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노동자운동
주어진 시간 안에 노동자운동의 주객관적 상태를 상세히 진단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현 정세에서 우리 운동의 이념노선과제를 둘러싸고 쟁점을 형성하는 세 가지 주제에 관해 초점을 맞춰보겠다. 첫째, 경제위기에 따른 동아시아한반도 정세의 변화 속에서 노동자운동의 민족주의적 대응을 비판하고 평화주의로서 국제주의를 이념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둘째, 경제위기와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장시간 노동체제 근절’을 기조로 하는 노동자운동의 대응을 비판하고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연대임금’을 노선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셋째, 신임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시한 당면 정치적조직적 과제로서 정치세력화와 전략조직화에 대해 제언한다. 그동안 사회진보연대가 여러 경로를 통해 제출해왔던 입장을 정세적으로 재구성해보겠다.
평화주의로서 국제주의
우리가 살고 있는 2010년대는 훗날 1930년대 대불황에 비견되는 대침체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2007-2009년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미국의 ‘플랜 A’는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제로금리정책수량완화정책오퍼레이션트위스트)과 재무부의 재정정책(부실자산구제계획적자재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대응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과 노동시장이 회복되지 않자 ‘플랜 B’가 적극 동원되고 있다. 그 핵심은 2011년 선언한 ‘태평양으로의 선회’에 따른 범태평양파트너십(TPP)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FTAAP) 구상이다. 오바마 정부는 TPP 협상을 2013년까지 완료하고 FTAAP 협상은 2010년대에 완료한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대한 재관여재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북한이란 등이 ‘세계적 공유지’인 황해남중국해인도양페르시아만에서 미군의 작전을 방해한다는 인식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합동작전접근개념’, 즉 ‘해상공중전’ 개념을 제시했다. 여기서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에게 좋은 빌미가 되고 있는데, 미국은 역내 안정과 동맹국에 대한 안전 보장을 이유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재편을 적극 추진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심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또다시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상반기 첨예하게 고조된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남한 노동자운동의 주류적 이념은 민족주의였다. 반제국주의민족자결민족공조에 입각한 북한의 선군정치핵자위론 옹호가 주류적 대응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남한의 정치 상황에 대해 갖는 함의는 통합진보당의 자주적 민주정부론, 즉 야권연대를 통한 연립정부 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1-2012년 일련의 통합진보당 사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당시 한미동맹의 대북 위협과 함께 북한의 핵무장과 이를 옹호하는 입장에 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첫째,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의 핵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계속해서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군비경쟁의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 넷째, 남한에서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심지어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핵무기 반대’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유실할 위험이 크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한미동맹의 확장억지 강화,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방적 군비축소’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와 같은 군사동맹 폐기 또한 지향해야 한다.
그럼 이상의 정세적 비판을 이론적으로 보충해 보겠다. 레닌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 전쟁론의 전통에서 전쟁은 혁명의 조건으로 사고되었다. ‘제국주의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시키자’는 레닌의 구호는 제국주의적 전쟁을 계기로 출현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경제적 토대와 대중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해후를 통해 제국주의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적 전쟁을 계기로 출현하는 국가자본주의적 경향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경제적 토대가 되고, 제국주의적 전쟁에 연루되는 대중이 민족자결주의로서 국제주의를 포함하는 다양한 민주주의적 요구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계급혁명과 민족해방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레닌의 전쟁론은 냉전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의 종전이자 냉전의 시작을 알린 것은 미국의 대일 핵공격이었고, 뒤이은 냉전 하에서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미소간의 군비 경쟁은 인류의 절멸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국주의적 전쟁이라는 ‘불의의 전쟁’과 혁명적 내전이라는 ‘정의의 전쟁’을 구별하는 대신 평화라는 이상이념에 따라 ‘일방적 군비 축소’와 ‘군사동맹 폐기’라는 구호를 채택해야 한다. 이러한 적극적능동적 평화주의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에 대한 비판을 경제적 착취와 이데올로기적 억압이라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비판과 결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국제주의는 민족자결이 아니라 평화주의이며 나아가 평화주의는 대안세계를 향한 가장 중요한 이념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제 ‘혁명의 조건으로서 전쟁’이라는 관점을 ‘평화의 조건으로서 혁명’이라는 관점으로 전도해야 한다.
이상 정치군사정세와 관련하여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제기된 민족주의 비판을 확대해보겠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현 정세에서 민족주의 비판이 필요한 이유는 세계화와 그것의 위기에 대한 반동으로서 종족적 민족주의 또는 인종주의가 발호하기 때문이다. 가령 유럽에서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신자유주의적 반격 속에서 복지국가도 쇠퇴했다. 이로 인한 ‘사회적 권리’의 해체가 불평등과 배제의 심화로 이어지면서 대중적 불만이 고조되고 그것이 좌우를 막론한 기존 정치계급에 대한 불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하에서 배타적인 동일성의 감정이나 원한을 동원하는 극우 세력의 정치적 약진은 파시즘의 부활에 대한 우려까지 낳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는 현재 그리스의 신나치주의 황금새벽당을 들 수 있다. 그럼 종족적 민족주의와 관련된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현실적 쟁점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재외동포를 민족으로 간주하는 데서 드러나는 종족적 민족주의다. ‘동포’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일상에서 통용되는 민족주의 관념은 실은 다분히 종족적인 관념을 내포한다. 본래 ‘동포’(同胞)란 ‘한 어머니의 소생’을 뜻하는 말로, 혈연의식과 민족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통상적으로, 외국국적자(시민권자)에 다르지 않은 이들을 민족으로 부르는 반면 이주노동자를 민족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012년 총대선부터 재외국민(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반면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이나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 2011년 시행된 정부의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어보면, 현재 국내에 거주하면서 F-4비자(재외동포비자) 자격이 없는 미등록 재외동포(대부분 중국동포)가 신청자격을 획득하게 되고 신청시 D-4비자(일반연수비자)를 받게 된다. 9개월 간 재외동포기술교육지원단에 의한 직업교육을 받고 나면 이들은 H-2비자(방문취업비자)로 비자를 바꿀 수 있게 되고 현재 방문취업제 하에서 재외동포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36개 업종에서 4년 10개월 동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 ‘동포’에 대한 ‘편애’를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를 비동포 이주노동자와 정주 시민(및 선진국 재외동포)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등 시민으로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위계구조의 제도화는 노동자계급 사이의 분열을 심화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사고한다면 과거지향적 측면보다도 미래지향적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즉 민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운명을 공유하는 사람들 또는 현재로서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주노동자가 우리와 운명을 공유하고 현재로서 역사를 공유하는 시민이라면, ‘민족’인 것이다.
두 번째로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서 출산장려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보겠다. 사실 종족적 민족주의의 핵심에는 확대된 가족으로서 종족이라는 관념이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가족 비판이 종족적 민족주의 비판에도 적합하다. 출산제한 또는 출산장려 같은 가족정책인구정책은 성욕과 재생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가부장제적으로 통제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에 대해 정부는 각종 출산장려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은연중에 이주노동자나 혼혈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셈이다.
민족주의인종주의의 부활에 대한 대안은 ‘또 다른 세계화’ 즉 대안세계화 또는 대안지역화일 수밖에 없다. 가령 유럽연합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의 단계를 지나 제도위기로 진입하고 있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연합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제도적 기초를 변형하기 위한 경제정책과 세력관계의 역전이 필요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남한의 수출-재벌 중심 세계화나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안으로서 국가간 노동표준을 통일시키거나 상승시키기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 임금 격차 축소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제고를 핵심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증가율 둔화가 가속화되고 고용률 상승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제고를 위해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매우 긴요한 정책과제이며,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장시간 노동체제 개선’을 위한 임금체계 및 교대제 개편과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 대책이 적극 제시되고 있다. 1998년 이후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이 고용량·고용형태의 유연화를 거쳐 임금 및 노동시간 유연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조만간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실은 소책자를 발간할 예정인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해보겠다.
