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위태로운 승리와 유예된 위기
미국은 분열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극복할 수 있을까
현지 시간 2020년 11월 3일에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바이든은 선거인단 306명을 확보해 최종 당선되었다. 득표는 바이든 약 8,000만 표(지지율 51%), 트럼프가 약 7,400만 표(지지율 47.1%)를 획득했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평가받았던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현직 트럼프 후보를 꺾었다.
트럼프 후보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미 예고했듯 대선 패배를 승복하지 않았고, 이에 미국 대선의 전통인 패자의 승복 선언을 통한 당선 확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트럼프는 여전히 바이든이 8,000만 표를 득표했을 리가 없다며 선거가 총체적인 사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두 달여 남은 임기 동안 그의 권력을 활용한 정적에 대한 피의 복수가 이뤄지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선 패배 직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 국방부 고위직을 교체한 데 이어 미국 국토안보부 사이버안보·기간시설 안보국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크레브스 국장 등 고위인사를 차례로 경질했다. 이 밖에도 국방정책위원회 등 외교 안보기관의 인사들에 대한 이른바 ‘숙청’을 단행했다.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새 대통령의 취임까지 행정부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한으로 유지해 기존의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멕시코 간 국경장벽 건설이 대표적인 예다. 바이든은 건설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남은 기간 트럼프는 건설을 최대한으로 진행시키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선거 전의 비관적 예측처럼 대선불복을 쟁점으로 하는 대규모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지는 않고 있다. 트럼프 역시 11월 23일에 연방총무청에 정권이양 작업에 협조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11월 26일에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한다면 백악관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여전히 대선 패배에 불복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승복 선언에 가장 가까운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12월 14일 선거인단 투표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대통령 취임일인 2021년 1월 20일까지는 불안한 정국이 계속될 수도 있다.
실제로 거대한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히 스스로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자랑스러워하던 미국에서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모습이 이어지고, 그로 인한 폭력사태를 우려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여 미국 민주주의의 쇠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번 대선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요소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120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66.9%)뿐이라는 자조 섞인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이 신승을 거두었으나, 미국 국민이 바이든을 전폭적으로, 확고히 신임했다고 말할 수 없다. 선거 전에는 상원이 민주당 다수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상되었으나, 이러한 예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나아가 민주당은 하원에서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나 지난 선거에 비해 의석을 잃었고, 공화당 의석은 늘었다. 현재 주지사와 주 입법부도 거의 균등하게 두 정당으로 나뉘어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가 정당 시스템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정적 선거, 또는 재편성 선거라고 볼 수 없다. 즉 미국의 정치지형은 여전히 매우 유동적이고, 이른바 ‘트럼프주의’는 아직도 폭발력을 잃지 않았다.
1. 대선 투표 결과 분석
2020년 대선은 120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에 바이든은 약 8,000만 표를 획득, 역대 최다 득표 당선자가 되었다. 반면 트럼프는 약 7,400만 표를 획득해 역시 역대 최다 득표 낙선자가 되었다. 미국 역사상 대선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 2위가 트럼프고 1위가 바이든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트럼프가 얻은 표다. 그는 2016년의 6,600만 표와 비교해 약 800만 표를 더 획득했다. 2017년 임기 시작부터 4년간 탄핵 사건, 탈세와 같은 부패 스캔들, 무엇보다 세계 1위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 있는 코로나19 대응의 끔찍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4년 전보다 더 많은 표를 획득했다.
사실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 트럼프 재임 3년간 연평균 2%의 경제성장을 이뤘고 수치로 나타난 경제실적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재선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과거 선거를 되돌아볼 때 임기 말년에 경제실적이 좋은 경우 대부분 재선에 성공한다는 데이터도 있었다. 2월만 해도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가 부정평가에 비해 높았고 (예를 들어 미국 에머슨 대학 조사에 따르면 48% 대 44%였다), 버니 샌더스를 제외하고는 모든 민주당 대선 후보와 대결에서 승리한다고 나왔다.
그런데 코로나19 위기가 터진 후 점차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낮게 보는 분석이 많아졌다. 바이든이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가 된 3월부터 점차 비등하다가, 7월의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 확실한 우위를 점한 후로는 뒤집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율, 즉 30% 후반, 40% 초반의 지지율이 무너진 적은 없었다. 코로나19 위기로 트럼프가 타격을 받았지만 그의 핵심 지지층은 거의 이탈하지 않았고, 결국 대선 지지율이 47%대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코로나19 방역 실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엄청난 선전을 펼친 셈이다.
1) 백인 유권자 지지층의 이동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유력 언론매체에서는 백인 유권자층의 바이든에 대한 지지율 상승에 주목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백인 유권자의 지지는 38%였던 반면 2020년 바이든에 대한 백인 유권자의 지지는 41%로 증가했다.
