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겨울호 독자에게
「한국 경제, 높은 불확실성과 취약한 대응 여력」 독자에게
김태훈(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많은 독자께서 한국경제 전망에 대해 여러 의견을 주셨습니다. 우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제약에 대해 보충 설명하겠습니다.
통화·재정정책이 매우 제약적이라는 사실은 현재 경제 위기의 위험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 글을 발표한 후 불과 3개월 동안 경제 전망이 급변했습니다. 최악의 2019년을 지나 숨을 고르는가 했더니, 더 심각한 문제들이 몰아쳤습니다. 한국경제 전망의 결론이었던 ‘높은 불확실성과 취약한 대응 여력’이 지금 ‘임박한 위기’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우한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중국의 생산과 소비가 급감했고, 여행과 무역도 위축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도 2월 중순을 지나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했고, 3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각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급증했습니다. 미국 연준이 긴급 금리 인하를 했고, G7 재무장관, 중앙은행 긴급 전화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의 대응이 나타났습니다. 단순히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위험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미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세계 경제 상황에 예측하지 못한,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나타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코로나 19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신흥국의 경기회복이 생각보다 약해 세계은행이 올해 1월에 경제 전망을 하향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 경제 충격은 현실입니다. 한국은행은 2020년 경제성장 전망을 2.3%에서 2.1%로 하향했고,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1분기(-0.4%)에 못 미칠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불안 심리 극대화로 숙박, 음식, 여행업 등 서비스업에 즉각적인 영향이 나타났습니다. 지난 2월 하루평균 수출(18억 3000만 달러)은 전년동기대비 11.7% 감소했는데 특히 대중국 수출이 21.1% 급감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은행은 금리를 동결했습니다. 이미 14일에 이주열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는 부작용도 있다.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습니다. 금리 인하라는 총알이 몇 개 없기 때문에 실물경기 지표를 실제 확인하고 금리를 낮추겠다는 입장입니다. 한국에서 경제 위기 상황에도 통화정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제약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편 정부·여당은 메르스보다 더 큰 규모의 추경예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정정책은 개방경제에서는 이론적으로 통화정책보다 효과가 작지만, 통화정책의 제약을 보충합니다. 재정정책은 국가가 유효수요를 만들어 단기적으로 경기침체를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민간투자의 구축 효과도 있을 수 있고,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지면서 원리금 상환의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한 경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이번 추경처럼 예상하지 못하는 지출이 발생하고 실업급여 등 의무 재정지출은 증가하며 세입은 예상보다 줄어들기 때문에 국가채무비율은 예상보다 빠르게 높아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문재인 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46.4%까지 높이는 방안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국회예산정책처(NABO)의 분석을 인용해서 거시경제 상황이 악화할 경우 국가채무비율이 더 빠르게 증가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NABO도 낙관적이라는 비판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은 주류 경제학과 대체로 일치합니다. 차이는 해결책에 있습니다. 민주당이나 정의당은 제약이 있더라도 재정정책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미래통합당 등은 재정위기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주장합니다. 모두 구조적 위기를 부정하는 주장들입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방향은 새로운 사회경제 구조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장 무엇을 해야 하냐고 질문한다면,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역전할 수는 없더라도 나빠지는 속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답하겠습니다. 장기침체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노동자계급이 대안적 주체로 형성될 가능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어려운 길이지만, 그 길밖에 없습니다.
