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0 가을.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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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독자에게

임필수 외 |

「1990년대 한반도 정세와 통일운동 개괄」 독자에게

임필수(계간 사회진보연대 편집장)
 
1. ‘탈냉전을 거부한 것은 북한’이라는 평가는 동구권 체제 붕괴와 탈냉전 시대를 맞아 북한이 신속하게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었어야 한다는 평가인가요? 마르크스주의자가 채택하기에 곤란한 입장은 아닌가요? 
2. 핵무기 문제에 관하여 사회진보연대가 과거 입장에 비하면 최근에 미국보다 북한 비판을 훨씬 강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러한 강조점의 이동이 정당한 것인가요?
 
1. 탈냉전과 북한

먼저 ‘탈냉전’이 곧 현존 자본주의 체제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재편), 글라스노스트(개방)라는 새로운 흐름이 있었습니다. 1986년 4월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사회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구호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글라스노스트 정책도 시행됩니다. 곧 반소(反蘇)적이라고 금지되었던 문학작품, 영화·연극을 공개, 개방하고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을 완화합니다. 도입 당시에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이나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여전히 금지했으나, 소련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언론·출판·예술 영역이 개방되는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1986년 10월에는 레이건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전략핵무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전술핵무기는 전량 폐기하자고 제안하여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합니다. 1987년부터는 소비에트 대의원선거에서 복수 출마와 완전한 비밀투표가 도입됩니다. 또한 기업의 자주관리와 독립채산제를 채택했고, 개인기업을 허용하고 협동조합의 자율권을 높이는 개혁도 시행됩니다.

이처럼 페레스트로이카는 사회·문화, 군사·외교,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소련의 해체로 이어졌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페레스트로이카라든가 글라스노스트, 민주화라는 구호로 추구된 변화가 모두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PD 운동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사회주의의 발본적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반면 이 시기에 NL 운동은 페레스트로이카 논의에 가장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제기된 이유가 “사회주의 건설의 전략적 과업의 하나인 인간개조 사업이 홀시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페레스트로이카는 오히려 북한 사회주의 혁명과 주체사상 체계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따른다면 북한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전혀 필요 없는 이미 완전한 사회주의 체제라는 결론이 도출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글에서 자세히 언급했듯이, 이러한 주장이 북한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사실은 1990년대에 이미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다음으로, 독자께서 하신 질문은 현실에 존재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그래도 자본주의 체제보다는 더 낫다는 판단을 내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비교하자면 자본주의로 편입되는 것보다는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게 더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현실 사회주의의 성격이 무엇이냐, 과연 자본주의보다 더 진보적이냐는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실 사회주의는 ‘특수한 형태’의 자본주의, 즉 ‘국가적 형태’의 자본주의였다는 것입니다.

