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교육정세 및 전교조 활동 전망
1. 팬데믹 시기 한국교육의 현실 진단
2020년도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전쟁 시기에나 있을 법한 개학연기, 교육과정 축소, 수능연기 등등, 교육 현장에서도 그야말로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이러한 비상상황은 많은 문제를 초래했다.
가장 큰 문제는 ‘팬데믹 교육과정’으로 인한 학습 이탈이다. 상위권 학생들은 학습에 대한 내성이 있어 등교하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학습이 이루어졌지만, 중하위권 학생들은 등교일수가 줄어들면서 학습 이탈자가 늘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기초학습이 필요한 저학년일수록 심각하게 나타났다. 저학년 학생들은 교사가 밀착해서 학습을 지원해야 하는데 등교하지 않게 되니, 가정에서 학습지원이 가능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의 학습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문제는 교육불평등의 심화다.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고 학습이 사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가정에서 학습이 관리되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이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코로나19로 대형학원에 다니지 못하게 되자, 학생들이 과외를 받거나 소수정예학원에 다니게 되어 사교육비의 부담도 커졌다. 그동안의 교육불평등은 학교 교육이 그나마 조정할 수 있었지만, 팬데믹 상황에서는 이러한 학교의 기능도 발휘되지 못했다.
세 번째 문제는 비정상적인 교육 관계의 고착화다. 지금까지도 교사는 학생들의 지적발달을 온전히 책임지지 못했다. 팬데믹 교육과정에서 교사는 질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원격수업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체크하는 역할에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비상상황에도 모든 것을 평상시대로 강행하라는 교육부의 결정 때문이다. 교과수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판국에 자율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동아리활동으로 구성된 창의적 체험활동 영역을 형식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교사가 학생들이 교육과정 시수를 제대로 이수했는지 통제하고 체크하는 역할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정리하면, 그동안 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던 데다가, 팬데믹 교육과정은 학교의 본질적인 기능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학교는 보편적인 교육기관이다. 교육은 주로 학습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학습 외에도 학생들의 문화적 소양을 길러내고 초등학교의 경우 돌봄 기능을 보조하는 기능이 포함된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이러한 기능이 대부분 학교 외 공간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교육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에 대해 다양한 주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비판과 주문사항을 내놓았다. 단순히 분류해보자면, 학교를 1) 교육기관, 2) 돌봄기관, 3) 학력증명기관이라 보는 관점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관점(학교=교육기관)을 대표하는 사건은 원격수업 운영과 방식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과 문제 해결 과정이다. 새로운 원격수업에 적응하고 다양한 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부터, 원격수업은 교육이 아니라며 기존의 대면수업 또는 새로운 대안을 요청하는 이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원격수업은 대면수업이 불가피할 때 쓰는 보완재이며, 결코 대체재가 될 수 없다. 또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의 방식이냐, 제작 영상이나 콘텐츠를 활용하는 방식이냐 어느 한쪽이 무조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학생의 연령, 학습능력, 그리고 교사의 상황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교육부는 한 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적 판단을 확장해야 했지만, 교사들에게 교육적 논쟁의 과정을 소개한 적도, 어떤 방법이 더 교육적인지 설득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었다.
