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 고용정책, 평가와 시사점
고용안전망 확충,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측면에서
코로나19 대응과정은, 예기치 못한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고 경제를 유지하는 데 실태조사와 현실인식에 기초한 대책마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특히 코로나19가 급격하게 확산하던 초기 상황에서는 피해실태를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시장에 대한 기존의 누적된 정보가 중요했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축적하고 있어야만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가 누구일지를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 노동시장에는 저임금, 단기근속의 불안정한 일자리가 밀집한 영역이 존재하며, 고용보험을 통해 보호할 수 있는 노동자의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상이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보편적인’ 지원하는 것보다는 피해의 규모를 예측하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지원하려는 노력이 더 효과적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차 긴급재난지원금이었다. 전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이유에는 고용안전망이 모든 노동자를 포괄할 수 없으며, 소득파악 통계의 한계로 피해규모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도 포함됐다. 그러나 총 14.2조 원을 투자한 긴급재난지원금은 소비를 늘이는 효과는 매우 적었고, 심각한 피해를 입은 항공업, 여행업 등 대면서비스업 노동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재정의 제약으로 인해 반복해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코로나19 같이 장기간 지속되는 위기에는 더욱더 부적절했다.
반대로 고용보험 제도를 통한 일자리 유지 정책과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대책은 노동자들에게 필수적이었고, 얼마간 효과적이었다. (본론에서 자세히 살펴본다.) 일자리 유지와 노동자 생활안정을 위한 정책들은 긴급재난지원금과 비교하자면 효과는 더 오래 지속되었고, 비용은 더 적게 들었다. 고용유지지원금(2.9조), 일자리안정자금(3조), 두루누리지원사업(1.6조), 긴급고용안정지원금(3.3조)을 2020년부터 현재(5월 중순)까지 집행하는 데 총 10.8조 원이 들었을 뿐이다.
물론 일자리 유지와 노동자 생활안정을 위해 사용한 금액이 충분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시점에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이 훨씬 효율적이었다거나 고용정책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이 불가피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1차 긴급재난지원금에 사용된 예산을 일자리 유지를 지원하는 데 추가로 사용했다거나, 특수고용노동자나 프리랜서 외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을 위한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유형Ⅱ, Ⅲ이 마련되었더라면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원이 돌아갔을 것이다.
이 글은 코로나19의 차별적인 영향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고용정책이 어떻게 적응했는가를 되짚어 본다. 먼저 코로나19가 일자리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고, 정부의 고용정책의 대응을 평가한다. 그런 다음 코로나19가 남긴 과제와 노동자운동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도출한다.
1. 코로나19의 일자리 충격과 회복
우선 코로나19가 일자리에 미친 영향을 파악해보자.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방역 조치는 경제와 상충관계에 있다. 따라서 코로나19의 확산과 경기 축소는 어느 정도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고, 경기 축소에 상응하여 일자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률적으로 적용된 방역조치의 여파는 경제의 각 부문에서 차별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경제 각 부문의 일자리에서도 개별 일자리의 특성에 따라 방역조치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났다. (이하 그래프는 통계청 자료를 활용함. [그래프는 pdf를 참고하세요])
1) 총괄: 2020년 3-4월 충격 이후 등락을 거듭하며 회복
전체 취업자 수는 코로나1~3차 확산과 약 1개월 시차를 두고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2020년 3~4월에 약 100만 명 감소한 후 회복되다가 2021년 1월 저점을 기록한 후 현재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2020년 2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조사대상기간 동안 0시간 일한 일시휴직자는 취업자로 분류되는데, 2020년 3, 4월에 약 100만 명 증가한 후 빠르게 하락하여 현재는 평시 수준으로 회복했다.
일자리를 잃은 대부분이 비경제활동인구로 이동했기 때문에 실업자 수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비경제활동인구도 3~4월에 약 100만 명 증가했다가 2021년 4월 현재까지 이전과 비교할 때 약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비경제활동인구 증에서 ‘쉬었음’, ‘구직단념자’ 수는 소폭 증가하여, 숨겨진 실업자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2) 연령별, 성별에 따른 차이: 청년, 중장년 여성에서 가장 큰 충격
15-29세 청년층 취업자 수 감소는 경기 위축과 동시에 기업의 신규채용 축소에서 기인한 부분이 크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청년층의 고용률은 급격하게 하락하고 회복도 매우 느리게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었다. 이번에도 코로나19로 취업 시기가 늦춰지면, 최초의 직장선택이 제약되면서 단기적인 임금손실뿐만 아니라 생애에 걸친 임금손실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30~59세 중장년층에서도 취업자 수 감소가 크게 나타났다. 중장년층 남성은 2018년부터 취업자 수가 감소하던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중장년층 여성은 취업자 수가 증가하던 추세가 코로나19로 꺾여서 고용이 크게 감소했다.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층 남성은 비경제활동인구로 이동한 반면, 여성은 실업자로 이동하는 특징을 보였다.
