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K-방역’의 실체
“방역은 너무 잘하니까 별로 질문이 없으신가요?”
2021년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현 정부는 소위 ‘K-방역’을 집권기 제일 큰 치적으로 내세우는 모양새다. 대북 정책은 하노이 노딜과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실패가 명확해졌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경제는 못 살리고 거품만 키웠다. 2020년 경제성장률 –1.0%가 남들보다 낫다며 자화자찬하지만, 문재인 정부 내내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기만 했지(2017년 3.2% → 2018년 2.9% → 2019년 2.0%), 한 번도 상승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K-방역’은 성공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긴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유행은 현재진행형이다. 집단 면역 형성을 종점으로 본다면, 빨라야 올해 말이나 되어야 끝날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는 단순히 보건의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특효약이 존재하지 않는 신종감염병 대응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등 방역 정책이 핵심인데, 이는 온갖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를 수반한다. 따라서 보건의료 외에도 여러 사회적 문제를 고려한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접근법에는 어떤 변수들을 고려해야 할지, 체계화되지 않은 데이터들을 어떻게 해석할지 등 곤란한 점이 여럿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의 ‘K-방역’의 신화는 없다. 여러 사회적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아시아에서 중간 수준이다. 대만,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등의 국가가 남한보다 훨씬 더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0~2021년 겨울을 앞두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각종 소비쿠폰을 발행해 대유행을 촉발했다. 또 2~3월에 대구에서 병상과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도 반년 넘게 병상과 인력에 대한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상반기부터 이번 겨울 유행 가능성이 크다고 의견을 냈으나, 경고와 조언을 완전히 무시했다.
문재인 정부는 환상에 근거한 자화자찬을 멈추고 반성과 사죄를 해야 마땅하다. 지난 1년간의 남한 코로나19 사망자의 70%는 11월부터 2월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무능한 대비로 시작된 겨울 대유행의 결과로 사망자가 대거 발생했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나가고 있다.
분석의 전제와 대상
이 글에서 제시하는 분석은 모두 탐색적(exploratory) 분석이다. 추후 확증적(confirmatory) 학술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인용하는 통계 수치들은 세계은행이나 세계보건기구와 같이 공신력 있는 출처에서 가져왔지만, 전문적인 기법을 통해 검증하거나 가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추세나 방향을 파악하는 수준에서 분석했고,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제 분석의 대상을 살펴보자. 기간은 2020년 1월 1일부터 2021년 2월 20일까지다. 2020년 2월 20일에 남한에서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했다. 1년간 축적된 확진자 수와 사망자 데이터는 문재인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2020년 초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폭발할 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코로나19에 대해 잘 몰랐다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1년 동안 몰랐다고 변명할 순 없다.
사계절을 모두 겪었기 때문에 계절에 따른 편차도 모두 평균화되면서 사라진다. 예컨대 겨울에만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이라면, 분석 기간이 겨울로 한정되면 사망자 수가 실제보다 과장되어 측정될 수 있다. 물론 코로나19는 남한의 지난 8월 유행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듯이, 여름에도 유행이 가능한 질병이다.
국가 간 비교를 할 때는 아시아 12개 국가 또는 특별행정구를 대상으로 했다. 일본, 남한, 대만, 홍콩, 몽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이다. 아시아 국가만을 포함한 이유가 있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은 국가는 대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다. 원인은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치문화적 차이점을 핵심 요인으로 지적하는 학자가 많다.
유럽과 북미에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를 따르는 국가가 많다. 이들 국가에서는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나 제도가 매우 적다. 따라서 정부가 아무리 강력한 방역 정책을 내놓아도 따르지 않는 시민이 많다. 이를 정책 순응도(compliance 또는 adherence)가 떨어진다고 한다. 또, 마스크 착용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이나, 사스(SARS)와 메르스(MERS)에 대한 대처 경험 등도 아시아와 북미·유럽은 큰 차이가 난다. 그런데 정책 순응도나 감염병과 관련한 문화의 차이를 정량적으로 측정한 자료는 아직 없다. 설령 있다 해도, 이걸 분석에 반영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과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정치문화적 차이가 적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일본을 제외하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대동소이하다. 메르스나 사스에 대한 대처 경험도 비슷하다. 따라서 정치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도 분석의 타당성을 일정 수준 확보할 수 있다.