두 번째(학교=돌봄기관)는 학부모나 돌봄 업무를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학교는 교육기관이므로 돌봄 기능까지 담당하기는 어렵고, 돌봄기능은 학교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에게는 수용력이 약한 입장이다. 이 관점에서는 학교가 돌봄 기능을 지금껏 수행해왔듯이 코로나19로 극적으로 가시화된 돌봄 기능까지도 학교가 도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권에서 이야기하는 돌봄정책의 문제는 돌봄전담사의 처우개선, 교사의 업무부담 등 실행주체의 노동과 학교의 환경적 여건 등에 관한 고려는 차단하고, ‘학교가 떠안으라’는 식으로 사업과 예산을 내리꽂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와 교육공무직 간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교육은 학교에서, 돌봄은 지역에서’라는 교사단체들의 입장 역시 대중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 이미 지역사회의 많은 기관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주중 방과후면 학원과 공부방이 교육의 공간이 된다. 공공기관만 주5일제를 시행하기 때문에, 토요일이면 많은 아이가 지역 내 다양한 교육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도서관, 청소련수련관, 종교시설 등 다양한 곳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교사단체들이 말하는 ‘(아이를 돌보는) 지역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운동이 활성화된 곳이 일부 있겠지만, 이 또한 ‘사회운동의 효과’이거나 ‘지자체 예산 효과’다. 여전히 많은 수의 아이들은 방과 후에 지역아동센터를 다닌다. 지역아동센터를 다닌다는 것은 집이, 그 동네가 가난하다는 뜻이다. 실정을 보면 지역아동센터 셋 중 둘은 종교시설에서 영세하게 운영한다. 현시점에서 돌봄을 지역에서 맡으라는 주장이 가진 허점은 여기에 있다. 돌봄을 학교에서 하든, 지자체로 이관하든, 어느 곳에서 돌봄이 진행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이미 학교에서 돌봄교실이 운영되고 있으며 지자체에 이관하더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조건에서 무리하게 지자체 이관을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방과후학교가 존재하는 한 학교에서의 돌봄 기능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학교의 돌봄 기능을 축소하기보다는, 돌봄노동자의 처우개선, 그리고 돌봄노동이 교사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우선이다.
마지막 관점(학교=학력증명기관)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가장 보수적 포지션을 가진 교육부 및 교육행정기관의 기본 입장이다. 전례 없는 상황에서 법정수업일수와 법적 하자가 없는 학사운영, 교육과정 운영 및 생활기록부 기록 완료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개학은 하되 등교는 안 되며, 수업은 하되 학생의 학습능력과 노력에 대한 기록은 남길 수 없다. 생활기록부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은 학생의 실질적인 지적 능력을 성장시키는 것보다 우선될 수 없다. 그러나 교육부가 교육현장에 내려 보내는 공문에는 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이나 출결관리 지침이 적혀있을 뿐, 이 시기에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적 처방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담기지 않았다. 이들이 최근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학교 내 감염이 적다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논문을 근거로, 2021학년도 학사운영 정상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 청장 스스로 밝혔듯, 이는 논문 결과에 대한 오독이다. 첫째, 해당 논문은 지난해 5~7월 지역사회 유행이 크지 않았던 시기를 대상으로 분석되었다. 따라서 하반기(7~12월), 특히 3차 유행 때는 학교에서도 일부 집단발병이 발생했다는 등의 사실을 은폐한다. 둘째, 논문은 ‘아동과 청소년’이 코로나19에 큰 피해나 영향력이 없다는 ‘생물학적’ 결론을 낸 것이 아니라 등교 제한, 발열 검사, 손 위생 등 학교에서 이뤄진 방역조치 덕분에 학교 내 대규모 전파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철저한 방역조치가 감염병 확산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회학적’ 결론에 가깝다.
여전히 ‘학교는 어떤 공간인가?’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분명해 보이는 건 학교가 ‘백화점’이 되었다는 현실이다. 학교는 교육, 돌봄, 친교가 혼합된 기관이며, 학력을 증명하는 유일한 공식 기관이라는 것이다. 학교가 돌봄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거나 한정된 교사 인력이 교육에 더해 방역과 돌봄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든, 아니면 학교가 지식의 재생산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든, 학교의 기능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한국 사회에서 존재하는 것 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주체 간의 견해 차이를 조율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 없이는, 학교를 두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혼란과 갈등이 분출할 것이다. 학교가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는 당장 이루어지기 어렵겠지만,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경우는 ‘돌봄’의 기능이 추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적인 조건이다. 더구나 맞벌이 가정이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기능이다. 가정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는 성인과의 교류, 문화적인 자극 등은 아동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학교에서라도 제공되어야 한다. 중등교육과정에서는 아동의 지적발달에 맞는 질 높은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특히 이 시기는 청소년 발달에서 중요한 ‘개념적 사고’ 발달이 필요한 시기이므로 학교의 교육 기능이 중요하다.