신보수주의가 직접적인 방식, 즉 대량실업을 통해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하는 데 반해 신자유주의는 간접적인 방식, 즉 ‘실업의 조직화’를 통해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한다. 임금 및 고용의 유연화를 위한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효율성 임금, 노동연계복지(workfare)가 추진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외부적수량적 노동유연화로서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으로서 ‘내부적기능적 유연화로서 비정규직화’를 포함한다. 어쨌든 ‘일자리 나누기’라는 개념 자체가 고용형태의 유연화와 함께 노동시간 및 임금의 유연화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는 경제위기외환위기의 충격을 배경으로 1998-2003년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 이름하여 ‘3제’의 도입으로 일단락되었다. 그 과정을 잠시 환기해보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후속하는 1989년 노동법 개정 투쟁의 성과로 쟁취된 44시간 노동주에 반하여 자본가계급은 1990년대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의 도입을 줄곧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1996-1997년 노동법 개악 총파업으로 3제의 도입을 얼마간 저지하지만,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민주노총전교조공무원노조의 합법화 및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과 3제를 교환했다. 그리고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주5일 근무제에 따른 40시간 노동주가 도입되는 대신 변형근로제가 확대되었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경제위기 속에서 대량실업에 직면한 각국 정부는 고용 유지창출을 위한 각종 경기부양책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했다. 특히 유럽에서는 노사정협정 또는 노사협약을 통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토대로 사측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노조가 임금 동결삭감 같은 양보교섭을 수용하는 코포러티즘이 특징적이다. 경제위기에서 민주노총은 총고용 보장을 핵심목표로 설정하면서 노동시간 단축과 공공부문 고용창출에 덧붙여 고용안정특별법과 고용안정협약을 핵심 요구로 제기했다. 이 중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위기에서 ‘일자리 나누기’라는 정세적 대안이자 ‘장시간 노동체제의 해체를 통한 국민병 치유’, ‘무제한적 노동을 넘어선 노동해방’, ‘질 좋은 노동시간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략적 과제로 승격되는 듯 보인다.
먼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비판해보자. 1998-2003년 당시 민주노총의 요구가 법정노동시간 단축이었던 데 반해 현재의 요구가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과거와 마찬가지로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것이라는 부당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대개 노동강도 상승으로 대체되는데, 이때 그에 비례해서 임금이 증가하지 않으면 사실상 임금을 하락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게다가 노동강도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이 양적질적으로 고용 창출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보장도 없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역사적으로도 1990년대 유럽(독일·프랑스)의 노동시간 단축 경험은 변형근로제를 동반한 노동주노동년 단축이 오히려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통계상으로도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만일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의 상관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이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노동유연화의 결과 우리 사회에는 노동시장노동과정노동력재생산에서 공히 불안전이 확대되어 전반적인 고용의 질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산업구조로 보면 ‘서비스화’가 진척되지만 1990년대 이후 고용 창출을 주도한 서비스업종은 음식료도소매숙박업과 같은 기술수준이 낮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서, 전체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여타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최하위 수준이다. 정부 당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 부진이 지속되면 취업자수 증가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줄어들고 고용창출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고용창출로 인한 실질구매력 증대효과가 크지 않아 고용창출이 내수진작을 통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현실적으로도 ‘법정근로시간단축으로 실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시간당 임금이 증가하였다’는 긍정적인 통계 지표의 이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과 장시간 노동 관행이라는 부정적인 현상이 공존한다. 법정근로시간단축은 초과노동 사용을 억제할 유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런데 노동력 가치로 지불되는 임금은 주어진 임금제도 내에서 노사간 교섭(력)에 의해 결정되고 임금체계에 따라 변동한다. 현실에서 사용자는 초과노동을 이용하더라도 총액급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당 정액급여를 낮게 조정하여 지불하고, 또한 준고용비용이 높은 노동자의 초과노동을 이용함으로써 추가고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노동비용 증대를 방지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고용된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신규고용과의 대체를 억제하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임금총액 대비 현저하게 낮은 기본급 수준이 초과노동의 결정적 유인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장시간 노동체제 근절’이라는 기조를 비판해보자. 민주노총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노동거부’나 ‘일중독 비판’과 같은 아나키즘 또는 문화주의를 하나의 이론적 원천으로 삼고 있다. 이상은 그 실행 방안이 묘연하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장시간 노동체제의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이나 임금보전 욕구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조장하거나 노동자운동을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금속노조에서는 노동시간계좌제와 같은 수단을 고용조정의 유력한 대안으로 소개한 적도 있는데, 독일의 사례에서 노동시간계좌제는 ‘외부적’ 유연화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국가와 자본이 선택하는 ‘내부적’ 유연화 기제로서 물량 변동에 따른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극대화하여 집단 노동자의 개별화를 야기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체제’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보편성, 즉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결합하는 임금률의 작용에 대한 분석과 함께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압력 속에서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 즉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 전략과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하청계열화에 대한 분석이 결합되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마르크스의 임금론노조론과 남한의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보편성으로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보자. 임금노동자에 의해 창출된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영유하는 착취의 메커니즘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생산의 동기는 자본가의 무한한 이윤 증식 욕구에 있다. 따라서 자본가는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 즉 부불노동시간의 생산을 위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노동년·노동일을 연장하거나 노동자수를 증가시킴으로써 부가가치를 증가시켜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법’과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토대로 노동력가치를 감소시킴으로써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법’을 결합한다. 전자가 노동시간의 ‘외연적 연장’이라면 후자는 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논의는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에 대한 논의와 결합되지 않으면 공허할 뿐이다. 생산과정의 기계화와 자동화, 그리고 노동력 활용방법의 끊임없는 ‘합리화’는 노동강도 강화, 마르크스식으로 말해서 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에 크게 기여했다. 테일러주의에서 최근의 도요타주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자연시간에 대한 기계들의 전체주의적 지배는 산 노동의 ‘죽은’ 시간을 지속적으로 제거해온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고정자본의 엄청난 증가는 노동강도를 비례적으로 상승시켰다. 또한 1980년대 이후 기업들이 생산 증대보다 생산성 및 노동강도 증가를 목표로 두게 되면서 ‘노동절약’ 기술들에 대한 투자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방금 이야기를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보겠다.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을 절약하고 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노동을 절약하는 대신 고정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따라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보편적 법칙이므로, 이에 대한 반작용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고정자본의 소비를 효율화하는 현대적인 ‘관리자 혁명’이다. 이는 곧 노동강도를 강화함으로써 고정자본의 소비를 효율화하는 방법으로서,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해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 결합된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통일시키는 경제적 방법이 바로 기계제대공업이 발명하는 새로운 임금지불 방법으로서 시간급과 (시간급을 변형한) 성과급이다. 시간급 체계에서 자본가는 직접적으로는 표준시간급 하방 압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노동자간 경쟁, 즉 취업자와 실업자간 경쟁을 활용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정한 임금을 수취해야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장시간 노동을 강제한다. 시간급은 잔업과 특근 같은 초과노동이나 교대제를 통한 노동자 수의 증가를 통해서 노동시간을 외연적으로 연장한다. 성과급 체계에서 자본가는 직접적으로는 표준성과급 하방 압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노동자간 경쟁, 즉 취업자간 경쟁을 활용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정한 임금을 수취해야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고강도 노동을 강제한다. 성과급은 노동강도의 상승을 통해서 노동시간을 내포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본질로 한다. 이상 마르크스의 임금론은 곧 노조론으로 연결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다음으로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으로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보자. 1997-1998년 위기는 1990년대 재벌의 과잉 중복 투자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환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자본축적률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매우 낮은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윤율 하락이라는 요인 외에도 ▲해외 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실물자산이 아닌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기업결합(M&A) 중심의 투자행태 ▲199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배당금의 증가와 같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경제의 불안정성 증가에 따른 실물투자의 기피 현상 등이 실물투자를 구조적으로 위축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한국 경제는 금융자유화를 통해 국외로부터 막대한 자본을 수입하게 되었지만,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자본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 및 국부유출이라는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라는 문제를 낳았다. 또 구조조정과 평가절하를 통해 한국경제는 수출경쟁력을 회복하여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는 수출-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했다.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경제가 성장과 고용창출력이 저하된 가운데 높은 대외의존도로 외부충격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서비스산업 개방 및 선진화를 추진했다.
