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태의 교훈
지난 7월,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2011년 3월 사고 직후부터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방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11년 12월 일본의 사고수습 선언 이후 사그라들었던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다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오염수 유출 사실은 후쿠시마 사고가 아직 진행 중이며 통제 불능 상태라는 것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후쿠시마는 계속해서 핵발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다시 그 메시지를 곱씹어볼 때이다.
핵발전, 무엇이 문제인가
핵에 대한 기초 지식
핵발전의 문제는 그 원리에서부터 비롯된다. 우선 핵발전의 원리를 간단히 보고 넘어가자.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 자체는 보통 변하지 않아 그것이 구성하는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유지하는데, 이는 원자의 핵이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핵이 안정적인 이유는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핵력(nuclear power)이라고 부르는 매우 강한 힘으로 묶여 있기 때문인데, 과학자들은 우라늄 같이 무거운 원자는 어떤 상황에서 핵이 쪼개져 다른 원자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핵분열이라 이름 붙였다.
우라늄은 자연 상태에서도 핵분열이 가능하지만 잘 일어나지는 않는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인공적으로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일단 한 원자의 핵분열이 시작되면 거기에서 방출되는 중성자가 다시 다른 원자들의 핵분열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면서 엄청난 양의 핵에너지가 급격하게 방출된다. 이를 이용한 것이 바로 핵무기이다. 흑연이나 물 등의 감속재를 써서 핵분열 속도를 늦출 수도 있는데, 이에 따라 천천히 방출하는 핵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끓여 터빈을 돌려 전기에너지를 얻는 것이 바로 핵발전이다.
서로 뗄 수 없는 핵무기와 핵발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험은 핵무기가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전후 핵무기 감축이 인류의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핵무기와 핵발전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핵발전 기술은 핵무기 기술로부터 발전했다. 2차 세계전쟁 중에 핵무기 개발 계획에 적극 참여한 기업들(제너럴일렉트릭, 웨스팅하우스)이 실제로 미국의 상업용 원자로와 핵연료 개발을 주도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가압경수로는 핵잠수함용 원자로를 확대개량한 것이다.
기술의 뿌리만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핵발전 프로그램은 정부 주도의 군사적 목적과 분리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가 그러하다. 예를 들어, 1956년 최초로 상업발전을 시작한 영국의 콜더 홀 원자로는 사실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이 개발한 원자로(기체-흑연로)는 군사용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원자로를 가동하며 생산되는 전력은 부차적이었고 경제성도 떨어졌다. 핵무기 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현재도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있다.
처음에는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고 하다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한 국가들도 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가 그렇다. 이렇듯 핵발전은 전기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핵옵션의 유혹에 의해서도 유지된다.
최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시도를 보면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미국이 핵기술을 제공하면서도 한국의 핵무기 제조를 막기 위해 1956년에 맺은 협정인데, 박근혜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를 개정하고자 한다. 정부의 첫 번째 의도는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함으로써 핵발전소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재처리권을 갖는다는 것은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로 받아들인다. 정부는 순수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는 건식재처리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렇게 추출된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의 계속된 원자력협정 개정 시도는 인근 국가들의 핵개발 시도와 맞물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다.
친환경적 에너지라는 환상
핵발전은 화석연료 사용보다 온실가스를 덜 발생시켜 친환경적이라는 환상이 널리 퍼져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제기하는 일부 환경운동가들이 핵발전을 옹호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핵발전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에서 친환경적이지 않다.
첫째, 기존에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원과 크게 다르다. 핵에너지가 사용되기 전까지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는 거의 모두 태양에너지에서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생물자원, 풍력, 수력, 화석연료는 모두 태양에너지가 변형되고 축적된 결과다. 반면 핵에너지는 물질 자체의 내부구조를 인공적으로 변형시켜 생산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에너지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균형을 이뤄왔던 지구의 에너지 흐름 속에서 핵에너지가 새롭게 투입되는 것은 지구 에너지 총량의 인위적 증가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생태계 교란의 원인이 된다.
둘째, 핵발전은 기후변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핵발전소 운영 자체는 온실가스를 거의 발생시키지 않지만, 핵발전을 통한 전기 생산 과정 전체를 조망하면 그렇지 않다. 오로지 핵연료를 만들기 위해 진행되는 우라늄의 채굴과 정련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다량 발생한다. 또한 핵연료의 운반, 핵폐기물 저장이라는 각 단계에서도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셋째, 핵폐기물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은 사용후 핵연료를 고준위폐기물, 그 이외는 중저준위폐기물로 분류하는데, 중저준위폐기물은 300년 동안, 사용후 핵연료는 무려 10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한다. 이렇게 위험한 방사성 물질을 생산해내는 발전소를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넷째, 핵발전은 다른 발전원과 달리 한번 가동이 시작되면 멈출 수 없어 탄력성이 떨어지고, 이것이 전기 사용량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전체 에너지 소비수준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은 1980년대 핵발전소가 여러 기 건설되면서 전력예비율이 1976년 3.9%에서 1986년 61.2%로 크게 증가했다. 정부는 아홉 차례나 전기요금을 인하하고, 전기보일러를 보급하는 등 전력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펼쳤고, 이것이 다시 전력부족을 야기해 추가 발전소를 건설하게 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반민주적 시스템
핵발전은 전문성의 이름으로 그 안전성이나 경제성을 선전해 왔고, 비전문가들의 논의참여를 가로막아 왔다. 그러나 공공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이 전문성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고 보는 전문가주의 입장은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최근 발각된 핵발전소의 심각한 비리도 소수 전문가들이 핵발전의 설계와 건설, 검증 및 규제를 모두 담당하는 폐쇄적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 한국의 실질적이고 유일한 규제기관인 한국원자력기술원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으로부터 예산의 절반 가량을 직접 수령하고 있고, 원자력 진흥업무를 맡았던 퇴직 공무원들과 핵산업에 종사했던 직원들의 재취업 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는 없다. 핵기술은 인간의 통제 능력과 예측범위를 뛰어넘는 위험한 과학기술이다. 실제 핵발전소에 사용되는 핵공학, 기계공학, 핵화학, 물리학, 토목공학, 전기공학 등의 분야를 총괄적으로 통제할 능력은 그 어떤 과학자에게도 없다. 또한 과학자들이 핵발전소 사고의 영향에 대해 잘못된 예상을 하여 상황이 악화된 경우도 다수 있다.
