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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3.겨울.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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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핵발전

김태훈 | 정책위원
석유에 의존하는 현재 에너지체제는 지속불가능하다. 자원의 절대량에 한계가 있고,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정치군사적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안에너지는 인류의 사활적 쟁점이 된다. 여기서 에너지 집약적 생산소비체제라는 자본주의 축적체계의 속성상 재생가능한 에너지가 상용화 되지 못한 채 핵발전의 확대가 지속적으로 시도된다. 그러나 핵 에너지는 고유한 위험성과 반민주성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구조적 위기를 만든다. 탈핵발전은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넘어 전면적인 생산관계의 변혁을 동시에 사고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에너지생산과 소비에 관한 중장기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권고안이 발표되었고, 올해 말까지 확정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는 에너지 수요 전망, 핵발전 설비 비중의 조정 등이 포함된다. 권고안의 내용은 핵발전 정책과 현재의 에너지 소비 체계가 그대로 유지될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한미원자력협정도 계속해서 개정 논의 중이다. 한국정부는 재처리권 확보를 통해 핵연료 사이클을 완성하고 이를 통해 핵발전소 수출국으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이 두 사안은 반핵운동의 중요한 의제이자 현재 한국 자본주의 체계의 모순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핵발전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인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민관 합동 워킹그룹의 권고안이 발표되었다. 그 내용은 에너지 정책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전환하고, 핵 발전 비중을 축소하는 등 일견 시민사회의 반핵여론을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의 선전과 달리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제대로 된 전환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그 전환이 에너지산업의 민영화나 에너지 불평등을 확대시킬 여지가 있다는 점도 문제다.

에너지기본법에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으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은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의 원칙과 기본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에너지원별, 부문별 에너지정책을 체계적으로 연계하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정하는 에너지정책 관련 최상위 계획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위상은 계속 변하였다. 에너지기본법이 발효되기 전에는 수십 개의 개별 에너지 법안의 내용이 난립해서 반영된 에너지기본계획이 있었을 뿐,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중장기 계획은 부재했었다. 2006년 에너지기본법을 제정하면서부터 에기본의 위상이 새롭게 정립된다. 정부가 에기본을 5년마다 20년 단위로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립, 시행하도록 한 것이다.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국무총리, 주요 관계부처 장관, 민간까지를 포괄하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 말 구성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난항을 거듭하면서 에너지기본계획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에너지정책에 대한 장기적통합적 비전을 제시하고, 에너지정책의 기본원칙을 천명’한다던 애초 취지는 무색해졌다.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그 해 6월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갑자기 에너지경제연구원 용역 결과 발표의 형식으로 국가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를 열었다. 그리고 일방적인 추진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8월에 제1차 에기본을 확정하였다. 이후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에너지기본법은 그 하위 법령인 에너지법으로 개정된다. 따라서 현재 제 2차 에기본의 법적 근거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41조 '에너지기본계획의 수립'이 된다.
이명박 정부의 작품인 저탄소 녹색성장의 본질은 핵발전 확대수출 정책과 4대강 사업에 대한 ‘녹색분칠’이었다. 게다가 2010년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기후변화의 주범인 석탄 화력발전은 변함없이 유지시킨 반면,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엘엔지(LNG) 화력발전은 축소하였다. 당진에 최초의 민간 석탄 화력발전소를 승인하기도 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제2차 에기본 수립을 위해 민관 워킹그룹을 만들어 권고안을 작성하였다. 워킹그룹에는 반핵운동에 참여하는 일부 시민단체 전문가들도 참여했는데, 정부는 이것을 전례 없이 성공적인 갈등 조정 사례이자 신에너지 정책의 큰 진일보라고 홍보했다. 일견, 이명박 정부 당시의 일방적 추진보다는 진전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와 논의한 권고안은 말 그대로 제2차 에기본에 대한 정책 권고로서, 강제성이 없다. 산자부 장관이 위원장인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실제로 계획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정부의 입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워킹그룹의 논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제출된 초안에도 이미 산자부의 입장이 많이 관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정부는 시민사회단체를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들러리로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절차적, 제도적 한계를 확인하면서 워킹그룹이 논의한 2차 에기본 권고안의 내용을 살펴보자.

