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4년, 노동조합운동의 흐름
2017년, 문재인식 ‘노동존중’에 막연한 기대를 걸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는 노동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의 주요 내용은 “좋은 일자리”, “노동존중사회”, “차별 해소” 정책 등으로,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좋은 일자리 정책에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포함해 공공부문에서 81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서비스 공단 설립을 통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34만 개 창출한다는 계획이 담겨있었다. 노동존중사회 정책에는 2016년 박근혜 정권이 추진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기, 불합리한 단협 시정지도 개선, 부당해고 구제절차, 노동인권교육, 감정노동 대책 마련과 ILO(국제노동기구)핵심협약 비준이 있었다. 차별 해소 정책으로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실현,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확대 등이 추진되었다. 정부와 노동운동은 이러한 노동개혁이 소득주도성장을 실현하는 경로가 된다고 인식했다.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통해 노동자의 소득이 늘어나 민간소비가 증가하여 국민소득이 향상될 수 있다는 주장을 공유했다.
정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같은 2차 노동시장의 임금 증대 정책뿐 아니라 노동계가 요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노동권 전반의 강화, 산별노조 제도 개선 등 노동친화적 요구들도 과감하게 입안했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노동존중정책”을 촛불의 성과이자 적폐청산의 산물로 인식했다. 단적으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한편, 2017년 당시 조직노동의 주력인 공공기관 노조들은 문재인 정부와 상당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2016년 박근혜 정권 때 공동파업을 전개한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는 2017년 상반기 성과연봉제의 불법성이 제기되면서 박근혜 퇴진 투쟁의 주요 동력이 되기도 했었다. 문재인 취임 직후, 기재부는 6월 ‘2016년 경영실적 평가결과’에서 성과연봉제 항목을 삭제했고 9월에는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노동개악으로 꼽히는 양대 지침(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폐기했다. 성과연봉제 폐기 이후 공대위는 재원(약 1,600여억 원)으로 공공상생연대기금 운용을 위한 재단을 설립해(2017. 11. 7 발기인대회)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모범사례로 선전했다. 공공기관 노조들은 문재인 정부와 노정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2018년 예산편성지침이나 경영평가 개선 등에 대한 여러 노정협의 채널을 만들었다. 박근혜 정권 시기 중단된 산별교섭도 일정 성과를 내며 노동정책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2018년, 경사노위와 소득주도성장이 결국 실패하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운동의 지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노사정기구 설립을 추진했다. 2017년부터 국가일자리위원회, 4차 산업혁명위원회, 국가교육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를 발족해 노동·시민 진영을 포괄했고, 특히 국가일자리위원회는 노동계의 참여를 통해 박근혜 정권의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경사노위)에서 무너진 신뢰를 복원해 사회적 협의기구를 재가동한다는 구상을 깔고 있었다. 2017년 9월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는 일자리위원회 참여를 결정했다. 2018년 1월 사회적대화기구대표자회의가 출범했고, 5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법률이 제정되어 11월 경사노위가 출범했다. 민주노총은 대표자회의에 참여했고 경사노위법 제정에도 개입했다. 민주노총의 요구는 법 개정에 반영되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는 2018년 10월, 임시(정책)대의원대회에서 성원 미달로 유회되었고, 2019년 1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참여’ ‘조건부 참여’ ‘참여 이후 탈퇴’안 모두가 부결되었다. 당시 문정부가 추진한 일자리위원회나 경사노위에 대해 민주노총 내부에서 우호적 경향이 상당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명환 집행부는 경사노위 참여의 목표와 전략을 분명히 세우지 못해 결국 조직 내 합의를 만들지 못했다.
2018년 ‘고용쇼크’ 논란에 이어 경제지표가 하락하자,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노선을 폐기하고 초기 노동정책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가 되었고, 중소자영업자의 거센 반발이 야기되자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을 공식 폐기했다. 그리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주휴수당 산정기준 포함 등의 보완책을 추진했다. 2019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2.87%로 낮아졌고 중소자영업 일자리안정자금, 상가임대료와 카드수수료 인하 등 보호정책이 시급히 추진되었다. 노동시간 단축 역시 주 52시간 제한은 탄력근로제 단위시간 확대로 보완되었다. 문정부의 노동정책 ‘후퇴’는 경제가 장기 저성장시기로 돌입한 객관적 조건에서 소득주도성장이 실현 불가능했다는 점을 방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노동운동의 혼란이 시작되었다. 민주노총은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하지 말라는 입장을 발표하고, 집권 초기의 노동개혁을 완수할 것을 주문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52시간 제한은 이중적 노동시장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2차 노동시장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었으나 노동운동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한지원, 「저임금·임금격차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접근방향: 최저임금 인상·소득주도성장의 한계와 대안」, 《계간 사회진보연대》 2019년 여름호 참고.)
2019년, 공공부문의 조직 확대를 기반으로 제1노총 지위에 오르다
2017년 7월 20일,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발표하고, 2020년까지 20만 5천 명의 정규직 전환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까지 전환이 확정된 인원은 17만 5천 명으로 애초 목표의 85.4%에 해당된다. 정규직화 정책은 자회사 전환과 임금체계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과 갈등이 발생했다. 민주노총은 ‘제대로 된 정규직화’ 투쟁을 벌였고 그 내용은 자회사가 아닌 기관이 직접 고용하라는 것과, 기존의 대기업·공공기관의 연공급 임금체계를 정규직 전환자에게 적용하라는 것이었다. (김동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평가」, 《계간 사회진보연대》 2019년 가을호 참고.)