피폭노동의 문제
핵발전은 노동자들의 피폭을 동반한다. 핵발전소가 존재하는 한 피폭을 감수하며 일하는 노동자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특히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폭노동은 급격히 증가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더 높은 양의 방사선 피폭을 감수하며 일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피폭의 위험은 노동자의 고용지위에 따라 달라진다.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에서도 하청직원들이 피폭위험이 높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프랑스전력공사(EDF)에 고용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정직원보다 11~15배 높은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피폭량 격차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직원은 일 년에 20mSv(밀리시버트)라는 기준치를 지키기 위해 업무가 조정되지만, 하청업체 노동자의 피폭량이 기준치 이상이 된다는 것은 바로 해고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방사능 오염이 심한 구역에 들어갈 때 측정기를 놓고 들어가도록 압력을 받는다.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피폭량을 숨기게 되는 것이다.
핵과학자로서 핵의 위험성을 경고해 온 일본의 과학자 고이데 히로아키는 자신이 반핵운동을 지속해 온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핵의 안전문제가 아니라 핵을 둘러싼 차별구조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그는 핵발전소가 건설되는 지역이 소외된 저발전 지역이라는 점과, 핵발전소 유지를 위해 고농도 방사능을 무릅쓰는 노동자가 사회의 최하층 빈민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후쿠시마 이후 일본
여전히 진행 중인 사고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는 1~4호기가 모두 수소폭발을 일으켰고, 당시 가동 정지 중이었던 4호기를 제외한 1~3호기에서는 여전히 핵분열이 진행 중이다. 초반부터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이 일어났고 현재는 녹아내린 핵연료가 지면을 뚫고 내려가는 멜트스루도 진행 중이다. 일본은 체르노빌과 같이 콘크리트로 핵발전소를 덮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녹은 핵연료를 수거하려 하고 있지만, 2년 8개월 만인 올해 11월 18일에 핵분열 중이지 않은 4호기의 연료봉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을 뿐이다. 1~3호기에서 녹아내린 연료를 수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사고가 언제 수습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염된 지하수는 여전히 하루에 300톤씩 바다로 방출되고 있다. 이렇게 진행된 해양 오염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피폭의 증가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일본 정부는 신속한 피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방사성 물질이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는지를 정확히 알리지 않아 인근 주민들은 피폭을 피할 수 없었다. 따그 결과 중 하나로, 초기 방사성요오드 피폭으로 인해 어린이들에게 갑상선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 11월까지 조사된 후쿠시마현 어린이청소년(사고 당시 18세 이하) 갑상선암 발병률은 인구 10만 명 당 12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7년 후쿠시마 주변 4개현에서의 갑상선암 발병률 조사결과 15~19세 인구 10만 명 당 1.7명이었던 데 비해 높은 수치다. 피폭의 영향이 보통 4~5년 뒤에 나타나는 점을 고려하면, 갑상선 암은 앞으로 2~3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 초기의 피폭만이 문제가 아니다. 후쿠시마의 주민들은 일상적인 피폭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 연간 피폭허용치를 조정했다. 이전의 연간 1mSv라는 피폭허용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후쿠시마 현 전체 주민을 피난시켜야 할 정도였기 때문에, 피폭허용치를 연 20mSv로 조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범위만을 피난 구역으로 설정한 것이다. 지금도 후쿠시마 현의 방사선량은 상당히 높은데, 피난을 선택하지 못해 후쿠시마 현에 남게 된 주민들은 끊임없이 피폭당하며 살 수밖에 없다. 특히 임산부나 어린아이들은 방사선에 민감한데, 따라서 주로 이들을 중심으로 건강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 정부는 국제기준치를 완전히 어기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노동자의 연간 피폭허용치를 100mSv에서 250mSv로 높였다. 선량계를 떼고 작업현장에 들어가 노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준치보다 더 높은 방사선에 노출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그 실태를 명확히 알리고 있지 않다.
생활터전의 파괴
2013년 10월 현재 후쿠시마 현의 피난민 숫자는 15만 명이다. 피난민 중 일부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지만, 대다수는 후쿠시마 현과 주변 지역에 남아 정부가 제공한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생활은 열악하다. 피난민 거주용 가설주택은 단열재를 사용하지 않고 지어 더위와 추위에 취약하다. 피난 과정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사망한 노인들도 많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현 피난 주민들이 전에 살던 곳으로 ‘전원 귀환’하는 것을 기본방침으로 임시방편만 세우다, 올해 11월이 되어서야 후쿠시마 주민들의 타지역 이주 지원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피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난민들은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피난민 중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올해 8월까지 신고 된 숫자만 1,648명인데, 이는 후쿠시마 현에서 2011년 지진과 쓰나미의 직접적인 피해로 인해 사망한 1,599명을 넘어선 숫자다.
후쿠시마의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본래 후쿠시마는 친환경농업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는데,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지역의 농업, 낙농업, 어업 모두 파괴되었다. 저선량 지역에서 생산되는 공산품까지도 거부되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로, 이전의 모든 삶이 파괴되었다.
일본의 반핵운동과 에너지체제 전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전역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재 일본 반핵운동의 가장 큰 목표는 핵발전소 재가동을 저지하는 것이다. 2012년 5월 5일 일본의 모든 핵발전소가 정지되어 ‘핵발전소 제로’ 상태를 맞이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재가동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를 저지하자는 것이 제1의 요구가 된 것이다. 2012년 여름은 일본에서 핵발전소 재가동 저지 운동이 가장 크게 일어났던 시기였고, 2012년 7월 16일 사요나라(잘가거라) 핵발전소 집회에는 17만 명이 모여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총리관저 앞 집회가 몇 만 규모로 커지기도 했다. 반핵운동은 자민당 정부에 의한 핵발전소 재가동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2012년 7월 오이 핵발전소가 재가동 된 이후 추가적인 핵발전소 재가동을 막아냈고, 올해 9월 오이 핵발전소가 점검을 위한 가동정지에 들어가 일본은 다시 ‘핵발전소 제로’ 상태를 맞이했다. 지금도 재가동 저지 운동은 지속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운동의 요구와 현실적 필요로 실제 일본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태양광발전 비율이 특히 증가하고 있는데, 각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메가솔라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메가솔라 프로젝트에도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데, 재원은 기관 투자자들의 공동 출자를 통한 펀드 조성으로 조달되며, 수익은 투자자에게 배분된다. 일조량에 의해 발전량이 좌우되는 태양광발전의 경제적 손실을 보충하고 수익변동을 막기 위한 파생금융상품도 등장하였다. 한편 후쿠시마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할 도쿄전력은 전력회사의 적자 메꾸기와 수요관리의 논리로 인상된 전기요금 덕분에 올해 4월~9월 중간 결산에서 약 1,200억 엔(약 1조 3천억 원)의 경상이익을 냈다. 핵발전소 가동 정지의 책임은 민중들에게 떠넘겨지고, 재생에너지 개발은 또 다른 이윤 창출 도구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 안전한가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오염수가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는 주로 ‘수산물 안전’과 ‘검역주권’이 이슈가 되었고, 논란 끝에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인근 8개현의 수산물을 수입 금지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중요하게 돌아봐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 한국 핵발전소의 안전이다.