‘핵발전 비중 축소’라는 꼼수

2차 에기본의 핵심 쟁점은 핵발전 계획이다. 워킹그룹은 2035년까지 원전비중을 22~29% 사이에서 결정하도록 권고했다. 현재 발전설비용량 대비 핵발전 비중은 26.4% 수준인데 향후 2차 에기본에서 이 비중은 늘거나 줄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1차 에기본에서 2030년까지 41%로 원전 비중을 늘리기로 했던 것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다수 언론에서는 2차 에기본의 ‘원전 비중 축소’를 강조하는 기사를 내보냈고, 이는 박근혜 정부가 시민사회의 반핵 여론을 반영해 탈핵발전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산자부가 공청회에서 핵발전 비중을 권고안의 범위 내에서 가급적 높은 수준으로 설정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현재보다 비중이 축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설사 지금보다 낮은 수준인 22%로 원전 비중 목표가 설정되더라도 신규 핵발전소가 건설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원전 비중 축소’라는 표현은 사실상 탈핵과는 무관한 2차 에기본의 본질을 은폐한다.
그럼 왜 신규 핵발전소가 건설되는 것일까? 필요한 핵발전소의 개수, 다시 말해 핵발전 설비용량은 전체 전력 수요에 원전비중을 곱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2035년 전체 전력 수요가 현재보다 80%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수요관리를 통해 증가율을 15% 낮춘다고 가정하더라도 2035년 필요한 핵발전 설비용량은 최소 28,700MW(비중이 22%일 때)에서 최대 38,700MW(비중이 29%일 때)가 된다. 현재 핵발전 설비용량이 20,716MW이므로 핵발전 설비는 최소 40% 이상 증가해야 한다. 핵발전소는 사실상 계속 추가 설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핵발전 비중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꼼수를 부린 것이다.

핵발전 안전성 제고 계획도 미흡

또한 핵발전의 안전성을 높이고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2차 에기본 권고안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권고안은 후쿠시마 사고에서와 같은 지진해일 등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대책을 세우고, 노후원전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안전성 관리를 강화하며 주요 점검 항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전반적으로 기존에 해오던 안전성 검사를 보다 확대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선 노후원전에 대한 수명연장을 전제로 안전성 검사만을 강화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문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가장 먼저 폭발한 1호기는 40년 된 노후원전이었다. 안전성 검사를 한지 한 달도 안 되어 쓰나미라는 천재지변에 의해 고장이 나면서 폭발을 했다. 나머지 2, 3, 4호기 역시 노후원전이었다. 안전성을 제고하려면 노후원전을 폐쇄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한다.
또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 현실에서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발전 산업 관련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공공적 운영체제의 수립이 핵심적인데, 이 부분도 담겨있지 않다. 비리나 사고 은폐는 한수원이 시장형 공기업으로 전환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한수원이 한전으로부터 분리, 시장형 공기업으로 전환되었다. 그로 인해 공기업이 주축인 핵 산업에도 수익성 위주의 경영이 이식되었고, 이명박 정부의 급격한 핵발전 확대수출 정책은 이러한 수익성 추구 경향을 극대화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건설플랜트 관련 민간 기업이 공사 수주 및 납품을 위한 부적절한 경쟁과 로비를 일삼게 된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납품단가를 낮추면서 불량 부품이 들어오고, 인건비를 줄이면서 안전한 운영도 위협받게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공기업-정부관료-전문가-민간플랜트기업 간 카르텔이 형성된다. 극도로 폐쇄적인 운영구조는 비리가 연관된 커넥션을 만들고, 핵발전의 안전성을 위협한다. 따라서 안전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핵발전을 담당하는 주요 공기업들이 수익성상업성 위주의 운영에서 탈피해야 한다. 공공성과 안전을 중심으로 민주적 운영체제를 수립하고 안전성의 측면에서 충분한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급확충에서 수요관리로?

