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집권 하반기 노동자운동의 과제
글을 쓰는 지금 민주노총 직선 3기 임원선거, 지역본부 임원 선거 및 공공운수노조 임원 선거가 진행 중이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사태의 한가운데라는 정세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문재인 정권을 어떻게 평가하며 본격화하는 집권 후반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21년 상반기 지자체 보궐선거(서울, 부산) 및 2022년 상반기 대선 및 지방선거가 이어지는 국면에서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할 것인가 등 중요한 정세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노동자운동은 엄중한 시기를 헤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 과정을 통해 민주노총의 절망적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데 노사정 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현재 민주노총 내부에서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고, 노사정 대화 추진 자체에 대한 입장 차이만 쟁점이 되고 있다.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의 실패 원인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사회적 대화를 재추진하자’라거나, 조직 내 갈등을 불러오는 사회적 대화 대신 ‘총파업으로 돌파하자’는 식의 관성적 대응으로는 또 다른 실패를 맞이할 것이다.
정권 후반부에 들어선 문재인 정권은 총체적 난국이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정책이 실패로 돌아가자,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하는 한편 강제징용 문제를 국내정치에 활용하면서 위기를 돌파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 평화협정이라는 모순과 외교협정을 국내법으로 무력화하려는 억지는 어느 것도 성공할 수 없었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과 부패 스캔들, 울산시장 선거 개입,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은 민주당 정권에게 최소한의 원칙과 도덕성조차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 등 소위 ‘검찰개혁’을 통한 사법부의 독립성 파괴, 나아가 검찰총장에 대한 억지 감찰과 징계 청구 및 직무배제를 통한 사법방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지금, 노동자운동이 민주당의 민주주의 파괴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는 노동자운동에도 가장 핵심적 질문이 될 수밖에 없다.
본 글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와 노동자운동의 태도,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에 대한 평가와 과제, 2021년 노동운동 주요 쟁점의 순서로 집권 하반기 노동자운동의 과제를 다룬다.
문재인 정권의 총체적 실패와 노동자운동의 태도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법 개악을 맞바꾸려는 시도가 한창인 지금, 문재인 정권이 노동권 보장에 실패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농성·집회 등 노동법 개악을 막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실정은 노동법 개악 시도를 훨씬 초과한다. 취임 뒤 3년 6개월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평가할 때 문재인 정권은 경제, 외교, 정치, 노동, 사회정책 등 모든 측면에서 실패했다.
최악의 정권
최저임금 대폭 인상, 일자리 창출과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실패가 가시화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강조한 혁신성장은 박근혜 정부의 투자활성화·규제완화 정책과 차별점이 없다. 소위 ‘4차 산업혁명’ 역시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론’의 다른 판본으로 정체가 불분명하다. 급기야 작년에는 남북평화경제를 통해 일본을 뛰어넘는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황당한 주장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기도 했다. 2020년 7월에는 5년간 160조 원을 사용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한다며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기존 정책에다 디지털 혹은 그린이라는 말을 덧붙인 정책 세트일 뿐으로, 대규모 재정 낭비와 실패가 예견된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의 실패에 대해 세계적 경기침체, 일본의 방해, 코로나19의 영향 등 여러 핑계를 댈 뿐 스스로의 무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평가하지 않는다.
외교 정책은 어떠한가.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실패가 가시화되던 2018년, 정권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했다.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움직여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운전’은 ‘하노이 노딜’이라는 교통사고로 끝났다. 이후 정권은 강제징용 문제를 국내정치에 활용해 위기를 돌파하려 시도했다. 외교협정을 국내법으로 무력화하려는 억지를 통해 반일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면서 지지율을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뿐이었다. 정부는 초기의 강경한 태도에서 외교적 해결을 추구하는 모호한 입장으로 전환했지만, 현재까지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갈등만 낳았을 뿐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한 것이다.
정치 영역에서 문재인 정권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에 일로매진했다. 박근혜 국정 농단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구조적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냈지만, 결과적으로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집권이라는 결과만 남겼다. 집권 후 정권은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은 고사하고 4년 중임제 개헌을 내세우며 대통령 권력 강화를 도모했다. 국회의 비례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된 선거제도 개편은 민주당 의석을 늘리기 위한 도구였음이 확인되었고,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하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립은 삼권분립에 역행하여 검찰의 행정부 종속성을 더 강화할 뿐이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라’며 임명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태도 돌변, 최근 억지 논리로 검찰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를 추진하는 행태에 이르러서는 검찰개혁이 정권 말기 문 정부 핵심인사에 대한 검찰수사를 막겠다는 저열한 의도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세한 내용은 《사회운동포커스》 “검찰총장 직무 배제와 공수처 야당 배제, 문민독재로 가는 9부 능선을 넘어가는가?”를 참고하라.)
