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이후, 무엇이 어떻게 오는가?
한지원,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경제는 연일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고 몸살 감기가 기저 질환을 건드려 입원해도 고칠 수 없는 중증질환으로 발전하듯, 코로나19 사태가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라는 기저질환을 건드려 긴 시간동안 인류를 위협할 것이란 점도 드러났다. 인류가 이 병치레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얼마간 회복되지 않을, 어쩌면 영구적으로 손상되었을지도 모르는 신체를 이끌고 돌아갈 일상은 혹자들의 말처럼 낙관적 희망이 가득한 일상이 아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감염병 사태나 경제위기 등 기저질환의 악화를 증폭시킬 수도 있는 외부요인을 경계하며 살얼음판 걷듯 살아야 하는 일상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등장한 한지원의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는 대담하게도 누군가에게는 이미 식상하고, 누군가에게는 거리두기의 대상인 ‘카를 마르크스’를 호명하며 그의 저작인『자본』을 통해 현재 시대의 경제현상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을 분석한다. 동시에 그 경제현상들에 대한 주류경제학의 관점과 분석을 비판해 『자본』의 부제인 ‘경제학 비판’을 본인의 책과 훌륭하게 매칭한다. 저자가 마르크스를 빌어 사적소유와 상품시장을 절대화하는 경제학의 근본적 한계를 비판하는 작업은 ‘4차 산업혁명’ ‘비트코인’ ‘직장갑질’ ‘불평등’ ‘건물주’ ‘임금주도성장’등 최근 논쟁거리가 되었던 경제현상에 대한 주류경제학의 부족한 설명을 속 시원하게 보완하기까지 한다. 마르크스·마르크스주의·사회운동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시야확장에서 오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핵심 질문은 역시 이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는 체제의 개선이 아닌 체제 자체를 바꾸는 변혁의 방향과 그것을 실행할 주체에 관한 질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함을 잘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양서이자,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이다.
자본주의가 멈추는 이유: 자본주의가 내포한 근본적 결함들
저자는 표제에서 던진 질문, 즉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에 대한 대답을 1부 상품과 화폐, 2부 이윤과 임금, 3부 성장과 위기, 4부 역사의 법칙 순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1부 상품과 화폐에서는 노동가치론으로 편향적 기술진보의 모순을, 화폐본질론으로 현대 현대관리통화제도의 취약성을, 물신숭배론으로 노동자의 자발적 시장 참여 요인을 설명한다.
노동가치론은 인간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노동이 보편적 등가물인 화폐를 매개로 추상화되어 시장에 상품으로 등장해 사회화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인간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노동의 차이는 ― 마치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에서 양자화를 매개로 질적 차이가 있는 에너지들이 양자 수량의 정수배로 표현되듯이 ― 화폐를 매개로 추상화되어 시장에서 화폐의 수량적 차이로 표현된다. 자연 자원은 사회 밖에서 지구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기계 또한 노동의 산물이므로 생산과정에서 투입되는 순 투입물은 오직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노력인 노동뿐이다. 그렇기에 화폐 – 생산 – 상품 – 화폐′의 순환 속에서 투입된 화폐보다 더 많은 화폐를 만드는 요인은 노동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사회화의 유일한 매개는 화폐이기 때문에 노동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은 자본의 과정으로 전도되어 화폐가 스스로 증식하여 더 많은 화폐를 만들어 내는 것 같은 외양을 띤다.