대안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쟁점들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원칙에서 출발할 것인지만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인구감소가 경제에 주는 마이너스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선 청년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기술변화에 조응하는 적절한 교육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직업훈련, 취업 지원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효과적일 수 있도록 노동자 운동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일-가정 양립이라는 목표가 오히려 여성의 이중부담이 되고, 저임금·단시간 일자리가 양산되는 문제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다음으로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는 노동조합의 집단적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조조정의 원인에 따라 노동조합의 대응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단기 경기변동으로 인한 문제의 경우 노동조합은 보통 잔업 특근 축소로 고용 변동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하거나, 비정규직 해고 또는 아웃소싱을 용인하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방식입니다. 기술변화로 인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요구하거나, 전환 배치를 요구하며 고용 조정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사회적 대책이 취약해 이러한 비용이 개인에게 전가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제조업 구조조정은 경기변동이나 기술변화보다는 장기간의 수익성 위기가 핵심 원인입니다. 정부의 산업정책이나 구제금융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구조조정 대응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노동자 운동의 궁극적 지향이 경영과 생산과정 전반을 노동자가 통제하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지를 위한 재정확대와 국가채무비율 상승은 다른 문제입니다. 세금을 더 거둬서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 예산 비중을 높일 수도 있고, 세출 항목을 조정해 국방비나 SOC 같은 다른 세출을 줄여 복지예산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이라는 관점에서 복지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다만 사회정책은 분절적 성격으로 인해 노노 갈등과 같은 역효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현실적인 재정이라는 문제가 있으므로 다양한 복지정책 중 무엇이 우선인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를 두고 논란이 되는 것이죠. 특히 노동조합이 미조직 실업·반(反)실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복지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은 이미 오래된 쟁점입니다.
증세를 논의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인세 인상만 요구한다면 오히려 복지 확대에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진보진영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수준의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법인세만으로 불가능하며 결국 소득세와 소비세도 함께 증가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금융 세계화라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없이 법인세 인상만 주장하면, 자본의 해외유출 피해는 다시 노동자에게 돌아옵니다.
문재인 정부는 총선에 몰두해 구조적 위기에 진지하게 대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기는 더 심화할 것입니다. 이 비판은 노동자 운동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이 노동조합을 통해 경영과 생산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산업·기업·개별적 이해관계를 넘어 보편적 대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통화·재정정책이 매우 제약적이라는 사실은 현재 경제 위기의 위험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 글을 발표한 후 불과 3개월 동안 경제 전망이 급변했습니다. 최악의 2019년을 지나 숨을 고르는가 했더니, 더 심각한 문제들이 몰아쳤습니다. 한국경제 전망의 결론이었던 ‘높은 불확실성과 취약한 대응 여력’이 지금 ‘임박한 위기’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우한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중국의 생산과 소비가 급감했고, 여행과 무역도 위축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도 2월 중순을 지나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했고, 3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각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급증했습니다. 미국 연준이 긴급 금리 인하를 했고, G7 재무장관, 중앙은행 긴급 전화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의 대응이 나타났습니다. 단순히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위험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미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세계 경제 상황에 예측하지 못한,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나타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코로나 19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신흥국의 경기회복이 생각보다 약해 세계은행이 올해 1월에 경제 전망을 하향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 경제 충격은 현실입니다. 한국은행은 2020년 경제성장 전망을 2.3%에서 2.1%로 하향했고,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1분기(-0.4%)에 못 미칠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불안 심리 극대화로 숙박, 음식, 여행업 등 서비스업에 즉각적인 영향이 나타났습니다. 지난 2월 하루평균 수출(18억 3000만 달러)은 전년동기대비 11.7% 감소했는데 특히 대중국 수출이 21.1% 급감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은행은 금리를 동결했습니다. 이미 14일에 이주열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는 부작용도 있다.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습니다. 금리 인하라는 총알이 몇 개 없기 때문에 실물경기 지표를 실제 확인하고 금리를 낮추겠다는 입장입니다. 한국에서 경제 위기 상황에도 통화정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제약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편 정부·여당은 메르스보다 더 큰 규모의 추경예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정정책은 개방경제에서는 이론적으로 통화정책보다 효과가 작지만, 통화정책의 제약을 보충합니다. 재정정책은 국가가 유효수요를 만들어 단기적으로 경기침체를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민간투자의 구축 효과도 있을 수 있고,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지면서 원리금 상환의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한 경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이번 추경처럼 예상하지 못하는 지출이 발생하고 실업급여 등 의무 재정지출은 증가하며 세입은 예상보다 줄어들기 때문에 국가채무비율은 예상보다 빠르게 높아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문재인 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46.4%까지 높이는 방안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국회예산정책처(NABO)의 분석을 인용해서 거시경제 상황이 악화할 경우 국가채무비율이 더 빠르게 증가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NABO도 낙관적이라는 비판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은 주류 경제학과 대체로 일치합니다. 차이는 해결책에 있습니다. 민주당이나 정의당은 제약이 있더라도 재정정책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미래통합당 등은 재정위기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주장합니다. 모두 구조적 위기를 부정하는 주장들입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방향은 새로운 사회경제 구조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장 무엇을 해야 하냐고 질문한다면,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역전할 수는 없더라도 나빠지는 속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답하겠습니다. 장기침체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노동자계급이 대안적 주체로 형성될 가능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어려운 길이지만, 그 길밖에 없습니다.