노동정책도 간략히 돌아보자. 야심 차게 출발한 ‘노동 존중’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일자리 창출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종료되었다. 최저임금 인상은 애초 목표인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는커녕 소득재분배에도 실패했으며, 산입범위 개편으로 스스로 내세운 원칙도 저버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기관별 협의’라는 정부의 무책임으로 혼란에 빠졌으며 민간부문으로의 확산은 요원해졌다. 핵심 공약이었던 소득주도성장전략과 일자리 창출에 실패한 후, 특히 2019년부터 북핵 문제, 반일 쟁점, 선거제도 개편과 총선, 검찰개혁 등으로 집중점이 옮겨가면서 긍정적 의미의 노동정책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 정도가 현재까지도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조차 노동법 개악과 연동되면서 긍정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실패한 재벌개혁,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과 광범위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사업 등 각종 포퓰리즘 정책,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주식시장의 왜곡,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문재인 정권의 실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장 참담한 것은 김경수-드루킹 선거 조작 스캔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과 부패 스캔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정권 핵심 인사가 연루된 라임·옵티머스 사태, 원전 사건 등을 통해 민주당 정권에 최소한의 원칙과 도덕성조차 없음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노동자운동은 민주당의 총체적 실패에서 자유로운가
새삼스럽게 지난 3년여를 돌아본 것은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첫 번째로, 2021년 정세에서 한국 사회와 노동자에게 결정적 쟁점은 좁은 의미의 노동정책에 있지 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두 번째로, 민주당의 총체적 실패, 나아가서 민주주의 파괴로 달려가고 있는 지금 상황에 노동자운동, 특히 민주노총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가 실패한 후 구성된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는 ‘전태일 3법’ 관철을 위한 투쟁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이는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전 수립된 전략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취약계층의 위기, 특히 휴·폐업으로 인한 강제적 실업에 대응하는 방안은 제출되지 않고 있다.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의 문제의식이 이것이었다고 한다면, 민주노총은 여러 문제를 근거로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폐기했지만 문제를 보완하는 계획은 수립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국회 농성, 총파업과 집회 등으로 노동법 개정안 통과를 저지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에도 역량을 투여하고 있다. 노동법 개정안 저지나 ‘전태일 3법’의 문제의식은 정당하지만 민주노총의 현 정세 개입이 이것들로만 대표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문재인 정부 후반부를 가로지르는 결정적 요소인 검찰개혁과 관련된 여러 쟁점에 대한 입장 없이는 책임 있는 사회세력으로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박근혜 퇴진 촛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참여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민주노총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좁은 의미의 노동권 이슈에만 역량을 쏟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인가. 혹은 현 상황에서 노동법 개정안을 저지하고 ‘전태일 3법’을 통과시키는 것으로 한국 사회의 개혁이 달성된다고 볼 수 있는가.
이는 문재인 정부 지지가 노동자운동의 주류적 경향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 전 시기에서 정권이 권력 강화를 위해 각종 꼼수를 부리고 제도를 형해화하는 것을 지지하거나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과 부패 스캔들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와중에도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고, 청와대 하명수사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중심이 된 드루킹 사건 등 박근혜 정권의 부패·일탈을 능가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당리당략에 따라 패스트트랙이 활용되면서 검경수사권조정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통과될 때에도 이를 지지했다. 결국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으로 휴짓조각이 되었고, 검경수사권 조정은 민주당의 공수처법 통과와 스스로 통과시킨 법에 대한 재개정 시도, 무리한 검찰총장 직무배제와 징계 청구로 이어지며 민주주의 파괴의 결정적 국면에 이르렀다. 비례위성정당 논란에서도 미래통합당에 대해서는 비례위성정당의 정당등록 취소, 미래통합당 정당 해산을 주장했지만, 민주당에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며 비판에 소극적이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자의적 권한 행사를 반복하며 혼란을 자초하는 현재 상황에 이르러서도 어떠한 입장도 피력하지 않고 있다. 민중운동의 전반은 민주당에 의한 민주주의 파괴의 심각성을 비판하기보다 ‘검찰과 윤석열 일당’을 몰아내는 것을 개혁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물론 노동자운동 내에 민주당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정권 초반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중도반단 비판, 현재 노동법 개정안 비판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 역시 민주당의 ‘친노동자적 입장’의 약화를 비판하는데 머무르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포기는 노동정책에서의 우경화가 아니라 근거 없는 경제정책이 실패로 귀결된 것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에 대한 총체적 비판으로 이어지는 쟁점이다. 노동법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인데, 문재인 정권의 노동 공약 자체에 집단적 노사관계 및 노동권 신장에 대한 관점이 부재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를 전반적으로 지지하되, 노동조합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몇몇 쟁점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1년 상반기 지자체 보궐선거(서울, 부산), 하반기 각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 2022년 상반기 대선 및 지방선거가 이어진다. 특히 2020년 말부터 2021년은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차기 정부의 과제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펼쳐질 것이다. 이들 선거는 코로나19 경제위기 시기 한국 사회의 방향에 대한 논쟁과 투쟁,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총체적 평가의 성격을 가진다. 민주노총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일관한 지난 10년과 차별화된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가 보여준 민주노총의 현실
7월 1일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회의’ 노사정 협약식에 민주노총은 불참했다. 23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합의 최종안은 부결되었고, 다음 날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사퇴했다. 애초에 민주노총의 ‘코로나19 원포인트 노사정 비상협의’ 제안으로 노사정 대표회의가 성사되었던 것이기에 우스꽝스럽고도 씁쓸한 결말이다. 스스로 제안한 노사정 대표회의 실패로 민주노총은 사회적 신뢰를 상실했고 코로나19라는 비상한 정세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도 없게 됐다.
