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한반도 비핵화 전망, 평화의 기회는 다시 사라지는가?

2020년 한반도 정세전망

김진영 |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2018년이 ‘평창올림픽 휴전’으로 시작하여, 남북 판문점선언,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선언, 평양공동선언과 남북정상의 백두산 공동 등반 등 끊이지 않은 이벤트의 해였다면, 2019년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실질적 진전이 시험대에 놓인 해였다. 그렇지만, 실망스럽게도 남북미 대화의 교착상태가 이어졌다. 2020년에는 한반도 미래의 향방이 보다 분명해질 것이나, 희망찬 전망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사회운동이 평화를 향한 긴 여정을 진지하게 준비할 때다.

 

1. 아무런 진전 없던 2019년

 

현 상황을 평가하면, 북한의 핵·장거리 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축소·중단만이 실질적으로 전쟁위기를 감축하는 요소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북미가 ‘화염과 분노’, ‘내 책상 위의 핵 단추’ 같은 언사를 주고받던 2017년을 생각하면, 이러한 진전의 의미도 작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는 쉽게 이전의 상황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18년 4월 2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와 ‘핵·장거리 미사일 실험 중단’ 선언은 북미대화 국면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1994년 제네바합의처럼)서면합의서에 명시된 것이 아니라서 강제력이나 구속력이 훨씬 적다. 비핵화 협상 중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38north)는 위성사진 분석 결과를 토대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이 정상 가동 상태로 복귀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6월에는 영변 핵 시설에서 우라늄 농축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0월 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북한이 지난해 5월 폐기한 풍계리 핵실험장은 일부 보완작업을 거치면 재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도 11월 20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미대화가 시작된 이후로도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지속하고 있다고 답했다. 2019년 북한은 단·중거리 미사일 실험을 11월 28일까지 총 13차례 진행했다. 신형 탄도미사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 초대형 방사포 연속발사 등의 실험을 한 것으로 보아, 한미를 압박하는 동시에 미사일 능력을 제고하려는 목적도 분명해 보인다.

 

대규모 한미군사훈련 축소·중단 결정은 1차 북미정상회담과 싱가포르선언 직후 나온 것이니만큼, 미국이 북미대화가 좌초되었고 강력한 대북 압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재개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재개는 즉각 대규모 한미군사훈련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8년 이전부터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대규모 한미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은 ‘쌍중단’(freeze for freeze)이라고 불리며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대칭적 조치로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남북교류·경제협력은 UN 및 미국의 대북제재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어렵다. 판문점선언·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된 철도·도로·의료 협력 중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없다. 판문점 선언 1주년 행사에도 북측은 불참했다. 민간교류도 올해는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한편 10월 25일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명령했다. 이는 남한 정부에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든지, 아니면 강제 철거 위협을 감수하라는 엄포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이미 여러 차례 미국과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가동 재개를 합의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11월 25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서해 남북접경지역 창린도를 방문해 해안포 사격을 지시하였다. 국방부와 통일부는 이를 ‘9·19 군사합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창린도는 지난해 맺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해안포 사격을 할 수 없는 완충구역으로 설정된 지역 내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창린도 사격을 지시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문 대통령이 대표적 성과로 꼽는 남북군사합의조차 무력화할 수 있다는 압박이다.

 

2. 2020년 전망: 북미대화, 더 나아갈 수 있는가?

 

1)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면 달라지나?

 

북한 당국이 북미대화의 시한으로 설정한 2019년 ‘연말’이 다가오자, 3차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3차 회담이 성사될 것인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성사된다 하더라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은 ‘선 핵포기 후 제재 완화’라는 미국의 입장과 ‘선 제재 해제 후 비핵화’라는 북한의 입장이 부딪혀 결렬되었다. 현재까지도 이 구도는 깨질 기미가 없다. 2019년 북미대화의 진전이 없었던 것은 이 문제가 더는 일종의 ‘이벤트’로 풀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방증이다.