한국 핵발전소, 안전하지 않다
한국에는 현재 23기의 핵발전소가 운영 중이고, 5기를 새롭게 건설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핵발전소가 많은 나라지만, 앞으로 건설 예정 중인 것을 포함하면 42기로 늘어나 그 순위는 점점 높아질 예정이다.
많은 핵발전소 개수가 바로 핵사고의 위험을 높인다. 스리마일(5등급), 체르노빌(7등급), 후쿠시마(7등급)의 핵사고는 국제 핵사고 등급 상 시설 외부로의 위험을 동반한 5등급 이상의 핵발전소 사고다. 이 사고들은 사고 발생 경로도 달랐고, 원자로의 구조도 달랐지만 모두 핵발전소가 많은 국가에서 일어났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핵발전 기술을 가진 국가에서 일어났다. 핵발전소 사고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나 개인의 잘못으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자체에 내제한 복잡성과 중층적 연결고리에서 기인한다.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핵발전 사고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핵발전소 가동 이후 지난 35년간 한국에서 발생한 사고 건수는 공식적으로 674건이다. 사고의 원인과 종류는 다양하다. 사고 중에서는 후쿠시마와 유사한 사고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2012년 고리 1호기에서 전력공급 중단으로 원자로 온도가 상승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이를 은폐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냉각장치의 고장으로 발생했던 후쿠시마 사고와 원리상 똑같은 사고였다. 월성핵발전소에서도 역시 후쿠시마 사고의 원인이었던 냉각수 누출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게다가 한국의 핵발전소도 노후화 되고 있다. 세계 핵발전소의 평균 수명은 19.8년인데 한국은 2008년 30년의 수명이 만료된 고리 1호기가 수명을 연장하여 34년째 가동 중이다. 월성 1호기 역시 2012년 30년이 지났는데 수명 연장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기계는 고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에는 총 10기의 핵발전소가 있는데, 사고를 일으킨 1~4호기는 모두 30년이 넘은 핵발전소였다.
이외에도 핵발전소에 불량품, 중고품, 검증서 위조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부품 등이 사용되게끔 만든 핵산업계의 구조화된 비리도 사고 위험을 높인다.
핵발전소 밀집도가 너무 높다
한국은 핵발전소 밀집도가 매우 높다. 밀집도란 국토 면적(1km²)당 원전 설비용량(kw)을 말하는데, 밀집도가 높을수록 사고 위험성이 높다. 현재 한국과 벨기에의 밀집도가 비슷한데, 향후 벨기에는 신규 건설을 중단할 예정이다. 한국은 신규 건설을 추진할 예정이기 때문에 한국의 핵발전소 밀집도는 전 세계에서 압도적 1위로 올라설 예정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략 반경 30km이내의 주민들이 피난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인구는 15만 명 정도이다. 그런데 한국은 핵발전소 반경 30km내에 거주하는 주민이 고리핵발전소의 경우만 300만 명이 넘고, 전체는 370만 명에 달한다. 만약 사고가 일어난다면 매우 많은 주민들이 피폭의 피해를 입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에만 핵발전소가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아시아 3국 전체를 조망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중국, 일본, 대만, 북한에서 현재 7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또한 80기가 추가로 건설되고 있거나, 건설될 예정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방사성 물질의 오염에는 국경이 없다. 동아시아에 산재한 핵발전소의 존재 자체가 한국, 나아가 세계의 민중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핵발전 역사와 반핵운동
그런데 한국은 왜 위험한 핵발전을 이렇게 강력히 추진해왔으며 앞으로도 핵발전을 확대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위험한 핵발전을 중단시키려는 운동은 없었던 것일까?
한국 핵발전의 역사: 핵발전과 축적체계
한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핵에너지 비중이 높은 정치적경제적 요인들이 있다. 남한은 일찍부터 핵기술을 도입했는데, 1955년 한미원자력협정이 그 시작이다. 이렇게 일찍부터 핵기술을 도입한 것은 냉전체제의 영향이기도 하다. 미국과 소련이 우방국에게 원자로 건설자금과 농축 우라늄을 제공하면서 경쟁적으로 원자력협정을 체결하는 흐름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초기에는 핵발전으로 전기에너지를 얻으려는 의도는 크지 않았다. 1953년 한국은 심각한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전원개발 3개년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는 수력발전 위주였다. 한국의 핵에너지 정책의 출발점은 에너지계획이라기보다 군사적 의도가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미국의 도움을 받아 실험용인 트리가마크-II를 1962년 가동하게 되는데, 이것이 한국의 첫 원자로이다. 1960년대 초반에는 농업, 의학에서 방사선동위원소를 활용하려는 기대가 컸다.
이러한 군사적, 학술적 용도에서 발전사업 중심으로 핵정책이 전환된 계기는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인한 전력수요의 급증 때문이다. 연15%씩 전력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에너지체계의 석유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석유 의존도의 증가와 동시에 석유의 대안을 모색했어야 했는데, 중동의 정치상황에 따라 석유의 수급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수출 지향적 산업화는 에너지 집약적 생산소비 체계를 강화했고, 1970년대 두 번의 석유위기는 핵발전을 에너지원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만들었다.
1980년대 세계적으로 핵발전 확대가 주춤하던 시기 한국은 핵산업의 신흥시장이었다. 이 시기에 미국은 한국 핵발전 산업을 독식하기 위해 한국에 핵기술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 역할을 자임했고 한국의 핵발전소는 급증한다. 미국의 핵발전 개입, 한국 정부의 핵옵션에 대한 욕심, 수출지향적 공업화에 따라 계속해서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같은 조건들은 핵발전 정책을 계속해서 팽창시켰다. 2010년대 한국은 드디어 핵발전소 수출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시도를 진행하고, 한국형 원자로 도입,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핵연료사이클 완성 등의 계획을 적극 추진하게 된다.
반핵운동의 역사
한국의 반핵발전 운동은 핵발전소 확대 저지,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지향했지만 현실에서는 후자가 중심을 이루었다. 한국의 핵발전소 부지는 박정희 정권 시절 거의 일방적으로 정해졌는데, 이후 정부가 기존 핵발전소 지역에 신규 핵발전소를 추가적으로 입지시킴에 따라 핵발전소 추가건설을 원천 봉쇄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환경단체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핵발전소 건설 중단, 핵무기철거, 한반도 비핵지대화 요구가 있었지만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의 투쟁은 없었다. 핵발전소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첫 집단적 대응은 1985년 영광주민들의 어업피해 보상 투쟁으로 일어났고, 이어 1988년 10월 고리 핵발전소에 10년 근무한 박신우씨 임파선암 사망사건을 계기로 한 방사능피해 진상규명 운동과 고리양산 등 핵폐기물 불법매립 사건에 대한 투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투쟁들은 1988년 12월 반핵평화 시민대회로 이어져 핵발전소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다.
