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경제위기, 노동조합 운동의 대응
코로나19 확산이 경제위기로 이어지며 심각한 고용위기가 전개되고 있다.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고용악화가 드러난다. 전 산업의 고용이 크게 축소되는 것은 물론 무급휴직이 지난해의 3배로 늘었다가 차츰 해고로 이어지는 중이다. 전일제(36시간 이상) 노동자의 1/3이 단시간 노동자로 전환되는 조업단축이 진행 중이다. ‘고용대란’이라는 표현조차 너무나 한가하고 건조하게 느껴진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도 최근 진행 중인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고용위기 대응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정책요구를 제시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고용·노동위기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 다만 대응이 진행되면서 쟁점은 드러나고 있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중간점검’의 의미로 검토해보자.
1) 코로나19 고용위기에 대한 노동조합 대응의 곤란
전체 노동시장에서는 심각한 고용위기가 이미 나타나고 있지만, 재벌 대기업과 공공부문에는 위기가 아직 본격화되진 않았다. 수출제조업이 4월부터 가동률이 떨어지고 조업단축도 발생하고 있으나, 아직 고용조정으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다. 물론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19 확산과 그로 인한 경제상황 악화가 장기화되고 있어 있으므로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공부문은 지난 1998년, 2008년에는 정부 정책으로 인력감축, 임금삭감, 외주화, 민영화가 진행된 경험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심각하게 침식할 수 있는 이러한 수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총선을 고려하여 추진하려 하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는 두고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양대노총 산하 노동조합의 주력 부문에서는 본격적인 위기는 아직 먼 이야기이다. 위기는 주로 영세 자영업, 노조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업종, 중소영세 사업장이거나 하청 비정규직에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양대노총의 주력 부문은 재벌, 공공부문 노동자들이다. 이 때문에 현재 경제위기에서 가장 먼 부문에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 상당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라는 지향이 무색하게도 외부적 위기에 대해서 재벌·공공부문 노조는 ‘남의 일’로 인식하거나 방어적 태도를 취하기 쉽다.
또한 고용위기가 당장 집중된 업종은 음식 숙박업, (소규모)도소매업, 교육(사설 학원) 등이다. 노조가 거의 조직되어있지 않은 업종이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기간산업 부문에서는 예외적으로 항공업이 당장 급격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항공업에서 경영위기에 대한 노·사·정의 대응은 앞으로 진행될 일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조합(상급조직)은 경제위기, 고용위기 대응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대응을 추진하지만, 이러한 대응이 자신의 조합원에 대한 사업이 아니라는 문제에 처한다. 총연맹과 산별노조는 전체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취지로 대응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사업장 수준으로 내려가면 동의지반이 매우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한국 노동운동이 기업별노조에 힘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취약성이 더 드러난다. 한국 노동운동이 기업별노조 중심이라는 것은 조직형태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합원들도 기업 수준의 이해관계 실현에 몰두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조합이 기업을 넘어선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계기로 기업별노조가 아니라 산별노조, 총연맹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기업 수준의 대응으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며 적어도 산업별, 나아가 총노동 차원과 거시경제 차원에서 해법이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가 초기업적 노조운동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가 형성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98년, 2008년 지난 두 번의 경제위기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대응에 대한 반성적 평가도 필요하다. 1998년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 노동운동의 투쟁은 개별 기업별노조의 정리해고와 인력 구조조정(혹은 공기업 민영화) 반대 투쟁이 중심이었다. 민주노총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사정 협약에 나섰다가 정리해고·변형근로·파견제 등 노동유연화 정책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 이후 민주노총 이갑용 위원장 보궐 집행부는 총파업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민주노총은 주요 대기업의 정리해고 저지 투쟁에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전선을 확대하고자 했으나 이는 기업별 투쟁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2008~2009년 위기 당시에도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 기업별 정리해고 저지 투쟁에 여러 노조의 연대투쟁과 사회적 연대(‘희망버스’ 등)를 결합하여 대응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기업별 쟁점에 대한 투쟁이라는 점을 넘어선 것은 아니었다. 