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경제이론으로 분석한 2021년 경제전망과 쟁점
W의 앞자리 V,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1. 취지
마르크스는 자본축적과 생산성이 동시에 장기간 둔화하는 현상이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 국면이라고 묘사했다. 21세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에서 이런 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 경제는 자본 주도이든 노동 주도이든 급진적 변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는 상태다. 이것이 현 경제의 기저질환이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이 자본주의의 이 기저질환을 더 악화시켰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회복 불가한 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본 글은 자본축적의 위기라는 장기 정세 규정을 전제로 2021년에 쟁점이 될 경제 현상들을 분석한다.
2. 전반적 상황
2021년 세계 경제는 늦어도 하반기부터는 회복국면에 진입할 것이다. 최근의 경기침체는 시장의 내적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19 방역 탓에 발생했다. 백신 보급으로 방역이 완화되면, 전년도의 침체를 어느 정도 회복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후유증이다. 이 후유증이 복구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인플레이션, 금리, 부채, 자산 거품을 둘러싼 혼란이 경기회복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표적 후유증일 것이다. 특히 저인플레이션의 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선진국들은 인플레이션이 낮게 유지된 덕분에 엄청난 규모로 정부 부채를 늘리며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신 보급 이후 경기회복 과정에서도 저인플레이션이 유지될 수 있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인플레이션이 커지면 부작용이 심각해지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의 부채이다. 인플레이션이 커지고 금리가 인상되면 남부유럽, 남미, 동유럽 등 정부 신용이 낮은 나라들부터 차례로 국가 부도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거품이 상당한 자산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저금리를 이용한 ‘빚투’(빚 내서 투자)가 거품 붕괴와 함께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공급사슬, 디지털 경제, 고용격차 문제는 경기회복 과정에서 더욱 갈등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에서 취약점을 드러낸 초국적 기업들은 리쇼어링부터 부품 다원화까지 글로벌 공급사슬 재편에 시동을 걸 것인데, 이 과정에서 자본 유치를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비대면 정책으로 더욱 커진 디지털 기업들의 독과점 문제, 세금탈피도 큰 쟁점이다. 미국에서는 독과점 규제가, 유럽에서는 탈세 규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 숙련직/미숙련직 등의 고용격차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커졌다. 디지털화와 무인화가 가속하면서 미숙련 일자리 일부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제대로 된 복구가 불가할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 회복이 경기회복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2021년 가장 첨예한 경제적 쟁점이 될 것이다.
미국의 정책 변화도 주목된다. 바이든 정부가 중점을 두는 정책은 확장적 재정정책, 증세, 다자주의 외교 복구 등이다. 2021년의 V자 활황이 새 정부에게 단기간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겠지만, 문제는 일시적 호황이 끝난 뒤에도 이 정책들이 작동 가능한지 여부다. 화폐 증가와 국가부채 증가로 달러 가치가 불안정해질수록, 확장적 재정정책은 점점 더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장기 호황이 뒷받침되지 않는 증세는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바이든 증세 정책에는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일방주의를 다자주의로 바꾸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무역갈등이 완화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바이든의 목표는 금융세계화를 통해 세계 각국의 자본을 미국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세계 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닌 한, 자본이동을 둘러싼 갈등은 국제적으로 지속해서 커진다.
바이든의 노동정책도 관심을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바이든 경제팀에는 노동경제학 전공자들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고, 노동 관련 팀에도 노동조합 간부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중도파, 중도좌파로 분류되는 싱크탱크들은 불평등 완화를 위한 핵심 정책으로 노조 조직률 제고, 산업별 교섭 활성화, 노조법 개정, 사용차 처벌 강화, 정부 고용 확대 등을 제시한다. 이런 정책들이 노조 달래기 용으로 집권 초반에 시늉만 내다 끝날 것인지, 실제 정책으로 실행될 것인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오바마 시절에도 집권 초에는 노동정책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집권 중반 이후에는 노조법 개정이 아예 정책 의제에서 사라져버렸었다.
2021년 세계 경제의 핫이슈는 코로나19 위기에서 가장 빨리 벗어난 중국 경제의 향방이다. 중국은 2020년에 플러스 성장을 유지했고, 2021년에도 6~8% 성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이 2010년대처럼 2020년대에도 세계 경제에 이바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중국 경제 내부에 부채 주도 성장의 부작용이 누적된 데다, 선진국 상당수가 중국과 무역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엄격한 사회 통제로 시진핑에 대한 비판 여론을 막으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중진국 함정에 빠진 중국 경제가 이전 같은 활력을 보여주기는 어렵다. 자본 통제로 급격한 위기는 막겠지만, 그만큼 성장의 속도 역시 빠르게 하락할 것이다.
한국 경제는 2021년 하반기부터 빠른 회복이 예상된다. 세계 경제 회복에 따른 수출 증가와 설비투자 증가가 회복의 쌍두마차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형 뉴딜로 불리는 정부 투자 역시 많이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저소득 노동자가 밀집된 내수 서비스 부분은 회복이 더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따라 임금과 고용의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른 점은 2021년에도 쟁점이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권에서 논란이 크게 될 것인데, 진보진영의 반경제학적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정부 경제정책 평가의 가늠자가 된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2021년에도 지속해서 상승할 것이다. 수도권 아파트 수요 자체가 저성장 고령화 사회라는 구조적 토대가 있고, 유동성도 여전히 풍부하기 때문이다. 다만 주식시장은 이전보다 변동성이 커져 빚까지 끌어다 투자한 소위 ‘개미’들이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2천 년대 초반 벤처 거품과 카드 대란 같은 금융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경제에서 추가로 주목해서 볼 것은 노조운동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다. 고임금 부분 주도로 임금인상이 이뤄지면서 저임금 노동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구조조정과 고용문제, 임금체계 개편 등등 노조운동이 경기회복 과정에서 일관되고 장기적인 전망 대신 각자도생 투쟁을 확대할 경우 혼란스러운 정세가 초래될 가능성도 있다. 집권세력과 노조운동 둘 다 경기회복 기간에 이후 위기를 준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인데, 1994~95년 반도체 호황에 취해 정치권과 노조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막지 못했던 경험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2021년 경제 상황을 대략 살펴봤다. 이제 구체적 쟁점을 분석해보자.
3. 저인플레이션이 계속될 수 있나
거시경제의 최고 이슈는 단연코 저인플레이션이다. 저인플레이션 덕분에 각국 정부는 큰 이자 부담 없이 국채를 발행해 코로나19 방역을 할 수 있었다. 중앙은행도 마음 놓고 화폐를 발행해 유동성 위기에 대처했다. 2021년에도 선진국 정부들은 코로나19 복구를 위해 대규모 재정적자를 동반하는 정책을 준비 중이다. 저인플레이션이 정책 실행을 위한 조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저인플레이션이 얼마나 계속될 수 있는지다.
경기회복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채 발행에 더 많은 이자 비용이 소모된다. 명목 금리가 당연히 인플레이션보다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번 인플레이션 고삐가 풀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세계금융위기와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중앙은행이 수량완화로 돈을 너무 많이 풀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도 곤란함이 있다. 통상 중앙은행은 기준 금리를 인상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데,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과 가계도 빚이 너무 많아 경제 주체들이 금리 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 인플레이션을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금리를 인상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회복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채 발행에 더 많은 이자 비용이 소모된다. 명목 금리가 당연히 인플레이션보다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번 인플레이션 고삐가 풀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세계금융위기와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중앙은행이 수량완화로 돈을 너무 많이 풀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도 곤란함이 있다. 통상 중앙은행은 기준 금리를 인상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데,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과 가계도 빚이 너무 많아 경제 주체들이 금리 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 인플레이션을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금리를 인상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같은 빚더미 경제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존재하긴 했었다. 1930년대 대공황과 전시경제를 거치며 정부 부채가 쌓였다. 하지만 당시의 빚은 종전 이후 쉽게 해결되었는데, 세계 경제의 30년 장기 호황 덕분이었다. 고도성장과 증세가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을 극적으로 낮췄다. 그런데 현재 경제는 이런 장기 호황을 기대할 수 없다. 2021년 경기 활황은 코로나19 경제침체의 기저효과이지 장기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당 친화적인 미국 경제학자들은 꽤 낙관적이다. 인플레이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저인플레이션 조건을 충분히 즐기라고 조언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대략 두 가지이다.
첫째, 필립스 커브가 평평해졌다는 것이다. 필립스 커브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충 관계를 표현한다. 21세기에 들어 실업률은 역대 최저치로 낮아졌지만, 고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이유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앞으로도 실업률이 하락한다고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일은 웬만해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의견이 일치한다.