대안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쟁점들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원칙에서 출발할 것인지만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인구감소가 경제에 주는 마이너스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선 청년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기술변화에 조응하는 적절한 교육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직업훈련, 취업 지원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효과적일 수 있도록 노동자 운동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일-가정 양립이라는 목표가 오히려 여성의 이중부담이 되고, 저임금·단시간 일자리가 양산되는 문제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다음으로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는 노동조합의 집단적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조조정의 원인에 따라 노동조합의 대응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단기 경기변동으로 인한 문제의 경우 노동조합은 보통 잔업 특근 축소로 고용 변동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하거나, 비정규직 해고 또는 아웃소싱을 용인하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방식입니다. 기술변화로 인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요구하거나, 전환 배치를 요구하며 고용 조정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사회적 대책이 취약해 이러한 비용이 개인에게 전가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제조업 구조조정은 경기변동이나 기술변화보다는 장기간의 수익성 위기가 핵심 원인입니다. 정부의 산업정책이나 구제금융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구조조정 대응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노동자 운동의 궁극적 지향이 경영과 생산과정 전반을 노동자가 통제하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지를 위한 재정확대와 국가채무비율 상승은 다른 문제입니다. 세금을 더 거둬서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 예산 비중을 높일 수도 있고, 세출 항목을 조정해 국방비나 SOC 같은 다른 세출을 줄여 복지예산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이라는 관점에서 복지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다만 사회정책은 분절적 성격으로 인해 노노 갈등과 같은 역효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현실적인 재정이라는 문제가 있으므로 다양한 복지정책 중 무엇이 우선인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를 두고 논란이 되는 것이죠. 특히 노동조합이 미조직 실업·반(反)실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복지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은 이미 오래된 쟁점입니다.
증세를 논의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인세 인상만 요구한다면 오히려 복지 확대에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진보진영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수준의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법인세만으로 불가능하며 결국 소득세와 소비세도 함께 증가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금융 세계화라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없이 법인세 인상만 주장하면, 자본의 해외유출 피해는 다시 노동자에게 돌아옵니다.
문재인 정부는 총선에 몰두해 구조적 위기에 진지하게 대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기는 더 심화할 것입니다. 이 비판은 노동자 운동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이 노동조합을 통해 경영과 생산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산업·기업·개별적 이해관계를 넘어 보편적 대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개혁의 몰락: 21대 총선 전후 정치 전망」 독자에게
한지원(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개혁의 몰락: 21대 총선 전후 정치 전망」(이하 「개혁의 몰락」)에 대해 독자들이 여러 질문을 주셨습니다. 그중 몇 가지를 추려 답을 하겠습니다.
먼저, 가장 많았던 질문은 글의 끝부분에 서술됐던 조선 후기와 현 정세의 비교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지금 정세를 조선 말기와 비교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조만간 다른 나라의 속국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20세기 초의 국제정세와 지금 정세가 차이가 있는데, 단순 비교가 가능한가?” 등의 질문이었습니다.