30~59세 중장년층에서도 취업자 수 감소가 크게 나타났다. 중장년층 남성은 2018년부터 취업자 수가 감소하던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중장년층 여성은 취업자 수가 증가하던 추세가 코로나19로 꺾여서 고용이 크게 감소했다.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층 남성은 비경제활동인구로 이동한 반면, 여성은 실업자로 이동하는 특징을 보였다.
60세 이상 고령층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충격을 가장 덜 받은 연령대였다. 취업자 증가폭이 둔화되기는 했으나 노인일자리사업을 중심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3) 종사상 지위에 따른 차이: 임시직·일용직에서 큰 충격
취업자를 종사상 지위에 따라 임금근로자와 비임금근로자로 구분해볼 수 있다. 또 임금근로자는 상용직, 임시직, 일용직으로, 비임금근로자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고용주)와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자영자), 무급가족종사자로 세분된다.
산업화 이후 남한에서 임금근로자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였고, 위기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감소했다. 98-99년 외환위기에는 기업 도산과 정리해고로 임금근로자 중 상용직 감소가 크게 나타났지만, 이번 코로나19 위기에는 임시직과 일용직의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임시직은 고용계약기간이 1개월 이상 1년 미만인 경우를 말하고, 일용직은 고용계약기간이 1개월 미만이거나 매일매일 고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임시직과 일용직에서의 감소는 단순히 실직만이 아니라, 신규 입직자가 감소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자영업자는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감소 추세였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경기가 나쁠 때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도 숙박음식, 도소매, 교육을 중심으로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코로나19 발생 직후부터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4) 산업·업종에 따른 차이: 대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심각한 충격
코로나19의 충격이 생산에서 산업, 업종별로 다른 영향을 미친 것처럼, 일자리에 있어서도 산업, 업종별로 다른 영향을 미쳤다.
위 그래프는 일자리의 충격이 컸던 산업을 보여준다. 숙박 및 음식점업, 부동산업, 예술, 스포츠 및 여가관련 서비스업은 코로나19로 2020년 내내 취업자 수가 감소하다가 2021년 1월 저점을 찍고 이제야 서서히 회복되는 모습이다. 교육서비스업은 2020년 3월에 크게 감소한 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2021년 들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도소매업은 완만하지만 지속적인 감소 추세였고, 제조업은 그보다 더 완만하게 감소하다가 2021년 들어 소폭 회복했다.
아래 그래프의 공공행정, 보건·복지서비스업, 금융 및 보험업, 운수업은 코로나 직후 충격을 받았다가 회복된 후 2021년에는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건설업은 그보다 빠른 2020년 8월부터 회복세를 보였다.
2. 코로나19 대응 고용정책과 평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고용정책의 목표는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될 수 있다. 첫째, 사업장 감염을 예방하고 감염자를 보호하며, 둘째, 경기가 악화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취업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지원하고, 셋째, 불가피하게 실업할 경우 소득을 보장하며, 넷째, 코로나19로부터의 회복 상황에서 실업자의 고용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과 실업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을 살펴본다.
1) 일자리 유지를 위한 지원
노동자의 실업을 예방할 수 있는 고용정책 수단은 고용보험의 고용안정사업 중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다. 이번에도 코로나19로 일자리 충격이 가시화되자 고용유지지원제도를 확충해 노동자의 일자리 유지를 지원했다. 또 고용유지지원금제도를 사용하기 어려운 중소·영세사업주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보완적으로 사용되었다.
(1) 고용유지지원제도
사업주의 고용유지는 의무가 아니며, 경기가 악화되면 사업주들은 유급휴업·휴직보다는 권고사직, 계약종료, 해고라는 고용조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실질적인 고용유지를 위해서 고용유지지원금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고, 현재도 노동조합 등의 요구에 따라 계속해서 보완되고 있다. ①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휴업·휴직수당 중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수준을 상향하고, 지원기간도 연장했다(2020년 특별고용지원업종 60일 연장→모든 업종으로 확대, 2021년 특별고용지원업종 90일 연장). ② 무급휴직 지원(1인당 최대 월 50만원, 최장 90일)은 노사가 합의하면 유급휴직 3개월 후부터 가능했지만, 유급휴직 1개월 후로 완화됐다. (특별고용지원업종→모든 업종으로 확대) 2021년부터는 피보험자 1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③ 휴업조치와 휴업수당 지급 이후 고용유지지원금이 지원되기 때문에, 여력이 없어 고용유지조치를 할 수 없는 사업장에 인건비 대출제도를 마련했다. ④ 2021년 1월 1일부터는 원청이 휴업하면 파견·용역업체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요건이 완화됐다.