2.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교육현장에서 나타날 문제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에는 커다란 교육개혁 플랜은 없다. 대선후보 당시 공약이었던 국가교육회의도 기능이 유명무실하고,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도 유명무실하다. 다만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2023년까지 정시비중을 4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과 교원 양성 체제를 개편하겠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도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보다는 보여주기식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도 코로나19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며 초·중·고 학생의 원격수업 지원을 위해 디지털 기기 제공, 공공 학습 관리시스템(LMS) 개선을 추진하고, 대학에 1,000억 원 가량 긴급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기기가 아니다. 학습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도 원격학습도우미 9,700명을 지원하여 가정의 돌봄·교육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숫자일 뿐 아니라 이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될 예정이라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를 양산할 것이다.
학습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원격학습 도우미를 각 가정에 파견하는 것보다, 학교 돌봄에서 학습을 관리하는 것이 더 바람직다. 원격학습은 수업시간에 맞추어 종일 이루어지고, 원격학습 도우미가 필요한 경우는 대부분 맞벌이 가정이나 가정형편이 열악한 경우다. 따라서 각 가정에 파견하기보다는 디지털 기기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고, 종일 학습환경이 유지될 수 있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원격학습 도우미는 교원자격증 소지자를 활용하되, 돌봄노동자, 교사와의 긴밀한 협조로 학습관리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사들이 교육과 돌봄을 분리하고 있어 학습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입시에서 수시 비중을 축소하고 정시 비중을 늘리겠다지만 이 또한 대증요법이다. 한국에서 치열한 입시경쟁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정부나 교육운동가들은 이러한 이유에 관한 분석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입시전형에 따라 중등교육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입시경쟁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해야만 입시경쟁을 최소화하면서도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 그런데 조국 사태로 ‘공정성 담론’이 확산되면서, 무조건 객관식 유형의 지필고사가 가장 공정한 시험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OECD 국가 중에서 객관식 시험으로 입시를 치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마저도 일본은 본고사를 같이 보기 때문에, 객관식 지필고사의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는 한국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수시전형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수시전형의 확대는 고등학교 교육활동을 심각하게 왜곡했다. 특히 수시전형으로 인해 고3 수업은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수시전형이 문제가 많다고 해서 반대급부로 수능 중심의 정시전형을 늘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각적으로 입시전형을 살펴보면서, 사교육비도 최소화하고, 학교 교육만으로 입시를 치르면서도 학업성취도를 제대로 측정할 입시전형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국가교육회의가 하고자 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가교육회의는 유명무실하다. 문재인 정부는 전문적인 영역인 ‘입시제도’ 마저도 국민의 열망에 의지해 단순히 수능 중심의 정시전형을 늘리는 것으로 정리했다. 입시개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대학에서의 공부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학생을 뽑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시전형으로 통일하되, 전형을 최대한 단순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객관식 지필고사로만 뽑자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OECD 국가 중에서 대입전형을 객관식 시험으로 치르는 국가는 드물다. 한국도 전형을 단순화하되 논술형 시험이 추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 논술형 시험이 확대되자 사교육비의 의존율이 높아져, 결국 다시 축소되었던 경험이 있다. 이는 논술형 시험의 변별력을 높게 설정하여 학교교육으로 논술형 시험을 대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술형 시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기초 소양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능력과 이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중등교육과정과, 학교 수업으로 대비할 수 있는 논술시험이 도입된다면 중등교육과정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지금보다 학생들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고교학점제와 기초학력 지원을 위한 협력 강사제, 소규모 대면 보충지도 강화를 위한 강사제 등이 확대될 전망이다. 고교학점제는 2025년에 전면 도입을 앞두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희망 진로와 적성을 고려하여 과목을 선택해 공부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고등학교의 수업·학사운영이 기존의 ‘단위’에서 대학처럼 ‘학점’ 기준으로 전환되고, 졸업기준도 204단위에서 192학점으로 조정된다. 그런데 고교학점제는 학점제라고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대학교육과정과 같은 학점제가 아니다. 고교과정 과목 선택제의 확대일 뿐인데 이름만 거창하다. 더구나 역량강화는 선택과목이 다양해진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선 고교교육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민주시민의 역량이라고 하면 너무 포괄적이나, 민주시민으로의 자질을 키우려면 다양한 선택과목보다는 전이력이 높은 국어, 수학, 자연과학, 역사, 사회과학 등과 같은 핵심 지식을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선택과목 다양화는 고교학점제의 도입 취지처럼 역량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입시에 유리한지 불리한지 따지는 데에만 활용될 뿐이다. 