필자가 현 정세와 조선 말기를 비교한 이유는 당시와 지금이 역사의 분기점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고, 두 시기의 비교를 통해 지배계급의 선택이 나라 전체를 어떻게 위험에 빠뜨리는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계간 사회진보연대»의 여러 글에서 반복해서 분석하고 있듯, 21세기 한국사회는 1960년대 이후 반백 년의 추격성장을 끝내고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의 경제위기를 겪은 적은 있어도 장기간의 정체, 하락을 겪은 적은 없습니다. 고도성장 제도를 일본처럼 개혁해 저성장에 적응하든지, 아니면 남부 유럽이나 남미처럼 잦은 경제위기와 사회해체를 겪을 것입니다. 둘 다 자본주의가 성장을 멈추고 지속해서 붕괴하는 모습이긴 합니다만, 고통의 강도는 천지 차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일본의 길과 남미의 길이 갈리는 분기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와 대안세계의 갈림길에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대안세계 이념의 부재로 당장은 이렇게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은 오늘날보다 더한 양극단의 갈림길 사이에 있었습니다. 봉건제의 붕괴가 임계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서구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진출로 인해 조선은 봉건제 변혁과 식민지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분기점에서 나라를 나쁜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힘은 조선 말 지배계급의 행태에서 적나라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조선 지배계급은 국제정세를 전혀 읽지 못했습니다. 예로 1840년 아편전쟁에 대해 일본이 객관적 분석을 하고 있을 때 조선 엘리트들은 청나라 보고서를 읽고 천자의 은혜로 행복한 결말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다음으로, 조선 지배계급은 마지막까지 봉건제 변혁의 방향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봉건제 혁파의 핵심은 군주가 아니라 시민이 만든 법에 의해 작동하는 민족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실시하고 19세기 말에는 의회까지 만들었습니다. 반면 조선 지배계급은 20세기 초까지도 대한제국 같은 전제군주정을 만들려 했습니다. 이렇게 국제정세를 읽지 못하고, 변화의 방향을 찾지 못한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망국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사회주의 이념이나 노동자 운동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노동자계급 주도의 봉건제 변혁은 당연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문재인 정부와 개혁세력으로 불리는 집권세력이 보여주는 행태는 어떨까요? 만약 일본과 남미의 두 갈래 길이 있다면, 이들이 한국사회를 이끄는 방향은 정확히 후자입니다. 조선 말기와 이유는 같습니다. 국제정세를 읽지 못하고, 변화의 방향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개혁의 몰락」 본문에서 충분하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가지만 첨언하자면, 남미는 한국의 집권세력이 집착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이고, 일본은 현대 정치체제의 표준인 의원내각제입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계기는 국내 불만을 민족주의로 무마해보려 벌인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였고, 일본이 우익의 발호 속에서도 대외관계를 안정화할 수 있는 이유는 평화헌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민족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민족사관의 그 ‘민족’인지에 대해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민족사’라는 표현을 쓴 것은,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보편적 이행의 역사’로서 세계사와 구분되는 ‘특수한 이행의 역사’로서 민족사란 의미였습니다. 한국의 민족사는 봉건제 변혁에 실패한 상태로 일제에 이식된 식민지 자본주의를 거쳐 미국에 종속된 재벌 주도 자본주의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의원내각제라는 현대의 일반적 정치체제 대신 미국에 미달하는 남미형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이런 특수한 역사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의원내각제로 가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느냐?”,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지배계급의 정치체제 아니냐?” 등의 정치체제 대안과 관련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궁극적 대안은 노동자계급이 평의회를 통해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고 통제하는 경제에서 시민 모두가 직접적, 간접적 방식으로 참여하는 정치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런 대안은 아직은 지향일 뿐 당장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현재 필요한 것은 역사적 분기점에서 최악의 선택을 이어가는 지배계급을 과학적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또한 노동자운동이 경제적, 정치적 운동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치적 변화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집착하는 현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것은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과제이며, 의원내각제는 대안이라기보다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비교 대상으로써 제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가장 많았던 질문은 글의 끝부분에 서술됐던 조선 후기와 현 정세의 비교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지금 정세를 조선 말기와 비교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조만간 다른 나라의 속국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20세기 초의 국제정세와 지금 정세가 차이가 있는데, 단순 비교가 가능한가?” 등의 질문이었습니다.
