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1 봄. 174호
첨부파일
02_회원좌담.pdf

문재인 정부 4년,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진보연대 |
  • 일시  2월 23일 화요일
  • 사회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 참석자  류미경(민주노총 국제국장), 박준형(공공운수노조 교육센터 교육국장), 오기형(금속노조 조사통계부장), 이소형(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장), 이인화(민주노총 인천본부장)
 
 
임필수  참석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2017년 5월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이제 5년차에 들어가고, 민주노총은 새 집행부가 구성된 시점입니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제가 뽑은 좌담의 제목처럼 지난 4년간 노동조합 운동이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면서 전열을 가다듬어야 때입니다. 이런 취지로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우리 회원을 모시고 좌담을 해보려 합니다. 

우선 참석자 여러분 소개를 겸해서 개별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이인화 본부장님, 늦었지만, 재선을 축하드립니다. 두 번째 임기에 임하는 각오가 각별할 텐데요, 포부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이인화  두 번째 임기가 되니 책임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지역본부장 6년을 했다고 하면 짧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역본부에서 뭘 할 건가를 말하려면,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를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이냐를 밝히는 게 가장 먼저 필요할 것입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지역의 투쟁을 엮어내는 역할 정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10년 정도 전부터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라는 역할이 부여되었고, 최근 몇 년 전부터 지자체와의 노정협의가 생겼습니다. 지역본부의 역할이 많이 확장되어 온 거죠. 

앞서 얘기한 것처럼, ‘모든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이라고 한다면,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지방정부가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게 할 것이냐를 핵심적 과제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인천본부는 인천시가 해야 할 기본적 노동정책을 수립하도록 연구사업부터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물론 인천본부도 그 사업에 적극 개입했습니다. 그래서 연구보고서가 나왔는데, 38개 과제를 도출했습니다. 저임금 노동자 문제는 어떻게 할지, 산업안전은 어떻게 할지, 여성·청년·비정규·플랫폼 노동자 문제는 어떻게 할지 등등 굉장히 많은 과제를 망라했고,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5개년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천본부는 전체 노동자의 노동권 향상을 위해, 이러한 과제를 제대로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인천본부가 지역의 미조직 노동자들과 여러 접촉지점들을 만들 수 있으리라 봅니다. 공단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라든가 노동인권센터 등을 매개로 말입니다. 그렇게 확장된 접촉지점을 통해서, 어떻게 미조직 조직화 사업을 원활하게 잘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미조직노동자들과 더 자주 만나고, 민주노총의 좋은 이미지를 더 살려내야 규모 있고, 지역적으로 광범위한 조직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처럼 한축으로는 대지자체 사업과 노정교섭, 또 한축으로는 지역 미조직 조직화 사업을 통해 지역본부의 위상과 역할을 잡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총연맹과 관련해서 제가 느끼는 문제의식은 지금 총연맹이 조합원들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있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은 무엇을 하는 조직이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라는 비전을 조합원에게 확실히 제시하고, 또 조합원은 그러한 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냐는 문제죠. 과거에는 ‘노동해방’을 비전으로 제시했는데요, 지금은 무척 불분명해 보입니다. 정치세력화, 사회적 대화, 청년조직화와 같이 매우 중요한 과제를 지금 총연맹이 풀지 못하고 있는데요, 저는 총연맹의 비전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민주노총의 비전 제시라는 과제와 정치세력화, 사회적 대화, 청년조직화라는 과제가 따로따로 존재할 수 없고요, 비전과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각각의 과제도 진전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저의 이런 생각을 여러 노동조합 단위와 함께 토론해 보고 싶고요, 새로 당선된 양경수 집행부가 민주노총의 비전을 다시 세우고 과제를 풀어가는 방향을 잡는 역할을 잘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집니다.

임필수  말씀을 들어보니 지역본부의 대지자체 사업, 노정교섭이나 지역 조직화 사업은 우리가 다음 기회에 더 깊이 다뤄야 할 중요한 사안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오기형 부장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금속노조는 올해 어떤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는지, 본인이 속한 정책실은 또 어떤지 말씀해 주겠습니까.   

오기형  금속 사업장들은 거대한 산업전환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바로 친환경 전환, 디지털 전환이죠. 자동차산업을 가진 나라는 모두 엄청난 나랏돈을 전환에 퍼붓고 있습니다. 이 전환에서 지면 그 나라의 자동차 산업이 완전히 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적 차원의 산업정책이 범람하고 있죠. 
그런데 자동차 기업은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국에서 투자하지, 타국에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현대차는 우리나라, 지엠은 미국, 베엠베는 독일, 이런 식이죠. 따라서 한국의 지엠은 산업전환 계획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또한 우리가 계속 우려했던 대로, 이 과정에서 각국에서 완성차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가 극단적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자동차산업에서 독점성이나 1, 2차 벤더의 종속성이 압도적으로 강화될 겁니다. 다른 문제는 자동차산업에서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과잉중복투자가 반드시 조정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습니다. 

한편 산업전환 과정은 계속해서 외주화를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내연기관 부품사가 전기차 부품사가 되어 따라가는데, 이때 부품사가 전기차 사업부를 분사하거나, 자회사를 만들거나, 합작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는 노조가 없고, 그렇게 되면 노조가 시장 장악력을 잃게 됩니다. 이런 문제들이 겹쳐서,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요, 노동조합은 여전히 이런 전환에 몸을 싣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점성이나 종속성으로 드러나는 산업구조의 퇴행이라는 문제, 노동조합의 시장장악력 급락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올해 금속노조는 산업 전환에 주도적으로 임하자는 의미에서 “노동참여 보장하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이라는 메인 슬로건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사업장마다 산업전환 협약을 맺자는 것인데요, 물론 이미 현대·기아나 일부 벤더에서는 낮은 수준이지만 조금씩조금씩 산업전환 협약을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슬로건만으로는 재벌화의 문제라든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죠. 그래서 재벌과 노동시장 분할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두 번째 과제가 ‘산별노조 할 권리’입니다. 이는 제도개선 투쟁을 의미하는데요, 산별교섭 법제화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과제는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먼저 교섭대상을 확장해서 산업적 의제도 산별교섭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금속노조가 이미 해오고 있긴 하지만, 이를 제대로 보장하라는 것이죠. 그보다 높은 층위로 협약 구속력의 확장도 있죠. 산별협약의 적용범위를 조합원이 아닌 경우까지 확장하는 것입니다. 더 높은 수준에서는 사용자단체 구성 의무화도 있지만, 이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죠. 마지막으로, 산별협약까지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을 테니, 일단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자는 것이 세 번째 과제입니다.  

