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0 가을.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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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인트 노사정 대화,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나

3월 10일 기자회견부터 7월 24일 집행부 사퇴까지의 전말

김성균 |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2020년 7월 24일 오후 2시. 김명환 집행부는 노사정 합의 최종안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루 전날 민주노총 온라인 대의원대회에서 김명환 위원장이 자신의 거취를 걸고 제안한 노사정 합의안이 찬성 499명, 반대 805명으로 부결됐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높여 재난 이후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고자 했으나 자신의 부족함으로 실패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위원장이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진 지금까지도 그 새로운 질서는 무엇이었고, 또 그의 부족함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진 않고 있다.
 
2020년 7월 24일, 김명환 위원장(가운데), 김경자 수석부위원장(오른쪽), 백석근 사무총장(왼쪽)이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 김명환 집행부는 노사정 합의 최종안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사회적 대화 과정 전반에서 대화를 성사시키고자하는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의지를 실제로 실현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내부 합의과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출처: 노동과세계 2020.7.24.]

감염병 대유행으로 국민건강이 위협받고 있으며,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진행 중이다. 제1 노총을 자임하는 민주노총은 이런 사회 위기의 한복판에서 22년 만에 노사정 대화를 제안했으나, 조직 내 분란만 일으킨 채 유야무야 끝내버렸다. 노사정 대화의 타당성 여부와 별개로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단체교섭도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진행하지는 않는다. 특히 기업의 경영위기로 조합원의 고용과 임금이 벼랑 끝에 매달린 형국이라면 더더욱. 2천만 노동자의 정치적 대표임을 자임하는 제1 노총의 대정부, 대자본 교섭이 이런 식이라면 어떤 노동자가 민주노총을 믿고 단결하여 싸울 수 있겠는가.

만시지탄이나, 코로나19 위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고 민주노총은 이번과 비슷한 상황을 여러 차례 만날 가능성이 크니, 이번 사회적 대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민주노총이 코로나19 특별요구안 및 대정부 교섭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3월 10일부터, 김명환 위원장이 노사정 합의안 부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7월 24일까지, 민주노총 내에서 노사정 대화를 둘러싸고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를 추적한다. 필자는 공개된 문서 외에 이번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와 관련된 민주노총 관계자 다수를 인터뷰했다. 


주요일지

2020.3.10. 코로나19 특별요구안 및 대정부 교섭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2020.3.18. 김명환 위원장, 청와대에서 개최한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 참가.
2020.4.17. 민주노총, ‘코로나19 원포인트 노사정 비상협의’ 제안.
2020.4.18. 정세균 총리, 민주노총의 제안 수락.
2020.5.20.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회의 1차 회의 개최.
2020.5.22. 1차 실무협의 개최.
2020.6.18.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회의 2차 회의 개최, 이후 집중교섭.
2020.6.22. 경총규탄 성명 발표.
2020.6.26. 9차 중집회의에서 민주노총 최종안 결정.
2020.6.29. 10차 중집회의에서 잠정합의안 논의. 잠정합의안은 중집성원의 동의를 얻지 못함.
2020.7.1.  예정되어있던 노사정 합의 협약식 불참.
2020.7.13. 71차 임시 대의원 대회 소집공고.
2020.7.23. 임시대의원대회 개최. 노사정합의 최종안 부결.
2020.7.24.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김경자 수석부위원장, 백석근 사무총장 사퇴.
2020.7.27. 민주노총 비대위원장 선출.(비대위원장: 김재하 부산본부장)
2020.7.28.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식 개최.
 