현실 사회주의는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경제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곧 사회주의의 핵심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겉모습만 볼 때 현실 사회주의에서는 산업, 상업, 금융이 모두 국유화되면서 자본가도 소멸하고, (자본주의에서 존재하는) 기업 사이의 분리도 소멸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즉 자본주의가 폐지되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지만 현실 사회주의에서 기업 관리자는 외형적으로는 ‘비(非)소유자’이지만, 국가소유라는 틀 내에서 자본을 영유했습니다. 그들이 사실상 자본가로서 실존했고, 국가-당의 관료와 함께 지배계급(노멘클라투라)이 되었습니다. 노동자 역시 자본-임금노동 관계에 포섭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가 잉여생산물(잉여가치)을 어떻게 처분할지 결정합니다. 동시에 잉여를 창출하기 위한 생산과정의 발전 방향도 결정합니다. 즉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로 나타나는 노동의 소외를 극대화할 것이냐, 아니면 노동이 인간의 첫 번째 욕구가 되는 사회, 즉 노동이 곧 자기실현이 되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생산과정을 변혁할 것이냐는 문제 말입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임금에 대한 권리’가 주어질 뿐,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에서도 노동자는 잉여생산물의 처분이나 생산과정의 발전 방향에 대한 결정권이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기업관리자와 국가 관료가 독점했습니다. 이는 현실 사회주의에서 자본-임금노동 관계가 재생산되었다는 지표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국가계획을 통해서 기업 간 분리가 소멸하고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이 극복되었다는 주장도 현실과 괴리됩니다. 중앙계획당국, 경제부처, 기업관리자로 이어지는 경제계획 메커니즘에서 각각은 서로 다른 경제적 동기를 지녔고, 각자 이익을 추구함에 따라 종종 상호 모순을 일으켰습니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간에 완벽한 계획화는 실현 불가능했고, 이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부족(不足)의 경제’, 즉 노동력, 원자재와 생산물이 모두 부족한 경제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현실 사회주의가 특수한 형태, 즉 국가적 형태의 자본주의라고 한다면 이런 자본주의가 다른 자본주의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진보적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 자본주의의 역사를 고찰할 때, 국가 자본주의가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즉 개인기업이 지배하는 자본주의(19세기 영국)나 법인기업이 지배하는 자본주의(20세기 미국)보다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더 우월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국가 자본주의는 헤게모니 자본주의(영국이나 미국)를 추격하기 위해 후발·후진 자본주의가 선택한 전략이었으나, 결국 추격에 실패하고 지배적 형태의 자본주의를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가 그래도 자본주의보다는 더 진보적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마르크스주의 그룹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소련이 ‘관료제로 타락한 노동자국가’라는 트로츠키의 입장도 그러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경제의 계획화를 통해 생산력이 월등하게 발전할 수 있고, 바로 이런 경제적 토대가 소련의 진보성을 담보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타락한 관료제를 타파하기 위한 정치혁명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또한, 소련이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라는 ‘종별적 생산양식론’을 제창했던 논자들도, 사적 소유자로서 자본가가 제거되고 계획경제를 통해 자유경제가 제거됨으로써 자본주의가 폐지된다는 점에서 소련이 자본주의보다 진보적이라고 간주합니다. 다만 관료제적 착취가 지속하므로 미래 사회주의에서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식의 관점이라면 북한이 국유화와 계획화를 유지하는 한 최소한 자본주의보다 진보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될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경제가 국유화와 계획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규정할 수도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를 보통 북한 경제의 ‘시장화’라고 표현합니다. 지면의 한계상 이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처럼 현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진보적이었냐는 질문은, 단지 과거 사회주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를 넘어 미래 사회변혁의 상을 어떻게 설정하냐는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므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쟁점이 아닙니다. 나아가 이는 마르크스주의 그룹 내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쟁점이므로 주의를 더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2. 북한 핵 비판 

