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평가와 2021년 정치전망
누가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막을 것인가?
1. 2020년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1) 추 장관의 사법방해와 코로나19 창궐
2020년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부장관을 임명하며 새해가 시작됐다. 1월 8일 추미애 장관은 검찰 고위간부급 인사를 단행했는데, 조국 전 법무부장관 관련 의혹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책임자급 검사들이 지방으로 발령났다. 이로써 추 장관의 사법방해 논란이 불타기 시작했다. 2020년 1월 13일 패스트트랙 법안 중 ‘검찰개혁’ 관련 법안(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결국 여권의 의도대로 패스트트랙 법안이 모두 관철되었다.
한편 정부는 1월 8일, 감염병 위기경보를 ‘관심’으로 격상했고,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2월 4일 한국은 중국 우한발 입국자만을 제한했고, 2월 6일 중국 전역으로부터 입국 금지를 고려했으나 결국 철회했다. 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월 17일 ‘31번 환자’가 대구에서 확진 판정을 받고(‘슈퍼전파자’)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2월 29일 하루 신규확진자가 909명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했다. 2월 28일 《뉴욕타임스》는 “한국 지도자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라 말한 것은 대가가 큰 실수였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또한 “한국 정부는 미국이나 북한 등 40여 개 나라가 시행한 중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를 꺼리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1월 말과 2월 말, 각각 41%, 42%까지 떨어졌다.
2) 재난기본소득과 비례위성정당 창당
이런 상황에서 3월 8일 김경수 경남지사는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으로 100만 원씩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그 후 3월 30일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4월 총선 이후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해 빠르면 5월 중순에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2월 말부터 해외언론이 한국의 확진자 증가에 주목하면서도 ‘빠른 검사’와 ‘차분한 시민’에 호평을 보낸다는 국내언론의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3월부터 한국 정부는 이를 ‘K-방역’이라고 부르며 점차 세계적 성공 사례로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대통령 지지율은 3월 초부터 상승하기 시작해서, 4월 셋째 주에는 59%에 도달했다.
한편 3월 18일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도 창당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으로 구성된 4+1 협의체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준연동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합의하고 패스트트랙을 통해 강행 통과시켰었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공수처 설치라는 목적을 달성하자, 4+1 협의에 참여한 다른 정당의 기대를 무시하면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했다.
그 결과, 4월 15일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은 180석을 차지하면서 국회 내에서 압도적 다수를 점하게 되었다. K-방역의 성공이라는 신화, 전국민재난지원금 약속이 선거 승리로 이끄는 강한 동력이 되었고, 비례위성정당의 창당은 의석 수를 더 늘리는 데 기여했다. 반면,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은 103석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지도급 의원이 거의 모두 탈락하여 유력 지도자를 상실한 정당이 되었다.
3) 오거돈, 윤미향, 박원순 사건과 남북관계의 파국
그렇지만 총선 직후부터 여권 인사가 직접 연루된 충격적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다. 4월 23일 오거돈 부산시장은 여성 보좌진에게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장직에서 사퇴했다. 5월 7일 이용수 씨가 연 기자회견을 계기로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이자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윤미향 씨 관련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현재 윤미향 의원은 횡령,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7월 9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는데, 바로 전날 박 시장이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밝혀졌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10월 31일, 11월 1일 당원투표를 거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현행 당헌 규정에 “전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기로 했다. 즉 서울, 부산 시장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킨다는 뜻이다. 또한 김경수 경남지사는 11월 6일 문재인 대선 후보에 대한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을 했다는 혐의에 대한 2심 재판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와대는 이에 관한 입장 표명이 없다.
또 한편 남북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6월 16일, 북한 당국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사무소는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에 따라 설치된 것으로 일종의 외교공관이었으나, 2018년 9월에 완공된 후 21개월 만에 폭파되었다. 이때 북한은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전선을 재무장한다고 통보했다. 9월 23일에는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하루 전인 22일 북한 수역에서 사살된 충격적 사실이 밝혀졌다.
4) 인국공 사태, 의사집단행동, 부동산 폭등
한편 문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을 둘러싼 갈등도 표출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6월 22일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종 방안이 발표된 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 공기업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중단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30만 명 넘게 참여했고, 특히 청년 세대가 ‘공정성’을 문제로 삼으며 강하게 반발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또한 8월에는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증원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하는 의사단체의 집단행동도 벌어졌다.
6월 17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1번째 부동산 대책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정책 논란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전세금을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와 법인의 부동산 투기가 집값 급등의 원인이라고 보고 관련 대책을 내놓은 것인데, 오히려 주택 마련 사다리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반발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집값도 계속 상승했다. 그러자 정부는 7월 10일 22번째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다주택자가 임대주택을 운영하며 매물을 내놓지 않아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고 보면서, 신규 민간임대등록은 장기임대만 가능하도록 하고 임대의무기간을 연장했으며,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도 모두 올렸다. 그렇지만 이 역시 주택임대 사업을 장려하겠다는 정책 약속을 스스로 저버렸다, 다주택자의 퇴로를 모두 차단했다는 반발과 함께, 아파트 가격 상승도 전혀 잡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사안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공의료 확대’,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매우 훌륭해 보이는 명분을 지녔을지 몰라도, 문 정부의 정책 실패를 분명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5) 국가부채, 동학개미 논란
한편 국회는 4월 30일 2차 추가경정예산을 확정했는데, 긴급재난지원금 12.2조 원 지출이라는 단일사업을 위한 예산이었다. 국채발행 3.4조 원에다가 지출구조조정 8.8조 원으로 재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국회는 7월 3일, 1972년 이후 48년 만에 3차 추가경정예산을 확정했다. 이는 35.1조 원 규모로 세입경정(성장률 하락과 세금면제를 고려한 세수 감소) 11.4조 원, 금융지원 5.0조 원, 고용·사회안전망과 경기보강 패키지 18.7조 원으로 구성되었다. 이중 경기보강 패키지에는 ‘한국판 뉴딜’(디지털 뉴딜+그린 뉴딜+고용안전망 강화) 예산 4.8조 원이 포함되었다.