결국 지배계급의 입장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한국경제의 유일한 활로가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여전히 기술경쟁력보다 저임금 기반 가격경쟁력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수출경쟁요인 분석 결과, 한국은 아직 세계 시장에서 확실하게 품질경쟁을 하는 품목의 비중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세계시장에서 아직까지 확실하게 품질의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치열하게 경쟁국 상품과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제조업은 여전히 범용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 등 후발개도국의 추격에 취약한 동시에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도 여전히 존재하여 신흥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점차 수출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샌드위치론’ 또는 ‘넛 크래커(nut-cracker)론’이 틈만 나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대내적 측면에서는, 1997-1998년 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수출-재벌이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위계적 하청계열화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자동차 가치사슬에서는 내부생산을 축소외부화하고 연구개발기획과 판매마케팅 부문을 강화하는 완성차기업을 정점으로, 중간관리 모듈기업(생산관리기업, 하위모듈기업)과 하위부품기업(전문부품기업, 하위납품기업)이 중층적이면서도 종속적인 위계관계로 연결되는 가치사슬구조가 구축되었다. 이러한 ‘종속적 모듈 가치사슬’에서 완성차기업은 생산을 축소외부화함에도 불구하고 하위부품기업들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유지한다. 기업 위계의 상위로 잉여가치 이전이 강조되는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기업 간 긴밀한 신뢰구축을 통한 동반발전효과는 줄어들고 일방적인 수익이전과 비용전가 구조만이 강화된다. 산업의 성과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사슬의 상위위계로만 집중되고 위계의 하위로 갈수록 그 조건이 열악해지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원청 대자본의 부담 전가, 특히 경제위기 시기의 부담 전가 경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기업 내 부담 전가 경로로서 1차 사내하청 노동(고용)에서부터 시작해서 원청 대자본의 정규직 노동(임금)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에는 1차적으로 대공장내 사내하청 노동에 대해서는 고용을, 정규직 노동에게는 임금을 매개로 부담 전가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 경로는 기업 외부, 즉 외주 하청구조를 통해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로서, 이를 구현하는 수단은 물량과 단가다. 물량과 단가 삭감을 통해 외주 하청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이는 또다시 외주하청 업체 내 파견사업체 및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 경제위기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임시직의 고용과 노동시간의 변동을 통해 흡수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특히 초과노동시간의 증감에 따른 소득 증감이 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상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이윤율 하락에 따른 위기는 자본의 과잉과 노동의 과잉, 즉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전화로 전개된다. 1997-1998년 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이윤율 하락→자본축적률 저하→구조적 실업률의 상승→(교섭력의 약화)→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가 관찰된다. 1998-2003년 ‘3제’의 도입을 통한 노동유연화는 노동시간 및 임금의 개별화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노동의 위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 내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노동조합의 대표성이 취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원하청노동자간 경쟁, 나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경쟁을 특징짓는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연대임금이 대안적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작년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재벌체제에 대한 노동자 단결’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였듯이, ‘장시간 노동체제’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정액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단결’ 프레임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앞서 잠시 뒤로 미뤄뒀던 노동조합의 의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라는 자본의 전제적 침략을 막고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인상, 노동일 단축, 노동조건 개선 투쟁과 같은 경제투쟁(방어적 계급투쟁)을 펼치게 된다. 노동자-자본가 간의 임금투쟁이라는 일종의 ‘관습’ 또는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계급투쟁의 역사적 제도가 임금을 결정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노조의 경제투쟁에 따라 임금률이 비례적으로 상승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경제투쟁의 최선의 결과는 현상 유지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하듯이 경제투쟁은 임금제도라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에 노조가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최종적 해방, 즉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총체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진정한 결과는 [임금률의 인상이라는] 직접적 성과가 아니라 점차 확대되는 그들의 단결이다’라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문구를 상기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임금노동 제도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정치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멀게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이탈리아 평의회노조 운동의 전통에서 나타나고, 가깝게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한국 전노협 운동의 전통에서 나타났던 연대임금 또는 정액임금 인상 운동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 축소와 단결을 위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현재 논의 지형이 ‘장시간 노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면 과제는 다음과 같다. 원론적으로는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를 동반하지 않는 법정 노동일 단축이 대안이겠지만, 현재의 계급역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불가능하다. 일단 논리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 시 임금 삭감,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유연화를 동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조로 대응해야 한다. 과거의 사례나 지금의 역관계를 감안할 때, 민주노총이 노동시간 단축 그 자체를 궁극적 목표로 상정할 경우 정부와 자본이 의도하는 노동유연화 기제와 맞바꾸는 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논리다. 현실적으로는 정부의 유연근무제 확대 방안, 즉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비판하는 투쟁을 펼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근로시간특례제도 폐지, 포괄임금제 금지 등 법제도적 개선을 요구하고, 미시적으로는 교대제 개편 방안에 관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임금 유연화 대응 기조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마르크스의 임금론-노조론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면,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노사간의 역관계 또는 노동조합이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케인즈의 경우 이렇게 임금이 제도적으로 결정되는 것을 ‘경직성’이라고 부르는데, 임금의 경직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연공서열급이다. 연공서열을 포함해서 임금이 경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노동생산성이 개별노동자가 아니라 집단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의 성과로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는 ‘생산성임금’이 실현되고 임금분배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생산성임금을 역전시키는 것이 바로 효율성임금으로서, 이는 임금의 개별화를 통해서 노동자간 경쟁을 격화시키고 개별화된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키려는 의도를 지닌다. 아직 생산직에서는 연봉제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럴 경우 일단 연공서열을 비롯한 경직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비정규직이나 실업자의 문제를 고려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취업자와 실업자의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연대임금을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총 정치적조직적 과제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취임한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가 노동자운동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방안으로 연합정당론과 전략조직화를 제시하고 있다. 둘 다 민주노총이 풀어야 할 중차대한 과제이므로 아래에서는 몇 가지 쟁점을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치세력화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는 ‘진보정당의 분열로 인한 갈등이 첨예화돼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공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 하에 ‘분열된 진보정당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연합정당으로 재편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연합정당론은 노동정치연석회의의 진보정당연합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석회의는 ‘자신의 조직적 정치적 독자성을 존중하면서 재편과 재정립의 방향을 모색한다’는 맥락에서 정당연합 또는 정치연합 방안을 제기하고 있다(“기존의 진보정의당, 진보신당[노동당], 녹색당, 노동 추진기구 등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그 조직들의 협의로 연합정당을 운영하자”). 이들은 현재 서구에서 나타나는 좌파정당 통합 흐름, 특히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이나 프랑스의 좌파전선의 사례를 모델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리스와 프랑스 좌파의 사례에서 정당연합과 선거연합의 성공은 경제위기 하 대중운동의 분출과 기존 정당의 위기라는 정세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정당연합과 선거연합 문제는 하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게다가 국외 사례를 국내에서 참고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차이와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진보연합정당 구상에서 한국의 선거법과 정당법 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현행 선거법과 정당법이 이중당적을 금지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연합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당법상 효력을 가지는 연합정당의 경우(정당연합)와 정당법상의 효력이 없는 경우(정치연합)일 것이다. 이러한 법제도적 고려 외에도 그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제휴 대상의 범위, 선거구/후보 조정 등을 둘러싼 진통이 예상된다.
어쨌든 정당의 분열이 민주노총의 분열로 연결되어서는 안 되며 현존하는 진보정당이나 당면한 선거에 대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합정당론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2012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해체가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 순환이 극적으로 종료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보다 긴 호흡과 큰 틀에서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단과 냉전으로 인한 반공발전주의 속에서 지속적으로 억압된 남한 노동자운동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항거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맹아기와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정파운동의 각성기를 거쳐 1985년 구로동맹파업과 1987-1989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발전, 1990년 전노협의 결성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동시에 1989-1991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이념의 혼란 속에서, 1991-1992년 합법정당 결성을 주장하는 신노선이 제기된다. 이와 동시에 ‘노동운동 위기론’을 기화로 진보적 조합주의가 제기되었고, 1993년 전노대가 결성되면서 전노협이 상대화된다. 결국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모토로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다. 민주노총은 1996-1997년 총파업을 통해 노동법 개악을 얼마간 저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외환위기경제위기 속에서 1998년 사회적 합의를 통해 3제를 수용한다. 1990년대 노동자운동의 수세적 대응 속에서 출범한 민주노총이 출범하자마자 위기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1990년대 초반 진보정당 건설 운동을 주도하던 정파들의 영향력은 1996년 총선 이후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그런데 1996-1997년 총파업의 한계를 ‘국회의원의 부재’에서 찾은 민주노총이 1997년 대선 대응 이후 조직적 결의로 정치세력화를 추진하였고, 그 결과 2000년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적 토대 위에 정파들이 연합하는 형태로 민주노동당이 결성되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이념적 지향과 운동적 활력은 상당 부분 민주노총의 그것과 직결되는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만성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던 민주노총과 대조적으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의회에서 약진하였고. 급작스러운 성공의 이면에서 선거정치와 집권을 강조하는 수권정당론과 함께 민주노총으로부터 자립화하려는 ‘탈 민주노총’ 경향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직공직 선출을 둘러싼 정파간 갈등이 격화되었고, 결국 2007년 대선 패배를 계기로 분열했다.