한편 공공기관 노조들은 ‘선진화 정책 저지 공투본’ 공동파업(2009년 12월)을 통해 연대투쟁을 조직했으나 역시 공공부문에 한정되어 있었다. 또 당시 문제가 금융위기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의 문제라고 판단하면서 제조업노조와 공동전선 형성에 이르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들이 확인되었지만, 이번에도 그러한 방식이 재연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대기업에서 전투적인 정리해고 반대 투쟁이 있을 경우 다른 쟁점을 압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해고가 일어나는 사업장에서 고용을 지키기 위한 기업별 투쟁은 불가피하다. 아직은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지만 예를 들어 98년 현대차, 2008년 쌍용차와 같이 정리해고 기업의 사업장 수준 투쟁이 부각될 수 있으며 당장은 항공사 하청업체인 아시아나KO 정리해고 반대투쟁과 같은 소규모 사례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대기업노조의 투쟁을 전체 노동자의 투쟁 전선으로 상징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기가 기업별로 순차적으로 하나씩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가장 먼저 위기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대기업 노동자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먼저 대량 실직당하는 상황이다.
경제위기가 조직 노동 부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시점이 늦다는 점에서, 또한 경제위기의 해법이 기업별로 도출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기업별 노조가 주류인 한국의 노조운동은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 과거와 같은 투쟁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 위기의 성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정세 진단과 대응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초반에 위기 성격을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혼란이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경제위기 파급을 부정하는 입장도 상당했다. 이어, 위기가 단기적일 것인가 장기적일 것인가도 쟁점이 되었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인한 보건의료 위기를 현재 위기의 본질로 보는 입장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잠시 멈춤”일 뿐이며, 따라서 단기위기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 방역이 성공한다면 곧 정상적인 경제성장 궤도로 진입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일부 주류 경제학자들의 낙관적 진단을 받아들인 것이다. 민주노총은 논쟁을 거쳐 결국 장기위기가 진행될 것으로 정세진단의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위기가 장기화되는 이유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보는 인식보다는, 코로나19 감염병의 속성상 장기간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산-소비 차질이 지속된다는 이유로 보는 인식이 많다. 즉, ‘장기적’ 코로나19 위기로 인식하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는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이런 정세인식하에서는 구조적 위기를 근거로 한 차별적인 문제 진단이나, 구조적 수준에서 장기적 대안에 대한 제시는 어렵다. 급격히 확산되는 고용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단기적 정책 수단에 대한 요구, 감염병 위기로 문제가 드러난 의료체계 개선에 대한 요구 등 정책적 대응이 핵심이 된다. 현 사회·경제 체제의 변화라기보다는 제도 개선 요구에 가깝다.
현 정세를 단기적 위기로 보는 입장은, 기존 민주노총 요구를 그대로 제기하면 된다는 입장으로도 연결되었다. 즉 정기대의원회에서 결의했던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적용 등 전태일2법(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추가하여 3법으로 수정)과 사내유보금환수 등을 포함한 재벌개혁 등의 요구를 계속 제기하고 기존 투쟁계획도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코로나19 고용위기 대응의 긴급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정책 요구부터 전반적으로 재조정 되었다. 전태일법과 재벌개혁은 당면 요구에서는 전면에 부각하지는 않고, 고용위기 대응을 중심으로 하는 요구안 전반에 녹여내는 방식으로 수정되었다. 민주노총은 이후 투쟁계획도 전반적으로 수정한다는 계획이지만, 노사정 대표자회의 막바지로 예상되는 7월 4일 노동자대회 이후 하반기 투쟁계획은 아직 검토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 새롭게 제시된 요구도 여전히 조직노동자의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 ‘해고금지’ 같은 경우에도 취업자를 보호하는 요구일 수는 있으나, 이미 상당수의 실업·폐업이 발생 중인 중소영세 비정규직, 자영업 부문에서 ‘해고금지’로는 고용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 폐업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총고용 보장”도 원청 정규직뿐 아니라 비정규직·하청노동자를 고용보호에 포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아직 일자리를 유지하는 노동자에 한정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좌파·현장파 활동가들은 “한시적” 해고금지를 비판하면서 “모든” 해고금지라는 쟁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제시되지 못하는 이상 구호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기 어렵다.
