더욱 정교한 관리체계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시장화 된 사회서비스의 확대는 사회서비스의 목표로 제시되는 민중의 보편적 권리들을 파괴한다. 노동자계급은 실상 사회서비스의 제공자이자 수혜자인데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협상을 하는 소비자와 공급자로 분할되어 질 낮은 서비스와 열악한 노동조건이 고착화된다. 빈곤층은 사회서비스를 상품으로 구매해야 하기에 서비스 혜택의 차별이 발생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권에 대한 선택을 제약받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사회보험 정책의 전망과 쟁점
사회보험에는 4대 보험으로 불리는 공적연금(국민연금, 군인공무원사학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2008년에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있다. 사회보험은 공공사회복지지출에서 64.4%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2010년 건강보험 지출은 34조 원 정도로 공공부조 지출 사회복지서비스 지출의 합과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다. 공적연금 지출은 21조 원 정도인데 국민연금이 8.6조원으로 공무원연금(8.5조 원)을 앞질렀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20년 이상 납부한 완전노령연금수급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향후 국민연금 지출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고용보험은 8.3조원, 산재보험은 3.6조 원의 지출규모를 가지고 있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도 노동자의 실업과 직업병으로 인한 위험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제도이지만, 이 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자 대중적 이슈로 부각되었던 연금과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논의를 한정하도록 한다.
[표 2] 사회복지지출의 기능별 추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을 주요 복지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부분의 공약이 인수위 과정을 거쳐 국정과제로 반영된 반면 이 두 공약은 인수위 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다. 4대 중증질환과 관련해서 비급여 진료비는 애초에 공약에서 제외되어 있었다는 기만적 발표를 해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인수위는 국정과제를 통해 주요 비급여인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을 추진하기로 밝혔다.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전체 노인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급여액도 모두 두배 인상하겠다는 처음 공약에서 후퇴해서, 소득 상위 30% 노인과 소득 하위 70% 중 국민연금 가입자는 차등적으로 급여를 인상할 계획이다.
[그림 4] 국민행복연금(기초연금) 도입방안
박근혜 정부의 사회보험 정책이 가지는 특징은 첫째, 경제위기와 빈곤의 확대에 대응하여 보장성을 강화할 계획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출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앞서 설명한 공약과 국정과제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보장성이 충분히 강화되지는 못할 것인데, 공약 상의 보장성 수준이 이미 너무 낮은데다가 사각지대라는 아킬레스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사각지대는 비급여 진료다. 비급여 진료의 확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욱 낮춘다. 지난해 발표한 건강보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0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2.7%로, 2009년 64%에 비해 1.3%p 하락했다. 본인부담률 37.3% 중 법정 본인부담률은 21.3%,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16.0%로 2009년과 대비해 비급여 본인부담률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법정 본인부담률은 22.5%,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13.9%) 이미 급여 항목의 95%를 보장해주고 있는 중증질환의 경우에도 비급여 진료비로 인해서 실제 보장률은 71.4%에 지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은 비급여 진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해결책은 비급여를 급여화하거나 가격과 양을 통제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비급여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는 민간병상의 포화와 과잉경쟁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없다면 민간병원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저항을 회피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비급여 해결 논의는 비급여에 대한 공정거래 확립 차원의 통제(비급여 가격 고시제 도입, 환자 사전 동의 제도 도입 준비 등)와 어떤 비급여 진료를 우선 급여화 할 것인가를 둘러싼 관료전문가 수준의 쟁점이 중심을 이룰 것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게 높은 수익비의 급여를 제공하지만, 미가입자나 미납부자에겐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점에서 현 세대 노인,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등이 사각지대에 존재하게 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분할의 문제가 연금의 사각지대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인 납부예외자 수는 지난 11년 동안 큰 변동이 없으며 오히려 약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역가입자 중에서 보험료를 장기 체납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으며 여성이 7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55%에 불과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사회보험료 지원사업을 하지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근속기간이 짧아서 연속성이 떨어진다.
두 번째 특징은 민간보험의 역할 정립 및 협력을 통해 민간보험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해서 민간의료보험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고 이명박 정부는 당연지정제 폐지를 통해 건강보험의 근간을 흔들려고 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의 급여를 대폭 삭감하고 퇴직연금을 도입해서 사적연금 시장을 확대시켰다.
아직까지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공사역할의 분담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도 이러한 기조 하에서 사회보험 정책을 운영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이명박 정부 말부터 경제관료들은 ‘실손보험 종합대책’ 등을 통해 민간의료보험의 수익을 보장해주고, 건강보험이 수행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심사평가 권한을 민간보험도 갖도록 하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계획하는 기초연금 정책은 기초연금 급여를 국민연금 가입 여부에 따라 차등화하면서 국민연금에 가입할 동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 같은 소득이라도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더 기초연금을 적게 받게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특징은 재정 절감을 위한 관리, 운영효율화가 강화되면서 민간보험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게 되고, 민간보험의 운영원리를 닮아간다는 점이다. 두 번째 특징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공통의 위험에 집단적으로 대응한다는 사회보험의 ‘보험의 원리’가 ‘투자의 원리’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개인은 위험에 대비하거나 노후 보장을 위해 자산을 투자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국민연금은 2007년 개혁을 통해 계획한 대로 보장수준이 매년 0.5%씩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연급지급 연령 또한 올해부터 1년 씩 연장되어 5년 뒤에는 65세로 연장될 예정이다. 또한 3차 재정추계에서도 기금 고갈을 강조하면서 연금 재구조화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사적연금과 같이 연금액의 소득비례적 성격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연기금을 축적하는 적립방식의 연금제도 하에서 이러한 제도 변화는 더 많은 연기금을 축적하기 위한 목적에 종속된다. 축적된 연기금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운영 원리가 점점 더 사적연금와 동일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율과 해외투자 비율이 계속 확대 되었고, 민간금융기관 위탁 운용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사회보장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종속되도록 만들었고, 심지어 연기금이 금융 시장을 성장시켰다.