이후 반핵운동의 중추가 된 것은 방사능 폐기물 처분장 반대 투쟁이었다. 1989년 경북 영덕 방폐장 건설 계획 백지화, 1993년 장안 울진에서의 입지선정 무산, 1994년 굴업도 반대운동, 2003~2004년 부안군민들의 반대투쟁으로 2005년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입지 선정까지 부지선정이 10번이나 중지되었다. 이는 그 자체로서 성과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반대운동에도 다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의 핵 발전 중심 정책을 전환시킬 정도로 반핵운동의 영향력은 강하지 않다. 지역주민의 문제를 넘어 반핵을 전국적 의제로 확산하고, 핵군축, 핵발전소 폐쇄, 대안에너지 운동 등 대중적인 반핵운동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대안적 에너지체제 구축을 위해
핵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반핵운동의 주장에 대해, 막대한 에너지 소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재생에너지로 핵발전 대체 가능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는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에너지, 풍력, 지열, 해양에너지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 기술은 이미 핵발전을 충분히 대체할 정도로 발전했다. 2012년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30개국 432기로, 전세계 전기 생산의 11%, 전세계 에너지 소비의 2%를 차지한다. 한국의 경우 핵발전은 전기 생산의 30.4%, 전체 에너지소비의 5.7% 정도를 차지한다. 이 정도의 비중이면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독일의 경우,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2011년 12.2%를 차지한다. 한국이 재생에너지 비율을 독일의 절반 수준 정도로만 높여도 현재의 소비구조를 유지하면서 핵발전 대체가 가능하다.
정부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을 고려하여 재생에너지 비중을 일정 수준 높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내세우는 신재생에너지는 개념 자체부터 문제가 있다. 보통 신재생에너지가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지칭하는 데 반해 한국정부는 신재생에너지에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석탄을 액화가스화한 에너지 등을 포함시켜 통계치를 과장하고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 투자에 대해 이런 부문을 포함시키면서 본래 의미의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에너지 문제가 있다. 현재 에너지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심각한 에너지 불평등이다. 2000년 세계 평균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미국인 평균의 18% 정도였는데, 이는 1970년대 초반보다 약간 후퇴한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그 속성상 지역분산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좀 더 평등한 에너지 체제를 만들 가능성이 있지만, 자동적으로 세계의 심각한 에너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재의 생산과 소비구조를 그대로 두는 한 재생에너지는 한계적이다. 재생에너지는 소규모로 분산되고, 기존 기술보다 에너지 효율성이 높지 않다. 또 대부분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핵발전을 대체할 수는 있어도 현재의 막대한 에너지 수요를 주로 충당할 에너지원이 되기는 어렵다. 즉 석유를 대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석유의 대안 중 일부로 핵발전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곧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핵발전소 폐쇄를 위해 에너지 체제 전반을 바꾸는 문제를 사고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에너지 고소비 체제는 자본주의적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에너지 투입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에너지 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핵에너지가 재생에너지보다 먼저 석유의 대안으로 사고되었던 이유는 대규모이며 밀집도 높은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즉 분산형이고 소규모인 재생에너지보다 핵에너지가 자본주의적 축적체계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에너지 소비를 저에너지 소비로 바꾸는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평등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은 이윤을 위해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는 문제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반핵발전 운동,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후쿠시마 이후 한국의 반핵운동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반핵운동에서도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피폭의 위험성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아이들의 피폭을 걱정하는 단체들이 생겨나는 등 저선량 피폭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에너지체제에 대한 대안적 시나리오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저선량 피폭의 위험성을 알리고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운동은 한국정부가 제대로 된 정보공개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폭의 위험성을 알리고, 정보를 공유하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이러한 활동이 한국의 핵발전 체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여러 운동과 만나지 못한다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상품과 먹거리에만 집중하는 소비자운동의 성격을 띨 수도 있다. 이러한 활동이 긍정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반핵운동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탈핵을 위한 대안적 시나리오는 정부의 에너지 시나리오에 대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가진다. 정부는 ‘경제의 지속적 성장, 농림어업의 비중감소, 에너지 다소비업종의 소비비중 20% 유지’를 예상하는데, 이는 핵발전의 유지확대를 위한 근거가 된다. 여기에는 화석에너지 또는 핵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집약적 산업체제의 지속, 다시 말해 현재의 수출-재벌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 전제되어있다.
반면,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에너지 다소비업종의 소비비중 15%로 감소, 농업의 비중 증가’ 등 소비패턴 및 산업구조의 변화를 전망하고 이에 근거해 시나리오를 제출한다. 여기에는 ‘탈성장’ 내지는 ‘반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시민들의 가치관이 변화할 것이라는 주관적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이것이 현재의 역관계나 대중적 동의지반을 고려한 객관적 예측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정부의 에너지 시나리오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향후 생태위기의 원인, 생태운동의 이념, 대안적 에너지체제의 상과 실현 경로 등에 대한 토론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실의 계기
우리 앞에 놓인 몇 가지 과제에 대해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선 핵발전소 수출국으로의 도약과 핵무기 개발의 야심을 드러내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시도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보수언론이 한미원자력협정 진행 상황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있는 것에 반해 사회운동 전반의 관심도는 너무나 낮다. 핵발전소 수출은 국제적 범죄이며, 핵연료사이클의 완성을 시도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필요하다.
또한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이 실제로는 핵발전소를 늘리는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핵발전 비중 축소’라 선전하며 착시효과를 노리고 있는데, 정부를 규탄하고 대규모 수요증가를 가정한 에너지계획을 비판하며 대안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 가능함을 알려야 한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핵발전소 폐쇄의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밀양 송전탑 문제도 중요하다.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 3, 4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를 영남 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신고리 3, 4호기는 현재 핵심부품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져 완공이 연기된 상태다. 또 완공이 되더라도 이미 건설되어 있는 송전탑으로 충분히 수송 가능하다는 사실도 다름 아닌 한국전력의 시나리오를 통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국전력은 아직 건설계획만 존재하는 신고리 5~8호기의 전력 수송까지 대비하기 위해 밀양 송전탑을 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핵발전 확대 정책을 계속하겠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밀양 송전탑은 30년의 설계수명을 가지고 있는 고리 1호기와 설계수명이 40년인 고리 2~4호기의 수명연장까지 전제할 때 필요한 것이다.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만 하지 않는다면 밀양 송전탑은 필요 없는데도, 수명연장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와 한국전력에 맞서 지역 주민들은 갈등의 원인인 핵발전을 멈추고, 지방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지어 서울 등의 대도시로 송전하는 악순환을 끊자고 주장해 왔다. 현재 지역 주민들의 끈질기고 절박한 투쟁으로 사안이 전국화되고 있고, 반핵운동의 전선이 어느 정도 모아진 상황이다.