정규직화 정책에 대응하는 민주노총의 투쟁과 조직사업은 유례없는 조합원 규모확대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노동조합 전반의 조직률은 증가세를 유지했고 2000년 이후 처음으로 12%대를 기록했다. 2019년 말 기준 노동조합 조합원 수는 253만 1천 명으로 전년(233만 1천 명)보다 20만 명 증가하였고, 조직률은 12.5%로 전년(11.8%)보다 0.7%p 증가했다. 민주노총은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104만 5천명(41.3%)으로, 한국노총 101만 8천명(40.2%)를 제치고 조합원 규모로 ‘제1노총’ 지위를 얻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 조합원은 문 정권하에 30만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극단적으로 조합원 10명 중 3명은 문 정부 출범 이후 가입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 부분은 노조가입률에도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공무원과 공공부문의 증가세가 뚜렷하고, 사업장 규모 간 격차도 뚜렷하다. 2019년 300인 이상 사업장 조직률은 50.6%인 반면 30명 미만 사업장은 0.1%에 불과하다. 전체 조합원 중 87.5%가 300인 이상 대기업에 종사한다.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일정 규모 이상 공공기관에서만 실행되고 있는 현실조건에서, 조직률의 격차를 통해 노조 가입이 늘어난 요인을 추정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목표하는 경제적 이익이 노조 가입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노사관계의 갈등에도 일정한 합의가 마련되었다. 2018년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이 이루어졌고, 2019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노조 결성이후 최초로 파업을 하지 않았다. 당해 파업일수를 추정할 수 있는 근로손실일수는 2019년, 20년 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근로손실일수는 2016년 박근혜 정권 시기에 203만 5천일로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86만 2천일(2017년), 55만 2천일 (2018년), 40만 2천일(2019년)로 점점 적어졌다.
지난 4년 동안 민주노총은 조직 확대의 측면에서나, 노사관계의 측면에서나 외형적으로는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의 후폭풍인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이 격화했고, 노조 신규조직이 민간·중소영세 사업장 층의 조직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불균형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정규직화 투쟁의 잘못된 목표를 정정하지 않고, 청와대가 직접 모든 문제를 책임지라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은 양질의 일자리가 극히 제한적인 노동시장의 구조, 재정제약의 현실 등에 대한 종합적 고려가 없이 대중적 여론을 의식해 추진한,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정책이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이를 비판하지 못했고 오히려 노조를 통해 경제적 실리를 얻는 투쟁만 집중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노동운동의 역할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다
문재인 집권 후반기인 2020년, 조직노동은 일정한 성과를 얻기도 했다. 9월, 대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 결정을 취하하여 교원노조의 합법화의 길이 열렸다.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의 전제조건으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노조 가입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위기 시기, 노동운동의 혼란은 지속되었다.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하여 문재인 정권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열었지만,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목표와 내용, 조직적 합의조차 만들지 못해, 결국 대의원대회 결정에 따라 사회적 대화 최종합의에 불참했다.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의 무능함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대화냐 투쟁이냐’라는 구도에 갇혀 사회적 협의의 정세적 필요조차 부정하는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다.
재난 시기 노동의 양극화가 심화되었지만, 민주노총의 사회적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제1노총이 대변해야 할 취약노동층의 사회안전망 정책조차 정부 정책을 뒤따르는 수준이었고, 집권여당이 주도하고 있는 전국민재난지원금, 기본소득 류의 포퓰리즘 매표정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가 K자 양상으로 회복되고 있으나, 민주노총은 여전히 무능하다. 기업별노조 체계에서는 단위 노조가 각자도생의 실리 추구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민주노총이 노동자 전체의 격차를 축소할 방법을 내놓지 못하면 이런 경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코로나19 위기로 가중된 장기 경제침체 시기에 대기업·공공기관의 고임금 체계가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는 조직노동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성과연봉제 폐기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공공기관 연공급의 직무급 재편을 추진해왔다 2020년 11월 2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는 공공기관의 임금체계를 기관별 직무급으로 개편하고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공공기관 연공급체계에 직무급 요소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노동운동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지만, 합의안에 ‘개별 기관 노사합의를 통해 추진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어 기업별 노사합의로 임금체계 개편을 방어할 여지는 얼마간 존재한다. 그러나 임금격차 완화에 있어 공공기관 임금체계의 변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초기업적 교섭제도가 부재한 상황에 공공기관 내부 및 기관별 격차, 또한 공공-민간 사이의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노조의 주도적 계획이 필요한 상황이다.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노동시장의 단기적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고용파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사회적 역할을 회피할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의 집권 후반기 노동정책은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중심으로 재정 160조 원을 투입해 일자리 19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집권 초기에 이미 실패한 일자리 131만 개 창출공약과 유사하다.(사회운동포커스 「한국판 뉴딜, 160조원짜리 대국민 사기극!」 참고.)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산업적 구조나 경제적 근거에 대한 검토 없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경기부양책을 거창하게 포장만 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 4년간 문재인 정권에 의존적이었던 노동운동의 태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허구적인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도 또다시 정부여당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퇴행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극단적인 경제침체라는 객관적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실현가능한 사회적 요구가 시급하다. 제1노총으로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지난 문재인 정권 4년 동안 노동운동이 어떤 한계에 왜 봉착했는가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