백인 유권자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할 요인은 교육수준이다. 백인의 지지율 이동에 대해 크게 대졸 이상과 그 미만을 나눠서 볼 때, 유의미한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우선 백인 대졸자 남성의 경우 2016년에는 민주당 지지율이 43%, 공화당 지지율이 57%였다가 2020년에는 각각 48.5% 대 51.5%까지 좁혀졌다. 백인 대졸 여성의 경우는 이 수치가 민주당 53.5% 대 공화당 46.5%에서 각각 54.5% 대 45.5%로 민주당 지지가 소폭 증가했다. 반면 전국적 지지율에서 대학학위 미만의 백인 여성 유권자에서는 2016년과 비교해 지지율 격차의 변화가 없었으며(민주당 36.5%, 공화당 63.5%로 공화당 우위) 백인 남성의 경우 민주당 지지가 다소 증가했으나(민주당 26%, 공화당 74%→민주당 29%, 공화당 71%) 여전히 공화당이 큰 폭으로 우위를 점했다.
이번 대선에서 중요했던 러스트 벨트에 속한 3개의 경합주(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의 상황을 좀 더 살펴보자. 우선 세 주 모두에서 백인 대졸 엘리트층의 지지율은 남녀 모두에서 2016년에 비해 민주당으로의 이동이 나타났고, 특히 펜실베이니아의 대졸 백인 남성(민주당 41.5%, 공화당 58.8%→민주당 49%, 공화당 51%), 미시간의 대졸 백인 여성(민주당 47%, 공화당 53%→민주당 60%, 공화당 40%), 대졸 백인 남성(민주당 39%, 공화당 61%→민주당 46%, 공화당 54%)에서 민주당 지지율 상승이 두드러졌다.
교육수준이 높은 백인 엘리트층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될 때부터 민주당의 핵심적인 지지층으로 여겨졌다. 2020년에도 이들의 지지세는 유지되거나 더욱 강하게 민주당으로 결집했다. 이번에 더욱 강한 결집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서 높은 교육수준을 요구하는 직업은 자동화로 인한 대체 위험이 낮은, 즉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이다. 한편 코로나19 대유행 동안에 낮은 실업률을 기록한 지역에서는 대체로 바이든을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를 종합해보면 바이든을 지지한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층은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경제적 타격이 적었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 유권자 사이에서 경제회복보다는 코로나19 방역이 우선이라 응답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는 민주당의 정책 우선순위와도 일치하므로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이 민주당으로 더욱 강하게 결집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음으로 대학 미만의 백인 유권자층을 살펴보자. 그들의 경우 전국적 수준에서는 2016년 대선과 비교하여 거의 변화가 없었다. 즉 여전히 이들 유권자층은 공화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러스트 벨트의 경합주에서는 주목할 만한 이동이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위스콘신의 경우 2016년과 비교해 2020년 대학 미만 백인 여성 지지율에서 공화당의 우위는 민주당 42%, 공화당 58%에서 민주당 47.5%, 공화당 52.5%로 감소했고, 대졸 백인 남성의 경우는 민주당 30%, 공화당 70%에서 민주당 36.5%, 공화당 63.5%로 감소했다. 미시간 역시 대학 미만 백인 남성의 경우 민주당 28%, 공화당 72%에서 민주당 35%, 공화당 65%로 공화당 우위가 감소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펜실베이니아의 경우 5만 달러 이하의 소득을 가진 유권자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지지율이 각각 59%대 39%로 바이든이 20%포인트 앞섰다는 출구조사도 있었다. 이번 대선의 경우 대체로 전국적인 수준의 출구조사에서는 소득수준에 따른 정치성향의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펜실베이니아의 출구조사 결과는 이례적이다.
러스트 벨트의 경합주에서 바이든이 거둔 승리가 대선 승리에 결정적이었던 만큼 여기서 나타난 양상에 대해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선거캠프는 트럼프와 비교하여 ‘시골 스크랜턴 출신의 바이든과 대도시 뉴욕 파크애비뉴의 트럼프의 대결’이라고 강조해왔는데, 서민과 중산층 유권자의 표심을 공략하는 이 선전전략이 통했다고 분석하는 다수의 언론 보도가 있다.