건강보험은 포괄수가제 도입, 평가인증제 강화 등 의료공급자들이 비용에 대한 책임을 나눠가지도록 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도록 관리 경쟁을 유도한다. 민간의료보험의 이러한 비용통제는 때로는 의학적 논리에 반하기도 하고, 민간 의료공급기관의 재정을 악화시켜 의사를 중심으로 한 민간 공급자의 불만을 강화한다. 정부는 민간 공급자를 관리할 뿐, 정부가 책임지는 공적 서비스 공급체계를 확충강화하기 위한 적극적 계획은 제출하지 않는다. 정작 지역 간, 계층 간 의료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의료를 확대 강화하자는 대중운동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마지막 특징은 사회보험의 ‘보험의 원리’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 연대의 의미가 축소된다는 점이다. 노후소득보장의 경우 소득계층별로 차별화된 다층체계화가 진행된다. 고소득층은 기업연금과 개인연금, 중간층은 공적연금과 개인연금, 저소득층은 공공부조와 기초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주요원천이 된다. 이러한 개별화는 민중의 이해관계를 분할할 뿐더러 계층에 따른 연금 차이도 크게 해 은퇴 이후에도 불평등을 지속시킨다.
민간의료보험은 2008년에 이미 연 30조 원에 달하는 건강보험의 규모를 넘어섰다. 그만큼 의료보장정책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는데 질병이 있는 사람이나 노인의 경우 보험 가입을 거부당하거나 보험료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다. 금융감독원은 40~50대 남성을 기준으로 연령 증가에 따른 위험률 증가와 그 외 증가요인을 포함해서 3년 갱신마다 보험료는 26~33%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것도 매우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실제 실손 보험료 인상률은 3년 갱신 시마다 44%씩 증가했다. 이에 따르면 매월 보험료는 61세에 73,000원, 70세 218,000원, 82세 90만 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민간의료보험이 ‘보험’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분할과 갈등에 맞서 대안적 이념과 주체를 형성하자
박근혜 정부의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정책은 재정제약의 한계로 보장성 확대의 한계를 가진다. 사회서비스 제도를 통해 복지 체감도를 높이려 하지만, 민간 공급에 의존하는 시장화 된 확충방식은 질 낮은 서비스로 인해 건강권, 주거권과 같은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침해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하락시킨다.
이러한 박근혜의 복지정책은 다양한 분할선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보장의 권리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을 분할시키기 때문이다. 근로연계복지는 비교적 안정적인 소득과 직업을 가진 노동자와 불안전한 가난한 노동자를 분할한다. 맞춤형 개별급여는 수급자 간에도 혜택의 분할을 만들면서 개별화한다. 사회서비스 제도는 여성노동을 저평가 하며, 시장 주체로서 서비스의 소비자와 공급자로 분할한다. 사회보험은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노동자 개인이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게 하면서 보장방식을 개별화한다. 또한 저성장과 고령화로 인한 재정제약은 보험료를 납부하는 기여자와 급여를 지급받는 수여자간의 분할을 만든다.
특히 저성장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험제도의 재정위기는 세대간 형평성이라는 의제를 만들고,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을 강화한다. 고령화로 인해 생산인구가 감소하면 부가가치 생산이 줄어들고, 재정적자는 경제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후세대의 조세부담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간 형평성이라는 문제가 복지국가를 비판하는 정치적 의도로 활용되면서 노동자계급이 투쟁으로 쟁취한 보편적 권리마저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류 고령화 담론의 문제설정은 총자본의 입장에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 저출산고령화의 파급 영향의 첫 번째로 ‘노동공급 감소와 노동력의 질 저하, 저축·투자·소비 위축 등에 따라 경제 전반의 활력이 저하되고 성장 잠재력이 약화’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두 번째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저해되고 세대 간 갈등이 야기’된다는 점이다.
자본과 정부의 관점에서 노인을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고령화의 문제를 인식한다면 이는 곧 노동자 일반을 대상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노동자가 다 늙기 때문이다. 노인 빈곤의 문제는 계급적 문제이다. 노년기 이전의 불평등은 노년기에도 지속된다. 퇴직이전에 높은 교육, 높은 지위, 높은 소득을 가진 사람들일 수록 대체로 노년기에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고, 질병과 장애와 같은 문제가 덜 하고, 기대수명이 더 길다. 노년기 소득도 더 높다. 국가간 비교를 해보면 공적 사회보장체계가 잘 갖춰질수록 이러한 노년기 불평등이 감소한다.
복지의 확대가 가지는 이러한 의미를 은폐한 채 복지비용 부담자를 청년층으로, 복지 수급자는 노년층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노년의 빈곤은 청장년기에 저축하기 힘든 수준의 저임금 노동을 감내했다는 것을, 또한 이를 보정해 줄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활력 저하, 복지 지출 증가만 우려하는 고령화 담론은 일해도 가난하게 만드는 노동 유연화와 복지의 부실함, 즉 현 체제의 지속불가능성을 은폐한다.
따라서 박근혜의 ‘국민행복’ 이데올로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빈곤에 맞선 사회운동이 주장해 왔던 기본생활권이라는 이념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기본생활권을 구성하는 노동권, 기본생활소득, 보편적 권리로서 공적 사회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박근혜의 복지정책에 대한 총괄적이고 일관된 비판을 지속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기본생활권이라는 이념을 재확립한다는 것은 그러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주체를 형성하고 연대를 통해 그 힘을 강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분절된 사회정책은 복지를 권리로서 요구하는 주체를 분할하고 약화시킨다. 사회보장에 대한 구체적 요구들은 정치적 의제로 발전 강화되지 못하고, 제도적 과정에 포섭되거나 배제된다.이러한 변화 속에서 구체적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주체형성과 연대 전략은 반드시 필요하다.