둘째, 10년 넘게 이어진 저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시장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치 자체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예상은 금융시장에서 시중 금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장기 채권의 낮은 금리가 오랫동안 이어진다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를 나타낸다.
바이든 정부 1기 재무장관으로 거론되는 재닛 옐런은 저인플레이션 조건이 이어질 때는 고용을 늘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재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중도파 경제연구소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아담 포젠도 저인플레이션을 상수로 두고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의 화폐이론
하지만 마르크스 화폐이론에 따르면, 이런 낙관적 전망은 위험하다. 인플레이션과 물가(Price) 상승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경제학의 결함이 낙관적 전망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약간 길지만 마르크스의 화폐이론을 설명하면서 낙관적 전망을 비판해보겠다.
경제학은 화폐를 교환수단에 이용되는 금융자산의 하나로 간주한다. 그래서 화폐도 다른 금융자산처럼 시장의 기대에 따라 가격이 결정될 뿐이라고 여긴다. 인플레이션이나 물가 상승이나 화폐가 다른 상품과 교환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일 뿐이란 의미다. 둘 다 화폐의 상대 가격 하락일 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화폐론은 이와 다르다.
마르크스가 정의하는 화폐는 노동의 보편적 등가물 역할을 하는 특수한 상품이다. 보편적 등가물은 각기 다른 구체적 노동을 수량적으로 비교될 수 있는 추상적 노동으로 전화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만들고, 휴대폰을 만드는 제각각의 노동을 모두 1원이란 추상적 노동으로 전화하여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도록 만든다. 즉, 1원이 노동의 보편적 등가물이 될 수 있어야 화폐가 될 수 있고, 그래야 상품 매매에도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화폐는 노동을 측정하는 가치 척도 기능을 함으로써 교환수단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가치 척도 기능을 하는 등가물 상품의 가치 하락이다.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물건 길이를 재는 자의 눈금이 줄어드는 것이 인플레이션이라 하겠다. 참고로 물가 상승은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증가, 즉 노동생산성 하락을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비유하면, 물건의 길이 자체가 늘어난 것이 물가 상승이다.
물론 현대 경제에서 노동생산성이 하락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도 물가가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경제학은 인플레이션을 물가 상승이라고 표현해 버린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왜 항상 존재하는가? 관리통화제도에서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을 가장 경계하기 때문이다. 화폐 가치의 상승인 디플레이션은 실물경제에서 유통되어야 할 화폐가 명목 가격이 중요한 현금이나, 안전한 금융자산으로 몰리는 유인이 된다. 중앙은행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적절한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는 통화정책을 유지한다.
인플레이션을 만드는 것은 원리상으로 어렵지 않다. 중앙은행이 보유한 부채(화폐)에 대응하는 자산의 실제 가치를 낮추면 된다. 관리통화제도에서 화폐 상품의 가치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와 중앙은행이 보유한 자산의 균형에 의해 유지되는데, 중앙은행 자산은 주로 정부가 지불을 보증하는 채권으로 채워진다. 즉, 화폐 가치의 하락은 화폐당 채권의 가치 하락과 같다.
화폐당 채권의 가치 하락을 이끄는 기본적 방법은 신용 화폐, 즉 통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은행은 예금보다 많은 대출을 해줄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예금자와 대출자가 모두 현금을 가진 것처럼 활동한다. 물론 대출이 실제 화폐는 아니다. 신용을 화폐처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효과를 통화가 증가하는 것과 같다 하여 통화 승수라 부른다. 정부가 대출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면, 시장에는 유통되는 통화가 증가한다. 화폐(본원통화라고도 부른다)는 그대로이지만 화폐처럼 사용하는 신용이 증가하면(통화 승수가 상승하면), 통화의 토대인 현금의 가치가 희석되면서 통화에 대응하는 중앙은행 자산의 가치 역시 희석된다. 즉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화폐의 가치가 직접적으로 하락할 수도 있다. 중앙은행이 대량으로 화폐를 발행하면서 가치가 불분명한 채권으로 자산을 채우는 경우가 그렇다. 또는 정부의 지불 능력이 하락해 중앙은행 자산이 부실화되는 경우 역시 그렇다. 둘 다 화폐당 채권의 실질적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 부르는 화폐 위기가 발생하는 나라들은 보통 이런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최근 십여 년간 엄청난 규모의 수량완화 정책이 있었고, 심지어 정부의 미래 지불 능력이 하락하는 저성장을 경험했는데도 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통화 승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현금 보유에 집착하면서 화폐 증가에 비해 대출이 그다지 증가하지 않았다. 세계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에서 중앙은행이 쏟아부은 화폐는 대부분이 은행의 초과지급준비금(대출에 사용하지 않고 중앙은행에 보관되는 예금) 자산이 되어 중앙은행에 도로 예금되었다. 예로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위기 이후 연준이 화폐를 3개월 만에 1.6배 증가시켰는데, 은행들의 초과지급준비금은 2배로 증가했다. 즉, 통화 승수의 감소로 화폐 가치의 희석이 상쇄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정부 지불 능력에 대한 신뢰가 상대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두 번의 위기 기간 시장에서는 그나마 믿을 것은 정부밖에 없다는 비관이 확산했다. 그 결과 자금이 국채 구매에 몰려 국채 가격이 뛰었다. 심지어 코로나19 이후 정부가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도 국채 가격은 하락하지 않았다. 극단적 불안감이 시장을 덮쳤기 때문이다. 즉, 수량완화와 정부 대규모 적자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 자산의 가치, 다시 말해 정부의 지불 능력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지 않았다. 도피할 곳이 정부밖에 없어서, 정부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요컨대, 수량완화 정책과 정부 부채 증가에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긍정적 원인이 아니라 부정적 원인 탓이다. 민간에서 실물경제에 투자하지 않고 정부로 도피하고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이 뉴노멀로 불리는 2010년대 이후 저인플레이션-저성장 경제의 본질이다.
전망
그렇다면, 이런 저인플레이션은 지속 가능한 것일까? 2021년 당장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저인플레이션이 가능한 조건은 점차 침식될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 화폐이론은 화폐도 상품으로서의 가치 토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관리통화제도에서 가치 토대는 세입을 기반으로 한 정부 지불 능력이다. 중앙은행 자산·부채의 팽창과 정부 적자의 급증은 당연히 이런 가치 토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현재 믿고 있는 가치와 실제 가치 사이 괴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즉, 화폐 가치에 거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테이퍼링으로 불린 세계금융위기 출구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한 채 코로나19 위기 이후 수량완화와 적자재정이 다시 커졌다. 그런데도 저인플레이션은 유지된다. 시장의 혼돈과 좌절이 만든 화폐 가치의 거품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2008년 초 1조 달러 수준이던 연준 자산이 금융위기 이후 2015년 4.5조 달러, 코로나19 이후 2020년 말 7조 달러로 급팽창했다. 미국이나 세계의 경제 규모가 이만큼 커진 것은 당연히 아니다. 미국 정부 부채는 GDP 대비로 2007년 말 60%대에서 2019년 말 100%대로 급상승했고, 코로나19 위기 이후에는 130%대로 또 폭등했다. 유럽은행의 경우 2008년 초 1.5조 유로 수준이었던 자산이 2018년에 4.5조 유로로 폭증했고, 2020년 말에 5조 유로 규모로 또 증가했다. 유로존 국가들은 2천 년대 중반 60% 수준이던 정부 부채 비율이 금융위기 이후 80%대로 상승했고, 코로나19 이후에는 90%대로 상승했다.
2021년 V자 경기회복이 이 거품의 실체를 폭로하는 계기가 될지 아닐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정부로 도피할 필요가 적어질수록 인플레이션 압력은 도리어 커진다. 벼락호황 식 경기회복은 그런 신호가 될 수 있다. 거품이 꺼지면 인플레이션은 가속할 것이다. 10년 넘게 이어져 온 화폐 가치의 거품은 연착륙 시도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평평해진 필립스 커브에 관해서도 설명해둔다. 필립스 커브는 실업률 하락→ 명목임금 인상→ 물가 상승을 도식적 상충 관계로 설명한다. 20세기 중반 이를 입증하는 실증 연구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2010년대에는 실업률 하락과 물가 정체가 동시에 나타나 필립스 커브 실종 사태가 경제학계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2021년 이후 물가 상승 관련 논의에도 이런 평평한 커브가 중요한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마르크스 경제이론에 따르면, 필립스 커브는 두 가지 점에서 결함이 있다. 첫째, 장기에서 볼 때 임금 상승 이후 물가 상승은 이윤율 피드백을 통해 실업 증가로 재조정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산업예비군이 노동력 가격에 미치는 영향으로 설명했다. 둘째,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구분하지 못했다. 물가 상승으로 나타나는 전반적 상품 가격의 상승은 실제로는 화폐 가치의 하락, 즉 인플레이션이다. 이 인플레이션은 경기 활황 시기 신용이 팽창하며 화폐 가치가 희석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필립스 커브는 경기 활황 시기에 나타나는 고용과 신용 간의 상관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평평해진 커브는 경기 활황으로 실업이 감소해도,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고 정부로 도피하려는 성향이 강한 상태, 즉 장기불황 속 단기적 경기 활황의 특징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현상은 이윤율 하락과 축적 둔화라는 마르크스 축적법칙이 실제 경제에서 나타나는 형태이다.