임필수  산업전환협약은 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오기형  우리가 제시하는 산업전환 협약의 예시는 7~8가지 있습니다. 전환계획을 협의하자, 그러면서 생산계획, 고용계획을 협의하고, 전환과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위험에 대한 노동안전보건 문제도 다루고, 전환이 이뤄질 때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 체계를 보장하는 문제도 협의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동차산업 2차벤더 수준에서는 전환계획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대분입니다. 그래서 금속노조가 주도해서 전환계획을 세우자고 요구하려는 것입니다. 

임필수  금속노조의 산업전환 이슈도 어마어마한 문제를 담고 있네요. 이 역시 다음 기회에 집중적으로 조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넘어가서, 박준형 국장께도 질문하겠습니다. 공공운수노조도 선거가 있어서 새로 집행부가 구성되었는데요, 새 집행부는 어떤 사업에 방점을 찍고 있나요. 

박준형  이번 집행부는 큰 흐름으로 상반기에 기획재정부(기재부)를 상대로 한 집중 투쟁을 전개하고, 하반기에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총궐기를 진행한다는 계획입니다. 상반기의 집중투쟁은 민생 예산, 처우개선 예산을 요구하며 2022년 정부 예산 편성에도 대응하는 것입니다. 하반기에는 임단투 시기집중 파업과 전조합원 총궐기투쟁을 잡고 있습니다. 예산 수립 과정에 개입하기 위해 시민운동진영과 연계하여 사회공공성과 임금투쟁을 결합한 투쟁을 전개하고, 2022년 대선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이죠.

임필수  기재부를 상대로 투쟁한다는 게 어떤 의미죠?

박준형  공공기관 노조들은 기재부를 상대로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현재의 기재부는 이명박 정부가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통합한 것인데, 과거에는 예산 배분 기능을 가졌던 기획예산처에서 공기업 등 공공기관을 총괄했었습니다. 이를 합병한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운영의 모든 세세한 부분에 지침을 시행하고 있고, 공공부문 노동자의 인건비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공부문 노조의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사용자라고 할 수 있는 기획재정부에 대한 투쟁과 협의가 필요합니다. 최근 쟁점이 되는 정규직화와 그 이후의 처우개선도 모두 정부 재정과 관련이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해 공공부문 노조들은 기획재정부의 거시경제정책과 예산기능을 그 일환인 공공기관 관리라는 기능과 별로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공기관에 대한 각종 지침에 대해 노동조합이 가진 불만에 기초한 투쟁을, 기재부의 ‘보수적’ 재정 정책에 대한 공격과도 연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홍남기 장관이 재난지원금 보편지급에 반대하자 ‘나라가 기재부꺼냐’고 조롱하는 흐름이 있는데, 여기에 조응하기도 하는 것이죠. 또 그게 문재인 정부 타격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공공부문 노조가 자신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사실상 규정하고, 노사관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는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재부의 일방적이고 관료적인 통제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국가에서 공공부문 노조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부와 협의하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기도 하고, 한국 노조들의 꾸준한 정책 요구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무원, 정규직 전환자(공무직)에 대해서 이러한 협의 구조가 일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상당히 취약하고, 공공기관에는 아예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공부문 노조가 이런 협의 구조를 요구하는 것과, 임금격차 축소 등 내부적 개혁 없이 재정이 소요되는 요구부터 제시한다면 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전체 노동자의 중위임금은 물론 평균임금도 크게 상회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회적인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여튼, 기존 정규직이든 정규직 전환자(공무직)이든 임금 인상을 위해서는 적극적 재정 지출을 요구하게 되는데요. 노조가 거시경제와 재정 정책에 대해, 자신의 직접적 경제적 이해와 연계되는 것이 아닌한 별다른 진단과 입장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다보니, 면밀한 비판없이 확장적 재정 정책을 요구하는 흐름에 자연스레 편승하는 것입니다. 한편 어떤 활동가들은 국가 재정과 거시경제에 대해서 왜 노조가 관심을 가져야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하던데, 공공부문 노조라 해도 국민경제에 무관심하거나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죠.

임필수  마지막으로 류미경 국장께 질문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앞으로 많이 얘기할 주제입니다만. 새로 집행부가 등장했는데요, 사무총국 분위기는 어떤지, 어떤 분명한 변화가 있는지요. 본인이 속한 정책실은 어떤 사업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요. 

류미경  우선 자리를 바꿔야 해서 어수선합니다. (웃음) 사무총국의 체계와 인적 구성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사무총국의 운영방식도 집행부의 몫입니다. 사무총국의 각 실을 어떻게 배치하는지, 순서를 어떻게 두는지, 예산을 어떻게 배치하는지를 보면 집행부가 생각하는 활동의 우선순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총괄사업본부을 논외로 하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미디어교육선전실. 그다음이 조직강화와, 전략조직사업을 포괄하는 조직실, 그 다음이 청년사업, 마지막이 정책실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번 집행부는 미디어를 통한 교육선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방송국을 만드는 데 많은 인적 재정적 역량을 할애하고 있어요. 선전을 하려면 정책이 먼저 있어야 하는데, 정책보다 선전이 앞서는 상황입니다. 제가 속한 정책실은 오히려 예전에 비해 인원이 줄었는데 기본적인 업무는 크게 임금, 고용, 노사관계 등을 다루는 노동정책 영역과, 사회서비스, 사회공공성, 사회보장제도 등을 다루는 사회정책 영역으로 나누는데 사회 영역에는 담당자가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4년과 노동조합운동 

임필수  말씀하신 내용은 민주노총 새 집행부가 제시한 올해 사업계획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오늘 우리가 얘기를 나누어야 할 주제이기도 하네요. 구체적인 얘기는 차차 나누기로 하고요. 지금부터는 문재인 정부 4년을 평가하는 논의로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이소형 노동위원장께서 지난 4년간의 흐름을 짚어주시죠.  