문제는 2019년 본예산 편성 당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37.1%였으나, 3차 추경을 거치며 43.5%로 증가할 전망이라는 점이다. 과연 한국이 이처럼 가파른 국가채무 증가를 감당할 수 있냐는 문제가 중대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10월 5일 홍남기 부총리는 국가채무비율 60%를 기준으로 하는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한도는 시행령에 담기로 했고, 5년마다 국회 동의 없이 한도를 바꿀 수 있게 했다. 예산 수립의 주체인 입법부를 무시하고 행정부가 재정준칙을 임의로 좌지우지하게 한 셈이었다.
또한 10월 23일 국제금융협회(IIF)가 세계 34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해 발표한 ‘글로벌 부채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 3분기 말 기준 100.6%에 달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국가부채 1,000조 원, 가계부채 2,000조 원, 기업부채 1,000조 원’이라는 전대미문의 ‘트리플 쿼드릴리언(1,000조 원)’ 부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 2일 현재 주가지수(KOSPI)는 2,600대를 찍고 있다. 이에 대해 12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평가가 어느 때보다 긍정적이란 것을 주가라는 객관적 지표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정부의 노력도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자찬하면서, 그 예로 공매도 금지와 기간 연장, 증권거래세 조기 인하,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 유지를 언급했다. 또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주식을 팔고 나갈 때 개인투자자들이 동학개미운동에 나서며 우리 증시를 지켰다”며 ‘동학개미’를 칭송하기도 했다. 실물경제의 심각한 침체, 국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의 급증 속에서 주가지수의 급상승은 명백한 위험 신호인 게 틀림없는데, 왜 문 대통령은 이를 한국 경제의 긍정적 지표로 인식하는가. 빚을 내 주식투자에 올인하는(‘빚투’) 2030세대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은 어찌할 것인가.
8월 12일 금융투자협회는 8월 10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신용융자 잔액이 15조 1,727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7월 10일 13조 원을 넘어선 이후 매일 역대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증권사마다 다르지만 통상 일주일만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도 연 6~7%에 해당하는 이자를 내야 하고 두 달 이상 빌릴 경우 이자율은 9~10%에 달한다. 또한 공모주 청약에 주로 사용된 마이너스통장 한도액도 2030세대를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마이너스통장 개설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30세대가 올해 새로 만든 마이너스통장의 대출 한도 금액은 지난 7월까지 14조 2011억 원에 달했다. 20대의 마이너스통장 대출 연체 금액도 이미 13억 원을 기록해 사상 최고 수준을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6) 추 장관의 검찰총장 징계청구
마지막으로, 하반기 정세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검찰 이슈를 살펴보자. 금융감독원의 2020년 8월 발표에 따르면 2011~2020년 사모펀드 환매 중단 및 연기는 총 361건인데, 모두 2018년 이후 발생했다. 2018년 10건, 지난해와 올해(8월 기준)는 각각 187건과 164건이다. 피해액 규모는 환매 중단 금액만 6조 689억 원. 추가 중단 위험 금액은 7,263억 원이다. 대형펀드의 환매중단 사태는 그 자체가 심각한 사회경제적 이슈이며, 금융규제 완화, 금융감독 소홀을 비롯해 따져야할 여러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형 비리 사건이 아니냐는 의혹이 점점 더 강해졌다. 라임자산운용은 2019년에 연쇄적으로 펀드 환매중단에 들어갔는데, 검찰은 2020년 2월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4월 16일에는 연루 의혹을 받은 김 모 전 청와대 행정관을 체포했다. 옵티머스는 2020년 6월에 환매중단을 선언했는데, 검찰은 6월 25일 옵티머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옵티머스에도 어떤 청와대 행정관의 남편이 핵심인사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라임-옵티머스에 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던 중, 10월 8일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 원을 건넸다”고 증언했다가, 10월 16일에는 갑자기 말을 바꾸며 이러한 폭로가 검찰이 강요한 것이었고 야당 인사와 검사에게 수억 원대 금품로비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10월 19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김봉현이 주장한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라임 사건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했다.
한편 11월 5일 대전지검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하여,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을 압수 수색했다. 이는 감사원이 “추가 수사 여부에 따라 범죄가 성립할 개연성이 있다”고 하여 감사 자료를 검찰에 보내며 시작된 수사였다. 그로부터 15일 후, 11월 24일, 추 장관은 윤석열 총장의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다수 확인했다”며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및 직무 배제 조치를 취했다. 그렇지만, 12월 1일 현재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장관의 직무정지, 징계청구, 수사의뢰가 부당하다고 의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윤 총장 측의 직무배제 집행정치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에 따라 윤 총장이 12월 1일 오후, 직무에 복귀했다. 같은 날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윤 총장 징계에 반대해 사직서를 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고 차관이 징계위원장을 맡아야 하는데, 그가 사직함에 따라 징계위가 불가피하게 연기되었다.
2020년 한 해만 두고보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실적이라고 뚜렷하게 내놓을 게 없다. 남북관계의 파탄이라든가, ‘인국공 사태’나 의사단체 집단행동,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드러난 문 정부의 정책실패, 국가부채와 민간(가계, 기업)부채의 급증, 대형펀드와 관련된 권력형 비리 의혹, 추 장관의 노골적인 검찰수사 방해(사법방해), 여권 자치단체장의 성추행 혐의에 따른 보궐선거와 인터넷 댓글조작 2심 실형 선고 등등, 모든 면에서 볼 때 오히려 ‘총체적 실패’라고 규정할 만하다.