러스트 벨트의 백인들이 지난 2016년에는 북부 공업지대를 되살리겠다는 트럼프에 지지를 보냈지만 그들은 코로나19 위기로 일자리를 상실했다. 바이든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그는 트럼프처럼 리쇼어링의 필요성을 주장함으로써 러스트 벨트를 지원하는 정책이 유지되리라 시사했다. 다만 바이든의 리쇼어링 정책은 트럼프와는 달리 제조업을 본국으로 되돌리는 게 아니라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할 경우 징벌적 세금을 부과해 해외이전을 막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바이든은 도로, 교량, 에너지 등 인프라 건설 사업, 특히 청정에너지 정책까지도 일자리 창출과 연결시켰다. 2030년까지 버스의 탄소배출 제로시대를 위해 자동차 분야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자동차산업은 러스트 벨트의 주요 산업이다.)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으로서 전국적으로 50만 개의 전기차 충전소를 만들겠다고도 말했다. 이렇듯 기후위기 대응책을 단순히 먹고살 만한 사람들의 환경의제가 아니라 경제정책으로 확장해 설득력을 높이고자 했다.
또한 경제회복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기업가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한다는 맥락에서 트럼프의 감세정책을 비판하고 법인세 인상을 약속했다. 특히 그는 트럼프의 감세정책이 개인소득 상위 1%에게 부가 흘러가게 했다면서 소득 40만 달러 이하의 사람에게는 증세하지 않는 대신 특히 상위 1% 계층의 소득세율을 다시 인상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세수를 중산층의 교육, 일자리 창출에 쓰겠다고 했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바이든의 캠페인이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층을 제대로 공략했고 이것이 승리를 이끈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2) 비백인 유권자에 대한 분석
비백인 유권자의 경우 대체로 투표율의 상승에 포커스를 둔다. 이는 트럼프 임기 4년 내내 계속된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 반이민정책, 2020년 여름에 있었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운동이 큰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겠다.
비백인의 투표율 증가에 대한 한 분석에 따르면 라틴계 유권자의 투표율 증가가 유례없는 수준이었는데,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63%, 약 800만 명이 늘어났다. 그다음으로 흑인 투표 참여자는 20%, 아시아계 투표 참여자는 16%가 증가했고, 백인 투표 참여자는 6%에 조금 못 미치게 증가했다. 이렇게 라틴계 유권자들이 유례없이 투표에 많이 참여한 이유는 코로나19 위기가 다른 어떤 그룹보다 그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라틴계에 대한 트럼프의 혐오발언, 반이민 정책 역시 한 이유였다.
그런데 트럼프에 대한 라틴계의 지지율은 다소나마 오히려 상승했다. 2016년과 비교해 라틴계 남성의 경우는 32%에서 36%로, 라틴계 여성은 25%에서 28%로 각각 상승했다. 흑인의 경우도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2016년의 8%에서 12%로 증가했다. 선거 전에는 비백인 유권자의 투표율과 함께 바이든 지지율도 올라가리라 예상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두고 여러 의견이 분분했다. 코로나19 위기가 비백인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했는데, 트럼프 측이 낮은 실업률이라는 경제적 성과를 이들에게 전략적으로 선전했고, 이러한 선전이 얼마간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도 있다. 또 한편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가 전개될 때,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인종차별적 언사를 덜 사용하고 ‘법과 질서’와 같은 담론을 더 사용한 게 조금이나마 유효했다는 평도 있다. 또한 라틴계의 지지율 상승과 관련해서는 플로리다의 쿠바, 베네수엘라 공동체의 사례에 대한 언급도 있다. 즉 특정한 남미 출신 공동체가 트럼프의 반(反)사회주의적 선동에 호응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트럼프에 대한 라틴계 투표 참여자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했다고 해도 여전히 바이든을 더 많이 지지했다. (바이든 지지 65%, 트럼프 지지 32%.) 게다가 위에서 인용한 후안 곤잘레스에 따르면, 더 중요한 사실은 라틴계 유권자의 투표 참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절대적인 표수가 증가했고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소폭 상승했다고 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라틴계 유권자의 절대적 표수가 바이든으로 결집했기 때문에 바이든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흑인 유권자들에 대한 분석도 비슷하다. 러스트 벨트의 경합주들, 끝까지 접전을 펼친 조지아 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시간 주 민주당 유권자의 20%가 흑인이고(주 전체 인구의 14%가 흑인), 펜실베이니아 주 민주당 유권자의 21%가 흑인이었다(주 전체 인구 12%가 흑인). 조지아 주의 경우 민주당 유권자의 50% 이상이 흑인이었다(주 전체 인구의 33%가 흑인). 이런 주들에서 흑인은 대부분 도심에 거주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교외지역에서 흑인 유권자의 영향력이 발휘되었다. 대표적으로 조지아 주의 경우 교외지역 대부분에서 백인 인구가 감소하고 흑인 인구가 증가했는데, 이로 인해 조지아 주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주였음에도 경합주 상태에 근접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흑인 유권자들이 민주당으로 결집했기 때문에 바이든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다. (즉 0.25%, 1만 2천 표차 승리.)