또 실업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대안도 구체적이지 못하다. 새로운 일자리 제공이라는 점에서는 고용 여력이 있는 재벌·공공부문에서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져야하지만 이 부문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교대제 개편을 포함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도 제안되지만,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노동자의 임금총액 축소를 ‘양보교섭’으로 간주하여 반대한다는 전제가 제시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 재벌·공공부문의 노동자들이 이 사태를 ‘남의 일’로 봐서는 일자리 창출이든 다른 대안이든 나오기 힘들 것이다.
민주노총은 기존 정책요구들의 구성과 강조점은 달라지더라도, 그 기조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접근이다. 그러나 앞으로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 기조 역시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과 같이 중소영세 자영업자가 대대적으로 파산·폐업하고 있는 상황에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전태일법)을 핵심과제로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대기업도 유동성 부족에 직면하여 현금 확보에 나서고 정부에 기업금융지원 대출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재벌 사내유보금환수 요구가 정세적으로도 타당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민주노총 투쟁의 핵심적인 의제로 포함되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도 고려할 부분이 있다. 지금 민간의 중소영세 비정규직 부문에서 심각한 실업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자(공무직, 무기계약직)가 기존 정규직 노동자와 차별을 해소(처우개선)할 것을 핵심 요구로 하는 투쟁을 대대적으로 전개할 때 여론의 반응이 어떨까. 그러나 지금의 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기존 요구를 유지한 채 더욱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을 가진 활동가들이 상당하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기존 정책 방향을 수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과적으로 일관성 없이 상충되는 내용의 여러 요구가 혼재될 것이다.
3) 사회적 협의를 둘러싼 논쟁 재연
코로나19 확산 위기 초반, 한국노총이 참여한 경사노위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선언’(3월 6일)에 합의한 바 있다. 추상적인 수준의 선언이었다. 한편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 대책에 대한 노정 협의는 고용노동부 등과 주로 실무적인 수준에서 진행되었다. 위기 초반에는 당장 마스크 등 개인보호장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일이나 코로나19 확진자·의심자가 발생한 사업장의 방역 및 휴업 급여 등의 쟁점이 부각되었다. 이후 정부가 고용지원 정책을 제시하기 시작하면서 사각지대, 전달체계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협의가 진행된다.
실무적 수준의 노정 협의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코로나19 고용위기에 대한 대책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 경사노위가 아닌 별도의 노사정 협의를 추진한다. 애초 정부와 한국노총 측은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다. 특히 한국노총은 제1노총 지위를 잃은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불참하고 있는 경사노위마저 상대화된다면 조직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한국노총에 대한 설득을 거쳐 (대통령이 아니라) 국무총리가 주관하는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대한 ‘원포인트’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진행하기로 한다. 5월 20일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 첫 회의가 열렸다. 일단 6월 말 합의를 목표로 실무논의와 부대표급 협의 등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3차 추경과 7월 최저임금 결정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논의를 마냥 더 길게 하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뚜렷한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선 고용정책에 대해 정부가 상당히 속도있게 구체적인 정책을 내고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운동은 이를 따라가기도 바쁜 현실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각종 고용지원 정책만 해도 산별노조나 지역본부 등 노조 상급조직 활동가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를 현실에서 조합원 혹은 미조직 노동자에게 적용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확인하고 요구를 도출해내는 것은 더 어렵다. 민주노총이 현장에 기반하여 선도적인 요구를 제기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협의를 진행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의미다.