요구안 마련보다 노정교섭이 다급했던 집행부

 
2월 17일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 대회가 종료된 직후부터 신천지발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한국에도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됐다. 민주노총은 3월 10일, 코로나19 특별요구안 및 대정부 교섭을 내용으로 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자회견 이후부터 연이어 노정 협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요구안은 그저 기존 민주노총 사업계획에 방역대책을 포함한 것이었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상황을 전혀 분석하지 못했고, 대책 역시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요구에는 민주노총이 토론해본 적 없는 ‘재난생계소득’도 포함됐는데,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이슈로 만든 재난기본소득을 모방한 것이었다. 정부가 지출하고 노동자는 받는 것이니, 내부에서 딱히 쟁점이 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뒤에서 살펴볼 것처럼, 재난생계소득은 해고금지와 더불어 민주노총 요구가 산으로 가고, 노사정 대화의 목적지가 표류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저것 끼워 넣은 요구안 중에서도 김명환 집행부가 실제로 힘을 실은 것은 ‘코로나19 극복 노정협의 TF’ 구성이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총리실이 주도하여 집행부와 관계 부처의 장관 면담을 성사시키라고 촉구했다. 이 시점부터 집행부는 정부와의 교섭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기자회견 직후인 3월 13일에 결국 김 위원장은 고용노동부 장관과 면담을 하게 됐다. 면담에서는 민주노총의 특별요구안을 포함하여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지속적인 노정교섭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후 노동부와 노정 실무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3월 18일, 김 위원장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주요 경제주체 원탁회의(비상경제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진행할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논의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막상 노사정 대화를 진행한다고 하니,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할 수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었다. 노사정 대화를 위해서는 경사노위와 별도의 테이블이 필요했다. 한국노총과 경총 입장에서 이는 민주노총에 대한 특혜였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초기에는 경사노위에 민주노총이 일시적으로라도 들어오라는 태도였다. 하지만, 4월로 넘어가면서 경사노위 바깥에 교섭 테이블을 만드는 쪽으로 논의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김명환 위원장과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의 콜라보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청와대 설득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실 문 위원장에게는 민주노총이 어떻게든 정부와의 대화에 합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가 현 정부에서 고위급 관료를 할 수 있는 것은 민주노총을 대표했던 활동가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인데, 문재인 정부는 경사노위를 만들면서 민주노총을 꼭 참가시키고 싶어 했고, 문 위원장이 그 적임자였다. 더구나 김명환 집행부는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지도부였다. 문성현 위원장은 현 집행부의 성향과 코로나19라는 비상한 정세를 고려할 때 민주노총을 참가시켜 사회적 대화를 성사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봐도, 코로나19 사회적 대타협에 민주노총이 빠지면 반쪽 대화라는 꼬리표를 떼기도 어렵다.
 
경사노위의 ‘양극화해소와 고용(플러스)위원회’에서는 경영 측, 노동 측, 중소기업 측 대표 등이 참가하여 각각의 단위가 파악하고 있는 현황을 공유하고 이에 기반해 제도적 보완점이나 제도의 사각지대를 좁혀가려는 논의를 진행했다. 물론 위원회에서 진행된 논의내용 역시 잠정합의안의 내용을 미루어 확인할 수 있듯 미흡한 지점이 많다. 그렇지만 정부정책을 분석하고 자기가 대표하는 단위의 현황을 파악하여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논의를 했다는 점은 그런 준비 자체가 없었던 민주노총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사진은 ‘양극화해소와 고용(플러스)위원회’의 8차 전체회의모습. [출처: 경사노위 홈페이지]

3월 10일 민주노총이 첫 노정교섭을 제안한 뒤로 한 달여 기간 동안 문 위원장 등이 청와대를 설득하는 시간이 있었고, 이 과정에 발맞춰 4월, 이주호 정책실장은 한겨레신문 인터뷰를 통해 노사정 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했다. 그리고 4월 17일, 김명환 위원장은 ‘코로나19 원포인트 노사정 비상협의’라는 형식으로 경사노위 바깥의 테이블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4월 18일, 정세균 총리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경총과 한국노총은 이 회의체에 참가할 유인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을 설득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이 원포인트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4월 18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5월 20일에 시작한 이유였다. 김 위원장은 사용자 측과 한국노총 설득에 한 달이 걸렸다고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가 5월 말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열린 이 대화에는 시작부터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대화를 요청한 민주노총이 도대체 무슨 요구를 하려고 이 판을 만들었는지 모호했다는 점이다.
 

교섭이 우선, 요구는 다음?

