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하르츠 개혁’?
최근 확정된 박근혜 정부의 140개 국정과제를 관통하는 핵심 목표 중 하나는 고용률 70% 수준 달성이다. 현재 OECD 기준 64%에 불과한 고용률을 임기 5년 동안 5% 포인트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어떻게’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는 대략 연평균 5% 경제성장이 필요한데 한국은행의 추계에 따르면 향후 5년간 경제성장률은 2-3%에 그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처럼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목표치가 한낱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노동연구원 출신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그 해법을 국외 사례에서 찾은 듯하다. 고용노동부 대통령 업무보고 직후 여성가족부와 가진 토론회에서 그는 “우리와 비슷한 여건에서 짧은 시간 내 고용률 70%를 달성한 외국 사례”로 독일의 ‘하르츠 개혁’과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연치 않게도 최근 새누리당 대한민국국가모델연구모임에서도 ‘일자리와 복지를 연계한 독일 복지체제를 배워야 한다’는 취지에서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초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한국의 하르츠’를 자처한 것도 사뭇 의미심장하다. 대체 ‘하르츠 개혁’이 무엇이기에?
1990년 통일 이후 독일은 근 10년간 ‘유럽의 병자’로 불릴 만큼 극심한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199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인근 국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1.9%로 추락했고 실업률은 두 자릿수로 치솟았다. 독일 경제를 떠받치던 주요 제조업체들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해외직접투자를 늘리고 국내고용수준을 낮추고 있었다. 독일의 대안은 유럽 통합이었다. 1999년 경제화폐동맹을 결성함으로써 마르크를 유로로 대체하게 된 독일은 사실상 상당한 평가절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독일은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생산체제는 효율적이지만 장기 고용 관행, 임금 평준화, 노동자 경영참가, 해고 규제, 산별교섭, 직업훈련제도, 고용보험제도와 같은 노사관계의 경직성이 고실업을 지속시키고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이유였다.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의 슈뢰더 총리는 2003년 3월 노동개혁 청사진인 ‘의제 2010’을 발표했다. “미래에는 어느 누구도 사회의 희생 위에서 쉬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합당한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슈뢰더 총리의 기본 인식이었다.
‘의제 2010’을 구체화하는 4개의 법안을 발의한 것은, 폴크스바겐 노무관리 이사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하고 기업인노조대표상공인정치인학자들로 구성된 노동시장현대화위원회였다. 이들은 노동시장의 ‘고객’인 고용주와 구직자를 위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새 제도에 ‘노동시장의 현대적 서비스를 위한 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위원장의 이름을 따서 흔히 ‘하르츠법 Ⅰ~Ⅳ’라 불리는 이 법안은 노동시장 서비스와 노동정책의 능률 및 실효성 제고,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재진입 유도, 노동시장 탈규제를 통한 고용수요 제고를 목표로 하였다. 잠깐 그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실업 관련 급여가 크게 변화했다. 사회보험에 기초한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단축되고 급여수준이 조정되었다. 또 이전소득에 연동되던 실업부조액이 최저소득보장제도인 사회부조와 통일되었다. 사회부조는 노동능력이 없는 수급자만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으며 과거의 사회부조 수급자 가운데 일주일에 주3일 이상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집단은 적극적인 ‘활성화 대상자’로 새로 편입되었다. 둘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수행에 필요한 재원조달 체계가 크게 바뀌었다. 실업보험과 일반회계 사이의 역할 분담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역할 분담에 변화가 나타났다. 셋째, 고용서비스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취지에서 실업자의 유형을 분류하는 프로파일링 시스템을 도입했다. 취업 가능성에 따라 실업자를 ‘시장형 대상자’, ‘활성화 대상자’, ‘지원 대상자’, ‘복지 대상자’로 세분하고 이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차등화하였다. 넷째, 1994년까지는 연방고용청이 담당하던 취업 알선 서비스를 2002년부터 전면 민간위탁 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하르츠 개혁의 효과는 사뭇 파괴적이었다. 파견근로, 해고보호, 계약직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되어 고용형태의 불안정성이 대폭 확대되었다. ‘일자리 나누기’라는 명분으로 사회보험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단시간 일자리가 확산되어 임금도 크게 줄어들었다. 실업자들은 노동력의 질을 유지향상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면서 고용을 탐색해야 했고, 또 가급적 신속하게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하부를 차지하는 저임금 일자리를 수용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을 일시적으로 흡수하는 일자리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이들은 사실상 노동과 (실업보험이 아닌) ‘복지’를 주기적으로 오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요컨대, 고용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목표 아래 추진된 하르츠 개혁은 노동시장의 신축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신축적인 노동시장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사회보험복지제도를 개편하는 것이었다. 하르츠 개혁은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의 독일식 판본이었다.