이렇듯 핵발전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에너지체제로의 전환을 알려낼 수 있는 계기는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많다. 이를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아직도 진행 중인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핵발전, 무엇이 문제인가
핵에 대한 기초 지식
핵발전의 문제는 그 원리에서부터 비롯된다. 우선 핵발전의 원리를 간단히 보고 넘어가자.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 자체는 보통 변하지 않아 그것이 구성하는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유지하는데, 이는 원자의 핵이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핵이 안정적인 이유는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핵력(nuclear power)이라고 부르는 매우 강한 힘으로 묶여 있기 때문인데, 과학자들은 우라늄 같이 무거운 원자는 어떤 상황에서 핵이 쪼개져 다른 원자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핵분열이라 이름 붙였다.
우라늄은 자연 상태에서도 핵분열이 가능하지만 잘 일어나지는 않는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인공적으로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일단 한 원자의 핵분열이 시작되면 거기에서 방출되는 중성자가 다시 다른 원자들의 핵분열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면서 엄청난 양의 핵에너지가 급격하게 방출된다. 이를 이용한 것이 바로 핵무기이다. 흑연이나 물 등의 감속재를 써서 핵분열 속도를 늦출 수도 있는데, 이에 따라 천천히 방출하는 핵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끓여 터빈을 돌려 전기에너지를 얻는 것이 바로 핵발전이다.
서로 뗄 수 없는 핵무기와 핵발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험은 핵무기가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전후 핵무기 감축이 인류의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핵무기와 핵발전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핵발전 기술은 핵무기 기술로부터 발전했다. 2차 세계전쟁 중에 핵무기 개발 계획에 적극 참여한 기업들(제너럴일렉트릭, 웨스팅하우스)이 실제로 미국의 상업용 원자로와 핵연료 개발을 주도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가압경수로는 핵잠수함용 원자로를 확대개량한 것이다.
기술의 뿌리만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핵발전 프로그램은 정부 주도의 군사적 목적과 분리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가 그러하다. 예를 들어, 1956년 최초로 상업발전을 시작한 영국의 콜더 홀 원자로는 사실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이 개발한 원자로(기체-흑연로)는 군사용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원자로를 가동하며 생산되는 전력은 부차적이었고 경제성도 떨어졌다. 핵무기 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현재도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있다.
처음에는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고 하다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한 국가들도 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가 그렇다. 이렇듯 핵발전은 전기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핵옵션의 유혹에 의해서도 유지된다.
최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시도를 보면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미국이 핵기술을 제공하면서도 한국의 핵무기 제조를 막기 위해 1956년에 맺은 협정인데, 박근혜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를 개정하고자 한다. 정부의 첫 번째 의도는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함으로써 핵발전소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재처리권을 갖는다는 것은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로 받아들인다. 정부는 순수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는 건식재처리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렇게 추출된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의 계속된 원자력협정 개정 시도는 인근 국가들의 핵개발 시도와 맞물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다.
친환경적 에너지라는 환상
핵발전은 화석연료 사용보다 온실가스를 덜 발생시켜 친환경적이라는 환상이 널리 퍼져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제기하는 일부 환경운동가들이 핵발전을 옹호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핵발전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에서 친환경적이지 않다.
첫째, 기존에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원과 크게 다르다. 핵에너지가 사용되기 전까지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는 거의 모두 태양에너지에서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생물자원, 풍력, 수력, 화석연료는 모두 태양에너지가 변형되고 축적된 결과다. 반면 핵에너지는 물질 자체의 내부구조를 인공적으로 변형시켜 생산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에너지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균형을 이뤄왔던 지구의 에너지 흐름 속에서 핵에너지가 새롭게 투입되는 것은 지구 에너지 총량의 인위적 증가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생태계 교란의 원인이 된다.
둘째, 핵발전은 기후변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핵발전소 운영 자체는 온실가스를 거의 발생시키지 않지만, 핵발전을 통한 전기 생산 과정 전체를 조망하면 그렇지 않다. 오로지 핵연료를 만들기 위해 진행되는 우라늄의 채굴과 정련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다량 발생한다. 또한 핵연료의 운반, 핵폐기물 저장이라는 각 단계에서도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셋째, 핵폐기물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은 사용후 핵연료를 고준위폐기물, 그 이외는 중저준위폐기물로 분류하는데, 중저준위폐기물은 300년 동안, 사용후 핵연료는 무려 10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한다. 이렇게 위험한 방사성 물질을 생산해내는 발전소를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넷째, 핵발전은 다른 발전원과 달리 한번 가동이 시작되면 멈출 수 없어 탄력성이 떨어지고, 이것이 전기 사용량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전체 에너지 소비수준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은 1980년대 핵발전소가 여러 기 건설되면서 전력예비율이 1976년 3.9%에서 1986년 61.2%로 크게 증가했다. 정부는 아홉 차례나 전기요금을 인하하고, 전기보일러를 보급하는 등 전력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펼쳤고, 이것이 다시 전력부족을 야기해 추가 발전소를 건설하게 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반민주적 시스템
핵발전은 전문성의 이름으로 그 안전성이나 경제성을 선전해 왔고, 비전문가들의 논의참여를 가로막아 왔다. 그러나 공공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이 전문성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고 보는 전문가주의 입장은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최근 발각된 핵발전소의 심각한 비리도 소수 전문가들이 핵발전의 설계와 건설, 검증 및 규제를 모두 담당하는 폐쇄적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 한국의 실질적이고 유일한 규제기관인 한국원자력기술원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으로부터 예산의 절반 가량을 직접 수령하고 있고, 원자력 진흥업무를 맡았던 퇴직 공무원들과 핵산업에 종사했던 직원들의 재취업 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는 없다. 핵기술은 인간의 통제 능력과 예측범위를 뛰어넘는 위험한 과학기술이다. 실제 핵발전소에 사용되는 핵공학, 기계공학, 핵화학, 물리학, 토목공학, 전기공학 등의 분야를 총괄적으로 통제할 능력은 그 어떤 과학자에게도 없다. 또한 과학자들이 핵발전소 사고의 영향에 대해 잘못된 예상을 하여 상황이 악화된 경우도 다수 있다.
피폭노동의 문제
핵발전은 노동자들의 피폭을 동반한다. 핵발전소가 존재하는 한 피폭을 감수하며 일하는 노동자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특히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폭노동은 급격히 증가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더 높은 양의 방사선 피폭을 감수하며 일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피폭의 위험은 노동자의 고용지위에 따라 달라진다.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에서도 하청직원들이 피폭위험이 높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프랑스전력공사(EDF)에 고용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정직원보다 11~15배 높은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피폭량 격차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직원은 일 년에 20mSv(밀리시버트)라는 기준치를 지키기 위해 업무가 조정되지만, 하청업체 노동자의 피폭량이 기준치 이상이 된다는 것은 바로 해고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방사능 오염이 심한 구역에 들어갈 때 측정기를 놓고 들어가도록 압력을 받는다.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피폭량을 숨기게 되는 것이다.