일본의 오랜 기간 저인플레이션도 비슷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잃어버린 30년으로 표현되는 1990년대 이후 일본은 민간 소비가 부진해 정부가 민간에서 돈을 빌려 대신 소비하는 현상이 일반화됐다. 그 결과 정부 부채비율이 1980년대 60%, 2000년대 180%, 2010년대 240%로 급상승했다. 그런데, 정부 지불 능력에 대해 시장의 신뢰가 하락하지는 않았다. 민간이 저축하고, 정부가 대신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일종의 합의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도 이 기간에 하락하지 않았다. 2010년대에는 수량완화도 실시돼 일본은행 자산규모가 2008년 1조 엔에서 2019년 5.7조 엔,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에는 7조 엔으로 급증했다. 일본은행이 시중 채권을 대거 매입하며 현금을 푼 것이다. 하지만 수량완화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는 않았는데, 기업과 가계 모두 현금을 쌓아두는 데 몰입했기 때문이다. 민간이 정부로 도피해 꽉 웅크리고 있으니 화폐 가치 거품을 유지한다.
4. 고용은 충분히 회복될까
인플레이션 걱정과 더불어 2021년 경제의 최고 걱정거리는 고용이다. ILO에 따르면 2020년 2분기 세계 노동시간은 2019년 4분기에 비해 17.3% 감소했다. 전일제노동자(FTE)로 환산하면 약 5억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과 같다. 임금 수입은 전년 동기보다 10.7% 감소했다. 액수로 따지면 세계 GDP의 5.5%에 해당한다. 고용과 임금의 피해가 너무 커서 2021년 경기회복 과정에서도 충분하게 회복하긴 어렵다는 것이 노동시장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미국의 경우 실업률이 2020년 2월 4%에서 4월 15%까지 급증했다가 이후 점차 감소하여 10월 현재 7%를 기록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코로나19 이전 7%에서 9월 현재 8%대로 약간 상승했다. 양쪽의 실업률 양상이 다른 것은 실업급여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해고 유연성을 키워서 대응한 미국과 일자리 보호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고용 안전성을 키워서 대응한 유럽의 차이 때문이다.
2021년 노동시장의 쟁점 중 하나는 이 두 방식 중 어느 것이 고용회복에 유리한지 평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평가는 정부가 임금을 지원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것에 무게를 싣고 있다. 미국은 실업으로 인한 손실이 컸는데, 그렇다고 재정지출이 유럽보다 적지도 않았다.
다만, 유럽 방식의 제약 조건은 회복 속도이다. 정부 재정지원이 계속해서 필요한 고용유지지원금 방식은 위기가 길어지면 상당한 재정적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예전 경험을 볼 때 유럽은 위기 이후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미국보다 더 길었다. 예로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실업률을 이전 수준으로 낮추는 데 5년이 걸렸고, 유럽은 10년이 걸렸다. 1970년대 말 경기침체 이후에도 미국보다 유럽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21년 경기회복 과정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는 문제도 쟁점이다. 예로 2007~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를 보면 실업률은 낮아졌지만, 소득 격차는 도리어 커졌다. 자산 소득과 임금 소득 간의 격차, 일자리 간의 임금 격차 등이 복합적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비슷한 양상을 예상할 수 있다. 불평등 확대의 원인에 대해서는 경제학계에 대략 다음과 같은 합의가 존재한다.
첫째, 기술변화다. 1990년대 이후 자동화 기술의 발전으로 중간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자동화조차 불필요한 저임금 일자리와, 자동화로 대체 불가능한 고숙련 고임금 일자리로 노동시장이 양극화됐다는 것이다. 비대면 업무를 키운 코로나19로 인해 자동화 속도가 더 탄력을 받았다. 더불어 디지털 경제 확대도 일자리 양극화에 중요한 원인이다. 예로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코로나19 시기에도 큰 성장을 기록했지만, 이들이 고용을 별로 늘리지는 않았다.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의 확대는 자본과 노동 간의 분배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기업의 수입은 기본적으로 네트워크나 지식재산권을 이용하는 것이다. 노동에 소득을 분배할 필요가 없다. 자동화 역시 노동 소득을 줄이고 자본 소득은 늘리는 경향이 있다. 자동화로 전반적인 노동생산성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라, 생산성 높은 본사가 외주 업체를 착취하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둘째, 제도 변화다. 세계화와 노동조합 약화로 노동자의 임금 교섭력이 전반적으로 약화했다. 1990년대 이후 본격화한 세계화는 중국 같은 저소득국가의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했지만,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전까지 좋은 일자리를 다수 제공하던 제조업의 해외 이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서비스업 일자리는 증가는 노동조합의 조직력 약화로도 이어졌다. 수백 가지 업종이 얽혀있는 서비스업에서는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의 힘이 강하지 않았다. 더불어 노동조합 교섭은 계속 분권화되었고, 신자유주의 개혁에 따라 사용자의 힘이 강화되어 노동조합은 상층부터 현장까지 기업에 크게 밀렸다. 이러한 노동조합 교섭력 약화는 개별적 노사관계에 취약한 노동자의 임금을 정체·하락시킨 중요한 원인이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위기로 실업 압력이 증가하고, 산업 재편에 따라 고용 불안정이 심화하는 상황이라 노동조합의 교섭력은 한층 더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후반부터 줄기차게 진행된 감세도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키웠다. 상위 소득자의 실효 세율은 20세기 후반부터 지속해서 감소했다. 여러 실증 연구들은 부자 감세와 불평등 증가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증명한다. 특히 세계금융위기 이후 자산가들이 먼저 소득을 회복했고, 코로나19 위기 와중에도 자산시장 거품을 배경으로 부자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봤기 때문에 감세와 불평등 관계는 더욱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불평등 문제에 민감한 정치세력이나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노동조합의 교섭력 강화와 증세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세계화를 역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기술변화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서 손에 잡히는 해법은 결국 노동조합과 증세 둘밖에 없다. 2021년 세계 경제의 핫이슈인 바이든 정부의 경제팀에는 노동조합에 긍정적 태도를 가진 경제학자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바이든은 증세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자본축적의 필연적 결과로서 과잉자본과 과잉인구
2021년 경기회복과 함께 실업률 하락도 어느 정도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전반적 고용 사정은 코로나19 이전보다 악화할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항공, 여행, 숙박 같은 업종은 이전 수준으로 완벽하게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도소매업, 음식업 등도 소비 행태 변화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고용문제가 좀처럼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21세기 자본주의가 처한 조건과도 관련이 깊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편향적 기술진보로 인해 결국 자본축적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노동생산성을 급상승시키면서 동시에 자본도 절약하는 진보(산업혁명)가 없으면 이윤율은 경향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 이윤율 하락 국면에서 자본투자는 급증, 둔화, 정체라는 세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자본이 노동자를 고용하는 체제에서 자본투자의 감소는 곧 실업의 증가를 의미할 수밖에 없다. 2010년대 세계 자본주의는 노동생산성 둔화 속에 자본투자도 감소하는 자본축적의 마지막 국면에 있다. 어지간해서는 고용이 증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사용해 고용지표를 개선한다고 해도,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런 일자리는 대부분이 임시직, 저임금일 뿐이다. 정부 주도 고용 증대가 장기성장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때는 이런 처방도 효과가 있겠지만, 2010년대 세계 경제는 자본축적 위기의 최후단계를 통과하는 중이다. 단적인 예로 미국 경제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역사상 최장기 경기 확장을 기록했다지만, 실업률은 겉으로만 개선되었을 뿐이었다. 임시직 저임금 일자리가 주로 증가했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 위기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크게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축적 위기의 최후단계에서는 과잉자본과 과잉인구가 빠르게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과잉자본은 실물경제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으로 금융화를 의미한다. 금융화의 결과는 가공자본의 확대이다. 가공자본은 주식, 부동산, 채권처럼 미래 수입에 대한 청구권을 현재의 자산 가격으로 만든 것으로, 미래가 끝이 없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주관에 근거한 만큼, 스스로 무한정 증식할 수 있다. 그야말로 가공적이다. 이런 가공자본은 자본주의 철칙인 소유권 덕에 실제 수입을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노동자에게 임대료를 더 청구할 수 있는 건물주의 권리를 상상해보면 될 것이다. 금융화를 통해 가공자본이 커지면 그만큼 자본가의 착취 역시 커진다.