이러한 비백인 유권자들의 투표율 증가와 관련해서 미국 진보진영에서는 비백인 유권자를 위한 풀뿌리 운동의 기여에 대해 분석하기도 한다.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주별로 비백인의 투표 참여를 제한하는 인종주의적 선거제도에 대해 폭로하고, 비백인 유권자의 투표참여를 도와 투표율 제고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지아다. 조지아 주의 비영리 단체 ‘조지아 스탠드업’은 비백인 유권자들의 정치참여를 돕는 활동부터 교통, 주거 및 기타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이곳에서는 지난 여름에 일어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에서도 행진할 때 유권자 등록을 위한 QR코드를 그들의 티셔츠에 새겨 투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또 조지아 주의 민주당 의원인 스테이시 아브람스는 2018년 ‘페어 파이트’(Fair Fight)라는 투표권 단체를 설립했는데, 이 단체는 조지아 주의 선거정책이 비백인 유권자들에 불균형적이었음을 폭로하고 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외에도 비백인 유권자에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직접 투표장에 데려다주는 활동을 벌였다. 이들 외에도 ‘워킹 패밀리 파티’(Working Families Party), ‘조지아 인민의제연합’(GCPA) 등 여러 단체가 함께 유권자 등록, 교육 캠페인, 시민참여와 관련한 활동을 벌였다. 조지아 주 외에 다른 주의 사례도 존재한다. 펜실베이니아 주의 ‘펜실베이니아 스탠드업’은 펜실베이니아 주 내의 각 지역 지부를 통해 비백인 유권자들과 다양한 방면에서 교류하고 투표를 조직했다. 이들과 함께 한 어떤 단체는 250만 건의 전화를 걸고 200만 건의 문자를 보내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바이든과 해리스에 투표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애리조나에서도 반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라틴계 유권자들의 투표참여를 독려하여 애리조나에서 바이든의 승리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런 운동들 역시 바이든 당선의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3) 교육수준 외 요인별 선거결과 분석
앞서 백인 유권자의 지지율 이동을 주로 교육수준을 기준으로 삼아 살폈다. 이번에는 교육수준 외의 요인별로 선거 결과를 분석한다. 이 부분에서는 인종을 나눠서 분석하지는 않는다.
우선 연령대별 지지율의 경우는 18-29세 구간에서는 바이든이 60%, 트럼프가 36%의 지지를 받았다. 30-44세 구간에서는 바이든이 소폭 앞섰고, 45세 이상에서는 트럼프가 소폭 앞서는 모양새였다.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에 대한 젊은 층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의 젊은 유권자 중에 샌더스 의원에 대한 지지가 많음을 고려한다면 샌더스에 대한 지지와도 맞물린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 샌더스 지지자 중 아주 적지 않은 인원이 투표하지 않거나 제3당에 투표하여 결과적으로 민주당으로의 결집에 실패했다. 그것이 트럼프 집권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고 여긴 이들은 이번에는 그런 사태를 막고자 민주당으로 결집을 선택했다. 샌더스가 적극적으로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로 지리적 위치가 투표 성향과 관계가 있었다. 대체로 도시 중심부 거주 유권자는 바이든을 지지했고 시골지역 거주 유권자는 트럼프를 지지했다. 인구 5만 명 혹은 그 이상의 도심에서 거주하는 인구 중에서는 바이든을 60%, 트럼프를 38% 지지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교외지역에서는 50%대 48%로 엇비슷했고, 소도시 또는 시골에 거주하는 경우 바이든에 대한 지지율은 42%,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은 57%로 나타났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와 트럼프는 각각 대도시 지지율 59% 대 35%, 교외지역 지지율 45% 대 50%, 소도시 또는 시골지역 지지율 34% 대 62%를 기록했다. 이와 비교했을 때, 결정적인 차이는 교외지역 유권자 지지율에서 역전된 것이었다. 교외지역에서 2016년 트럼프는 힐러리 후보에게 120만 표 우위를 점했었지만 2020년에는 오히려 바이든이 61만 표의 우위를 가져갔다. 이런 움직임은 러스트벨트의 3개 경합주와 선벨트에서도 포착되었다. 미시간에서는 교외지역 유권자의 경우, 민주당 지지율에서 공화당 지지율을 뺀 차이가 2016년 –7%에서 0%로 줄어들었고 펜실베이니아에서도 공화당 우위가 줄어들었다. 위스콘신에서는 민주당의 우위가 소폭 상승했다. 조지아에서도 10%포인트 가까이 공화당 우위가 줄어들었고 텍사스는 트럼프가 선거인단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교외지역에서의 우위는 거의 가져가지 못했다. 주요 경합주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 만큼 교외지역의 지지율 이동 역시 대선 결과의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문화적 성향이다. 다른 어떤 요인보다 문화적 요인에 따른 유권자의 지지 성향은 극명하게 갈리는 경향이 있었다.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인종별로 흑인 87%, 라틴계 65%, 아시아계 61% 등 비백인 유권자의 71%는 바이든을 지지했다. 반면 백인 유권자는 58%가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했다. 종교도 큰 요인이었는데, 백인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76%가 트럼프를 지지했고 그 외 다른 종교를 믿은 유권자의 62%가 바이든을 지지했다. 