고용안정협약지원금이 한시적으로 도입되기도 했다. 노사가 고용유지에 합의하는 경우, 임금이 하락한 노동자에게 1인당 최대 월 50만 원을 최장 6개월간 지원한다. 여행업 등 14개 업종은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다. 지정업종은 고용유지지원에서 우선지원대상으로 우대되며, 사회보험료 혜택, 사용주의 직업훈련 지원, 노동자의 생활안정자금 대출과 훈련비 지원이 제공된다. 방역조치로 인한 집합제한·금지업종 및 경영위기업종도 휴업수당의 최대 90%를 지원했다.
(2) 일자리안정자금과 두루누리 지원사업
고용유지지원금은 고용보험에 가입된 사업장만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당연가입 대상이지만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법적으로 적용제외 대상이라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매우 많다. 따라서 정부는 고용보험 미가입 사업장의 고용보험 가입을 유도하고, 사업주의 인건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몇 가지 사업을 활용했다.
일자리안정자금은 최저임금의 연착륙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소상공인 및 영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고용유지지원제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코로나19 시기에 일자리안정자금은 ① 예외적으로 고용보험 적용제외 사업장(5인 미만 농림·어업 사업장, 고용보험 적용제외 외국인 채용 사업장, 초단시간 근로자 채용사업장, 계절근로자 채용사업장 등)도 지원대상에 포함했다. ② 기존 일자리 안정자금 지급 사업장에 대하여 지원 규모를 확대했다(2~5월 한시 적용, 5인 미만 11→18만원, 5~9인 9→16만원, 10인 이상 9→13만 원). ③ 기존 일자리안정자금의 지원대상이 아니더라도,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 사업장을 지원 대상에 추가하여 중복 지원했다. ④ 지원요건을 충족한다면 연중 언제든지 신청이 가능하며, 1월부터 소급하여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영세 중소기업 사업주와 노동자의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의 지원대상도 확대했다. 고용보험 가입을 촉진하고 사업주의 인건비 부담을 경감하는 목표에서였다. 이 외에도 영세사업장에 고용·산재보험료 납부를 유예하고, 특별피해업종 소상공인의 산재보험료를 30% 경감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3) 가족돌봄휴가
단기적으로 자녀를 포함한 가족을 돌보아야 해서 일자리를 잃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법적으로 가족돌봄휴가가 보장된다(남녀평등고용법). 일반적으로 무급이지만 코로나19시기에는 노동자의 고용유지와 생계보호를 위해 가족돌봄비용을 지원했다. 2020년에는 14만 명(529억 원)에게, 2021년에는 5월 17일 기준으로 3,442명(13억 원)에게 가족돌봄비용을 지원했는데, 실제로 이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노동자는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2) 실업과 소득감소에 대응한 생계 지원
코로나19로부터 일자리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면, 고용정책의 2차적인 목표는 실업자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2020년 코로나19가 급격하게 확산하던 시점에 실업자(정확하게 말하자면, 구직자)에 대한 소득 지원제도는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밖에 없었다. 따라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고용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실업자에 대한 지원책이 별도로 마련되어야 했지만, 이 대책은 대체로 부실했다.
(1) 고용보험 가입경력이 있는 임금근로자에 대한 지원
기존 고용보험 가입자에게는 코로나19가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 충격이 가장 심각했던 3, 4월에도 고용보험 가입자 수 증가추세는 완만해지기는 했으나 지속되었다. 증가추세가 둔화된 것도 고용보험 자격 상실자수(실업자, 3월 2.4만, 4월 –2.5만)의 변화보다 취득자수(신규취업자, 3월 –10.8만, 4월 –12.1만) 변화의 영향이 더 컸다. 기업이 신규채용을 축소·연기하고 휴업·휴직을 통해 고용유지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고용보험 가입경력이 있는 취업자가 실업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실업급여는 구직급여와 취업촉진 수당으로 구분되며, 취업촉진 수당에는 조기재취업 수당, 직업능력개발 수당, 광역 구직활동비, 이주비가 있다. 고용보험 실업급여는 2019년 10월 1일부터 시행된 고용보험법 개정안에 따라 지급액이 퇴직 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상향되었고, 지급기간도 90~240일에서 120~270일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고용보험 가입경력이 있더라도 구직급여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 대책이 특별히 마련되지는 않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 나라는 구직급여 수급요건이 엄격한 편인데, △고용보험이 가입된 상태에서 실직 전 18개월(초단시간근로자는 24개월) 중에 180일 이상 근무하고, △일할 의사 및 능력이 있고 적극적인 재취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이직하거나 중대한 귀책사유로 해고당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수급자격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는 대부분 실업급여를 신청하지 않기 때문에 통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단순하게 고용보험 상실자와 구직급여 신청자 수를 비교해볼 수 있는데, 위의 표에서처럼 약 30만 명 정도의 차이가 있다.)