2차 에기본 권고안은 수요관리를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권고안은 과거 정책이 저렴한 가격의 공급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정책 간 정합성 부재, 특히 유류와 전력의 가격 역전으로 말미암아 지난 10여 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전기소비 증가율을 시현했다고 분석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 가격을 인상하고, 친환경적인 LNG나 서민 난방용 등유의 과세를 완화하는 대신 유연탄과 핵발전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누진제 등 전기요금 체제 개편도 권고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공급계획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은 한국 자본주의 축적체계의 특성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면서도 에너지 다소비 산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1950년대 석탄을 개발하여 공업을 일으킨다는 경사생산전략은 석탄자급을 가능하게 했고, 1960년대 수출 주도 산업화 전략으로의 전환에 발맞춰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를 값싸고 풍부하게 공급하는 것만을 목표로 했다. 1970년대 석유 위기는 석유 중심 에너지 체제의 불안전성을 확인시켜줬지만, 중화학 공업화로 인해 석유의존도는 더욱 증가한다.
이에 에너지 안보라는 관점에서 에너지 수급에 대한 국외의존도, 특히 중동 석유라는 특정 에너지원과 공급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이 도입된다. 한국의 에너지 안보 정책 역시 공급 제일주의적 에너지 개발정책에서 비롯한다. 1974년에 수립된 ‘탈석유’와 ‘석유 비축’을 골자로 하는 장기에너지종합대책이 세워졌지만, 1차 석유위기가 진정되고 중화학 공업화가 가속화되자 석유의존도는 다시 증가한다. 2차 석유위기 직후인 1979년 석유위기대응기본계획, 장기에너지종합대책 등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핵발전소가 집중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다. 이후 1980년대에는 에너지 중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전력원으로서 핵발전의 비중도 커지게 된다. 한편 1979년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의해 에너지관리공단이 설립되고 처음으로 수요관리 정책이 도입된다. 그러나 수요관리 정책은 에너지 사용 자체를 줄이는 것보다 피크 부하를 분산시키는데 더 초점을 맞췄다.
이렇게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은 석유위기 이후 도입되었지만 수출 주도 산업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에너지 공급 정책의 위기관리 수단에 그쳤다. 핵 발전을 대폭 확대한 이명박 정부에서도 수요관리의 중요성은 부각되었는데,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은 에너지 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에너지 가격의 합리화, 에너지의 절약, 에너지 이용효율 제고 등 에너지 수요관리를 강화’ 할 것을 밝히고 있다.
수요관리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은 탈핵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2차 에기본의 수요관리 계획이 그러한 맥락으로 해석될 여지는 없다. 정부는 20년간 80%나 전력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의 에너지 집약적 생산체제를 변화시킬 계획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24.5% 정도(2010년 기준)만을 차지하는 ‘전력’ 수요증가 억제 계획만이 제시되어 있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의 개편이나 에너지 효율 기술을 전면 도입하는 것과 같은 전반적인 에너지체제의 전환이나 혁신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인상과 에너지 민영화