이번 임원선거 과정에서 노사정 대화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바탕으로 한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는 노사정 대화를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사정 대화’ 대신 ‘사회적 교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한편 교섭전략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공약이 추가되었는데, 전 집행부의 실패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노사정 대화를 상대화하고 총파업·민중총궐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전 집행부에 대해서는 ‘노동개악에 무기력하고 갈등만 부추겼다’고 평가한다. 두 입장 모두 중요한 쟁점을 회피한다. 전자는 지금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고 교섭의 핵심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제시하지 않은 채 반복적으로 교섭 자체를 추구하고, 후자는 ‘갈등’의 실체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외부의 적을 타격하는 손쉬운 해법인 총파업·총궐기를 제시한다.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적 수준의 대안은 필요하다
이번 경제위기는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장기적·구조적 위기다. 창궐 자체가 단기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염병의 대규모 유행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코로나19 창궐이 끝나더라도 자본주의가 앓고 있는 기저질환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장기적·구조적 위기라는 측면은 이번 사태가 2008~2009년 세계금융위기의 상흔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위기 대응을 위해 미국 등 주요국들이 엄청난 규모로 단행한 양적완화와 재정확장이 회수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위기가 발생했고, 다시금 주요국들은 10년 전을 훨씬 뛰어넘는 양적완화·재정확장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 자체가 언제 사그라들 것인지도 불투명할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 침체가 지속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한편, 경제위기가 늘 그러하지만 코로나19 위기에서는 특히 피해가 차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서, 특히 도소매업과 숙박업 등 특정 업종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국가재정으로 운영되는 공공부문은 민간부문에 비해 상대적 안전지대다. 기업 규모에 따라 위기를 버틸 수 있는 역량에서도 차이가 나고, 상용직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임시·일용직 및 자영업의 피해는 즉각적이다.
따라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유행이 끝난 후 사회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자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수준의 대안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고용과 임금을 지키는 데 주력하면서 사회적 대안은 정부에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대기업·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방향은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를 방관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사회적 대안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산별교섭 및 노정교섭(공공부문)의 역할도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조직범위를 넘어서서 사회 전체적 대안 마련을 주도하는 역할은 총연맹이 맡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제도화된 교섭권이 없는 총연맹이 노사정 대화를 이용하는 것은 전략적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대화와 총파업 사이의 양자택일을 중심으로 쟁점을 형성하면서 사회적 대화의 정세적 필요성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입장은,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기 어렵게 만든다.
실패의 원인, 갈등의 실체는 무엇이었나
코로나19 위기에서 사회적 대화의 정세적 필요성이 있다면,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4월이야말로 그 필요성이 가장 높을 때였다. 1차 유행의 여파로 고용 문제가 본격화되었고, 특히 노조 밖 취약노동의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노총이 3월 코로나19 특별요구안 및 대정부 교섭을 내용으로 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4월 김명환 위원장이 ‘코로나19 원포인트 노사정 비상협의’를 제안할 당시에는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사회적 대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지 않았다. 사회적 대안이 필요한 상황에서 바로 그것을 합의하기 위해 시작된 노사정 대화가 왜 실패했는가.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를 추진했던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규정한다면 이 모든 과정에 대한 평가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쉬운 해결책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김명환 집행부에 있다. 위기에 대응하여 어떤 요구를 해야 할지 준비되지 않은 채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요구안이 불명확했기 때문에 노사정 대화의 목표와 전략에 대해 조직적 합의가 없었음은 당연하다. 당연히 합의안을 만드는 과정도 정부에 종속되었고, 가맹·산하 조직들과 협의하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민주노총 스스로 목표와 전략을 가지고 노사정 대화에 임했다기보다 합의 도출 자체에 목표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명환 집행부가 사회적 대화를 추진한 것이 실패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3월 기자회견에서 기존 민주노총 사업계획에 방역 대책을 포함한 것일 뿐인 요구안이 제출되었고, 게다가 민주노총 내부에서 합의되지도 않은 ‘재난생계소득’이 포함되었음에도 민주노총 내부에서 별다른 논쟁이 되지 않았다. 5월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가 본격화될 때까지 중앙집행위원회 등 공식 의결기구에서 민주노총 요구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요구안 선정 과정에서도 중집의 논의역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결국 ‘정책담당자회의’, ‘교섭지원단회의’를 통해 성안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종요구안은 온갖 요구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노사정 대화 막바지인 6월 26일 9차 중집에 이르러서야 교섭 내용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검토되었다. 중집은 해고금지와 생계소득보장, 전 국민 고용보험제, 상병수당 등 민주노총 3대 핵심 의제를 다시 강하게 제시하자고 결정했지만, 교섭 막바지에 이루어진 결정은 실효성이 없었다. 결국 10차 중집 이후 김명환 위원장이 최종안 추진 의사를 밝히고 민주노총이 협약식 참석을 국무조정실에 통보했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오면서, 야심 차게 시작됐던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는 민주노총 내부의 극심한 갈등으로 귀결되었다.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둘러싼 민주노총 내 논의 과정과 문제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계간사회진보연대》 2020년 가을호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참고하라.)