제가 사회진보연대에서 한반도 문제나 핵 문제에 관한 글을 오래전부터 써왔는데요, 제 경험에 비추어 답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북한 핵 문제에 관해 큰 충격을 받은 적이 두 번 있습니다. 첫 번째는 2002년, 즉 김대중 정부 5년차이자 미국 부시 정부 2년차에 미국의 켈리 특사가 방북했을 때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시인했다는 보도였습니다. 그러한 발표가 사실이라면 제네바합의의 근간이 붕괴할 게 분명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의 발표가 북한의 진의를 오해하거나 왜곡한 것이라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제가 쓴 글에서 다뤘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나아가 부시 정부가 이라크 사례처럼 북한을 위협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는 증거를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는 증거가 있다면서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서 혹자는 확신하고, 혹자는 부정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바마 행정부 시기인 2010년 11월 북한을 방문한 핵 전문가 해커 박사는 영변 핵시설 내 현대식 우라늄 농축시설을 둘러봤다고 발표했습니다. 해커 박사는 이 정도의 시설을 갖추려면 십수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과 밀접히 관련을 맺었던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와 정치인은 1999~2000년에 북한에 핵기술을 지원하고 원심분리기를 제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1999~2000년은 부시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인 클린턴 정부 시기고, 제네바합의가 이행되는 기간이었으므로, 이미 북한 정부가 선제적으로 제네바합의를 무시하고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지속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즉 부시 정부가 제네바합의의 변경을 요구하거나,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기 전에 이미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모두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책 때문에 그렇다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두 번째 충격은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2009년 4월,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단행한 사건입니다. 만약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운영한 게 정말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 때문이라면 북한으로서는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내세운 오바마 정부와 본격적인 협상을 준비해야 할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당시 미사일 실험에 관한 유엔 제재를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북한의 새로운 실험에 따라 유엔은 제재 수위를 높였습니다. 북한은 이에 항의한다는 명분으로 바로 다음 달인 5월 지하핵실험을 단행합니다. 결국 북한이 의도한 수순대로 미사일 실험→(유엔 제재)→핵실험을 아주 짧은 기간 내에 해치워버린 셈이 됩니다.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진정으로 미국과 협상을 할 의사가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되고, 결국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의 대북정책이 실행되며, 오바마 정부 8년간 아무런 실질적 변화도 없게 됩니다. 저 역시 북한의 이러한 행동을 보면서 북한이 미국과의 외교협상을 위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핵무기 그 자체를 보유하는 게 목적이 아닌지 다시금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제 질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해보겠습니다. 현재 사회진보연대가 핵 문제에서 북한 비판에 더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실제로 저는 현재 북한의 행태에 대해 좀 더 명징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북한은 스스로 공언한 비핵화 약속을 거듭해서 어겼습니다. 1990~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이나, 1994년의 북미 제네바합의, 6자회담에서 나온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와 같은 약속을 계속 깨뜨려 나갔습니다. 제가 앞에서 길게 설명한 것처럼, 북한이 지속해서 비핵화 약속을 위반한 게 미국의 압박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은 객관적인 사실에도 별로 부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태는 국가 간 외교적 약속을 깨뜨렸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입니다만(정상적인 국가라면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나아가 동북아에서 상상하기도 싫은 핵전쟁의 위험을 키워 평화를 바라는 민중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행태에 대한 명징한 비판이 필요합니다. 

둘째, 북한이 계속 약속을 위반하면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배치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러한 시도 자체가 전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핵무기의 경우, 무기의 개발, 보유, 배치 과정이 직접적인 무력충돌의 위험이 더 큰 기간이 됩니다. 예를 들어 1962년 5월 소련이 미국의 쿠바 침공을 억제하기 위해 쿠바에 소련 핵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구상을 제안하고 실행하면서 3차 세계대전, 즉 미소 핵전쟁의 위험이 초읽기 직전까지 고조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쿠바 카스트로 정권의 전복을 지원한 게 명명백백한 사실이고(1961년 피그스만 침공), 소련이 반미, 반제국주의를 위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게 너무나 정당하니까 핵미사일 배치를 끝까지 밀어붙였어야 할까요? 반미, 반제국주의를 위해서 핵전쟁을 불사해야 했을까요? 그 결과 수억 명의 인구가 핵전쟁으로 죽게 된다면 그 모든 게 미 제국주의자들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면 될까요? 그것이 과연 사회주의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둘러싼 쟁점은 누가 더 도덕적으로 악인가를 따지는 문제를 넘어섭니다. 곧 동북아 전체 민중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볼 때도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더 명확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NPT를 넘어 핵무기금지조약으로」 독자에게

김진영(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남한의 핵무기금지조약 비준, 북한의 핵 폐기를 통해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반도·일본의 비핵지대화로 나아가자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북미 간의 핵무기 보유량과 국력의 차이를 봤을 때 미국의 잘못이 더 크며, 미국의 비핵화가 북한의 비핵화에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진보 진영 내에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핵무기는 그 존재 자체로 전쟁위험을 불러일으키고, 인류의 절멸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정의의 무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북한 핵과 미국 핵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쁜가?”란, 어긋난 논쟁의 굴레 속에서 핵무기에 대한 원칙적인 반대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동북아 평화를 어떻게 달성할지를 논하려면, 북한 대 미국의 구도에만 천착할 것이 아니라 세계적 핵무기 통제·철폐의 관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에서 핵전쟁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 한반도며 이는 다름 아닌 우리의 생존 문제인 만큼, 무엇보다 객관적으로 사고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사회진보연대와 국제 반핵평화운동이 끊임없이 이야기해 온, “핵무기를 가진 행위자가 많을수록, 핵무기의 수가 많을수록 세계는 위험해진다”는 명제를 전제하여 답해보겠습니다. 