문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방역이나 주가 급등을 치적으로 내세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국의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는 게 과연 문 정부의 성공적 정책 덕분인지, 밖으로 문을 열어 둔 상태에서 의료역량을 소진시키는 강도 높은 의료진 투입 때문인지, 나아가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소비진작·경기부양이 배반관계에 있다는 명확한 사실을 무시하는 정책혼란도 짚어야 하며, 전국민재난지원금과 같은 정책이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는지도 정확히 검증해야 한다. 또한 실물경제와 괴리된 주가급등에 관한 문 정부의 경제 인식은 안일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위험천만하다.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계속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2. 무엇이 문재인 정부를 총체적 실패로 이끄는가?
2017-9년 윤소영 교수가 출판한,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 『한국사회성격 논쟁 세미나 Ⅱ』은 문 정부에 대한 총괄적 평가를 담고 있다. 또한 최장집 교수가 올해 발표한 글,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위기와 대안」(《한국정치연구》, 29〔2〕, 2020.)은 여러 측면에서 윤 교수의 핵심적 문제제기와 공유하는 바가 있다. 쟁점별로 논지를 살펴보겠다.
첫째,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문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선서 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특히,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약속 중에서 실현된 것이 무엇이 있나?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겠다는 약속이나,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권력기관의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약속은 최근 추미애 장관의 사법방해를 통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공수처도 애초 약속했던 야당의 공수처장 거부권마저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독립성과 정반대의 길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약속이 깨졌을 뿐만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의 실질적 권한 축소도 없었다. 윤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증거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의 인사권”이라고 지적한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할 수 있는 장차관, 기관장 등은 3천개 정도이고,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책은 그 10배 정도다.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직책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대략 1만 개에서 3만 개로 급증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전리품으로 획득할 수 있는 직책이 3만 개라고 하고 적어도 10명이 1팀으로 움직인다고 하면 그 인원만 해도 이미 30만 명이나 된다. 가족까지 계산한다면 100만 명도 넘을 것이다. (『위기와 비판』, 23-24쪽.) 제왕적 대통령은 이러한 거대한 권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바로 이러한 집단이 문 정부 핵심 지지층의 기반을 이룰 것이다.
최 교수도 “한국의 중앙 부처 산하에는 공식적으로 400여 개의 공기업과 공사가 있다. 그러나 정부의 예산이나 운영 자금 지원을 통해 운영되는 준공적기관들은 수천 개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공간은 자주 부정과 비리, 무책임의 온상이 된다. 어쨌든 국가 영역의 확장은 대통령 권력이 동반하는 여러 형태의 부대이익(perk[특전])의 자원이 된다.”
윤 교수는 바로 이런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국회와 정당이 제 기능을 할 수 없고 그 “대통령제의 귀결이 식물국회와 기생정당”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미국과 같이 연방제를 채택하지 않는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선거정치와 대통령제의 결합이 아니라 선거정치와 의원내각제의 결합이 적합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위기와 비판』, 76-78쪽.)
둘째, 조국 사태, 사법개혁·검찰개혁과 법의 지배, 또는 법치주의라는 문제. 윤 교수는 조국 사태를 평가하기 위해 법치를 세 차원에서 정의한다. ① 법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뜻한다. 즉 통치자가 법을 이용해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를 포함해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소수만 법 앞에서 더 평등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② 법치는 ‘제정법을 초과하는 법’, 즉 ‘사회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된 일반적 정의 관념’의 지배를 의미한다. ③ 법치가 법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법조정이란 판검사와 변호사로 구성된 법조(법률가집단), 특히 판사로 구성되는 법원이 정치인으로 구성되는 입법부와 관료로 구성되는 행정부를 대체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세 가지 측면에서 법치를 정의할 때 조국 사태의 본질이나 문 정부의 행태는 법치의 위반이다. ① 조국 교수 일가야말로 법 앞에서 더 평등한 소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②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과 임명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는데, 조국 일가의 행태가 불법은 아니고 “합법적인 제도 속에 내재한 불공정” 문제일 따름이라는 식으로 변명했다. 즉 문재인 대통령은 ‘합법적 불공정’이 ‘불법’보다는 낫다고 본 것인데, 이는 제정법을 초과하는 법(일반적 정의)이 지배한다는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③ 문재인 정부는 인민정과 동시에 법조정을 완성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귀결이 입법부와 행정부의 무능이고, 여기서 법조정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소송과잉사회’로 이행했다. (『한국사회성격 논쟁 세미나 Ⅱ』, 734-6쪽.)
한편, 윤 교수는 사법개혁, 검찰개혁에 대해서도 평가한다. ① 문재인 정부는 ‘재판 거래’를 구실로 법원 인사권과 예산권을 행사하는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를 해체함으로써 사법부 대신 법무부를 강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지론처럼 ‘100년 적폐를 해체하는 20년 집권’을 위한 수단으로서는 역시 사법부보다는 법무부가 효율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론 위기와 비판』, 36쪽.) ②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은 검찰사법이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개혁이 경찰사법의 부활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런데 검경수사권 조정보다 공수처 설치가 더욱 중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할 것이 분명한 공수처를 프랑스혁명기의 공안위원회에 유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사청이 공수처의 대안이 될 수 있는데, 법무부 안에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청과 함께 수사권을 독점하는 수사청, 즉 한국형 연방수사국을 병행설치하자는 것이다.) (『한국사회성격 논쟁 세미나 Ⅱ』, 744-746쪽.)