당시 노사정 대화의 목표가 극심한 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적 대안에 합의하는 것이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 대화가 진행되던 때는 경제충격이 심각하면서 급박했고, 따라서 즉시 실행할 수 있으면서도 위기에 처한 집단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했다. 사회안전망 확충, 고용보험 적용확대와 같은 민주노총의 요구는 이러한 맥락을 반영하려 했으나, 사실 비상한 정세에서 취약노동과 연대한다는 막연한 선언적 수준에 가까웠다. 게다가 전면적 해고금지와 같은 요구는 당장 적용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을 뿐 아니라 휴업·폐업 등 사업체 자체의 존속이 문제가 되면서 발생하는 실업에 적합한 대응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총연맹의 역할을 기업별노조의 공동투쟁을 조직·지원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인식도 일부에서 드러났다. 조합원의 힘을 모아서 투쟁해야 하는데 정부와 교섭하는 것은 ‘합의주의’라는 주장, 개별 기업별 투쟁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총연맹의 권한으로 교섭하는 것이 비민주적이라는 주장, 교섭 결과에 일체의 양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등이다. 그러나 위기는 사회적인데 총연맹의 포괄범위는 제한적인데다 전국적인 교섭구조도 부재한 상황에서, 노사정 대화가 선택할 수 없는 전술이라고 볼 수 없다. 교섭 과정에서 조직의 총의를 민주적으로 모아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중집 등 의결단위의 대표성과 역량, 논의를 회피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이려 했던 집행부의 실기 등 논의 과정 자체를 평가해야 할 일이다. 총연맹 교섭이 개별 기업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 총연맹의 역할은 기업별 노조를 지원하는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총연맹이 교섭하되 일체의 양보는 불가하다는 주장 역시 결과적으로 동일하다. 교섭에서 얻는 것과 얻지 못하는 것, 양보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섭이 성사될 수 없다. 이는 기업별 교섭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교섭의 기준을 기업 단위와 초기업 단위에 다르게 적용하는 것인데, 기업별 투쟁·교섭을 초기업적 투쟁·교섭보다 우위에 두는 이러한 입장이 더 원칙적이거나 더 계급적인 입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리하면, 이번 실패의 원인은 집행부의 지향과 운영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민주노총이 현 시기 무엇을 핵심 목표로 설정해야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역량을 어떻게 모아야 하는가, 민주노총이 역사적으로 견지해온 기업별 노조주의 경향을 지속해야 하는가, 기업별 노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산별·총연맹과 기업노조의 권한과 책임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가, 산별·총연맹의 의사결정구조를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등,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노동자운동 내부의 문제를 평가하고 혁신해야 한다.
노사정 대화 전망과 민주노총의 과제
직선 3기 임원선거 결과에 따라 노사정 대화의 전망도 일정 부분 달라질 것이다. 노사정 대화 재추진을 공약하는 1번 선본이 당선될 경우 민주노총은 노사정 대화 틀을 재구축하려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불과 6개월 전 실패한 노사정 대화 과정을 볼 때, 그리고 노사정 대화 재추진을 공약하는 세력이 (불분명하고 집중점 없는 요구를 가지고 대화 자체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지난 실패에 대해 진지하게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점,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 등 정치 쟁점에 집중하고 있어 노사정 대화가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점 등을 보면 이번 정권에서 노사정 대화가 다시 추진되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정책적 실패를 넘어 권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제도를 파괴하는 최악의 세력임이 분명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상황에서 노사정 대화에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상한 정세에서 사회적 수준의 대안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이 주체적으로 개입하면서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전국적인 총노동 수준의 사회적 교섭을 성사시키고 이를 전제로 산업별 협의를 진행하는 방식은 당분간 어렵다는 점이 확인되었으므로, 산업별 사회적 대화를 병행하고 이러한 경험을 축적하면서 총노동 수준의 사회적 협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제도이자 계급적 투쟁을 조직하는 구심점으로서 민주노총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민주노총 내에서 토론하고 합의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방안을 시기에 맞게 제출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의 극단적 격차를 완화하는데 민주노총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 넘게 극복하지 못한 기업별 노조 중심의 임금 극대화 전략이 노동시장 격차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 오늘날 상층 조직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전체 노동자 평균 이상의 혜택은 우연히 얻게 된 결과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적극적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민주노총이 조직된 노동자를 넘어서 전체 노동자를 포괄한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기업·공공부문 중심으로 조직된 민주노총의 현실에서, 이러한 방향성을 의식적으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기존 관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2021년 노동 부문 주요 쟁점
코로나19 회복기 민주노총의 요구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노동시장은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0년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42.1만 명 감소하여 9월보다 악화했다. 고용률 및 경제활동참가율도 9월 대비 하락했다. 주목할 것은 부문별·고용형태별 차이다. 부문별로는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서 취업자 감소가 두드러진 가운데, 정부 재정이 직접 투입된 공공행정·보건복지 부문은 취업자 수가 증가했다. 고용형태별로는 상용직보다 임시·일용직에서 타격이 더 크며, 자영업 부문은 전반적으로 취업자가 감소한 가운데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대폭 감소한 반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증가했다. 규모별로도 차이가 나는데,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0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 종사자는 5.8% 증가한 반면 300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는 1.3% 감소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2021년 경제성장률을 3.1%로 전망한다. 2020년 –1.1%로 역성장이 예상되는 것과 비교할 때 내년에는 경제가 일정하게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올해 최악의 경제 상황에 따른 기저효과 성장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일 뿐, 2020~2021년 연평균 성장률은 1%로 여전히 정상 성장경로를 하회한다. 이러한 전망조차 2021년 세계 경제가 회복된다고 전제하고 산출한 것으로, 실제로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더 악화할 수 있다. 이미 9월 전망치 3.5%에 비해 11월 전망치는 3.1%로 하향 조정되었다. 노동시장 전망 역시 비슷한데, 「OECD 고용전망 2020」은 한국의 고용률이 2020년 0.6% 하락한 후 2021년 0.5%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며, 실업률은 2020년 하반기 4.8%, 2021년 4.4%로 예상한다. 2019년 실업률이 3.8%였으므로 2021년에도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모두 2차 유행이 없다고 가정한 것으로,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더 악화될 수 있다.
정리하면, 경제 전망과 노동시장 모두 심대한 타격을 입은 가운데 내년에는 코로나19의 여파에서 벗어난다는 가정하에 어느 정도 회복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2020년 최악의 침체에 따른 기저효과로, 경제가 충격을 벗어나 정상궤도에 진입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장기침체라는 구조적 요인은 상존하는 가운데, 적자재정으로 인한 국가부채 증가, 실물경제와 유리된 금융시장 과열이라는 위험요인도 관리해야 한다.
