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0 여름.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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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없이 거품만 조장하는 혁신성장정책」 필자에게

강동헌 |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전략조직부장, 사회진보연대 회원
1. 금융규제가 필요한데,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고 은행이 고위험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것을 제한하는 정도만 실행되고 있습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도, 대중적으로도, 금융화의 진전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다. 금융규제가 어떤 정책수단 혹은 방향에서 단기적으로라도 가능할지가 궁금합니다. 
2. 코로나 19 이후 국면에서 실물부문의 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충격이 금융부문으로 전개될 여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3. 기술혁신의 곤란이라는 점에서 대학의 교육·연구 역량 확보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어떤 관점이나 방향을 구상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독자에게


김진현(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1. 먼저 금융규제 방안에 대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는 사모펀드의 설립 및 운영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거나, 증권사가 단기조달 자금으로 장기 투자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적하신 대로 금융화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없기 때문에 금융 규제정책은 대부분 미봉책일 뿐입니다. 정부도 대중들도 어떻게 금융화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가 일차적인 관심사입니다. 진정성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고, 나와도 그걸 우회하는 금융상품이 출시됩니다. 물론 미봉책이라 할지라도 아예 없으면 대규모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건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완전한 금융 규제는 실현가능하지 않습니다. 

금융화 현상의 토대에는 이윤율 저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윤율 저하 국면에서는 산업부문에서 이윤이 잘 나지 않고 좋은 일자리도 드뭅니다. 그래서 자본가들도 금융에 투자하고 노동자들도 생산 과정보다는 금융 투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겁니다. 금융화 현상을 역전시키려면 과거 1, 2차 산업혁명과 맞먹을 정도의 새로운 산업혁명이 등장하거나, 또는 완전히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 선택지 모두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습니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금융세계화를 통해 기술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는 민주당의 허구적 혁신성장론에 대한 비판을 꾸준히 제기하는 게 중요합니다.

2. 또한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실물부문 충격이 금융위기로 전이되는 방식은 어떤지 질문하셨습니다. 금융위기가 전개될 여지가 있습니다만, 미국 연준의 빠른 대응으로 아직 현실화되진 않았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기업 파산입니다. 기업이 파산하면 회사채나 기업 대출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합니다. 그러면 회사채를 보유하거나 기업에 대출해 준 투자펀드, 증권회사, 연기금, 보험사 등이 손실을 입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고위험 기업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대출담보부증권(CLO)과 같은 안전하지 않은 ‘안전자산’에 부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적 금융위기가 폭발할 수 있고, 은행이 파산하는 은행위기로까지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연준은 기업이 파산하지 않게 막대한 양의 회사채를 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무제한 지속될 순 없습니다. 연준이 쏟아 붓는 막대한 양의 달러는 미국으로 유입되는 거대한 자본의 흐름에 의해 지탱됩니다. 다른 국가나 기업들이 파산하면서 이 자본 흐름을 유지하지 못할 때, 연준의 무제한 수량완화 정책도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3.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역량의 확보는 중요한 일입니다. 산업혁명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과학기술의 발전은 생산력 증대에 기여하는 바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상업화가 가능한 분야에만 투자를 집중하는 상황입니다. 학문적 호기심의 대상이나, 논리적으로 도출된 난제에 대한 연구에는 전혀 투자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문이 제대로 발달하긴 어려운 지형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투자해도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한국의 경제발전 수준이 1930~1960년대 미국, 유럽, 일본에 훨씬 못 미칩니다. 따라서 투자 자금 규모나 산업적 뒷받침이 많이 부족합니다. 둘째, 지금은 기술혁신이 과거보다 더없이 정체된 상황이라서, 과거와 같은 수준의 기술혁신을 이뤄내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틀 내에서 최대한 기술혁신에 힘쓴다고 가정하면, 경제발전을 목표로 금융적 방법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는 방향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합니다. 

금융적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모델에서는 과학자에게 기술혁신의 대가로 금융수익을 제공합니다. 과학자들이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면, 기술에 대한 특허를 기반으로 벤처를 창업합니다. 벤처기업이 코스닥에 상장되면, 국가가 앞장서서 주가를 올려줍니다. 과학자들은 벤처기업의 주주이기 때문에, 막대한 시세차익을 획득합니다.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과학자들이 주식부자가 되기 위해 상업화가 가능한 기술만 연구합니다. 둘째, 주가는 기술의 경제적 가치와 무관하게 상승할 수 있어서, 기술 없는 창업이 빈발하고 그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 낭비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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