대선 직후 ‘평등파’는 ‘자주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종북주의가 대선 패배 요인이라는 평등파의 주장은 오류로 볼 수밖에 없는데, 반공반북주의에 편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주파의 민족주의가 노동자 국제주의나 평화주의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적합하게 비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패권주의라는 비판 역시 일면적인데, 다수파의 당직공직 독점의 근본적 원인은 수권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있기 때문이다. 평등파 일부의 ‘탈 민주노총’ 주장도 수권정당 지향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분당 과정에서 ‘탈 민주노총’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사회운동적 노조로의 혁신이라는 쟁점, 수권정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의 혁신이라는 쟁점은 토론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을 장악한 민족해방 계열은 ‘자주적 민주정부론’에 입각하여 2011년 당 강령을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교체한 뒤 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와 통합진보당을 결성하고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전면 제휴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공직 선출을 둘러싼 부정부패와 정파간 갈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경험한 뒤 다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으로 분열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대폭 우경화하고 도덕적 정당성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점에서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은 2012년의 위기를 정파 생존의 위기로 인식하며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이들은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을 재확인하고 2017년 집권을 목표로 설정하고 민주당과의 정치적 제휴와 대중조직의 장악을 추진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서 탈당한 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민족해방 계열 일부는 (진보)정의당을 결성하여 중도로 변모하는 중이다.
2007-2012년 민주노동당 분열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지도력이 붕괴하는 상황으로 치닫기까지,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하여 정당과 노조 내외부의 민중운동 좌파 세력은 정세에 개입할 몇 번의 계기가 있었지만, 원칙적 태도로 정세적 입장을 환원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또는 정세적 개입을 시도하더라도 그 실력 부족으로 인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2012년 대선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민중운동 진영이 독자적이면서 통합적인 기획을 통해 대선 이후 질서재편을 위한 합의를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민주노총의 부동주의와 좌파 세력의 의지주의로 인해 끝내 공동 대응이 무산되었다.
요컨대, 2007-2012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해체로 1990년대 이후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진보정당 결성 시도와 사회경제적 노동자운동의 정치세력화 시도 모두가 하나의 순환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세력화의 실패로 인해 2000년대 들어 만성화된 민주노총의 위기가 한층 심화하고 있다. 정당/정파간 갈등이 대중조직의 통합력을 저해하고 진보정당에 대한 현장의 냉소와 불신이 증폭된 상황에서 단기적 실리주의에 따라 야권연대가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정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정파의 통합을 통해 민주노총의 갈등을 감축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는 결과에 대한 처방일 수는 있어도 원인에 대한 처방은 아니다.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순환을 준비한다는 각오로 노동조합 활동가든 정당 활동가든 ‘의식적으로’ 노동조합의 이념의 복구와 조직의 재건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 실패의 요인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내부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진보정당/노동자정당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또 그것을 추진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개방적이고 연대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현재 주력해야 할 것은 단기적인 선거 대응을 위한 정당/정파들 간의 조정이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 자체의 재활성화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1980년대 사회운동노조주의의 사례로서 전노협과 함께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브라질과 남아공 노총의 정치세력화가 집권 이후 코포러티즘으로 변질된 것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전략조직화
계급대표성의 위기는 지난 수년간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계급대표성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적 기초가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재벌 및 공공부문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중소영세사업장이나 서비스부문의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제기되어 왔다. 현재 신임 집행부는 3기 전략조직화의 방향과 관련하여 주로 기금 마련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략조직화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민주노총은 계급대표성의 위기를 조직화 사업으로 돌파하고자 시도했고 이는 민주노총의 강화발전에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이후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한국노총을 포함하더라도 10%에 미달한다. 낮은 노조 조직률에는 여러 제도적 요인이 있겠지만, 노동력의 평가절하에 기초한 수출경쟁력 확보를 성장 전략으로 추구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이야말로 노조 조직화와 투쟁을 억압하는 핵심 요인이다. (그동안 독일과 같은 중상주의적 ‘제국주의’에서 제도화된 코포러티즘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많았는데, 그것이 왜 남한에서 불가능했는지를 이런 맥락에서 반추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인 자동차전자철강조선 등 업종에서 자동차를 제외하면 사실상 재벌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업종 전체의 무노조 정책이 관철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최근 수년간 전략조직화의 성과는 주로 (공공)서비스 부문에 집중되었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서 국내에서 전략조직화의 사례로 많은 참고점이 된 미국노총의 시도를 살펴보며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해 보겠다. 1970년대 구조적 위기 이후 금융세계화노동유연화에 따라 생산성임금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미국노총은 생산적 산업노동자의 조직화에서 비생산적 서비스노동자의 조직화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자동차노조철강노조광산노조통신노조 대신 서비스노조교사노조공무원노조가 새로운 핵심 노조로 부상했다.
산업노동자와 서비스노동자의 차이는 생산적 노동자인가 아닌가라는 측면 외에도 금융세계화의 영향을 받는가 아닌가라는 측면에 있다. 제조업은 무노조저임금의 외국으로 이동한 반면 서비스부문은 ‘육봉’(陸封, landlocked)되어 있다. 서비스부문 노조가 단체협상에서 일정한 전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특징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5년 서비스노조(SEIU) 위원장 출신인 스위니가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사회운동노조’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는 직능이나 산업을 불문하고 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하는 동시에 다양한 노조를 흡수통합하여 거대노조를 형성하는 것을 주로 의미했다.
그러나 서비스노동자의 일반노조 조직화가 미국노총의 오랜 ‘전통’인 비즈니스노조의 청산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2005년 미국노총이 서비스노조가 중심이 된 승리를위한변화(CtW)라는 제2노총(위원장 스턴)과 분열했다. 당시 스위니에 대한 스턴의 비판의 핵심은 민주당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대신 일반노조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노총이 분할된 결과 제1노총(AFL-CIO)과 제2노총(CtW) 사이에 일정한 산업부문적인 분할이 존재하게 되었다. 생산 및 분배수단에 기초하지 않는 노동자운동이 힘을 가질 수는 없다. 제2노총 소속 SEIU는 ‘관료적 비즈니스노조주의’와 ‘민주적 사회운동노조주의’와 구별되는 ‘관료적 법인기업노조주의’(corporate union)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결론적으로 미국노총의 사회운동노조 개혁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었다. 비즈니스노조의 청산과 사회운동노조로의 쇄신은 사실 조직이 아니라 이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차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구상함에 있어서 두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조직화 대상의 변경이 필요하고 다음으로 조직화의 목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전자와 관련하여 특히 금융세계화와 수출-재벌 체제의 핵심고리를 타격할 수 있는 업종 및 공단 조직화가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후자와 관련하여 맹목적이고 성과중심적인 조직화를 지양하고 노동자를 운동의 주체로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신규 노조 조직화 과정에서, 정파 구도에 따른 조직화 경쟁과 관할권 분쟁 사례가 빈번하고, 또 정부·지자체의 보조금을 활용하여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보는 것이 능사라는 실용주의와 우경화가 만연한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맺음말
우리는 개막식의 시작과 끝을 각각 ‘임을 위한 행진곡’과 ‘인터내셔널가’로 장식했다. 이 두 곡으로 행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경우는 일 년에 한 번, 즉 노동절이다. 잘 알다시피 두 곡의 배경은 1980년 광주항쟁과 1871년 파리 코뮌이다. 광주와 파리의 항쟁은 착취와 억압에 대한 봉기였지만, 그러나 ‘패배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투쟁해야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항쟁에 참가하지 못했던 ‘관객/구경꾼’들도 당시의 비극을 반추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배우/행위자’들로 변화할 수 있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518 추모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가 논란이 되고 전두환·노태우의 추징금 문제가 이슈화 되었지만, 이미 1997년 대선 직후 IMF 위기 속에서 김대중 당선자가 국민대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전·노를 사면한 것에서 오늘의 희비극이 예고되었던 셈이다. 광주가 화석화되고 박제화된 것이 노동자운동의 침체에 기인한 것이라면 노동자운동의 부활이 광주를 새롭게 재현하는 길일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재건하고 조직을 강화해야 할 과제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평화주의로서 국제주의
우리가 살고 있는 2010년대는 훗날 1930년대 대불황에 비견되는 대침체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2007-2009년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미국의 ‘플랜 A’는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제로금리정책수량완화정책오퍼레이션트위스트)과 재무부의 재정정책(부실자산구제계획적자재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대응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과 노동시장이 회복되지 않자 ‘플랜 B’가 적극 동원되고 있다. 그 핵심은 2011년 선언한 ‘태평양으로의 선회’에 따른 범태평양파트너십(TPP)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FTAAP) 구상이다. 오바마 정부는 TPP 협상을 2013년까지 완료하고 FTAAP 협상은 2010년대에 완료한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대한 재관여재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북한이란 등이 ‘세계적 공유지’인 황해남중국해인도양페르시아만에서 미군의 작전을 방해한다는 인식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합동작전접근개념’, 즉 ‘해상공중전’ 개념을 제시했다. 여기서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에게 좋은 빌미가 되고 있는데, 미국은 역내 안정과 동맹국에 대한 안전 보장을 이유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재편을 적극 추진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심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또다시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상반기 첨예하게 고조된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남한 노동자운동의 주류적 이념은 민족주의였다. 반제국주의민족자결민족공조에 입각한 북한의 선군정치핵자위론 옹호가 주류적 대응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남한의 정치 상황에 대해 갖는 함의는 통합진보당의 자주적 민주정부론, 즉 야권연대를 통한 연립정부 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1-2012년 일련의 통합진보당 사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당시 한미동맹의 대북 위협과 함께 북한의 핵무장과 이를 옹호하는 입장에 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첫째,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의 핵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계속해서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군비경쟁의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 넷째, 남한에서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심지어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핵무기 반대’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유실할 위험이 크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한미동맹의 확장억지 강화,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방적 군비축소’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와 같은 군사동맹 폐기 또한 지향해야 한다.