노동과 자본의 전도된 표현 때문에 개별자본은 부가가치에서 이윤의 몫을 늘리기 위해 기계와 같은 고정자본에 투자하여 노동을 절약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돌입한다. 그리하여 같은 수량의 화폐로 교환되는 상품들의 시장에서 얼마간 특별이윤을 얻는다. 그러나 그러한 기술진보는 개별자본의 경쟁 속에서 곧 추격당하고, 추격 이후 특별이윤은 사라진다. 모두가 비슷한 기술수준을 가지게 된 시점부터는 결국 같은 생산 조건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노동시간연장, 노동강도강화) 노동을 추출하고, 얼마나 많은 잉여노동을 획득할 수 있는지가 개별자본 경쟁력의 관건이 된다. 또한 특정한 기술진보가 총자본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기계의 가격이 충분히 싸져 절약한 노동만큼 자본 또한 절약되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커진 생산성을 시장이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세 박자가 맞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드물게 존재했는데, 그런 때를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혁명’ 즉 아주 예외적 시기가 아닌 이상 개별자본이 경쟁적으로 도입한 기계는 기계 도입으로 인한 노동의 절약분보다 자본소모분이 더 커져 자본생산성의 전반적인 하락이 나타난다. 저자는 이러한 편향적 기술진보 개념을 20세기 산업혁명, 1980년대 이후 로봇 도입을 통한 대규모 공정 자동화,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기계 도입을 사례로 들어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한편 노동의 과정이 화폐를 통해 자본의 과정으로 둔갑하고, 화폐가 더 많은 화폐로 자기증식 하는 것이 교리로 여겨지는 조건에서는 여러 오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는 가치생산과 가치이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디지털 서비스 경제에 대한 과도한 기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인간 노력(노동)을 매개하는 보편적 등가물이 본질인 화폐를 노동과 분리하여 화폐의 여러 기능 중 하나인 교환수단을 본질로 정의함으로써 ― 현재의 가치가 아닌 미래가치에 대한 청구권을 금융화한 결과로 창조된 ― 가공자본을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는 현대 관리통화제도의 취약성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단지 같은 원인에서 발생하는 폰지 사기의 일종일 뿐이다.
2부 이윤과 임금에서는 착취법칙으로 임금노동제의 근본적 한계를 설명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의 과정이 자본의 과정으로 전도되어 있다. 사회적 분업을 조직하는 주체는 기계(생산수단, 고정자본)를 소유한 기업이다. 기업은 생산으로 만들어진 부가가치에서 기계의 마모분을 제한 나머지 중 일부를 자신의 몫으로 제하고, 그 나머지 분을 사회적 기준에 따라 임의로 노동자들에게 분배한다. 부가가치는 항상 임금총액보다 크다. 자본이 자신의 몫으로 가져가는 이윤은 가치를 창출하였으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노동에 기반한다. 임금은 본질적으로 ‘노동의 (공정한)대가’가 아니다. 착취의 산물이다. 성과급·시간급 등의 임금체계는 노동자 스스로 자본의 노동시간 연장과 노동강도 강화에 참여하게 하다. 이 과정을 통해 임금은 노동의 공정한 대가인 것처럼 보이게 되고, 임금의 착취적 성격은 은폐된다. 저자는 시간급으로 인해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되어 있는 제조업 현장과 성과급이 극단적으로 발전한 전자제품 가정방문 수리 서비스 노동자를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임금노동제가 가진 근본적인 착취적 성격으로 인해 임금에는 선험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예를 들어 공정성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가가치에서 이윤의 공제 없이 기계의 재생산비만을 제외하고 분배받는 임금총액의 상한선과, 이윤과 기계의 재생산비를 제외하고 노동력의 재생산비만큼만 분배받는 임금총액의 하한선 사이에서 사회적으로 결정될 뿐이다. 사회적 결정에는 기업과 노동자의 힘 싸움, 기술혁신과 투자에 따른 이윤율의 변화, 산업예비군의 크기가 관여한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임금노동제라는 법칙 속에서 총노동이 총자본에 대항해 유리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시장의 제도이자, 결국 총노동이 경제 상황과 이윤율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법칙 자체를 바꾸는 비판자이다. 경제학은 ‘동일생산성, 동일임금’을 주장하지만, 노동생산성과 이윤율이 상승하고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기업이 임금을 자동으로 올려주지는 않는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기업을 대상으로 투쟁을 벌임으로써 생산성 상승과 임금상승의 시간 차이를 줄인다. 임금은 산업예비군이라 불리는 실업자가 광범위하게 존재할수록 협상력이 떨어지기에 편향적 기술진보 과정에서 수준이 벌어지는 개별자본 간의 격차가 개별노동 간의 격차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대정부 교섭이나 산별 교섭 등 개별자본을 넘어선 시야의 계획을 세우고 행동한다. 노동생산성과 이윤율이 하락하고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는 단지 임금인상 요구만으로는 실업자의 확대를 막을 수 없으므로 임금인상과 구별되는 요구와 대안을 만들어 정부와 자본을 대상으로 투쟁한다. 시장의 제도이자 비판자라는 양가적 역할은 연대임금·연대고용의 원칙을 통해 매개된다.