먼저, 북한보다 미국의 잘못이 더 크며 미국의 비핵화가 북한의 비핵화에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주로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의 대북위협 역사를 통해 정당화할 수 있다, 미국으로부터 북한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 그 원인인 미국의 위협이 사라져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폅니다. 그러나 이는 어느 나라, 어느 집단이나 핵무기를 가져도 된다는 논리적 귀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강대국이며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이나 일본에도, 홀로코스트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라는, 당사국으로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아픈 과거를 근거로 핵무장(추진)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있습니다. 남한의 핵무장 역시 미국의 핵우산만 믿을 수도 없고, 일본의 핵 능력에 뒤처지는 것이 분하고, 북한과 중국의 핵무기 때문에 불안한 남한 보수 세력의 오랜 꿈입니다.

비공식 핵무기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핵무장을 추진했다 포기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중동 내 앙숙관계인 이란과 이스라엘 등 여러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국가들은 상호 간의 한 맺힌 역사와 영토, 종교 갈등, 지역 패권과 같이 쉽게 양보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핵이란 카드를 만져왔습니다. 과거 중국과 소련(러시아)도 미국의 압박으로부터 사회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핵무장에 나섰으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피폭, 경제 침체, 환경 파괴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례보다도 처참했습니다. 오늘날 북한 민중도 마찬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국제적 핵 군비경쟁이 재개된다면, 그저 국력 증진을 위해서, 혹은 다른 나라들도 핵무기가 있다는 이유로 핵무기를 만들고 이를 정당화할 나라들이 가장 흔할 것입니다. 1945년 원폭투하 후부터 NPT, 즉 핵무기비확산조약이 체결될 때까지의 상황이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이처럼 핵무기를 둘러싼 국제정치에는 ‘한반도 예외주의’, 즉 중국, 일본, 미국 외세에 맞서 5천 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한민족이 간악한 미제의 핵에 맞서기 위해서는 핵무장이 불가피하다는 서사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이란 비극을 고려해도 말입니다. 한반도 역사를 근거로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는 것은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불과합니다. 이는 인류의 미래에 대단히 위험한 효과를 낳습니다. 현실에서 북한의 핵무장은 두 번째 한국전쟁이나 동아시아의 핵무장 도미노, 핵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방아쇠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직간접적으로 미국의 공격을 당한 나라는 베트남, 쿠바, 멕시코, 파나마, 팔레스타인 등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미제에 맞선’ 나라들이 전부 핵무장에 나선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상당수가 핵무기금지조약을 비준했음을 본문에서 이미 지적했습니다. 과거 전쟁과 학살, 식민 지배를 경험한 많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그렇습니다.

두 번째로, 거의 모든 유엔 가입국(190개국)이 NPT에 가입하여 이에 따라 핵무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NPT를 무단탈퇴한 뒤 핵무장을 감행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미국의 선(先)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설득력이 없습니다.

물론 NPT 체제는 본문에서 비판한 대로 한계와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고, 현재 지속가능성의 시험대에 올라있습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하여 NPT가 보장한 ‘공식’ 핵무기 보유국들은 그 존재 자체가 모든 핵무기의 철폐라는 NPT의 궁극적 지향과 모순되며, NPT 제6조에 명시된 핵군축 의무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인도 등의 핵무장을 묵인 내지 지원하여 NPT 체제의 교란에 일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NPT를 부정하거나 일소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제조약의 내용을 비판하는 것과, 이미 여러 국가 간에 성립한 약속이라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NPT는 핵무기 없는 세계로 나아가는, 현실의 ‘통과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에 썼듯 수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NPT가 성립하지 않았다면 이미 오래전에 수십 개의 국가가 핵무기를 만들 수 있었고, 지금 NPT 체제가 붕괴한다면 그때보다 더 큰 혼돈이 올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국가가 NPT의 틀 안에서 NPT 평가회의를 활용하여 핵군축 상황을 검증하고, 지역별로 비핵무기지대를 확립하여 상호 간의 잠재적 핵 위협과 핵무기 보유국의 위협을 최대한 배제하고, NPT를 뛰어넘는 핵무기금지조약을 추진하는 식으로 핵무기 보유국에 핵군축을 압박해 왔습니다. 남한의 핵무기금지조약 비준을 추진하자는 것도, 북한의 핵 위협에 우리도 핵으로 맞대응할 것이 아니라 선제적 군축으로 상대의 군축을 압박하자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핵에 맞서는 다른 길, 평화의 길이 충분히 존재하는 상태에서 북한의 핵보유 고수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핵무기금지조약(TPNW)도 단숨에 전 세계의 핵무기를 철폐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당연히 아닙니다. 공식·비공식 핵무기 보유국에 어떻게 이 조약의 비준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인지는 조약 발효 다음 단계의 과제이며, 여기서 이야기하는 미국 비핵화·북한 비핵화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그럼에도 핵무기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첫 번째 국제적 합의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를 매개로 국제적 반핵평화운동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거는 것입니다. NPT보다 더 나은 통과점이자,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미래를 최대한 예방하는 길이 될 수 있겠습니다.