한편 최 교수도 제왕적 대통령제와 법치의 문제를 언급한다. “대통령에게 제도적으로 부여된 권력 행사의 절제와 관련된 규범이 지켜지지 않음은 최근 사법 행정관료 기구의 수장이 ‘조국 사태’로부터 ‘청와대 비서실의 선거 개입 의혹’을 다루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행위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또한 “공수처법 제정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법의 결정과정에서도 대통령 권력이 절제의 규범을 존중하면서 행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대통령의 권력 행사 방식은 법의 지배라는 대원칙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사법 행정관료 기구의 수장(법무부장관)의 사법 방해를 지적하고, 공수처법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하며 오히려 법치를 파괴할 것이라고 보았다.
셋째,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탕으로 약진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주류로 부상한 이른바 386세대라는 문제. 윤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이 재야운동권이라고 불리던 의회 외부의 정치세력과 연대함으로써 정당을 약화시켰고, 그 덕분에 386세대 운동권이 부르주아 정치에 입문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그 결과, 앞에서 언급한 행정부, 관료의 무능이 나타났다. 고위관료의 발탁이 행정고시나 외무고시 같은 능력제와는 거리가 멀게 되고, 능력제가 엽관제로 대체되었다. 여기서 엽관제란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선거 운동원과 그 정당의 적극적인 지지자에게 승리에 대한 대가로 관직에 임명하거나 다른 혜택을 주는 관행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그런 사례가 급증하면서 고시 출신의 늘공과 구별되는 엽관제 출신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는 말이 일반화된다. (『한국사회성격 논쟁 세미나 Ⅱ』, 807쪽.)
한편 최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캠프 정치’로 묘사한다. “모든 것이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위해 조직되고 운영되는 캠프 정치는 움직일 수 없는 특징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캠프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선거기술자들이다. 전략가들이고 정치상담자들이고, 미디어전문가들을 포함하는 스핀 닥터들(홍보전문가)이다. 그들과 더불어 캠프의 중심을 이루는 또 다른 집단은 교수, 전문가, 전직 관료, 법률가 등 여러 분야를 대표하는 명사들이자, 정책 자문역들이다.”, “그러므로 공직 추구와 권력에 대한 열망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그들은 어떤 정치 규범이나 행동 정향을 공유하지 않는 ‘아노미’ (즉 규범이 없는) 집단이거나, 정치 자문역으로서 견지하는 윤리를 발견하기 어려운, 무도덕한 집단이다.”, “그리하여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가 당선될 경우, 캠프 구성원들은 후보와의 거리 내지 그간의 역할과 기여도에 따라 새로 수립된 정부의 수많은 공직에 충원될 수 있는 인적 풀로서 역할을 한다. 이는 정당이 아닌 캠프가 정부를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캠프 정부의 출현이라 부를만한 변화다.”
결국 386집단의 부상은 한편으로는 정당정치의 약화, 또 한편으로는 행정부, 관료의 무능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386집단은 선거캠프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선거기술자와 명사를 이끄는데, 그들은 선거승리와 권력획득 외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는 무규범하고 무도덕한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할 의사도 없다. 그들의 시각에서는 선거승리를 위해 경쟁하는 적과 아라는 구분선 밖에는 중요한 게 없고, 모든 정치이슈는 진영논리로 환원된다. 이것이 386 정치의 본질이 된다. 이러한 정치행태에서 인민주의로의 타락, 변질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 모든 현실이 문재인 정부를 총체적 실패로 이끄는 중대한 원인이다.
3. 문 정부의 지지율은 왜 견고한가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은 견고하다. 2020년 11월 23~27일에 걸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전주보다 1.1%포인트 오른 43.8%로 나왔다. (이 여론조사는 11월 24일 추 장관의 윤 총장 징계청구 사안을 일부 반영한 것인데, 대통령 지지율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추세가 여론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대통령 지지율의 가파른 상승이 민주당의 압승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또한 집권세력 자신이 여론조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지지율을 관리하기 위한 정책을 구사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율을 떠받치는 요인은 무엇일까?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1) 촛불집회의 담론과 조직
첫째, 386 정치의 담론과 조직이 여전히 막강하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의 여파 속에서 계속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왕적 대통령제와 ‘엽관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을 강력히 묶는 제도적 토대다. 그렇지만, 그들은 일종의 ‘정치계급’으로서 사익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때는 촛불의 언어를 사용하고, 촛불의 조직을 동원한다. ‘검찰개혁은 촛불혁명의 지상명령’이라는 식의 논리 말이다.
예를 들어 12월 1일 ‘사회대개혁 지식네트워크’는 「검찰개혁은 역사의 준엄한 명령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지식네트워크는 2019년에는 조국 전 장관 사퇴 등을 둘러싸고 7,000여 명의 교수·연구자들이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통과, 실행에 관한 시국선언을 발표한 게 출발점이 되었다. 이들이 2020년 6월 5일, 1,10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지식네트워크를 구성했다. 대표 발기인으로는 김호범(부산대), 은우근(광주대), 이성로(안동대), 김연찬(서원대), 우희종(서울대) 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우희종 교수는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대표를 맡기도 했던 인사다.) 2020년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고등교육기관(일반대학, 전문대학 등)의 전임교원이 약 8만 명, 비전임교원이 13만여 명인데, 이중 7,000여 명은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이들이 발표한 12월 1일 성명은 검찰개혁이 “대한민국 적폐기득권 구조를 청산하는 출발점이자 일대 분수령”이며, “이 장벽을 돌파하지 못하면 향후 적폐구조의 혁파는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렵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오히려 기세등등, 개혁시도를 무너뜨리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역공을 본격화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촛불혁명의 지상명령”인 “적폐 청산을 위한 근원적 개혁은 중단없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담론은 적폐세력 대 촛불혁명세력으로 적과 아를 나누고 그 중에서도 검찰을 적폐세력의 중핵으로 설정한다.