(2) 고용보험 가입경력이 없는 임금근로자에 대한 지원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일자리를 잃었거나 소득이 감소한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기존의 구직자 지원정책이 확대되고,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이 도입되었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저소득 취업취약계층에게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정책으로, 소득지원정책이라기보다는 고용서비스정책이지만, 위기 상황에서 소득지원정책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정됐다. 지원대상 규모를 확대하고(14→19만 명), 중단되었던 구직촉진수당을 재도입했다(50만원, 3개월). 구직촉진수당은 일거리가 줄어든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도 활용할 수 있게 구직활동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했다. 청년은 취업성공패키지와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연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 외에도 직업훈련 생계비 대부, 국민내일배움카드 개편(자부담 완화), 청년특별구직지원금(만18~34세 미취업 구직 희망자 20만 명, 50만 원) 지원이 확대됐다.
고용보험 미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실업 및 소득감소 지원 정책은 지역 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사업으로 구분된다. 지역자치단체는 ‘코로나19 지역고용대응 등 특별지원 사업’에 따라 특고·프리랜서, 무급휴직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지원했다.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를 주요 대상으로 하여 현재까지 총 네 차례 지급됐다.
피해가 크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일반택시기사 긴급고용안정지원, 전세버스 기사 생계지원, 방문돌봄종사자 긴급생계지원처럼, 특수한 지원이 제공되기도 했다. 피해가 예상되는 무급휴업·휴직 노동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갑작스러운 생계의 어려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지원대상 요건도 완화됐다.
(3)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비임금근로자에 대한 지원
한편 자영업자는 2012년부터 희망하는 경우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2019년 12월 기준으로 0.38%만이 가입한 상황이다. 자영업자는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인해 피해를 집중적으로 입었는데, 이들에 대한 지원 역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소득파악의 정확성이 낮으며, 따라서 피해실태를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집합금지·제한업종이나 연매출 4억 원 이하의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에게는 새희망자금, 버팀목자금, 버팀목자금 플러스를 통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3) 고용정책 평가
코로나19가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은 세계 주요국과 비교할 때 아주 심각하지는 않았다. 2020년 OECD 국가의 경제는 평균 4.7% 역성장했다. 반면 한국 경제는 1.0% 역성장에 그쳤다. 각국의 사회안전망, 고용정책의 효과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고용지표의 변동률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경제의 충격이 덜한 만큼 일자리에 미친 충격도 상대적으로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를 전제하면서 고용정책의 효과를 평가해볼 수 있겠다.
첫째, 고용보험에 가입한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용유지 대책과 실업자 지원은 상대적으로 효과적이었다. 이전 위기와 비교했을 때 많은 기업에서 고용을 조정하기보다는 휴업·휴직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했다. 따라서 실업자가 대량으로 양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2020년 4월 정부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지원에 대해서는 ‘고용안정 등을 위한 노사의 고통분담방안을 요건으로 부과’하며, ‘100조원+@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확대방안에서는 ‘일정규모 이상 중견기업 및 대기업이 자금 이용시 고용유지노력을 유도’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전자와 달리 후자에서는 사업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고용유지노력’ 요건이 완화되거나 사라졌다. 한계기업이 아닌 이상, 예기치 못한 위기에 국가예산을 사기업 지원에 사용하는 요건으로 해당기업에 고용안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후 비슷한 형태의 지원을 제공한다면 반드시 고용안정을 위한 노력이 의무화될 필요가 있다.
한편 호출·파견·용역업체가 고용유지지원을 신청할 수 있도록 요건이 변경되었지만, 호출·파견·용역업체의 사업주가 지원제도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오상봉 씨는 몇 가지 해결책을 제안한다. ①사용사업주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때, 고용사업주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동시에 신청할 수 있게 제도화한다. ②위기가 심각하게 전개될 경우에는 휴업수당을 100% 지원한다. ③고용유지 사업장에 대해 사회보험료를 전액 환급한다. ④평시에 간접고용 사용사업주에게 간접고용에 대한 일종의 패널티를 부과하고, 이로부터 기금을 만들어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 대비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력한 방법은 노동조합의 활동이다. 대표적으로 인천공항-영종지역의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공공운수노조 영종특별지부의 활동이 있다. 영종특별지부는 사용자가 고용유지지원제도를 활용하도록 압박하고, 실제로 ACS 지회 등에서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고용유지를 합의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기간 연장, 고용안정협약지원금 지원 기간 연장을 요구하며 정부 정책의 한계를 메우고 있다.