위기는 서비스업, 민간부문, 소규모 사업장, 임시·일용직에서 두드러졌다. 소득격차도 심해졌는데,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월평균소득은 1분위 가구에서 1.1% 감소한 반면 5분위 가구에서 2.6% 증가했다. 위기에서 취약계층이 상대적으로 더 심한 타격을 받았지만, 내년 경제 및 노동시장 상황이 얼마간 호전된다면 반대로 타격을 덜 받은 계층부터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운동은 이 같은 경제와 노동시장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내년 임금 및 사회정책 요구를 정선해야 한다. 부문별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대기업, 공공부문, 상용직, 제조업 중심으로 조직된 민주노총의 특성상, 코로나19 위기의 체감은 상대적으로 낮았던 반면 회복에 대한 체감은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정하게 회복국면으로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타격이 큰 취약계층의 고용·소득을 회복하고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과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제조업 구조조정이 언제든 광범위하게 벌어질 수 있고, 소규모 사업장 중심의 민간서비스업에서는 사회적으로 부각되지 않는 고용위기도 지속될 것이다. 민주노총이 직접 포괄하지 않은 사업장·영역이라도 예의주시하며 대응해야 한다. 지역별로 발생하는 구체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본부와 산별노조 지역지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ILO 핵심협약 비준 및 노조법 개악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을 뿐 아니라 취임 100일을 맞아 발표한 국정과제에서도 확인한 사항이다. 그러나 임기 3년을 훨씬 넘긴 지금까지도 진전이 없다. 정부가 선비준-후입법 대신 선입법-후비준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2019년 경사노위 논의에서도 의제가 ‘협약 비준에 따른 의무 이행 방안’이 아니라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논의’로 설정되었고, 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협약 비준을 대가로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파업 대체인력 투입 허용,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금지 혹은 노조에 의한 부당노동행위 신설 등을 ‘사용자 대항권’이라는 이름으로 주장했다. 결국 경사노위에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합의를 하지 못했고, 공익위원은 협약 비준의 취지에 훨씬 못 미치면서 사용자단체의 요구사항을 일정하게 반영한 합의안을 제출했다. 정부는 공익위원 합의안을 기준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6월 30일 정부가 제출하여 쟁점이 된 노조법 개정안 역시 이 같은 맥락에 있다. 개정된 내용 중 협약 비준과 관련된 내용은 ① 사업장 종사자에 한해서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② 조합원에게만 부여하던 노동조합 임원 자격을 규약으로 정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며, ③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하고, ④ 개별교섭 시 차별대우 금지를 명시하고 교섭단위 분리만 가능하던 것을 통합도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데, ① 조합원을 종사자와 비종사자로 나누어 비종사자에 대해서는 사업장 출입 등 노동조합 활동을 제한하여 협약의 취지에 반한다. 또한 판례를 통해 허용되고 있는 초기업노조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제한하는 독소조항이 될 수도 있다. ② 기업별 노조의 대의원 및 임원 자격을 종사자 조합원으로 제한함으로써, 노동조합 임원 선출은 완전히 자유롭게 하여야 하며 당국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협약의 취지에 반한다. ③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삭제하면서도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실질적 변화는 제한된다. ④ 게다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 노조설립을 사실상 허가제로 만드는 설립신고서 반려 제도 삭제 등, 노조할 권리를 확장하는데 핵심적 부분들은 아예 빠졌다. 이처럼 정부안은 ILO가 제시하는 기준에 상당히 미달하며 실질적인 노동권 개선은 별로 없어 협약 비준이라는 취지를 훼손한다.
게다가 정부는 사용자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른바 ‘사용자 대항권’을 노동법 개정안에 포함했다. 문재인 정부의 ILO 협약 비준 공약이 ‘핵심협약 비준을 통한 노동권 신장’이 아니라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문제 해결’이라는 점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종사자 조합원의 노동조합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었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에 대해서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의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특히 ‘전부 또는 일부’라는 규정을 넣음으로써 사업장 내 피케팅, 현장 순회, 대체인력 투입 저지 등 현행법제에서 인정되는 쟁의행위까지 불법화했는데, 이는 공익위원안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늘린 것 역시 사용자단체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정기국회 내에서 노조법 개정안과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함께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11월 4일 노조법 개정안 저지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국회 농성에 돌입했으며, 25일 총파업과 함께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국노총도 지난 30일 같은 취지의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노조법 개정안이 ‘친노동적’이라는 이유로 역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핵심적으로는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에 반발하면서, 만약 협약 비준을 위해 허용이 불가피하다면 파업 대체인력 투입 허용과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금지, 혹은 노조에 의한 부당노동행위 신설이 추가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10월 7일 민주당 안호영 의원은 정부 개정안에서 임원 자격 제한을 삭제하고 설립신고서 반려 제도를 삭제하는 등 협약 비준의 취지에 조금 더 가까운 별도의 법안을 제출했다.
민주당은 12월 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개최하여 두 법안을 심사하고,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노동계와 재계가 모두 반대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다음 회기로 넘기는 방안도 고려하는 가운데, 3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번 회기 통과가 무산되고 다음 회기로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정부 및 여당의 선입법-후비준 기조, 그리고 ILO 핵심협약 비준의 반대급부로 ‘사용자 대항권’이 일정하게 관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유럽연합(EU)이 한EU FTA 제13.4조 3항 위반을 이유로 분쟁 절차를 개시했기 때문에 협약비준을 마냥 미룰 수도 없다. 따라서 노조법 개정 문제는 제출된 정부안을 기본으로 내년까지 지속적으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운동은 ILO 핵심협약을 선비준하고 거기에 맞게 입법과제를 도출하여 현실화하는 방향, 그리고 ‘사용자 대항권’이 ILO 핵심협약 비준의 거래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투쟁해야 한다.