단위노동비용을 절감하여 수출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정부 차원에서 하르츠 개혁으로 나타났다면 기업 차원에서는 ‘고용과 경쟁력 협약을 통한 내부적 신축화’ 시도로 나타났다. 독일 기업들은 생산의 국내 입지를 유지하여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동시에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시간을 신축화하는 노사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서 사용자와 사업장평의회가 합의한다면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산업별 단체협약에서 정한 수준 이하로 낮출 수 있도록 한 ‘개방조항’이 1990년대부터 적용되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고용과 경쟁력을 위한 노사협약에서 도입된 가장 중요한 ‘내부적 신축화’의 기제는 바로 ‘노동시간 계좌제’였다.
노동시간 계좌제에 따라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노동시간 ‘통장’을 지급받고 여기에 매일 정규노동시간과 실제노동시간의 차이를 기록한다. 정규노동시간의 초과분은 ‘돌려받을 노동시간’으로, 정규노동시간의 미달분은 ‘갚아야 할 노동시간’으로 기입된다. 돌려받을 노동시간과 갚아야 할 노동시간은 특정한 기간 내에 소멸 또는 변제되어야 한다. 돌려받을 노동시간은 정규노동시간 중에 추가적인 휴무로 대체되거나 아니면 장기계정으로 이체되어 안식년이나 유급조기퇴직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 반면 갚아야 할 노동시간은 추가적 노동시간으로 해소된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수요의 변동에 따라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투입할 수 있고 초과노동수당의 지급을 줄여서 노동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정리해고 같은 ‘외부적 신축화’ 방식과 비교할 때, 노동시간 계좌제 같은 ‘내부적 신축화’는 기업특수적 인간자본을 보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사관계를 안정화할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생산의 국외이전이나 물량변동에 따른 고용 불안을 완화하는 방편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시간 계좌제는 정리해고제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런데 노동시간 계좌제가 과연 정리해고제에 대한 유효한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생산입지와 고용을 보장받는 대가로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간 계좌제를 도입하기로 한 1993년 폴크스바겐 합의를 되돌아보자. 하르츠가 폴크스바겐 노무관리 이사였다는 사실을 환기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는 서구 노동시간의 역사를 관찰한 바소(Pietro Basso, Modern Times, Ancient Hours)를 참고하였다.)
당시 폴크스바겐 경영진은 노동력의 급격한 감축, 노동강도와 생산성의 상승, 생산비용의 절감, 조직 노동자의 과감한 축소를 모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 최대 기업이, 그것도 상당 부분 국가가 관리하던 기업이 무려 3만 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통일 독일의 대내외적 명성에 치명타가 되는 일이었다. 따라서 폴크스바겐은 노동시간과 임금을 동시에 감소시키기 위해 생산과정과 노동시간을 포괄적으로 재조직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폴크스바겐 경영진이 노동시간 계좌제를 처음 제안할 때만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자기 시간을 관리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이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동시간 계좌제가 정착되고 나서 물량이 많은 시기에 언제 쉴지를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경영자였다. 더구나 돌려받을 노동시간과 갚아야 할 노동시간을 정산할 기간도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늘어났다. 처음에는 두 달로 제한되었던 것이 나중에는 1년, 몇 년, 종국에는 노동생애 전 기간으로 연장되었다. 정산기간이 무한정 연장되면서 노동자의 위험은 배가되었다. 물량이 없는 시기에 노동자들은 노동일, 노동주, 최악의 경우 노동월을 지불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작업시간표를 140여개로 다양화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수많은 유형의 작업시간표가 존재한다는 것은 공장 안팎에서 노동시간과 사회시간 모두가 최대한도로 분절화, 이질화, 개별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노동시간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 및 노동시간이 포괄적으로 재조직되었기 때문에 교대제야간노동휴일특근이 늘어나고 공장 내부에서 노동의 신축성과 공장 간 노동의 이동성도 늘어났다. 생산과정 재조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노동강도의 극단적이고 급격한 상승이었다.