고등학교 과정이 역량을 강화하고 진로에 도움이 되려면, 학생이 몇 과목을 선택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학교가 다양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고교학점제는 동일학교에서 선택과목이 확대되다 보니 학생들 개인마다 시간표가 달라지고 학급의 의미도 축소된다. 선택과목이 다양해질 때 교사를 확보하기 어려워지면 수업의 질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취지도 살리지 못하면서 마치 선진적인 정책인 양 도입되는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역량강화와 진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제도가 본격화된다면 현장의 비정규직 교원의 비율만 증가할 것이다. 취지가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교육정책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제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학생들의 진로를 좌우하는 것은 고교학점제의 도입이 아니라 직업 안정성과 임금 및 노동조건 등과 같은 처우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일을 찾아가도록 하려면 직업 간 임금격차를 축소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일이 급선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선택과목을 다양화하기보다는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내실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찾는 것도 다양한 선택과목을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해야 가능하다. 더구나 성인 이직률이 많은 한국에서는 한 가지 방향으로 심화된 교육보다는, 여러 가지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교육이 더 바람직하다. 한국이 세계 속에서 어떠한 위상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는 인문적인 소양교육이나,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바람직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판교육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고교학점제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교육정책을 수립할 때 교원에 대한 정책을 동시에 수립해야 한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특히 교사직은 여러 연수를 통해 훌륭한 교육자가 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하므로 고용안정은 필수적이다. 비정규직 교원이 필요하더라도 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교원을 전제로 한 교육정책은 제대로 된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3. 전교조가 나아가야 할 길
2021년 교육부의 주요 업무 계획안은 비정규직 교원을 확대하는 내용 외에 특별할 것이 없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까지 국민의 입맛에는 맞지만 특별할 것 없는 정책들을 남발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교조의 대응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전교조 지도부는 교사들이 현장에서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집중하겠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개혁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전교조의 위상을 생각해서라도 다음과 같은 고민이 필요하다.
(1) 기초학력지원,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에 대해 전교조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올해부터 정부는 노골적으로 정규교원을 줄이고 비정규교원을 늘릴 계획이다. 그냥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초학력 지원’이나 ‘학력격차 축소’처럼 대중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바탕으로 비정규교원을 늘리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학력격차는 더 심해졌고, 학습이탈자는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판과 함께 대안이 필요하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있다. 이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할 건지 대안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학습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격차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대안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전교조 초등교육과정모임에서는 이미 원인과 대안을 제출했었다. 초등교육과정모임에서는 기초학력의 위기가 현대사회의 불안정한 양육방식과 조건으로 인해 성인과의 접촉과 상호작용이 줄고, 더 어린 시절에 디지털 기기를 많이 경험하면서 정서 및 언어발달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판단한다. 이에 핀란드의 경우처럼 기초학력 부진 학생을 특수교육 대상자의 범위에 포함하여 조기에 개입하여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유기적인 지원을 위해 정규직 교원 가운데 ‘개별교육지원 전문교사’를 양성하자는 대안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기초학력 위기 학생의 경우 상담, 복지, 의료영역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으므로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편 고교학점제는 근본적으로 대중교육과정에 맞지 않는 제도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진로를 위해 선택적으로 학점을 듣게 하는 제도는 대학교육과정에서나 필요하다. 고등학교과정까지 무상교육인 한국에 맞지 않는 정책이다. 대학생들도 절반 이상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데, 고등학교에서 진로를 위해 교육과정을 선택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고교학점제로 선택과목을 대폭 늘리면 이후 대학전공을 위해 미리 공부해야 할 필수적인 과목임에도 내신에서 높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기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현재도 물리, 경제는 기피과목으로 고등학교에서 이수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 고교학점제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지만 개입의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므로 이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선전과 투쟁이 필요하다.