 

6월 30일 북미 정상의 판문점회동 후 2~3주 안에 재개하기로 했다던 실무협상은 10월 5일에서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되었다. 결과는 또 ‘노딜’이었다. 미국 인터넷 언론 복스(VOX)는 미국이 영변과 기타 핵시설 폐쇄 대가로 UN 대북 석탄·섬유 수출 제재를 36개월간 유예하는 방안을 제안할 방침이라고 보도했지만, 실제 협상에는 하노이회담과 비슷한 안이 제시됐다. 즉 제재 완화는 영변 해체와 같은 비핵화 초기 단계에서는 할 수 없고, 현 시점에서 제시할 것은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인도적 지원 확대 정도라는 것이다.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기자회견에서 “결렬은 미국이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핵 시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가 계속 유지되는가, 되살리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 입장에 달려 있다”는 말로 핵·ICBM 실험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 당국은 계속 ‘연말’이라는 시한을 강조하는 동시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11월 들어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 김영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등 대미협상 관련 인사들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완전히 다 철회해야 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연일 쏟아냈다. 그러나 11월 20일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미국은 시한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연말이라는 시한은 불행히도 그들(북한) 스스로에게 설정한 데드라인이 됐다”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연말이 지나면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공은 그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실무협상보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담판’을 선호한다. 하지만 비건 대표는 “(3차 북미정상회담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통령은 진짜 (비핵화) 협상을 원한다”며 최선희 부상과 자신의 협상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즉 사전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합의에 대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른 시일 안에 다시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낮다. 만약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하노이회담과 어떻게 다를지가 관건일 것이다.

 

한편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11월 30일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한미동맹에 치명적인 세 가지 폭풍, ‘퍼펙트 스톰’이 몰려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첫 번째 폭풍은 북미 핵 협상이 올 크리스마스 이전에 타결될 가능성이다. 이때 협상안은 북한은 영변 핵 시설만 폐기하고, 검증은 불가능하고, 미국은 대북제재를 해제하면서 많은 것을 양보하는 것이다. 현 한미 정상은 둘 다 대북협상에 많은 것을 걸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협상안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평화선언을 통해 한반도 적대 행위 종식을 선언할 수도 있다. 나머지 두 폭풍은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결렬과 이에 따른 주한미군의 일부·완전 철수다. 만약 빅터 차의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사실상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영구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 위기, 2020년 미 대선 등의 조건으로 미국이 전향적 안을 가져와 북미대화의 조기 타결이나 적어도 ‘스몰딜’ 타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하노이회담 당시에는 ‘뮬러 특검’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스캔들이 오히려 노딜 결정을 확고하게 했다. 따라서 빅터 차 석좌가 말한 것처럼 연내 북미실무회담 타결, 북미정상회담을 통한 공개적 선언을 단정할 근거는 최소한 아직까지는 부족해 보인다.

 

북한이 지난 10월 3일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호’ 발사 모습.

 

2) 북한의 ‘새로운 길’은 무엇인가?

 

북한의 유의미한 비핵화 조치 이전에는 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는 것은 미 의회에서 초당적 합의다. 북한 핵 시설 내역 신고와 검증 로드맵 제출, 영변과 영변 외의 추가 핵시설 폐기, 북 ICBM의 폐기 등 비핵화의 실질적 진입 없이 미국이 전면적 제재 완화로 먼저 입장을 선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쉽지 않다. 또한 지금까지의 입장을 보면 북한이 먼저 전향적인 태도로 나오기도 쉽지 않다.

 

북한이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은 어떤 길일까? 협상 시한을 설정하고 ‘새로운 길’을 언급하며 핵·ICBM 실험 재개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은 소위 ‘벼랑끝 전술’을 연상시킨다. 만약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깨고 전쟁위기 국면으로 가는 것은 피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협상을 압박하기 위해 핵·ICBM 실험 재개라는 가장 강력한 카드를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사상 초유의 강력한 경제제재를 겪고 있는 마당인데, 핵·ICBM 실험 재개는 즉각 추가 제재를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말 미국이 주장한 대로 대북 해상봉쇄를 실시하는 안이 되살아날 수 있다. 남한이나 중국·러시아 등도 대북제재 완화나 교류 사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가 어려워진다.

 

북한이 바라는 효과를 낼지도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협상에 대한 비판에 늘 “이제 적어도 핵이나 ICBM 실험은 없다”고 답하며, 북한의 핵·ICBM 실험 중단을 자신의 최대 성과로 대단히 강조해 왔다. 그런데 이 모라토리엄이 깨지면,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내 여론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쳐 북미협상 판 자체가 엎어질 위험이 있다.

 

2016~2017년의 4차·5차·6차 북 핵실험과 ICBM 발사도 한반도를 전쟁위기 직전으로 몰아넣은 지극히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런데도 이것이 결과적으로 ‘먹힌’ 것은 기존 미국 지도자들과는 다른 즉흥성을 지닌 트럼프 대통령, 박근혜 탄핵촛불과 문 대통령의 등장 등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같은 전술이 두 번 먹힐 것인가?