그럼 이상의 정세적 비판을 이론적으로 보충해 보겠다. 레닌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 전쟁론의 전통에서 전쟁은 혁명의 조건으로 사고되었다. ‘제국주의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시키자’는 레닌의 구호는 제국주의적 전쟁을 계기로 출현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경제적 토대와 대중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해후를 통해 제국주의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적 전쟁을 계기로 출현하는 국가자본주의적 경향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경제적 토대가 되고, 제국주의적 전쟁에 연루되는 대중이 민족자결주의로서 국제주의를 포함하는 다양한 민주주의적 요구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계급혁명과 민족해방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레닌의 전쟁론은 냉전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의 종전이자 냉전의 시작을 알린 것은 미국의 대일 핵공격이었고, 뒤이은 냉전 하에서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미소간의 군비 경쟁은 인류의 절멸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국주의적 전쟁이라는 ‘불의의 전쟁’과 혁명적 내전이라는 ‘정의의 전쟁’을 구별하는 대신 평화라는 이상이념에 따라 ‘일방적 군비 축소’와 ‘군사동맹 폐기’라는 구호를 채택해야 한다. 이러한 적극적능동적 평화주의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에 대한 비판을 경제적 착취와 이데올로기적 억압이라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비판과 결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국제주의는 민족자결이 아니라 평화주의이며 나아가 평화주의는 대안세계를 향한 가장 중요한 이념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제 ‘혁명의 조건으로서 전쟁’이라는 관점을 ‘평화의 조건으로서 혁명’이라는 관점으로 전도해야 한다.
이상 정치군사정세와 관련하여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제기된 민족주의 비판을 확대해보겠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현 정세에서 민족주의 비판이 필요한 이유는 세계화와 그것의 위기에 대한 반동으로서 종족적 민족주의 또는 인종주의가 발호하기 때문이다. 가령 유럽에서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신자유주의적 반격 속에서 복지국가도 쇠퇴했다. 이로 인한 ‘사회적 권리’의 해체가 불평등과 배제의 심화로 이어지면서 대중적 불만이 고조되고 그것이 좌우를 막론한 기존 정치계급에 대한 불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하에서 배타적인 동일성의 감정이나 원한을 동원하는 극우 세력의 정치적 약진은 파시즘의 부활에 대한 우려까지 낳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는 현재 그리스의 신나치주의 황금새벽당을 들 수 있다. 그럼 종족적 민족주의와 관련된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현실적 쟁점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재외동포를 민족으로 간주하는 데서 드러나는 종족적 민족주의다. ‘동포’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일상에서 통용되는 민족주의 관념은 실은 다분히 종족적인 관념을 내포한다. 본래 ‘동포’(同胞)란 ‘한 어머니의 소생’을 뜻하는 말로, 혈연의식과 민족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통상적으로, 외국국적자(시민권자)에 다르지 않은 이들을 민족으로 부르는 반면 이주노동자를 민족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012년 총대선부터 재외국민(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반면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이나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 2011년 시행된 정부의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어보면, 현재 국내에 거주하면서 F-4비자(재외동포비자) 자격이 없는 미등록 재외동포(대부분 중국동포)가 신청자격을 획득하게 되고 신청시 D-4비자(일반연수비자)를 받게 된다. 9개월 간 재외동포기술교육지원단에 의한 직업교육을 받고 나면 이들은 H-2비자(방문취업비자)로 비자를 바꿀 수 있게 되고 현재 방문취업제 하에서 재외동포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36개 업종에서 4년 10개월 동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 ‘동포’에 대한 ‘편애’를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를 비동포 이주노동자와 정주 시민(및 선진국 재외동포)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등 시민으로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위계구조의 제도화는 노동자계급 사이의 분열을 심화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사고한다면 과거지향적 측면보다도 미래지향적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즉 민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운명을 공유하는 사람들 또는 현재로서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주노동자가 우리와 운명을 공유하고 현재로서 역사를 공유하는 시민이라면, ‘민족’인 것이다.
두 번째로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서 출산장려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보겠다. 사실 종족적 민족주의의 핵심에는 확대된 가족으로서 종족이라는 관념이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가족 비판이 종족적 민족주의 비판에도 적합하다. 출산제한 또는 출산장려 같은 가족정책인구정책은 성욕과 재생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가부장제적으로 통제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에 대해 정부는 각종 출산장려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은연중에 이주노동자나 혼혈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셈이다.
민족주의인종주의의 부활에 대한 대안은 ‘또 다른 세계화’ 즉 대안세계화 또는 대안지역화일 수밖에 없다. 가령 유럽연합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의 단계를 지나 제도위기로 진입하고 있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연합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제도적 기초를 변형하기 위한 경제정책과 세력관계의 역전이 필요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남한의 수출-재벌 중심 세계화나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안으로서 국가간 노동표준을 통일시키거나 상승시키기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 임금 격차 축소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제고를 핵심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증가율 둔화가 가속화되고 고용률 상승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제고를 위해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매우 긴요한 정책과제이며,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장시간 노동체제 개선’을 위한 임금체계 및 교대제 개편과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 대책이 적극 제시되고 있다. 1998년 이후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이 고용량·고용형태의 유연화를 거쳐 임금 및 노동시간 유연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조만간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실은 소책자를 발간할 예정인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해보겠다.