과잉인구는 자본에 고용되지 못한 인구, 마르크스의 표현으로는 산업예비군, 현재 표현으로는 실업자와 비정규직 같은 불완전 취업자를 지칭한다. 과잉인구의 증가는 당연히 빈곤의 확대를 동반한다. 생산력 발전과 정부의 빈곤 지원으로 절대적 빈곤은 감소할 수 있지만, 당대 시민이 누릴 수 있는 풍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상대적 빈곤이 증가한다. 더불어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하고, 노동소득에 기대를 접은 다수의 시민이 자산 투기에 몰두한다. 마르크스는 이를 도덕적 타락의 증대라고 불렀다. 과잉인구의 증가는 상대적 빈곤과 도덕적 타락을 심화한다.
과잉자본과 과잉인구의 증가라는 장기 정세에서 코로나19 이후 고용회복은 제한적이다. 정부가 고용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거기에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어리석다. 케인스주의 처방은 길어야 몇 년 정도 유효할 것이다.
5. 바이든 정부는 이전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민주당 바이든이 가까스로 트럼프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세계의 절대 강국인 미국의 정책 변화는 세계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 새 정부의 가장 큰 정책 변화는 케인스주의로의 복귀일 것이다. 바이든은 정부 투자 확대와 사회보장 강화로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고, 다자주의 동맹 정책으로 미국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의 주요 경제 공약은 도로, 다리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 친환경 시설 건설, 제조업 부흥을 위한 연구개발 지원, 미국산 제품 구매 지원, 무상 대학 교육 확대, 아동 보육 지원과 공공 유치원 확대, 주거 지원 확대 등에 10년간 약 7.3조 달러를 투입하는 것이다(미국 연방정부 1년 예산은 2019년 기준 3.5조 달러였다). 전통적 케인스주의 정책이라 하겠다. 바이든은 노동 관련 정책으로는 연방 최저임금 인상(7.5달러에서 15달러로),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근로계약 조항들에 대한 규제, 자유무역협정에서 노동표준 강화 등을 약속했다. 참고로 필요 예산 중 4조 달러는 부자 증세와 법인세 인상으로 해결된다. 40만 달러 이상 소득자에게 12.4%의 사회보장세를 새로 부과하고, 트럼프가 낮춰놓은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인상한다.
그런데 바이든의 이런 계획은 당장 2021년 1월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부터 지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원 의석수는 공화당 50, 민주당 48이다. 조지아주 선거를 민주당이 모두 이겨야 여야 동수가 된다. 바이든 정부의 공격적인 경제 계획은 코로나19 2차 경기 부양으로 시작되는데, 당장 이것부터 상원의 문턱에 걸려있다. 민주당은 2020년 말에 2.2조 달러의 2차 대책(2020년 3월 1차 대책은 2조 달러)을 제시해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해 2차 대책은 여전히 상원에 잡혀 있는 상태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0.5조 달러 대책을 제시했다. 여야 사이 차이가 매우 크다. 상원을 잡지 못하면 바이든의 주요 공약은 제대로 시행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바이든이 과감한 확장재정을 주장할 수 있는 배경은 앞에서도 봤던 저금리-저인플레이션 상황이다. 바이든 경제팀은 “더 쓰는 것보다 덜 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민주당 중도파의 이데올로그라 할 수 있는 폴 크루그먼은 바이든 정부가 낙관적 전망을 시장에 던져주며 2022년 중간 선거 때까지 경기 부양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역정책의 경우 트럼프식 일방주의보다는 WTO 같은 국제기구나 TPP 같은 다자간무역협정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를 내세운 트럼프는 관세 장벽을 이용해 대중국 무역적자를 줄이고, 세계 각국의 대미 직접투자를 유도하려 했다. 바이든 역시 목적은 트럼프와 다르지 않다. 미국산 제품 구매나 리쇼어링 지원 정책이 대표적이다. 다만, 그 방법이 다를 뿐이다. 전문가들은 바이든이 오바마와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혼합해 사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한다.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와 미국, 호주, 일본, 인도가 참여한 ‘쿼드’ 역시 계속 진행된다. 중국 첨단기업들에 대한 제재 역시 변화는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이 이전 정부와 차이를 보이는 점은 정책보다는 이데올로기일 것이라 분석한다. 바이든이 소집하겠다고 밝힌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대표적이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인종주의와 배타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민주, 인권 같은 전통적인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바꾸려 한다. 홍콩, 신장 위구르 등의 인권문제 역시 바이든 정부가 대중국 압박용으로 자주 사용하게 될 이슈가 될 것이다.
케인스주의 처방의 딜레마
경기 부양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특히 백신 개발 이후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국면에 진입할 때 막강한 경기 부양 정책이 더해지면 미국의 V자 경제성장이 더욱 가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투자와 사회보장의 강화로 미국 자본주의가 축적 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자본축적의 위기는 투자한 자본으로 충분하게 노동생산성을 향상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즉 자본생산성이 장기적으로 하락할 때 발생한다. 1940~60년대 케인스주의 정책의 성공은 인류 최대의 자본생산성 상승 국면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그리고 1970~80년대 케인스주의 정책의 폐기는 자본생산성 하락 국면에서 케인스주의가 가지는 결함 탓이었다. 2010년대 세계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많은 경제학자가 지적하고 있듯 노동생산성 상승 속도가 크게 둔화한 것이다. 오바마 정부 정책을 계승하는 바이든 정부가 조금 더 재정을 쓴다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2020년대 케인스주의 정책은 케인스주의가 만개했던 1940~60년대가 아니라 그것이 위기에 처한 1970~80년대와 비슷한 상황에서 재연된다는 것이다.
2천 년대 초반 호황이 2007~09년 세계금융위기의 씨앗이 된 것처럼, 막대한 재정지출을 이용한 경기회복 역시 그 부작용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지연된 위기는 더 큰 위기로 폭발한다.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자본축적 정체 국면에서 케인스주의 해법은 장기적으로 재정위기와 화폐위기를 앞당길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이런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바로 달러의 발권 이익이 그것이다.
세계화폐를 자국의 정책에 따라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나라다. 세계 모든 금융기관은 무역 결제와 안전 자산을 보유하기 위해 달러 또는 달러와 언제든 교환 가능한 금융자산을 보유해야 한다. 달러 표시 금융자산의 대표는 당연히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 즉 미 재무부 증권(국채)이다.
미국과의 무역에서 달러를 번 국가들은 그 달러를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한다. 대표적 투자 대상이 미국 국채다. 이런 세계적 수요 덕분에 미국 정부는 국채 발행으로 장기간의 재정적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미국은 지난 40년간 무역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는데, 최근 10년간 연평균 무역적자액은 430억 달러에 달한다. 또한,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역시 20년간 지속하고 있는데, 2019년 말 정부가 발행한 국채 잔액은 자그마치 18조 달러에 달한다. 이런 미국 국채의 40%는 해외 금융기관이 보유한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달러의 세계적 유통은 미국의 이중적자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달러 환류로 불리는 이런 메커니즘은 세계적 경제위기 시기에도 작동한다. 위기 시기 민간에서 정부를 찾는 것처럼, 모든 정부가 위기인 시기에는 ‘정부의 정부’라 할 미국을 찾기 때문이다. 미국이 망하면 세계가 망하는 것이다. 최후의 도피처는 미국일 수밖에 없다. 세계금융위기 때가 그랬고, 또 이번 코로나19 위기 때도 그러했다. 바이든 정부가 마음껏 적자재정을 늘려도 미국이 다른 나라처럼 한순간에 고꾸라지는 일을 없을 텐데, 이는 다 달러의 위력 덕분이라 하겠다.
마르크스 경제이론으로 보면, 이러한 달러 환류는 미국이 세계적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각국에 축적되어야 할 잉여가치가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되는 꼴이니 말이다. 미국은 세계화폐를 이용해 세계의 잉여가치를 소비한다. 하지만, 달러를 이용한 세계적 착취가 축적 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미국 자본주의의 이윤율 하락을 세계적 잉여가치의 이전으로 메우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세계적 성장이 지속해서 정체하면, 미국의 세계적 착취도 한계에 부딪힌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미국의 국채도 계속 증가할 텐데, 저성장 국면에서 발행되는 국채는 더 많은 액수가 해외 금융기관에 의해 구매되어야 한다. 당연히 경제성장이 더디니 국내에서 감당할 수 있는 국채는 줄어든다. 1990년대까지 미국 국채는 20% 정도만 해외에서 보유했다. 세계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는 이 비중이 50%까지 증가했다. 대미 무역흑자의 대표 국가인 일본과 중국이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사들였다.