이러한 담론은 현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어떤 기억들을 조합하고 각색하여 민주당과 그 지지집단이 그려내는 가상적 이야기다. 악의 ‘끝판왕’ 검찰, 이를 개혁하려다가 처절히 희생당한 노무현 대통령, 한명숙 총리, 조국 법무부장관, 그럼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영웅으로서의 청와대와 법무부장관, 여당 국회의원 등등. 이러한 이야기 모델은 가상의 적(특히 엘리트집단)을 만들어 내고 그들에 대한 원한을 이끌어 내어 이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 인민주의 정치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추미애 장관 역시 감찰위원회와 행정법원의 결정으로 궁지에 몰리자, 12월 3일 다시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 추 장관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서 검찰이 “가혹한 표적수사를 자행하고도 부패척결, 거악척결의 상징으로 떠올라”, “전직 대통령도, 전직 총리도, 전직 장관도 가혹한 수사활극에 희생되고 말았습니다”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올렸다. 과연 이러한 가상적 이야기가 언제까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최소한 현재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는 강력해 보인다.
방금 언급한 지식네트워크 외에도 촛불집회로 형성된 다종다기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2019년 조국 수호 집회(‘검찰개혁 촛불문화제’) 중 9월 28일 집회(7차)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했는데, SBS는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를 통해서 참가자 수를 13만여 명으로 추산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비해 규모가 적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단기간 내에 서울에서 끌어낼 수 있는 규모로는 결코 적지 않다. 민주노총이나 민중연대 단체가 단기간에 서울에서 동원할 수 있는 규모를 생각해보라.
조국 수호 집회를 주도한 집단은 ‘시사타파TV’의 시청자들이 만든 ‘개싸움국민운동본부’(개국본)나 ‘뉴스비시’, ‘북유게사람들’(루리웹 정치유머 게시판)이라고 한다. 이중 개싸움국민운동본부는 개혁국민운동본부라고 명칭을 변경했고, 이들은 21대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의 모태가 된, 이른바 ‘플랫폼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할 때도 중요한 역할도 했다. 여기에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봉주, 손혜원 전 의원이 주도하여 창당한 열린민주당도 존재한다. 더불어시민당이 930만여 표, 33.35%를 얻은 데 비해, 열린민주당은 150만여 표, 5.42%를 획득하는 데 그쳤지만, 열린민주당은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3월 25일에 최고치인 16.2%까지 오르기도 했다. 요컨대, 촛불집회를 매개로 형성되거나 확장된 정치적 담론과 조직적 네트워크가 여전히 막강하다는 말이다. 코로나19 방역 문제로 대규모 집회가 어려운 조건이지만, 제2의 조국 수호 집회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열릴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있다.
2) 기존 시민운동의 파당적 재편
친정부 성향의 시민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보이는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글에서 최장집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시민운동이 파당적으로 재편되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국가와 시민운동 사이에서 “특혜와 지원을 대가로 정치적 지지를 교환하는 관계(후견주의)가 자리 잡았다.” 그에 따라 공론장은 “더 이상 정당 간 경쟁이나 갈등 라인을 초월하여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존립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아가 “21대 총선은 특정 시민운동 출신들이 선거를 위해 급조된 정당의 후보로 선거 경쟁에 나서고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시민운동이 곧 정당이고, 정당이 곧 시민운동인 현상이 현실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시민운동은 국가에 흡수되고 타락하게 된다는 말이다.
시민운동이 파당적으로 재편되었다는 말은 시민단체의 활동이 진영논리를 철저히 따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합의를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항의행동을 펼쳤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합의를 파기하지도 않고, 재협상을 하지도 않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음에도 정의연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뚜렷한 활동을 전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미향 전 대표가 민주당 비례의원으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이를 보면, 시민운동이 진영논리에 따라 상대방 진영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자기 진영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즉 파당적으로 행동하며, 그 대가로 국회의원직과 같은 권력이나 여타 지원을 향유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예를 들자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최근 추 장관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징계청구 문제에 대해 어떤 논평도 내지 않았다. 이 역시 시민운동이 독립성, 자율성을 잃고 진영논리를 따랐다는 역사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3) 야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견고한 지지율은 야당, 특히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부정적 인식으로 뒷받침된다. 이를 계량적으로 확증하기는 곤란하나, 최근 빅데이터 분석이 활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음소프트의 썸트렌드는 트위터,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글이나 네이버 인터넷뉴스를 분석해서 평가를 담은 용어(감성어)가 어떤지를 보여준다. 12월 3일 국민의힘을 입력하면 11월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1주일간을 자동분석해 보여주는데, 긍정 12%, 부정 60%, 중립 28%가 나온다. 부정적 감성어가 예를 들면 ‘의혹’, ‘논란’, ‘비판하다’, ‘무시하다’, ‘반대하다’이고 긍정적 감성어는 ‘추천하다’기 때문에 부정적 감성어가 쓰인 글이 모두 국민의힘에 부정적인 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어쨌든 국민의힘이 ‘긍정적 감성어’와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다른 한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자 중에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를 따져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0월 3주차 여론조사를 보면, 부정평가자(잘못하는 편이다, 매우 잘못한다) 중 35%가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9%가 민주당을 지지하며, 41%가 무당층(없음, 모름)으로 나온다. 즉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비판적이더라도 이 중 국민의힘 지지로 가는 비율은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민의힘은 당명이 미래통합당이던 2020년 8월 14일 새 정강정책으로 기본소득 도입, 피선거 연령 18세로 하향, 국회의원 4연임 금지, 고위공직자와 자녀의 병역·체납·탈세·범죄 기록 공개,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 폐지를 내걸었는데, 거의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구체적인 계획이 빠진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이 보궐선거 관련 당헌을 개정한 사례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니 함만 못하다.