 

2020년에는 남한의 4월 총선, 미국의 11월 대선이라는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있으므로 이러한 시기에 북한은 새로운 제안이나 충격적 행보를 감행할 수도 있다. 다만 북한 이슈가 선거에 미칠 영향은 남한에서는 몰라도 (부정적인 방향이 아니라면) 미국에서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벼랑끝 전술이 아니라면 당분간 북한 정권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행보는,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2019년 보여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로는 핵·ICBM 실험 재개를 이야기할지언정 실제로는 UN이나 미국의 즉각 반발과 강경정책 회귀를 피하는 선의 행동으로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핵 능력·군사력 제고를 노리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남한·중국·러시아 등과의 관계로 경제제재 여파를 최대한 완화하려고 하면서, 북미대화의 판을 완전히 깨지 않고 장기화하는 것이다.

 

3. 북한, 현상 유지 가능할까

 

1) 대북제재의 효과가 나타나는가

 

북한이 이런 식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냐의 관건은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최고 지도부가 제재 해제를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것만 봐도 확실하다.

 

오늘날 북한경제는 과거와 근원적으로 다르다. 현재 북한에서는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가 경제 전반에서 통화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일종의 ‘부분적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으로 설명한다. 달러라이제이션은 달러(또는 외화)가 자국 통화를 대체하는 현상을 뜻한다. 현재 북한은 원화가 완전히 밀려난 상황은 아니지만, 달러와 위안화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장마당’으로 불리는 비공식부문은 북한경제에서 최소 30%, 최대 80%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서도 외화가 사용된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시장경제활동을 억압하는 대신 그 수익에서 조세를 걷어 재정을 충당한다. 외화를 사용하려면 해외로부터 외화를 유입해야만 하며, 그 주요한 통로는 중국과의 대외거래다. 이렇게 북한 경제가 예전처럼 폐쇄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제재는 전체 경제에 파급력을 가지게 된다.

 

2015년 10월,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를 관람하러 온 북한 주민들이 원화나 달러화로 막대풍선을 구입하고 있다. [출처: 로이터]

 

북한 경제 상황을 파악할 자료가 많지 않음에도, 2019년에는 전반적으로 대북제재의 영향이 점점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리뷰》 2019년 6월호 「북한의 새 경제와 대북제재: 분석과 가설」과 8월호 「북중무역통계로 본 대북제재하 북한경제」에 따르면 대북제재의 효과는 1단계-북한의 대외교역 충격, 2단계-(제1차) 소득 충격, 3단계-통화 충격 순서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1단계는 현재 UN 대북제재가 북한의 주요 수출 품목 수출 금지, 북한 해외 노동자 송환 등을 통해 북한으로의 외화 유입을 차단하는 목적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이에 따라 북한으로 유입되는 외화가 줄어들어 경제주체들의 소득 하락이 나타난다. 모든 경제활동에 외화가 활발히 사용되므로 이는 곧 실질 통화량 규모에 영향을 끼친다. 문제는 통화량 감소 → (시장)물가 하락 → 전반적 경제활동 위축 → (제2차) 소득 충격까지 이어질 가능성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경제는 근원적인 위기에 봉착한다. 김정은 시대 북한 경제의 특징인, 외화를 토대로 자원 동원과 경제주체들의 인센티브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경제활동과 당국의 재정을 확대하는 메커니즘이 붕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단계 교역 충격은 분명하게 관찰된다. 2010년 이후 북한의 대외거래는 사실상 중국에 집중되어, 중국의 비중이 90%에 육박했다. 북중 거래는 대북제재가 본격화된 2017년 이후 급락했다. 2017년 3월 북한의 대중국 수출은 전년 같은 달에 비해 50% 넘게 급락하기 시작하여 2018년에 이르러서는 하락률이 80~90%에 달한다. 그 결과 2018년 대중수출액은 1억 9천만 달러로 2017년 대비 88.2% 감소하였으며, 2016년에 비해서는 92.6% 감소하였다. 북한 대중수출의 80~85%를 차지하는 석탄·철강·철광석·수산물·의류 5가지 품목이 2018년부터 수출이 전면 금지된 만큼 예견된 일이다. 2019년 상반기에도 수출액은 1억 485만 달러로 2018년에 비해서는 상승했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역시 매우 적은 금액이다.

 

수입도 2017년 10월 이후부터 전년 같은 달에 비해 10% 이상의 급락세를 보이기 시작하여 2018년 말까지 계속 마이너스 추세를 이어간다. 2018년 대중수입액(원유 포함)은 25억 3천만 달러로, 2017년 대비 29.9%, 2016년 대비 26.1% 감소했다. 그러나 수입액 감소보다 수출액 감소가 커 대중 무역적자가 확대되었다. 중국이 원유를 양허성 차관 조건으로 북한에 공급하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원유를 제외하고 무역적자를 검토하면, 2016년까지 10억 달러 미만 → 2017년 16억 8천만 달러 → 2018년, 2019년 20억 달러 이상이 되었다.