필자가 현 정세와 조선 말기를 비교한 이유는 당시와 지금이 역사의 분기점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고, 두 시기의 비교를 통해 지배계급의 선택이 나라 전체를 어떻게 위험에 빠뜨리는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계간 사회진보연대»의 여러 글에서 반복해서 분석하고 있듯, 21세기 한국사회는 1960년대 이후 반백 년의 추격성장을 끝내고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의 경제위기를 겪은 적은 있어도 장기간의 정체, 하락을 겪은 적은 없습니다. 고도성장 제도를 일본처럼 개혁해 저성장에 적응하든지, 아니면 남부 유럽이나 남미처럼 잦은 경제위기와 사회해체를 겪을 것입니다. 둘 다 자본주의가 성장을 멈추고 지속해서 붕괴하는 모습이긴 합니다만, 고통의 강도는 천지 차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일본의 길과 남미의 길이 갈리는 분기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와 대안세계의 갈림길에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대안세계 이념의 부재로 당장은 이렇게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은 오늘날보다 더한 양극단의 갈림길 사이에 있었습니다. 봉건제의 붕괴가 임계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서구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진출로 인해 조선은 봉건제 변혁과 식민지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분기점에서 나라를 나쁜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힘은 조선 말 지배계급의 행태에서 적나라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조선 지배계급은 국제정세를 전혀 읽지 못했습니다. 예로 1840년 아편전쟁에 대해 일본이 객관적 분석을 하고 있을 때 조선 엘리트들은 청나라 보고서를 읽고 천자의 은혜로 행복한 결말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다음으로, 조선 지배계급은 마지막까지 봉건제 변혁의 방향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봉건제 혁파의 핵심은 군주가 아니라 시민이 만든 법에 의해 작동하는 민족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실시하고 19세기 말에는 의회까지 만들었습니다. 반면 조선 지배계급은 20세기 초까지도 대한제국 같은 전제군주정을 만들려 했습니다. 이렇게 국제정세를 읽지 못하고, 변화의 방향을 찾지 못한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망국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사회주의 이념이나 노동자 운동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노동자계급 주도의 봉건제 변혁은 당연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문재인 정부와 개혁세력으로 불리는 집권세력이 보여주는 행태는 어떨까요? 만약 일본과 남미의 두 갈래 길이 있다면, 이들이 한국사회를 이끄는 방향은 정확히 후자입니다. 조선 말기와 이유는 같습니다. 국제정세를 읽지 못하고, 변화의 방향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개혁의 몰락」 본문에서 충분하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가지만 첨언하자면, 남미는 한국의 집권세력이 집착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이고, 일본은 현대 정치체제의 표준인 의원내각제입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계기는 국내 불만을 민족주의로 무마해보려 벌인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였고, 일본이 우익의 발호 속에서도 대외관계를 안정화할 수 있는 이유는 평화헌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민족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민족사관의 그 ‘민족’인지에 대해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민족사’라는 표현을 쓴 것은,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보편적 이행의 역사’로서 세계사와 구분되는 ‘특수한 이행의 역사’로서 민족사란 의미였습니다. 한국의 민족사는 봉건제 변혁에 실패한 상태로 일제에 이식된 식민지 자본주의를 거쳐 미국에 종속된 재벌 주도 자본주의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의원내각제라는 현대의 일반적 정치체제 대신 미국에 미달하는 남미형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이런 특수한 역사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의원내각제로 가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느냐?”,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지배계급의 정치체제 아니냐?” 등의 정치체제 대안과 관련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궁극적 대안은 노동자계급이 평의회를 통해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고 통제하는 경제에서 시민 모두가 직접적, 간접적 방식으로 참여하는 정치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런 대안은 아직은 지향일 뿐 당장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현재 필요한 것은 역사적 분기점에서 최악의 선택을 이어가는 지배계급을 과학적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또한 노동자운동이 경제적, 정치적 운동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치적 변화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집착하는 현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것은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과제이며, 의원내각제는 대안이라기보다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비교 대상으로써 제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