또 다른 문제는 수요관리의 세부 계획이 전기요금 인상에만 치우쳐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낮게 책정되어 있는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언급은 없어 전반적으로 전기요금이 오르면 주택용 전기요금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다. 한국의 전기 요금은 수출경쟁력을 명목으로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어 왔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택용의 67% 수준에 불과, 주택용 전기요금으로 산업용 전기를 보조해주고 있었던 셈이다. 2001년 이후 산업용 전기요금이 유류비용보다 낮아서 에너지원이 유류에서 전기로 바뀌는 ‘전력화’ 추세가 나타났다. 게다가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제조업 비중은 더 증가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기업은 특혜를 받는 반면, 민중은 에너지 빈곤으로 고통 받는다. 작년 한 해 동안 기업들이 원가 이하의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얻은 이득만 2조 5,660억 원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이 입어온 특혜는 값싼 요금만이 아니다. ‘산업체 조업조정’(휴가 분산)이라는 제도가 있다. 전력사용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기업이 공장 가동을 중지하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정부가 수요관리를 위해 기업들에게 지원한 금액은 총 2,573억 원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8%인 120만 가구는 가구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 구매에 지출하는 에너지 빈곤층이다. 고소득층은 여름철 냉방을 위한 전력 소비가 많지만 저소득층은 겨울철 난방을 위한 소비가 많다. 전기요금 인상은 빈곤층의 겨울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 것이다. 에너지에 대한 민중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2차 에기본 권고안의 또 다른 문제는 전력 민영화를 계속해서 추진할 계획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에너지 밀도를 분산시키기 위해 제시한 분산형 전원 확대 계획의 실 내용은 민자발전회사 육성과 지원이다. 분산형 전원 확대 계획에서는 포스코 사례를 모범 사례로 제시하면서 기술개발, 보조금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포스코는 민자발전 4대 메이저 회사 중 하나로, 민자발전회사 중 가장 높은 설비용량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전력 거래 과정에서 특혜 지원을 통해 고수익을 보장해주고 있고,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의 에너지 부담으로 돌아왔다. 분산형 전원 확대 계획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그 세부내용이 확정될 예정이지만 민자발전 회사에 대한 특혜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수요관리 계획 역시 시장과 민간을 중심으로 추진하는데, 수요감축량을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처럼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하는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해외 자원 개발에서도 민간 투자를 활성화 하겠다면서 공기업은 리스크가 높고 장기투자가 필요한 분야를 중점 추진하고, 시장성이 큰 분야는 민간 중심으로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 역시 에너지 관련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고, 현재 에너지 체제가 가지고 있는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한 구조를 확대할 것이다.


한미원자력협정: 핵무기와 핵발전

한미원자력협정은 1973년 발효되어 2014년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최근 2016년으로 만료시한을 연장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핵발전 연료의 이용에 관해 한국과 미국이 맺은 협정이다. 협정의 시초는 1956년이다. 아이젠하워가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이후 미국은 1955년부터 1958년 사이에 세계 39개국과 원자력협정을 맺는다. 이는 핵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다른 나라의 핵산업을 감시하고 통제함으로써 핵과 관련된 주도권을 놓지 않고, 다른 나라의 핵무기 제조를 막겠다는 의도를 지닌 것이었다. 1956년 협정의 정식명칭은 “원자력의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협력을 위한 협정”이었다. 이것이 1973년 “원자력의 민간이용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협력을 위한 협정”으로 대체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협정의 주요 쟁점은 핵연료 사이클 도입 여부

협정 개정 논의는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 한미 양국은 2008년 정상회담 공동선언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적극적으로 촉진하기로 합의”하면서 협력 원칙을 재확인하였고, 한미동맹에 있어서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분야에 있어서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 속에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진행되었는데, 양국 간 이견차가 좁혀지지 않아 협정 만료시한을 2016년으로 2년 연장한 뒤 협상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핵심적인 쟁점은 농축우라늄 생산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의 허용 여부 다. 농축재처리 기술을 도입하면 핵폭탄의 원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에 따라 금지되어 왔다. 한국은 원자로를 포함한 핵발전소 생산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핵발전을 위한 원료인 농축우라늄은 수입하고 있다. 또한 매년 100톤 이상 발생하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를 핵발전소 내 저장시설 내에 임시처분하고 있다. 직접 처분할 것인지 재처리해서 다시 핵연료로 사용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는 단계다.
농축재처리 기술을 확보하게 되면 핵연료 사이클 능력이 완성된다. 핵연료는 자연에서 채취한 천연 우라늄 광석을 화학적으로 처리가공하여 핵분열시키기 쉬운 우라늄235의 비율을 높이는 ‘농축’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핵연료는 3~4년 동안 핵분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면서 핵발전에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우라늄은 핵분열로 인해 다른 원소로 변한다. 핵분열 반응이 끝나도 사용후 핵연료는 다양한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며 많은 방사선과 붕괴열을 내보낸다. 이 열은 발전 중에 내보내는 열의 7% 수준인데도 3톤의 물을 1초 만에 끓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용후 핵연료를 10년 이상 수조에 넣어 냉각한 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분류해 직접처분하거나 다시 핵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재처리를 해야 한다. 재처리란 사용후 핵연료에 아직 남아있는 우라늄과 새롭게 생성된 플루토늄을 정제분리해 다시 핵연료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정상 농축우라늄보다 5배 이상 비용이 든다. 또한 이 때 분리된 순수한 플루토늄은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핵재처리를 하는 국가는 프랑스중국러시아영국인도 등 핵무기 보유 국가들이다. 일본만 예외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면서 재처리를 한다.