 

2단계 효과인 제1차 소득 충격 역시 이미 진행 중으로 추정된다. 2019년 초반부터는 북한의 시장가격이 상품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첫째, 북한의 원화 환율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변동을 보이는 가운데 원화 표시 시장 상품가격만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는 실질 시장가격이라 할 수 있는 달러 표시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둘째, 시장가격의 하락은 특정 상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품목, 전반적인 시장물가의 하락으로 보인다. 셋째, 쌀과 같은 식량가격도 하락했다. 2018년 하반기 이후 북한의 식량사정이 악화되어,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에 인도적 식량지원을 요청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식량의 시장가격이 내려간 것이다. 종합하면 북한 시장가격의 전반적 하락 현상은 시장에 공급되는 통화량의 절대 규모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즉 대북제재의 효과가 이미 3단계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다만 수입 내역을 보면 2019년 중순까지 생산재·소비재 중 수입 제재 대상 품목을 제외하고는 크게 위축되지 않아, 생산 활동이나 일상생활은 아직 심각한 위협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기존에 갖고 있던 외화로 수입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아주 장기간 버틸 수 있는 만큼의 외화를 보유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미 외교정책연구소 벤자민 카제프 실버스타인 연구원은 38노스에 ‘2019년 10월 북한 경제: 경제 제재가 환율 변동을 확대하는가?’를 기고하여, 최근 북한 원-달러 환율의 변동 상황은 북한의 외화 보유량에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당국은 제재 이후에도 달러의 유입에 조응하여 원화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환율을 상당히 안정적으로 방어해 온 것으로 보이나, 최근 환율 변동 폭이 이전보다 급격히 커진 추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북한 경제의 시장화가 진전됨에 따라 경제의 효율성이나 생산 역량이 회복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 같은 극단적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대북제재하에서 경제상황의 악화는 피할 수 없다. 북한 당국이 최대한 버티기 위해 자체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정책으로는 원료·자재, 설비 및 제품의 국산화, 추가 경제 개혁, 대중 수입을 줄여 무역적자 줄이기 정도가 있으나 어느 것도 쉽지 않다.

 

2) 북한, 중국에 의존하며 핵보유국을 추구할 것인가?

 

북한 정권이 대북제재 하에서 버티기를 결정한다면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과의 협력이 가장 관건이다. 정치적으로도 2018~2019년의 남북·북미대화 국면에서 북중관계의 역할은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핵보유국을 추구하는 북한 정권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북한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의존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이 핵·ICBM 실험을 거듭하던 2017년까지 북중관계는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다. 북미·남북 간 분위기가 급반전된 2018년 초에도 중국은 ‘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2018년 3월,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북중관계 회복이 시작되었다. 중국을 후견 세력으로 끌어들여 북한의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한 의도였다. 중국 역시 무역과 대만 문제 등으로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의 정상회담 시기마다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과의 논의를 거쳤다. 올해 6월, 북중수교 70주년을 맞아 시 주석의 방북도 성사되었다. 시 주석은 방북 직전 이례적으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김정은 위원장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지지하고, 조선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지지하며, 관련된 대화와 협상에서 진전을 이루도록 기여하겠다”는 글을 기고했다. 이는 하노이회담이 실패한 이후에도 중국은 북한이 미국에 제기한 체제 안정 보장과 제재완화 요구에 공감하고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만약 중국이 당분간 북한에 비핵화 압박을 가할 의사가 없는 것이라면, 중국의 적극적 동참 여부가 대북제재의 관건인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압박할 수단이 상당히 줄어든다.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는 11월 발표한 「순망치한: 북중관계 재건」 보고서에서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현실적으로 인정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록 중국이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의사나 뚜렷한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을 몰아붙여 정권 붕괴 사태를 초래하는 것보다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북중관계의 전략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이후 핵·ICBM 실험을 재개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중국이 대북 압박 강화를 지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고 관측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미중갈등에 활용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주한미군 문제와 같은 자국의 관심사에 대한 개입을 강화할 수 있다. 북중 양국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축소와 한미일 군사동맹의 균열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이해관계가 같다.

