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이대론 안 된다」 필자에게
봄호를 통해 촛불정권이라 자임하는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말끔히 접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을 보면서 이성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나 뿌리 깊은 구악을 뿌리 뽑기 위해 절대 민주당이 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총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집 <2020년 총선과 한국 정치>에 실린 글들을 읽으면서 이런 미련을 싹 정리할 수 있었고, 더불어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방침에 대한 회의로 인해 정치에 대해 가져왔던 방관자적 태도 또한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간 막연히 품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경제가 마비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기능을 못 하고 있고, 2020년은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예상됩니다. 바닥이 어디일지,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2020년 총선에서는 거대 여당이 등장했고, 민주노총은 가장 존재감 없는 총선을 치렀습니다.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코로나19 사태, 방향을 알 수 없는 경제위기, 그리고 대통령선거까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요구하고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과 걱정이 많습니다. 막연한 고민과 걱정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와 현주소를 다시금 깨닫는 계기를 만들어준 봄호였습니다.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0년 봄호 「정의당 이대론 안 된다」 필자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을 평가하면서, 20대 국회에서 보였던 정의당의 행보를 민주당 2중대였다고 비판했습니다. 상당 부분 동의가 되었지만, 소득주도성장을 ‘실패한 경제정책’이라고 규정하고 애초에 근거 없는 낙관론에 불과한 경제정책이라고 평가한 대목에서는 뭔가 와장창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필자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 효과를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정책 정도라고 평가합니다. 또한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포기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이 실패해서 다시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보수정권의 경제정책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라고 합니다.
혁명은 꿈같은 일이고 사회변혁은 구호로만 여겨지다가, 촛불투쟁이라는 전 국민적 저항 운동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촛불 정권이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이 요구한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으로 하고,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을 내세웠습니다. 진보적인 경제정책이라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은 저에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주노총도 요구했던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한 경제정책, 근거 없는 경제정책이라는 평가를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문재인 정권이 원래 보수 세력 혹은 좋게 봐주어 자유주의 세력이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권의 본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했고, 진보세력이 문재인 정권을 질책하고 견인해서 소득주도성장으로 다시금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필자의 평가가 어느 정도 이해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책에 긍정적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 경제성장률을 올리려고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썼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는 것 같고,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저는 반드시 경제성장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늘 있었습니다.
독자에게
김동근(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정의당 이대론 안 된다」 원고에 포함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대해 질문을 주셨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의 진보적인 측면은 없는가, 구체적으로 경제성장에 실패하더라도 소득주도성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해 부족하나마 답변을 드립니다.
우선 지난 상황을 되짚어보면, 소득주도성장전략을 둘러싼 논쟁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경제정책의 측면, 즉 소득주도성장전략으로 한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쟁점, 두 번째는 소득주도성장전략의 핵심 정책수단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소득재분배가 달성될 수 있는가 하는 쟁점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명칭에도 나와 있듯이 소득주도성장전략의 핵심은 첫 번째 측면입니다.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의 주장을 간략히 정리하면 “[소득(임금) 상승 → 인건비 상승 → 이윤 하락 → 자본에 가해지는 이윤 압박 → 기술 개발 → 자본생산성 상승 → 이윤 상승 → 성장]이라는 경로를 통해 소득(임금)상승이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권은 이러한 주장을 수용하고 정권의 핵심 경제정책으로 입안했습니다. 하지만 원고에서도 간략하나마 설명했다시피 이러한 주장에는 경제학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이론에도 맞지 않고 심지어는 주류경제학 이론 체계에도 없는 이단적 주장인데요, 그래서 실제 소득주도성장전략 초기에 경제학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문재인 정권은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득주도성장전략을 국정과제로 상정하고, 그 핵심 수단으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추진합니다. 그런데 현재 모두가 확인하다시피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성장을 불러오지 못합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현실화된 2018년 들어 경제가 오히려 하강 국면을 그리게 되고 2019년 경제는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집니다. 문재인 정권과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의 입장이 곤란해지게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전략의 효과 중 두 번째 쟁점을 둘러싼 연구들이 발표됩니다. 즉 소득주도성장전략의 소득재분배 효과에 대한 연구입니다. 애초 소득주도성장전략이 천명했던 핵심 목표가 소득재분배만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최저임금인상이 (경제성장은 물론이고) 소득재분배에 효과적이었다는 증거는 별로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원고에도 서술했던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연구결과입니다.(“소득주도성장 전략을 지지했던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지난 1월 최저임금인상으로 저임금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이 증가했으나 총고용 시간이 감소함으로써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같은 논쟁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결과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소득주도성장전략에 대한 자성적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원고의 [각주2]에 서술된 <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의 평가와 과제> 토론회입니다.(“2019년 5월 10일 서울사회경제연구소가 개최한 <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의 평가와 과제>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창했던 학현학파의 주요 학자들을 중심으로 소득주도성장 전략에 대한 반성의 평가가 이루어졌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에 대한 학현학파의 평가의 핵심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기술혁신과 적절한 자본 투자를 통해 높은 소득을 높은 생산성이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포기하는 한편 소득주도성장전략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혁신성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깁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전략을 포기한 것이 단순히 생각이 바뀌었거나 ‘개혁성’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소득주도성장전략이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소득주도성장전략과 관련해서 “문재인 정권에 ‘개혁성’이 있었는데 그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문제다”거나, 나아가서 “다시 정신 차리고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는 식의 비판은 잘못된 것임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비판은 “문재인 정부는 경제학적 근거도 없는 낙관적 의지주의로 소득주도성장전략을 시도했다가 경제성장에도 실패하고 소득재분배에도 실패한 무능한 정부”라는 것입니다.