이소형  (발표문 참조)

임필수  노동위원장 말씀을 요약해보면, 외형적으로 보면 지난 4년간 민주노총은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민주노총 조합원이 100만 명을 넘어섰고,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일노총이 되었죠. 민주노총이 그 이전부터 주장했던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라든가, 주52시간제의 완전한 시행,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공공부문 정규직화와 같은 요구가 정부 정책으로 시행되었습니다. 물론 민주노총의 기존 요구안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민주노총은 김명환 집행부가 중도사퇴를 하게 될 정도로 내홍을 겪고 지도력의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더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지난 4년을 거치며 노동자 간 임금격차, 조직률 격차 확대와 같은 큰 추세에 실질적 변화가 있었냐는 의문도 던질 수 있고요. 그래서 논자에 따라 지난 4년을 민주노총이 전진한 시기인지, 후퇴한 시기인지 보는 입장이 크게 갈라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참석자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이인화  문재인 정부 4년만이 아니라 2010년 이후로 노동운동은 계속해서 질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냐, 박근혜 정부냐, 문재인 정부냐와 무관하게 민주노총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거죠. 발전하려는 흐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 각급 조직들이 교육, 토론과 같은 기본적인 역할을 방치하기도 했고, 총연맹에서 비전을 제시하려는 노력도 충분하지 않았죠. 이런 측면에서 민주노총 운동의 질적 후퇴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와 문재인 정부 시기만을 비교한다면, 노동운동이 느끼는 곤란함의 차이는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어쨌든 적이라서 선명하게 싸우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기대, 배신감, 집착이 섞여 있는 상황이고, 특히 지금도 집착을 계속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이 민주당에 대해 어느 정도 성격규정은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단적으로, 2017년 하반기에 문재인 정부는 불법파견만큼은 확실히 없애겠다면서 지방노동관서에서 불법파견 감시팀을 만들었는데, 6개월도 안 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어요. 이걸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정말 멋모르고 불법파견 근절을 내질렀다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그냥 유야무야 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행태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이 노동 내부에 축적된 면이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민주당에 대해서 전선을 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류미경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를 돌이켜보면, 그때는 민주노총 존재 자체로 정당성을 인정받는 상황이었어요. 이명박 정부 때는 제3노총을 만들어 민주노총의 힘을 빼려고 한다거나 새롭게 도입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를 악용하여 주로 금속노조 지회가 있는 현대차 부품사를 겨냥하여 어용노조를 설립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전략을 펼치기도 했고요. 박근혜 정부 때도 공공부문부터 단협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일이 많았죠. 대다수의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양대지침을 발표하기도 했고요. 이런 공격은 민주노총을 파괴하면서도 전체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야기하는 정책이었어요. 그래서 민주노총이 깃발 들고 나가서 싸우면 그게 정당한 투쟁이었고, 민주노총의 정당성과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확보가 됐어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민주노총이 요구했던 것들이, 실현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부 정책에 반영되었어요. 결국에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추진이 되었죠. 게다가 ‘문빠’ 현상도 강렬하게 나타나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이 깃발 들고 싸운다고 자연스럽게 정당성이 생기지는 않는 상황이 도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민주노총이 유능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정말 좌충우돌을 했죠. 그러면서 내부의 분열도 심화되고, 대사회적인 영향력도 상실하고, 조직 전체의 통합력도 약화하는 과정을 겪어 왔어요. 

박준형  문재인 정부는 대선시기 공약이나 이후 발표한 국정과제에서 민주노총의 주장을 상당부분 수용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든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대표적이죠. 또 공약이나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과도 연대하던 “친노동” 성향의 여러 연구자를 직접 불러들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정책들을 시행하고 보니, 좋은 의도와는 달리 그에 맞는 결과를 낳기는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추진 의지 문제만이 아니라 정책적인 정합성 부족 때문이든, 의도치 않은 부작용 때문이든 성공할 수가 없는 객관적 조건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에서 여러 한계가 나타났습니다. 정규직 전환 문제도 공공부문만 했다는 문제도 있지만 공정성을 둘러싼 역풍을 맞기도 했고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정책은 현실에서는 노인 일자리처럼 단기 일자리 만드는 걸로 귀결되었어요. 산업구조조정 정책도 예컨대 쌍용차 해고 노동자는 복직했지만, 쌍용차 기업은 위기에 처하는 상황에 직면했죠. 

이 결과를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가 준비가 안 된 것도 있었지만, 이건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의 정책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기도 해요. 문제는 민주노총이 그걸 반성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문재인 정부가 충실히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지, 우리의 요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실패는, 불행히도 지난 4년간 민주노총 요구의 한계가 검증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문재인 정권 시기 노동운동이 퇴보했냐 묻는다면, 저는 오히려 민주노총의 한계가 드러난 시기라고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심지어 우리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일 것입니다. 

오기형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과 민주노총이 너무 긴밀해져서 서로 분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네요. 그 10년 동안 민주당 세력과 민주노총이 분명한 차이를 확인하면서 보수 정권과 싸운 게 아니라, 섞여 들어가면서 싸웠기 때문에, 민주당 정권에서 조직 내부의 혼란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초반에 단절해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끌어왔죠.