 

북한이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정치적 후견 문제만이 아니라 대북제재의 가장 현실적인 돌파구라는 점에도 있다. 2018년도 북중무역액이 전년 대비 50%가량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아직 북중관계 회복이 대북제재 대폭 완화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미중 간 마찰이 심화되면 중국이 대북제재의 강도를 조정할 수 있다. 2019년에 들어 2018년에 비해 북한의 대중수출액과 수입액 양자가 회복되는 양상을 보인 것은 이미 그러한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중국 해관총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작년 5월부터 10월까지 쌀 1천 톤, 비료 16만 2천 톤을 북한에 무상 지원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시기에 원조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북한 경제는 이미 중국에 상당히 예속되어 있고, 이러한 전망하에서는 예속이 더더욱 심화된다. 북한 교역상대국 중 중국의 비중이 거대해진 주된 이유는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북한 천연자원 수입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인데, 북한 내부에도 이와 같은 상황은 문제라는 인식이 있다. 가공하지 않은 천연자원을 파는 대신 국내에서 가공해야 산업 발달에 도움이 되고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수출구조는 경제성장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의 투자와 기술 개발·교육·훈련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중국에 의한 정치적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2016년 이후 대북제재로 동남아시아, 홍콩, 대만 등과의 무역이 거의 중단되어 더욱 그렇다. 단적인 예로 2018년 북한의 수출 비중 1·2·3위 국가는 중국, 잠비아, 모잠비크다. 중국의 비중과 나머지 국가들의 비중은 비교도 할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띄운 신의주국제경제지대, 황금평경제특구, 압록강경제개발구, 청수경제개발구 등 북중접경지역 개발 프로젝트는 중국 자본의 대규모 유입을 기대한 것이다. 최근 선언한 금강산 관광지구 독자 개발도 중국인 관광객이 주 대상이다. 북한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2018년에 120만 명으로 전년 대비 50% 늘어나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데 이어 2019년에도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인데, 여기에는 시진핑 주석의 방북을 포함한 북중관계 개선이 큰 영향을 끼쳤다.

 

4. 한반도와 동아시아, 핵무장 경쟁의 시대로 접어드나?

 

1) 탈냉전 체제의 위기

 

앞으로 북한 정권이 계속 전면 비핵화 없이 경제제재 완화·체제 보장을 받아내려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을 현실적 조건으로 전제하고 핵 동결·일부 미사일 폐기 정도의 타협점이라도 모색해야 할까? 답은 여전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묵인하는 것은 일본과 남한의 핵무장론에 기름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동아시아 지역은 이미 미중이 세계 헤게모니를 놓고 격돌하는 속에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탈냉전’의 상징이었던 군축조약들이 무너지면서 각국의 군비 경쟁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고 있다.

 

1987년 체결한 미러(당시 소련) 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8월 2일 폐기되었다. 사거리 500~5500㎞의 중거리 미사일은 발사될 경우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데 1시간도 걸리지 않기 때문에 요격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륙간탄도미사일보다 우발적인 핵전쟁 유발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는 고려에서 INF를 통해 폐기를 합의했던 것이다. INF 폐기는 중국까지 포함한 군축조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지만, 미국은 그러한 구상이 실패한다면 중국을 염두에 둔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동아시아에 배치하는 구상도 함께 밝혔다. 미국 중거리 미사일의 유력한 배치지에는 미군 기지가 있는 남한과 일본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 미러 간 장거리 핵무기 감축을 위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New START)도 2021년 종료 예정이나 갱신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입국 간 영공 비무장 정찰을 허용하여 전면 충돌을 방지한 항공자유화조약(Treaty on Open Skies)도 미국은 탈퇴를 추진하고 있다.

 

2018년 미국의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는 핵무기의 실전 사용을 준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강도 핵무기 개발은 타격 범위를 줄이는 대신 한정된 지역과 표적을 초토화하는 실전형 핵무기 개발·배치를 의미하며, 저강도 핵탄두를 탑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해상발사 순항미사일(SLCM) 개발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ICBM과 전략폭격기 현대화 등 지상 기반 전략적 핵억제(GBSD)도 꾀하고 있다. 2019년 미 국방부 ‘핵 선제 사용 금지정책의 위험성’ 보고서는 핵 선제 사용 금지정책은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공격을 억제할 미국의 역량을 약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러 간 조약에 구속되어 있지 않았던 중국은 DF-26 미사일을 포함한 중거리 핵전력을 개발·보유하면서 INF 폐기에 영향을 미쳤다. 남중국해와 인도양에서의 미중 갈등을 이유로 1964년 첫 핵실험 때부터 지속해 온 ‘선제적 핵무기 사용 금지’ 노선도 재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아베 총리가 자신의 숙원으로 꼽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 추진 문제가 걸려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보유는 현재 한미일동맹의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의제들, 즉 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 동아시아 배치와 일본의 재무장, 한미일 핵 공유 옵션 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남한은 이미 미국의 사드(THAAD) 시스템이 배치된 것처럼,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나 핵 공유라는 시험대에 들 수 있다.