신보수주의가 직접적인 방식, 즉 대량실업을 통해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하는 데 반해 신자유주의는 간접적인 방식, 즉 ‘실업의 조직화’를 통해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한다. 임금 및 고용의 유연화를 위한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효율성 임금, 노동연계복지(workfare)가 추진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외부적수량적 노동유연화로서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으로서 ‘내부적기능적 유연화로서 비정규직화’를 포함한다. 어쨌든 ‘일자리 나누기’라는 개념 자체가 고용형태의 유연화와 함께 노동시간 및 임금의 유연화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는 경제위기외환위기의 충격을 배경으로 1998-2003년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 이름하여 ‘3제’의 도입으로 일단락되었다. 그 과정을 잠시 환기해보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후속하는 1989년 노동법 개정 투쟁의 성과로 쟁취된 44시간 노동주에 반하여 자본가계급은 1990년대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의 도입을 줄곧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1996-1997년 노동법 개악 총파업으로 3제의 도입을 얼마간 저지하지만,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민주노총전교조공무원노조의 합법화 및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과 3제를 교환했다. 그리고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주5일 근무제에 따른 40시간 노동주가 도입되는 대신 변형근로제가 확대되었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경제위기 속에서 대량실업에 직면한 각국 정부는 고용 유지창출을 위한 각종 경기부양책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했다. 특히 유럽에서는 노사정협정 또는 노사협약을 통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토대로 사측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노조가 임금 동결삭감 같은 양보교섭을 수용하는 코포러티즘이 특징적이다. 경제위기에서 민주노총은 총고용 보장을 핵심목표로 설정하면서 노동시간 단축과 공공부문 고용창출에 덧붙여 고용안정특별법과 고용안정협약을 핵심 요구로 제기했다. 이 중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위기에서 ‘일자리 나누기’라는 정세적 대안이자 ‘장시간 노동체제의 해체를 통한 국민병 치유’, ‘무제한적 노동을 넘어선 노동해방’, ‘질 좋은 노동시간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략적 과제로 승격되는 듯 보인다.
먼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비판해보자. 1998-2003년 당시 민주노총의 요구가 법정노동시간 단축이었던 데 반해 현재의 요구가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과거와 마찬가지로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것이라는 부당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대개 노동강도 상승으로 대체되는데, 이때 그에 비례해서 임금이 증가하지 않으면 사실상 임금을 하락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게다가 노동강도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이 양적질적으로 고용 창출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보장도 없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역사적으로도 1990년대 유럽(독일·프랑스)의 노동시간 단축 경험은 변형근로제를 동반한 노동주노동년 단축이 오히려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통계상으로도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만일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의 상관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이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노동유연화의 결과 우리 사회에는 노동시장노동과정노동력재생산에서 공히 불안전이 확대되어 전반적인 고용의 질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산업구조로 보면 ‘서비스화’가 진척되지만 1990년대 이후 고용 창출을 주도한 서비스업종은 음식료도소매숙박업과 같은 기술수준이 낮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서, 전체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여타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최하위 수준이다. 정부 당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 부진이 지속되면 취업자수 증가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줄어들고 고용창출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고용창출로 인한 실질구매력 증대효과가 크지 않아 고용창출이 내수진작을 통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현실적으로도 ‘법정근로시간단축으로 실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시간당 임금이 증가하였다’는 긍정적인 통계 지표의 이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과 장시간 노동 관행이라는 부정적인 현상이 공존한다. 법정근로시간단축은 초과노동 사용을 억제할 유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런데 노동력 가치로 지불되는 임금은 주어진 임금제도 내에서 노사간 교섭(력)에 의해 결정되고 임금체계에 따라 변동한다. 현실에서 사용자는 초과노동을 이용하더라도 총액급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당 정액급여를 낮게 조정하여 지불하고, 또한 준고용비용이 높은 노동자의 초과노동을 이용함으로써 추가고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노동비용 증대를 방지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고용된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신규고용과의 대체를 억제하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임금총액 대비 현저하게 낮은 기본급 수준이 초과노동의 결정적 유인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장시간 노동체제 근절’이라는 기조를 비판해보자. 민주노총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노동거부’나 ‘일중독 비판’과 같은 아나키즘 또는 문화주의를 하나의 이론적 원천으로 삼고 있다. 이상은 그 실행 방안이 묘연하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장시간 노동체제의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이나 임금보전 욕구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조장하거나 노동자운동을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금속노조에서는 노동시간계좌제와 같은 수단을 고용조정의 유력한 대안으로 소개한 적도 있는데, 독일의 사례에서 노동시간계좌제는 ‘외부적’ 유연화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국가와 자본이 선택하는 ‘내부적’ 유연화 기제로서 물량 변동에 따른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극대화하여 집단 노동자의 개별화를 야기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체제’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보편성, 즉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결합하는 임금률의 작용에 대한 분석과 함께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압력 속에서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 즉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 전략과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하청계열화에 대한 분석이 결합되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마르크스의 임금론노조론과 남한의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보편성으로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보자. 임금노동자에 의해 창출된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영유하는 착취의 메커니즘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생산의 동기는 자본가의 무한한 이윤 증식 욕구에 있다. 따라서 자본가는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 즉 부불노동시간의 생산을 위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노동년·노동일을 연장하거나 노동자수를 증가시킴으로써 부가가치를 증가시켜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법’과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토대로 노동력가치를 감소시킴으로써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법’을 결합한다. 전자가 노동시간의 ‘외연적 연장’이라면 후자는 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논의는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에 대한 논의와 결합되지 않으면 공허할 뿐이다. 생산과정의 기계화와 자동화, 그리고 노동력 활용방법의 끊임없는 ‘합리화’는 노동강도 강화, 마르크스식으로 말해서 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에 크게 기여했다. 테일러주의에서 최근의 도요타주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자연시간에 대한 기계들의 전체주의적 지배는 산 노동의 ‘죽은’ 시간을 지속적으로 제거해온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고정자본의 엄청난 증가는 노동강도를 비례적으로 상승시켰다. 또한 1980년대 이후 기업들이 생산 증대보다 생산성 및 노동강도 증가를 목표로 두게 되면서 ‘노동절약’ 기술들에 대한 투자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방금 이야기를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보겠다.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을 절약하고 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노동을 절약하는 대신 고정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따라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보편적 법칙이므로, 이에 대한 반작용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고정자본의 소비를 효율화하는 현대적인 ‘관리자 혁명’이다. 이는 곧 노동강도를 강화함으로써 고정자본의 소비를 효율화하는 방법으로서,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해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 결합된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통일시키는 경제적 방법이 바로 기계제대공업이 발명하는 새로운 임금지불 방법으로서 시간급과 (시간급을 변형한) 성과급이다. 시간급 체계에서 자본가는 직접적으로는 표준시간급 하방 압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노동자간 경쟁, 즉 취업자와 실업자간 경쟁을 활용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정한 임금을 수취해야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장시간 노동을 강제한다. 시간급은 잔업과 특근 같은 초과노동이나 교대제를 통한 노동자 수의 증가를 통해서 노동시간을 외연적으로 연장한다. 성과급 체계에서 자본가는 직접적으로는 표준성과급 하방 압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노동자간 경쟁, 즉 취업자간 경쟁을 활용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정한 임금을 수취해야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고강도 노동을 강제한다. 성과급은 노동강도의 상승을 통해서 노동시간을 내포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본질로 한다. 이상 마르크스의 임금론은 곧 노조론으로 연결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다음으로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으로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보자. 1997-1998년 위기는 1990년대 재벌의 과잉 중복 투자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환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자본축적률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매우 낮은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윤율 하락이라는 요인 외에도 ▲해외 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실물자산이 아닌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기업결합(M&A) 중심의 투자행태 ▲199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배당금의 증가와 같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경제의 불안정성 증가에 따른 실물투자의 기피 현상 등이 실물투자를 구조적으로 위축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한국 경제는 금융자유화를 통해 국외로부터 막대한 자본을 수입하게 되었지만,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자본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 및 국부유출이라는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라는 문제를 낳았다. 또 구조조정과 평가절하를 통해 한국경제는 수출경쟁력을 회복하여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는 수출-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했다.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경제가 성장과 고용창출력이 저하된 가운데 높은 대외의존도로 외부충격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서비스산업 개방 및 선진화를 추진했다.