노동조합운동의 최후의 보루로서 연대임금·연대고용 원칙은 임금노동제 라는 법칙 안에서 총자본에 대항하는 총노동의 힘을 키워 유리해지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법칙 바깥을 고민하고 결국에는 자본의 이윤율에 종속되는 법칙 자체를 바꿔버리는 주체로서 노동자가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시장의 제도이자 비판자로서의 노동조합의 역할은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조합이 제대로 역할하고 있는가를 따져볼 수 있는 기준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의 임금격차의 심각성과 그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이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노동조합운동이 집중하는 대기업·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추격 임금상승 투쟁의 오류를 간단한 실증 분석으로 검토한다.
3부 성장과 위기에서는 자본순환론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과 위기에서 자본 흐름(플로우)과 스톡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화폐를 매개로 뒤바뀐 노동과 자본의 지위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화폐는 스스로 가치를 증식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노동의 순환으로 증식하는 가치는 화폐-생산-상품-화폐′라는 자본회로 상의 자본의 순환으로 증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폐가 스스로 증식하는 것처럼 보이니, 생산에 기여하지 않은 요소들이 증식된 화폐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지대를 챙긴다. 지대는 노동을 통해 생산된 가치를 이전받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 지대추구의 방법은 더욱 첨단화하여 자본의 소유자들은 미래에 대한 청구권을 금융화한 가공자본을 통해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노동까지 착취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성장은 자본회로 상에서 회전속도가 증가(자본생산성 상승)하거나 회전규모가 팽창(자본스톡[투자]의 증가)하면서 이루어진다. 역사적으로 경제학자들은 위기 때마다 자본회로의 각 단계에서 회전속도와 규모를 증가시키는 방법을 처방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편향적 기술진보로 인해 총자본 수준에서 고정자본 스톡 증가가 충분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산에서 상품으로의 실현시간이 전체적으로 지체되어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구조적 위기가 일반적이라는 데에 있다. 구조적 위기가 심화하면 자본회로 자체가 작동을 멈춘다. 자본회로가 영구적으로 작동하리라 보는 것은 마치 온수보일러가 영구적으로 작동할 것이라 보는 것만큼이나 지나친 낙관이다. 신통치 않은 보일러에도 펌프를 달아 순간적으로 온수 회전 속도를 늘릴 수 있겠지만 보일러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아무리 펌프를 설치해도 방의 온도를 높일 수 없다.
저자는 신용창조를 매개로 실제 가치와 점점 괴리되어가는 가공자본의 불안정성과 위험성을 한국의 부동산 불패신화,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자본회로 내에서 각 단계의 흐름속도와 양을 증가시켜 경제성장을 도모하자는 신고전파의 서비스업 규제개혁론과 포스트케인지안 임금주도성장론을 비판한다.
4부 역사의 법칙에서는 자본축적의 일반법칙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작동중지에 이르는 경로를 설명하고 경제적 불평등, 자본축적론, 사회주의 역사, 코로나 19위기를 분석하며 『자본』의 결론으로 나아간다. 경제학은 사적소유·상품시장을 절대화하며 자본주의가 영구적으로 지속되고 경제는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책의 1~3부에서 다루고 있듯이 『자본』의 가치법칙, 착취법칙, 자본순환, 축적법칙을 통해 본 자본주의적 성장은 내적 모순이 커지며 자신을 파괴해 가는 과정이다.