11월 30일 국민의힘은 여론조사와 소셜미디어 150만 건의 데이터를 토대로 최적의 시장(市長)을 분석한 결과 서울시장 후보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할 사람보다 부동산 문제 등을 잘 풀어낼 유능한 사람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나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외부 인사가 야권 후보로 나오는 데도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또한 부산시장 후보로는 “경제를 확실히 부양시키고 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투명한 시장”으로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이를 반영해 선거공약개발단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는데, 사실 이러한 발표는 국민의힘이 현재 뚜렷한 정책 메시지도 없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인물도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4) 선거공학 기술과 지역개발 이슈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견고한 지지율은 집권세력의 힘을 통해 어떤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예컨대 지역개발 이익에 대한 기대와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 역시 이러한 기대를 조장한다. 그러한 경제적 이익이 실질적인지, 아니면 비현실적 희망에 불과한 것인지 상관없이 일단 지역개발 이슈가 부상하면 지역여론을 지배한다.
최근 가덕도 신공항이 대표적 사례다. 국무총리실 산하 검증위원회의 검증 결과, ‘김해 신공항의 재검토’가 백지화가 아니라 보완 후 재추진이라는 검증위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백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12월 1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가덕 신공항을 되돌릴 수 없도록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에 따르면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도 면제를 받게 된다.
역대 정부별 예타 면제 사업 규모를 보면 이명박 정부 때 88건 60.3조 원, 박근혜 정부 때 85건 23.6조 원이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2020년 7월까지 총 105건, 88.1조 원에 이른다. 여기에 신공항 10조 원 이상이 포함되면,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예타 면제 100조 원 시대가 열릴 것이다. 민주당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토건 경제’라고 강력히 비난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여기서도 내가 하면 ‘균형발전’, 남이 하면 ‘토건정치’냐는 비난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내년 보궐선거와 그 다음 해 대선을 고려하면 예타 면제 규모는 더 크게 불어날 수도 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은 지역개발에 관한 민주당의 선거 기술을 보여주는 사례다. 야권의 주장을 보면,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송철호 후보는 공공병원 유치를, 자유한국당 김기현 후보는 산재모병원 건립을 각각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산재모병원은 선거를 앞둔 5월 28일 정부의 예타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송철호 후보가 공약한 공공병원은 2019년 1월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됐다. 야당은 청와대와 여당이 김기현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산재모병원을 예타에서 탈락시켰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선거승리의 무기로 사용한 놀라운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5) 노동조합과 문 정부의 노동정책
그렇다면 시민운동에 비견하여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의 상태는 어떠한가? 민주노총은 다양한 노동조합이 속해 있고 또한 다양한 활동가집단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인 경향을 추적해볼 수 있다.
민주노총 정치위원회가 올해 3월 2일 발표한 「2020년 민주노총 정치사업 수립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분석 보고서」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담겨 있다. 2019년 12월 24일부터 2020년 2월 10일까지 진행된 설문에는 4,314명이 참여했는데, 응답자가 조합원 구성을 골고루 반영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민주노총 조합원의 의견분포를 적절히 반영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간부, 대의원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55.1%, 조합 가입 10년 미만 64.1%(5년 미만으로 잡으면 46.2%)이므로, 가입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간부, 대의원을 한 경험이 있는 조합원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이 2012년 8월 13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한 이후로는 민주노총이 어떤 하나의 정당만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방침이 사라졌다. 민주노총의 정치사업은 상당히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민주노총 조합 가입이 8년 미만인 경우, (본인이 정의당이나 진보당, 노동당, 변혁당, 녹색당과 같이 민주노총이 ‘진보정당’이라고 승인한 당의 당원이 아니라면) 민주노총 차원의 정치사업 경험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조합원의 정치의식이 일반 시민의 의식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이제 설문 결과를 보면, “현재 문재인 정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촛불로 탄생한 정권이니 지켜주어야 한다”가 28.0%,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게 비판해야 한다”가 25.9%, “적폐청산, 사회개혁, 민생경제 되는 게 없으니 지지를 철회했다”가 30.3%, “잘 모르겠다”가 15.9%로 나왔다. 첫 번째 응답을 적극적 지지, 두 번째 응답을 비판적 지지쯤으로 해석하면 지지가 53.9%인 셈이다.
한편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진보정당이라고 본다”가 17.5%, “보수정당이지만 개혁의지가 있다고 본다”가 25.4%, “보수정당이라고 본다”가 26.9%, “잘 모르겠다”가 30.2%로 나왔다. 진보정당과 개혁의지가 있는 보수정당이라는 평가가 도합 42.9%로 나왔다. 설문이 지지하는 정당이 누구냐라든가, 총선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할 것이냐는 식으로 명확히 질문하지 않았으므로 응답자의 정당 지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42.9%가 민주당에 상당한 호의, 또는 얼마간의 호의를 지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약하면 설문조사 결과를 문재인 (대통령의)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50%대,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30%대라고 해석하면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패턴과 유사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설문조사에서는 더 자세한 질문,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에 대한 평가가 없어서 더는 의미 있는 결론을 끌어낼 수 없다.