2021년 이후 코로나19 회복국면에서 달러 환류가 어떻게 변할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의 이중적자는 계속 증가할 터인데, 단기에는 미국 금융시장으로 향하는 세계적 잉여가치가 증가하더라도, 2010년대 누적된 저성장으로 인해 해외에서 지속해서 미국에 투자를 늘리기가 쉽지 않다. 중국의 경우 이미 중진국 함정에 빠진 징후가 여럿 나타난다. 내수 주도로 경제 체질을 바꾸겠다는 정책도 시행 중이다. 일본은 무역흑자가 확연히 감소하고 있다. 오일달러로 유명했던 중동 석유 수출국들은 석유 가격 하락과 탈석유 흐름으로 금융투자 능력이 많이 감소한 상태이다.
6. 중국은 고도성장을 재개할 수 있을까
2021년 세계 경제는 중국의 성장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은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이 저성장 늪에 빠져있을 때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코로나19 위기로 시작된 2020년대도 중국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받는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020년에 2%, 2021년에 8~9%로 예측된다. 2021~22년 사이에 중국 GDP는 유럽연합 전체보다 커질 것이다. 명실상부한 G2가 되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2021~25년에 적용되는 14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을 준비 중이다. 대략 5% 내외의 성장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핵심 전략은 우선 ‘쌍순환’이다. 수출과 내수를 함께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수출은 지금껏 해오던 것이니 아무래도 초점은 내수 활성화 쪽에 맞춰져 있다. 둘째는 기술자립이다. 제조강국·품질강국·인터넷강국·디지털강국 등 4대 강국을 제시하고 있는데, 2010년대 중국굴기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강력한 기술 제재를 가하고 있어 특히나 더 강조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초국적 기업들이 중국에 편중된 글로벌 공급사슬을 조정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컨대, 2020년대 중국은 기술자립을 통해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공급사슬을 구축하고, 내수를 육성하는 데 주력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경제 예측 기관들은 중국이 2020년대에도 그럭저럭 성장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비관적 견해도 있다. 특히 제도에 주목하는 경제학자들이 그렇다. 이들은 추격성장에 필요한 제도와 성숙한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가 주도로 “돌진 앞으로!” 하던 시기의 제도를 가지고는 경쟁을 통해 효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시기에 적응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민간에서 경쟁을 촉진할 유인을 만들지 못하면 지대 획득에 유리한 엘리트들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힘을 쏟게 된다. 제도는 공정한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특정 사람이나 세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된다. 그 결과 독점과 부패가 만연해진다. 그 결과 자본과 노동의 투입부터 기술혁신까지 경제 체질 자체가 중진국 수준에 적합하도록 굳어져 버린다. 이것이 중진국 함정이다. 중국은 전형적으로 중진국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14차 경제개발 계획 역시 중진국 함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 중국의 경제는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강한 통제 아래 있다. 관치와 부패가 만연하다. 그리고, 고도화보다 당의 성과를 포장하는데 적합한 양적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로 2010년대 성장은 중국의 거대 공기업들이 ‘중국굴기’, ‘일대일로’ 등의 정부 시책에 따라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공기업 부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중국 당국 보고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부채비율은 250% 내외, 총부채 규모는 GDP의 1.3배에 달한다. 그런데 사실은 이조차도 상당히 과소 측정된 것이다. 지방정부가 당에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편법과 탈법으로 지방공기업을 지원하는 사례부터, 대외 보고용과 실제가 다른 이중장부들까지 중국 기업 내부에 부패가 만연해 있다. 해외금융기관들은 공기업 부채가 GDP의 2배 이상이라고 추정한다. 2020년에는 일부 공기업에서 회사채 상환에 실패하면서 부도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위기로 지방정부가 뒷돈을 제공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물론 중국의 ICT 기업들이 세계에서 성공하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기는 하다.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같은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경제의 주력은 이들이 아니라 공기업과 지엠, 도요타, 폭스콘, 삼성 같은 외국인투자기업들이다. 심지어 중국의 세계적 기업들은 최근 논쟁거리가 되었듯 당의 유무형의 지원과 간섭을 받고 있다. 중국 내부의 민간 역량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중국 당국의 자본통제 역시 중요한 쟁점이다. 중국이 막대한 공기업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국영은행이 여전히 막대한 자산을 가지고 대출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해외로 자본이 유출되는 것을 통제할 수 있기에 가능하다. 중국 정부가 자본이동 통로 중 하나인 홍콩을 강하게 억압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 중국의 숨겨진 문제로 가계부채 문제도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0년 중국 가계부채 비중은 세계금융위기 직전 미국 수준으로 높아졌다. 국내 신용 과잉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시진핑 정부는 더 강하게 국내 시장을 통제할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소련, 1990년대 한국과 2020년대 중국의 공통점
2021년 중국의 1인당 GDP는 이제 1만 달러에 도달한다. 한국의 1990년대 초와 비슷한 수준이다. 3저 호황을 마친 당시 한국은 그때부터 큰 어려움에 빠졌었다. 재벌개혁이 지체되어 수익성 하락이 가속했고, 금융개방을 서두르다 재벌의 외채 탓에 나라가 부도났다. 그런데 나라 경제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당시 한국은 “마이홈 마이카”로 상징되는 선진국 중산층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OECD에 가입하며 선진국 클럽에 들어갔다는 자화자찬도 만연했다. 가장 위태로웠던 시기에 가장 찬란한 시기가 겹쳐졌다.
그런데 중국의 2020년대가 이와 다르지 않다. 명실상부한 G2가 됐고, 중국 당국은 15년 내로 GDP를 두 배로 키운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중화 제일주의를 외치며 자신만만한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제도개혁은 여전히 뒷전이다. 중국의 공기업 부채와 가계부채는 실상을 파악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크다. 정경유착에 의한 비효율적 투자도 계속된다. 1994~95년 반도체 호황이 한국 경제의 경고음을 꺼버렸던 것처럼 2021년 코로나19 위기 이후 고도성장이 중국의 제반 문제를 감출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의 시장 사정이 1990년대 한국을 닮았다면, 중국 공산당의 사정은 1970년대 소련을 닮았다. 소련은 국유기업-계획경제를 통해 1960년대까지 놀라운 경제적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인구 정체가 심화하고, 공기업들의 비효율도 증가하면서 경제 전반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련 당국이 세운 계획은 크게 보면 네 가지였다. 첫째, 공기업 구조조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구조조정은 철저히 실패했다. 당의 목표만 맞추려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도리어 노동생산성이 하락하고 말았다. 둘째, 자원개발이었다. 시베리아 유전개발이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이 또한 실패했다. 채산성도 맞지 않았다. 셋째, 기술개발이었다. 다른 것보다는 나았지만 성공이라 평가하긴 어려웠다. 소련 당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연구개발 자원이 배분된 탓이었다. 미국과의 경쟁에 너무 많은 연구 자원이 소모됐다. 넷째,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친소정권을 세우기 위한 군사 작전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지도 못했고, 소련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다들 알고 있다시피, 이러한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개혁의 실패는 십여 년 뒤 소련 붕괴로 이어졌다.
놀랍지만 2020년대 중국 시진핑의 전략은 1970년대 중반 소련 공산당의 전략과 매우 닮아있다. 시진핑은 2020년부터 한계에 부닥친 공기업에 대한 개혁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하지만 당과 얽히고설킨 공기업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복해서 부채를 쌓고 있는 형편이다. 시진핑의 야심작인 ‘일대일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너지 자원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현재까지 성과가 그다지 없다. 정부 지원을 받은 국가에서나, 개발에 참여한 공기업에나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중이다. ‘기술굴기’ 역시 소련의 연구개발 전략과 다르지 않다. 당의 정치적 목표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이 홍콩을 통제하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꼭 빼닮았다.
한편, 시진핑의 점점 더 강화하는 독재 전략은 집단지도 체제를 1인 독재로 강화했던 1970년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비슷하다. 개혁 대신 성장을 과장하며 국민을 속이고 기존 엘리트의 기득권과 적당히 타협하는 모습은 1990년대 초중반의 한국 지도자들과 다르지 않다. 2020년대 중국은 국가 부도 사태로 나아갔던 한국과 체제 붕괴로 나아갔던 소련의 길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 경제성장의 모순은 1990년대 한국의 그것과, 중국 공산당의 모순은 1970년대 소련의 그것과 같다. 2021년 경기회복 과정에서도 중국이 자신의 결함을 해결하는 길로 경로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7. 한국 경제는 온전하게 회복할 수 있을까
IMF의 2020년 10월 예측치에 따르면, 2020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1.8%, 2021년은 +2.9%이다. 코로나19 이전보다 2021년에 1% 정도 더 성장하는 것이다. 1인당 GDP 3만 불 이상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회복 속도가 대만, 아일랜드 다음으로 빠르다. 한국은행, KDI 등의 경제기관들은 한국 경제의 회복을 이끄는 건 수출과 설비투자라고 예상한다. 민간소비, 건설투자 등은 코로나19 이전 상태로 회복하지 못한다.