둘째,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취업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문제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취업자가 전체의 절반에 가깝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노동조합 가입률도 매우 낮다. 만약 코로나19가 더욱 가파르게 확산하여 경제위기가 심각하게 진행되었다면, 실업자 규모는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데 일자리를 잃었거나 소득이 감소한 노동자를 지원하는 대책은 불충분했다. 우선 고용보험에 가입했지만 수급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실업급여를 수급할 수 없는 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었다. 재난 시기에는 실업 사유에 따라 수급자격 요건을 완화하여 적용하는 등의 대응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고용보험기금과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여, 코로나19로 인한 폐업으로 실직하는 경우 고용보험 가입기간과 무관하게 재난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다음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를 위해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이 지급되었지만, 지원대상, 범위, 금액, 안정성의 측면에서 매우 부실했다. 우선 지원대상이 특수고용노동자와 프리랜서로 제한되어 고용보험 미가입 노동자 전체를 포괄하지 못한다. 전체 특수고용노동자가 220만 명으로 추산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원인원도 지원이 필요한 인원을 충분히 포괄했다고 보기 어렵다. 지원금액도 충분하지 않았다. 1~4차까지 최대로 지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2020년 3월부터 15개월간 300만 원, 월 2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지원금이 어느 정도의 간격으로, 얼마나 오래 동안 지급될지 예상할 수 없다. 따라서 수혜자라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생계불안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원과 법적 근거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비임금근로자, 대표적으로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인해 집중적인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너무 늦었으며, 부실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방역조치로 인해 대면서비스업의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났지만, 이들 업종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가장 큰 문제는 자영업자의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고, 따라서 피해실태를 파악하거나 입증하는 것도 어려웠다.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지급을 시작한 것은 2020년 9월부터인데, 이 지원을 받은 소상공인에게 고용된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 역시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나아가 긴급 고용안정지원금과 소상공인 지원이 임시방편적으로 진행되면서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따라서 일반 택시기사나 전세버스 기사, 방문돌봄종사자처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마다 특수한 생계지원 대책이 마련되었다. 반대로 심각한 상황이지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아 지원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수 있다.
4) 민주노총의 대응 평가
(1) 해고금지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충격이 감지되던 때, 민주노총은 코로나19 노동자 피해 상담 사례를 발표하며 ‘재난 상황에서 해고금지’를 요구했다(코로나19 노동자 피해 상담 사례 발표 및 사각지대 노동자 대책요구 민주노총 기자회견, 2020.4.1.). 정부가 내놓은 각종 기업지원 정책에 해고금지, 고용유지를 조건으로 해야 하며, 나아가 ‘정부가 앞장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 해고를 막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최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민주노총은 간접고용노동자를 중심으로 심각한 고용불안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심각한 타격을 입은 항공업에서 무급휴직, 권고사직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민주노총은 원청 사용자가 하청·파견·용역업체 노동자의 고용까지 책임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간접고용노동자 해고금지 긴급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 2021.4.22.). 구체적으로는 ‘상시지속업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 및 고용개선 계획과 노동조건 하락 금지 조건 부과’ ‘간접고용 노동자의 생계보장을 위해 사업주가 재난기본급(고정급)을 마련하여 지급하는 경우, “고용안정을 위한 조치”로 보아,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인정하는 방안 수립’ 등의 해결책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해고금지’의 의미가 변화한다. 5월 20일에는 민주노총 김명환 당시 위원장의 제안이 계기가 되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출범한다. 무엇을 합의할지에 대한 민주노총 내부의 논의는 뒷전으로 한 채였다. 6월 17일 김명환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시 원내대표를 만나 특수고용, 간접고용 등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을 위해’ “정부가 해고금지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날인 18일에서야 민주노총은 중집 회의에서 노사정 대표자회의의 핵심요구로 ‘재난기간 모든 해고금지, 생계소득 보장’을 포함시켰다.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6월 26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해고금지와 생계소득 보장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그러나 결국 ‘해고금지’가 명문화되지 않았으며, 노동계의 고통분담을 포함한다는 등의 이유로 합의안 채택이 부결된다.
이 시점까지 오자, 민주노총이 말하는 ‘해고금지’의 의미는 오히려 모호해졌다. 노사정 합의문은 ‘해고금지’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고용유지 지원제도 확충, 특별고용지원업종 기간 연장 및 추가 지정, 고용유지 지원제도 사각지대 축소(정부는 파견·용역 및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의 고용유지와 생계안정을 위해 고용유지지원금을 적극 활용토록 지도하고, 노사와 논의를 거쳐 필요한 지원방안을 마련한다)을 포함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추상적인 문구이긴 하지만, 민주노총이 구체적으로 제기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나? 김명환 당시 위원장이 주장했던 것처럼 정부가 해고금지 긴급재정명령을 내려야 해고 금지인가? 이를 피하기 위해 사업주가 업체를 폐업해버린다면, 재난 상황에서 폐업 금지도 명령으로 강제할 것인가?