민주노총의 요구이기도 했지만, 문재인의 노동정책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컸습니다. 이상은 복지국가 체제에서 가능한 ‘포용안정화’이지만, 실제는 보수주의 체제의 ‘연성이중화’, 즉 노동시장 내부자의 고용은 강화하고 외부자는 배제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52시간제나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볼 수 있습니다. 산업 전환기에, 물량은 한정되어 있고, 부품은 줄고, 일자리는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는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를 나누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하지만, 오히려 영세노동자는 저항하고 있습니다. 영세노동자들은 회사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데, 회사는 노동시간 단축을 수용해서는 이윤을 창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도, 고임금 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흡수할 수 있지만, 최임 사업장은 생활임금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을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초기, 주52시간제나 최저임금 관련 정책방향이 이중 노동시장 구조에서, 외부노동시장 또는 저임금노동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은 아니었습니다. 관련해서 문재인 정부도 공약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언급하며 그 대안으로 산별노조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전혀 진척된 것이 없습니다. 애초부터 산별노조 관련 공약은 들러리로 넣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시 정리하면, 민주노총의 요구라고 하든,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라고 하든, 이중 노동시장의 조건에서 실현가능한 것은 아니었죠.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산업구조 정책, 재벌개혁 정책이 준비되어 있었어야 했고, 초기에 제기했던 정책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도 적합한지 확인해야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노동도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보려 하지 않았고, 정권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어요. 준비할 생각도 없었고요. 그래서 문 정부가 초기에 드라이브를 걸다가, 쉽고 급하고 빠르게 정책을 전환해 버린 것이죠. 

이소형  저는 노동운동의 요구가 왜 민주당과 분별정립을 못했을까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투쟁이 강한 의미에서 정치적인 반정권 투쟁이라기보다는,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이나 민영화에 대응해서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원상회복을 추구하는 투쟁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 주력부대가 펼친 투쟁의 내용 자체가 원상회복, 현상유지를 기대하는 경제적인 투쟁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문 정부가 들어선 후, 과거 10년 동안 침해를 받았던 상황을 다시 복원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조합이 대체로 만족하면서 큰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류미경  문재인 정부 때 민주노총이 아무런 불만도 표출하지 않고 투쟁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죠. 최저임금 산입범위을 둘러싼 투쟁이나, ILO협약 비준 지연에 관한 투쟁도 있었고,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도 있었죠. 이런 문제로 계속 투쟁은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당시 집행부의 성격이 투쟁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너무 정부의 선의를 기대하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았다면서 뒷북을 치는 투쟁을 한 게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준형  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오히려 정치적인 반정권 투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노동조합과 직접 관련이 없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투쟁에 민주노총은 전 조직적 역량을 투여하기도 했습니다. 각각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정치투쟁의 성격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에 항의하는 촛불집회는 민주노총이 사실상 물리적으로 떠받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쟁점들에서 민주당은 정치적 의도가 훨씬 노골적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노동 관련 의제 외에 중대한 정치적 쟁점에 민주노총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돌아보면 흥미롭습니다. 조국 사태나 검찰개혁 등에서는 어떤 입장이랄 게 없었습니다. 반면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 주로 자민통 계열 활동가들의 입장에 근거한 주장을 개진하거나, ‘아베 규탄 시민행동’에 참여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반일 여론 조성에 조응하는 움직임은 있었습니다. 

임필수  노동위원장께서는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나 지금 문재인 정부 때나 민주노총에 소속된 주력 노동조합, 주로는 대사업장 노동조합은 원상회복이나 현상유지와 같은 방어적인 투쟁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투쟁성’이라는 잣대로는 현재 노동조합의 상태를 정확히 읽어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듯하고요. 박준형 국장께서는 현재와 대비할 때, 총연맹이 오히려 박근혜 정부 때는 민주당과의 연합전선을 추구하며 소속 노동조합의 투쟁을 묶어내면서 정치투쟁적 성격을 의도적으로 강화하고자 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류미경 국장께서는 지난 집행부가 민주당 정부에 의존적인 활동행태를 반복하면서 나타난 심각한 결함을 강조하셨고요. 서로 부딪치는 주장은 아니고요, 종합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앞에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한계는 곧 민주노총 요구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지적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조합원 규모 증가와 조합원 의식

임필수  문재인 정부 하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규모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정부 통계로도 2018년, 19년 조합원 수로는 제1노총인 것으로 나타났고요. 결과적으로 보면, 문 정부에서 조합원이 30만 명 증가해서, 조합원 10명 중 3명은 문 정부 출범 이후 가입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함의하는 바를 따져봐야겠습니다. 

류미경  민주노총에서 2019년에 조직 확대 현황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조사에 다르면 2017년 1월 이후 조합원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2019년 상반기에 총조합원수 1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2018년에 조직확대가 크게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당시 공공부문과 건설에서 조합원 수가 크게 늘고, 금속도 다소 완만하게 증가한 데 비해 여성연맹, 전교조, 지역본부 직가입은 줄었습니다. 그 보고서에서는 공공부분이 늘어난 데에는 정규직 전환이 크게 영향을 미쳤지만, 노동조합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전략조직화 대상을 삼은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봅니다. 이는 2011년쯤 김영훈 집행부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범야권 공동지방정부’로 불렸던 경남에서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지자체 비정규직을 대거 조직한 것이 선례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 모델이 민주노총에서 확산되었고, 그런 흐름이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맞물렸다는 것이죠. 

그런데 공공부문 비정규직 조직화에는 공공운수노조뿐만 아니라 민주일반, 서비스연맹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민주노총 내에서 산별구획이 흐릿해지고, 많은 산별노조가 일반노조의 성격을 띠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산별교섭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어쨌든, 그러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 조직갈등이 커지게 됩니다. 교섭대표노조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예전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또는 민주노조와 어용노조가 대결했다면 지금은 한 사업장 내에 민주노총 조합이 여러 개라 민주노총 조합끼리 경쟁하는 상황이 됐죠. 양적으로 확대되었지만, 그것이 조직화와 산별구획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일반노조식으로 확대되어서 조직 내 갈등이 증가한 셈입니다.  

이인화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인천의 경우는 2011년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를 어떻게 조직화할 것이냐를 논의하면서, 총연맹 인천본부와 공공 인천본부가 함께 사업단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축으로 인천공항도 2009~2010년부터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이 쭉 지속되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이 시작된 직후인 11월부터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조직화 흐름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전부터 사회 전체에 변화가 작동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준형  공공부문 비정규직 조직화가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시작된 건 사실이지만, 공공부문 조직화 성과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결정적으로 나타난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2018~2019년에는 5만여 명이 공공운수노조로 가입했고, 2만여 명이 민주일반연맹으로 가입했어요. 한국노총도 꽤 많이 가입했고요. 이런 가입 추세는 2020년 들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서면서 줄어듭니다. 