그러나 이런 대가에도 불구하고 1993년 합의가 약속했던 일자리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다. 1993년 이래 5년간 전체 노동자의 25% 가량이 조기은퇴, 이직 등의 형태로 강제적 또는 ‘자발적’으로 작업장을 이탈했다. 폴크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노동시간이 단축된 지상낙원도 아니었고 약속된 자유시간도 없었다.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곳에서 지배적인 감정은 두려움,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일해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독일에서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화와 연대는 파괴되었다. 노동자들이 공장 안팎에서 단체로 여가를 활용하는 계기가 급속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 센터는 조기은퇴자로 붐볐다. ‘쓸 돈은 줄어들었는데 같이 보내야 할 시간이 늘어난’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되어 가족 내에서 긴장도 늘어났다.
물론 3만 명의 노동자들이 즉시 해고되었다면 상황은 훨씬 악화되었을 것 아닌가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이는 분명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1993년의 합의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실존조건이 쇠퇴하는 것을 막는 데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폴크스바겐의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폴크스바겐 브라질 헤센데 공장에서는 라인에 배치된 전원의 노동자가 간접고용 하청노동자였다. 당연히 그곳에는 노조의 그림자가 얼씬도 할 수 없었다. 헤센데 공장에서의 ‘기적’ 이후에도 폴크스바겐의 경영혁신은 멈추지 않았다. 노무관리 이사 하르츠는 임금을 노동시간과 연동하지 않고 회사가 계획한 생산 목표의 달성과 연동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동반자’로 격상되었지만 실제로는 한 달에 5천 마르크로 약정된 급여를 얻기 위해 회사가 설정한 한도에 도달할 때까지 일해야 했다. 하르츠는 이 모든 것을 ‘세계화가 그것을 요구한다’는 말로 정당화했다.
결국 폴크스바겐 협약은 노동시간의 연장, 노동강도의 강화, 노동시간의 변형으로 귀결되었다. 현대에 고대적 노동이 부활한 것이었다.
과연 ‘고용률 70%’라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하르츠 개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정부는 고용률 제고를 ‘유연근무제’와 연계하고 있다. 선택적근로시간제재량근로시간제를 활성화하고 근로시간저축휴가제를 도입하고 시간제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교대제 개편과 임금체계 개편을 동반할 것이다. 사상 최대의 경제사절단을 방미에 대동한 박근혜 대통령이 통상임금의 경직성을 문제 삼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시간제일자리는 여성 고용률 제고의 유력한 수단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하남 장관이 하르츠 개혁과 함께 예시한 바세나르 협약은 ‘임금인상 억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시간제일자리 창출’을 교환한 1982년 노사정 타협을 일컫는데, 이후 네덜란드에서 맞벌이 부부의 ‘1개 반 일자리’가 보편화되었음을 상기할 때 이것이 출산장려 대책의 일환으로 제기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정부의 노동신축화 정책은 정리해고제와 같은 고용량의 신축화와 파견제·기간제와 같은 고용형태의 신축화를 거쳐, 이제 ‘일자리 나누기’라는 외피를 쓴 시간제를 통해 임금 및 노동시간 신축화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동반하여 정부의 사회정책은 ‘맞춤형 고용복지’라는 이름으로 노동-복지 연계를 강화하고 빈민에 대한 선별적 관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편되고 있다. 이에 『사회운동』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을 포괄적으로 분석한다.