국제연합(UN)의 지리 구분체계에 의하면 동아시아에는 일본, 남한, 북한, 중국, 홍콩, 대만, 몽골, 마카오가 있다. 이 중 중국과 북한은 통계 데이터의 신뢰성이 떨어져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마카오는 인구가 68만 명으로 매우 적어 편의상 제외하였다. 동남아시아에는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동티모르, 베트남이 있다. 이 중 인구가 43만 명으로 매우 적은 브루나이는 제외했다. 또 코로나19 사망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국가인 캄보디아, 동티모르, 라오스 역시 통계 데이터의 신뢰성 문제 때문에 제외하였다.
최종적으로 분석에 포함된 국가는 일본, 남한, 대만, 홍콩, 몽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12개 나라 또는 특별행정구(이하 분석대상국)이다. 각국의 백만 명당 확진자 수, 사망자 수, 검사 수는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Worldometer)에서 가져왔다. 통계 데이터의 신뢰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인구 백만 명당 검사 수는 표 1과 같다. 대체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대만의 검사 수가 적지만, 코로나19 대응이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구밀도는 따로 분석에 반영하지 않았는데, 평균 인구밀도가 코로나19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인구밀도가 높다면 당연히 전파가 잘 되겠지만, 그만큼 접촉 추적, 격리, 치료가 수월하다.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싱가포르나 홍콩이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성공한 축에 속하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가 인적이 드문 시골보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순 있겠지만, 각국의 도시별 인구 분포를 분석에 반영하는 건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 여기선 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응의 성적표: 백만 명당 사망자 수
분석대상국 정부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얼마나 잘했는지를 평가해 보자. 이 글에서는 인구 구조를 고려한 백만 명당 사망자 수를 핵심지표로 한다. 《뉴레프트리뷰》(New Left Review)의 편집장인 수잔 왓킨스는 확진자 수는 ‘얼마나 심각한 유행을 겪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일 뿐이라면서, 단위 인구당 사망자 수가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는 더 중요한 지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코로나19는 무증상자 비율이 높기 때문에 방역 정책이 일정 부분 무력화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반면 확진되고 나서부터의 대처 방식은 각국 정부가 정하기 때문에, 사망자 수가 대응 능력을 평가하기 더 적절하다.
여기서는 왓킨스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구 구조를 약식으로 반영한 지표를 쓴다. 코로나19는 연령대별로 치명률(사망자 수/확진자 수)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 남한 자료를 봐도 50대 이하에서는 치명률이 0.5% 이하다. 60대의 치명률은 1%대이고 70대는 6%대, 80대는 20%대에 이른다. 따라서 각국 정부의 대응을 비교할 때 인구 구조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저질환이 있으면 사망할 확률이 높다는 점도 주요 특징이지만, 어떤 기저질환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자료가 없어서 반영하지 않는다.
교과서적으로 한다면, 연령대별 구성비율과 연령대별 사망자 수를 통해 연령 표준화 사망자 수를 구해야겠지만, 이 글은 학술논문이 아니라서 약식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세계은행 자료)만 반영했다. 분석대상국 65세 이상 인구 비율 평균은 11.25%다. 백만 명당 사망자 수를 각국 65세 이상 인구 비율로 나눈 후 평균값을 곱해주었다. 이렇게 되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는 실제 사망자 수보다 적게 추산되고, 고령인구 비율이 낮은 국가는 사망자 수가 더 높게 추산된다. 이 수치를 ‘수정사망자 수’라고 하자.
결과는 표 2와 같다. 남한은 분석대상국 중 수정사망자 수가 6위다. 반대로 말하자면, 12개국 중 7번째로 대응을 잘했다는 이야기다. 자화자찬하기에는 부끄러운 순위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코로나19 과학위원회에서는 2021년 1월 8일 마카오, 베트남, 태국, 일본, 남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인구 10만 명당 연령 표준화 사망률을 계산해 발표했는데, 순위가 이 글에서 한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대 자료에서 남한의 연령표준화 사망률 순위는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 아시아 중하위권이다.