 
정부와 착착 발을 맞춘 김명환 집행부는 정작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조합원들과 발을 맞추지 못했다. 아니 그럴 의도조차 없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내부 논의가 엉망이었다. 공식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나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에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가 논의안건이 아닌 보고안건으로 올라온 것이 단적인 사례였다. 노사정 대화 관련 안건은 5월 중집에서 사회적 대화에 관한 민주노총 목표를 정하자는 문제 제기가 있을 때까지 보고안건으로 처리되었다. 그런데 7월 말의 파탄적 결과에서 볼 수 있듯 5월 중집까지 사회적 대화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것은 문제가 될 소지가 충분했다. 집행부가 이 시기에도 요구안을 제대로 성안하지 못했고, 정부 여당의 요구와 여권 유력 대선 주자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협의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3월 말까지도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코로나19 경제침체가 금방 V자 곡선을 그리면서 회복될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다. 노동안전보건실을 중심으로 사업장 방역대책 정도 정부에 요구하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핵심 사업은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전태일 3법을 그대로 밀고 가면 된다는 주장이 주류였다. 집행부가 긴급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했지만, 진지하게 토론을 조직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 사안과 관련해 책임이 있는 민주노총의 간부들은 아예 토론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는 시점까지도 김명환 집행부는 목표설정을 위한 조직 내부의 논의를 내실 있게 진행하지 않았다. 예로 가맹산하 조직의 시급한 요구와 현장의 변화를 파악하는 가맹산하 정책담당자 회의(이하, 정책담당자 회의)조차 논의가 중구난방이었다. 정책담당자 회의에 참여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회의는 지역별, 산별 요구안을 듣는 간담회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산하단체라는 통로를 활용해 노동자의 상태에 대한 현황파악을 면밀하게 한다든지, 노동자 전체의 이해를 포괄하는 요구를 개발한다든지, 아니면 정부 정책의 쟁점을 토론한다든지 하는 일들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결국 최종요구안은 민주노총이 매번 하는 것처럼 이것저것 온갖 요구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원포인트’ 대화를 하자고 제안한 민주노총이 정작 오만가지 대화를 제시한 꼴이 되었다. 


대체 누가 어떻게 결정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민주노총 요구안을 성안하는 과정에서 복수의 관계자가 지적한 문제점은 내용적 허술함 외에도 절차적 잘못이 있었다. 정책담당자 회의에서는 가맹산하조직의 요구를 수합만 했고, 진짜 결정은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정책실장, 정책연구원장, 법률원장으로 구성된 교섭지원단 회의에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교섭지원단의 존재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겠으나 교섭지원단이 최종적으로 결정한 요구안은 상향식이든 하향식이든 의사결정 절차에 근거해야 했다. 하지만, 김명환 집행부에는 위로든 아래로든 논의를 붙이면서 설득하는 과정도, 의견수렴을 통해 요구안을 만드는 과정도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요구안이 딱 만들어지는 과정이 반복됐다.

실제로 대부분의 노동운동 의견그룹은 7월 초부터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의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로 민주노총 내 소통의 부족을 꼽았다. 교섭지원단의 활동이 중집 등에 보고된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적인 의결기구가 아닌 이상 요구안 채택이 교섭지원단에서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2차 대표자회의부터 9차 중집까지,

복원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사회적 대화

 
6월까지도 민주노총 요구안은 정선되지 못했다. 사실 따져보면 민주노총 조직 전반적으로 사회적 대화에 대해 관심도가 높은 상황도 아니었다. 집행부는 조직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가 현장에서도 본격적으로 환기된 시점은 6월 18일 김 위원장이 원포인트 노사정 2차 대표자회의에 다녀온 뒤부터였다.
이 시기는 노사정 대화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경총은 해고금지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했고, 한국노총은 경사노위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김명환 집행부는 사회적 대화가 진척이 없자, 몇 가지 이슈를 던지기 시작했다. 하나는 취약계층과의 사회연대를 위해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었다. 내용은 전 국민 고용보험 재원 마련을 위한 고용보험료 인상, 2020년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공동근로복지기금’으로 조성해 취약계층 노동조건 개선에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경총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평시에나 요구할 법한 안을 들고 와서는 위기를 기회로 노조 옥죄기를 할 뿐이라며 경총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이런 행보는 여론 환기는 되었을지언정, 민주노총 내부를 추스르는 데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고용보험료 인상이나 임금인상분의 사용은 위원장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가맹조직을 비롯해 실제 임금교섭을 진행하는 단위노조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토론을 진행한 후에야 가능한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이벤트로 툭 던지면 그만인 제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비슷한 시기에 일부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언론에 선제적 임금동결론을 제안하며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그런데 노동운동 활동가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임금동결론을 주장했던 사람들도 그것을 실제 가능하게 만드는 것보다 사회적 대화의 동력을 키워보자는 이슈 만들기로서의 취지가 컸다고 한다.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사태에서 이래저래 진지한 제안보다는 이벤트와 이슈 파이팅만 난무한 꼴이 되고 말았다. 
 