세 번째로, 미국 선비핵화 주장은 실제로는 한반도·동북아시아·전 세계 비핵화 구상을 추구한다기보다는 그러한 구상을 부정하는 것이고, ‘한민족의 핵무기’를 고수하기 위한 빌미를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이 6,000기 이상(세계 2위 보유량)의 핵무기를 전량 폐기하는 상황이 와야 북한 핵 폐기를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진심 어린 주장이라기보다는, 북한 비핵화를 할 생각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미국 선비핵화 주장이 주로 북한 정권에 호의적인 그룹들에서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북한 정권의 “한반도 비핵화는 전 세계의 비핵화가 있을 때 시작될 수 있다”는 입장과 같은 맥락일 수도 있습니다. 2016년 조선노동당 7차 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핵·경제 병진 노선은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노선이며 가장 정당하고 혁명적인 노선”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국제사회 앞에 지닌 핵 전파 방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견 모순적인 이러한 발언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준다면 2003년 탈퇴한 NPT로의 복귀 등을 포함하여 국제사회의 핵확산 통제 논의에 참여할 의사가 있고, 핵보유국 지위에서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기존 핵보유국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전 세계의 비핵화’를 논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NPT를 탈퇴하여 핵무기를 개발한 다음에 제 6의 공식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NPT 체제 자체가 신뢰성을 상실하므로, 국제사회가 이를 수용할 리가 만무합니다. 규칙을 위반하는 자에게 보상을 주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통일운동 일각이 2017년 북한의 ICBM 발사 성공을 통해 북미대결에서 북한이 주도권을 쥐었고, 한반도 정세의 중심 문제가 적대관계 청산과 평화협정 체결로 전환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면, 통일운동 일각과 김정은 위원장은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대단히 위험한 정세 판단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 첫 북미정상회담 성사에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독단적인 외교스타일이라는 요소 외에도, 북한의 강화된 ICBM 능력이 영향을 미친 면이 물론 있겠지요. 그러나 결국 김정은 위원장과 통일운동 일각의 소망은 ‘환상’입니다. 2019년 초 하노이회담의 결렬과 그 뒤 지금까지 1년 반 넘게 아무런 진전 없는 북미대화의 현실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는 적대관계 청산과 평화협정 체결의 길로 더 나아갈 방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미 양자관계를 차치하고서라도, 북핵의 존재와 동시에 동북아 평화가 성립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북한의 핵보유는 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 동아시아(한국·일본) 배치와 일본의 재무장, 한미일 핵 공유 옵션 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김진영, ‘한반도 비핵화 전망, 평화의 기회는 다시 사라지는가?-2020년 한반도 정세전망’, 《계간 사회진보연대》 2019 겨울 169호 참고)

마지막으로,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핵무기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지도자와 인민이 일체화되어 있는 하나의 생명체로 돌아가는 사회”라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면, 북한 정권의 핵무기 개발은 정권의 유지, 특히 3대 부자 세습이라는 기형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그 대가로 북한 민중이 치룬 희생은 대기근과 경제난을 비롯하여 어마어마했으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임필수, ‘1990년대 한반도 정세와 통일운동 개괄–누가 탈냉전을 거부했는가?’,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0 봄 170호 참고) 남한과 일본 민중의 평화로운 삶을 누릴 권리 또한 희생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아도 “북한 핵과 미국 핵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쁜가?”란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국의 핵과, 한반도 민중의 삶과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가운데 뭐가 얼마나 더 나쁜지를 따질 수 있을까요.