민주노총의 이러한 ‘해고금지’ 요구는 이탈리아 사례에 대한 오독이었다. 이탈리아 노총의 요구는 정세적 요구였지만, 민주노총의 요구는 객관적 상황 인식이 없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4일 이탈리아 노총은 ‘비상사태기간 동안’ 모든 형태의 해고 금지를 주장했는데 이는 방역을 위한 봉쇄와 조업 중단기간동안 ‘한시적’으로 제안된 것이었다. 이에 더하여 사회보험 및 세금 경감의 대상을 고용을 유지한 기업으로 제한하고, 공공부문에 신규인력을 확충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며, 고용안전망을 사업장 규모나 고용형태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확대 적용하며, 사회보장 및 소득지원제도의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수급자격 박탈을 무효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산적인 부문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의 기업지원과 고용유지를 연계한 요구는 민주노총과 비슷했지만, 이탈리아 노총의 요구는 노동자계급의 요구만을 넘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이탈리아 민중 전체를 위한 요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포괄적이었다.
이탈리아 노총의 요구는 이탈리아 정부가 공포한 ‘이탈리아를 치유하자’ 법률 명령(3월 16일)에 반영되었다. 60일 한도의 해고금지 조치와 고용유지 및 소득보장 지원은 이후 방역 상황에 따라 두 차례 더 연장되었다. 정부의 조치에 대하여 이탈리아 노총은 확대 적용된 고용유지 및 소득보장 조치가 대량해고를 막고 모든 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탈리아의 사회보장제도가 제조업 및 대규모 사업장 위주로 설계되어 적용 범위가 협소하고, 따라서 사각지대의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제도를 마련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고용유지 정책도 비슷하게 평가할 수 있는데, 이 평가에 기초한 ‘다음 단계’는 이탈리아 노총과 민주노총에서 극명하게 달랐다. 이탈리아 노총은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사각지대 노동자를 위해서는 별도의 긴급대책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나아가 고용보호와 소득보장을 위한 제도개편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계속해서 ‘해고금지’에 집착했다. 이미 3-4월에 실직자가 대량으로 발생했고, 고용유지제도를 통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가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사각지대의 노동자를 위한다면 민주노총은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는 요구를 더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민주노총의 해고금지 요구는 처음부터 틀린 요구는 아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 속도와 그에 따른 방역조치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고, 그것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 대응하는 고용정책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다. 초기에 정부의 고용유지정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민주노총의 해고금지 요구는 점차 실효성을 잃었다.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이 실직하거나 소득감소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민주노총은 여전히 해고금지를 요구하고 있었고, 그것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박차고 나오는 근거가 되었을 때에는 완전히 잘못된 요구가 되었다. 2021년 현재에도, 민주노총은 총파업 주요 요구 중 하나로 “해고를 금지하고 총고용 보장하라!”를 포함하고 있다.
(2) 재난생계소득
해고금지에 더하여, 코로나19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표적인 요구 중 다른 하나로는 ‘재난생계소득’이 있다. 2020년 3월 10일 민주노총은 코로나19가 야기한 난국을 빠르게 극복하기 위해 ‘상식과 관행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재난생계소득’ 도입을 요구했다. 대구와 청도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점인 3월 18일, 국회는 코로나19 대응 추경안을 의결한다. 민주노총은 이 1차 추경안에 대하여 영세노동자, 특수고용 비정규직, 자영업 소상공인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생계자금이 포함되지 않았음을 규탄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재난생계소득’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2차 추경에서 이를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보편적인’ 지원이 ‘피해 규모에 따른 선별적인’ 지원보다 낫다고 결코 이야기할 수 없다. 코로나19의 피해가 산업에 따라, 기업규모에 따라, 노동자의 성격에 따라 차별적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도 노동자들이 업종과 고용형태에 따라 코로나19로부터 다른 형태의 충격을 받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고용유지제도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해고된 간접고용노동자를 위해 ‘전국민 재난생계소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급휴직노동자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안, 고용보험 가입경력이 있는 노동자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안을 구체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요구안에는 아직까지도 재난생계소득 지급이 포함되어 있다.