김 위원장이 무리한 요구를 준비없이 던진 이유는 노사정 대화에서 주도권을 잃고 있었던 상황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의 의제 상당 부분은 이미 경사노위에서 몇 차례 검토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사노위에서는 4월 22일에 정부가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한 고용지원방안에 따라 바로 다음 날인 4월 23일, ‘양극화해소와 고용(플러스)위원회’에서 고용유지와 관련한 논의를 시작했다. 4월 23일과 4월 29일에 진행된 양극화 해소 위원회 7차, 8차 전체회의에서는 이미 한국노총에 의해 해고금지, 총고용 보장 등의 요구도 제기됐었다. 실업부조 등 사회안전망 확대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 고용유지지원제도에 관해서는 상당히 구체적인 논의가 오갔다. 5월 22일에 시작된 원포인트 대화는 이미 경사노위에서 이뤄진 협의를 다시 반복하는 구도가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교섭의 주도권을 쥐려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책적 역량과 조직적 결의가 필요했는데, 앞서 봤듯 민주노총 집행부는 노사정 대화 판에만 관심이 있었지, 요구안과 조직적 준비에는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러니 어떻게든 튀어보려 무리수를 던졌고, 그러다 조직 내외에서 많은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 사무총장의 원포인트 대화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좀 부족한 안이더라도 일단 협상을 계속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사회적 대화에 나서면서 민주노총이 먼저 판을 깨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언론에 대놓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강한 의지에 따라 협상은 이어졌고, 실무협의 차원에서 지지부진했던 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해서 민주노총의 요구에 따라 교섭을 부대표급으로 격상시켜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집중교섭을 진행했다. 물론 교섭 당사자의 ‘급’을 높인다고 없는 합의안이 뚝딱 만들어질 리는 없었다. 부대표급 집중교섭을 진행했으나 역시 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위원장의 고집과 내파된 민주노총

 
6월 26일 9차 중집회의에서 제출된 안은 원포인트 대화 핵심쟁점 10가지가 정리된 안이었다. 9차 중집회의에서는 교섭을 유지하되, 해고금지와 생계소득보장, 전 국민 고용보험제, 상병수당 등 민주노총 3대 핵심 의제에 대해 정부와 사용자의 입장과 태도가 진정성이 없다고 평가한 후, 민주노총 요구를 다시 강하게 제시하자고 결정했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고, 손을 흔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6월 29일 10차 중집회의에서는 추가교섭 요구사항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안이 올라왔다. 고용유지지원금을 확대하고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지만, 해고금지가 포함되지 않았고, 생계소득보장과 관련해서도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의 지급대상 확대 요구는 관철되지 못했다. 특히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후속 점검 단위였는데, 민주노총이 요구했던 별도의 점검위원회가 아니라 경사노위에서 진행하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중집에서는 잠정 합의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명함과 동시에 미흡한 부분에 대해 재교섭을 요구했다. 김명환 집행부는 곧바로 노동부 장관과 긴급 면담을 통해 몇몇 문구에 대한 수정과 중집 성원이 제기한 우려에 대한 노동부의 답변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당연히 큰 수정은 아니었다. 결국, 최종안은 중집에서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격론 끝에 김 위원장은 중집에서의 논의를 종료하면서 마무리 발언으로 거취결정과 함께 최종안을 밀고 가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런데, 위원장의 이 발언은 사회적 대화 잠정합의안을 직권으로 조인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돼 민주노총 내에서 더 큰 반발을 가져왔다. 위원장은 직권조인에 대해 부인했지만, 중집회의 중단을 선언하며 했던 마무리 발언, 그리고 협약식 참석을 국무조정실에 통보했다는 언론의 보도 등으로 미루어보면 상황에 따라서는 직권으로 합의안에 서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지는 않다.

엄청난 내부 비판 속에서 김 위원장은 7월 1일 노사정 대화 협약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이 물리적으로 막아섰기 때문인지, 정무적 판단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는 민주노총이 협약식에 불참한 시점에서 사실상 좌초되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고집을 꺾지는 않았는데, 합의안에 대해 조합원 의견을 묻겠다며 위원장의 권한으로 7월 23일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했다.
 

중앙이 될 수 없었던 ‘중앙집행위원회’


 6월 26일부터 7월 1일까지 논란의 주 무대는 중집이었다. 합의안을 논의한 것도 중집이었고, 합의안을 1차로 부결시킨 것도 중집이었다. 산별노조 위원장들과 총연맹 지역본부 위원장들이 참여하는 중집에서는 과연 이 기간 어떤 논의가 오고 갔을까? 