‘전국민 고용보험’과 같은 의제도 정부여당과 정치인들이 선점한 상태다. (물론 고용보험 혹은 실업부조 확대 방향 자체에도 쟁점이 있다.) 한국산업은행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해 금융지원 기업의 고용유지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쟁점은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금융위가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지원받는 기업에 고용총량의 90%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로 제시하기도 하는 등, 한계는 있지만 정부가 아예 대책을 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부가 이미 제시한 정책들을 보완하라는 방향으로 협의가 진행된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정부 정책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거나 더 심하게는 정부여당 내 논의를 그대로 요구안에 반영하기도 한다. 요구안 검토 과정에서 ‘전국민 고용보험’도 그렇지만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분기별로 더 지급하자는 요구가 추가되었다. 모두 정부여당의 유력 대권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제시하는 정책 방향이다. 그 외에도 ‘대통령 긴급 재정 경제명령 발동’을 요구안에 포함하는 등 정부여당의 선의를 신뢰한다.
그러나 정부가 여러 정책을 ‘전향적으로’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번 정부가 진보적이라거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세계적으로 퇴조하여 ‘진보적’ 대안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지난 1998년, 2008년 위기와 달리 자본 측이 아직은 재정을 동원하여 현재 사업구조를 유지하는 ‘단기 봉합 정책’을 대응전략으로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중견기업은 정리해고보다는 유·무급휴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물론 영업 유지 자체가 힘든 중소영세 기업은 폐업을 시작했다.) 정부는 각종 고용유지지원을 통해 급여 일부를 보전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것이 명확해진다면 이런 ‘단기 봉합 정책’은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이 단기 대응 이후에는 기조를 바꿀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편 노사정 협상이 얘기되자 노조운동 안에서는 다시 ‘양보론’이라는 쟁점도 부각 된다. 예를 들어 고용보험료 노동자 부담분을 사용자 부담분과 함께 인상할 수 있는가, 고용확대나 고용유지 지원 재원을 위해 고임금 노동자 임금을 억제할 수 있는가, 고임금 노동자가 조세부담을 더 질 수 있는가 등이다. 아직 재벌·공공부문 노조들은 고용보험료 인상(0.2%) 정도에는 이견을 제시하지 않지만, 그 이상의 ‘양보’ 의제가 부각될 경우 논란이 될 수 있다. 이미 고용보험 재정 확충의 일환으로 고용보험에 공무원·교사를 포함하자는 아이디어에는 관련 노조들이 소극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편 고용보험제도에 대해서는 정부여당이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으로 군불을 때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만만치 않은 과제다. 20대 국회 마지막에 처리된 고용보험법은 2018년 경사노위 합의에 기반한 기존 정부 여당 입법(민주당 한정애 의원 개정안)에도 미달했다. 단지 예술인에 대해서만 적용대상을 부분 확대했을 뿐이다. 현재 정세나, 고용보험의 발전 방향을 고려할 때 우선 특수고용 노동자에 적용을 확대하고 실질적인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당면한 과제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요구안은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정부여당의 수사를 수용하는 가운데, 세부 정책 내용에서는 절충적(현실적)으로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애초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자본의) 책임이라는 쟁점은 사라지고 정부여당이 제시한 정책과제를 지지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는 점은 우려된다. 실질적으로는 정부여당도 당장 ‘전국민’으로 고용보험을 확대하자는 입장은 아니므로 노사정 대표자회의의 결과도 선언적인 수준에서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선언과, 당장은 한정애 의원 개정안 혹은 그에 다소 미달하는 법안·시행령 추진이라는 방식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경사노위의 지난 3월 6일의 합의 수준을 반복하는 수준의 추상적 합의, 혹은 정부 정책을 보완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이 경우 노조(특히 민주노총) 안에서는 사회적 협의에 대한 부정적인 논란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양대노총은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회적 협의의 파트너로서 위상을 확인하고자 한다. 정부여당은 기존에 추진하던 정책을 크게 수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정책을 노사정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본 측은 고용·노동시간 유연화와 정부의 금융지원 완화를 요구하지만, 전자는 합의가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후자에서 ‘성과’를 얻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4) 사회적 협의 비판과 기업별 현장 투쟁