경제학은 경제적 불평등은 기술변화나 불공정한 시장 제도 탓에 발생하는 예외적 현상으로 보지만, 『자본』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이윤율 경제와 계급투쟁의 동역학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더 많은 필요가 아닌 더 많은 이윤, 즉 투입된 자본보다 더 많은 자본을 위해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자본의 소유자인 기업이 생산의 주체, 노동자가 생산의 객체가 된다. 가치를 생산한 노동자가 오히려 가치의 일부를 분배받는 역할에만 그치게 된다는 것,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경제적 불평등이다.
한편,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총자본 내의 개별자본들의 생산성 추격경쟁에 따라 결국에는 절약된 노동분에 비해 자본소모분이 더 커지고 총자본 차원의 생산성이 감소하는 편향적 기술진보가 일반적으로 일어난다. 노동과 자본을 동시에 절약하는 중립적 기술진보는 산업‘혁명’으로 불릴 만큼 드물게 일어난다. 노동조합은 기술진보를 통한 노동생산성 상승과 임금상승이 유리되지 않게 하고, 개별자본의 격차가 개별노동의 격차로 이어지지 않게 하여 시장에서 임금에 대한 가격방어선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제위기 국면에서는 산업예비군인 실업자가 빠르게 확장하여 노동조합이 협상력을 크게 잃어버린다. 근본적인 경제적 불평등이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상수라고 한다면, 노동조합은 경제성장 시기와 경제위기 시기의 임금격차를 축소하는 변수이다. 노동조합이 두 시기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실패하면 임금격차는 커지고 총노동과 총자본의 격차는 총노동 내부의 격차의 확대로 이어진다.
저자는 『자본』의 결론인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인한 작동 중지를 마르크스의 고전파 경제학 비판을 현대경제학으로 확장한 윤소영의 로지스틱 곡선으로 종합해서 설명한다. 로지스틱 모델은 S자 성장모형으로 자본스톡 변화가 증가, 급증, 둔화, 정체 순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저자는 S자 모델로 자본주의가 작동중지로 나아가는 과정을 미국과 한국의 역사적 자본생산성, 자본스톡, 경제성장의 연평균 증가율 등의 실증적 지표로 검토한다.
결국 자본의 운동은 총자본 내의 개별자본들의 경쟁 심화로 인한 총자본의 생산성 하락이라는 구조적 결함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이후가 야만인지 아닌지를 가름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법칙 안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법칙이 작동하는 체계 바깥을 고민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노동자의 운동이다. 붕괴하지 않기 위한 자본의 혁명으로는 역사적인 산업혁명들이 있었다. 노동의 혁명으로는 소련과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이 있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시장의 결함과 한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총자본에 대항하는 내용과 방법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계급지배를 어떻게 지양할 것인지, 임금노동이 아닌 사회적 노동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그리스의 시리자는 의지는 상당했으나 비슷한 이유로 실패했다.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댄 기본소득론은 생산이론이 없어 기본적인 대안의 수준에도 미달한다. 자본의 운동과 공멸하지 않기 위한 조건을 갖춘 노동자운동의 등장이 시급하다.
저자는 코로나19 사태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취약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계기이고, 자본주의가 작동중지로 나아가는 과정은 코로나19 사태를 슬로우모션으로 반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방역을 위해서는 경제를 잠시 멈추어야 하지만 더 많은 자본을 위해 작동하는 자본순환회로는 그러한 동기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일시정지가 되지 않는다. 자본회로의 일시정지는 상품, 생산, 화폐 각 단계의 자본스톡에 엄청난 손상을 일으킨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유행이 전 세계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미국연방준비은행(연준)은 코로나19 이후 세계금융위기 때보다 더 공격적으로 화폐공급에 나서 자산이 급격히 증가했다. 망가진 자본스톡과 경제상태에 따른 안전자산(화폐)에 대한 수요 증가가 빚의 사슬이 지불의 사슬로 빠르게 바뀌어 일어나는 화폐기근과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확장된 유동성은 전 세계의 유동성 증가로 이어졌다. 국채가 미래의 시민 노동의 일부인 세금으로 상환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중앙은행 자산의 급격한 증가는 공짜가 아니며 미래에 대한 착취가 급격히 증가함을 뜻한다. 금융세계화, 적자재정, 군사세계화로 유지되고 있는 미국 국채의 가치가 미래에도 유지될 수 있을지, 구조적 위기와 장기 저성장을 기저질환으로 앓고 있던 세계경제가 미래에는 회복되어 미래세대가 지불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언할 수 없다.