먼저 중집 성원 상당수가 초반에는 원포인트 대화 자체에 관심도가 높지 않았던 것 같다. 민주노총이 포괄하는 단위들이 코로나19 위기의 직격탄을 맞지 않았던 탓이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부문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노조에 조직되지 않은 민간 중소영세 사업장이었다. 민주노총 내에서 그나마 코로나19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단위는 보건의료부문과 특수고용, 공항과 그 공항이 있는 인천지역에 집중되었다. 중집 성원의 대부분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이른바 현장파 친화적 중집 성원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전태일3법과 관련한 논의과정이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연초 대의원대회에서 전태일3법과 관련한 활동을 의결하기는 했으나,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전태일3법이 원포인트 대화의 요구안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제기가 있었다. 그 결과 원포인트 대화에서는 전태일3법 관련한 요구들을 중심으로 다루지 않았는데, 이 당시에도 소위 현장파적 경향의 활동가들은 전태일3법을 요구안에 넣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주장했었다. 

참고로 김명환 집행부가 사퇴한 이후 들어선 비대위의 하반기 핵심과제는 다시 전태일3법으로 되돌아갔다. 취약계층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원포인트 대화를 반대했고 그 핵심 근거로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의 개악을 들었지만, 이 부분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전태일3법만 남게 되었다. 돌고 돌아 코로나 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20년 초의 대의원 대회로 돌아간 셈이다.
 
◀민주노총의 전태일3법 쟁취사업 홍보 포스터다. 민주노총 비대위가 들어선 이후 민주노총의 하반기 핵심 과제는 전태일3법 쟁취로 설정되었다. 전태일3법은 코로나19 위기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인식이 없던 연초에 제출된 계획이었다.(당시는 전태일2법) 약간 달라진 점은 코로나위기를 전태일3법 쟁취로 돌파한다는 점이겠다. 마치 전태일3법이 코로나19 위기 전에도, 위기의 극복방안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는 쟁점적이다. [출처: 민주노총 홈페이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다수의 민주노총 내부 관계자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중집 역시 요구안 논의에서 역량의 부족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 요구안의 핵심인 해고금지에 대해서 실제 실현 가능한 요구인지, 어떤 형태로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지, 조직되지 않은 노동을 포괄할 수 있는 요구인지, 이 요구안이 코로나19 정세에 적합한 요구인지 등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필요했으나 전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공식 의결기구는 중집이었으나, 중집에서는 논의역량이 전혀 뒷받침되지 못했고, 결국 요구안 선정이나 요구안의 우선순위를 논하는 과정은 정책담당자 회의에 일임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정책담당자 회의에서마저 논의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사회적 대화는 겉으로 드러난 논란과 달리 안에서는 오히려 무엇이 논란이 될 것인지조차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집에서 논의가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김명환 집행부의 행보에 대해 제대로 제동을 걸만한 장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김명환 집행부는 논의를 회피했고, 중집은 논의할 실력이 없었다. 처음부터 기우뚱거렸던 사회적 대화는 이런 식으로 복원력을 상실하고 침몰했다.

중집 논의가 이런 식으로 굴러가다 보니, 6월 26일 중집까지도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신호를 김명환 집행부에 주지 못했다. 교섭을 유지한다는 전제를 유지했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추가 교섭을 요구한 정도였다. 26일 중집 분위기 또한 결사반대보다는 협상을 통해 더 얻을 수 있다는 분위기로 진행되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당시 여러 조건을 고려했을 때, 민주노총이 6월 26일 시점에서 추가교섭을 통해 진전된 안을 따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민주노총이 판을 주도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더더군다나 3차 추경에 노사정 합의를 반영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시간적 제약도 존재했다. 길어봐야 3일 정도의 시간 안에 약 2달에 걸친 협상에서도 관철하지 못한 안이 관철될 리 만무했다. 

이렇듯 6월 26일까지도 원포인트 대화에 대한 명확한 반대는 없었다. 6월 25일, 기재부의 승인으로 고용유지지원금이 일부나마(5000억) 확대되었기 때문에 김명환 집행부는 원포인트 대화가 충분히 조직 내에서 가결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김 위원장은 중집의 잠정합의안 반대를 정파적 판단이라고 공격할 빌미를 쥐기도 했다. 부위원장 중 1인이 김 위원장에게 정파의 이름을 대면서 두 정파 간에는 합의가 끝났으니 교섭을 진행하지 말라고 이야기한 것도 또 다른 빌미를 줬다.