낙태 합법화에 대한 입장에서 바이든 지지자들의 74%가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답했고, 트럼프 지지자의 76%가 불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정치성향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의 89%는 바이든을, 보수적이라 생각하는 유권자의 85%는 트럼프를 지지했고, 민주당원의 94%는 바이든을, 공화당원의 94%는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교육수준-생활지역-문화가 투표성향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분석이 타당하다면, 미국이 일종의 ‘문화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문화전쟁은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정책을 둘러싼 티파티운동(Tea Party Movement)과 커피파티운동(Coffee Party Movement)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티파티운동은 원래 20세기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발전해온 보수적인 풀뿌리 대중운동이었다. 그런 티파티운동이 전면에 등장한 계기는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그리고 이를 계기로 다양한 진보적 사회집단과 비백인 집단이 결집해 오바마케어로 대표되는 진보적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이런 결집에 반발한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들은 티파티운동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이 운동은 인종, 낙태, 동성애 등의 이슈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고, 비백인 인구증가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티파티운동의 영향력은 상당히 컸고 특히 트럼프 당선 이후에는 더욱 분명하게 영향력이 드러났다 할 수 있다.
한편 이에 대항하는 운동인 커피파티운동은 미국을 양분시키는 티파티운동에 저항하기 위해 2010년에 처음 모였다. 한국인 이민자 2세인 에너벨 박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운동을 제안하면서 확산되었고, 2019년을 기준으로 규모 면에서는 티파티운동을 압도할 정도로 성장했다. (티파티운동 10만, 커피파티운동 30만.) 커피파티운동은 티파티운동이 보수 성향의 언론을 통해 잘못된 담론과 허위정보를 확산하여 미국과 미국민을 오도한다고 비판하면서 정당의 선택보다는 민주주의를 위한 올바른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커피파티운동은 개인의 의견이 양당제를 넘어 정부에 직접 관여될 수 있기를 원하며 기업의 돈에 의해 정치가 좌우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티파티운동과 유사하게 정부재정의 책임과 의회의 책임을 묻기는 하지만 정부는 적이 아니고 집단 의지의 장이며 정부에 협력할 것을 강조한다.
양측 모두 대외적으로는 정당과는 상관없다고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티파티운동의 지지자들은 대체로 보수주의자, 백인, 저학력, 중장년층으로 구성되고 커피파티운동 지지자들은 대체로 이민자, 비백인, 고학력, 청년층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각 정당의 지지층과 거의 유사하다. 이렇게 대립하던 두 운동은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둘러싸고 극렬하게 대립했다. 지지자들의 구성에서도 드러나듯 정치, 사회,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연령, 계층, 학력 등 다양한 방면에서 분열하고 갈등이 심화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갈등 구도야말로 트럼프 본인이 원하고, 앞으로도 계속 창출해내려 하는 정치 구도일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대선 이후에도 트럼프주의가 여전히 강력히 작동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4) 부동층 유권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이번 대선결과를 분석할 수도 있다. 레이첼 비트코퍼는 부동층 유권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투표율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현대 미국 선거는 유권자들이 정책이나 이념을 보면서 어느 정당 후보에 투표할지 마음을 바꾸어서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유권자가 투표할지 말지를 결심하는 그때 결정된다고 말한다. 즉 이 분석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자신의 집단이 특정 정당의 연합에 속해있으면 후보자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정책을 제시했는지는 거의 상관없이, 투표를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 자신의 집단이 속한 정당의 후보에 투표한다. 이는 정당 사이를 부유하는 15% 안팎의 부동층 유권자에 의해 승자가 결정되고 선거운동은 온건한 메시지로 이들을 사로잡는 노력이라는 통념과는 사뭇 다르다. 비트코퍼의 분석은 그녀가 멘토로 생각하는 앨런 아브라모위츠의 ‘부정적 당파주의’라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개념은 유권자들이 특정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동기보다 상대방을 패배시키려는 동기가 더 강하다고 본다.