그런데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민주노총에 가입한 조합원이라고 특별히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갈등으로 투쟁하는 사업장이 여전히 있고 정책의 한계도 있습니다만,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자의 인식을 조사 연구한 결과를 보면 정부의 전환 정책에 대한 평가가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런 인식은 민주당 정부에 대해 긍정적 평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대선, 지자체 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이 민주노총 전체로 보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임필수  2012년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한 후,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나 선거방침이 실질적 영향력을 상실했죠. 그러니 민주노총의 정치 사업이란 것도 거의 없다시피 했을 겁니다. 그런 상황이 근 10년을 이어져온 데다가, 조합원 10명 중 3명이 문 정부에서 가입했다고 보면,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치의식이나 사회인식이 어떨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노조는 이런 조직구성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특히 새로 가입한 조합원이 많은 공공운수노조는 무얼 해야 할까요.  

박준형  그런데 당장 시급한 문제는 오히려 노동조합 내 갈등입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조합원이 노조를 주도할 역량은 아직 안 되는데, 기존 정규직 직원들, 특히 청년층이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사업장 노조를 움직일 힘이 있죠. 그래서 대사업장 노조가 정규직 전환을 계기로 급격히 우경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소형  정규직 청년층이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면서 대사업장 노조가 우경화될 가능성은 조금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청년층이 비판하는 대상이 정규직화 정책의 취지 그 자체라기보다는 제한된 인건비 예산에 새로운 구성원이 진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민주노총의 ‘제대로 된 정규직화’는 전환자가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체계와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들의 비판의 핵심은 정부정책에 대한 노조의 접근방식에 있는 것이라, 공공기관노조들의 문재인 지지라는 일반적 정치성향까지 변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이인화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젊은층의 경우, 처음에는 문재인 정부를 적극 지지했으나 점차 지지가 약해지며 동시에 노동조합과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강화되었다고 봅니다. 공공부문 청년세대나 전교조 젊은 층에서 그런 문제가 가장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속노조에서도 그런 흐름이 있고요. 금속노조는 세대갈등으로 볼 수도 있겠고, 다른 산별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그런 흐름이 보입니다.
 
2019년 12월, 공공운수노조 사회공공연구원이 발간한 『청년조합원에 대한 이해와 노동조합의 과제』에는 「공공운수노조 청년조합원 인식조사 결과」가 담겨 있다. 35세 미만 조합원 중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51.2%로 전체 평균인 31.2%보다 확연히 높다. 35세 미만의 41.4%는 정책이 옳으나, 제대로 안 됐다고 본다. 그런데 보고서에 따르면, 35세 미만 청년조합원 응답자의 정치성향 평균점수는 중도에 가깝지만(5.92점), 35세 이상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설문조사 문항에 아주 직접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나 지지 정당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로부터 35세 미만에서 정규직 전환 정책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응답한 조합원의 정치성향을 직접적으로 도출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응답층이 정규직 전환 정책을 계기로 문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는지, 아니면 유지하는지 문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프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평가의 연령별 표를 재구성)

오기형  금속은 조직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분포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구성원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생길 수 있고, 조직원이 급속하게 확장되면 인식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만, 금속은 구성원 분포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세대갈등이라고까지 할 만한 흐름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금속은 제조사업장 전후방이 조금 늘어났고, 그 외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문 정부 후 대우조선이나 현대트랜시스가 금속노조에 가입했으나, 여기는 원래 노동조합이 있던 곳입니다. 금속노조는 가만히 있으면 모든 사업장에서 조합원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정년퇴직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상급단체를 전환한 노조가 채우는 식이었고요. 그래서 조직 전체의 구성이 크게 변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본부장님이 말씀하신 것을 제 식으로 설명하면요, 금속 사업장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신규직원을 안 뽑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87년에 노조를 세운 전통 있는 사업장과 같은 경우는 막내가 47~48세죠. 그런 사업장이 정년자가 늘어 도저히 유지가 안 되면 회사가 20대 후반 30대 직원을 뽑는데, 그러면 세대가 쌍봉낙타 식으로 나뉩니다. 앞의 선배들은 정치투쟁을 세게 했고 승리했던 경험을 지닌 세대들이지만, 이제 많이 고령화가 된 상황이죠. 반면 젊은 신규 30대 조합원들은 그런 지난 과거 경험을 듣고 우리도 그런 투쟁을 하고 싶은데. 노조는 싸우지 않고, 싸울 거리도 없고 그런 상황이니 자신의 역할이 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죠. 그런 게 세대갈등 식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금속노조는 투쟁의 성격이 정권에 따라 변한다기보다는, 자본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공공부문과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박준형  조합원 확대 문제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문제가 더 있습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의 뒷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자가 조직 확대를 주도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2020년에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경제가 난장판이었어요. 그런데 경제위기 상황에서 어려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냐 하면, 그런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많은 부문에서 생존권 위기가 엄청나게 확산되었는데 그러한 부문에서 조직 확대가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민주노총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취약노동자 조직사업을 위한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고, 그럴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죠. 

물론 상징적인 구조조정 사업장 사례나, 중요한 지역적 조직화 시도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일부일 뿐이고, 위기가 집중된 부문에서 광범위하게 조직된 사례가 없습니다. 한계기업이나 자영업 사업장을 포함한 중소영세사업장은 민주노총이 원래 포괄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포괄하는 방법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민주노총의 결함이 크게 드러난 것이 2020년이었다고 봅니다. 

오기형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정규직 정책이나 취약노동자 정책이 굉장히 빨리 없어졌어요. 정부도 그렇지만 노조도 그 시기에 취약노동자를 조직하고 대변하는 방식의 사업 설계가 핵심이었을 텐데, 그 설계를 잘 하지 못했어요. 그게 작년 한 해 동안 많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금속노조의 젊은 층은 그런 과제를 위해 일종의 정치적 투쟁을 해야 한다면 사회안전망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필수  사회안전망이 정확히 무얼 말하는 것이죠? 