핵과학자로서 핵의 위험성을 경고해 온 일본의 과학자 고이데 히로아키는 자신이 반핵운동을 지속해 온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핵의 안전문제가 아니라 핵을 둘러싼 차별구조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그는 핵발전소가 건설되는 지역이 소외된 저발전 지역이라는 점과, 핵발전소 유지를 위해 고농도 방사능을 무릅쓰는 노동자가 사회의 최하층 빈민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후쿠시마 이후 일본
여전히 진행 중인 사고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는 1~4호기가 모두 수소폭발을 일으켰고, 당시 가동 정지 중이었던 4호기를 제외한 1~3호기에서는 여전히 핵분열이 진행 중이다. 초반부터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이 일어났고 현재는 녹아내린 핵연료가 지면을 뚫고 내려가는 멜트스루도 진행 중이다. 일본은 체르노빌과 같이 콘크리트로 핵발전소를 덮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녹은 핵연료를 수거하려 하고 있지만, 2년 8개월 만인 올해 11월 18일에 핵분열 중이지 않은 4호기의 연료봉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을 뿐이다. 1~3호기에서 녹아내린 연료를 수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사고가 언제 수습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염된 지하수는 여전히 하루에 300톤씩 바다로 방출되고 있다. 이렇게 진행된 해양 오염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피폭의 증가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일본 정부는 신속한 피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방사성 물질이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는지를 정확히 알리지 않아 인근 주민들은 피폭을 피할 수 없었다. 따그 결과 중 하나로, 초기 방사성요오드 피폭으로 인해 어린이들에게 갑상선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 11월까지 조사된 후쿠시마현 어린이청소년(사고 당시 18세 이하) 갑상선암 발병률은 인구 10만 명 당 12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7년 후쿠시마 주변 4개현에서의 갑상선암 발병률 조사결과 15~19세 인구 10만 명 당 1.7명이었던 데 비해 높은 수치다. 피폭의 영향이 보통 4~5년 뒤에 나타나는 점을 고려하면, 갑상선 암은 앞으로 2~3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 초기의 피폭만이 문제가 아니다. 후쿠시마의 주민들은 일상적인 피폭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 연간 피폭허용치를 조정했다. 이전의 연간 1mSv라는 피폭허용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후쿠시마 현 전체 주민을 피난시켜야 할 정도였기 때문에, 피폭허용치를 연 20mSv로 조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범위만을 피난 구역으로 설정한 것이다. 지금도 후쿠시마 현의 방사선량은 상당히 높은데, 피난을 선택하지 못해 후쿠시마 현에 남게 된 주민들은 끊임없이 피폭당하며 살 수밖에 없다. 특히 임산부나 어린아이들은 방사선에 민감한데, 따라서 주로 이들을 중심으로 건강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 정부는 국제기준치를 완전히 어기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노동자의 연간 피폭허용치를 100mSv에서 250mSv로 높였다. 선량계를 떼고 작업현장에 들어가 노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준치보다 더 높은 방사선에 노출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그 실태를 명확히 알리고 있지 않다.
생활터전의 파괴
2013년 10월 현재 후쿠시마 현의 피난민 숫자는 15만 명이다. 피난민 중 일부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지만, 대다수는 후쿠시마 현과 주변 지역에 남아 정부가 제공한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생활은 열악하다. 피난민 거주용 가설주택은 단열재를 사용하지 않고 지어 더위와 추위에 취약하다. 피난 과정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사망한 노인들도 많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현 피난 주민들이 전에 살던 곳으로 ‘전원 귀환’하는 것을 기본방침으로 임시방편만 세우다, 올해 11월이 되어서야 후쿠시마 주민들의 타지역 이주 지원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피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난민들은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피난민 중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올해 8월까지 신고 된 숫자만 1,648명인데, 이는 후쿠시마 현에서 2011년 지진과 쓰나미의 직접적인 피해로 인해 사망한 1,599명을 넘어선 숫자다.
후쿠시마의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본래 후쿠시마는 친환경농업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는데,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지역의 농업, 낙농업, 어업 모두 파괴되었다. 저선량 지역에서 생산되는 공산품까지도 거부되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로, 이전의 모든 삶이 파괴되었다.
일본의 반핵운동과 에너지체제 전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전역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재 일본 반핵운동의 가장 큰 목표는 핵발전소 재가동을 저지하는 것이다. 2012년 5월 5일 일본의 모든 핵발전소가 정지되어 ‘핵발전소 제로’ 상태를 맞이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재가동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를 저지하자는 것이 제1의 요구가 된 것이다. 2012년 여름은 일본에서 핵발전소 재가동 저지 운동이 가장 크게 일어났던 시기였고, 2012년 7월 16일 사요나라(잘가거라) 핵발전소 집회에는 17만 명이 모여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총리관저 앞 집회가 몇 만 규모로 커지기도 했다. 반핵운동은 자민당 정부에 의한 핵발전소 재가동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2012년 7월 오이 핵발전소가 재가동 된 이후 추가적인 핵발전소 재가동을 막아냈고, 올해 9월 오이 핵발전소가 점검을 위한 가동정지에 들어가 일본은 다시 ‘핵발전소 제로’ 상태를 맞이했다. 지금도 재가동 저지 운동은 지속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운동의 요구와 현실적 필요로 실제 일본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태양광발전 비율이 특히 증가하고 있는데, 각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메가솔라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메가솔라 프로젝트에도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데, 재원은 기관 투자자들의 공동 출자를 통한 펀드 조성으로 조달되며, 수익은 투자자에게 배분된다. 일조량에 의해 발전량이 좌우되는 태양광발전의 경제적 손실을 보충하고 수익변동을 막기 위한 파생금융상품도 등장하였다. 한편 후쿠시마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할 도쿄전력은 전력회사의 적자 메꾸기와 수요관리의 논리로 인상된 전기요금 덕분에 올해 4월~9월 중간 결산에서 약 1,200억 엔(약 1조 3천억 원)의 경상이익을 냈다. 핵발전소 가동 정지의 책임은 민중들에게 떠넘겨지고, 재생에너지 개발은 또 다른 이윤 창출 도구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 안전한가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오염수가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는 주로 ‘수산물 안전’과 ‘검역주권’이 이슈가 되었고, 논란 끝에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인근 8개현의 수산물을 수입 금지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중요하게 돌아봐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 한국 핵발전소의 안전이다.
한국 핵발전소, 안전하지 않다
한국에는 현재 23기의 핵발전소가 운영 중이고, 5기를 새롭게 건설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핵발전소가 많은 나라지만, 앞으로 건설 예정 중인 것을 포함하면 42기로 늘어나 그 순위는 점점 높아질 예정이다.