구체적 요구를 가진 주체들이 형성, 강화되고 이들이 기본생활권을 매개로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진주의료원 투쟁의 경우 진주의료원 노동자와 환자가 중심이 되어서 민중의 건강할 권리를 위해 노동권과 공공의료를 지키기 위한 지역적, 전국적 연대가 형성되었다. 향후 승리의 관건은 이 두 요소가 얼마나 강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박근혜식 복지는 사회서비스 시장화, 의료민영화 등과 병행하면서 오히려 사회보장을 후퇴시키는 모순을 낳고 갈등을 만들 것이다. 의료민영화 반대와 공공의료 확충, 국민연금 보장성 축소 반대, 바우처 제도 폐기와 공적기관에 의한 보육, 간병, 노인 돌봄 서비스 확충,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통합적 빈곤정책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강화 등 사회보장에 대한 구체적 요구들이 가지는 체제 비판적 의미, 노동자의 단결의 매개로서의 의미에 주목하고, 사회보장 전달체계 내 노동자, 사회보장 수급자 대중을 주체로 형성하기 위한 일상적 실천과제를 도출하자. 이를 통해 대중운동의 혁신을 추동할 때 사회보장을 지키기 위한 요구와 투쟁도 강화되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다.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비전으로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제시하고, 다섯 가지 국정목표를 설정하였다. 그 두 번째 목표가 ‘맞춤형 고용복지’이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맞춤형 고용복지와 관련, "출산에서 노령층이 될 때까지 생애주기별 다양한 복지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도, 국민들이 근로를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한편, 고용과 복지가 긴밀히 연계되는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림1]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2. 맞춤형 고용복지
‘희망의 새 시대’, ‘복지국가의 원년’ 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강조하는 것을 새로운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선진’, ‘일류’를 강조한 이명박 정부와 달리 박근혜 정부가 ‘희망’, ‘행복’을 강조한다는 점도 차이를 크게 느끼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17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소위원회 활동을 통해 ‘한국형 복지국가’라는 자신만의 복지 담론을 구축했고, 일명 박근혜 법이라 불리는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을 입안하기도 했다. 복지는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직결된 ‘브랜드’가 되었다.
[그림2] 이명박 정부의 복지투자원칙
그러나 그 내용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먼저 맞춤형 고용복지란 표현과 그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는 복지투자원칙으로 ‘일하는 복지’, ‘맞춤형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를 제시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의 맞춤형 고용복지란 근로연계복지를 의미하는 ‘일하는 복지’와 사회서비스 중심의 복지를 의미하는 ‘맞춤형 복지’의 조합이다.
또한 박근혜의 정부 복지국가 담론이라 할 수 있는 ‘한국형 복지국가론’은 스스로 ‘사회투자형 생활보장국가’라고 표현하듯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인 사회투자국가론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형 복지국가는 인적자본 및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현금이전보다 현물급여를 강조하며, 재정건전성의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 한국형 복지국가는 ‘경제 성장을 위한 인적 투자’로서 복지의 의미를 부여하는데, 따라서 보육교육과 같은 기회의 평등을 강조한다. 복지 관련 공약 대부분이 인수위 국정과제에 반영된 반면, 인적투자의 성격이 약한 연금과 보건의료 공약만 후퇴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사회투자국가론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 기조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한국형 복지국가론’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담론을 주장하는 주체가 보수정당, 새누리당의 박근혜라는 사실이 새로울 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복지 담론을 당시 야당대표가 계승했다는 아이러니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지배계급의 한계를 보여준다.
박근혜의 복지국가론이 새로울 수 없는 이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시기 주요 공약인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이것이 기반을 두고 있는 한국형 복지국가론이 역대 정부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에서 큰 차이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의회가 통제력을 갖는다고 간주되는 재정정책과 사회정책이 낮은 이자율과 낮은 부채비율 유지를 목표로 하는 화폐정책에 종속되는데, 이는 재정제약을 낳는 한 요소가 된다. 실제 지난 대선 시기 기재부, 조세연구원, 보건사회연구원 등은 선거 공약 비용 추계를 저마다 발표하면서 사회정책을 둘러싼 논쟁에 개입했다. 이러한 개입으로 복지 공약은 사회정책의 이념과 방향에 대한 정치적 쟁점보다 비용 추계와 재원 마련 방안이라는 기술적 쟁점이 주요 의제가 되었다.
이러한 재정제약은 한국 경제의 장기적 저성장과 세계 경제위기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내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조세연구원은 조세부담률을 고정하면 2050년 국가 채무비율은 128.2%로 남유럽국가 평균 120%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고, 가계부채로 인한 공공부문 부채위기의 현실화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2050년 국가 채무비율은 165%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2008년 한시적으로 도입한 재정준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재정준칙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1세대 재정준칙은 균형재정 달성까지 지출증가율을 수입증가율보다 낮게 유지해 재정수지 적자를 감축하는 것이었다. 조세연구원은 2013년부터 균형재정이 달성된 후에는 균형재정 혹은 소폭 재정수지 흑자를 목표로 한 2세대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을 확대하면서 1세대 재정준칙이 유명무실화 되는데, 이를 반영해 2세대 재정준칙은 경제상황에 따라 목표를 변동할 수 있도록 하되 그러한 변동에 대한 원칙을 설정하고 제재수단을 강화하고 있다. 경제위기시 탄력적 대응을 열어두긴 하지만, 균형재정이라는 원칙은 더욱 강화하고 재량적 예산 조정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재정의 한계는 사회보장의 확대를 제약한다. 특히 현재 공적 사회복지지출 비중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보건의료가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상급식, 무상보육은 말해도 무상의료는 말하지 않는 것은 사회투자국가론에 의거하여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향후 고령화로 인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연금도 보장성 강화에 대한 상당한 제약이 있다. OECD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심화되는 건강불평등 속에서 국가가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현 체제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형성될 것이다.
[그림 3] 2013년 1분기 국세수입과 전년대비 증감액
위기관리와 통치력 강화를 위한 전략으로서 복지
재정제약으로 인한 복지 확대의 한계 속에서, 빈곤의 확산과 그로 인한 대중적 불만을 관리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첫째, 사회서비스 보장과 같은 현물급여 중심의 복지 정책 전환으로 적은 비용으로 복지 체감도를 높이려고 한다.둘째, ‘행정 혁신’을 통해 사회정책 추진기반을 재확립한다. 이는 ‘국민중심의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개편’이라는 국정과제로 나타난다.