오기형  아주 정교하게 언어화된 것은 아니지만, 주로는 고용보험과 관련된 것입니다. 고용보험 거버넌스를 어떻게 갖추고, 쓸모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대상을 확장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앞으로 구체적으로 담아내야 합니다. 
박준형  지난 해, 노사정대표자회의 요구안을 마련할 때, 금속노조 위원장이 고용보험 강화를 위해, 노동자 부담부분을 포함한 보험료 인상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확인하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상병수당 신규 도입 등 주로 사회보험의 강화를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소형  노동조합의 젊은 세대의 정치적 투쟁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덧붙이면, 사실 매우 제한적인 조건이 아닌가 합니다. 가령 공공부문 정규직화 전환처럼 정부정책이 노조가입의 요인이 된 조합원들은 그 정책을 낸 당사자인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투쟁 이외의 것을 고민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조직된 조합원들이 대거 늘어난 현재, 민주노총도 정부를 비판하고 독자적 정치비판을 하기 보다는 계속 “대통령이 해결하라”는 청원식 활동으로 제한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틀을 어떻게 넘어설 거냐가 우리의 숙제입니다. 

임필수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후의 후폭풍처럼 따라오는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이냐는 문제라든가, 노동조합 신규 조직이 공공부문 중심으로만 이뤄지고 민간부문, 특히 중소영세, 취약 노동자층의 조직계획이 매우 부족한 불균형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문제도 우리가 풀어야 할 거대한 과제로 남아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노총 새 집행부의 출범

임필수  주제를 바꿔서요, 이번에는 민주노총 새 집행부에 대해서 의견을 들어 보겠습니다. 이번 선거결과가 함의하는 바에 대해서나, 새 집행부의 사업계획에 대해서요. 먼저 문재인 정부 집권 4년차에 민주노총 집행부의 교체가 함의하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조합원의 어떤 적극적인 선택으로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다르게 이해해야 할까요. 


박준형  가장 중요한 건 김명환 집행부의 실패였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김명환 집행부가 왜 실패했는가를 따져보면 그 실패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을 포섭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으로 민주노총을 포괄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등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중간중간에 사고 친 것도 있고, 정부의 노동정책이 우왕좌왕했던 것도 있죠. 집권 후반부에는 정부의 노동정책 후퇴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민주노총도 문제였는데, 민주노총이 면밀한 정세판단이나 실현가능성에 대한 고민 없이 요구를 내걸고, 촛불의 지분을 요구한 것도 관계 악화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죠. 이 부분은 정파와 상관없이 전반적인 흐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와 김명환 집행부의 관계가 노사정대표자회의의 파탄과 함께 결국 파탄이 났죠. 


이는 정부나 김명환 집행부 모두 원하지 않았던 바였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결과는 문 정부와 김명환 집행부의 실패인 거고 조합원이 이를 평가하여 선거결과에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 다음에 누굴 찍을 것이냐는 문제에서는 조직력이나 후보자 이미지나 이런 요소가 작용했겠죠. 이번 선거에서는 누가 되었냐보다는 누가 안 되었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위원장 결선이나 부위원장 선거를 보면 지난 집행부를 계승하는 포지션을 취했던 선본을 제외한 선본이 서로 연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고, 지난 집행부에 대한 심판의 의미이기도 하죠.


이소형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김명환 집행부의 실패를 심판했다고 하기에는 조합원들이 사회적 대화 논란의 쟁점을 정확히 인식했는지, 무엇이 정말 무능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정확한 공감대가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심판을 한다고 했을 때, 정확히 어떤 측면을 심판했는지 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투쟁하는 민주노총’이라는 이미지는 항상 잘 먹히기는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오히려 투쟁의 맹목성만 부각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오기형  김명환 집행부가 비민주적이어서 사회적 대화가 파행을 했다, 이건 쉽고 간단한 선동이었어요. 그 이후에 치러진 선거여서 그런 평가가 반영된 거고요.


임필수  정리하자면, 이번 선거가 전 집행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띠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 심판의 의미는 상당히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잘해내지 못했고 심지어 조직 내 파행만 이끌어냈다는 의미에서 심판인지,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추진했던 것 자체가 문제였고 그래서 앞으로는 선명한 투쟁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심판인지 말입니다. 그래서 조합원이 이번 집행부에 어떤 과제를 준 것인지, 이번 집행부가 어떤 정치적 책임성을 부여받은 것인지 모호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새 집행부가 선거에서 제시한 메시지도 상당히 모호했고요. 


그러면 올해 새 집행부의 사업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집행부 사업계획에서 강조한 총파업이나 민주노총 방송국 사업, 청년조직화 사업 등등요.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새 집행부가 핵심공약으로 11월 총파업을 최고로 강조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사업계획은 11월 총파업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셈인데요, 11월 총파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인화  총파업 의제가 시급히 정선되고 합의되어야 하는데 대선을 앞둔 시기 민주노총의 투쟁 필요성만 합의된 상태라 우려가 큽니다. 중앙집행위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11월 총파업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에서부터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합니다. 두 가지 사전에 검토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정치총파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과거 여러 차례의 경험에서 정치총파업(쟁의권과 무관)을 할 수 있는 단위가 지극히 한정적이라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하반기 또한 코로나 상황일 것인데 파업을 하는 조합원들이 대규모 집회투쟁이 아닌 다른 형식의 요구투쟁 방식이 무엇이 있을지 세밀하게 계획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민주노총 중앙위와 상반기 임시대대를 통해 관련된 문제들이 토론되고 합의되어야 합니다.


오기형  금속노조는 임원선거가 있어서 파업은 어렵다는 의견이 많아요. 그래도 정권 말기인데 총궐기 형태라도 투쟁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정권 말기에는 대선 후보들의 의제와 정책에 개입하기 위해 항상 어떤 식으로든 투쟁을 했습니다. 또, 민중운동의 대선 전략을 세우기 곤란한 상황에서 어떤 수준에서라도 투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류미경  11월 총파업 계획 관련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쟁점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최근 총연맹이 총파업을 선언한 후 총파업다운 총파업이 조직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계획을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름은 총파업이지만 참가자 80%이상이 금속노조고, 그것도 2시간 파업에 그치곤 했는데 이번에는 과연 이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냐는 거죠. 