‘부정적 당파주의’는 2004년 대선 당시 부시 선거캠프의 일급 참모인 칼 로브의 ‘탈동원화 네거티브 전략’과 묘하게 상통한다. 칼 로브의 전략은 자신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특정 집단 내부의 지지 강화를 위해서 더 명료하고 극단적인 정치메시지를 발언하고, 반대 집단에 대해서는 선거참여 자체를 억제하기 위해 역시 극단적인 네거티브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전략이다. 참여 억제는 네거티브 광고를 통해 정치혐오 정서를 유포해 선거참여 일반을 억제하거나 상대방 후보를 지지할 것 같은 집단의 선거참여를 억제한다.
비트코퍼는 2004년 공화당의 선거전략과 유사한 관점으로 선거를 분석했다. 2016년 대선은 이 분석의 좋은 예시다. 당시 힐러리는 급진파를 대표하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민주당 유권자들을 끌어올 만한 유인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고 부동층에 집중했다. 결국 샌더스를 지지하는 민주당 유권자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거나 제3당에 투표했다. 반면 트럼프는 자신을 지지할만한 사람들을 결집시킬 극단적인 정치메시지를 던졌다. 그리고 결국 트럼프가 승리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비트코퍼는 전국적인 지도를 만들었는데, 그 지도에서 민주당은 비백인, 대학교육 이상의 학력을 가진 백인, 대도시 거주민으로 그 연합이 구성되고 공화당은 대학교육 미만의 상대적인 저학력층 백인, 종교적 성향(기독교)이 강하고 주로 시골과 교외지역 거주민으로 연합이 구성된다. 이런 연합은 앞 절의 지지층 분석과도 유사하다. 그녀는 “양극화된 시대에 선거 결과는 후보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몇 퍼센트가 공화당원이거나 공화당 성향의 사람인가, 몇 퍼센트가 민주당원이거나 민주당 성향의 사람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활성화되는가이다”라고 말한다.
비트코퍼는 그녀의 분석을 토대로 민주당 후보자가 결정되기도 전인 2020년 2월에 이미 민주당의 승리를 예측했다. 왜 그랬을까? 2019년 7월 CBS 뉴스의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을 지지한 민주당 유권자 중 75%가 그 이유로 ‘트럼프에게 이길 것 같다’를 들었다. 비트코퍼는 여기에서 반트럼프 진영으로 집결할 수 있도록 활성화된 민주당 유권자를 발견했다. 그래서 바이든이 대선후보로 나가 트럼프를 꺾을 수 있다고 예견했다. 실제로 2019년 9월에 있었던 버지니아 주를 비롯한 5개 주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 유권자의 분노투표 양상이 나타나 투표율이 상승하고(2015년 29.1%→2019년 43%) 전통적인 공화당 주에서도 공화당은 패배했다. 종합해보면, 2016년 선거에 이어 2020년 선거도 중도층을 어떻게 지지층으로 데려올 것인가라는 전통의 구도에서 벗어난 셈이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타당하다면, 현대 미국 정치는 ‘부정적 당파주의’가 지배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바이든의 승리 역시 부정적 당파주의가 크게 작용했고,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간에 앞으로도 결국 선거승리에서 있어서는 강력한 네거티브 전략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2. 트럼프의 역대 최다 득표 패배: 공화당은 앞으로도 트럼프주의 정당일 것인가?
이번 대선 내내 트럼프는 핵심 지지층을 전혀 상실하지 않았다. 최종 대선 결과를 놓고 본다면 오히려 4년 전보다 득표수가 증가했다.
코로나19 위기라는 전례 없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선전한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제출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한편으로는 중국이 질병의 원인 제공자라는 중국 책임론을 수용하거나, 다른 한편으로 이번 위기가 자연재해에 가깝다고 인식하면서 트럼프의 방역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통상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현직에 대한 지지는 상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지자들은 트럼프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당연하다고 보기도 한다. 봉쇄정책으로 인한 피로가 누적되는 와중에 봉쇄정책에 반대하는 트럼프의 입장 표명은 지지층 결집에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어떤 명분이든 간에, 애초부터 트럼프를 지지하던 유권자층에게 코로나 위기가 중요한 변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그만큼 지지층의 응집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는 계속해서 선거 결과에 재를 뿌리려 시도 중이며, 앞으로도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그 적법성을 공격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수의 지지자들은 바이든이 적법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거부할 것이다.