개정 사회보장기본법
2012년 전부개정되어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시행되기 시작한 사회보장기본법은 박근혜 정부가 사회서비스와 복지 정책의 부처 간 정책조율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형 복지국가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인 2010년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법안에는 한국형 복지국가론의 특징이 담겨있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사회보장의 의미를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 사회참여자아실현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확보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사회보장기본법은 또한 사회보장의 기능으로 소득보장과 서비스보장을 명시하였고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맞춤형 사회보장을 평생사회안전망으로 규정하였다. 사회보장제도를 구성하는 제도로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정의한다.
[표 1] 신구 사회보장법안 비교
1995년 제정된 기존 법안과 비교했을 때,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사회서비스로 개념을 바꾸면서 정의도 새롭게 한 것이 특징적이다. 개정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서비스를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국민에게 복지, 보건의료, 교육, 고용, 주거, 문화, 환경 등의 분야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상담, 재활, 돌봄, 정보의 제공, 관련 시설의 이용, 역량 개발, 사회참여 지원 등을 통하여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정의하고 있다. 이전 법에서 정의했던 사회복지서비스 개념보다 더 많은 분야(복지, 의료, 문화, 환경)를 언급하고 있고, 제공방식도 더 다양하다.
개정 사회보장기본법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의 사회보장심의위원회를 격상해 실질적 정책조율 기능을 가지는 사회보장위원회를 신설하고 사회보장기본계획을 매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보장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 기획재정부복지부 장관을 부위원장으로 두고 법무부교육과학기술부 등 각 부처 장관을 포함한 정부 위원 총 15명과 노사대표와 사회복지전문가 중 대통령이 위촉하는 민간위원 15명으로 구성된다. 이 기본계획에 따라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격년으로 재정추계도 시행한다. 또한 중앙정부 각 부처가 사회보장정책을 도입변경할 때 보건복지부와 사전에 협의를 하도록 했다. 이러한 조율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사회서비스품질관련전담기구 설치, 사회보장통계의 취합,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운영을 법으로 규정했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자아실현과 같은 수사를 통해 사회보장의 개념을 더 확대, 강화한 것처럼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기능에 대한 규정을 보면 현물급여, 즉 ‘사회서비스’ 보장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법안이 언급하고 있는 사회서비스의 개념은 모호한데, 사회서비스는 제도이자, 제도가 제공하는 혜택이자, 그 혜택을 통해 보장받는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부처 별로 사회보장정책이 흩어진 채 상호 연계도 부족해서 중복과 누락이 발생하는 ‘부처 간 칸막이 현상’을 극복하고 각 정책들을 통합조정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투입되는 재정대비 복지만족도와 복지실효성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정책 조율은 행정의 효율을 기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그러한 통합적 조정과정에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기 위한 구체적 계획이 존재하지 않는 점이 우려스럽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맞춤형 개별급여 체계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급여 제공 방식을 중복수급이었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실제 부처 간 정책 조율은 수급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부정수급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빈곤에 대한 낙인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관리의 강화와 낙인이 사각지대를 만들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인수위는 “국민 중심의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개편”이라는 국정과제의 주요 추진계획으로 ▲사회보장위원회 중심의 복지거버넌스 ▲주민센터 복지허브화 ▲범정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확대 ▲민간자원 활성화를 제시한다. 복지거버넌스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와 같이 복지 전달체계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기업, 지역사회 등이 역할을 분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국가의 한정된 인력과 재원으로 급증하는 사회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방식이기도 하다. 한정된 재정으로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박근혜 정부가 복지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990년대 초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정부혁신 운동’이 확산되면서 기존의 공적 행정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 ‘새로운 공적 경영’, ‘우량통치(거버넌스)’라는 패러다임이 부상한다. 신자유주의 하 법인기업에서 금융관리부서가 자율적 권한을 행사했던 것처럼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이 자율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경제적 국가장치가 정책 입안과 실행의 통제력을 획득한다. 한편 법인기업이 홍보, 생산 등 다층적 영역에서 외주와 하청을 발전시킨 것처럼 사회정책의 실행 및 전달은 다수의 행정적 기관과 비정부적 기구 또는 민간 기업 등으로 분권화되는 현상이 출현한다. 그 결과 조직혁신의 방향으로 지출과 실적을 연계해 비용을 절감하려고 하는 경영자주의가 확산되고, 그 과정에서 관리의 경제적 효율성을 강화하면서 사회정책 전문가의 재량권과 자율성은 약화된다. 기존의 국가장치는 비정부기구와 같은 전통적인 국가장치 외부의 조직들에게 부분적으로 관리업무를 위임하거나 또는 외부의 조직들로부터 생산된 정책적 처방을 활용함으로써 효율적인 관리와 함께 관리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이 확대된 국가적 관리의 틀 내로 흡수되면서 관리의 제도적 안정성은 더욱 약화된다. 정부, 비정부기구는 대체적으로 분절적이고 단기적인 관심에 지배되고, 더 적은 비용으로 사회문제를 봉합하려는 노력은 정부기구 내, 정부와 비정부기구, 통치구조와 사회운동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단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최근 진주의료원 사태는 복지전달체계의 불안정성과 그로 인한 갈등을 보여준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건국 후 최초의 지방의료원 폐업 시도였다.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과 관련하여 새누리당과 중앙정부는 초기에 이 사안이 지자체 소관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였다. 그 후 공공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확산되자 새누리당은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보건복지부는 권고를 내렸다. 분할된 국가기구는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갈등을 국가 관리의 틀 안으로 내부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운동은 갈등을 조율하기 위한 국가장치 내로 포섭되거나, 국가장치로부터 완전히 배제되는 양자의 선택에 내몰린다. 재정적자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노동자운동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공공부문 노동자의 노동권을 박탈한다. 공공적 기능보다 수익성을 중시하고,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통해서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흐름은 ‘거버넌스’의 이름으로 복지전달체계의 민간참여를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정부들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났다. 사회정책의 신자유주의적 행정체계인 ‘맞춤형 복지전달체계’는 복지전달체계 내 주체들 간의 분할과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편적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정책비전, ‘국민100% 행복사회’
박근혜 정부 복지 정책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복지를 강조하지만, 실상 그 내용은 이전 정부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을 계승하는 것이다. 둘째, 사회서비스를 강조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그간 비판 받아온 신자유주의 민영화 정책을 복지와 결합시켜 놓은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서 박근혜의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와 대별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종속된 사회정책일 뿐이라는 것, 다만 새로운 수사와 민간부문의 활용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와 사회보장제도 구상은 ‘국민100% 행복사회’라는 보건복지부의 정책 비전으로 구체화되었다. 핵심 목표는 중산층 형성, 안락과 건강, 사회통합이다. 이를 위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라는 국정목표에 따라 아동, 청장년, 노인별로 정책을 분류했고, 추가적으로 취약계층과 보건의료를 따로 분류했다.