노동운동 내 일부 현장파·좌파 단체, 활동가들은 사회적 협의에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자 양보 합의로 귀결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 때문에 이미 시작된 노사정대표자회의도 어떤 성과가 가능하다는 기대를 버리고 결렬을 준비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에는 현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대화와 문재인 정부와의 합의 성사에만 몰두할 뿐이라는 불신도 깔려있다. 사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회적 협의 테이블 구성 자체에는 공을 들였지만, 정작 협의 테이블에서 어떤 요구를 제기할 것인지는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또 대화만이 아니라 이를 압박하기 위한 사회 여론화 사업 혹은 노조의 투쟁 계획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대화를 위한 대화에 그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반기 정기국회에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ILO협약 비준과 연계된 노조법 개악안, 탄력근로제 개악안 등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당장 상반기 투쟁의 집중점인 7월 4일 노동자대회 이후의 투쟁계획도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협의 자체를 거부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은 과거 위기 시기 대응과 같이 개별 기업에서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하는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 기업별 노조의 투쟁을 묶어서 대응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해법과 정부 차원의 정책개입이 불가피한데, 이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더욱 어려워진 장외 투쟁으로만 실현하기는 어렵다. 거시경제가 단기간 안에 회복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면 개별 기업별 투쟁이 다소 길어져도 감당할 수 있으나, 이번 위기는 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기업별 투쟁보다는 사회적 협의는 물론, 총노동·산업별 교섭-협의, 이와 연계한 총노동·산업별 투쟁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 기업을 넘어선 전국적-산업적 대안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시경제정책과 재정정책, 산업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에서 대책이 만들어져야 경제위기의 노동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앞으로 산업 수준에서 노조의 대응을 이어가려면 이번 노사정 대표자회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산업별 논의를 이어가는 틀을 갖추는 것이 되어야 한다.
특히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기업위기와 고용 조정을 포함한 산업·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기 때문에 산별노조 차원의 산업별 대응이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항공 산업만 보아도 향후 코로나19 위기가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위기 이전과 같은 규모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산업규모와 구조, 고용을 조정할 것인가 문제가 발생한다.
이제부터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기에는 고민하기 어려웠던 문제가 부각된다. 물론 앞으로도 일부 성장 산업은 있겠지만 일반적인 사례는 아닐 것이다. 경제위기 과정에서 한계기업의 도태가 확대될 것이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는 기간산업안정기금으로 지원하고 노동자의 고용유지는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지연한다고 해도 결국 어느 시점에 이르면 기업의 구조적인 수익성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게 된다. 따라서 산업적 수준에서 구조조정의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응이 필요해진다. 정부의 각종 지원 정책도 연장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수개월 짜리 고용유지지원 프로그램을 더 연장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결국 정부 지원은 구조조정의 연착륙 방안에 대해 산업별 노사협의를 위한 시간을 버는 의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위기는 1998년 위기, 2008년 위기 같이 V자 회복이 어려울 수 있으며, 이 경우 한국 노동운동은 최초로 거시경제 성장 혹은 단기위기 이후 회복기가 아닌 상황, 장기 위기 속에서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게 된다. 항공 산업에 이어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도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노조의 준비가 충분하지는 않아 대응역량을 시급히 증진할 필요가 있다. 항공 산업만 해도 민주노총 안에서 이를 포괄하는 공공운수노조가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대안을 갖고 산하조직과도 합의된 방향으로 요구를 제기하며, 정부와 자본을 상대로 교섭·투쟁을 전개할 수 있을지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금속노조의 경우에는 올해 산별교섭·투쟁에서 산별 고용안정기금 설치를 요구하자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물론 기금 방식의 효과성 등에 쟁점은 있지만 기업 수준의 고용 유지 투쟁을 넘어선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있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결국 중앙위 논의과정에서 철회되었다. 기업별 임금투쟁을 넘어서는 산업별 접근, 고용유지에 대한 노조의 역할에 대한 합의가 한국 노조운동 안에서 충분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위기대응협약 쟁취를 중심으로 총노동 투쟁의 중심에 선다는 의미있는 결정을 내렸다.