그림 2는 백만 명당 확진자 수와 수정사망자 수를 동시에 나타낸 그래프다. 사망자 수는 대체로 확진자 수에 비례하는 양상이지만, 전체적인 경향에서 이탈한 국가들도 눈에 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이탈이 극명하다. 일본도 경향에서 약간 이탈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낮은 연령층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했을 수도 있고, 확진자 발생 후 격리와 치료에 있어서 성공적으로 대응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정부의 대응이 유효했다는 이야기다. 낮은 연령층에서 발생한 확진자가 고령층까지 전파되는 건 막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남한보다 확진자 수는 훨씬 많지만 수정사망자 수는 적다. 확진자 수보다는 사망자 수가 대응 평가에 훨씬 더 좋은 지표라는 걸 알 수 있다.
신종감염병 대응에 필요한 사회적, 물질적 조건 평가
앞서 살펴봤듯이 남한의 코로나19 대응 성적표는 중위권이다. 왜 중위권에 머물렀는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신종감염병 대응에 필요한 물질적, 사회적 조건들을 평가해 보자. 이런 조건들은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담당한 정부가 만들었다기보다, 주어진 것들이 많다. 예컨대 정책순응도나 인구당 병상 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고 대응 성적을 평가하면, 엉뚱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 절에서 분석한, 코로나19 대응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말레이시아 연구진들이 《국제환경연구 및 공중보건 저널》에 기고한 논문을 주로 참고했다.
정부는 사망자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역 정책을 실시한다. 이 정책이 잘 작동하면 유효 감염재생산수(R)를 감소시킬 수 있다. R은 한 사람의 환자가 평균적으로 전염시키는 사람의 수를 뜻한다. 대면 접촉 시 마스크 착용 및 2m 거리두기를 실시하거나, 원격수업과 재택근무로의 전환, 공공행사 중단, 사적 모임 중단 등은 모두 R을 감소시킬 수 있다. 정부는 캠페인 같은 선전활동을 기본으로 하면서, 권고에서부터 처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역 정책을 시민들이 믿고 따르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정부가 유능하면 더 유리하겠지만, 아무리 정부가 유능해도 정치문화적 요인을 넘어서긴 쉽지 않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나 영국의 존슨 총리보다 독일 메르켈 총리가 훨씬 더 유능하게 대응했어도, 독일의 백만 명당 사망자 수는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훨씬 더 많다. 정치문화적 요인의 핵심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다.
네덜란드의 사회과학자인 기어트 홉스테드(Geert Hofstede)가 개발한 개인주의 지수를 살펴보면 그림 3과 같다. 각국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지수로 나타낸 것으로 범위는 최저 0점, 최고 100점의 범위이다. 2015년 12월 조사 결과, 서유럽 국가나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모두 개인주의 지수가 70 이상이다. 반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10~30에 불과하다. 오직 일본만이 46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개인주의 지수를 보여준다. 남한은 지수가 18로 매우 낮은 수치를 보여 집단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영국 애스턴대학 연구진들의 탐색적 연구에 의하면 개인주의적 성향은 코로나19 단위 인구당 사망자 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대개 개인주의 지수가 높을수록 사망자 수가 많다.
또 하나 주요하게 참고할 수 있는 지표는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정부에 대한 신뢰도다. 최근 영국 워윅대학, 옥스퍼드대학, 미국 뉴욕대학, 하버드대학 연구진 등이 세계 170개국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유행에 대한 인식과 관련 행동에 대한 인터넷 설문조사를 했다. 인터넷 설문조사라 여러 편향성이 존재할 수 있지만, 그래도 참고할 만한 조사다. 그 중 “정부가 시민을 위한다는 걸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5가 “매우 신뢰한다”, 1이 “매우 신뢰하지 않는다”였는데, 남한은 4.19점으로 나타났으며 분석대상국 중 베트남(4.66), 대만(4.53), 싱가포르(4.33)에 이어 4위였다. 반면 영미권 국가들은 모두 낮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코로나19에 비교적 유능한 대응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호주도 2.92점에 그쳤다. 영국은 2.71점, 미국은 1.98점이었다.