한편, 방역의 효과는 사회 전체가 누리지만 방역의 부작용인 경기침체의 영향은 취약계층에게 더욱 빠르고, 강하게 나타났다. 경기침체로 인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의 생산성 격차도 벌어지고 임금격차도 증가한다. 노동조합이 위기시기의 운동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나라들에서는 노동조합이 실업자 확대와 임금격차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의 운동’, 자본의 운동과 함께 공멸할 것인가 자본주의 결함을 해결하는 ‘노동의 변혁’을 실현할 것인가.
“『자본』에서 변화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 즉 변혁을 추구하는 노동자 계급이었다. 봉건제를 변혁한 주체는 신과 왕의 지배에 수백 년간 도전한 신흥 유산자 계급, 즉 ‘부르주아지’ 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프롤레타리아트든 부르주아지든, 소득과 재산의 형태가 어떤 선험적 역할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변혁의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에 주목했던 것은 자본을 소유하지 않아서 좀 더 수월하게 “사적 이해라는 복수의 여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잇다는 의미였다. 임금으로 소득을 얻으면 특별한 의식이 생긴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변혁의 주체는 어떻게 형성될까? 사회운동을 통해서다.” - 에필로그 중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 없이 마르크스주의가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이 노동조합 운동의 혁신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감사의 말 중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시대의 우리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나가듯 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 질문은 사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시민들, 특히나 총자본의 운동에 대항하는 총노동의 운동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변혁의 조건을 스스로 고민해 볼 것을 주문하는 엄중한 요청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독자는 엄밀한 정세전망을 통해 ‘이 시대’를 정확히 이해하고, 변혁의 주체를 형성·훈련·확대하며 ‘우리’를 넓혀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속류적 해석이 아닌 근본적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을 알고, 근본적 결함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들에 분노하는 것을 넘어 결함 자체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착취 받는 노동자를 위한 위안”이 아니라 오늘날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노동하는 시민을 위한 과학”으로서 『자본』을 안내하는 이 책은 기꺼이 그 험난한 과정을 해나가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그러나 정확한 안내서이다.
저자는 노동조합 운동의 혁신을 통해 노동의 운동이 발전해 나갈 것을 희망한다. 생산수단으로부터 배제되어 역설적으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는 자본주의에서 총자본에 대항하는 총노동의 운동을 만들어갈 수 있다. 총노동의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총자본에 즉자적으로 대항하는 운동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바깥으로까지 시야를 넓혀 체제 자체를 변혁하는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총노동의 운동이 총자본의 거울상으로서 자기 이해만 추구한다면, 경제위기에 대한 적합한 비판을 포기하고 각자도생에 몰입한다면, 총노동의 운동은 자본과 함께, 아니 어쩌면 자본보다 더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 것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경제성장이 둔화 단계에 접어들어 점점 작동을 멈추어 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인류는 “자본주의는 영구적이며 언제나 성장할 수 있다”는 오래된 상식이 허구임을 알아가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상식은 새로운 상식으로 대체되지 않았다.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는 대안세계가 아닌 더 비참한 야만일 수 있다.
가치를 창조하면서도 객체에 머물러야 했던 노동자들은 과연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을 해결하는, 자본보다 우월한 주체로 역사에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바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다. “이 시대의 우리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저자가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을 책과 함께 음미하며 자본주의의 변혁을 향한 길을 만들어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