 

2) 위기를 틈타 확산되는 ‘남한 핵무장론’

 

이런 상황 속에서 ‘남한 핵무장’을 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무리한 한미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를 오히려 기회로 삼고 있다.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미국이 점점 믿기 어려워지고, 돈은 점점 더 많이 내라고 하니, 차라리 우리 스스로를 지킬 (핵) 군비 확장에 나서자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는 11월 19일 “미국에 묶인 ‘5大 안보 족쇄’ 풀자”란 특집기사를 내고, 미국이 기존의 5배인 50억 달러(약 5조 8000억 원) 방위비분담금 청구서를 내미는 데 대해 미국이 설정한 ‘안보 족쇄’를 푸는 호기(好機)로 삼고 ‘5대 안보 역(逆)청구서’를 제시하자고 주장했다. 이 기사와 후속 기사들에 따르면 5대 안보 역청구서 내역은 ① 핵추진잠수함 도입 ②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 ③ 한미미사일지침 개정을 통한 미사일 사거리 및 연료 제한 해제 ④ 미국의 핵우산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수준의 핵 공유로 전화 ⑤ 첨단 전략자산 제한 해제다.

 

지난 11월 12일, 자유한국당 북핵외교안보특별위원회 및 핵포럼은 '한미 핵공유협정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 토론회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했다.

 

핵(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은 최근 해군 당국이 관련 태스크포스를 운용하고 있음이 드러나 논란이 되었다. 10월 10일 국정감사에서 심승섭 해군참모총장은 북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지속적으로 추적하여 격멸하는 데에는 장기간 수중 작전이 가능한 핵추진 잠수함이 가장 적합하다고 발언했는데, 북한이 9월 신형 SLBM인 북극성-3형의 시험 발사에 성공하면서 이러한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핵추진잠수함은 핵을 동력원으로 하는 잠수함으로, 핵 공격무기를 탑재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핵무기는 아니지만 핵의 군사적 사용에 해당한다. 언제 어디서 발사할지 추적하기 힘든 SLBM은 그 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로 핵추진잠수함에 탑재되어 탄도미사일핵추진잠수함(SSBN)의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조선일보도 일단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하면 향후 SLBM을 탑재해 북한은 물론 주변국에 대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까지 언급하고 있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요구는 미일원자력협정과의 형평성을 빌미로 정당화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얻을 수 있는 플루토늄은 핵무기 개발에 사용되는데, 일본은 미일원자력협정을 통해 핵무기 비보유국 중 유일하게 플루토늄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현재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은 약 46톤으로, 핵폭탄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우라늄 농축 제한도 한국보다 느슨하다.

 

조선일보는 원자력협정을 일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자고 요구한다. 현 한미원자력협정은 한국의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한국의 ‘핵주권’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한미원자력협정이 핵추진잠수함과 연관되는 것은 농축우라늄을 핵추진잠수함의 연료로 쓰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20% 미만 저농축만 가능하며 여기에도 ‘평화적 이용’, ‘(미국과) 서면 합의’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세 번째는 한미미사일지침이 ‘미사일 주권’을 제약하므로 개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는 요구다. 한미미사일지침은 액체연료 로켓보다 신속한 이동과 발사가 가능한 고체연료 로켓 개발에 제한을 두고 미사일 사거리도 800㎞까지로 제한한다. 조선일보의 주장은 북한과 일본 등이 미사일·로켓 능력을 급속도로 발전시키는 것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일본국헌법 제9조(평화헌법)에 따라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지 않고 있으나, 인공위성 발사 등을 명목으로 개발한 고체연료 로켓은 쉽게 ICBM으로 전용이 가능하며 사거리 제한도 없다. 북한은 주지하다시피 초장거리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함 다양한 사거리의 미사일을 갖추고 있고, SLBM인 북극성 계열 미사일, 이스칸데르 미사일, 신형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 등이 모두 고체연료 기반이다.