두 번째는 총파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총파업을 통해 무엇을 주장할 거냐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제에 관해서 적어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은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에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경제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반면, 다른 사회 구성원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번에도 조합원들의 요구를 취합해서 총파업 의제로 삼는 것은 이상하고,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기도 힘들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어요. 총파업을 통해서 노동자계급 전체를, 특히 미조직노동자를 대표하는 요구를 걸고 민주노총이 앞장서 싸운다는 모양새를 갖추어야 한다는 제기가 많지요. 


임필수  과거처럼 산별노조 요구를 취합해서 10대 요구와 같은 것을 만들어 내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의견이 많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에 대해 두루두루 합의가 있는 상황인가요.   


류미경  네 그런데요, 항상 딜레마가 있긴 합니다. 작년에도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실현을 표방하며 전태일 3법을 요구했는데, 결국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에서는 당장 노조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특수고용·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보다도 산별노조 간부들의 사업장 출입 제한, 직장점거 파업 금지와 같은 문제가 훨씬 부각되는 실정이었습니다. 총파업을 하려면 조직동원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미조직 노동자들보다도 조합원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산별의 요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미조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요구가 무엇이냐를 두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너무나 각양각색이죠. 여기서 합의를 만드는 것도 무척 어려울 겁니다.


박준형  말씀하신대로, 총파업은 대선용인데, 민주노총이 총파업할 실력도 취약하고, 총파업으로 제기할 요구도 없다는 게 문제에요. 지금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 건, 문재인 정부가 공약을 원래대로 실현하라고 요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어요. 현실에서 이미 실패했는데 이를 계속 똑같이 이행할 것을 요구하니 시대착오적인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요구를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면 차기 정부가 하라고 요구할 터인데요, 문제는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포퓰리즘적 행보가 이어지면서, 민주노총의 요구 중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설사 무리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인물이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부분은 역시 고려하지 않겠죠. 


특히 민주당에서 이재명 지사가 유력 대선후보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이러다가는 “전국민재난지원금”을 요구했던 민주노총이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을 지지하거나, 그의 포퓰리즘 공약을 전체적으로 지지하면서 자신의 요구 몇 개를 끼워 넣는 식으로 갈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총파업을 말하기 전에, 어떤 요구를 내걸어야 하냐는 문제부터 우리가 분명히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기형  진보당은 자신들의 대선 공약을 민주노총이 수용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겠죠. 어떤 요구를 중심으로 민주노총이 단결하고 투쟁할 것인지를 미리부터 논의해 나가지 않으면 민주노총은 진보당의 대선 공약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하게 될 거예요.


임필수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두고 봐도 그렇고 한국의 정치판 자체가 포퓰리즘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허무맹랑한 얘기일수록 더 좋다는 분위기마저 있는 것 같아요. 민주노총이 미조직, 취약 노동자층의 요구를 대표하는 투쟁을 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좋지만, 그러한 요구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오히려 포퓰리즘적 경쟁에 앞장서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는 여러분의 의견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럼 방송국이나 청년사업단 사업에 관해서도 짚을 것이 있을까요.


이인화  총연맹 집행부는 민주노총 방송국을 주요한 사업으로 상정하고 있는데요, 잘되면 좋겠지만 우려가 있습니다. 방송국을 그냥 설립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조합원들을 비롯해서 외부인들이 보게 하려면 그럴만한 컨텐츠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만든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요. 방송국과 관련한 총연맹의 사업계획을 보면 교육기능을 방송국 기능의 한축으로 잡고 있는 것 같은데 방송을 접하는 대상을 교육대상으로 상정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청년사업 또한 방향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청년을 조직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할 수 없고요, 현재 질 좋은 일자리가 적어지면서 나타나는 여러 사회문제, 그러니까 비정규직, 세대갈등, 공정성 문제가 청년문제와 같이 묶여 있기 때문에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임필수  이번 집행부가 말하는 청년사업이라는 게 미조직 청년노동자를 조직하겠다는 데 방점이 있는지, 아니면 조합원 중에서 청년간부를 육성하겠다는 데 방점이 있는 것인지요. 


류미경  청년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겠다는 겁니다. 특히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을 학생 때부터 조직화한다는 거에요. 이걸 위해서 예를 들어, 교육과정에서 노동인권 교육에 개입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학교부터 민주노총’이라는 슬로건으로 이런 구상을 제시하고 있어요. 그런데 청년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라는 비판이 나왔죠. 청년고용이 확대되지 못하는 노동시장 구조 문제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종합적인 전략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이런 비판이 제기되니 이른바 공정담론에 대해 비판을 하는 식으로 담론형성을 하자는 사업계획이 추가되었어요.


박준형  이른바 ‘공정담론’에 대한 그러한 대응에도 생각해 볼 대목이 있습니다. 취업준비생이나 기존 정규직 직원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런 문제가 공공부문 노조운동에서는 상당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나 공공운수노조 사업 계획을 봐도 주로 이러한 갈등을 이데올로기, 담론 문제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이데올로기 이전에 물질적 근거가 있는 것이죠. 당연히 재벌, 공공부문의 정규직에 제한된 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둘러싼 극심한 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겁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도록 만드는 경제적 조건부터 검토하지 않고, 공정 담론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니까 조합원을 교육하면 된다, 다른 좋은 담론을 만들면 된다는 식의 접근방식이 주류인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이런 식의 접근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고용·노동체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기존 정규직, 기존의 정규직을 추격하려는 정규직 전환자, 입직을 갈망하는 실업자(취업준비생)라는, 서로 갈등하는 행위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가 없겠죠. 고용이 안정된 고임금 일자리가 제한되어 있고, 그런 자리를 두고 입직 경쟁을 하면서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두고, 이러한 구조 형성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이 있는 노동조합의 자기반성이 없다면 결코 해결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하다가는 정규직, 젊은 조합원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다가 끝날 수가 있습니다. 