 
「가족의 틀을 넘어 새로운 관계와 사회를 열자」 독자에게

김유미(사회진보연대 페미니즘 팀장)
 
오늘날 가족 제도의 위기를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변화’라거나 심지어 ‘가족 폐지’의 경향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가족임금에 기반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분명히 위기인 것 같지만, 결혼을 통한 가족의 형성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제도 자체는 여전히 견고하지 않은가 합니다. 예를 들어 1인 가구 비중의 증가는 가족 제도 자체의 변화나 위기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일종의 유예된 핵가족이나 하향 평준화된 핵가족의 증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과 가족 폐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임정석, 계간사회진보연대 구독자) 
 
서평에서 충분히 다루지는 못했지만, 자본주의 국가를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 구분한다면 그에 따라 역사적 가족형태도 각기 다르게 관찰됩니다. 스테파니 쿤츠의 분석 대상은 주로 북미·북서유럽의 중심부 국가이기에 한국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쿤츠는 《진화하는 결혼》의 서문에서 본래 결혼의 역사를 연구하려는 자신의 계획은 가족을 둘러싼 당대의 변화를 ‘충격적인 것’, ‘유례없는 것’으로 여기는 통념을 반박해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힙니다. 그러나 역사를 풍부하게 살펴본 후에 도달한 결론은, 오늘날의 변화가 지난 5,000여 년의 역사와 비교해서 정말로 이례적이라는 판단이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OECD 평균 비혼 출산율은 약 40%로, 그중에서도 프랑스·노르웨이·스웨덴 등의 국가에서는 50%를 상회합니다. 절반 이상의 아이가 ‘결혼 없이’ 태어난다는 것은 해당 사회에서 결혼을 통한 가족 형성이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더는 필수요건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결혼제도가 형성된 이래로 매우 특수한 현상입니다. 

사실 비혼 출산율이 2%에 불과한 한국의 국민인 우리가 위와 같은 사회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장기에 구축된 복지제도와 경제적 기반이 있는 중심부 국가에서 가족 모델의 해체는 다양한 가족 구성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물론 제도적 보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닌데요. 20세기 말~21세기 초에 각국에서는 복지제도의 해체, 가족의 위기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반면 역사적으로 한국경제의 발전은 복지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채, 그 역할을 가족 내 여성이 떠맡는 식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결혼을 통해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는 문화적·제도적 압력이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현대 가족 모델의 해체는 상당히 복잡하고 갈등적인 양상으로 진행됩니다. 가족에 부여하는 높은 기대를 달성하기 어려워지면서 결혼·출산에 대한 포기(N포 세대), 거부(비혼 지향), 후회(이혼·졸혼) 등 다양한 양상의 예외들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가족주의를 지양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씀하신 대로 ‘유예된 핵가족’이나 ‘하향 평준화된 핵가족’의 형태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겠죠. 가족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세대, 계층,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개개인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정상 가족 바깥의 인구가 지속해서 늘어나는 현상 자체를 가족 해체, 가족 위기라고 명명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변화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가 주장했던 가족 폐지, 가족의 변형이라는 문제의식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생각해 볼 만한 화두입니다. 가족 비판의 핵심은 그동안 가족 안에서 억압되어 왔던 여성의 권리,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유대와 보편적 권리를 사유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급증한 1인 가구들은 가족을 넘어서는 유대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기는커녕 안전을 걱정하고, 생활비를 걱정하고, 고독사를 걱정합니다. ‘나혼자산다’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에는 나오지 않는 문제들이 현실에는 산적해 있으니까요. 어찌 보면 경제적·사회적 자원에 따른 격차는 1인 가구일 때, 여성일 때 더욱 극심해진다고도 할 수 있겠죠. 결국 우리의 목표는 가족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대안적인 관계,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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