아동, 청장년, 노인별로 정책 대상을 생애주기별로 구분한 것이 특징이지만 정책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아동의 경우 보육, 임신출산 지원 등 사회서비스 정책으로 이뤄져 있고, 청장년은 일자리 정책이다. 노인의 경우 사회보험으로서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돌봄서비스와 같은 사회서비스, 일자리 정책이 혼재 되어 있다. 보건의료의 경우도 의료민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창조경제 성장동력인 보건산업 육성강화’ 계획은 청장년 복지 정책으로 분리시키고 나머지 건강보험, 사회서비스 등의 사회정책이 혼재되어 있다.
분류별로 제도의 성격과 내용이 상이하다보니 사실상 수급권자가 중복되는 경우도 많고, 각 제도의 가치가 충돌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공공부조제도를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로 둔갑시켰지만 아동과 노인 역시 취약계층이다. 또한 청장년에 대한 일자리 복지 정책에는 의료민영화,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을 확대하는 문제는 외면한 채 ‘처우개선’ 수준의 소극적 태도만 보이고 있다. 청장년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는 다시 양육부담, 의료비 부담, 노인시기 빈곤으로 이어지게 되어 아동, 노인과 보건의료에 대한 복지 강화라는 목표를 무색케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사회보장정책을 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의 분류에 따라 공공부조(기초생활보장제도), 사회서비스, 사회보험제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개별 정책의 내용은 관련 분야 관료,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전문적 용어들로 인해 일반인은 이해가 어렵다. 이러한 복잡함과 난해함이 사회정책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정치적 주체로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아직 제도 변화 방향을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아래에서는 다양한 사회정책들 중 주요 쟁점으로 제기되며 논의가 이뤄지는 정책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맞춤형 개별급여’, 기초생활보장정책의 주요 내용과 문제점
제1차 사회보장위원회를 통해 밝혀진 박근혜 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 정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차상위계층의 기준을 현 기준인 최저생계비의 120%(중위소득 45.6% 수준)에서 중위소득 50%로 바꿔,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의 대상자를 확대한다. 둘째, 수급자 선정기준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된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아도 일촌 직계혈족 혹은 그 배우자가 부양능력이 있으면 수급을 받지 못하도록 설정해 둔 것인데, 이 부양능력의 판정기준이 되는 소득이 올라간다. 셋째, 통합급여 체계에서 개별급여 체계로 바뀐다. 현행 기초법에 따르면 수급자 선정기준을 만족하는 수급권자는 현금으로 지급되는 생계급여, 주거급여를 받고, 그 외 교육, 의료, 해산, 장제, 자활급여를 필요가 발생할 때 받게 된다. 개별급여 체계로 바뀌면 각 급여의 수급자 선정 기준이 달라진다. 생계급여의 경우 중위소득 30%이하 저소득층에게 적용된다.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38%의 근로무능력자, 주거급여교육급여는 각각 중위소득의 40%, 50%를 기준으로 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더 많은 차상위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이를 통해 빈곤예방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수급자 중 17.7%의 근로능력자를 노동시장으로 더욱 참여시키기 위해 근로인센티브를 강화한다.
이러한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 보장 대상의 범위를 확대할 계획을 밝히고 있으나 이미 확대, 심화되고 있는 빈곤의 규모에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개별급여 전환으로 급여 수급자가 140만에서 220만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는 현재 비수급 빈곤층 600만 중 80만에게만 적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현금으로 지급되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의 보장 수준은 거의 변동이 없다.
둘째, 보장 대상을 늘리기는 하지만 보장 내용과 보장 수준이 제각각 분할된다. 개별급여 전환으로 인해 늘어날 것이라는 80만의 수급자는 이전의 수급자처럼 최저생계비를 모두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주거, 교육과 같은 개별급여 하나만 받는 수급자들이다.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생계급여 대상자는 10만 명 증가할 뿐이다. 주거급여, 교육급여는 각각 국토교통부, 교육부가 주관부처가 되어서 선정기준과 급여수준을 정할 예정이다. 선정기준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국민들이 제도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더욱 어려워지고, 더 많은 갈등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연이은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자살사태에서 알 수 있듯, 이런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노동 강도가 포화상태라는 점에서, 의도하지 않은 사각지대가 형성될 수도 있다. 2012년 6월 기준, 읍면동 수준에서 전체 주민센터 10개소 중 8개소는 1-2명의 사회복지공무원이 복지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점은 기초생활보장제도뿐만 아니라 정부, 지자체가 수행하는 복지 사업 전반에서 나타날 것이다. 차상위계층의 범위가 확대되지만 구체적인 복지사업의 대상범위가 확대된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정부가 수행하는 297개 복지사업들은 사업별로 대상자 선정기준이 상이하다. 사업들의 상당수가 현재 최저생계비 개념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의 몇% 이하 소득 가구’ 와 같은 방식으로 대상을 선정하고, 급여를 제공하고 있는데, 각각의 사업들의 대상선정 기준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즉 중위소득 몇% 이하로 정해질 것인지 명확히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재원 마련이 부족한 경우 대상은 늘려도 오히려 보장수준은 줄어들 수도 있다.