5) 미조직 노동자까지 대표하는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은 가능한가
위기의 충격을 가장 급격하게 받고 있는 부문은 무엇보다 중소영세, 자영업 부문과 그 종사자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노동조합에 대부분 포괄되어 있지 않다. 가장 자기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들이 정작 자신의 조직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노총이 스스로 표방해온 것처럼 노동조합이 조합원만이 아닌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거나 보호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들었다. 그런데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낙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동조합은 정부의 각종 고용유지지원 정책이나 일자리 창출 정책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산별노조와 지역본부가 모두 그렇다. 그나마 산별노조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력 산업부문이 아직 위기에 큰 영향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덜 드러났으나, 민주노총과 산별의 지역본부는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지역본부는 지역차원에서 여러 업종의 취약노동자를 포괄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지역본부를 제외하고는 정부의 지역고용유지지원 정책, 공공일자리 정책에도 개입하거나 대응하지 못했다.
다소 예외적인 시험 사례가 공공운수노조의 ‘영종특별지부’ 등이다. 조합원 확대를 직접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지역 차원에서 산업 업종과 무관하게, 사용자나 지방정부, 노동청을 상대로 대응하면서 고용보호를 제공하기 위해 공공운수노조의 특별지부로 설치했다. 직접적인 조합원 확대 혹은 이미 가입한 조합원 보호만이 노조의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을 산별노조가 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일부 충남, 제주 등 지역본부에서는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는 지역노조를 새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산별노조와 지역일반노조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를 포괄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역 현장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당분간 여러 실험이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나, 산별노조가 주도하든 총연맹 지역본부가 주도하든, 당장 일자리를 상실하는 취약 노동자를 조직하고 지원하는 것은 지역노조의 형태를 취할 것이라는 점, 또한 기존 기업별 임단협을 방식을 중심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고용불안을 감안하면 조합원 자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노조의 서비스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한다. 논란은 있지만, 민주노총도 확대를 요구하는 정책인 만큼 정부의 고용유지지원, 실업자 지원을 활용하는 창구 역할도 어느 정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 목표는 지원 자체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결할 수 있는 매개를 형성한다는 데 있어야할 것이다.