류미경  노동조합이 당장 대공장 정년연장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도 있는데 그렇다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오기형  들고 나올 것 같습니다. 완성차 지부들이 정년연장 논의를 공론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해에 금속노조는 국민연금 수급 시기 전까지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그래서 완성차뿐만 아니라 다른 단위에서도 정년연장을 요구할 건지 여부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곤란이 있는데, 하나는 청년고용 문제와 충돌하는 측면이고요. 또 하나는 노인 빈곤 문제인데요, 정년연장 지지하는 논리로 노인빈곤 해소가 있는데, 실제로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는 경우에도 퇴직 후 심각한 노인 빈곤에 처하리라 생각하기는 좀 어렵죠. 오히려 노인 간 소득격차가 확대될 수 있죠. 어쨌든 금속노조가 정년연장 요구를 열었기 때문에, 소속 조합에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박준형  2015년 개정된 고령자고용법에 따라 법정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후, 공공기관에서는 임금피크제가 시행되어 노조가 크게 반발했습니다. 당시 정년연장에 따라 청년 채용이 줄어드는 문제 때문에 도입된 제도였죠. 앞으로도 추가적인 정년 연장 시, 신입직원보다 고령자의 임금이 상당히 높은 연공급제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청년 채용 규모도 문제인데요, 일각에서는 정년 연장이 된다고 해도 청년 채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경제성장기, 또한 기업 수준이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을 대상으로 분석할 경우의 특수한 사례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정원이 정해진 공공부문에서는 정년 연장에 따라 수년간 퇴사자가 없을 경우 청년에 대한 신규채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년 연장이 차기 대선을 앞두고 논란이 된다고 할 때, 연공급제와 함께 공공부문 등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도 다시 쟁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21년 과제

임필수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이 남았지만요, 이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마무리 발언 격으로 참석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2021년의 최우선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이인화  서두에 말한 것처럼 총연맹이 민주노총의 비전을 제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총연맹의 기본적인 의무이기도 하고요. 비전이라고 하면요, 민주노총이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조직이냐를 조직원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 그렇지 못하니 조합원들이 조직소속감이 약합니다. 


비전 제시가 있어야 그 과정에 조직도 강화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게 총파업을 어떻게 하는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본부의 곤란함도 총연맹의 방향성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게 없으면 지역본부가 제각각 사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노총의 비전이 뚜렷하면 지역은 그 비전을 따라 세부 방향과 사업을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지역본부에서 청년사업을 하면서 조금씩 한계지점을 느낀 게 있습니다. 청년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떻게 청년간부를 만들 거냐는 시각에서 접근했는데, 그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청년이 간부가 되지 않는 것이나, 청년이 조직되지 않는 이유는 청년이 민주노총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와 관련되어 있어요. 민주노총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한계들이 청년사업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는 거죠. 


현재 상황을 보면, 청년들은 지금 빚내서 주식투기해서 향후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노동으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민주노총의 뚜렷한 비전이 필요한 시점이죠. 


오기형  현재 우리가 처한 조건을 보면, 우리에게는 당이 없죠. 산별노조 진보정당 양날개 노선이 그렸던 정치세력화가 파산한 셈이에요. 더 이상 당도 없고, 시민단체도 없습니다. 결국 민주노총이 예전보다 한국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자임해야 해요. 사회를 개혁하고 개조하는 역할을 해야 하죠. 그래서 민주노총이 정치화되어야 해요. 


민주노총이라는 조합조직이 정치적인 세력이 되기 위해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찾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하신 것처럼, 민주노총이 어떤 비전을 실현할 도구인지 스스로 꿈을 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금속노조 차원에서는 산업구조 전반에 대해, 그 산업에 속한 노동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산업전환에 대해 개입할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박준형  민주노총의 노선이나 정세인식, 운동방식이 십수년간 시대와 정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상당히 지체되어 있습니다. 정세에 어느 정도 뒤처지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2000년대 이후 한 20년은 뒤쳐진 것 같고,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인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 격차가 너무 벌어져서는 안 돼요. 


총연맹도 할 일이 있지만 다른 활동가들도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대로면, 다음 대선이나 정권에서도 민주당 뒤만 따라다니다가 끝날까봐 걱정입니다. 요즘 보면 주식투자하는 2030도 경제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하는데.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그 정도도 공부를 안 합니다. 시대에 뒤쳐진 상황을 뛰어 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류미경  앞에서 이야기한 과제를 실현하려면, 민주노총은 정치적인 토론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가 고민입니다. 


박준형  민주노총이 뭔가를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인 거겠죠. 작년의 사회적 대화가 파탄 나는 과정을 보면, 중요한 의제나 쟁점에 대해 민주노총 안에서 제대로 토론하거나 합의를 형성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류미경  민주노총 내부에서 나타나는 상이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려면 합의된 원칙이 필요하고 원칙을 합의하기 위해서는 공통된 인식 지반을 만들기 위한 대화와 토론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지난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어렵게 합의를 형성하기 보다는 힘이나 큰 목소리로 밀어붙이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또 민주노총의 사회적 역할과 비전을 찾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전체 조합원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간부들의 합의된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걸 만들어가는 토론 역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앞에 세 분이 말씀하신 것을 실현하기 위해선 대화와 토론의 기풍을 만드는 게 키포인트일 것 같습니다. 


이소형  말씀해주신 의견을 종합하면 민주노총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지향을 가져야 하는가를 밝혀야 하지만, 내부에서는 정치적 토론조차 불가능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결국, 합의된 비전이 없으니 정세에 뒤쳐진 인식과 시대와 맞지 않은 투쟁을 지속하게 되는 것이겠죠. 


참 답답한 상황인데 민주노총 내부 활동가들의 노력만으로 개선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십수년동안 만들어진 조직운영의 관성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핵심적 문제인 기업별노조체계나 총연맹의 역할도 내부 활동가들이 문제의식을 꾸준히 가져왔지만 당면 사업에서 우선순위가 밀리는 문제겠지요. 
결국 민주노총 내외부의 활동가들이 협력하여 민주노총의 정세인식과 비전을 공론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노조 활동가들은 내부를 혁신하기 위한 현실적 수단을 찾고, 외부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함께 노조운동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정세적 역할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민주노총 내외부가 호흡과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필수  과거 단병호 위원장 때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가 구성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벌써 20년 전 일입니다. 민주노총 내외부에서 활동가들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쟁점도 뽑고, 그걸 공론화하는 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장이 확실히 계속해서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마무리로 하신 말씀을 들으니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고요, 사회진보연대가 해야 할 역할도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시간 토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