결국 지배계급의 입장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한국경제의 유일한 활로가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여전히 기술경쟁력보다 저임금 기반 가격경쟁력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수출경쟁요인 분석 결과, 한국은 아직 세계 시장에서 확실하게 품질경쟁을 하는 품목의 비중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세계시장에서 아직까지 확실하게 품질의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치열하게 경쟁국 상품과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제조업은 여전히 범용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 등 후발개도국의 추격에 취약한 동시에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도 여전히 존재하여 신흥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점차 수출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샌드위치론’ 또는 ‘넛 크래커(nut-cracker)론’이 틈만 나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대내적 측면에서는, 1997-1998년 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수출-재벌이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위계적 하청계열화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자동차 가치사슬에서는 내부생산을 축소외부화하고 연구개발기획과 판매마케팅 부문을 강화하는 완성차기업을 정점으로, 중간관리 모듈기업(생산관리기업, 하위모듈기업)과 하위부품기업(전문부품기업, 하위납품기업)이 중층적이면서도 종속적인 위계관계로 연결되는 가치사슬구조가 구축되었다. 이러한 ‘종속적 모듈 가치사슬’에서 완성차기업은 생산을 축소외부화함에도 불구하고 하위부품기업들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유지한다. 기업 위계의 상위로 잉여가치 이전이 강조되는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기업 간 긴밀한 신뢰구축을 통한 동반발전효과는 줄어들고 일방적인 수익이전과 비용전가 구조만이 강화된다. 산업의 성과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사슬의 상위위계로만 집중되고 위계의 하위로 갈수록 그 조건이 열악해지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원청 대자본의 부담 전가, 특히 경제위기 시기의 부담 전가 경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기업 내 부담 전가 경로로서 1차 사내하청 노동(고용)에서부터 시작해서 원청 대자본의 정규직 노동(임금)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에는 1차적으로 대공장내 사내하청 노동에 대해서는 고용을, 정규직 노동에게는 임금을 매개로 부담 전가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 경로는 기업 외부, 즉 외주 하청구조를 통해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로서, 이를 구현하는 수단은 물량과 단가다. 물량과 단가 삭감을 통해 외주 하청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이는 또다시 외주하청 업체 내 파견사업체 및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 경제위기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임시직의 고용과 노동시간의 변동을 통해 흡수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특히 초과노동시간의 증감에 따른 소득 증감이 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상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이윤율 하락에 따른 위기는 자본의 과잉과 노동의 과잉, 즉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전화로 전개된다. 1997-1998년 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이윤율 하락→자본축적률 저하→구조적 실업률의 상승→(교섭력의 약화)→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가 관찰된다. 1998-2003년 ‘3제’의 도입을 통한 노동유연화는 노동시간 및 임금의 개별화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노동의 위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 내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노동조합의 대표성이 취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원하청노동자간 경쟁, 나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경쟁을 특징짓는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연대임금이 대안적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작년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재벌체제에 대한 노동자 단결’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였듯이, ‘장시간 노동체제’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정액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단결’ 프레임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앞서 잠시 뒤로 미뤄뒀던 노동조합의 의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라는 자본의 전제적 침략을 막고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인상, 노동일 단축, 노동조건 개선 투쟁과 같은 경제투쟁(방어적 계급투쟁)을 펼치게 된다. 노동자-자본가 간의 임금투쟁이라는 일종의 ‘관습’ 또는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계급투쟁의 역사적 제도가 임금을 결정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노조의 경제투쟁에 따라 임금률이 비례적으로 상승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경제투쟁의 최선의 결과는 현상 유지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하듯이 경제투쟁은 임금제도라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에 노조가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최종적 해방, 즉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총체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진정한 결과는 [임금률의 인상이라는] 직접적 성과가 아니라 점차 확대되는 그들의 단결이다’라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문구를 상기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임금노동 제도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정치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멀게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이탈리아 평의회노조 운동의 전통에서 나타나고, 가깝게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한국 전노협 운동의 전통에서 나타났던 연대임금 또는 정액임금 인상 운동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 축소와 단결을 위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현재 논의 지형이 ‘장시간 노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면 과제는 다음과 같다. 원론적으로는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를 동반하지 않는 법정 노동일 단축이 대안이겠지만, 현재의 계급역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불가능하다. 일단 논리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 시 임금 삭감,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유연화를 동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조로 대응해야 한다. 과거의 사례나 지금의 역관계를 감안할 때, 민주노총이 노동시간 단축 그 자체를 궁극적 목표로 상정할 경우 정부와 자본이 의도하는 노동유연화 기제와 맞바꾸는 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논리다. 현실적으로는 정부의 유연근무제 확대 방안, 즉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비판하는 투쟁을 펼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근로시간특례제도 폐지, 포괄임금제 금지 등 법제도적 개선을 요구하고, 미시적으로는 교대제 개편 방안에 관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임금 유연화 대응 기조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마르크스의 임금론-노조론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면,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노사간의 역관계 또는 노동조합이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케인즈의 경우 이렇게 임금이 제도적으로 결정되는 것을 ‘경직성’이라고 부르는데, 임금의 경직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연공서열급이다. 연공서열을 포함해서 임금이 경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노동생산성이 개별노동자가 아니라 집단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의 성과로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는 ‘생산성임금’이 실현되고 임금분배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생산성임금을 역전시키는 것이 바로 효율성임금으로서, 이는 임금의 개별화를 통해서 노동자간 경쟁을 격화시키고 개별화된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키려는 의도를 지닌다. 아직 생산직에서는 연봉제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럴 경우 일단 연공서열을 비롯한 경직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비정규직이나 실업자의 문제를 고려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취업자와 실업자의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연대임금을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총 정치적조직적 과제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취임한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가 노동자운동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방안으로 연합정당론과 전략조직화를 제시하고 있다. 둘 다 민주노총이 풀어야 할 중차대한 과제이므로 아래에서는 몇 가지 쟁점을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치세력화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는 ‘진보정당의 분열로 인한 갈등이 첨예화돼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공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 하에 ‘분열된 진보정당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연합정당으로 재편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연합정당론은 노동정치연석회의의 진보정당연합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석회의는 ‘자신의 조직적 정치적 독자성을 존중하면서 재편과 재정립의 방향을 모색한다’는 맥락에서 정당연합 또는 정치연합 방안을 제기하고 있다(“기존의 진보정의당, 진보신당[노동당], 녹색당, 노동 추진기구 등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그 조직들의 협의로 연합정당을 운영하자”). 이들은 현재 서구에서 나타나는 좌파정당 통합 흐름, 특히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이나 프랑스의 좌파전선의 사례를 모델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리스와 프랑스 좌파의 사례에서 정당연합과 선거연합의 성공은 경제위기 하 대중운동의 분출과 기존 정당의 위기라는 정세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정당연합과 선거연합 문제는 하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게다가 국외 사례를 국내에서 참고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차이와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진보연합정당 구상에서 한국의 선거법과 정당법 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현행 선거법과 정당법이 이중당적을 금지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연합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당법상 효력을 가지는 연합정당의 경우(정당연합)와 정당법상의 효력이 없는 경우(정치연합)일 것이다. 이러한 법제도적 고려 외에도 그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제휴 대상의 범위, 선거구/후보 조정 등을 둘러싼 진통이 예상된다.
어쨌든 정당의 분열이 민주노총의 분열로 연결되어서는 안 되며 현존하는 진보정당이나 당면한 선거에 대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합정당론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2012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해체가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 순환이 극적으로 종료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보다 긴 호흡과 큰 틀에서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단과 냉전으로 인한 반공발전주의 속에서 지속적으로 억압된 남한 노동자운동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항거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맹아기와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정파운동의 각성기를 거쳐 1985년 구로동맹파업과 1987-1989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발전, 1990년 전노협의 결성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동시에 1989-1991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이념의 혼란 속에서, 1991-1992년 합법정당 결성을 주장하는 신노선이 제기된다. 이와 동시에 ‘노동운동 위기론’을 기화로 진보적 조합주의가 제기되었고, 1993년 전노대가 결성되면서 전노협이 상대화된다. 결국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모토로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다. 민주노총은 1996-1997년 총파업을 통해 노동법 개악을 얼마간 저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외환위기경제위기 속에서 1998년 사회적 합의를 통해 3제를 수용한다. 1990년대 노동자운동의 수세적 대응 속에서 출범한 민주노총이 출범하자마자 위기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1990년대 초반 진보정당 건설 운동을 주도하던 정파들의 영향력은 1996년 총선 이후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그런데 1996-1997년 총파업의 한계를 ‘국회의원의 부재’에서 찾은 민주노총이 1997년 대선 대응 이후 조직적 결의로 정치세력화를 추진하였고, 그 결과 2000년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적 토대 위에 정파들이 연합하는 형태로 민주노동당이 결성되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이념적 지향과 운동적 활력은 상당 부분 민주노총의 그것과 직결되는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만성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던 민주노총과 대조적으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의회에서 약진하였고. 급작스러운 성공의 이면에서 선거정치와 집권을 강조하는 수권정당론과 함께 민주노총으로부터 자립화하려는 ‘탈 민주노총’ 경향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직공직 선출을 둘러싼 정파간 갈등이 격화되었고, 결국 2007년 대선 패배를 계기로 분열했다.