많은 핵발전소 개수가 바로 핵사고의 위험을 높인다. 스리마일(5등급), 체르노빌(7등급), 후쿠시마(7등급)의 핵사고는 국제 핵사고 등급 상 시설 외부로의 위험을 동반한 5등급 이상의 핵발전소 사고다. 이 사고들은 사고 발생 경로도 달랐고, 원자로의 구조도 달랐지만 모두 핵발전소가 많은 국가에서 일어났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핵발전 기술을 가진 국가에서 일어났다. 핵발전소 사고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나 개인의 잘못으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자체에 내제한 복잡성과 중층적 연결고리에서 기인한다.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핵발전 사고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핵발전소 가동 이후 지난 35년간 한국에서 발생한 사고 건수는 공식적으로 674건이다. 사고의 원인과 종류는 다양하다. 사고 중에서는 후쿠시마와 유사한 사고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2012년 고리 1호기에서 전력공급 중단으로 원자로 온도가 상승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이를 은폐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냉각장치의 고장으로 발생했던 후쿠시마 사고와 원리상 똑같은 사고였다. 월성핵발전소에서도 역시 후쿠시마 사고의 원인이었던 냉각수 누출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게다가 한국의 핵발전소도 노후화 되고 있다. 세계 핵발전소의 평균 수명은 19.8년인데 한국은 2008년 30년의 수명이 만료된 고리 1호기가 수명을 연장하여 34년째 가동 중이다. 월성 1호기 역시 2012년 30년이 지났는데 수명 연장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기계는 고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에는 총 10기의 핵발전소가 있는데, 사고를 일으킨 1~4호기는 모두 30년이 넘은 핵발전소였다.
이외에도 핵발전소에 불량품, 중고품, 검증서 위조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부품 등이 사용되게끔 만든 핵산업계의 구조화된 비리도 사고 위험을 높인다.
핵발전소 밀집도가 너무 높다
한국은 핵발전소 밀집도가 매우 높다. 밀집도란 국토 면적(1km²)당 원전 설비용량(kw)을 말하는데, 밀집도가 높을수록 사고 위험성이 높다. 현재 한국과 벨기에의 밀집도가 비슷한데, 향후 벨기에는 신규 건설을 중단할 예정이다. 한국은 신규 건설을 추진할 예정이기 때문에 한국의 핵발전소 밀집도는 전 세계에서 압도적 1위로 올라설 예정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략 반경 30km이내의 주민들이 피난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인구는 15만 명 정도이다. 그런데 한국은 핵발전소 반경 30km내에 거주하는 주민이 고리핵발전소의 경우만 300만 명이 넘고, 전체는 370만 명에 달한다. 만약 사고가 일어난다면 매우 많은 주민들이 피폭의 피해를 입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에만 핵발전소가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아시아 3국 전체를 조망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중국, 일본, 대만, 북한에서 현재 7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또한 80기가 추가로 건설되고 있거나, 건설될 예정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방사성 물질의 오염에는 국경이 없다. 동아시아에 산재한 핵발전소의 존재 자체가 한국, 나아가 세계의 민중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핵발전 역사와 반핵운동
그런데 한국은 왜 위험한 핵발전을 이렇게 강력히 추진해왔으며 앞으로도 핵발전을 확대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위험한 핵발전을 중단시키려는 운동은 없었던 것일까?
한국 핵발전의 역사: 핵발전과 축적체계
한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핵에너지 비중이 높은 정치적경제적 요인들이 있다. 남한은 일찍부터 핵기술을 도입했는데, 1955년 한미원자력협정이 그 시작이다. 이렇게 일찍부터 핵기술을 도입한 것은 냉전체제의 영향이기도 하다. 미국과 소련이 우방국에게 원자로 건설자금과 농축 우라늄을 제공하면서 경쟁적으로 원자력협정을 체결하는 흐름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초기에는 핵발전으로 전기에너지를 얻으려는 의도는 크지 않았다. 1953년 한국은 심각한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전원개발 3개년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는 수력발전 위주였다. 한국의 핵에너지 정책의 출발점은 에너지계획이라기보다 군사적 의도가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미국의 도움을 받아 실험용인 트리가마크-II를 1962년 가동하게 되는데, 이것이 한국의 첫 원자로이다. 1960년대 초반에는 농업, 의학에서 방사선동위원소를 활용하려는 기대가 컸다.
이러한 군사적, 학술적 용도에서 발전사업 중심으로 핵정책이 전환된 계기는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인한 전력수요의 급증 때문이다. 연15%씩 전력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에너지체계의 석유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석유 의존도의 증가와 동시에 석유의 대안을 모색했어야 했는데, 중동의 정치상황에 따라 석유의 수급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수출 지향적 산업화는 에너지 집약적 생산소비 체계를 강화했고, 1970년대 두 번의 석유위기는 핵발전을 에너지원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만들었다.
1980년대 세계적으로 핵발전 확대가 주춤하던 시기 한국은 핵산업의 신흥시장이었다. 이 시기에 미국은 한국 핵발전 산업을 독식하기 위해 한국에 핵기술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 역할을 자임했고 한국의 핵발전소는 급증한다. 미국의 핵발전 개입, 한국 정부의 핵옵션에 대한 욕심, 수출지향적 공업화에 따라 계속해서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같은 조건들은 핵발전 정책을 계속해서 팽창시켰다. 2010년대 한국은 드디어 핵발전소 수출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시도를 진행하고, 한국형 원자로 도입,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핵연료사이클 완성 등의 계획을 적극 추진하게 된다.
반핵운동의 역사
한국의 반핵발전 운동은 핵발전소 확대 저지,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지향했지만 현실에서는 후자가 중심을 이루었다. 한국의 핵발전소 부지는 박정희 정권 시절 거의 일방적으로 정해졌는데, 이후 정부가 기존 핵발전소 지역에 신규 핵발전소를 추가적으로 입지시킴에 따라 핵발전소 추가건설을 원천 봉쇄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환경단체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핵발전소 건설 중단, 핵무기철거, 한반도 비핵지대화 요구가 있었지만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의 투쟁은 없었다. 핵발전소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첫 집단적 대응은 1985년 영광주민들의 어업피해 보상 투쟁으로 일어났고, 이어 1988년 10월 고리 핵발전소에 10년 근무한 박신우씨 임파선암 사망사건을 계기로 한 방사능피해 진상규명 운동과 고리양산 등 핵폐기물 불법매립 사건에 대한 투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투쟁들은 1988년 12월 반핵평화 시민대회로 이어져 핵발전소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다.