하지만 2020년 12월 초 상황에서 보건대, 한국 경제의 회복은 이들 예상보다 더뎌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첫째, 2020-21년 겨울의 대유행이 예상보다 심각하다. 2020년 12월 하루 확진자 숫자는 600명까지 치솟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는데, 전파 양상은 1차 대유행 때보다 더 심각하다. 거리두기 기간이 늘어나면 내수는 경제기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타격을 더 입게 된다. 수출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유럽이 겨울 대유행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고 있어서다. 이들의 경제침체가 길어지면 수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둘째,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딜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와 유럽 선진국들이 개발에 성공한 백신을 조기에 독점하면서, 한국 정부는 백신 확보량이 많이 부진한 상태다. 만약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이 다른 나라보다 늦어지면, 한국의 경제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다.
요컨대, 한국경제는 2021년 상반기까지는 2020년의 연장선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2021년 경제성장률은 2020년 하반기 예상치보다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불균등한 회복
코로나19 위기는 산업적 격차가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항공운송, 여행, 숙박, 레저 등은 거리두기 정책에 직접 피해를 봤고, 유통업, 음식업, 개인서비스(미용 등), 육상여객 등도 거리두기와 내수침체로 큰 타격을 입었다. 중화학공업 수출 제조업도 세계 경제의 침체로 손해를 봤는데, 다만 한국의 경우 공장 정지까지 가는 방역이 시행되지는 않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편이다. 반면, 디지털 서비스, 정보통신 제조업, 온라인 쇼핑 등은 비대면 경제가 성장하면서 코로나19 이전보다 오히려 매출과 이익이 증가했다.
2021년에도 코로나19 위기에 직접 타격을 입은 업종은 제대로 복구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항공운송, 여행, 숙박, 레저 등은 상반기까지도 거리두기 여파로 매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다양한 금융지원을 하고는 있지만, 엄청나게 커진 부채로 재무적 어려움이 누적됐고, 휴업, 해고 등으로 사업 역량 자체도 축소되어 있다. 이전 같은 사업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어렵다. 2021년 하반기나 2022년에 소비가 일시에 터져 나올 때는 그때까지 사업 역량을 보존한 소수 기업이 독점력을 높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한국 경제는 매번 위기를 겪은 후 시장 독점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산업 복구 시기에 소수 대기업이 비정규직이나 외주화를 이용해 매출 증대에 대처하는 경우가 많아 고용의 질 하락도 동반되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이런 양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영세 자영업이 밀집해 있는 도소매, 음식, 개인서비스 등에서는 빈곤층의 확대가 예상된다. 경제기관들은 2021년에도 내수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으리라 전망한다. 그만큼 사정은 더 어려울 것이다. 이 부문은 재무적 어려움에 부닥쳐도 다른 출구가 없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업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고, 기존 업체들이 파산하더라도 다른 산업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야말로 빈곤의 저수지라 하겠다. 자영업자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고용된 노동자도 문제가 된다. 이 업종들에는 6백만 명의 자영업자 외에도 3백만 명 가까운 임금노동자가 고용되어 있다. 대부분 최저임금 정도를 받으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비대면 경제의 수혜를 입은 업종들은 2021년에도 그럭저럭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이 업종들은 국민경제에 파급 효과가 적다. 디지털 서비스의 경우 특히나 설비투자를 동반하지도 않아 더더욱 국민경제와 괴리가 크다. 온라인 쇼핑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주선 기업들(플랫폼 산업이라고도 부른다)의 경우 알선 수수료만 챙기고 노동조건 책임은 지지 않다 보니, 최근 택배 노동자 과로사와 같은 문제들이 더욱 커질 것이다. 전반적 취업난으로 인해 택배나 배달 같은 특수고용 직종으로 노동자들이 몰리고 있다. 수수료 또는 임금의 덤핑 압력이 커질 것이다. 정부가 규제로 노동조건 악화를 막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편, 문재인 정부의 공격적 재정정책으로 공공부문은 2021년에도 팽창할 것이다. 국회를 통과한 2021년 예산은 전년도 정기예산보다 9%, 세 차례 추경을 모두 합쳐도 2%가 많다. 사회안전망 지출도 증가했지만, 공공부문 일자리와 정부 투자 부분이 특히 많이 증가했다. 취약계층 일자리, 사회간접자본 확충, 디지털 뉴딜로 불리는 정부 기관 디지털화 사업 등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고용하는 노동자도 많이 증가할 것이다. 확장적 재정 기조에 따라 이전 위기들과 달리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은 없을 것 같다.
산업 구조조정
자동차, 조선, 기계, 석유화학 같은 전통적 수출 중화학공업에서는 조용한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2021년 하반기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국면에 들어선다고 해도, 이전 수준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과 중국이 수입 규제와 자국 기업 우대 정책을 강화하는 것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실 코로나19 이전부터 한국 제조업의 가동률은 꾸준히 하락해왔다. 2015년 즈음부터 4년 넘게 이어진 경향이다. 상황에 따라 벼락 호황을 맞는 업종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큰 방향에서는 경제침체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에서는 다운사이징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22년 대선을 앞둔 정부가 고용위기를 막기 위해 제조업 기업에 여러 지원을 하고 있어 예전과 같은 극단적 대량해고는 자제되는 분위기이다.
경제회복과 무역정책에 따른 생산 조정과 별개로 국제적 에너지 재편 흐름이 미치는 영향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위기 복구 과정에서 친환경 산업으로 구조개편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U에서는 강화된 자동차 규제가 2021년부터 시작되고, 국제해운기구(IMO)의 환경규제도 2020년부터 시행 중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겠다고 밝혀 에너지 부분의 화석연료 규제 역시 다시금 확산할 것이다.
친환경 정책으로 인한 산업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자동차산업이다. 몇 년 전부터 이어지던 전기차 확대 흐름이 코로나19 불황을 계기로 완전히 대세가 되었다. 현대차는 이전 계획보다 5년 앞당겨 전기차 라인업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2020년 12월에 선보였고, 2025년까지 23개 차종을 개발해 100만대 이상 판매하겠다는 계획도 공표했다. 다만, 현대차는 수소연료차에서는 이전보다 힘을 빼는 분위기이다. 대형 상용차 중심으로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계획은 있지만, 세계적 흐름이 배터리전기차 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이다. 문 정부가 설레발 쳤던 ‘수소사회’ 역시 후속 계획이 모호하다.
전기차 재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부품사와 고용문제이다. 시장 예상에 따르면 10년 후에는 전기차 생산 비중이 20~30% 정도로 올라간다. 현대차, 기아차는 2016년 800만대 생산으로 정점을 찍은 뒤, 5년 만에 700만대로, 그리고 2020년에는 600만대 수준으로 내려왔다. 한국 국내에서는 완성차 5개사 만드는 자동차가 2019년 400만대였는데, 이 역시 빠르게 감소하는 중이다. 여기에 전기차 재편까지 이뤄지면 부품사들의 생산량이 향후 급속도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부품사 중 전기차 재편에 대응할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더구나 부품의 많은 부분이 전기전자 업체로 넘어가기 때문에 기계 부품을 생산하던 업체들은 매출 감소를 감당하는 수밖에 대처법이 없다. 2020년을 코로나 대응으로 가까스로 넘긴 부품사들은 2021년에는 전기차 재편 과정에 적응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21년 산업 구조조정의 폭탄은 항공업이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합병하면서 중복 사업을 정리해야 하고, 2천 년대 난립한 저비용항공사(LCC)들도 항공업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에는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합병 자체가 산업적 필요 이전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 목적에서 진행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산업은행 돈으로 재벌의 백기사 역할을 하며 인수자금을 대주는 꼴이다. 둘째, 산업은행이 구조조정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벌이는 책임 떠넘기기 성격이 있어서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을 수년간 별로 하지 않았다. 셋째, 독점과 경영부실 문제가 있다. 아시아나의 경영난은 금호그룹 탓이 컸다. 대한항공 역시 한진그룹 남매의 경영권 다툼 속에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둘을 합쳐 국내 항공산업을 독점화시켰을 때 국민이 얻는 이득이 별로 없다. 재무적 어려움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2021년에는 합병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경제적 정당성 여부, 그리고 한진그룹 경영권 다툼을 두고 계속 논란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저비용항공사 구조조정은 그야말로 폭탄이다.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 플라이강원 등은 이미 정부 지원이 없으면 당장 파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재무상황이 최악이다. 이스타항공의 경우 이미 파산으로 내몰렸다. 이들은 자본 크기가 작고, 지자체들과 금융펀드들이 장기적 사업전망 없이 만든 사례가 많아, 예전부터 줄곧 위험성을 지적받아 왔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오랫동안 항공 수요가 감소할 수밖에 없어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1만 명이 넘는 종사자와 전후방 효과를 고려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쌍용차, 한국지엠 같은 외투기업 자동차기업도 구조조정 폭풍전야이다. 쌍용차는 인도 마힌드라가 공식적으로 경영 포기를 선언한 상태에서 2020년을 보냈다. 현재 재무구조로 보면 2021년 곧바로 자본잠식 상태가 될 것이다.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2009년 초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주채권단인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처럼 매수자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계적 침체와 전기차 재편 과정에서 환경규제에 취약한 디젤엔진 자동차기업을, 그것도 네 번째 주인이 바뀌는 재무적으로 최악인 기업을 인수할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지엠의 경우 부평2공장 폐쇄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2018년 군산공장 폐쇄 이후 2년 만에 다시 공장 폐쇄 여부가 갈등의 중심에 섰다. 지엠 본사의 의도는 명확하다. 한국 사업장을 줄이면서도, 한국 정부에서 지원금을 최대로 뽑아내는 것이다. 경영진들은 산업은행과 계약이 있음에도 또다시 공장 철수까지 협박하며 노조와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고용위기에 민감해지는 2022년 5월 대선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2021년에 2018년 같은 지엠, 산업은행, 노동조합 사이 극단적 갈등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때보다 지엠은 한국에서 철수했을 때 입는 손해가 더 적다.