그림 4는 개인주의적 성향과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그래프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약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좌상단에 위치할수록 방역에 유리하다. 그래프를 봤을 때 남한은 분석대상국 중에서도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시민이 정부를 매우 신뢰하는 그룹에 속한다. 방역 정책의 효과를 보기 쉬운 조건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성숙한 시민의식’을 운운하는 건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적어도 정부 방역 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에 있어서만은 남한 시민들은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책 순응도 외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사회적 조건으로 호흡기 신종감염병 대처에 대한 경험이 있다. 최근 20년 사이에 세계적으로 유행한 호흡기 신종감염병으로는 사스(2003년),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2015년)가 있다. 남한은 세 가지 전염병 모두를 겪었는데, 특히 메르스를 심각하게 겪은 유일한 아시아 국가다. 메르스 환자 발생 건수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도 메르스를 겪었으나 환자가 1~2명 수준이었다. 사스는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환자가 발생했으나, 일본과 미얀마는 사스와 메르스 모두에 대한 대처 경험이 없다. 따라서 호흡기 감염병 대처의 역사적 경험에서도 남한은 아시아 국가 중 매우 유리한 조건에 있다.
이제 물질적 조건을 살펴보자. 감염병에 대처할 수 있는 제도와 시설, 인력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한 세계보건안전지수(Global Health Security Index, GHSI)가 있다. 2014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대유행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미국 핵위협방지구상(NTI), 존스홉킨스대학 보건안전센터,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정보분석기구가 공동으로 조사해서 산출하는 지표다. 2019년 10월에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예방, 감시, 신속 대응, 의료 시스템, 물자 및 재정 준비, 위기 관리 능력, 총 6가지 분야에 대해서 140개 세부지표를 평가한다. 최고점은 100점이다.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대만과 홍콩은 중국으로 인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남한은 70.2점으로, 분석 대상 12개국 중 73.2점을 받은 태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며, GHSI 195개 조사국 중에서도 9위에 위치했다. 이런 대처 인프라는 경제적 수준에도 영향을 받지만, 그보다는 역사적 경험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분석대상국 중 GHSI 1, 2, 3위를 차지한 태국, 남한, 말레이시아는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를 모두 겪은 국가다.
그런데 GHSI는 코로나19에 특화된 지표가 아니다.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물질적 지표는 병상 수와 의료 인력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대만 보건부, 홍콩 보건부의 자료를 통해 현황을 살펴보자. 여기서도 남한은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인구 만 명당 병상 수가 124.3개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다. 어마어마한 병상 수와 비교해 간호 인력은 부족한데, 만 명당 간호사 수가 68명으로 일본의 절반 수준이며 분석대상국 중에서도 5위에 그쳤다. 대유행이 있었던 2~3월의 대구와 겨울철 수도권에서는, 간호사들을 소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위기를 타개했다. 인구 만 명당 의사 수는 23.6명으로 일본(24.1), 대만(23), 싱가포르(22.9)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물질적 조건을 검토할 때, 1인당 국민소득도 참고해서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방역 정책이 강력할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국가부채가 증가한다. 따라서 경제적 여력이 충분한 국가일수록 강력한 방역 정책을 펼 수 있다. 남한은 싱가포르, 홍콩, 대만, 일본과 함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평가지수 기준으로 4만 달러가 넘는 고소득국가다. 따라서 코로나19에 대응할 경제적 여력은 상대적으로 충분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남한은 분석대상국 중에서도 신종감염병에 대처할 물질적, 사회적 조건이 간호 인력을 제외하면 모든 측면에서 유리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정부가 적절한 방역 정책을 내놓았다면 사망자 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분석대상국 12개 중 7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혹시 문재인 정부가 봉쇄 없이 코로나19에 대응했다는 주장처럼, 방역 정책의 강도가 약했던 것은 아닐까?
방역 정책의 강도와 위반 시 처벌 조항 비교
이 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수치화하는 데 있어, 문재인 정부가 정립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또는 5단계를 이용하지 않는다. 거리두기 기준 자체가 중간에 대거 수정되었을 뿐 아니라, 기준에 없는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나 ‘유흥업소 집합금지’ 등과 같은 부수적 수단이 계속해서 출현하기 때문이다. 좀 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세계 각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평가하는 연구인 ‘옥스퍼드 코로나19 정부 대응 추적’ 프로젝트의 결과를 이용한다. 이 프로젝트는 3가지 분야의 정부 대응을 평가한다. 첫 번째는 확산방지 정책(C), 두 번째는 경제 정책(E), 세 번째가 의료 정책(H)이다. 각각의 분야마다 세부지표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C에는 등교 중단, 재택근무, 공공행사 취소, 모임 규모 제한, 대중교통 중단, 이동 제한 등 8개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세부지표를 종합해 여러 가지 지수를 산출하는데, 가장 유명한 건 확산방지 정책 전체와 의료 정책 일부를 포함한 엄격성 지수(Stringency Index, SI)다.