이후 반핵운동의 중추가 된 것은 방사능 폐기물 처분장 반대 투쟁이었다. 1989년 경북 영덕 방폐장 건설 계획 백지화, 1993년 장안 울진에서의 입지선정 무산, 1994년 굴업도 반대운동, 2003~2004년 부안군민들의 반대투쟁으로 2005년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입지 선정까지 부지선정이 10번이나 중지되었다. 이는 그 자체로서 성과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반대운동에도 다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의 핵 발전 중심 정책을 전환시킬 정도로 반핵운동의 영향력은 강하지 않다. 지역주민의 문제를 넘어 반핵을 전국적 의제로 확산하고, 핵군축, 핵발전소 폐쇄, 대안에너지 운동 등 대중적인 반핵운동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대안적 에너지체제 구축을 위해
핵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반핵운동의 주장에 대해, 막대한 에너지 소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재생에너지로 핵발전 대체 가능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는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에너지, 풍력, 지열, 해양에너지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 기술은 이미 핵발전을 충분히 대체할 정도로 발전했다. 2012년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30개국 432기로, 전세계 전기 생산의 11%, 전세계 에너지 소비의 2%를 차지한다. 한국의 경우 핵발전은 전기 생산의 30.4%, 전체 에너지소비의 5.7% 정도를 차지한다. 이 정도의 비중이면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독일의 경우,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2011년 12.2%를 차지한다. 한국이 재생에너지 비율을 독일의 절반 수준 정도로만 높여도 현재의 소비구조를 유지하면서 핵발전 대체가 가능하다.
정부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을 고려하여 재생에너지 비중을 일정 수준 높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내세우는 신재생에너지는 개념 자체부터 문제가 있다. 보통 신재생에너지가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지칭하는 데 반해 한국정부는 신재생에너지에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석탄을 액화가스화한 에너지 등을 포함시켜 통계치를 과장하고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 투자에 대해 이런 부문을 포함시키면서 본래 의미의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에너지 문제가 있다. 현재 에너지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심각한 에너지 불평등이다. 2000년 세계 평균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미국인 평균의 18% 정도였는데, 이는 1970년대 초반보다 약간 후퇴한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그 속성상 지역분산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좀 더 평등한 에너지 체제를 만들 가능성이 있지만, 자동적으로 세계의 심각한 에너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재의 생산과 소비구조를 그대로 두는 한 재생에너지는 한계적이다. 재생에너지는 소규모로 분산되고, 기존 기술보다 에너지 효율성이 높지 않다. 또 대부분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핵발전을 대체할 수는 있어도 현재의 막대한 에너지 수요를 주로 충당할 에너지원이 되기는 어렵다. 즉 석유를 대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석유의 대안 중 일부로 핵발전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곧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핵발전소 폐쇄를 위해 에너지 체제 전반을 바꾸는 문제를 사고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에너지 고소비 체제는 자본주의적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에너지 투입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에너지 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핵에너지가 재생에너지보다 먼저 석유의 대안으로 사고되었던 이유는 대규모이며 밀집도 높은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즉 분산형이고 소규모인 재생에너지보다 핵에너지가 자본주의적 축적체계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에너지 소비를 저에너지 소비로 바꾸는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평등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은 이윤을 위해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는 문제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반핵발전 운동,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후쿠시마 이후 한국의 반핵운동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반핵운동에서도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피폭의 위험성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아이들의 피폭을 걱정하는 단체들이 생겨나는 등 저선량 피폭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에너지체제에 대한 대안적 시나리오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저선량 피폭의 위험성을 알리고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운동은 한국정부가 제대로 된 정보공개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폭의 위험성을 알리고, 정보를 공유하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이러한 활동이 한국의 핵발전 체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여러 운동과 만나지 못한다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상품과 먹거리에만 집중하는 소비자운동의 성격을 띨 수도 있다. 이러한 활동이 긍정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반핵운동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탈핵을 위한 대안적 시나리오는 정부의 에너지 시나리오에 대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가진다. 정부는 ‘경제의 지속적 성장, 농림어업의 비중감소, 에너지 다소비업종의 소비비중 20% 유지’를 예상하는데, 이는 핵발전의 유지확대를 위한 근거가 된다. 여기에는 화석에너지 또는 핵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집약적 산업체제의 지속, 다시 말해 현재의 수출-재벌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 전제되어있다.
반면,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에너지 다소비업종의 소비비중 15%로 감소, 농업의 비중 증가’ 등 소비패턴 및 산업구조의 변화를 전망하고 이에 근거해 시나리오를 제출한다. 여기에는 ‘탈성장’ 내지는 ‘반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시민들의 가치관이 변화할 것이라는 주관적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이것이 현재의 역관계나 대중적 동의지반을 고려한 객관적 예측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정부의 에너지 시나리오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향후 생태위기의 원인, 생태운동의 이념, 대안적 에너지체제의 상과 실현 경로 등에 대한 토론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실의 계기
우리 앞에 놓인 몇 가지 과제에 대해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선 핵발전소 수출국으로의 도약과 핵무기 개발의 야심을 드러내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시도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보수언론이 한미원자력협정 진행 상황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있는 것에 반해 사회운동 전반의 관심도는 너무나 낮다. 핵발전소 수출은 국제적 범죄이며, 핵연료사이클의 완성을 시도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필요하다.
또한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이 실제로는 핵발전소를 늘리는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핵발전 비중 축소’라 선전하며 착시효과를 노리고 있는데, 정부를 규탄하고 대규모 수요증가를 가정한 에너지계획을 비판하며 대안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 가능함을 알려야 한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핵발전소 폐쇄의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밀양 송전탑 문제도 중요하다.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 3, 4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를 영남 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신고리 3, 4호기는 현재 핵심부품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져 완공이 연기된 상태다. 또 완공이 되더라도 이미 건설되어 있는 송전탑으로 충분히 수송 가능하다는 사실도 다름 아닌 한국전력의 시나리오를 통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국전력은 아직 건설계획만 존재하는 신고리 5~8호기의 전력 수송까지 대비하기 위해 밀양 송전탑을 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핵발전 확대 정책을 계속하겠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밀양 송전탑은 30년의 설계수명을 가지고 있는 고리 1호기와 설계수명이 40년인 고리 2~4호기의 수명연장까지 전제할 때 필요한 것이다.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만 하지 않는다면 밀양 송전탑은 필요 없는데도, 수명연장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와 한국전력에 맞서 지역 주민들은 갈등의 원인인 핵발전을 멈추고, 지방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지어 서울 등의 대도시로 송전하는 악순환을 끊자고 주장해 왔다. 현재 지역 주민들의 끈질기고 절박한 투쟁으로 사안이 전국화되고 있고, 반핵운동의 전선이 어느 정도 모아진 상황이다.
이렇듯 핵발전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에너지체제로의 전환을 알려낼 수 있는 계기는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많다. 이를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아직도 진행 중인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