셋째, 그간 수급 당사자를 포함해 사회운동이 요구한 의제들을 일부분 제도화했지만,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있다.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투쟁은, 가난한 이에 대한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 전가하는 국가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가난한 이와 장애인이 자립하면서 기본적 생활을 영유할 권리가 있음을 밝히는 실천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비현실적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지 ‘덜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변경했을 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관료전문가가 주도하는 해법은 합리성과 혜택의 확대라는 명목으로 부양의무자라는 관념을 더욱 공고화한다. 부양의무제 기준을 완화하는 정부의 대책이 밝혀졌지만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 공동행동은 여전히 광화문 지하도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넷째, ‘맞춤형 개별급여’ 제도는 가난한 이로 하여금 저임금불안전 노동을 감내하도록 강제하고, 이 과정에서 빈곤에 대한 낙인을 강화한다. 단적으로 사회보장위원회는 ‘탈수급 저해 급여 구조’를 문제로 지적하면서 개별급여 체계 도입의 기대효과로 ‘일할수록 유리한 체계’를 명시하고 있다. 지금도 수급대상자들은 근로능력이 있다고 평가되면 최저임금도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근로 인센티브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해도 실제 노동시장의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해도 빈곤할 수밖에 없다. ‘탈수급’이 확대될 뿐 ‘탈빈곤’은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생활보장 정책은 보장 범위와 보장 수준은 여전히 부족해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수치상으로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별적 관리를 강화하여 사회운동의 요구를 희석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 당사자를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이들은 보편적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주체로 형성되지 못하고, 적절한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지 혜택에 의존하면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사회서비스 보장 정책의 특징과 모순
사회서비스라는 개념은 노무현 정부의 일자리창출 정책 추진과정에서 일반화되었다. 사회서비스는 표준산업분류체계에 따라 공공행정, 교육, 보건 등 공공서비스 대부분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규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사회적 일자리는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만 수익성이 낮아 정부나 민간 비영리단체가 창출하는 일자리로서 자활사회적 기업, 가사간병도우미, 장애인 활동보조, 숲 가꾸기 등이 있다. 이러한 일자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좁은 의미의 사회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사회서비스 보장과 관련한 박근혜 정부 정책의 특징은 ‘창조경제’라는 경제정책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라는 첫 번째 국정목표 하에 서비스 산업 전략적 육성 기반 구축, 청년 친화적 일자리 확충기반 조성, 협동조합 및 사회적기업 활성화, 보건산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이라는 국정과제가 보건복지부의 실천계획과 긴밀히 연관된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통해 ‘(일자리 확충을 통한) 성장 잠재력 제고와 복지수준 향상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사회서비스를 일자리 창출 전략으로 본다. 미세한 차이점은 사회서비스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면서, 사회서비스를 미래 성장 전략, 창조 경제 전략으로 강조를 하는 것이다. ‘고부가가치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이라는 국정과제가 이를 대표한다.
보건복지부는 실천계획에서 ‘창조경제 성장동력인 보건산업 육성 강화’를 명시하고 있다. 보육, 요양보호와 같은 사회적일자리 정책에 포괄되었던 사회서비스들은 수익성이 낮고, 이제 민간 공급자가 확대 형성되고 있는 단계다. 그러나 의료의 경우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부터 민간 공급이 확대되기 시작해서, 민간의료가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민간병원 간 경쟁과정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한 재벌병원이 공급체계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영리병원의 추진 근거로 외국인 환자 유치, 병원 시스템 수출을 통한 국부창출을 주장해왔다. 이러한 재벌 병원자본의 수익창출 전략을 창조경제의 성장전략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서비스 정책은 갖는 또 다른 특징은, 국가가 사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활성화를 통해 민간부문이 공급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국가는 이것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등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회운동은 노무현 정부부터 시작된 이러한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사회서비스 시장화라고 비판해 왔다. 그에 따르면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은 지난 10년간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하지 못했고, 양질의 복지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늘어난 민간 공급자는 제도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일자리 확충 및 처우개선’이라는 국정과제를 통해서 단순히 민간공급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와 감독을 강화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관리와 감독의 방식은 공정한 경쟁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사회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는 시장화 된 사회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의 권리와 동일시된다. 보건복지부는 사회서비스 품질관리 및 사업관리에 관한 법률을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 가칭 ‘사회서비스 품질관리원’을 설립하여 사회서비스에 대한 평가 및 지원을 수행할 전담기관을 설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나눔문화 확산,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운영 활성화, 공공민간 복지자원 통합시스템처럼 비정부기구를 포함한 민간자원의 발굴 및 활용도를 제고할 계획이다.
이렇듯 사회서비스라는 개념이 확장되고 사회보장정책의 일부로서 자리 잡은 반면,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는 방식은 여전히 시장에 맡겨지면서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될 사회서비스’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할 사회서비스’라는 개념 간의 긴장과 모순이 심화되고, 정부의 민간시장에 대한 관리도 실패하고 있다.
국정과제인 ‘보건산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과 보건복지부 실천과제인 ‘창조경제 성장동력인 보건산업 육성 강화’에는 그동안 의료민영화로 비판받았던 정책이 총망라 되어있다. 한편 ‘건강의 질을 높이는 보건의료서비스체계 구축’에는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지역간 의료이용 격차 해소를 위한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수립할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민영화는 지역간 의료이용 격차를 더욱 확대한다는 점에서 국정과제는 서로 모순되고 있다. 민간의료의 영리추구는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명목상’ 목적과도 배치된다.
보육 정책이 확대되면서 민간 어린이집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최근 시군구청의 영유아 보육 담당 공무원들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추진되다가 어린이집 원장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집단 항의로 보름 만에 추진이 중단되었다. 물론 이 법안이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복지 전달체계 내 민간공급자와 정부의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은 다시 관료, 전문가가 주도하는 더욱 정교한 관리체계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시장화 된 사회서비스의 확대는 사회서비스의 목표로 제시되는 민중의 보편적 권리들을 파괴한다. 노동자계급은 실상 사회서비스의 제공자이자 수혜자인데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협상을 하는 소비자와 공급자로 분할되어 질 낮은 서비스와 열악한 노동조건이 고착화된다. 빈곤층은 사회서비스를 상품으로 구매해야 하기에 서비스 혜택의 차별이 발생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권에 대한 선택을 제약받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사회보험 정책의 전망과 쟁점
사회보험에는 4대 보험으로 불리는 공적연금(국민연금, 군인공무원사학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2008년에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있다. 사회보험은 공공사회복지지출에서 64.4%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2010년 건강보험 지출은 34조 원 정도로 공공부조 지출 사회복지서비스 지출의 합과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다. 공적연금 지출은 21조 원 정도인데 국민연금이 8.6조원으로 공무원연금(8.5조 원)을 앞질렀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20년 이상 납부한 완전노령연금수급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향후 국민연금 지출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고용보험은 8.3조원, 산재보험은 3.6조 원의 지출규모를 가지고 있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도 노동자의 실업과 직업병으로 인한 위험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제도이지만, 이 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자 대중적 이슈로 부각되었던 연금과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논의를 한정하도록 한다.