 

한편 보수 야당과 언론들은 핵공유론을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10월 발표한 외교안보 정책비전인 『민평론』에서 ‘한미 핵공유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원유철 의원 등이 주장해 온 핵공유론을 당론 급으로 만든 것이다. 11월 19일 나경원 원내대표도 “핵공유협정 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된 참조 사례인 NATO 방식의 핵 공유란 NATO 회원국에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하고, 핵무기 사용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미국이 갖지만 관리 운용에 대한 전략을 공유하고 훈련도 함께 하는 방식이다. 핵무기가 영토 안에 배치돼 있지 않은 국가들도 미국의 핵 정책 및 운용 협의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화한다. 또 일각에서는 전술핵 재배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소 냉전의 종식으로 1991년 미국은 남한에 배치했던 전술핵을 모두 철수했고, 같은 해 12월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그런데 29년 만에 다시 미국 전술핵무기를 들여오자는 것이다.

 

남한 핵무장론은 동아시아 핵전쟁 위기를 심화시키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북미대화의 교착, 북한의 핵 능력 발전 및 핵보유국 지위 지향, 트럼프 시대 미국의 일방주의 등과 맞물려서 확산되고 있어 앞으로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당장 포기하지는 않더라도, ‘플랜B’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대중적으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실질적 핵 보유를 묵인하는 것은 현실적 선택지가 될 수 없다. 또한 평화세력이 외쳐온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므로, 보수세력의 핵무장 추구를 비판하고 저지하는 운동이 시급하다.

 

5. 결론: 반핵평화를 원칙으로 대중적 실천을 만들어야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진전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직 아니지만, 적어도 단판 승부로 모든 문제가 일시에 불식될 것이라는 환상은 사라지고 있다. 점차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동아시아 내 갈등과 군비경쟁 한복판에 한반도 위기가 있고, 동아시아 위기와 한반도 위기는 상호작용하여 심화될 것이다.

 

결론에서는 주관적 기대를 버리고 적극적 평화주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군축조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핵무기금지조약 비준 추진 운동에 주목한다. 격변하는 정세를 헤쳐나가기 위한 ‘기초체력’으로서 대중적 반핵평화운동과 국제연대 강화가 시급하다.

 

1) 민족자주인가, 평화인가

 

‘민족’, ‘자주’와 ‘평화’는 원칙적으로는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에서는 ‘민족’에 대한 믿음이, 또는 ‘자주’의 추구가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 객관적 정세 인식이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20일 MBC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에서 “남북관계는 제가 보람을 굉장히 많이 느끼는 분야다. 2017년 상황과 지금 상황을 비교해 봐라. (···) 지금은 대화 국면에 들어서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평하는 만큼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 기조는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 문재인 정권에서부터 여당인 민주당과 그 지지층, 그리고 사회운동의 적지 않은 부분이 모두 현 상황이 ‘위기’라고 인식하지 않고, 같은 민족인 북측이 핵을 우리에게 겨누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핵 문제가 어찌 될지는 몰라도) ‘남북경제공동체’를 건설하여 번영할 기대를 공유하고 있다. 혹은 위기라고 하더라도 그 원인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만 있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2020년 북한의 ‘새로운 길’이 핵 실험 재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북한 당국이 이미 천명한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마냥 믿으며 갈 수 있을까?

 

한편 북핵 비판과 전체 동아시아 정세 고려가 동반되지 않는 민족교류와 남북경제협력 확대 주장은 실현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주관적 희망에 매달려 진짜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키고 방해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3월 1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발표한 ‘신한반도체제’ 구상에는, ‘새로운 100년’을 선포한 만큼 온갖 비전이 담겨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동북아 신안보질서, 남북경제공동체를 중심으로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을 연계하는 평화경제, 사실상의 통일 상태로서의 남북연합, 평화와 번영의 신동북아시대다. 그러나 신한반도체제 형성의 출발점으로 제시되는 북한 비핵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없다.

 

평화에 우선하는 자주 추구는 여러 이슈에서 복잡한 쟁점을 낳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한 예다. 문재인 정권은 ‘자주국방’을 위해 전작권을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고, 많은 운동단체도 이를 지지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전작권 전환에 맞춰, 미국 측 위기 상황에도 한미연합사령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한미 동맹위기관리 각서’를 개정하는 것을 요구했다. 전작권 전환 후에는 호르무즈 해협이나 남중국해 등 한국과 직접 연관이 없는 해외 분쟁 지역에도 미국이 요구하면 한국군을 파병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자주국방론과 함께 가는 “비대칭적인 한미동맹을 호혜평등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는 이를 반박하기 어렵다. ‘호혜평등한 동맹관계’를 위해 미국의 부담도 나눠 가져가라고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동맹국들에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편 전작권이 환수된다면 더더욱 남한 핵무기 배치·핵공유가 필수적이란 주장도 나온다. 핵 자산도 없고 핵전쟁 전략도 모르는 한국군이 북한을 상대로 어떻게 전시작전을 지휘하겠냐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남한 핵무장론과 NL진영의 북핵 옹호론은 민족 주권의 이름 아래 사실상 완전히 같은 논리를 공유하며 평화를 위협한다. “강대국의 침략과 간섭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 민족도 독자적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은 ‘핵 주권’ ‘미사일 주권’을 되찾고 미국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자고 한다. 통일이 되면 북한의 핵무기가 곧 민족 전체의 핵무기이니 북한 비핵화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 나아가 동아시아 비핵지대 형성이라는 지향은 평화운동 안에서조차 쉽게 합의되지 못하고 있다.