항공산업 구조조정
제조업 고용위기 속에서 산업 구조조정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조선업에서는 구조조정이 상당히 진행된 가운데, 지난해 3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합병 본 계약이 체결되어 진행 중이다. EU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가 관건인 가운데 인수·합병 절차는 올해를 넘길 것으로 예측된다. 민주노총은 현대중공업의 법인 분할 및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총수 일가에 대한 특혜라는 점과, 분할된 현대중공업의 경영구조 악화와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인한 구조조정 우려를 제기하며 투쟁에 나섰다. 정부는 연내 공정거래위원회의 인수·합병 승인 심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인데, 내년 중 합병이 마무리된다면 이후 구조조정 쟁점이 다시 한번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대우조선해양 문제가 구조적·장기적 경제위기에 따른 제조업 구조조정 문제라면, 최근 이스타항공 및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문제로 뜨거운 항공산업 구조조정은 코로나19라는 정세적 요인으로 촉발된 것이다. 규제완화와 과잉공급으로 위기 가능성이 상존하던 항공 산업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항공사들이 연쇄적으로 위기를 맞은 것이다. 지난 3월 항공기 운항을 전면 중단한 이스타항공에서는 1,600여 명의 노동자 중 1,200명이 정리해고, 희망퇴직 등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제주항공으로의 매각이 무산된 후 재매각이 불투명한 데다 정부 지원도 없어 지속가능성이 문제다. 아시아나항공은 2019년 말 HDC현대산업개발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매각 작업을 진행했으나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무산되었고, 최근 대한항공과의 합병이 추진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둘러싼 쟁점은 복합적이다. 우선 산업은행의 무책임한 대응이 문제다. 부채비율이 2,300%, 자본잠식률이 56%에 달하고, 1년 내 갚아야 할 부채만 5조 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거시적인 산업정책을 가지고 개입하여 정상화 과정을 밟아나갔어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갈등을 회피하면서 무능한 대응으로 일관하다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급하게 매각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산업은행을 포함하는 정부의 무능이 다시 한번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산업은행의 상황과,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잡아야 하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대한항공으로의 매각이 성사되었다. 한진칼이 2조 5,000억 원 규모로 유상증자를 하는데 한진칼이 7,300억 원 규모로 참여하고 산업은행은 한진칼에 8,000억 원을 지원하는 것이 이번 매각 작업의 개요다. 대한항공이 증자하면 이 중 1조 원은 대한항공 채무를 상환하고, 나머지 1조 5,000억 원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대금으로 사용되는데, 한진칼이 대한항공에 지원하는 7,300억 원 중 4,400억 원만이 아시아나항공에 투입된다. 결국 산업은행이 지원하는 8,000억 원 중 3,600억 원은 한진칼에 대한 지원이 되는 셈이다. 과정에서 한진칼이 대한항공을 지배하고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지배하는 수직구조가 완성되고, 산업은행의 한진칼 지분은 조원태의 우호지분으로 작용하여 경영권 확보에 도움을 주게 된다. 결국 조원태 일가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대가로 산업은행의 막대한 지원을 받음과 동시에 경영권 확보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산업은행이 재벌 총수 일가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다.
한편 합병에는 항공산업 구조조정이라는 측면도 있다. 항공산업은 규제완화에 따른 공급과잉과 노선중복, 수요 증가 한계, 낮은 수익성과 불건전한 재무구조, 만연한 외주화와 다단계 하청, 인력 부족과 장시간 노동 등 복합적 문제를 안고 있다. 코로나19로 항공산업이 궤멸적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것은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1국적사 체제로 만들면서 산업 재편을 도모하는 것도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항공산업의 공급과잉 문제는 언젠가 정리해야 하는 문제였으며, 이미 항공산업에는 막대한 국가재정이 투입되어 있기도 하다. 다만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나항공이 2020년 2분기부터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한진칼에 특혜를 주면서까지 급하게 매각을 추진했어야 하는가 하는 점, 아시아나항공의 경영난이 아시아나항공 자체에만 있다기보다 상당 부분 금호그룹의 무리한 경영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총수 일가가 실질적 책임을 피해갔다는 점, 그리고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리스크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투자합의서에 명시된 7대 의무조항이 리스크 관리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쟁점이다.
대한항공으로의 통합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문제가 당장은 대두되지 않을 것이다. 9월 HDC현대산업개발로의 합병이 무산되면서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에 최대 2조 4,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그에 따라 기간산업안정기금 2,400억 원을 이미 지원했기 때문이다. 지원 조건에 따라 내년 4월까지 현재 고용 인원의 90% 이상이 유지돼야 한다. 고용 유지 조건이 아니더라도 실제 합병이 마무리되는 것은 내년 이후일 것이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당장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동일 부문에서의 인수·합병이라는 특성상 언젠가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은행은 중복 인력을 700~1,0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나 양사 모두 경영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 외에 저가항공사 3사(에어부산, 에어서울, 진에어)의 통합, 항공 정비 부문과 한국항공서비스(주) 통합, IT부문 통합 등까지 고려하면 실제 구조조정이 시도되는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노동조합이 이 과정에 개입하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6개 관련 노동조합 사이에서 합병 자체에 대해 통일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매각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한진칼이 합의한 사항 중 노동조합의 개입을 가능케 한 조항도 없다. 또한 기업별 노동조합의 특성상 합병 이후 인력 구조조정 문제가 현실화될 경우 이 쟁점에 역량이 집중될 가능성도 높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항공산업의 복합적 문제를 고려하면 인력 구조조정을 넘어서는 항공산업 재편 전반에 대해 노동조합이 입장을 가지고 개입할 필요가 있다. 과정에서 관련 산별노조 및 총연맹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기본이 되어야 하고, 산업기반을 유지하는 정부 지원도 적절하게 요구해야 한다.