3개월의 준비기를 거쳐 『사회운동』이 계간지로 개편되었다. 구성을 단순화하는 대신 내용을 충실히 담기 위해 노력했다. 독자들에게 약속한대로 사회운동의 정론지로 거듭나기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많은 관심과 토론을 부탁드린다.
한국노동연구원 출신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그 해법을 국외 사례에서 찾은 듯하다. 고용노동부 대통령 업무보고 직후 여성가족부와 가진 토론회에서 그는 “우리와 비슷한 여건에서 짧은 시간 내 고용률 70%를 달성한 외국 사례”로 독일의 ‘하르츠 개혁’과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연치 않게도 최근 새누리당 대한민국국가모델연구모임에서도 ‘일자리와 복지를 연계한 독일 복지체제를 배워야 한다’는 취지에서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초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한국의 하르츠’를 자처한 것도 사뭇 의미심장하다. 대체 ‘하르츠 개혁’이 무엇이기에?
1990년 통일 이후 독일은 근 10년간 ‘유럽의 병자’로 불릴 만큼 극심한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199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인근 국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1.9%로 추락했고 실업률은 두 자릿수로 치솟았다. 독일 경제를 떠받치던 주요 제조업체들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해외직접투자를 늘리고 국내고용수준을 낮추고 있었다. 독일의 대안은 유럽 통합이었다. 1999년 경제화폐동맹을 결성함으로써 마르크를 유로로 대체하게 된 독일은 사실상 상당한 평가절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독일은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생산체제는 효율적이지만 장기 고용 관행, 임금 평준화, 노동자 경영참가, 해고 규제, 산별교섭, 직업훈련제도, 고용보험제도와 같은 노사관계의 경직성이 고실업을 지속시키고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이유였다.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의 슈뢰더 총리는 2003년 3월 노동개혁 청사진인 ‘의제 2010’을 발표했다. “미래에는 어느 누구도 사회의 희생 위에서 쉬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합당한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슈뢰더 총리의 기본 인식이었다.
‘의제 2010’을 구체화하는 4개의 법안을 발의한 것은, 폴크스바겐 노무관리 이사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하고 기업인노조대표상공인정치인학자들로 구성된 노동시장현대화위원회였다. 이들은 노동시장의 ‘고객’인 고용주와 구직자를 위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새 제도에 ‘노동시장의 현대적 서비스를 위한 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위원장의 이름을 따서 흔히 ‘하르츠법 Ⅰ~Ⅳ’라 불리는 이 법안은 노동시장 서비스와 노동정책의 능률 및 실효성 제고,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재진입 유도, 노동시장 탈규제를 통한 고용수요 제고를 목표로 하였다. 잠깐 그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실업 관련 급여가 크게 변화했다. 사회보험에 기초한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단축되고 급여수준이 조정되었다. 또 이전소득에 연동되던 실업부조액이 최저소득보장제도인 사회부조와 통일되었다. 사회부조는 노동능력이 없는 수급자만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으며 과거의 사회부조 수급자 가운데 일주일에 주3일 이상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집단은 적극적인 ‘활성화 대상자’로 새로 편입되었다. 둘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수행에 필요한 재원조달 체계가 크게 바뀌었다. 실업보험과 일반회계 사이의 역할 분담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역할 분담에 변화가 나타났다. 셋째, 고용서비스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취지에서 실업자의 유형을 분류하는 프로파일링 시스템을 도입했다. 취업 가능성에 따라 실업자를 ‘시장형 대상자’, ‘활성화 대상자’, ‘지원 대상자’, ‘복지 대상자’로 세분하고 이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차등화하였다. 넷째, 1994년까지는 연방고용청이 담당하던 취업 알선 서비스를 2002년부터 전면 민간위탁 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하르츠 개혁의 효과는 사뭇 파괴적이었다. 파견근로, 해고보호, 계약직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되어 고용형태의 불안정성이 대폭 확대되었다. ‘일자리 나누기’라는 명분으로 사회보험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단시간 일자리가 확산되어 임금도 크게 줄어들었다. 실업자들은 노동력의 질을 유지향상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면서 고용을 탐색해야 했고, 또 가급적 신속하게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하부를 차지하는 저임금 일자리를 수용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을 일시적으로 흡수하는 일자리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이들은 사실상 노동과 (실업보험이 아닌) ‘복지’를 주기적으로 오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요컨대, 고용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목표 아래 추진된 하르츠 개혁은 노동시장의 신축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신축적인 노동시장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사회보험복지제도를 개편하는 것이었다. 하르츠 개혁은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의 독일식 판본이었다.