(2) 중장기적으로 전교조 자체의 연구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전교조의 대표적인 교육정책은 전교조 합법화 이후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선 참교육 강령이라고 알려진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은 민주시민 교육, 페미니즘 교육, 환경교육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지 못하다. 입시제도를 바꿔도 입시경쟁이 줄어들지 않는 한국의 교육풍토를 개선할 교육개혁의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교조는 또한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인 서울대학이 세계적인 명문대학 반열에 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무관심하다. OECD 국가 중 경제적 순위가 10위인데도, 한국의 대학들이 그런 경제력에 걸맞은 명성을 얻지 못하는 것은 한국의 고등교육기관이 부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등교육과정 개혁은 고등교육개혁과 떨어질 수 없다. 그 연결고리는 바로 대입제도다. 독일처럼 인문계 고등학생 대부분의 대학입학을 허용하려면 직업계 고등학교의 내실화와 함께, 대학에는 졸업정원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이미 학벌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직업계 고등학교를 내실화하는 일도, 대학에 졸업정원제를 도입하는 일도 쉽지 않다. 많은 교육운동가들은 대학서열 및 학벌을 타파하는 것을 주요과제로 삼지만, 대학서열 문제는 학벌의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이며 노동시장의 개혁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더구나 민간기업에서 소위 ‘SKY대학’ 출신 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고 공공기업도 고시정원이 증가함에 따라 학벌이 완화되고 있어, 학벌사회가 더욱 강화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대학서열 철폐보다는 지방 국립대를 지방 경제와 함께 살릴 수 있는 계획과, 사교육이 덜 필요하고,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는 입시제도를 면밀하게 고안해 내야 한다.
전교조는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사노조다. 따라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연구역량이 있는 교사들을 전임자로 섭외하여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총도 독자적인 연구소가 있다. 전교조도 참교육연구소를 강화하여 한국 상황에 맞는 좋은 교육정책들을 만들어 제안하고, 만약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투쟁해야 한다. 또한 전교조의 현재 상태를 잘 분석하고, 전교조가 나아갈 전망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현장 교사들에게 전교조가 어떤 위상인지, 사회운동에 필요한 전교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도출해내야 한다.
(3) 학교 내 비정규직 교원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계획이 필요하다.
2020년 기준으로 기간제교원은 5만 7천 명이 넘고, 2021년에는 6만 명에 육박할 것이다. 기간제교원은 계속 늘어나지만, 처우개선만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을 뿐 기간제교원의 고용안정은 거의 요구하지 못했다. 특히 올해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초등학교 기초학력 지원을 위해 기간제교원 2,000명을 배치하려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기초학력 지원은 교육 상담, 복지, 의료 영역까지 포괄하여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라, 일시적인 기간제교원 확충으로 해결되지 못한다. 기초학력 위기의 학생들은 정서 및 언어발달의 장애를 겪고 있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더욱 전문적인 교사가 필요하다.
또한 중등 기간제교원들은 업무가 정규교원과 동일한 경우가 대다수다.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 비정규직 신분으로 있는 것이 교사 스스로 자괴감이 드는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육활동을 제공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교조는 기간제교원의 비중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규교원의 휴직자리에 근무하게 되는 기간제교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규교원으로 채워야 하며, 휴직자리의 기간제교원 역시 교육청에서 채용하여 발령내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규교원의 휴직자리는 유동적이긴 하지만, 규모는 일정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한편 기간제교사의 고용안정은 전교조 조합원을 확대할 중요한 계기가 된다. 기간제교사는 계속 늘어나지만, 기간제교사가 전교조에 가입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기간제교사임에도 전교조에 가입하는 경우는 활동하다가 교직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는 경우나, 기간제교사임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학교를 옮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경우 정도다. 즉 기간제교사들이 전교조에 많이 가입하기 위해서라도 고용안정은 중요한 조건이다. 또한 총노동적 차원에서도 일자리를 정규직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므로 어렵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입장과 계획이 필요하다. 특히 교원노조법의 개정으로 앞으로는 “교원이었던 자”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이는 퇴직교사나 해직교사도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한 조항이지만, 기간제교사에게도 적용된다. 개정된 교원노조법에 따라 전교조는 기간제교사가 자유롭게 노조에 가입하도록 기간제교사의 진입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가 달라져도 대의원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회 중심으로 대의원을 선발하는 대신 기간제교사를 대표하여 대의원을 할 수 있도록 규약 정비가 필요하다.