재벌 경영권 승계
정부와 여당은 공정경제3법으로 대표되는 재벌개혁을 시작했다. 재계가 극렬하게 저항하는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이다. 기업의 재무적 투명성을 감독하는 감사위원이 총수 일가의 영향력을 제한한 상태(지분 3% 이하만 투표)로 주주총회에서 선출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경련은 투기자본이 감사위원 자리를 꿰차고 기업을 투기판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들의 경고는 많이 과장됐다. 재벌 총수들이 마음대로 이사회를 이용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정부의 재벌개혁이 그다지 성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재벌 총수 가문의 능력은 기업 내외부 제도들을 포획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소수 지분을 가지고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능력 덕분이었다.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높이고,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것만으로 총수 일가의 편법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는 없다. 분리선출제가 감사위원이 출중한 능력을 보유하는 것까지 보장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고도로 복잡한 사업구조를 가진 대기업에서는 고위경영진 협조 없이는 감사위원이 제 역할을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은 경영권 장악이 핵심이라 지금까지 대주주와 고위경영진이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였다. 독립된 감사위원이라 하더라도 총수 일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바지 감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 이재용과 현대차 정의선의 경영권 승계가 2021년에 본격화된다. 이건희가 사망함에 따라 이재용은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이재용은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라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10조 원 대로 예상되는 상속세부터 당장 문제다.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유지하려면, 함부로 지분을 매각할 수 없다. 상속세 문제부터 지배구조 문제까지,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2021년에도 여러 쟁점이 계속 터질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 회장은 2020년 7월에 병원에 입원해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10월에는 정의선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 회장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면 2021년에 어떤 식으로든 경영권 승계 윤곽이 잡힐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은 지금까지도 4개의 고리로 얽힌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재벌이다. 그만큼 경영권 승계가 복잡하고, 위법 여지가 곳곳에 숨어 있다. 2019년에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로 만들려다 투자자들의 반발에 밀려 실패한 바도 있었다. 2021년에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예전에 실패했던 모비스와 글로비스 합병을 투자자들의 반발을 잠재우며 다시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비스가 내부거래를 통한 사익편취의 대표 기업인 데다, 이번 공정경제3법의 표적 중 하나라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한다.
노조운동
2021년에는 임금인상협약, 구조조정, 임금체계개편 등을 두고 노조운동과 정부, 자본 간의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노조운동이 제한되었는데, 2021년 중순부터는 지체된 임금인상 투쟁이 활발해질 것이다.
임금인상 투쟁의 경우 대기업 정규직과 나머지 사이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 내부의 갈등 요인이다. 1998년, 2008년 위기 이후를 보면 회복 속도가 빠른 대기업에서는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던 반면, 회복 속도가 더디고 심지어 아예 복구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던 중소기업과 자영업에서는 임금 정체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업별 교섭을 통한 임금 극대화에 전념할 경우 이런 양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대기업에서는 급격한 경기 확장 시기에 비정규직이나 외주화를 확대하는 경향이 심해, 기업별 정규직 노조가 임금인상에만 주목할 경우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1998, 2008년 두 위기 이후 대기업의 매출 대비 고용 규모는 이전보다 감소했었다.
공공부문에서는 임금인상과 함께 임금체계 개편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1월 경사노위에서는 “직무중심 임금(보수)체계 개편은 획일적·일방적 방식이 아닌 기관별 특성을 반영하여 개별 공공기관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추진한다”고 정부와 한국노총이 합의했다. 2021년에 이 합의대로 추진하려는 기재부·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갈등이 벌어질 것이고, 기관별 추진 과정에서 담합 혹은 갈등도 예상된다. 그러나 정부의 개별 기관별 직무급 도입 입장과 한국노총의 기관별 담합 입장, 민주노총의 반대투쟁 입장이 상호작용하면서 제대로 추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서유럽 사례를 볼 때,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임금체계로 구현하는 직무급 체계의 핵심은 초기업적 표준을 만들고 노동조합이 직무급 설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가능한데, 한국에서는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부재하다.
2021년 경기회복 과정에서 노동시장의 최고 이슈는 당연히 불평등 문제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공공과 민간 등 모든 부문에서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노조운동은 이 부분에 대해 도덕적 비판 외에 어떤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민간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으로 기업 내부의 이익 극대화에 치중하면서 자칫 격차 확대의 주범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귀족노조론’이 2021년에도 극성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과 주식시장
한국 경제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부동산이다. 2020년 최고 화제가 된 단어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에 투자한다”는 ‘영끌’이었다. 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의 같은 기간 상승률보다 4.5배나 높았다.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아파트 가격은 오히려 더 상승해 2020년에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평당 1천만 원 가까이 올랐다.
‘동학개미’, ‘서학개미’ 같은 말을 유행시킨 주식시장 열풍도 쟁점이다. 주가지수는 2020년 3월 1500선까지 주저앉았다가 9개월 만에 80%가 급등했다. 한국 주식시장은 외국인 투자자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지금까지 특징이었다. 하지만 2020년에는 외국인들이 족족 주식을 매도하는데도, 개인 투자자들이 말 그대로 개미처럼 몰려들어 주식을 매수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배경은 저금리 유동성,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정부마저 코로나19 대책으로 돈을 풀어대니, 시중에 부동자금이 넘쳐났다. 이 돈이 전통적으로 가장 안전한 자산인 수도권 아파트 시장에 몰렸다. 민주당 정부의 전통적 정책이 공급 확대보다 수요 규제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시장이 잘 알았던 점도 아파트 가격 상승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정부가 부동산 매매, 임대계약, 세금 관련 대책을 쏟아부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한국 부동산 가격의 특징은 수도권과 소수의 지방 도시에서만, 그것도 아파트 중심으로만 상승한다는 점이다. IMF 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주택가격이 OECD 국가 사이에서 가장 오르지 않은 나라다. 한국의 이런 현상은 저성장 고령화 현상과도 관련이 깊다. 국민소득으로 보나 인구로 보나, 나라 전체의 부동산 가격이 뛸 만한 여력이 없다. 하지만 저성장이면 서울만 상대적으로 성장하고, 인구가 감소하면 상대적으로 서울만 인구를 유지하는 법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집적은 불황기에 집중으로 발전한다. 나라 경제의 불황기에 서울수도권이 나머지 도시들의 경제 자원을 합병하고 있다.