단위노동비용을 절감하여 수출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정부 차원에서 하르츠 개혁으로 나타났다면 기업 차원에서는 ‘고용과 경쟁력 협약을 통한 내부적 신축화’ 시도로 나타났다. 독일 기업들은 생산의 국내 입지를 유지하여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동시에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시간을 신축화하는 노사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서 사용자와 사업장평의회가 합의한다면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산업별 단체협약에서 정한 수준 이하로 낮출 수 있도록 한 ‘개방조항’이 1990년대부터 적용되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고용과 경쟁력을 위한 노사협약에서 도입된 가장 중요한 ‘내부적 신축화’의 기제는 바로 ‘노동시간 계좌제’였다.
노동시간 계좌제에 따라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노동시간 ‘통장’을 지급받고 여기에 매일 정규노동시간과 실제노동시간의 차이를 기록한다. 정규노동시간의 초과분은 ‘돌려받을 노동시간’으로, 정규노동시간의 미달분은 ‘갚아야 할 노동시간’으로 기입된다. 돌려받을 노동시간과 갚아야 할 노동시간은 특정한 기간 내에 소멸 또는 변제되어야 한다. 돌려받을 노동시간은 정규노동시간 중에 추가적인 휴무로 대체되거나 아니면 장기계정으로 이체되어 안식년이나 유급조기퇴직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 반면 갚아야 할 노동시간은 추가적 노동시간으로 해소된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수요의 변동에 따라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투입할 수 있고 초과노동수당의 지급을 줄여서 노동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정리해고 같은 ‘외부적 신축화’ 방식과 비교할 때, 노동시간 계좌제 같은 ‘내부적 신축화’는 기업특수적 인간자본을 보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사관계를 안정화할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생산의 국외이전이나 물량변동에 따른 고용 불안을 완화하는 방편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시간 계좌제는 정리해고제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런데 노동시간 계좌제가 과연 정리해고제에 대한 유효한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생산입지와 고용을 보장받는 대가로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간 계좌제를 도입하기로 한 1993년 폴크스바겐 합의를 되돌아보자. 하르츠가 폴크스바겐 노무관리 이사였다는 사실을 환기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는 서구 노동시간의 역사를 관찰한 바소(Pietro Basso, Modern Times, Ancient Hours)를 참고하였다.)
당시 폴크스바겐 경영진은 노동력의 급격한 감축, 노동강도와 생산성의 상승, 생산비용의 절감, 조직 노동자의 과감한 축소를 모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 최대 기업이, 그것도 상당 부분 국가가 관리하던 기업이 무려 3만 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통일 독일의 대내외적 명성에 치명타가 되는 일이었다. 따라서 폴크스바겐은 노동시간과 임금을 동시에 감소시키기 위해 생산과정과 노동시간을 포괄적으로 재조직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폴크스바겐 경영진이 노동시간 계좌제를 처음 제안할 때만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자기 시간을 관리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이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동시간 계좌제가 정착되고 나서 물량이 많은 시기에 언제 쉴지를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경영자였다. 더구나 돌려받을 노동시간과 갚아야 할 노동시간을 정산할 기간도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늘어났다. 처음에는 두 달로 제한되었던 것이 나중에는 1년, 몇 년, 종국에는 노동생애 전 기간으로 연장되었다. 정산기간이 무한정 연장되면서 노동자의 위험은 배가되었다. 물량이 없는 시기에 노동자들은 노동일, 노동주, 최악의 경우 노동월을 지불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작업시간표를 140여개로 다양화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수많은 유형의 작업시간표가 존재한다는 것은 공장 안팎에서 노동시간과 사회시간 모두가 최대한도로 분절화, 이질화, 개별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노동시간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 및 노동시간이 포괄적으로 재조직되었기 때문에 교대제야간노동휴일특근이 늘어나고 공장 내부에서 노동의 신축성과 공장 간 노동의 이동성도 늘어났다. 생산과정 재조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노동강도의 극단적이고 급격한 상승이었다.