[표 2] 사회복지지출의 기능별 추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을 주요 복지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부분의 공약이 인수위 과정을 거쳐 국정과제로 반영된 반면 이 두 공약은 인수위 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다. 4대 중증질환과 관련해서 비급여 진료비는 애초에 공약에서 제외되어 있었다는 기만적 발표를 해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인수위는 국정과제를 통해 주요 비급여인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을 추진하기로 밝혔다.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전체 노인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급여액도 모두 두배 인상하겠다는 처음 공약에서 후퇴해서, 소득 상위 30% 노인과 소득 하위 70% 중 국민연금 가입자는 차등적으로 급여를 인상할 계획이다.
[그림 4] 국민행복연금(기초연금) 도입방안
박근혜 정부의 사회보험 정책이 가지는 특징은 첫째, 경제위기와 빈곤의 확대에 대응하여 보장성을 강화할 계획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출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앞서 설명한 공약과 국정과제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보장성이 충분히 강화되지는 못할 것인데, 공약 상의 보장성 수준이 이미 너무 낮은데다가 사각지대라는 아킬레스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사각지대는 비급여 진료다. 비급여 진료의 확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욱 낮춘다. 지난해 발표한 건강보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0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2.7%로, 2009년 64%에 비해 1.3%p 하락했다. 본인부담률 37.3% 중 법정 본인부담률은 21.3%,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16.0%로 2009년과 대비해 비급여 본인부담률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법정 본인부담률은 22.5%,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13.9%) 이미 급여 항목의 95%를 보장해주고 있는 중증질환의 경우에도 비급여 진료비로 인해서 실제 보장률은 71.4%에 지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은 비급여 진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해결책은 비급여를 급여화하거나 가격과 양을 통제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비급여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는 민간병상의 포화와 과잉경쟁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없다면 민간병원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저항을 회피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비급여 해결 논의는 비급여에 대한 공정거래 확립 차원의 통제(비급여 가격 고시제 도입, 환자 사전 동의 제도 도입 준비 등)와 어떤 비급여 진료를 우선 급여화 할 것인가를 둘러싼 관료전문가 수준의 쟁점이 중심을 이룰 것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게 높은 수익비의 급여를 제공하지만, 미가입자나 미납부자에겐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점에서 현 세대 노인,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등이 사각지대에 존재하게 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분할의 문제가 연금의 사각지대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인 납부예외자 수는 지난 11년 동안 큰 변동이 없으며 오히려 약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역가입자 중에서 보험료를 장기 체납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으며 여성이 7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55%에 불과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사회보험료 지원사업을 하지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근속기간이 짧아서 연속성이 떨어진다.
두 번째 특징은 민간보험의 역할 정립 및 협력을 통해 민간보험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해서 민간의료보험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고 이명박 정부는 당연지정제 폐지를 통해 건강보험의 근간을 흔들려고 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의 급여를 대폭 삭감하고 퇴직연금을 도입해서 사적연금 시장을 확대시켰다.
아직까지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공사역할의 분담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도 이러한 기조 하에서 사회보험 정책을 운영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이명박 정부 말부터 경제관료들은 ‘실손보험 종합대책’ 등을 통해 민간의료보험의 수익을 보장해주고, 건강보험이 수행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심사평가 권한을 민간보험도 갖도록 하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계획하는 기초연금 정책은 기초연금 급여를 국민연금 가입 여부에 따라 차등화하면서 국민연금에 가입할 동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 같은 소득이라도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더 기초연금을 적게 받게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특징은 재정 절감을 위한 관리, 운영효율화가 강화되면서 민간보험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게 되고, 민간보험의 운영원리를 닮아간다는 점이다. 두 번째 특징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공통의 위험에 집단적으로 대응한다는 사회보험의 ‘보험의 원리’가 ‘투자의 원리’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개인은 위험에 대비하거나 노후 보장을 위해 자산을 투자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국민연금은 2007년 개혁을 통해 계획한 대로 보장수준이 매년 0.5%씩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연급지급 연령 또한 올해부터 1년 씩 연장되어 5년 뒤에는 65세로 연장될 예정이다. 또한 3차 재정추계에서도 기금 고갈을 강조하면서 연금 재구조화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사적연금과 같이 연금액의 소득비례적 성격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연기금을 축적하는 적립방식의 연금제도 하에서 이러한 제도 변화는 더 많은 연기금을 축적하기 위한 목적에 종속된다. 축적된 연기금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운영 원리가 점점 더 사적연금와 동일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율과 해외투자 비율이 계속 확대 되었고, 민간금융기관 위탁 운용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사회보장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종속되도록 만들었고, 심지어 연기금이 금융 시장을 성장시켰다.
건강보험은 포괄수가제 도입, 평가인증제 강화 등 의료공급자들이 비용에 대한 책임을 나눠가지도록 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도록 관리 경쟁을 유도한다. 민간의료보험의 이러한 비용통제는 때로는 의학적 논리에 반하기도 하고, 민간 의료공급기관의 재정을 악화시켜 의사를 중심으로 한 민간 공급자의 불만을 강화한다. 정부는 민간 공급자를 관리할 뿐, 정부가 책임지는 공적 서비스 공급체계를 확충강화하기 위한 적극적 계획은 제출하지 않는다. 정작 지역 간, 계층 간 의료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의료를 확대 강화하자는 대중운동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마지막 특징은 사회보험의 ‘보험의 원리’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 연대의 의미가 축소된다는 점이다. 노후소득보장의 경우 소득계층별로 차별화된 다층체계화가 진행된다. 고소득층은 기업연금과 개인연금, 중간층은 공적연금과 개인연금, 저소득층은 공공부조와 기초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주요원천이 된다. 이러한 개별화는 민중의 이해관계를 분할할 뿐더러 계층에 따른 연금 차이도 크게 해 은퇴 이후에도 불평등을 지속시킨다.