오늘날의 점점 더 많은 미국인은 자신과 비슷한 관점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케이블 텔레비전 채널, 라디오 방송, 팟캐스트만 듣고, 그런 웹사이트를 돌아볼 뿐이다. SNS 역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SNS는 이용자들이 상호 간의 정체성을 인지한 상태에서 집단을 형성하는데, 기존 인터넷 공간보다 익명성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배경으로 구성되고 그 내부에서 소통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SNS상에서 내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외집단과의 소통은 점점 줄고 오프라인으로의 확장 역시 줄어드는 경향이 발견된다. 이렇게 되면서 모두가 공유하는 시민적 ‘교육과정’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는 미국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관점과 다르면 그 모든 것이 ‘가짜 뉴스’일 뿐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미국인들이 점점 더 분열된 각각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이처럼 완전히 분열된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바이든의 적법성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계속 유지, 성장할 수도 있다.
더욱이 공화당은 특히 하원과 상원 선거에서 예상보다 선전했다.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를 침식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설사 2021년 1월에 상원에서 과반을 민주당에 내준다고 하더라도 6대 3으로 보수화된 대법원이 민주당의 진보적인 법안을 좌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연방정부기관은 트럼프를 거치면서 그 기능이 상당히 약화되어있기에 바이든 대통령이 제대로 행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이를 정상화할 시간도 필요하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 바이든 행정부는 산발적인 정부폐쇄의 상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정부를 운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는 패배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벌써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 재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데,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성향 유권자의 53%가 2024년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로 지지세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에서 클리블랜드 대통령처럼 징검다리 중임에 성공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트럼프에 대한 지지세가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반드시 실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또한 트럼프 본인이 대선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202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자를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트럼프 집권 시기 트럼프의 공화당은 조지 W. 부시나 로널드 레이건의 공화당과는 너무나 다른 정당, 즉 현대 미국의 우파 포퓰리즘의 다른 이름인 트럼프주의 정당으로 변모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트럼프의 패배 이후, 공화당은 더 이상 트럼프주의 정당이기를 멈출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3. 바이든의 역대 최다득표 당선: 민주당 지지층 내부의 갈등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1) 반트럼프 전선으로서 민주당으로의 불완전한 결집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주류 매체는 백인의 지지율 이동과 민주당으로의 결집이 바이든 승리의 원동력이었다고 분석한다. 반면 미국의 진보진영은 비백인의 결집이 대선승리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어쨌든 두 흐름 모두가 바이든의 승리에 기여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당내 중도파를 대표하는 바이든과 당내 좌파를 대표하는 샌더스의 후보단일화는 반(反)트럼프라는 기치로 민주당으로 포괄될 수 있는 모든 세력이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2016년에는 적지 않은 수의 샌더스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거나 제3당에 투표했다. 또한 한 조사에 따르면 샌더스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12%가 트럼프에 투표하기도 했다. 샌더스 의원 본인도 누구보다 결집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샌더스는 2020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음을 특히 강조했다. 이처럼 샌더스가 바이든 지지를 역설하면서 2016년과 달리 샌더스 지지자들의 표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반(反)트럼프라는 기조로 광범위한 흐름이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집이 바이든 집권 이후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 민주당 내부에서는 대선 직후부터 분열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주당 내의 온건파 중심으로 민주당 내의 좌파적 흐름을 비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1월 3일 대선 직후에 열린 민주당 내부 회의에서 민주당 내 온건파 의원들이 급진파에 대한 격한 비판을 쏟아냈다고 보도했다. 온건파 의원들은 하원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상실하고, 상원에서 다수 확보가 불투명해진 게 당내 좌파 탓이라고 공격했다. 즉 공화당이 민주당을 ‘사회주의’라고 낙인찍거나, 민주당 후보들이 내건 ‘경찰예산 삭감’을 핵심적으로 공략한 게 먹혔고, 상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부진으로 귀결되었다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더는 당 내에서 ‘사회주의’와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조지아 주 상원선거는 당내 좌파 노선이 실패한 사례로 언급된다. 조지아 주에서 바이든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존 오소프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가 그보다 훨씬 적은 표만을 득표해 결국 승리를 확정하지 못했다. 오소프 후보는 샌더스 의원의 지지를 받았고, 중앙의 민주당과는 거리를 두는 입장을 취해왔는데, 이로 인해 민주당 유권자의 폭넓은 지지를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은 “모든 전투를 이기지는 못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했다”면서 민주당 하원의원들을 일단 안심시키려 애썼지만 이런 분열이 쉽게 진정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갈등은 2020년 대선과정에서 이뤄진 바이든과 버니 샌더스 의원 간의 후보 단일화가 화학적 결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2) 민주당은 내부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8월 19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찬조연설을 했다. 흥미롭게도 그가 연설 장소로 선택한 곳은 필라델피아 독립혁명 박물관이었다. 그는 연설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필라델피아에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헌법이 작성되고 서명된 곳입니다. 헌법은 완벽한 문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문서는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허용했고, 여성과, 또한 재산을 소유하지 못한 남성의 참정권을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헌법 문서에는 미래 세대에 길을 제시하는 북극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의제 정부, 즉 민주주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최고 이상을 더 훌륭히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내전과 쓰라린 투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한때 버려졌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포함하도록 이 헌법을 개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점진적으로 이 나라를 더 정의롭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나라가 되게 했습니다.”