 

폭력과 혼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동 지역의 현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냉전 이후 미국의 지배력이 쇠퇴하면서 중동에는 여러 지역 강국의 다극적 체계가 부상했다. 지역 강국들은 각자의 국익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타국의 갈등·봉기·분쟁·내전에 개입하고, 때에 따라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하기도 했다. 이는 지역 전반에 불안정과 폭력을 낳았고 그 결과 ‘중동의 무질서’가 등장했다. 동아시아에서도 미중갈등이 심화되며 각국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각국은 강력한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적 기초로 삼고 있고, 서로 간에 역사와 영토에 관련된 오래된 쟁점들도 많다. 이 속에서 지역의 평화를 추구하는 대신, 기존의 국가 간 갈등을 이용하고 증폭시키려는 행보를 취한다면 국가 간 충돌이 다층적으로 발생하여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안적인 지역 질서 구축을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2) 핵무기금지조약 비준 촉구 운동에 함께 하자

 

올해 5월 31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진행된 ‘비핵·평화를 위한 한일 국제포럼’ 기자회견. 5월 30일~31일 양일 간의 포럼에는 일본에서 온 100여명을 포함해 연인원 300여명의 한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했다.

 

북핵 위기, 남한 핵무장론, 동아시아 핵군비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의 물질적 조건을 제한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했을 때, 현재 세계 평화운동의 공동 이니셔티브로 추진되고 있는 핵무기금지조약의 발효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것이 될 수 있다. 2017년 7월 UN 총회에서 통과된 핵무기금지조약(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TPNW)은 전 세계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로 나아간다는 목표로 핵무기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사상 최초의 국제적 합의다. 이 조약은 가입국이 핵무기의 개발, 시험, 생산, 비축, 배치 전달, 사용, 사용 위협을 하는 것을 전면 금지한다. 핵보유국의 핵군축을 강제하지 못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핵무기금지조약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최소 50개국의 서명과 비준이 필요한데, 11월 25일 현재 80개국이 서명하고 34개국이 비준했다.

 

그러나 핵무기 공식 보유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과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은 핵무기금지조약을 보이콧하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남한과 일본도 ‘북한의 핵 위협’을 근거로 조약에 반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만, 남한의 핵무기금지조약 비준을 촉구하는 운동은 남한 핵무장론과 북핵 옹호론 양자를 비판하며 반핵평화 이념을 대중화하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실현으로 나아가는 주요한 실천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한반도 핵 위기의 당사자이자 미국의 핵우산 국가인 남한의 핵무기금지조약 비준은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2019년 5월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한 한일 사회운동단체가 공동주최한 ‘비핵·평화를 위한 한일 국제포럼’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향한 대중운동 확대와 남북한, 일본 및 핵무기보유국들에 핵무기금지조약 비준을 요구할 것을 결의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가 호소하는 핵무기금지조약 비준 촉구 서명이라는 매개와, 2020년 NPT평가회의라는 1차적 수렴점도 제시되었다. 일본 평화운동과 연대하여 한일 양국의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함께 요구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비핵지대 창설을 견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폭 투하 75주년, 한반도 해방과 분단 75주년을 맞는 내년 2020년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미국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의한 한반도 출신 피해자는 사망자 5만 명, (당시) 생존자 5만 명, 총 10만 명으로 전체 피폭자의 1/10가량으로 추정된다. 말하자면 남북한도 피폭의 ‘당사자’인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미국 트루먼·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한반도 북부에 대한 원폭 투하를 진지하게 고려했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를 “비장한 각오로 환영”했다. 한반도 핵전쟁위기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이 일제를 패퇴시킨 원폭을 찬양하고 미국의 한반도 핵 정책을 지지해 온 세월 속에서, 남과 북, 좌와 우를 막론하고 핵무기 반대 대신 핵무기 숭배가 한국에 자리 잡았다. 이는 우리 역사의 모순이고 비극이다. 2020년, 핵무기금지조약 비준 촉구를 중심으로 대중적 반핵운동과 한일 국제연대를 강화하는 것은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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