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론] 2021 민주노총 임금요구안 비판
민주노총 임금요구안, 왜 공문구로 그치는가?
지난 3월 22일 민주노총은 임금인상 요구안을 발표했다. 저임금 노동자는 총액 기준 278,800원 인상을 요구하고, 평균임금 이상을 받는 노동자는 185,800원 인상을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구안 산출근거는 다음과 같다. 2020년 3/4분기 노동자 평균임금인 3,573,883원에서 2021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3.0%와 물가상승률 전망치 1.0%, 노동소득분배율 개선치 1.2%에다 임금 격차 해소분 2.6%를 추가로 더한 것이다.
임금 격차 해소분이라는 항목은 이제까지 민주노총 임금인상 요구안에서 없었던 것으로, 2021년에 처음 제시된 것이다.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2.6%의 근거는 무엇인지 분명히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노동소득분배율 개선치까지 반영한 185,800원보다는 더 높은 금액을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요구안으로 만들기 위해 추가로 제시한 근거로 보인다.
사실 민주노총이 임금인상 요구를 하면서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더 많이 인상하라고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분을 요구하며 비정규직의 임금인상 요구안을 더 높게 제시한 적도 있고(2010년, 2011년에는 30만원 이상을 요구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하며 저임금 노동자 임금을 대폭 인상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민주노총은 자신이 제시한 만큼 저임금 조합원의 임금을 올려 본 적이 있는가? 민주노총의 임금요구가 한국사회 노동시장에서 임금 격차 해소의 동인으로 작동한 적이 있던가? 다소나마 경기 반등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도 실현하지 못했고, 2008년 금융위기에서 잠깐 헤어나던 2010년, 2011년에도 그런 적이 없었다. 최저임금 1만 원 주장도 마찬가지다. 2018년, 2019년 정권교체의 바람을 타고 대폭 인상되었지만 (잠재적 과잉인구인) 자영업자와의 갈등, 고용감소 논란을 야기하며, 결국에는 최저임금 미만율만 높이고 임금 격차 해소에 있어서 아무런 견인차 구실을 못하고 있다.
왜인가? 왜 민주노총 임금요구안은 공문구로 그치는가? 무엇보다 현실성이 없어서다. 당장 올해 저임금 노동자의 인상 요구액인 278,800원은 저임금 노동자(월급 기준 160만 원 미만, 시간당 8,693원 미만, 2020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기준) 임금의 17.4% 이상 인상을 요구하는 금액이다. 노동소득분배율 개선치만 반영한 금액 185,800원만 해도 저임금 노동자에겐 11.6% 이상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금액이다. 저성장 국면에다 코로나19 펜데믹까지 겹쳐 취업자가 감소하고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자는 실질임금 인상분을 따라잡는 것도 녹록지 않다. 그런데 노동소득분배율 개선치도 모자라 2.6%를 추가로 제시하면 누가 이를 실현 가능한 임금인상 요구액이라 생각하겠는가? 월 평균 345만 원 이상인 고임금 노동자에겐 8%가 채 안 되는 수준이라 일부 가능한 직군이 있을지 몰라도 저임금 중소사업장 노동자에겐 불가능한 금액이다. 대공장이 많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을 쟁취해 온 금속노조조차도 2021년 임금인상 요구액은 기본급 99,000원(고정급 기준 150,000원)이다. 총액 기준이라 하지만 278,800원 인상 요구액이 납득되는가?
민주노총의 임금투쟁이 자리 잡으려면
물론 민주노총의 임금요구안이 공문구에 그치고 사회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임금이 산별노조도 아닌 사업장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임금의 상당 부분이 단위 사업장보다는 산별노조 차원에서 결정되고, 민주노총이 각급 산별노조의 임금 협약을 조정하고 지도할 수 있어야, 민주노총의 임금요구안도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총 임금요구안이 2021년처럼 현실적합성은 물론 논리정합성도 떨어지고, 아무 근거 없는 수치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요구액을 더 높이는 방식으로 제시하고 그칠 일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 임금요구안은 점점 더 무용해질 것이고, 임금교섭에 대한 민주노총의 최소 권위조차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임금투쟁이 제 역할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첫째, 임금정책에 대한 민주노총의 정책적 권위부터 세워야 한다. ‘전년보다 임금요구액은 높아야 한다’는 강박이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요구액을 정규직보다 더 높게 제시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감, ‘최저임금 1만 원’과 같은 선전 문구에 의존하는 식으로 임금요구안과 과제를 만들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료집만 만들 뿐이다.
국민경제와 노동시장의 변화 추이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가맹조직 조합원의 임금수준과 임금구조를 산별노조와 민주노총이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맹 산하조직의 정책담당자들이 그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 임금요구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는 비단 임금요구안의 문제만이 아니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가 임금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기도 하다.
지금 총연맹엔 국민경제와 노동시장의 변화추이를 분석할 인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산별노조조차 조합원의 인구학적 특성과 업종별·직종별·사업장규모별 특징 등 기초자료들이 축적되어 있지 않으며, 사업장별 임금 협약 현황 등 임금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 이것부터 개선해야 한다.
둘째, 임금 격차를 축소하고 고용 연대를 위한 정치적, 조직적 수단과 정책적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최저임금위원회, 고용정책심의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 노정, 노사정 논의기구와 중앙교섭, 노사공동위원회, 산업전환위원회 등 각종 논의·협의기구들이 기본적으로 포함된다. 전략조직화기금, 산별연대기금, 고용안정기금과 같은 조직적 수단들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난잡한 임금체계를 고정급과 변동급으로 나눠 단순화하고, 정기상여금처럼 임금 격차를 확대하는 수당을 기본급화하고, 고정급 기준으로 임금요구안을 바꿔나가는 정책적 수단들도 활용할 수 있다.
셋째, 민주노총이 임금투쟁을 조정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단위 사업장의 임금투쟁이 임금격차 확대로 귀결되지 않고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을 통해 계급적 단결로 나아가게 하려면, 임금투쟁을 종합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민주노총이 반드시 갖춰야 한다. 그러나 금속, 보건, 공공운수 등 산별노조 건설과정이 입증하듯 이는 녹록지 않은 일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총연맹이 낸 임금정책의 권위가 서야 하고, 앞서 이야기한 정치적, 조직적, 정책적 수단이 확보되어야 한다. 또 공동의 임단투 경험이 축적되어야 한다. 사업장 단위의 임금인상이 아니라 원하청 공동투쟁, 초기업 단위 산별 단위의 임금인상 투쟁을 지원하든가, 투쟁의 시기를 집중하고 공동요구 공동투쟁을 하는 기풍을 만들든가, 여러 방법을 통해, 산별노조와 단위 사업장의 임금투쟁을 종합하고 조율하고 지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노총의 임금투쟁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경기 반등 국면에서 민주노총의 임금과 고용정책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될 것이다. 공공기관·재벌 대기업과 중소사업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출제조업과 민간서비스업 사이의 임금격차, 소득불평등이 더욱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임금투쟁에 대한 상기 제언은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노동자의 미래를 결정지을 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