핵연료 사이클 도입, 어떻게 볼 것인가

핵연료 사이클 도입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이 공존한다. 핵주권론, 핵실용론, 반핵주기론, 탈핵론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핵주권론은 핵연료 사이클 능력의 즉각적 도입을 주장한다. 여기에서도 미래 핵무장 혹은 잠재적 핵능력을 확보할 것을 주장하는 입장과 핵무장을 거부하지만 핵확산금지 조약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불가양의 권리”에 따라 조건 없는 도입을 주장하는 입장으로 나눠진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핵 비확산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므로 한미동맹의 견실한 파트너로서 핵 비확산 모범국이자 핵발전 수출국이 되고자 하는 현 정부의 입장에 어긋난다.
핵실용론은 핵연료 사이클 능력 확보를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과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핵주권론과 구별된다. 실용적 관점에서 핵연료 구입을 위해 해외에 지불하는 4,000억 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고, 향후 핵발전소가 더 건설될 때 안정적으로 핵연료를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핵주기론은 핵발전은 인정하지만 핵연료 사이클 도입은 반대하거나 먼 미래의 과제로 미루자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는 △ 한미동맹의 관점에서 미국의 비확산정책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 △ 농축시장이 활성화되어 핵연료의 구입이 용이하고, 재처리는 경제성과 안정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 한국의 핵연료 사이클 도입이 핵무기 확산 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 △ 북한 비핵화 요구에 장애를 초래하고, 농축재처리시설 보유를 금지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반하게 된다는 점 등이다.
정부는 핵실용론과 반핵주기론을 절충하는 기술적 해법을 제시하는데, 파이로 건식처리 및 소듐고속로 기술을 확보하면 핵확산성이 적으면서도 핵연료 사이클을 도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핵무기 보유국의 재처리 방식은 습식처리로서 순수한 플루토늄이 생산되지만 파이로 건식처리는 습식방식과 달리 순수한 플루토늄이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핵확산성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방식도 핵확산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파이로 건식처리가 핵확산성이 실제로 적은지 공동 연구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연구 역시 미국에서 금지하고 있는 민감 기술로 분류되어 실제 공동 연구가 가능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른 문제점도 있다. 건식처리된 핵연료는 소듐고속증식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소듐고속증식로는 매우 위험하다. 핵반응이 더욱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물보다 더 냉각효과가 강한 액체 소듐을 사용하는데 이 소듐은 공기나 물과 닿으면 폭발한다. 냉각제가 누출되면 바로 폭발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핵발전소는 냉각제 누출사고가 매년 발생한다. 이러한 위험성으로 인해서 소듐고속증식로를 도입한 미국일본에서는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핵발전과 핵무기를 비판하는 관점에서는 건식처리 여부를 떠나 핵연료 사이클 도입을 원칙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핵연료 사이클 도입은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함으로써 핵발전소 수출을 확대하는 동시에 동아시아에서 핵무기 개발 연쇄를 낳을 수 있는 위험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고, 중국도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1-2년 안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 한국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시도는 각국의 핵경쟁을 부추길 것이다.