한편 항공산업에 극단화·일반화되어 있는 외주화와 다단계 하청이라는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노동운동에는 장기적으로 더 중요할 수 있다. 고용 축소에 집중하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다단계 하청 착취 구조를 바꾸어 원청이 책임지는, 전혀 다른 의미의 구조조정을 정부 지원 조건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부문에서 고용을 늘리라는 요구도 필요하다. 예컨대 지상조업 부문은 애초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늘어난 시설만큼 인원이 충원되지 않아 용량 확대가 한계적이었고 감염병으로 인한 소독·청소 기준 변경에 따라 인원이 더 투입되어야 산업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이사회 참여 혹은 산별교섭에 준하는 교섭 형태를 추진하면서 이 같은 쟁점을 제기하고 합병이 조원태 일가에 대한 특혜로 귀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직무급 도입을 목표로 하는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했다. 2019년 11월 경사노위 산하에 ‘공공기관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임금(보수)체계 개편 논의’를 의제로 채택했고, 지난 11월 25일 “공공기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합의”를 도출했다. 공공기관 임금체계 관련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객관적 직무가치가 임금에 반영되는 임금(보수)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한다. ② 직무 중심 임금(보수)체계 개편은 획일적·일방적 방식이 아닌 기관별 특성을 반영하여 개별 공공기관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추진한다. ③ 지속가능한 공공기관 임금제도 관련 후속 논의를 위한 노정대화를 지속한다.
공공운수노조는 합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첫째, 양극화·격차 해소와 산별교섭·노정교섭을 통한 초기업 임금체계로의 발전이라는 원칙과 방향이 담겨있지 않다. 둘째, 후속 논의를 위한 노정대화는 경사노위를 전제로 하므로 민주노총이 배제된다. 셋째, 한국노총 3개 산별연맹이 참가한 합의일 뿐으로 ‘사회적 합의’가 아니다.
정부가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은 공공부문·대기업에서 주류적인 기존의 연공급 체계가 지속적인 임금 인상을 불러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인건비 부담을 준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공공부문 전체에 적용되는 초기업적 임금체계를 구축하는 대신 기관별로 직무급제를 도입하려 한다. 공공기관위원회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기재부는 경영평가 배점을 통해 개입하는 등 기관별 직무급 도입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스스로 명분으로 내세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어긋날뿐더러 공공기관 간 임금 격차를 축소하지 못하고 민간부문으로 확산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지도 못한다. 기관별 직무급 도입이 추진되고 그 결과 기관별로 임금수준이 일정하게 제한된다면, 해당 공공기관은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거나 기관장이 자신의 경영능력을 대외에 인정받으려고 여유분을 부채상환이나 성과 보상에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부문 고용을 늘리거나 노동시장 표준을 세우는 긍정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은 본래 의미의 직무급에도 한참 미달하는 부실한 정책이다.
정부의 직무급 추진을 어떤 방식으로 비판하고 어떤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 기업별 투쟁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노조운동의 역사가 우리 사회의 극단화된 임금 격차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반성적으로 평가한다면 공공기관 내부의, 공공기관 사이의, 공공-민간 사이의 임금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임금 수준을 단계적으로 조정해나가야 한다. 만성화된 경제위기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위기의 불균등은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더욱 확대한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러하다. 공공부문 임금체계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이를 전체로 확산시키자는 입장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주장은 현실의 임금 격차를 그대로 방치하는 알리바이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공공기관의 연공급제와 그 결과인 임금 수준을 사회 전체에 적용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인식한다면 공공부문 노동운동은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을 기관별로 도입하려 한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임금 격차 완화라는 목표하에 공공기관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초기업적 임금체계 구축을 시도해야 한다. 이러한 초기업 임금 표준을 만드는 과정이 노정교섭·산별교섭 구조 형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공기관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초기업적 임금체계 구축’이 쟁점이 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합의안에 ‘기관별 특성을 반영하여 개별 공공기관 노사합의를 통해’ 추진한다는 문구가 담기는 과정에서 노동계와 정부 사이에 쟁점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합의 과정에서 기재부는 기관별로 직무급 요소를 도입하면서 임금 수준을 일정하게 억제하는 입장, 한국노총은 초기업적 임금체계 형성으로 나아가기보다 직무급 요소를 일정하게 받아들이면서 기관별 합의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입장, 민주노총은 임금 수준·임금체계 모두에서 현상 유지를 목표로 임금체계 개편에 저항하겠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컨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기재부의 부적절한 임금체계 개편 시도를 제대로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정부는 합의안을 바탕으로 기관별로 직무급 요소를 도입하려 시도할 것이고, 민주노총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재부가 추진하는 직무급제 도입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저지 투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주류적 입장이 연공급 임금체계 개편은 어떤 것이든 임금 불안정성을 높이니 반대한다는 것에 머무른다면,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공공부문 내 임금 격차를 완화하고 나아가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데 긍정적 계기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데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노총은 애초 공공기관위원회에서 임금체계 논의를 거부하자는 입장이었고, 막상 논의가 진행되면서는 기관별 임금체계 개편에 합의하면서 공공기관별로 각자 기득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기재부와 합의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업별 노조의 경제적 이해를 사수하는 데 목표를 둔 것이다. 그러나 공공운수노조는 양극화·임금 격차 축소를 목표로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채택한 바 있고, 이 같은 입장에서 공공기관위원회 임금체계 관련 논의에 개입해왔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민주노총 내 공공부문 노조들이 초기업적 임금체계 형성이라는 목표에 합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경사노위 합의와 기재부의 직무급제 도입 시도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공공부문 임금 수준·임금체계·임금 결정 과정에 대해 풍부한 논의를 해나간다면, 기업별 임금체계를 사수하는데 매몰되는 대신 초기업적 임금체계 형성을 시도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극단화된 임금 격차를 줄여나가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정부는 초기 일자리 130만 개를 창출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한편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저녁이 있는 삶’을 일반화하며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경제성장과 소득재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는 종합적 노동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때그때 터지는 위기에 대한 단기적 대응으로 산업구조조정을 처리하고 있고, 노동법 개정은 노동권 신장이라는 방향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요 공약이었던 ILO 핵심협약 비준에 종속된 것이다. 탄력근로제 확대 시도 역시 노동시간 단축을 되돌리는 것으로 초기 노동정책의 실패를 수습하는 방편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나마 거시적 계획으로 제출된 것은 지난 7월 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이다. (이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사회운동포커스》 “한국판 뉴딜, 160조원짜리 대국민 사기극!”을 참고하라.)