그러면 문 정부의 핵심 노동정책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2017년 9월 고용노동부는 박근혜 정부가 2016년 1월에 발표한 양대 지침, 즉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양대 지침은 ‘저성과자 해고’를 허용하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한 것으로,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노동개악으로 꼽혔다. 문 정부의 양대 지침 폐기는 박근혜 정부 당시 이뤄진 고용보호 수준의 악화를 역전시키는 조치였다. 민주노총은 “법을 무시한 전형적인 행정독재였던 양대지침 폐기를 환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둘째, 2017년 6월, 즉 문 정부 초반에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 정책을 즉각 폐지했다. 나아가 공공기관, 지방기관의 총인건비나 공무원의 총액인건비(중앙행정기관), 기준인건비(지자체)의 경우, 문재인 정부 들어서 처음으로 전년도 명목 경제성장률 이상으로 인건비 인상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문 정부에 들어 정원도 증가하는데, 이는 조직규모가 커져 승진도 쉬워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그 후 쟁점으로 떠오른 임금체계 개편 문제는 쟁점적이다. 문 정부 초반에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 정책을 폐지한 후, 2017년 12월 김동연 부총리는 〈공공기관 CEO 워크숍〉에서 “직무 중심으로 보수체계 개편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연공급을 직무급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인데, 그로부터 약 3년 후인, 2020년 11월 2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공공기관위원회는 공공기관의 임금 체계를 직무급제로 개편하고 노동자의 경영 참가를 위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합의를 발표했다. 그런데 공공기관위원회는 이러한 개편이 “획일적, 일방적 방식이 아닌 기관별 특성을 반영해 개별 공공기관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 단계적으로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이러한 합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나, 기관별로 자율적 노사합의로 추진한다고 했으므로 기업수준에서 노사합의로 임금체계 개편을 방어할 여지는 얼마간 존재하는 셈이다.
셋째, 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살펴보자. 2020년 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1단계 기관 정규직 전환 추진실적자료(4차)’를 보면, 중앙부처, 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교육기관 등 대상기관 853개소에서 2019년 12월 말 기준으로 상시지속 비정규직 31.6만 명 중에서 20.5만 명(64.9%)이 전환목표인데, 2020년까지 17.5만 명이 전환되고 추가로 3만 명이 전환될 것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 중 직접 고용된 이는 전체의 75.9%인 13만 2,000명이며 23.6%인 4만 1,000명은 자회사 소속이 됐다. 공기업 등 공공기관으로 한정하면 자회사 전환 비율은 8만 5,786명 중 4만 397명, 즉 약 47.1%다.)
넷째,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8년 16.4%, 2019년 10.9%로 올랐다가, 2020년 2.87%, 2021년 1.5%로 급격하게 하락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발표한, 1인 이상 전산업 기준 최저임금 영향률(적용 대상 노동자 중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노동자의 비율 예측치)은 2018년 23.6%(462만 명), 2019년 25%(500만 명), 2020년 20.7%(415만 명), 2021년 19.8%(400만 명)다. 특히 2017년 최저임금 인상률에 따라 2018년에는 시급이 1,060원 인상에 기본급 221,540원 인상이 이뤄지게 되었다. 이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인상폭이었다.
이런 측면들을 종합해 보면, 문재인 정부는 (최근 통용되는 분류법을 따를 경우) 노동시장의 내부자, 외부자에 대해서 각각 포섭전략을 구사했다. 여기서 내부자란 안정적 고용계약을 맺고 높은 수준의 고용보호를 누리는 정규직을 뜻하고, 외부자란 불안정한 고용계약을 맺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를 말한다. 즉 내부자에 대해서는 양대 지침 폐기, 성과연봉제 폐기를 통해 최소한 박근혜 정부 이전으로 원상회복을 제공했다. 그리고 외부자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제공했다. 물론 문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자세히 뜯어볼수록 심각한 결함, 모순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모순은 아직 폭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내부자에 대해서는 현상유지를, 외부자에 대해서는 재정투입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보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일자리 안정자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계속 예산에 편입되었고 앞으로 2022년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2017년 일자리 안정자금을 편성할 때 소득주도성장론이 힘을 발휘하면 더는 일자리 안정자금이 필요 없을 것이라 공언했으나, 그러한 미래는 오지 않았다. 또한 2021년 주 52시간제 시행 범위 확대와 맞물려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확산될 것이지만, 이 역시 아직 폭발한 것은 아니다. 종합해보면 노동자,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관리 정책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지만 대체로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민주노총의 조합원 수가 크게 증가했고, 그 규모가 한국노총을 처음으로 능가하게 되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2016년에 70만 명에 못미쳤으나, (2019년 12월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96만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거칠게 말하면, 조합원 10명 중 3명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입한 셈이다. 새롭게 가입한 노동조합, 조합원에 대해서는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문 정부의 정책이 조합원 증가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4. 2021년, 문 정부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12월 2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가장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서울에서 민주당 대 국민의힘 지지율은 28.4% 대 32.4%로, 부산·울산·경남에서는 22.2% 대 38.5%로 나온다. 그에 앞서 11월 27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서울, 부산 보궐선거에서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50%가 나왔고, 특히 서울은 57%, 부산·울산·경남이 56%가 나왔다.