(3) 총평
민주노총은 코로나19 대응은 ‘해고금지’와 ‘재난생계소득’ 요구만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됐다.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의 관점에서 코로나19가 초래한 위기의 성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총체적인 대응방안을 요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코로나19 대응 전략 마련에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민주노총이 총체적인 전략을 마련하는데 실패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첫째, 코로나19 위기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코로나19 위기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사태이긴 하지만, 이 상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쉬웠다. 먼저 코로나19 위기는 방역과 경제의 필연적인 상충관계를 낳는다. 질병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방역조치는 당연히 경제활동의 위축을 낳을 수밖에 없고, 집단면역이 달성되기 전까지는 단기적 경기부양 조치가 완전한 경기회복을 낳을 수 없을 뿐더러 도리어 질병을 확산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지난해 5월 ‘경제활력 추경’이나, ‘내수 진작을 위한’ 재난생계소득을 주장했다. (심지어 민주노총은 당국의 방역조치를 무시하는 듯한 집회를 강행하여 우려를 낳기도 했다.) 나아가 코로나19위기는 장기화될 개연성이 충분했고, (심지어 변이 바이러스의 위험까지 등장했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종합적인 경제대책이 필요했다. 특히 소상공인과 기업이 코로나19 위기로 파산할 경우, 설령 코로나19 보건위기가 종식되더라도 경제가 회복력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이 컸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 임하는 시야는 매우 협소했고, 이 때 민주노총이 가장 중시한 ‘해고 금지’ 요구가 지닌 여러 한계점은 이미 앞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둘째,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는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았거나, 설령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고용유지제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건에 있었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실업했거나 소득이 감소한 경우를 고려하여 실질적인 요구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크지 않았다. 고용유지지원 제도 밖에 있는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의 시야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민주노총은 고용유지제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든 받을 수 없든 차별하지 않고 모든 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는 종합적인 요구를 마련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셋째, 고용유지지원제도 등 코로나19 대응 고용정책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전체적인 시야가 없었다. 따라서 어떤 노동자들이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또 어떤 노동자들은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지를 인식하지 못했다. 이는 구체적인 요구를 마련할 수 없었던 이유와도 관련이 된다. 사회공공연구원이 발행한 「코로나19 장기화와 고용·실업대책 개선 방향」은 고용정책 전반에 대한 쟁점과 개선사항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내용이 민주노총의 요구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3. 위기 대응을 넘어 고용안전망 확충으로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에서 고용보험 제도를 보완하는 정책 조정을 통해 노동시장의 파괴적인 영향을 막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고용보험제도는 고도경제성장기의 정규직 중심의 종신고용 및 완전고용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었다. 외환위기 이후로 변화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에 잘 조응하지 못하고 있었고, 2020년 코로나19로 고용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는 고용보험이 보호하지 못하는 영역에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남겨져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고용보험 제도에 기초한 고용유지와 소득지원 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고용안전망을 확충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1) 고용안전망 확충
문재인 정부는 고용보험 가입대상 확대와 한국형 실업부조제도 도입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이 두 가지 정책수단은 궁극적으로 중층적인 고용안전망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고용보험 가입대상 확대와 한국형 실업부조제도는 2018년부터 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를 맞아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이른바 ‘K-방역’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던 2020년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 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를 위해 다시 제시된 것이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국민 고용보험시대’”와 “한국형 실업부조제도인 국민취업지원제도”였다. 이후 ‘전국민 고용보험’과 ‘국민취업지원제도’는 모두 한국판 뉴딜에 포함됐다. 현재 전자는 2020년 12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2025년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후자는 2021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1) 전국민 고용보험
2020년 12월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이 발표됐다.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적용대상의 확대다. 지난 12월 10일,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이 이미 시작됐고, 오는 7월에는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직 14개 직종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플랫폼 종사자는 특성에 따라 고용보험 적용 시기가 다른데, 사업주 특정이 용이한 플랫폼 종사자는 2022년 1월부터, 기타 특고 및 플랫폼 직종은 2022년 7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2025년까지는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까지 확대된다.
이 외에도 로드맵은 △실질적 사각지대 해소와 적용제외 영역 최소화, △고용보험 가입기준 변경(월 60시간 이상의 근로시간→소득, 2023년까지), △고용보험기금의 재정건전성 관리, △모성보호의 확대적용을 포함하고 있다. 세부 실행방안은 고용노동부 주관 하에 대한상의·경총·양대노총이 참여하는 고용보험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한다.