먼저 분석대상국들의 엄격성 지수 평균을 구해보았다. 분석 기간 중 엄격성 지수 총합을 분석 기간의 일수로 나누어 구하였다. 단순한 산술평균이기 때문에 각국의 방역정책을 완전히 반영한다고 볼 순 없지만, 각국의 방역정책의 강도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대체적인 그림은 확인할 수 있다. 남한의 엄격성 지수 평균값은 49.3으로 분석대상국 중 8위를 차지해 중하위권이며 수치 자체는 분석대상국 평균 51.6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림 5는 수정사망자 수를 x축에 나타내고 엄격성 지수 값을 y축에 나타낸 그래프다. 대체로 수정사망자 수가 많은 국가에서 엄격성 지수 값이 높은 경향을 나타낸다. 사망자 수가 많아질수록 강력한 방역 정책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경향에서 이탈한 나라가 세 개 있는데,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다.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응으로 확진자 수가 아주 적어서, 방역 정책의 필요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수정사망자 수가 남한과 비슷한데도, 엄격성 지수는 훨씬 낮다. 여기엔 여러 요인이 있는데, 뒤에서 더 이야기한다.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무시하고 제대로 된 방역 정책을 실시하지 않아 사망자 수가 급증했다.
엄격성 지수 외에도 방역 정책의 강도를 평가하는 다른 기준도 있다. 방역 수칙 위반 시 처벌 조항이다. 표 7은 앞서 언급했던 논문에서 말레이시아 연구진들이 정리한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남한, 베트남의 처벌 조항 비교표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남한은 모두 강력한 처벌 조항을 두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는 이들 국가보다 약한 처벌 조항을 두었고, 일본은 아예 처벌 조항이 없다. 말레이시아 연구진은 여기에 대해, 일본의 법 자체가 처벌을 통해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게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가 시민의 권리를 마음대로 제한했던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따라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시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청”만 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물론,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엄격한 대응을 자제한 측면도 없지 않다.
위 결과를 종합해봤을 때, 통념과는 달리 남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도나 위반 시 처벌 수준은 다른 국가보다 약하지 않았다. 수정사망자 수를 고려했을 때, 분석대상국의 평균 수준이었고, 싱가포르나 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싱가포르나 태국보다 수정사망자 수가 훨씬 많은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다음 절에서 문재인 정부가 방역 정책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강도로 시행하지 못했다는 가설을 제시하겠다.
명백한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한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수는 10월 중순부터 11월 말에 이르는 기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다는 점이다. 사후적으로 평가해봤을 때, 이 오판은 치명적이었다. 지난 1년간 남한 코로나19 사망자의 70%는 2020년 11월부터 2021년 2월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몰랐다고 변명할 순 없다. 2020~2021년 겨울이 가장 혹독한 시기가 될 거라고 국내외의 수많은 전문가가 공개적, 비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의 경고와 조언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한 문재인 정부는 이 재앙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이제 위 주장의 근거를 그래프를 통해 제시해보겠다. 그림 6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2월 20일 사이의 신규 확진자 수와 엄격성 지수를 동시에 표시한 것이다. 회색 선이 신규 확진자 수이며 검은 선이 엄격성 지수다. 엄격성 지수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도를 반영한다고 보면 된다. 신규확진자 수와 엄격성 지수는 옥스퍼드 코로나19 정부 대응 추적 프로젝트의 데이터를 이용했다.
방역 정책의 실기라고 평가할 만한 부분은, 신규확진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엄격성 지수를 낮추거나 오랜 기간 올리지 않는 경우다. 한 눈에 봐도 명확한 구간(회색 음영)이 바로 2020년 10월 중순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다. 신규확진자 수는 9월부터 감소세에 들어가 10월 초에 바닥을 치고, 10월 중순부터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그런데 엄격성 지수는 10월 하순에 오히려 큰 폭으로 하락한다. 심지어 그 상태가 11월 하순까지 이어졌는데, 그동안 신규확진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2월 초와 중순에 걸쳐 엄격성 지수가 상승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신규확진자 수가 최대 1200명을 넘기며 많은 사망자를 낳았다.