그러나 이런 대가에도 불구하고 1993년 합의가 약속했던 일자리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다. 1993년 이래 5년간 전체 노동자의 25% 가량이 조기은퇴, 이직 등의 형태로 강제적 또는 ‘자발적’으로 작업장을 이탈했다. 폴크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노동시간이 단축된 지상낙원도 아니었고 약속된 자유시간도 없었다.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곳에서 지배적인 감정은 두려움,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일해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독일에서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화와 연대는 파괴되었다. 노동자들이 공장 안팎에서 단체로 여가를 활용하는 계기가 급속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 센터는 조기은퇴자로 붐볐다. ‘쓸 돈은 줄어들었는데 같이 보내야 할 시간이 늘어난’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되어 가족 내에서 긴장도 늘어났다.
물론 3만 명의 노동자들이 즉시 해고되었다면 상황은 훨씬 악화되었을 것 아닌가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이는 분명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1993년의 합의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실존조건이 쇠퇴하는 것을 막는 데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폴크스바겐의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폴크스바겐 브라질 헤센데 공장에서는 라인에 배치된 전원의 노동자가 간접고용 하청노동자였다. 당연히 그곳에는 노조의 그림자가 얼씬도 할 수 없었다. 헤센데 공장에서의 ‘기적’ 이후에도 폴크스바겐의 경영혁신은 멈추지 않았다. 노무관리 이사 하르츠는 임금을 노동시간과 연동하지 않고 회사가 계획한 생산 목표의 달성과 연동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동반자’로 격상되었지만 실제로는 한 달에 5천 마르크로 약정된 급여를 얻기 위해 회사가 설정한 한도에 도달할 때까지 일해야 했다. 하르츠는 이 모든 것을 ‘세계화가 그것을 요구한다’는 말로 정당화했다.
결국 폴크스바겐 협약은 노동시간의 연장, 노동강도의 강화, 노동시간의 변형으로 귀결되었다. 현대에 고대적 노동이 부활한 것이었다.
과연 ‘고용률 70%’라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하르츠 개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정부는 고용률 제고를 ‘유연근무제’와 연계하고 있다. 선택적근로시간제재량근로시간제를 활성화하고 근로시간저축휴가제를 도입하고 시간제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교대제 개편과 임금체계 개편을 동반할 것이다. 사상 최대의 경제사절단을 방미에 대동한 박근혜 대통령이 통상임금의 경직성을 문제 삼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시간제일자리는 여성 고용률 제고의 유력한 수단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하남 장관이 하르츠 개혁과 함께 예시한 바세나르 협약은 ‘임금인상 억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시간제일자리 창출’을 교환한 1982년 노사정 타협을 일컫는데, 이후 네덜란드에서 맞벌이 부부의 ‘1개 반 일자리’가 보편화되었음을 상기할 때 이것이 출산장려 대책의 일환으로 제기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정부의 노동신축화 정책은 정리해고제와 같은 고용량의 신축화와 파견제·기간제와 같은 고용형태의 신축화를 거쳐, 이제 ‘일자리 나누기’라는 외피를 쓴 시간제를 통해 임금 및 노동시간 신축화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동반하여 정부의 사회정책은 ‘맞춤형 고용복지’라는 이름으로 노동-복지 연계를 강화하고 빈민에 대한 선별적 관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편되고 있다. 이에 『사회운동』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을 포괄적으로 분석한다.
3개월의 준비기를 거쳐 『사회운동』이 계간지로 개편되었다. 구성을 단순화하는 대신 내용을 충실히 담기 위해 노력했다. 독자들에게 약속한대로 사회운동의 정론지로 거듭나기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많은 관심과 토론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