2021년에도 이런 흐름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하반기부터 경기회복 국면이 본격화되면, 시장 기대심리로 아파트 가격은 더 뛸 수 있다. 저금리와 경제 자원의 수도권 집중현상은 구조적이다. 정부가 충격적일 정도의 수도권 아파트 공급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시장은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도권에 수십, 수백만 호 아파트를 건설하면, 지방경제가 난리가 난다. 지방의 자원이 더 서울로 집중될 테니 말이다. 정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주식시장 붐 역시 배경은 저금리 유동성이다. 청년들까지 빚을 내어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10년 동안 2000선을 기준으로 오르고 내렸다. 경제 사정이 이전보다 나을 리 없는데 주식만 ‘나홀로’ 상승한다는 건 전형적 거품 현상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한국 주식시장이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어 현재 같은 상승이 오히려 정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공자본의 전형인 주식 가격에는 적정선이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기업 순익의 일부분인 배당에 대한 기대가 주식 가격의 토대인데, 장기 저성장과 경제적 혼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래 배당이 증가할 것이란 기대는 그다지 합리성이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
주가는 2021년 경기회복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경우 요동을 칠 것으로 보인다. 기관 투자자보다 정보가 적은 개인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는데, 특히 무리한 투자를 감행한 청년이나 중산층 가계가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주가 부양책을 꺼낼 수도 있다. 하지만, 거품이 워낙 커져 있는 탓에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채무 문제
정부와 여당은 확장적 재정정책 의지가 강하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추가적 경기 부양에도 거리낌 없이 나설 것이다. 한국판 뉴딜도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부는 2020년 10월 국가채무비율과 통합재정수지 관리 범위를 각각 국내총생산(GDP) 대비 60%와 -3%로 제시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현 정부 집권 후반기에 국가채무가 급증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측면이 강하다. 적용 예외 조건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국가채무비율과 재정수지에 기반한 재정준칙의 구속력도 너무 느슨하다. 심지어 적용도 문재인 퇴임 한참 후인 2025년이다. 범민주당 계열의 지식인들은 균형재정이 신자유주의 원리라며 확장적 재정에 과감히 나서라고 요구한다.
정부가 부채를 쌓을 때 제약 조건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성장률과 금리이다. 경제성장률은 조세 수입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의 지불 능력을 의미하고, 금리는 정부가 지불하는 이자이므로 부채 부담 비용을 의미한다. 지불 능력이 부담 비용보다 커지는 조건에서는 부채가 증가해도 갚는 것에 문제가 없다. 세계적 저금리 상황이라 약간의 성장률만 보장되어도 정부가 부채를 늘리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저인플레이션-저금리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다. 끝없이 이 상황이 지속한다는 건 희망일 뿐이다. 한국은 미국처럼 최악의 상황이 왔을 때 화폐 발권 이익을 이용할 수도 없다. 1997년 외환위기에서 경험했듯 한순간에 훅 가는 경제가 바로 한국 경제이다. 장기 저성장을 피할 수 없는 조건에서 저금리만 믿고 부채를 늘렸다가는 큰 곤경에 처할 것이다.
둘째, 민간저축이다. 국채를 구매하는 곳은 크게 보면 세 기관이다. 첫째, 국내 금융기관이다. 은행, 보험사, 연기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산 일부분을 안전한 금융상품인 국채로 채운다. 둘째, 한국은행이다. 중앙은행은 국채를 자산으로 삼아 화폐를 발행한다. 셋째, 해외금융기관이다. 순수하게 이익을 위해 여러 나라 국채를 사고판다.
현재 한국의 국채는 80%가 국내 금융기관에 의해 구매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경우 원화 가치 안정화를 위해 함부로 미국이나 일본 같은 수량완화에 나설 수 없다. 해외금융기관은 높은 수익률이나 안전한 가치를 보장받는 것이 아닌 한, 한국 국채에 대규모로 투자할 이유가 없다. 결국, 한국 정부가 국채를 더 많이 발행하려면 국내 금융기관들이 국민 저축을 기반으로 정부에 돈을 더 많이 빌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로 일본이 GDP의 두 배 이상인 국가부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국내 금융기관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국채를 사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치명적 약점은 일본과 달리 가계부채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가계부채가 많다는 건 국내 은행들의 자산이 가계부채(대출채권)로 채워진다는 의미다. 가계부채 비율이 높을수록 은행이 정부에 빌려줄 자산은 부족해진다. 일본은 가계부채 비율이 GDP 대비 60%대이고 한국은 100%이다. 은행들이 가계에 물려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선진국 중에서도 최고로 높다. 참고로 국채 구매의 또 다른 핵심인 국민연금의 경우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본격적으로 연금지출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기금이 바닥난다. 정부가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연금 적자를 채워야 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
셋째, 화폐의 신용도이다. 한국은행이 자산을 국채가 아니라 국외자산으로 채우는 이유는 화폐 가치 안정화에 한국 국채가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렇게 됐다. 현재 한국은행 자산의 80%가 미국 국채 같은 외국 정부의 지불 능력에 의존하는 채권이다. 2009년에도 경험했듯, 한국은 외환보유고(한국은행의 달러화 가능한 국외자산이 포함된다)가 조금만 줄어도 화폐 가치가 널뛰기한다. 한국은행은 미국, 일본, 유럽처럼 수량완화 같은 방법으로 국채를 사 모을 수 없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2021년에 GDP 대비 50%를 넘어설 예정이다. IMF 추정치에 따르면 2023년에는 60%도 넘어선다. 2020년대 말에는 80%에 육박한다. 다른 선진국보다 공기업이 많은 한국 사정을 감안하면 실제 해외와 비교할 수 있는 국가채무는 이보다 훨씬 높다. 한국은 국가채무가 지난 5년간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한 나라였다. 국가 채무비율의 상한선이 어딘지는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다. 금리와 국내 금융기관을 둘러싼 조건이 어떻게 변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위험도가 급상승하는 건 분명하다. 확장적 재정으로 미래 성장률을 크게 끌어올리는 것은 우리가 글의 서두에서 살펴봤듯 불가능하다.
국가부채 증가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문제에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약화한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의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 가계부채는 고령화, 주택문제, 빈곤확대, 저금리 등이 복합된 문제이다. 쉽게 해결할 수 없다. 기업부채 역시 저성장 속에 다수의 한계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이라 어지간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최후의 대부자로서 대응 능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포퓰리즘 정치로 정부 재정을 낭비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2021~22년 이 문제가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8. 결론
2021년 경제는 하반기부터 V자 보이는 경기회복이 예상된다. 저인플레이션-저금리, 중국의 고도성장, 2020년의 기저효과 등이 경기회복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이 회복은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가지고 있는 기저질환 탓에 단기간에 그칠 것이다. V는 곧 더블딥 W로 빠르게 바뀔 가능성이 크다. W 다음은 L자로 표현되는 장기불황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최종적 위기가 가시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한국 경제는 경기회복 과정에서도 회복의 불균등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격차 확대로 인한 고통 속에서 재벌은 사익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고, 정부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포퓰리즘 정책에만 집착한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노조운동은 오히려 문제로 내몰려 비판받을 가능성이 있다.
2021년 과제는 W를 대비하는 것이다. V자 회복으로 생기는 여력을 최대한 불황을 준비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앞서 봤듯 수많은 쟁점과 과제가 있지만, 다음 세 가지 정도가 노동자운동이 힘을 집중해볼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치를 비판하는 반정부 전선 구축이다. 2021년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에서 현 집권세력을 심판해야 한다. 물론 중요한 건 쟁점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정권을 쓰러뜨리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정권을 바꿔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경제 부분에서 핵심 비판은 정부의 국가채무 관리이다. 진보진영은 민주당과 비슷하게 확장적 재정에 대해 매우 안이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정의당은 재난소득 논란에서도 “누구에게나 더 많이” 같은 정부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포퓰리즘 입장을 내기도 했다. 경계해야 한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같은 당장 손 쓰기 어려운 문제들이 곧 밀려온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현 집권세력을 비판하고, 권력 재편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재벌개혁이다. 삼성, 현대차 같은 상위 재벌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기업의 자원은 물론, 국가의 자원까지 낭비한다. 더욱이 3세 경영인들은 능력도 검증되지 않았는데,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2021년부터 3세 승계가 본격화된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경영을 합리화하기 위한 대처가 시급하다.
보통 30대 그룹으로 묶어서 평가하지만, 상위 재벌을 제외하면 중간 이하 하위 재벌들은 지속해서 부실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경향이 강해졌다. 금호아시아나, 한진그룹은 항공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다. 자산 매각에 나선 두산그룹도 부실 재벌의 대표 사례이다. ‘퍼주기 지원’이 아니라 족벌의 세습을 멈추고 기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합리적 방안이 필요하다.
셋째, 노조운동의 연대임금-연대고용 정책이다. 한국의 위기는 불가항력적 요소가 많다. 노동시장 내부의 격차는 한국 사회 위기를 심화하며, 동시에 노동자운동의 무기력을 심화하는 족쇄다. 코로나19 이후 이런 양상은 더 강화된다. 2021년에 노조운동이 각자도생의 행동을 벌인다면 더는 수습 불가능한 상태로 노동운동이 타락할 수 있다. 대기업, 공공부문에서는 임금 극대화 대신 고용 극대화를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임금수준과 임금체계를 적정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임금교섭을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총연맹, 산별노조 수준에서 조율하며 임금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운동을 벌이는 것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