위 그래프를 보완하는 그래프를 하나 더 보겠다. 그림 7은 분석 기간의 R값 추정치와 엄격성 지수를 동시에 표시한 그래프다. 회색 선이 R값 추정치이며 검은 선이 엄격성 지수다. R값 추정치는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최선화 연구원의 자료를 참고했다. R값이 1을 넘기면 확산세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올려야 한다. R값은 이론적으로 신규확진자 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표다. 신규확진자 수가 많아도 R값이 1보다 작으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지 않을 수 있고, 신규확진자 수가 적어도 R값이 1보다 크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해야 한다. 다만 R값은 신규확진자 수와 달리 사후적으로 추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책 대응에 있어서 활용도가 더 낮을 수 있다. 그래도 신규확진자 수 증감 추이를 통해 R값의 추세를 추측할 수 있다.
R값이 1 이상으로 증가한 것은 1년 중 5번이다. 2월 말~ 3월 초, 5월 초, 8월 초, 10월 중순이다. 첫 유행 당시에는 엄격성 지수를 크게 높여 대응했었으나, 이후 5월과 8월 두 번의 유행에서는 엄격성 지수를 크게 높이지 않았다. 다행히 R값은 떨어졌다. 특정 집단에서 집단발병한 것이라서 엄격성 지수를 높이지 않고서도 확산세를 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0월 중순부터 시작된 유행에서는 특정 집단의 집단발병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의 전조를 감지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태평하게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우를 범했다. 11월 중순부터 R값은 더 많이 증가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12월 초가 되어서야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했다. 앞에서도 살펴봤지만, 남한은 방역 정책의 효과가 매우 잘 나타나는 사회적 조건에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자 R값은 감소했다. 문재인 정부가 R값이 1을 넘은 10월 중순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했더라면 겨울의 대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정부는 여행과 소비쿠폰을 11월 초부터 대량 배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대한민국 숙박대전’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숙박비를 1박당 4만 원 할인해주는 행사를 8월 14일부터 시작했다. 8월 초~중순은 R값이 3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기간이었다. 이 행사는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인해 8월 20일에 중단되었다. 하지만 11월 4일부터 재개해 11월 23일까지 지속했다. 비슷한 기간 동안 실내 민간체육시설 할인 행사와 외식 할인 지원 행사도 진행했다. 11월 중순에 R값은 1.77까지 치솟아 이번 겨울 유행기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신규확진자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쏟아지기 시작하자, 병상 부족 사태가 현실화되었다. 민간 병상까지 합치면 남한은 병상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국가지만, 문재인 정부의 준비 태만으로 민간 병상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중환자실 간호 인력도 고작 400여 명 양성했을 뿐이다. 병상과 인력 준비에 관한 내용은 사회운동포커스 「코로나 3차 유행 대응, 문재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수습해야 한다」를 참고하라. 결국 문재인 정부의 무능으로 인해 시민과 의료진은 겪지 않았어도 될 고통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방역을 너무 잘했다”고 평가하면서 ‘K-방역’의 신화를 선거에 써먹을 궁리만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오만한 자랑이 아니라 반성과 사죄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인구구조를 고려한 백만 명당 사망자 수를 비교해봤을 때, 남한의 코로나19 대응 순위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12개국 중 7위를 기록했다. 남한은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 높으며, 신종감염병 대응에 필요한 의료 인프라도 상대적으로 잘 구축된 편이다. 방역 정책의 평균적인 강도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가장 큰 실책은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0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리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를 시행한 점이다. 2020년 11월부터 2021년 2월 기간에 발생한 사망자는 전체 코로나19 사망자의 70%를 차지한다.
이 글의 목표는 청와대와 국무총리, 각 부처 수뇌부들의 무능한 방역 정책을 비판하는 데 있다. 질병관리청 실무자의 헌신과 고통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정치적 의사결정 때문에 고통이 악화되었다는 점에서, 방역실무자들과 의료진은 환자와 사망자를 제외하면 가장 큰 피해자다. 청와대와 각 부처 수뇌부는 오히려 방역에 가장 큰 방해였고, 장애물이었다. 이들이 적절한 의사결정을 하고 제때 필요한 준비를 했다면 남한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수준의 방역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화자찬을 중단하고 반성을 해야 한다. 또 코로나19로 고통 받은 시민에게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 아직 코로나19는 끝나지 않았다. 반성 없는 문재인 정부를 묵인하면, 지난 겨울의 참사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