탈핵론의 관점

한편, 탈핵론의 관점에서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위험하고 경제성도 떨어지며, 처리방법이 없는 사용후 핵연료를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핵발전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다른 방법은 직접처리, 즉 고준위핵폐기물로 폐기하는 것인데 방사선이 방출되지 않게 되기까지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인류에게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만한 기술이 없다. 현재 어느 나라도 고준위핵폐기장을 건설하지 못했다. 핀란드가 최초로 건설 중인데, 경기도만한 크기의 천연암반에 지하 500~1000미터의 굴을 파고 이 안에 고준위핵폐기물을 저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역시 10만 년 이상 보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핀란드와 같은 천연암반이 없기 때문에 핵발전소 내에 임시저장소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임시저장소는 핵발전소 내에 핵연료를 냉각하기 위한 저장수조를 의미하는데 이 수조는 이미 포화상태이다. 월성 핵발전소의 경우 핵폐기물이 더 많이 나오는 중수로원자로이기 때문에 돔과 같은 건식저장소에 임시저장중이다. 저장수조가 포화된 뒤에 발전소 내에 돔을 만들어 건식저장을 할 수 있겠지만 길어도 수십 년 정도만 사용가능한 임시저장소를 10만 년 동안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또 다른 사고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재처리도, 직접처리도 위험성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용후 핵연료 문제는 핵발전소의 지속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화장실 없는 집’과 같은 핵발전소. 해법은 역시나 탈핵 밖에 없다.

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매달릴까

농축재처리 기술의 도입은 협상 상대인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 미국에서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와의 원자력협정에서 농축재처리 포기 약속을 확보하면서, 향후 다른 원자력협정에도 이를 적용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다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상황이다. 프랑스, 러시아 등 기술과 원료를 공급할 수 있는 다른 핵강국들로 인해 미국의 주도력과 영향력이 위축되는 상황이라지만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왜 정부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계속 시도하는 것일까. 아마도 재처리권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개정 시도를 통해 얻을 것이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위협을 빌미로 한미동맹은 호전적 재편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 4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한미동맹은 대북 선제 공격을 함의하는 ‘맞춤형 억제전략’을 공식화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좀 더 안정적이고 확대된 미국의 핵억제력을 요구하며 전작권 환수 시기 재연기를 주장하는 한편 미국은 한국의 MD 참여와 미국산 첨단무기 구입, 주한미군주둔비 분담금 증액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핵연료 재처리 허용을 포함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요구는 이를 둘러싼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에게 내밀 수 있는 중요한 카드다. 미국이 요구하는 군비증강 비용 부담의 조건으로 핵연료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인데, 재처리권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은 미국의 강력한 핵억제력 뿐만 아니라, 핵연료 사이클 도입 없이도 안정적인 핵발전소 수출이 가능하도록 국외 핵산업시장에서 양국의 협력강화를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결과로 귀결되든 핵 없는 세상을 향한 길과 정 반대라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볼 때, 한미원자력협정 비판은 농축재처리 기술 도입 반대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미원자력협정은 한미동맹의 호전적 재편을 위한 카드 중 하나라는 점에서 동아시아의 핵무장과 전쟁 위험을 높일 것이고, 생태와 평화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원자력협정 비판은 핵 위험, 전쟁 위험을 높이는 한미동맹 비판과 연결되어야 한다.


나가며

이 글에서는 한국의 핵발전 확대가 에너지 체제와 그것을 규정하는 한국의 자본주의 축적체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살핀 뒤 제2차 에기본의 쟁점을 검토하였다. 또 핵발전 확대가 한미동맹의 호전적 재편을 포함하는 국제 정치군사 정세와 긴밀히 연관된다는 사실을 한미원자력협정의 쟁점과 배경을 통해 살펴보았다.
정부가 이렇게 핵발전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밀어붙이고 있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핵발전의 위험성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있고,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과 노후원전 수명연장 반대 투쟁 등으로 핵발전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핵발전의 축소냐 확대냐의 기로에서, 이 글이 핵 없는 세계를 향한 민중의 투쟁을 확대 강화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주제어
평화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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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본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