이제 “경제성장은 반드시 되어야 하는 것인가, 경제성장에 실패하더라도 소득주도성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소득주도성장전략이 의미가 있으려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소득재분배에는 도움이 되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소득재분배에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소득(임금) 상승 → 인건비 상승 → 이윤 하락 → 자본에 가해지는 이윤 압박 → 기술 개발 → 자본생산성 상승 → 이윤윤 상승 → 성장]이라는 소득주도성장론의 가설과는 달리 실제로는 [최저임금 상승 → 인건비 상승 → 이윤 하락 → 고용시간·고용인원 하락, 각종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키는 등의 꼼수], 혹은 [최저임금 상승 → 인건비 상승 → 이윤 하락 → 폐업]의 경로가 우세하게 나타납니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인해 시간당 임금은 증가할 수 있지만 고용이 감소함에 따라 저소득층의 총수입이 오히려 감소하는 경로가 이것입니다. 초기에 소득주도성장전략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많았지만 3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결과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소득주도성장전략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소득재분배 양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갈등을 키웠습니다. (자영업의 상당수는 자본가라기보다는 자가고용노동자 혹은 반[半]실업자에 가깝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소득주도성장전략은 소득재분배에도 실패하긴 했지만,) 어떤 정책을 통해서 소득재분배를 달성할 수 있다면 경제성장에 실패하더라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나아가서 꼭 경제성장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두 가지 측면으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이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측면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하는 측면입니다.
먼저, “꼭 경제성장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쟁점은 가치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는 절대적인 원칙을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사회의 성장·발전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풍요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제 생각일 뿐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질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은 ‘사회의 필요’에 따라 생산·투자하지 않습니다. ‘이윤획득의 가능성’에 따라 생산·투자합니다. 그래서 성장이 없는 조건, 즉 생산·투자를 통해 이윤이 원활히 만들어지지 않는 조건에서 자본은 생산·투자를 중단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윤율이 하락함에 따라 자본이 생산·투자를 줄이는 상황이 ‘성장 둔화’라는 현상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2000년대 후반부터 오랫동안 겪어온 경제위기의 모습입니다. “성장하지 않더라도 있는 자원으로 사이좋게 나눠서 잘 살면 되지”라는 바람과는 달리, 자본주의에서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소득불평등이 심해집니다. 자본이 생산·투자를 중단함으로써 초래되는 소득 감소가 빈자에게 더 치명적인 것은 당연하지요.
요컨대 “경제성장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거나 “경제성장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은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정책 중 “성장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경제정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득주도성장전략이 경제정책으로 낙제점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성장”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사회를 향한 운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러한 사회가 자본주의일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의 모습을 (일부 논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생산물을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서 잉여가치(이윤)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즉 성장이 중단된 사회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의 풍요·발전, 교육·의료·행정 등 사회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능, 생산시설의 감가상각을 메우기 위한 자원 등을 반드시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모든 생산물을 모두가 나눠서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자본주의에서는 잉여가치(이윤)를 어떻게 쓸지 자본이 결정한다면, 대안사회에서는 잉여가치를 어떻게 쓸지를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함께 결정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에서는 잉여가치(이윤)의 사용원리가 “더 많은 이윤 창출”라면 대안사회에서는 잉여가치의 사용원리가 사회의 발전·풍요라는 것입니다.
추신.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하여 덧붙입니다. 당연하게도 제가 최저임금 인상이 나쁘다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고에 “최저임금을 사회정책에서 경제정책으로 격상시킨 것이 소득주도성장론의 핵심 전략이다”라고 언급한 부분의 의미에 대해 조금 부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최저임금(인상)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각종 복지제도처럼) 사회정책으로서 필요한 것이며, 최저임금이 경제정책이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최저임금제도와 최저임금의 인상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경제성장과 소득재분배의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경제구조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저임금만 급격하게 올린다고 해서 소득재분배가 달성되기도 어렵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