민간의료보험은 2008년에 이미 연 30조 원에 달하는 건강보험의 규모를 넘어섰다. 그만큼 의료보장정책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는데 질병이 있는 사람이나 노인의 경우 보험 가입을 거부당하거나 보험료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다. 금융감독원은 40~50대 남성을 기준으로 연령 증가에 따른 위험률 증가와 그 외 증가요인을 포함해서 3년 갱신마다 보험료는 26~33%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것도 매우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실제 실손 보험료 인상률은 3년 갱신 시마다 44%씩 증가했다. 이에 따르면 매월 보험료는 61세에 73,000원, 70세 218,000원, 82세 90만 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민간의료보험이 ‘보험’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분할과 갈등에 맞서 대안적 이념과 주체를 형성하자
박근혜 정부의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정책은 재정제약의 한계로 보장성 확대의 한계를 가진다. 사회서비스 제도를 통해 복지 체감도를 높이려 하지만, 민간 공급에 의존하는 시장화 된 확충방식은 질 낮은 서비스로 인해 건강권, 주거권과 같은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침해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하락시킨다.
이러한 박근혜의 복지정책은 다양한 분할선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보장의 권리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을 분할시키기 때문이다. 근로연계복지는 비교적 안정적인 소득과 직업을 가진 노동자와 불안전한 가난한 노동자를 분할한다. 맞춤형 개별급여는 수급자 간에도 혜택의 분할을 만들면서 개별화한다. 사회서비스 제도는 여성노동을 저평가 하며, 시장 주체로서 서비스의 소비자와 공급자로 분할한다. 사회보험은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노동자 개인이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게 하면서 보장방식을 개별화한다. 또한 저성장과 고령화로 인한 재정제약은 보험료를 납부하는 기여자와 급여를 지급받는 수여자간의 분할을 만든다.
특히 저성장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험제도의 재정위기는 세대간 형평성이라는 의제를 만들고,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을 강화한다. 고령화로 인해 생산인구가 감소하면 부가가치 생산이 줄어들고, 재정적자는 경제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후세대의 조세부담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간 형평성이라는 문제가 복지국가를 비판하는 정치적 의도로 활용되면서 노동자계급이 투쟁으로 쟁취한 보편적 권리마저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류 고령화 담론의 문제설정은 총자본의 입장에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 저출산고령화의 파급 영향의 첫 번째로 ‘노동공급 감소와 노동력의 질 저하, 저축·투자·소비 위축 등에 따라 경제 전반의 활력이 저하되고 성장 잠재력이 약화’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두 번째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저해되고 세대 간 갈등이 야기’된다는 점이다.
자본과 정부의 관점에서 노인을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고령화의 문제를 인식한다면 이는 곧 노동자 일반을 대상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노동자가 다 늙기 때문이다. 노인 빈곤의 문제는 계급적 문제이다. 노년기 이전의 불평등은 노년기에도 지속된다. 퇴직이전에 높은 교육, 높은 지위, 높은 소득을 가진 사람들일 수록 대체로 노년기에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고, 질병과 장애와 같은 문제가 덜 하고, 기대수명이 더 길다. 노년기 소득도 더 높다. 국가간 비교를 해보면 공적 사회보장체계가 잘 갖춰질수록 이러한 노년기 불평등이 감소한다.
복지의 확대가 가지는 이러한 의미를 은폐한 채 복지비용 부담자를 청년층으로, 복지 수급자는 노년층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노년의 빈곤은 청장년기에 저축하기 힘든 수준의 저임금 노동을 감내했다는 것을, 또한 이를 보정해 줄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활력 저하, 복지 지출 증가만 우려하는 고령화 담론은 일해도 가난하게 만드는 노동 유연화와 복지의 부실함, 즉 현 체제의 지속불가능성을 은폐한다.
따라서 박근혜의 ‘국민행복’ 이데올로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빈곤에 맞선 사회운동이 주장해 왔던 기본생활권이라는 이념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기본생활권을 구성하는 노동권, 기본생활소득, 보편적 권리로서 공적 사회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박근혜의 복지정책에 대한 총괄적이고 일관된 비판을 지속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기본생활권이라는 이념을 재확립한다는 것은 그러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주체를 형성하고 연대를 통해 그 힘을 강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분절된 사회정책은 복지를 권리로서 요구하는 주체를 분할하고 약화시킨다. 사회보장에 대한 구체적 요구들은 정치적 의제로 발전 강화되지 못하고, 제도적 과정에 포섭되거나 배제된다.이러한 변화 속에서 구체적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주체형성과 연대 전략은 반드시 필요하다.
구체적 요구를 가진 주체들이 형성, 강화되고 이들이 기본생활권을 매개로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진주의료원 투쟁의 경우 진주의료원 노동자와 환자가 중심이 되어서 민중의 건강할 권리를 위해 노동권과 공공의료를 지키기 위한 지역적, 전국적 연대가 형성되었다. 향후 승리의 관건은 이 두 요소가 얼마나 강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박근혜식 복지는 사회서비스 시장화, 의료민영화 등과 병행하면서 오히려 사회보장을 후퇴시키는 모순을 낳고 갈등을 만들 것이다. 의료민영화 반대와 공공의료 확충, 국민연금 보장성 축소 반대, 바우처 제도 폐기와 공적기관에 의한 보육, 간병, 노인 돌봄 서비스 확충,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통합적 빈곤정책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강화 등 사회보장에 대한 구체적 요구들이 가지는 체제 비판적 의미, 노동자의 단결의 매개로서의 의미에 주목하고, 사회보장 전달체계 내 노동자, 사회보장 수급자 대중을 주체로 형성하기 위한 일상적 실천과제를 도출하자. 이를 통해 대중운동의 혁신을 추동할 때 사회보장을 지키기 위한 요구와 투쟁도 강화되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