6) 남은 과제
당장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전후한 국면과 하반기 정기국회까지 노정·노사정 협의와 사회 여론화, 투쟁을 포함한 여러 대응계획이 보완되어야한다. 노사정 대표자회의의 전망도 크게 밝지 않은데다가, 위기가 심화, 지속되는 과정 선상에서 진행되는 협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설사 ‘원포인트’ 합의를 6월 말에 이룬다고 상황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하반기 민주노총과 지역본부, 공공운수노조 선거가 있는 상황이라 어려운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는 다양한 쟁점이 결국 정기국회에서 입법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라는 점에서 별도의 투쟁계획이 필요한 상황이다.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더 심각해질 경우, 산업별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산업별 구조조정을 초과하는 고용위기는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산업별 정책 수준은 물론 전체 고용·노동시장 정책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산별노조와 함께 특히 총연맹의 역할, 총노동 차원의 대응이 더욱 중요해진다. 단기대책만이 아니라 중장기 고용위기를 예상하는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산별노조가 이러한 노동시장, 산업정책에 개입하는 역량은 현재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노동조합은 앞으로 부각될 쟁점에 답할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전면적인 위기로 확대되기 전에는 알면서도 피해왔던 쟁점들이다. 거시경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이나 산업의 회생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한국판 뉴딜” 정책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타당하지만, 정부가 ICT 등 신산업을 중심으로 정책을 제시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기존 산업의 붕괴가 가속화되는 중이기 때문에, 수익성 있는 산업부문을 찾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더욱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노동조합 입장에서 한계기업과 산업의 구조조정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과거와 같은 방식의 격렬한 기업별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중심으로 총노동 전선을 형성할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대안이 있는가. 한계기업에 대해 일정한 정부 지원 하에 노동자 자주관리 혹은 노동자 통제, 그것도 어렵다면 경영참여를 생각해볼 수 있으나, 이 역시 노조가 주도할 역량이 있는가. 혹은 일각에서는 한계기업의 ‘국유화=사회화’ 혹은 그것도 어렵다면 정부의 통제를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국가(혹은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산업은행이나 한국은행이 출자한 특수목적기구, SPV)를 민주화하고 통제할 역량을 노동자 정치운동이, 국유화(혹은 사회화)된 기업을 통제할 노조운동의 역량이 갖추어져 있는가가 문제다.
한편, 최근 국가 특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대응에 민주노총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개별 기업 차원의 해법이 어렵다보니 정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노사정 대표자 회의 요구안의 첫 줄에 명시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사회적 협의를 비판하는 쪽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해고금지”를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선언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니 대정부 투쟁을 하자는 주장이다. 산업별·기업별 노사 간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도 대통령이 해결하라는 요구로 올라간다. 심지어 총선도 끝나 압도적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못할 일이 없는데도 국회를 넘어선 헌법상 비상상황을 촉구하는 셈이다.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국가 기구의 과도한 팽창이 우려된다. 노동조합까지 모든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대통령에게 요구하거나 위탁하는 식으로는, 노동자가 스스로 기업, 지역, 전국적 차원에서 대안을 만들고 실현하는 주체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 정세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전개된다는 특성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선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정세인식에 대한 합의나 대안사회 전망에 대한 준비나 논의는 매우 취약한 현실이다. 코로나19 위기 확산 이후 민주노총이 개최한 몇 번의 정책워크숍은 민주노총이 내부적 합의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외주화’, 즉 시민사회, 학계 전문가의 외부적 권위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 민주노총 스스로의 정책 발표가 아니라 외부 전문가의 주발제로 토론회가 진행된다.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민주노총은 ‘토론자’ 역할을 맡았다. 외부 전문가들은 주로 다양한 케인즈주의 경제학자, 복지국가론을 주장하는 사회학자들이었다. 정부여당과도 밀접하게 교류하는 전문가들도 상당하다. 민주노총은 이들에게 정책을 의존하고 있다. 각자의 전공에서 훌륭한 전문가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 구조적 위기 진단은 물론 노동자계급 입장에서 체계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외부 전문가들이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사회운동적 전망을 제시해주기는 어렵다. 그것은 민주노총 스스로의 과제이다. 총연맹과 산별, 지역본부, 기업별 현장까지 토론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해보자. 현재 위기의 구조적 특성상 조합원의 주요 조직적 기반과 당장은 거리가 있는 과제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단기적 과제와 중장기 과제를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 지금 민주노총이 처한 어려움이다. 일단 민주노총은 위기의식부터 가지려고 해야 하고, 모든 노동자를 위해 조직적 역량을 집중한다는 결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의 단기적 고용보호 정책에도 개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위기가 장기적이고, 근본적 문제에서 비롯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단기적인 고용·생계 대책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맞선 체계적 대안을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수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로나19 이후 다른 사회는 불가능할 것이다. 대안 제시는 단지 정책적 측면만이 아니라, 조직적인 측면에서 노동자계급 내 격차를 축소하는 실천으로 단결을 실현할 수 있을 때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