국내 언론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필라델피아 독립혁명 박물관을 연설장소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트럼프에 의한 민주주의 위기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즉 미국의 헌법정신에 기초한 국민적 통합, 특히 인종 간 통합이다. 그는 2010년 재임 시절, 마틴 루터 킹 추모예배에서도 민권운동가들이 “이 나라를 포기하지 않았다”, “불완전하더라도 그들은 민주주의의 약속을 믿었고”, 또한 “미국이 계속해서 자신을 새롭게 하고, 완전한 통합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바마만 이런 연설을 한 게 아니었다. 2020년 8월 17일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의 개막연설 주제가 바로 미 헌법 전문 첫 단어인 “우리 국민”(We the people)이었다. 개막연설에는 샌더스와 미셀 오바마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왜 반복해서 헌법 정신에 기초한 국민적 통합을 강조하는가? 사회주의자라 자칭하는 샌더스 의원조차 왜 이런 주제로 연설을 하고 지지를 호소했는가? 트럼프가 선동하는 백인의 ‘종족적 민족주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민주당 중도파와 민주당 좌파, (반트럼프로 결집했던) 민주당 외부 독립적 좌파 간에 존재하는 팽팽한 긴장과 갈등도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서 오바마는 헌법 정신에 입각한 ‘더 완전한 통합’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셈인데,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헌법정신에 입각한 통합을 추진하는 것조차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대니 로드닉은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번 대선은 민주당과 여타 중도좌파 정당이 문화적·경제적 쟁점에서 자신을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는가와 관련된 논점을 해소시키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좋은 일자리가 사라진 지역사회는 마약, 가족붕괴, 범죄 증가 등 경제를 넘어서는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전통적 가치에 집착하고, 외부자에 관용하지 못하며, 권위주의적 독재자(strong man)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또 다른 후폭풍을 맞을 것이라 경고한다.
더욱이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통합이 온전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즉 오바마가 주문한 국민적 통합 역시 부족하다 하겠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적 갈등은 계급적 갈등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종주의를 차별적인 경제구조, 개인적 편견, 이데올로기, 표상, 법률과 정책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선천으로 간주된 인종·민족·문화적 범주에 기반을 둔 억압체계로 개념화한다고 할 때, 이러한 체계적 인종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합해 자원, 기회와 권력에 있어서 불평등을 형성한다. 코로나19 위기가 인종 간에 불균형적으로 나타난 현상, 인종주의적으로 투표참여를 배제하는 시스템 등이 그 예시일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가 점점 쇠퇴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계급적 갈등도 증폭되고 그와 중첩되는 인종적 갈등도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토양에서 사람들은 자기 집단이 공유하는 전통적 가치에 더욱 매몰되고 외부인에 대해 덜 관대하게 되며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를 지지하려는 의향이 강해진다. 이는 트럼프의 당선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현상이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몫이라 할 수 있다.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교량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4년 뒤 다시 한 번 역풍을 맞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5. 독이 든 성배를 움켜쥔 바이든?
혹자는 바이든이 이제 막 독이 든 성배를 움켜진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상하원 선거결과를 볼 때, 바이든이 완전한 신임을 얻었다고 말할 수 없고, 실제로 내년 1월 결선투표에서 상원이 공화당 쪽으로 넘어가면 새 행정부가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트럼프 집권기를 거치며 보수적 기조가 강해진 연방대법원도 새 행정부에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 트럼프를 거치며 행정부도 약화되거나 마비되어 제 기능를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트럼프가 계속 대중의 시야에 등장하면서 트럼프주의를 선동하고, 공화당을 계속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려 할 수 있다. 또한 이번에 바이든과 민주당을 지지했던 유권자 집단은 어떤 순간에라도 내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 즉 언제라도 좌파, 온건파, 반트럼프 독립파 간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혹자는 선거 결과를 두고 ‘하나의 아메리카, 두 개의 국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당선 연설에서 “분열하지 않고 통합하는 대통령, 공화당 주와 민주당 주를 가르지 않고 미국 전체를 보는 대통령이 되겠다”, “상대를 악마처럼 만들려는 시대는 여기서 끝내자”고 말했다. 과연 새로운 행정부가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여 어떤 길을 걸을지 세계가 주목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