코로나19 속에 민주노총은 대체 어떤 역할을 해야 했을까


7월 1일 최종안의 사실상 폐기 이후 7월 23일 임시 대의원대회까지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최종안 가결 반대가 우세한 분위기 속에서 최종안에 대한 각 단위의 입장이 발표되고 연서명이 조직되었다. 물론 과정이 엉망이었으니 평가가 제대로 될 리도 없었다. 김명환 집행부는 정부 정책을 거의 그대로 옮겨둔 최종안을 포장하기 바빴고, 정파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합의안 반대진영을 공격했다. 최종안 반대파는 최종안에 대한 침소봉대 격의 비판을 이어가면서 사회적 대화 자체가 무용하다는 주장과 김명환 집행부를 악의로 비난하는 데 몰입했다.

이런 가운데 노사정 합의안 반대 연서명에는 대의원대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대의원 과반이 넘는 800여 명이 참여했다. 김명환 집행부는 합의안 토론회를 제안했으나 압도적 부결로 심판하겠다는 기조 아래 합의안 반대파는 토론 참여를 거부했다. 당연히 생산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고, 그렇게 진행된 온라인 대의원 대회에서 최종안은 부결되었다. 이미 거취를 걸고 대의원대회를 진행했던 김명환 위원장, 김경자 수석부위원장, 백석근 사무총장은 7월 24일 사퇴 기자회견을 한 뒤 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민주노총은 언론, 정부 등을 포함해 전 사회적으로 스스로 밥상을 걷어찬 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노총은 대화 파트너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보도들도 연이어 쏟아졌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논란이 남긴 민주노총의 상처가 깊다. 하지만 노동자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 만큼, 민주노총이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평가하고 혁신하며 다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는 대의원대회가 끝난 직후 성명을 발표했다. 그 성명의 일부를 인용하며 3월 10일 기자회견부터 7월 24일 집행부 사퇴까지의 전말을 서술한 이 글을 마친다.

“김명환 집행부가 사퇴하고 비대위가 꾸려지면, 민주노총 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수개월의 시간을 허비한 터라 민주노총 요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조차 합의지반이 약하다. 그럼에도 민주노조 운동이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하려면, 산별노조 중심으로 필요한 일들을 기민하게 대응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영세사업장, 자영업자의 고용위기 최전선에 있는 총연맹 지역본부 역시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총연맹에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코로나19 정세와 민주노총의 역할에 관한 조합원 토론이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합의가 안 되는 조직을 가지고서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다. 다음 집행부에서라도 총노동 전선을 만들려면 위원장 선거 전후에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우선,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만드는 방법에 관해 토론해야 한다. 2020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가 확정적이다. 경제규모가 축소되는데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일자리를 유지할 방법은 없다. 더욱이 한국의 이중적 노동시장은 코로나19에도 건재한 상층 노동자와 끝도 없이 추락하는 하층 노동자로 양극화되어 있다. 임금과 고용을 노동자 사이에서 연대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는 더욱 심각한 양극화로 갈라질 것이다. 한계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는 노동자의 주동적 역할을 찾지 않으면 ‘자본 탓’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재정이 화수분이 아닌 만큼 모든 것을 정부에게 해결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노동자의 자구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다음으로, 민주노총의 역할에 관해 토론해야 한다. 이번 혼란에서도 드러난 바, 민주노총 내에는 여전히 총연맹이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합의가 없다. 위원장을 직선으로 뽑은들 총연맹이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합의하지 못하면 리더십이 형성될 수 없다. 민주노총이 총자본을 상대로 교섭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아니면 단지 현장 투쟁을 지원하는 공동투쟁체일 뿐인지, 총자본에 대한 교섭이 필요하다면 그 형식과 내용은 무엇인지, 공동투쟁체라면 왜 위원장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것인지 등을 토론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 초기업적 조직의 역할을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은 금속, 공공운수 같은 산별노조의 역할과도 연관된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 민주주의에 관해서도 토론이 필요하다. 중앙집행위의 파행적 운영, 일부 노동단체의 회의 방해, 대의원대회 개최 논란, 집행부 측의 정파책임론 등등 지난 3주간의 의사결정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내부 갈등의 소지가 있는 내용을 다룰 때 간부와 조합원들이 어떤 과정으로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야 하는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해놓아야 한다. 25년 역사의 민주노총이 이것도 정리하지 못한다면 ‘민주’의 이름에도 부끄러운 일이라 하겠다.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 혼란이 혁신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민주노조 활동가들이 다시 한번 분골쇄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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