현재로서는 일견 야권이 유리해 보이지만, 보궐선거 결과는 여전히 예측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최소한 아직까지 견고해 보이고, 여권의 선거공학적 기술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2020년 2월 말 문 대통령 지지율이 41%를 찍으며 계속 바닥으로 내려가자 김경수 지사가 전국민재난지원금을 들고 나왔다. 현재로서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가덕도 신공항 외에도 선거 직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특단의 청와대 정책이나 여권 후보자의 공약이 나올 수 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야권의 지방선거 전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특히 여권의 호언장담대로 올해 내로 공수처가 출범하면 어떤 정치적 기능을 할지 주목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우려하는 대로 여권의 권력형 비리 사건을 무마하고, 오히려 칼날을 야권이나 검사 측으로 돌리며 국면전환을 시도한다면, 여론의 반전을 이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11월 22일 창립된 친문 싱크탱크, ‘민주주의 4.0 연구원’이 관심을 모은다. 여기에는 홍영표, 전해철, 이광재, 김종민, 윤호중, 정태호, 최인호, 황희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56명이 참여했다. 이름만 보더라도 친문 주류가 주축이라는 게 확실하다. 설립 취지문에서는 “좌는 악, 우는 선이라고 믿으며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는 냉전 기득권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정권을 엄호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 “네 번째 민주정부를 창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문재인 정부 보위’와 ‘정권 재창출’을 전면에 내걸은 셈이다.
《동아일보》는 “친문 부엉이 모임 시즌2… 벌써부터 대선 줄 세우겠다는 건가”(11월 24일)라는 사설을 통해서 “한나라당 시절 친이계 의원들의 ‘함께 내일로’, 친박계 의원들의 ‘국회선진사회연구포럼’은 모두 공부 모임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계파 싸움의 진지로 활용됐다”, “상생 없이 이전투구만 일삼은 두 계파는 결국 비참하게 소멸됐다”며, “최대 계파를 만들어 ‘우리끼리’ 정치에만 몰두하니 여당이 더 심한 오만과 독선으로 빠져들 것 같아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의 칼럼 “친문 세력화 민주주의4.0, 성공의 조건”(11월 25일)도 “권력을 잡은 친박계 의원 51명은 2016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을 만들어 김무성·유승민 등을 찍어내려다 결국 제 발등을 찍고 자멸했다”고 언급했다.
그렇지만, 김종민 의원은 “대선 공약을 6개월 정도 논의하고 여기에 맞는 후보를 뽑아 이행하는 것이 정당 중심의 선거와 국정 운영이다”라고 말했고, 이광재 의원은 “모택동은 ‘사람을 모으려면 깃발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고 발언했다. 결국 이 모임이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친문 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는 흐름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의 경쟁에서 킹 메이커 역할을 하든, 아니면 친문 ‘적자’ 후보를 어떻게든 강구해내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낙연 대표도 2021년 3월 별도의 싱크탱크를 띄우려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대표가 전남지사·국무총리 시절부터 조직했던 ‘연대와공생’을 확대 재편하겠다는 구상인데, 연대와공생은 경제·사회·정치·국민건강·과학기술·외교안보 등 6개 분과로 운영 중이라고 한다. 이재명 지사는 현재까지는 별도의 싱크탱크를 꾸릴 계획은 없고 도정에 집중해서 성과를 내면 대선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도 싱크탱크인 경기연구원과 함께 기본소득, 지역화폐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종합하면, 친문 의원, 이낙연 대표, 이재명 지사 모두 ‘캠프 정치’의 시동을 걸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보궐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간 경쟁보다 여권 내 경쟁이 더 치열하고, 어떤 경우 파괴적으로 진행될지도 모른다.
여권의 시각에서 볼 때, 보궐선거 최고의 악재는 추 장관의 윤 총장 징계청구, 부동산 폭등, 코로나19 확산이다. 이 중에서 부동산 폭등은 김현미 전 국토부장관이 교체 전에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말해 오히려 논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단기간 내에 공급을 늘릴 수도 없고 정책효과를 발휘할 수도 없다. 따라서 문 정부로서는 계속 안고 가야 할 아킬레스건이 이미 되어버렸다. 또한 코로나19 확산 문제 역시 정부의 대비책이 안일했던 만큼 비난의 화살을 돌릴 또 다른 희생양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여권은 윤 총장 징계 문제를 시급히 매듭짓고 공수처도 빨리 출범시켜 정국 전환을 시도하려 할 듯하다. 민주당으로서는 야권을 공격하는 강력한 네거티브 전략 말고는 부동산 문제나 코로나19 확산 문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할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총장 징계청구가 여권 뜻대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가 중요한 첫 번째 고비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계속 여권에 부담이 가고 보궐선거 전략도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보궐선거가 여권의 패배로 끝날 경우, 문 정부에 대한 정치적 평가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여권의 대선 가도에도 빨간 불이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야권이 워낙 약세이기 때문에 현재 추세대로라면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의 재집권도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윤 총장에 대한 대선 후보 지지율이 야권에 부정적 신호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로 보인다. 실제로 윤 총장이 야권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도 별로 높지 않고, 야권의 잠재적 대선 후보가 성장할 기회도 차단하기 때문이다.
문 정부 3년의 경험을 볼 때, 민주당 10년 집권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로 이끌고 갈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또한 난폭한 친문 팬덤 정치와 시민운동의 파당적 재편 속에서 비판적 사회운동도 약화, 침체하거나 심지어 소멸될 수도 있다. 이러한 미래를 염두에 둘 때, 더구나 사회운동, 노동자운동은 문 정부의 폭주를 비판, 견제하는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 현재의 윤 총장 징계, 공수처 출범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 국면부터 2021년 보궐선거 국면까지 사회운동, 노동자운동은 ‘문재인 정부 심판’, 즉 ‘문민독재로 폭주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저지해야 한다’라는 기조로 초지일관하게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경우 민주당이 원인을 제공했고, 당헌을 개정하며 자신이 한 약속마저 져버렸다는 사실이 분명하지 않은가.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이 보궐선거에서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심판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고 여전히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긴 시간, 민주당의 폭주를 목도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