노동정책 측면에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의 핵심은 5년간 재정 160조 원을 투입해서 일자리 19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디지털 뉴딜’로 90만 개, ‘그린 뉴딜’로 66만 개, ‘안전망 강화’로 34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을 제시한다. 각 분야에서 제시된 구체적 사업의 부작용도 문제지만 우선 일자리 현실성이 문제다. 분야마다 창출되는 일자리 숫자가 제시되는데, 정작 창출 계획과 근거는 부실하다. 예컨대 ‘디지털 신제품·서비스 창출 및 우리 경제의 생산성 제고를 위해 전 산업의 데이터·5G·AI 활용·융합 가속화를 통해 일자리 56.7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식이다. 게다가 사업은 장기 지속될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거나 기술혁신을 위한 중장기 투자가 아니라 대부분 단기성 사업에 치중되어 있다. 예컨대 ‘전국 초중고 교실에 고성능 와이파이 100% 구축’, ‘건강 취약계층 12만 명, 만성질환자 20만 명 대상 웨어러블 기기 보급’, ‘중소기업 원격근무 확산을 위해 주요 거점에 공동 활용 화상회의실 구축’, ‘공공건물에 친환경·에너지 고효율 건물 신축·리모델링’ 등이다.
이 같은 정책은 이미 실패한 일자리 131만 개 창출 공약과 유사하다. 당시 정부는 “강바닥에 쏟아부은 국가예산 22조 원이면 연봉 2,200만 원짜리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들 수 있다”면서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고, 주52시간 법정노동시간 준수, 근로시간 특례제도 폐지, 연차휴가 의무소진을 통해 50만 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산업적 구조나 경제적 근거에 대한 검토 없이 정부 재정을 투여하거나 제도를 바꿈으로써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자리 창출은커녕 사회서비스 재공영화, 노동시간 단축, 근로시간 특례제도 폐지 등 공약한 제도적 개선에도 실패했다.
이번 정책 역시 디지털 산업이 일자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에 대해 맹목이고, 정부 재정을 직접 투입해서 단기적인 일자리 정책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성과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재정을 투입하여 내수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유지·확대하는 것, 그리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 상당수는 뉴딜로 포장되기 전에도 이미 존재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은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으로 대전환’한다는 거창한 포부와는 달리 경제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일반적인 경기부양책 이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객관적 인식 속에서 정세를 주도해야
서술한 바와 같이 집권 민주당은 경제·정치·외교 등 모든 부문에서 실패하고 있다. 위기 시기 산업 구조조정의 책임을 회피하고,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사업장별 임금 삭감만을 추구하는 근시안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며,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으로 대표되는 정권 후반기 고용정책 역시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오류를 반복하는 과장된 일자리 창출 전략일 뿐이다. 노조법 개정, 탄력근로제 도입이 현실화된다면 노동자의 단결할 권리가 제한되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심화하여 취약계층의 상태는 더욱 나빠질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현안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사회 개혁을 추동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와 같이 민주당을 활용하거나 연대·연합하는 반보수전선은 시효 만료했고, 그렇다고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이 대안이 될 수도 없다.
2021년 상반기 지자체 보궐선거, 하반기 각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 2022년 상반기 대선 및 지방선거로 이어지는 국면은 민주노총의 중장기적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토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직선 3기 임원선거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오래된 논쟁 구도를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백신 개발 등으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어느 정도 성공한다면 내년에는 약간의 경기반등이 있을 수도 있는데, 위기가 끝났다는 판단 속에서 민주노총이 다시 임금투쟁에 매몰될 위험도 있다. 만약 민주당의 재집권이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 국면에 돌입하면, 다시금 ‘민주연합전선’이 노동자 사회운동을 압도할 위험도 상당하다.
총체적 난국 속에서 노동자운동에게 2017년 이후 현재까지 민주당 정권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요구된다. 박근혜 정권이 퇴진하고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 3년여가 지난 지금,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는 좌절되었고 민주당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 노동자운동의 실천에 대한 근본적 반성 없이는 지금과 똑같은 결과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