(4)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과거에 비해 전교조 내 페미니즘 운동은 활성화되고 있다. 2018년 선거부터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따로 선본을 만들어 독자적으로 전교조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기 시작했는데, 2018년(8.79%)보다 2020년(13.04%)에 더 많은 표를 얻었을 정도로 페미니즘 운동은 전교조 내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선본이 따로 구성되어 선거에 참여한 것은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스스로 ‘분리주의 노선’을 선택했다는 한계가 있다. 페미니즘 운동은 모든 운동의 기본이며 모든 운동에 녹아 있어야 하는데, 페미니즘 선본을 따로 꾸리는 것 자체가 전체 운동에서 페미니즘 이슈를 분리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방식의 운동이 지속된다면 여성권은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페미니스트의 권리로 한정될 수도 있다. 현재는 ‘여성’을 생물학적 여성으로만 한정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적 경향과, 생물학적 여성의 개념을 해체하는 교차성 페미니즘적 경향 사이에 논란이 많다. 이러한 쟁점은 전교조 페미니즘 교사모임 내에서도 이슈화될 수 있으며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전교조에 가입하는 젊은 여성 조합원들은 다른 운동보다도 페미니즘 운동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이러한 자양분을 토대로 전교조는 ‘성평등교육’을 보다 적극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성교육은 엄밀하게 말하면 ‘성폭력 예방’ 교육이다. 이를 ‘성평등교육’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성평등교육은 모든 교과에서 다뤄져야 한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민주시민교과’를 만들고 있으나 민주시민교육을 하나의 교과로 가르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페미니즘 교육도 마찬가지다. 모든 교과에 성평등교육이 녹아 있어야 하며, 동시에 교과의 특성에 맞는 성평등교육내용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역사에 성억압적인 사회제도, 역사적 사례 등이 추가되어야 하며, 생물에서 여성의 성기에 대해 자세하게 배워야 하고, 보건에서 평등한 성관계, 윤리에서 바람직한 성평등윤리, 일반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 여성과 남성의 비대칭적인 사회진출, 체육에서 여성과 남성의 다른 신체구조와 이에 따른 운동형태를 가르쳐야 한다. 수학에서 여성 수학자를 발굴하며 누락된 여성의 흔적을 살려내고 이러한 흔적이 역사적으로 누락된 이유를 학생들이 알게 해야 한다.
위에 서술한 것은 하나의 사례다. 앞으로 중등교육과정 모임을 구성하여 교과별로 보편적인 성평등교육에 대한 단상을 제출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안도 짜보고 시행도 해보는 사업이 기획되면 좋겠다. 일명 ‘보편적인 성평등 교육 대회’라는 형식으로 전교조 사업으로 제안하여 여성위원회가 같이 진행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정리하면, 전교조는 미래의 교육을 위해 현재의 교육현장을 더 잘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및 논의를 진행하여 질 높은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실천을 해야 한다. 2018년 OECD는 향후 미래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교육개혁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OECD 교육 2030』보고서를 발표하였다. OECD조차도 이 보고서에서 미래사회는 위기의 사회라고 진단하며,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지속가능성을 우선시하기 위한 교육”을 제안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OECD의 제안이 위기의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제안으로 보이겠지만, OECD가 제안하는 교육은 “단순히 청소년들이 직업 세계를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를 헤쳐나가는 교육”이다. 이러한 내용은 현재 전교조의 참교육강령인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전교조도 현재 사회의 진단으로부터 시작해 학생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자질을 키우기 위한 새로운 참교육강령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전교조는 주로 유치원부터 중등교육과정까지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지만, 고등교육에 대한 개혁과제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중등교육과정이 대학입시에 의해 왜곡되는 만큼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고등교육에서 과도한 학벌주의를 제어하면서도 실력 있는 인재를 양성할 개혁을 전교조가 제안해야 한다. 실력을 갖춘 인재는 자본의 입장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회운동의 입장에서도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미래 사회를 혁명적으로 만들어갈 실력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따라서 전교조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공교육을 통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여 미래사회를 책임질 실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을 써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