(2) 국민취업지원제도
실업자를 지원하는 보상제도는 목적과 원리에 따라 실업보험, 실업부조, 공공부조로 분류된다. 각각은 고용안전망의 서로 다른 층을 구성한다. 세계 각국은 실업보험, 실업부조의 유형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필요와 조건에 따라 대상·재원을 조정하여 운영한다. 실업보상제도를 단층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 층을 조합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에 우리나라의 고용안전망은 고용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로 구성되는데, 2층의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는 매우 넓다. 따라서, 이병희(2013)는 고용안전망 확충을 위해 △1차 안전망인 고용보험의 적용과 수혜범위를 확대하고, △최종 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성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사각지대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형 실업부조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형 실업부조는 취약노동계층이 장기적으로 실업상태에 머무르지는 않지만, 실직 위험이 높고 저임금 일자리에 고착될 위험이 큰 특징이 있고, 현금급여가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이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① 더 나은 일자리로의 취업지원을 우선 목표로 하고 ② 생계 지원을 후순위 목표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2020년 6월 「구직자 취업촉진 및 생활안정지원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고, 2021년 1월 1일부터 국민취업지원제도가 시행된다. 이 제도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Ⅰ유형과 저소득층, 청년,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Ⅱ유형으로 구분되는데, 전자에게는 구직촉진수당(50만원, 6개월)과 취업지원서비스를, 후자에게는 취업활동비용과 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
2) 평가
고용안전망 확충이라는 방향은 타당하지만,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고용보험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적용대상 확대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국민” 고용보험을 강조하며 고용보험 적용범위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정부의 추진과정에서도 적용대상이 어떻게 확대되는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적용대상을 확대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고용보험 가입을 기피하는 취업자가 많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고용보험 적용기준, 소득확인과 보험료 징수체계, 보험료율과 급여수준 등이 총체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면 고용보험 확대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전국민고용보험 로드맵은 대통령과 여당의 입장보다는 더 나아가서 가입대상 확대뿐만 아니라 실질적 사각지대 해소, 기준 변경, 소득확인 체계 개편, 재정안정성 확보를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특수고용노동자나 예술인에게도 혜택을 제공하는 고용보험법 조항의 일부 추가가 아니라 고용보험 체계의 전반적인 개편을 위한 큰 틀의 고용보험법 개정이 필요하다. 고용보험제도개선 태스크포스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지만, 현재로서는 의미있는 합의에 이르렀으리라고 추측하기 어렵다(외부로 뚜렷하게 밝혀진 내용이 없다). 정부의 홍보자료를 통해 파악하건데,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고용보험의 틀을 근본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법 개정 준비하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둘째, 저임금, 짧은 근속의 노동시장구조를 개선하려는 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취약노동자의 저소득 고착화를 막기 위해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신설했다. 그러나 저임금, 짧은 근속의 노동시장 구조가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제도를 신설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다. 괜찮은 일자리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저소득 취업자의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도 노동시장 구조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앞서 짚어본 것처럼, 고용보험의 가입 유인을 제고하지 않는다면 법적인 적용범위 확대는 의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회보험료 부담이 생계에 어려움을 줄 정도로 임금이 낮고, 실업급여를 수급하지 못할 정도로 근속이 짧거나 이직이 일상화되어있는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특징이 고용보험 가입을 방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저임금·짧은 근속이 고착화된 영역 자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고용보험 강화도 가능하다.
3) 노동자운동에 주는 시사점
먼저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고용안전망 확충’에 대한 총체적인 입장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의 고용보험 제도는 종신고용 정규직을 기준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모든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소득 감소를 지원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민주노총은 1개 사업장에서 주5일 8시간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에게 맞추어진 고용보험 제도가 1명 이상의 사용자와 다양한 형태로 계약을 맺는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포괄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진짜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 전반에 대한 요구를 마련해야 한다. 또 고용보험 제도와 보완적으로 운영되는 취업지원제도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
다음으로 민주노총은 고용안전망을 제약하는 노동시장의 취약한 부분을 개선하는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그런데 저임금, 단기근속이 고착화된 노동시장의 특정한 영역에 밀집한 취약 노동자는 민주노총으로 조직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민주노총 조합원만을 바라본다면 이들이 배제될 위험이 크다. 민주노총은 미조직, 저임금, 단기근속 노동자들을 위해 별도의 정책적, 조직적 역량을 투자하고, 이러한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불안정안 일자리로 구성된 노동시장은 재벌·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으로 양극화된 한국의 경제현실에서 야기되는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19의 여파는 기술력과 자본력이 약한 기업에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기업에 소속된, 고용보험의 보호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만약 이들 기업이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노동자도 코로나19의 피해를 빗겨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노동자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지만, 이들이 속한 영세한 기업만 파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한국경제의 취약한 부분이 해결되어야 그에 속한 노동자도 보호받을 수 있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4. 나가며
아직 코로나19로부터의 회복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2월 26일부터 시작한 코로나19 백신접종이 5월 31일 현재 1차 접종자 비율 11.2%, 접종 완료자 비율이 4.2%에 불과하다. 백신접종이 늦어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는 데에는 아직도 반년은 더 걸릴 수 있다. 게다가 경기가 회복된다 해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을 찾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일시휴직자가 우선 업무로 복귀한 후 실업자와 잠재구직자들이 순차적으로 노동시장에 복귀하게 될 것까지 고려한다면 일자리의 완전한 회복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일자리 회복을 방해하는 다른 문제도 있다. 경제 성장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한 것일 수 있다. 코로나19의 충격은 일시적이었지만, 남한 경제의 구조적인 위기는 장기적이기 때문이다. 남한경제의 잠재 성장률은 10년에 한번 위기를 겪을 때마다 1%p씩 하락했다. 그에 조응하여 고용률도 계속해서 하락해왔다. 남한만의 문제는 아니다. OECD 모든 국가에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위험이었던 것처럼, 세계 자본주의가 직면한 성장의 한계 역시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 ‘오래된 위험’의 성격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발생한 것이기에, 여전히 노동자운동이 해야 할 역할이 크다. 노동자운동은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이 우호적이지 않음을 받아들인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 출발점은 우리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회복기의 대응이 그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