대선 직후 ‘평등파’는 ‘자주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종북주의가 대선 패배 요인이라는 평등파의 주장은 오류로 볼 수밖에 없는데, 반공반북주의에 편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주파의 민족주의가 노동자 국제주의나 평화주의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적합하게 비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패권주의라는 비판 역시 일면적인데, 다수파의 당직공직 독점의 근본적 원인은 수권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있기 때문이다. 평등파 일부의 ‘탈 민주노총’ 주장도 수권정당 지향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분당 과정에서 ‘탈 민주노총’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사회운동적 노조로의 혁신이라는 쟁점, 수권정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의 혁신이라는 쟁점은 토론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을 장악한 민족해방 계열은 ‘자주적 민주정부론’에 입각하여 2011년 당 강령을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교체한 뒤 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와 통합진보당을 결성하고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전면 제휴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공직 선출을 둘러싼 부정부패와 정파간 갈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경험한 뒤 다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으로 분열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대폭 우경화하고 도덕적 정당성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점에서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은 2012년의 위기를 정파 생존의 위기로 인식하며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이들은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을 재확인하고 2017년 집권을 목표로 설정하고 민주당과의 정치적 제휴와 대중조직의 장악을 추진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서 탈당한 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민족해방 계열 일부는 (진보)정의당을 결성하여 중도로 변모하는 중이다.
2007-2012년 민주노동당 분열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지도력이 붕괴하는 상황으로 치닫기까지,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하여 정당과 노조 내외부의 민중운동 좌파 세력은 정세에 개입할 몇 번의 계기가 있었지만, 원칙적 태도로 정세적 입장을 환원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또는 정세적 개입을 시도하더라도 그 실력 부족으로 인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2012년 대선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민중운동 진영이 독자적이면서 통합적인 기획을 통해 대선 이후 질서재편을 위한 합의를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민주노총의 부동주의와 좌파 세력의 의지주의로 인해 끝내 공동 대응이 무산되었다.
요컨대, 2007-2012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해체로 1990년대 이후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진보정당 결성 시도와 사회경제적 노동자운동의 정치세력화 시도 모두가 하나의 순환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세력화의 실패로 인해 2000년대 들어 만성화된 민주노총의 위기가 한층 심화하고 있다. 정당/정파간 갈등이 대중조직의 통합력을 저해하고 진보정당에 대한 현장의 냉소와 불신이 증폭된 상황에서 단기적 실리주의에 따라 야권연대가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정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정파의 통합을 통해 민주노총의 갈등을 감축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는 결과에 대한 처방일 수는 있어도 원인에 대한 처방은 아니다.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순환을 준비한다는 각오로 노동조합 활동가든 정당 활동가든 ‘의식적으로’ 노동조합의 이념의 복구와 조직의 재건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 실패의 요인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내부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진보정당/노동자정당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또 그것을 추진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개방적이고 연대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현재 주력해야 할 것은 단기적인 선거 대응을 위한 정당/정파들 간의 조정이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 자체의 재활성화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1980년대 사회운동노조주의의 사례로서 전노협과 함께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브라질과 남아공 노총의 정치세력화가 집권 이후 코포러티즘으로 변질된 것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전략조직화
계급대표성의 위기는 지난 수년간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계급대표성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적 기초가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재벌 및 공공부문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중소영세사업장이나 서비스부문의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제기되어 왔다. 현재 신임 집행부는 3기 전략조직화의 방향과 관련하여 주로 기금 마련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략조직화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민주노총은 계급대표성의 위기를 조직화 사업으로 돌파하고자 시도했고 이는 민주노총의 강화발전에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이후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한국노총을 포함하더라도 10%에 미달한다. 낮은 노조 조직률에는 여러 제도적 요인이 있겠지만, 노동력의 평가절하에 기초한 수출경쟁력 확보를 성장 전략으로 추구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이야말로 노조 조직화와 투쟁을 억압하는 핵심 요인이다. (그동안 독일과 같은 중상주의적 ‘제국주의’에서 제도화된 코포러티즘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많았는데, 그것이 왜 남한에서 불가능했는지를 이런 맥락에서 반추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인 자동차전자철강조선 등 업종에서 자동차를 제외하면 사실상 재벌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업종 전체의 무노조 정책이 관철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최근 수년간 전략조직화의 성과는 주로 (공공)서비스 부문에 집중되었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서 국내에서 전략조직화의 사례로 많은 참고점이 된 미국노총의 시도를 살펴보며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해 보겠다. 1970년대 구조적 위기 이후 금융세계화노동유연화에 따라 생산성임금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미국노총은 생산적 산업노동자의 조직화에서 비생산적 서비스노동자의 조직화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자동차노조철강노조광산노조통신노조 대신 서비스노조교사노조공무원노조가 새로운 핵심 노조로 부상했다.
산업노동자와 서비스노동자의 차이는 생산적 노동자인가 아닌가라는 측면 외에도 금융세계화의 영향을 받는가 아닌가라는 측면에 있다. 제조업은 무노조저임금의 외국으로 이동한 반면 서비스부문은 ‘육봉’(陸封, landlocked)되어 있다. 서비스부문 노조가 단체협상에서 일정한 전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특징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5년 서비스노조(SEIU) 위원장 출신인 스위니가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사회운동노조’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는 직능이나 산업을 불문하고 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하는 동시에 다양한 노조를 흡수통합하여 거대노조를 형성하는 것을 주로 의미했다.
그러나 서비스노동자의 일반노조 조직화가 미국노총의 오랜 ‘전통’인 비즈니스노조의 청산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2005년 미국노총이 서비스노조가 중심이 된 승리를위한변화(CtW)라는 제2노총(위원장 스턴)과 분열했다. 당시 스위니에 대한 스턴의 비판의 핵심은 민주당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대신 일반노조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노총이 분할된 결과 제1노총(AFL-CIO)과 제2노총(CtW) 사이에 일정한 산업부문적인 분할이 존재하게 되었다. 생산 및 분배수단에 기초하지 않는 노동자운동이 힘을 가질 수는 없다. 제2노총 소속 SEIU는 ‘관료적 비즈니스노조주의’와 ‘민주적 사회운동노조주의’와 구별되는 ‘관료적 법인기업노조주의’(corporate union)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결론적으로 미국노총의 사회운동노조 개혁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었다. 비즈니스노조의 청산과 사회운동노조로의 쇄신은 사실 조직이 아니라 이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차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구상함에 있어서 두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조직화 대상의 변경이 필요하고 다음으로 조직화의 목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전자와 관련하여 특히 금융세계화와 수출-재벌 체제의 핵심고리를 타격할 수 있는 업종 및 공단 조직화가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후자와 관련하여 맹목적이고 성과중심적인 조직화를 지양하고 노동자를 운동의 주체로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신규 노조 조직화 과정에서, 정파 구도에 따른 조직화 경쟁과 관할권 분쟁 사례가 빈번하고, 또 정부·지자체의 보조금을 활용하여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보는 것이 능사라는 실용주의와 우경화가 만연한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맺음말
우리는 개막식의 시작과 끝을 각각 ‘임을 위한 행진곡’과 ‘인터내셔널가’로 장식했다. 이 두 곡으로 행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경우는 일 년에 한 번, 즉 노동절이다. 잘 알다시피 두 곡의 배경은 1980년 광주항쟁과 1871년 파리 코뮌이다. 광주와 파리의 항쟁은 착취와 억압에 대한 봉기였지만, 그러나 ‘패배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투쟁해야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항쟁에 참가하지 못했던 ‘관객/구경꾼’들도 당시의 비극을 반추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배우/행위자’들로 변화할 수 있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518 추모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가 논란이 되고 전두환·노태우의 추징금 문제가 이슈화 되었지만, 이미 1997년 대선 직후 IMF 위기 속에서 김대중 당선자가 국민대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전·노를 사면한 것에서 오늘의 희비극이 예고되었던 셈이다. 광주가 화석화되고 박제화된 것이 노동자운동의 침체에 기인한 것이라면 노동자운동의 부활이 광주를 새롭게 재현하는 길일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재건하고 조직을 강화해야 할 과제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